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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2 장 ◇
해설   목차 (총 : 20권)     이전 12권 다음
1906년
이인직
1
지혜 많은 제갈공명을 얻고 물을 얻은 고기같이 좋아하던 한소렬도 있었으나 그것은 사기상에 지나간 옛일이라.
 
2
지금 우리나라 장안 돌구멍 안에 전동 김승지의 부인은 꾀 많은 점순의 말을 듣고 좋아서 미칠 듯한 모양이 고기가 물 얻은 것보다 더하더라. 점순이는 상전에게 긴할수록 더욱 긴한 체하고 하던 말을 두세 번 거푸 한다.
 
3
"오냐 오냐, 돈은 얼마나 들든지, 너 하라는 대로만 할 터이니, 부디 낭패 없이 잘만 하여라. 에그 고년, 신통한 년이지, 키는 조그마한 년이 의사는 방통이 같구나. 춥다. 내 덧저고리 입고 다녀오너라. 나는 오늘부터 영감을 뵙더라도 아무 소리 말고 가만히 있으마."
 
4
점순이가 부인의 명을 듣고 황금사만을 출입하던 진평의 수단 같은 경영을 품고 남대문 밖으로 나가더라.
 
5
해는 져서 점점 어스름 밤이 되어 가는데, 도동 춘천집 행랑에 든 더부살이 계집이 대문을 걸러 나왔다가 어떤 젊은 계집이 문 밖에 와서 알던 집 들어오듯이 쑥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을 안 닫고 섰으니, 그 계집이 살짝 돌아다보며,
 
6
"여보, 이 댁이 전동 김승지 영감의 별실 되시는 춘천마마님 댁이지요."
 
7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다가 어린애 우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 행랑 사람을 다시 돌아보며,
 
8
"여보, 이 댁에 어린아기 소리가 나니 아기는 뉘 아기요."
 
9
"이 댁 마마님이 이달 초승에 아들아기 낳았소."
 
10
그 계집이 다시 묻는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니,
 
11
"어데서 오셨소?"
 
12
"영감 댁에서 심부름 온 사람이오."
 
13
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침모가 춘천집을 대하여 김승지 부인의 흉을 보던 끝인데 그 말 끝에 점순이 말이 나서 고년이 여우 같으니 무엇 같으니 하며 정신없이 말을 하다가 점순이 목소리를 듣고 침모가 깜짝 놀라면서,
 
14
"에그머니, 조년이 여기를 어찌 알고 오나, 내가 공교롭게 여기 왔다가 고년의 눈에 띄면 또 무슨 몹쓸 소리를 들을지……."
 
15
"그것이 누구란 말이오?"
 
16
"지금 말하던 점순이오."
 
17
하던 차에 점순이는 벌써 마루 위에 올라와서 방문을 여니, 침모는 망단한 기색이 있고 춘천집은 어린애를 안고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가만히 앉았더라.
 
18
"저는 큰댁 하인 점순이올시다. 벌써부터 마마님께 와서 뵈옵자 하면서도 바빠서 못 와 뵈었습니다. 에그, 침모 마누라님도 여기 와서 계시군……."
 
19
"내가 여기 있는 줄을 몰랐던가?"
 
20
"알 수가 있습니까."
 
21
하면서 춘천집 앞으로 바싹 다가앉더니,
 
22
"에그, 아기도 탐스럽게 생겼지…… 마마님 닮았군…… 그러나 방이 이렇게 추워서 마마님도 추우시려니와 아기가 오죽 춥겠습니까. 아마 나무가 귀한 모양인가 보이다. 부리시는 하인도 없습니까. 제가 나가서 불이나 좀 때고 들어오겠습니다."
 
23
하면서 벌떡 일어서는데, 침모는 다친 몸을 억지로 일어앉힌 터이라 드러눕고 싶으나 점순이가 가기만 기다리며 담배만 먹고 앉았고, 춘천집은 젖꼭지 문 어린애 얼굴만 내려다보고 입을 봉한 듯이 앉았더라.
 
24
안마당에서 사람의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더부살이 계집과 작은돌이가 들어오면서 떠드는데,
 
25
"이 짐은 안마루 끝에 부려 놓아라. 저 나무 바리는 밖 옆마당에 부려 놓아라."
 
