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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8 장 ◇
해설   목차 (총 : 20권)     이전 18권 다음
1906년
이인직
1
침모가 계동서 김승지 집에로 향하여 갈 때는 조심도 되고 겁도 나고 아무 기운 없이 심려 중에 싸여 갔더니, 김승지 집을 다녀 나올 때는 마음이 쾌하고 기운이 난다. 높직하게 올라앉아서 서슬 있게 가는 바람에 여편네 마음일지라도 소진이가 육국을 합종이나 하러 가는 듯이 호기로운 마음이 생기더라.
 
2
입으로 옮기지는 아니하나 마음으로 혼자 말이라.
 
3
'김승지의 마누라인가 무엇인가 그 흉한 년이 어데서 생겼누. 그런 흉악한 년이 있을 줄 누가 알아. 투기한다 투기한다 하기로 그런 년의 투기가 어데 있어. 춘천집 모자를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고 그년이 그런 흉계를 꾸며. 양반은 말고 태상노군의 부인일지라도 그따위 짓을 하고, 제가 제 명에 죽기를 바라…… 점순이란 년은 어데서 그따위 년이 생겨서 그 흉악한 년의 종이 되었누. 에그, 아슬아슬하여라. 내가 고년에게 속던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지. 어찌하면 고렇게 앙큼하고 담대한고. 우리 어머니가 아니러면 고 몹쓸년의 꼬임에 빠져서 무슨 지경에 갔을꾸.'
 
4
한참 그런 생각을 할 때에, 인력거가 남대문 밖 정거장을 썩 지나면서 창고회사 벽돌집이 눈에 선뜻 보이는데, 그 앞으로 올라오는 전차 하나가 천둥 같은 소리가 나며 남문을 향하고 번개같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혼자말로,
 
5
"에그, 그 회사집 앞으로 전차 지나가는 것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구나. 춘천집이 죽으려고 엎드렸던 곳이 저 회사집 앞 철도로구나. 저러한 전차에 치었다면 두 도막 세 도막 났을 뻔하였지. 그날 내가 용산 가기도 이상한 일이요, 밤중에 오기도 이상한 일이요, 인력거꾼이 걸려 넘어진 것도 이상한 일이요, 내가 인력거에서 떨어져서 사지를 꼼짝 못 하게 되어 떠실려서 춘천집에로 들어가기도 이상한 일이지. 춘천집이 오죽 설워서 어린 자식 두고 자수를 하려 들었을까. 그렇게 불쌍한 사람을 김승지의 마누라와 점순이가 기어이 죽이려 드니, 그런 몹쓸 년들이 또 어데 있어. 나도 몹쓸 년이지, 아무리 점순이가 꼬이기로 그 소리를 솔깃하게 들어. 나는 우리 어머니 심덕으로 내가 몹쓸 곳에 빠지게 된 것을 면할 터이나, 춘천집은 어찌 될 것인고."
 
6
하면서 정신없이 앉았는데, 인력거꾼은 어데로 가는지 묻지도 아니하고 도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지내 놓고 창고회사집 앞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다가 앞에서 마주 오는 인력거와 어찌 몹시 부딪쳤던지, 인력거 탔던 사람들은 박랑사(博浪沙) 철퇴 소리에 놀란 진시황같이 혼이 나서 서로 내다보더라.
 
7
좌우 길가에는 걸어가는 행인들이요, 길 가운데는 말바리 쇠바리 인력거들이다. 사람을 피하여 가는 인력거의 바퀴 끼운 도래쇠가 마주 부딪치니, 사람은 다치지 아니하였으나 인력거꾼들은 인력거나 상하였을까 염려하여 인력거를 멈추고 앞뒤로 돌아다니면서 인력거를 살펴본다.
 
