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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6 장 ◇
해설   목차 (총 : 20권)     이전 16권 다음
1906년
이인직
1
그날 밤 점순이가 어린애를 안고 건넌방에로 건너가니 침모가 김승지의 버선을 짓고 앉았더라.
 
2
"마누라님, 하시는 일이 무엇이오니까?"
 
3
"영감 버선일세."
 
4
"우리 댁 영감께서는 다니실 곳이 많으니 버선을 많이 깁지요."
 
5
"어데를 그리 다니시나?"
 
6
"마님께 가시지요. 마마님께 가시지요. 침모 마누라님께 오시지요. 남은 버선 한 켤레 떨어질 동안에 우리 댁 영감께서는 세 켤레 떨어질 것이 아니오니까."
 
7
침모가 손짓을 하며,
 
8
"요란스러워, 마마님 들으시리."
 
9
"마누라님이 마마님을 그리 무서워하실 것이 무엇 있습니까. 마마님이나 마누라님이나 무엇 다를 것 있습니까. 춘천마마가 좀 먼저 들어왔다고, 마누라님이 그리 겁을 내십니까?"
 
10
"겁은 아니 나도 내가 큰소리할 것이야 무엇 있나. 영감이 아무리 나를 귀애하시더라도 나를 첩이라 이름지어 둔 터는 아니요, 마마님은 처음부터 영감이 첩으로 정하야 주신 터이 아닌가. 에그, 춘천마마는 지정 닿네, 저러한 아들까지 낳고……."
 
11
하면서 기색이 좋지 못한 모양인데, 본래 고생 많이 하고 설움 많은 사람이라 춘천집을 부러워하는 모양이더라.
 
12
점순이가 그 기색을 알고 침모를 쳐다보며 상긋이 웃으니, 침모는 말을 하다가 부끄러운 기색이 있더라.
 
13
"여보 침모 마누라님…… 저렇게 얌전하신 터에 어째 바늘귀만 꿰고 세월을 보내시오."
 
14
"나같이 팔자 사나운 년이 이것도 아니하면 굶어 죽지 아니하나."
 
15
"그 말씀 말으시오. 지금이라도 침모 마누라님 하실 것이 있지요."
 
16
"무슨 좋은 도리가 있나."
 
17
"좋을 도리가 있으면 그대로 하시겠소?"
 
18
"내가 이제는 고생이라면 진저리가 나네. 고생을 면할 도리가 있으면 아무것이라도 하겠네."
 
19
점순이가 귀가 번쩍 띄어서 바싹 다가앉으면서 나직나직하던 목소리를 가장 엿듣는 사람이나 있는 듯이 침모 귀에 대고 가만히 하는 말이,
 
20
"나도 침모님 덕 좀 봅시다그려."
 
21
하면서 생긋이 웃으니,
 
22
"내가 자네게 덕을 보여 줄 힘이 있는 사람인가? 만일 덕을 보여 줄 수만 있으면 하다뿐이겠나."
 
23
"아니오, 내가 침모님 잘될 도리를 바라는 말이지, 내가 잘될 도리를 바라는 말은 아니오. 지금이라도 내 말만 들으시면 침모 마누라님이 아무 걱정 없이 일평생을 잘 살으실 것이오."
 
24
침모가 바느질하던 것을 놓고 담배를 담으면서,
 
25
"저 잘될 것 마다는 사람이 누가 있나. 나도 긴긴 밤에 바늘을 들고 앉았으면 별생각이 다 나는 때가 많이 있네."
 
26
"지금 춘천마마님만 없으면 침모 마누라님이 호강을 하실 것이올시다."
 
27
"춘천마마가 없을 까닭이 있나……."
 
28
"죽으면 없어지는 것 아니오니까."
 
29
"맑은 사람이 죽기는 언제 죽는단 말인가."
 
30
"죽이면 죽는 것이지요."
 
31
침모가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몸이 벌벌 떨리는데 한참을 아무 소리 없이 앉았더라.
 
32
점순이가 내친 걸음이라 말을 냈다가 만일 침모가 듣지 아니하면 큰일이 날 듯하여 첩첩한 말로 이리 꾀고 저리 꾀고 어떻게 꾀었던지, 침모의 마음이 솔깃하게 들어간다.
 
33
흉계를 꾸미느라고 둘이 대강이를 맞대고 수군거리는데, 점순이의 무릎 위에 안겨 잠들었던 어린애가 깨어 우니 점순이가 우는 애를 말끄러미 들여다보며,
 
34
"얘, 네가 내 무릎 위에서 잠도 많이 잤느니라. 일 년을 잤으면 무던하지, 오냐 실컷 울어라. 오늘뿐이다."
 
35
하면서 젖꼭지를 물리니, 침모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소름이 끼친다.
 
36
"여보게 밤들었네, 그만 가서 자게. 이 방에 너무 오래 있으면 마마님이 수상하게 알리."
 