26
하는 소리를 듣고 점순이가 마루로 나가면서,
 
27
"왜 인제 왔소?"
 
28
"인제가 다 무엇이야. 좀 빨리 왔나. 짐꾼 데리고 오다가 나무 사느라고 지체되고……."
 
29
하면서 짐을 끄르는데, 점순이가 다시 방으로 돌쳐 들어오더니 팔짱을 끼고 윗목에 서서 춘천집을 건너다보며,
 
30
"마마님, 저것을 어데 들여놓으면 좋겠습니까."
 
31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32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아니한다.
 
33
"물목을 적은 것은 없습니다만 쇤네가 말씀으로 여쭙겠습니다."
 
34
하더니 무엇무엇을 주워섬기는데, 처음에는 점순이가 제 말을 하려면 제라고 하더니 새로이 말공대가 늘어서 쇤네라고 하니, 춘천집은 불감한 생각이 드는 중에 뜻밖에 큰집에서 보냈다는 물종이 값을 칠 지경이면 엽전으로 여러 백 냥 어치가 될지라.
 
35
천하를 다 내 것을 삼고 독재전제(獨裁專制)하던 만승 천자도 무엇을 주면 좋아하는 그러한 세상에 동지섣달 추운 방 속에서 발발 떨고 두 무릎이 어깨까지 올라가도록 쪼그리고 앉았던 춘천집이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 땔 것을 하품이 나도록 받아 가지고 숫보기 여편네 마음이라 흡족한 생각이 들어간다.
 
36
"그것은 누가 보내셨단 말인가?"
 
37
하면서 얼굴에 좋아하는 빛을 띠었더라.
 
38
"자네 댁 마님이 보내시던가?"
 
39
"……"
 
40
"그것 참 이상한 일일세그려. 자네 댁 마님이 돌아가시려고 환장하셨나 베."
 
41
"글쎄 말이지요. 마음이 변하기로 우리 댁 마님같이 변할 사람이 누가 있겠소. 침모 마누라님 가신 후에도 장 후회를 하시고, 댁 마마님이 춘천서 올라오시던 날도 그렇게 몹시 야단을 치시더니, 지금까지 후회를 하시니, 어찌하면 그렇게 변하시는지……."
 
42
침모가 그 소리를 듣더니 반신반의하여 이상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 말 없이 점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43
"그러나 마님께서 지금도 영감 앞에서는 후회하시는 기색도 아니 보이시니 그것은 웬일인지…… 마님 말씀에는 영감께서 무슨 일이든지 마님을 속이신다고 거기 화를 내시는 모양인데, 마마님이 시골서 올라오시기 전에 영감께서 마마님 오신다고 마님께 말씀 한마디만 하여 두셨더면 마님께서 그렇게 대단히 하실 리가 없어요. 부지불각에 교군이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 그렇게 하셨지요. 그 마님이 성품이 날 때는 오죽 대단하십니까. 침모 마누라님도 알으시니 말씀이지요. 지금도 영감께서 무슨 일이든지 마님께 먼저 의논만 하시면 마님이 그렇게 박절히 아니하셔요. 마님이 마음 내키실 때는 활수하고 좀 좋으신 마음이오니까. 침모 마누라님은 겪어 보셨지요."
 
44
하면서 요악을 부리는데, 춘천집과 침모의 마음은 봄바람에 눈 녹듯이 풀어지는데, 점순이는 벌써 눈치를 알고 다시 침모를 보며,
 
45
"침모 마누라님은 언제부터 이리 오셨습니까. 노마누라님은 계동 댁에 혼자 계십니까."
 
46
그 말 끝에 침모는 대답을 아니하고 있는데, 점순이가 지게문을 열고 짐 풀어 들여놓는 작은돌이를 내다보며,
 
47
"여보 순돌 아버지, 내일 일찍이 종로 가서 나무 한 바리 크고 좋은 것으로 사서 계동 침모 마누라님 댁에 갖다 드리시오. 아까 우리댁 마님께서 말씁하십디다."
 