8
침모가 놀란 마음을 진정하여 살펴보니, 전년 겨울에 인력거에서 떨어지던 곳이요, 춘천집이 죽으려고 엎드렸던 철도 가이라. 침모가 지난 일이 생각이 나서 고개를 냅들고 정신없이 길바닥을 보고 있는데, 마주치던 인력거 위에서 내다보는 사람은 나이 삼십이 될락말락한 남자이라. 의관이 깨끗하고 외모도 영특하게 생겼으나 언뜻 보아도 상티가 뚝뚝 떨어지는 천격의 사람이라.
 
9
점잖은 사람 같으면 사람이 다쳤느냐 묻든지, 인력거가 상하였느냐 묻든지 그러한 말뿐일 터인데, 침모의 얼굴을 보고 춘향의 옥중에 점치러 들어가는 장님의 마음같이 춘심이 탕양하여 구레나룻을 썩썩 쓰다듬으며, 내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얼굴을 치어다보아라 하는 듯이 헛기침을 연해 하며 막걸릿집에서 먹어난 오입쟁이 말투로 되지 않게 지껄인다.
 
10
말똥구리가 말똥을 굴려 가도 구경이라고 서서 보는 조선 사람의 성질이라. 오고 가는 행인들이 앞뒤로 모여들어 구경하고 섰는데, 침모가 창피한 마음이 있어서 인력거꾼을 재촉한다.
 
11
"인력거꾼, 해 다 가는구. 어서 가지. 그러나 길 잘못 들었어."
 
12
"……"
 
13
"나 갈 데는 남관왕묘 옆이야. 관왕묘 옆에 강소사 집이라고 문패 붙은 집이 있지. 그리로 가세."
 
14
옆에 인력거 탔던 남자가 그 소리를 듣더니 마주 인력거꾼을 재촉한다.
 
15
"여보게 인력거꾼, 나도 그리로 가네. 어서 가세."
 
16
침모가 그 소리를 듣고 민망하기가 측량 없으나 나 따라오지 말라 할 수 없는 터이라 두 인력거가 도동으로 돌쳐 들어가는데, 큰길에서는 급히 갔거니와 도동 들어가는 길은 언덕이라 올라가는 동안이 한참이 되는데, 남은 무심히 보건마는 침모는 제풀에 수통한 마음뿐이라.
 
17
침모의 인력거꾼은 춘천집 대문 앞에서 내리고 뒤에 오던 인력거는 관왕묘 앞에서 내리는데, 침모는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춘천집에로 들어가더라.
 
18
춘천집이 침모의 목소리를 듣고 상그레 웃으면서 안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돋아 오는 달같이 탐스럽게 생긴 얼굴에 인정이 뚝뚝 돋는 듯하다.
 
19
"여보, 어데 갔습더니까. 내가 박대를 하였더니, 노해서 간단 말도 아니하고 댁에로 가신 줄로 알았소구려. 응, 이제 알겠군. 어데 반가운 사람이 있어서 찾아 단기시나 보구려. 내가 용케 알지, 하하하."
 
20
하며 반겨 나오는 모양 보고 침모가 삽시간에 별생각이 다 들어간다.
 
21
'나도 몹쓸 년이지. 아무리 점순이가 꼬이기로 저렇게 인정 있는 사람을 해칠 마음을 두었던가.'
 
22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불쌍한 생각이 어찌 몹시 들던지 점순의 흉계를 일러주고 싶은 마음이 버썩 들어가니, 그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 있는 고로 차마 말을 못 하고, 김승지 집에서 하던 말과 같이 꾸미는 말로 대답한다.
 
23
"참 반가운 사람을 보러 갔다 오는 길인데…… 누구에게 들으셨나 보구려. 그러나 나는 올라갈 겨를이 없소. 오늘은 내가 참 시집 가는 날이오."
 
24
"에그머니, 나는 농담으로 한 말이 맞혔나베. 에그, 섭섭하여라. 그래 오늘부터 우리집에는 아니 계실 터이오구려. 영감 얻어 가시는 것도 좋지마는 좀 올라오시지도 못한단 말이오."
 
25
"내가 인제 가면 언제 또 올지 말지 한 사람이니, 일 년이나 이웃에서 보던 사람들을 작별이나 좀 하고 오겠소."
 