37
점순이가 상그레 웃으면서,
 
38
"저렇게 무서워하던 마마님이 없으면 오죽 시원하실라구. 나를 상 줄 만하지마는…… 침모 마누라님, 그렇지요…… 에그, 침모 마누라님이 무엇이야. 내일부터는 마마님이라 하지…… 버릇없다고 꾸중 말으시오."
 
39
하면서 양양자득한 기색으로 일어나더니 다시 돌쳐서서 침모를 보며,
 
40
"여보, 부디 내일 밤 열한시로……."
 
41
침모는 딴생각을 하다가 점순이 말에 고개만 끄덕거리고, 점순이가 행랑으로 나간 후에 침모는 혼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각색 생각이 나기 시작하더니, 눈이 반반하고 몸에 번열증이 나서 이리 둥긋 저리 둥긋 하다가 정신이 혼혼하여 잠이 들락말락하는 중에, 건너편 남관왕묘에서 천둥 같은 호령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에 꼭뒤가 세 뼘씩이나 되는 사람이 춘천집 마당으로 그득 들어서서 일변으로 침모를 잡아내리더니, 솔개가 병아리 차고 가듯 집어다가 관왕묘 마당 한가운데에 엎질러 놓고 대궐 같은 높은 집에서 웬 장수 하나가 내려다보며 호령이 서리 같다.
 
42
"요년, 너같이 요악한 년은 세상에 살려 둘 수가 없다."
 
43
하더니 긴 칼을 쑥 빼어 들고 한걸음에 내려와서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침모의 목을 뎅겅 베는 서슬에 침모가 소리를 지르고 잠을 깨니 꿈이라.
 
44
어찌 무서운 생각이 들던지 이불 속으로 고개를 움츠리고 누웠다가, 무서운 마음을 진정하여 일어나서 불을 켜고 앉았다가, 창살이 밝아 오는 것을 보고 아끼던 옷가지만 보에 간단하게 싸서 들고 아무 소리 없이 나가다가 다시 생각한즉, 새벽녘에 보퉁이 들고 길에 나가기도 남 보기에 수상한 일이요, 춘천집이 깨어 보더라도 이상하게 알 것이요, 점순이는 내가 김승지 영감에게 무슨 말이나 하러 간 줄로 의심을 할 듯하여 다시 방에 들어가 앉았다가, 안방에서 춘천집이 깨어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불을 툭 끄더니 보퉁이를 감추고 옷 입은 채로 이불을 쓰고 드러누웠더라.
 
45
해가 무럭무럭 올라오는 대로 이불 속에서 꿈적거리던 사람들이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자던 춘천집도 일어나고, 늦게 누워 곤하게 자던 점순이도 단잠을 억지로 깨어 일어나고, 잠자는 시늉을 하고 누웠던 침모도 일어났다.
 
46
침모가 제 집으로 가서 그 어머니와 의논을 하고 싶으나 점순이가 의심할 듯하여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치 못한다.
 
47
미닫이를 열고 앉았다가 점순이를 보고 눈짓을 하니 점순이가 고갯짓만 살짝 하더니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서 춘천집을 보고 아침 반찬 걱정을 부산히 하다가 돌쳐나오는 길에, 건넌방으로 들어가면서 짐짓 목소리를 크게 하여 말을 하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가만히 하는 말이,
 
48
"무슨 할 말 있소?"
 
49
"여보게, 나는 꿈도 하 몹시 꾸어서 심병이 되네."
 
50
하면서 꿈 이야기를 하니, 점순이가 상긋 웃으며,
 
51
"마누라님 마음이 약하신 고로 그런 꿈을 꾸셨소. 어젯밤에 하던 말이 마음에 겁이 나셨던가 보구려. 걱정 말으시오. 사람을 죽이고 벽력을 입으려면 낙동장신(駱洞將臣) 이경하(李景夏)는 날마다 벽력만 입다 말았게요…… 마누라님 마음에는 우리가 그런 일을 하면 무슨 벽력이나 입을 듯하지요. 흉즉대길이랍디다. 그런 꿈은 좋은 꿈이오."
 
52
"자네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좀 진정이 되네. 그러면 오늘 밤 되기 전에 내 짐이나 좀 치우겠네."
 
53
"그까짓 짐은 치워 무엇 하시려오? 짐을 치우면 수상하니 치우지 말으시오. 무엇이든지 다 장만하여 드릴 터이니 염려 말으시오."
 
54
침모가 일변 안심도 되고 일변 조심도 되나, 점순에게 매인 것같이 점순이 하는 대로만 듣고 있다가 해가 낮이 된 후에 점순이가 어데로 가는 것을 보고 혼자 지향없이 대문간에 나섰다가, 관왕묘 집을 보고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치마를 쓰고 나가면서 춘천집더러 어데 간다는 말도 아니하고 계동으로 향하여 가더라.
【원문】제 1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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