48
하더니 다시 문을 닫고 쪼그리고 앉으면서 혼자말로,
 
49
"에그 참, 마누라님이야 아드님 없고 재물 없고 나인 많으시고 아무도 없으시니 말이지, 앞도 못 보시는 터에…… 침모 마누라님같이 효성 있는 따님이 없었던들…… 에그 참……."
 
50
하면서 말끝을 마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씻는데 수건으로 눈을 홈착홈착 씻는 모양이라, 춘천집은 의구히 젖 먹는 어린애만 들여다보며 앉았고, 침모는 머리맡 미닫이 창살만 정신없이 보고 앉았다가 점순의 말에 오장이 저는 듯하며 눈물이 떨어진다.
 
51
사람이 제 설움이 과하면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남을 원망하는 일도 있지마는, 제 설움이 과할 때에 원망하던 곳도 원망할 마음이 풀어지는 일도 있는지라.
 
52
침모가 김승지 집을 원망하던 마음이 풀어지고 제 팔자와 저의 어머니 신세가 가련한 생각만 나서 눈물을 씻고 점순이를 건너다보며,
 
53
"세상에 누가 우리 어머니 신세 같은 사람이 또 있겠나. 김승지 댁에서 나무를 왜 사서 보내신단 말인가. 마음 쓰시는 것만 하여도 받으니나 진배없네. 내일 나무 사거든 그 나무를 마마님께 갖다 드리게."
 
54
하면서 점순이를 보고 신세타령이 나오는데 언제부터 점순이와 그렇게 정이 들었던지 친동생이나 본 듯이 평일에 지낸 일과 평생 먹었던 마음까지 낱낱이 말하는데, 쓰러져 죽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굽이굽이 처량한 일이 많은지라 그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만 떨어지는데 옆에 사람이 차마 볼 수가 없더라.
 
55
춘천집은 제 설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침모를 불쌍히 여겨서 어떻게 하면 저러한 사람을 잘 도와 줄꼬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또한 눈물이 떨어진다.
 
56
점순이는 눈물은 아니 나나 같이 슬퍼하는 입내를 내느라고 고깃고깃하게 도리뭉친 서양 손수건을 손에 쥐고 팔꿈치는 쪼그리고 앉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수건 든 손이 밤벌레같이 살찐 볼때기를 버티고 얼굴은 사람 없는 벽을 향하여 앉았는데, 방 안이 다시 적적하였더라.
 
57
침모의 치마 앞에는 소상반죽에 가을비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지는데, 그 눈물을 화답하는 춘천집의 눈에서 눈물이 마주 떨어지다가 어데 가 못 떨어져서 잠든 어린애 눈 위에 떨어지니, 춘천집이 치맛자락으로 어린애 눈을 씻기는데 그 아이가 잠을 깨어 젖꼭지를 물었던 고개를 내두르며 우니, 점순이가 홱 돌아앉으며 춘천집 앞으로 다가앉더니,
 
58
"아기를 이리 줍시오. 쇤네가 젖을 좀 먹여 보겠습니다. 쇤네 자식은 암죽으로 키우더라도, 내일부터는 쇤네가 댁에 와서 마마님 아기를 젖 먹이고 있겠습니다. 마마님 댁 행랑에 든 사람은 우리 댁 행랑으로 보내고 쇤네는 이 행랑으로 오겠습니다. 작은돌이는 영감 뫼시고 다니는 터이니 올 수가 없으나 쇤네 혼자 와서 조석진지나 지어 드리고 아기 젖이나 먹이고 있겠습니다."
 
59
"……"
 
60
"그러한 걱정은 맙시오. 쇤네의 자식은 마님께서 재미로 거두어 주신답니다. 마님께서 자녀간에 아무것도 없으신 고로 어린애를 보면 귀애하신답니다."
 
61
하면서 어린애를 받아 안고 젖을 먹이는데 춘천집이 잠시 동안에 점순이와 어찌 그리 정답게 되었던지 점순이가 그 행랑으로 아니 올까 염려하고 있더라.
【원문】제 1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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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직(李人稙) [저자]
 
  1906년 [발표]
 
  신소설(新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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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