26
하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젖은 담배 한 대 피울 동안이 다 못 되어 침모가 도로 들어오는데, 앞뒷집 늙은 노파가 두서넛이나 따라 들어오며,
 
27
"저 마누라님이 오늘부터 이 댁에 아니 계실 터이라지요?"
 
28
하며 춘천집을 보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29
"인제 가시면 이 댁에는 다시 아니 오시오?"
 
30
하며 침모를 보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31
"저 마누라님이 오늘부터 영감 얻어 가신다는데 순돌 어머니는 영감도 아니 얻고 일생 혼자만 있소?"
 
32
하며 점순이를 보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33
애들은 무엇을 보러 들어오는지 하나 둘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손바닥만한 안마당이 툭 터지도록 들어오는데, 점순이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가 만만한 애들에게 독살풀이를 한다.
 
34
"무슨 구경 났느냐. 무엇 하러 남의 집에 이렇게 들어오느냐. 누가 시집을 가느니 기급을 하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국수 갈고랑이나 있을 줄 알고 이렇게들 들어오는냐. 보기 싫다. 다 가거라."
 
35
하며 포달을 부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보나 침모는 점순의 오장을 들여다보는 듯이 알면서 또한 남더러 말 못 할 일이라, 물끄러미 보고 서서 심중으로 혼자말이라.
 
36
'조년이 나를 미워서 부리는 포달이로구나. 인물이 조만치 얌전히 생긴 년이 마음은 어찌 그리 영독한고. 아마 조년의 악심은 조 눈깔과 목소리에 다 들었는 것이야. 누가 시집을 가느니 기급을 하느니 하며 빗대 놓고 나더러 욕을 하나 보다마는, 오냐 욕은 깨소금으로 안다. 너 같은 몹쓸 년의 꼬임에 빠지지 아니한 것만 다행하다. 내가 오늘부터 이 집에 아니 있는 줄은 온 동내가 다 알 터이다. 네가 아무리 흉계를 꾸미더라도 춘천집을 죽이고 그 죄를 내게 뒤집어씌울 수는 없을걸…… 요 몹쓸 년, 네가 나는 어떻게 죽이려 들었더냐. 춘천집을 죽이고 내게 밀려 들었더냐, 춘천집을 죽이는 김에 나까지 죽이려 들었더냐, 하나씩 차례로 치워 버리려 들었더냐.'
 
37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점순이를 정신없이 건너다보다가 점순이가 할끗 돌아다보는 서슬에 침모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수그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춘천집을 돌아다보며,
 
38
"나는 어서 가야 하겠소."
 
39
하더니 건넌방에로 들어가서 제 옷보퉁이를 들고 나오며 춘천집과 점순에게 좋은 말로 작별하고 대문 밖에로 나가서 인력거를 타는데, 춘천집이 따라 나오며 눈물을 씻으니 침모가 마주 눈물을 씻고 작별을 하면서 옆을 돌아다보니, 애들은 참 구경이나 난 듯이 인력거 앞뒤로 늘어서서 보는데, 남관왕묘 대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슬슬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창고회사 앞에서 인력거를 타고 침모의 인력거를 따라오던 사람이라.
 
40
침모의 마음에는 그 남자가 침모에게 뜻이 있어서 그 근처에 와서 침모가 어떠한 사람인가 알려고 빙빙 도는 듯하야 밉고 싫은 생각이 들어서 작별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간단히 대답하고 인력거꾼을 재촉하여 떠나가니 침모의 마음은 시원하기가 한량없으나, 춘천집의 마음에는 전년 겨울에 철도에 엎드렸다가 침모의 인력거꾼이 걸려 넘어져서 만났던 생각부터, 일 년을 같이 정답게 지내던 생각이 낱낱이 나면서 새로이 슬픈 마음을 진정치 못하여 방 안에 들어가서 침침하게 어두워 가는 방에 불도 아니 켜고 혼자 앉아 눈물만 흘리더라.
【원문】제 1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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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