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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5 장 ◇
해설   목차 (총 : 20권)     이전 5권 다음
1906년
이인직
1
장수가 항복하고 싸움이 끝이 났더라도 총 맞고 칼 맞은 병상병(病傷兵)은 싸움 파한 아픈 생각이 더 나는 법이라.
 
2
그와 같이, 침모는 건넌방에 앉아서 여러 사람을 대하야 애매한 말을 들었다고 죽고 싶으니 살고 싶으니 하며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더니 치마를 쓰고 나가니, 온 집안이 낙루를 하며 작별하는데, 젊고 인물이나 반반하게 생긴 계집종들은 서로 보며 하는 말이,
 
3
"우리가 만일 저러한 의심을 받을 지경이면 우리들은 상전에게 매인 몸이라 침모 마누라님같이 어데로 가지도 못하고 어찌 될꾸."
 
4
"마님 솜씨에 살려 두실라구. 방맹이로 쳐죽이실걸."
 
5
그렇게 생각하는 김승지 집 종들은, 침모의 팔자가 좋은 양으로 알건마는 침모의 마음에는, 인간에 나같이 팔자 사납고 근심 많은 사람은 다시 없거니 생각하며, 그 친정으로 가는데 걸음이 걸리지 아니한다.
 
6
그 친정에는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 하나뿐이라. 삼순구식(三旬九食)하는 것일지라도 바라는 곳은 딸 하나뿐이라, 그 어머니를 보러 가는데 돈 한푼 없이 옷보퉁이 들린 애 하나만 데리고 들어가려 하니, 그 어머니가 딸을 보면 무엇이나 가지고 올까 바라고 있을 일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더라.
 
7
그러하나 안 갈 수는 없는지라, 계동 막바지 오막살이 초가집으로 들어가니, 그 집은 배부장 집인데 배부장은 침모의 부친이라. 삼 년 전에 죽고 배부장의 마누라만 있는데, 몹쓸 병으로 수년 전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되었더라.
 
8
그날 밤에 침모의 모녀는 이야기와 눈물로 밤을 새우다가 다 밝은 후에 잠이 들었는데, 해가 떠서 높이 오도록 모르고 자더라.
 
9
만호 천문은 낱낱이 열리고 구매 장안에 사람이 물끓듯 하는데, 그 중에 계동 배부장 집은 대문도 안 열고 적적한 빛이라. 웬 사람이 배부장 집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니 침모가 자다가 급히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 보니 김승지 집 종 점순이라.
 
10
침모를 따라 들어오더니, 생시치미를 뚝 떼고 하는 말이,
 
11
"춘천서 올라오신 마마님은 어느 방에 계십니까. 어서 좀 보고 싶어서 구경 왔소."
 
12
하면서 침모의 눈치만 보니, 침모가 김승지 부인에게 애매한 소리를 가지각색으로 들을 때는 속이 아프고 쓰리면서 감히 대답 한마디 못 하고 와서 골이 잔뜩 났던 터이라, 점순의 얼굴을 한참을 보고 아무 소리 없이 앉았으니, 소갈머리 없는 점순의 마음에는 춘천집을 감추어 두고 있다가, 저를 보고 당황하여 그리하는 줄로만 알고, 가장 약은 체하고,
 
13
"왜 사람을 그리 몹시 보시오. 나는 벌써 다 알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암만 알더라도 관계치 아니하오. 춘천 마마님은 여기서 뵈어도, 우리 댁 마님께 그런 말씀은 안 할 터이오. 우리는 평생에 말 전주라고는 안 하여 보았소. 내가 여기 온 줄은 우리 댁 마님이 알기나 알으시나. 알으셨다가는 큰일나게……."
 
14
"무엇이 어찌하고 어찌하여. 참 잘 만났네. 김승지 댁 마님 같으신 이가 자네 같은 하인이 있어야지, 내가 춘천 마마를 감추어 두고 김승지 영감이 오시거든 뚜쟁이 노릇이나 하여 먹겠네…… 어떤 병신 같은 년이 자네 댁 영감 같은 털집 두둑한 양반 만나서 단 뚜쟁이 노릇만 하여 먹겠나. 그 영감이 오시거든, 영감의 한편 무릎은 내가 차지하고 올라앉고, 한 무릎은 춘천 마마가 차지하고 올라앉아서 셋붙이 개피떡같이 붙어 있을 터일세. 내가 자네 목소리를 듣고 춘천 마마를 숨겼네. 숨겼다 하니 자네를 겁을 내서 숨긴 줄 아나? 일부러 오는 것이 미워서 숨겼네. 어서 가서 그대로 마님께 여쭙게. 김승지의 부인쯤 되면 우리 같은 상년은 생으로 회를 쳐서 먹어도 관계치 아니할 줄 안다던가. 자네 댁 마님이 이런 소리 들으시면 교군 타고 내 집에 와서 별야단칠 줄 아네. 요새같이 법률 밝은 세상에 내가 잘못한 일만 없으면, 아무것도 겁나는 것 없네. 김승지 댁 숙부인도 말고 하날에서 내려온 천상 부인이라도 남의 집에 와서 야단만 쳐보라게. 나는 순포막에 가서 우리집에 미친 여편네 왔으니 끌어내어 달라고 망신 좀 시켜 보겠네. 미닫이 살 하나만 분질러 보라 하게. 재판하야 손해를 받겠네."
 
15
침모는 점순이 온 것을 다행히 여겨서 참았던 말을 낱낱이 하고 있는데, 나이 많고 고생 많이 하고 속이 썩을 대로 썩은 침모의 어머니는 폐맹된 눈을 멀뚱멀뚱하고 딸의 목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고 가만히 앉았다가 하는 말이,
 
16
"얘, 그만두어라. 다 제 팔자니라. 네가 김승지 댁에 가서 침모 노릇 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듣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굶어 죽더라도 다시는 남의 집 침모 노릇은 말아라. 요새 같은 개화 세상에는 사족 부녀라도 과부 되면 간다더라. 우리 같은 상사람이 수절이 다 무엇이냐. 어데를 가던지 어여쁘다 얌전하다 그렇게 칭찬 듣는 네 인물을 가지고, 서방감 없을까 염려하겠느냐. 얘, 대신의 첩일지라도 너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요새는 첩 두려고 첩감 구하는 사람이 많다더라. 어데 고생이나 아니할 곳으로 남의 첩이나 되어 가거라."
 
17
"나는 쪽박을 들고 빌어먹을지언정 남의 첩 노릇은 하고 싶지 아니하오. 남의 첩이 되었다가, 춘천집 신세 같을 지경이면 죽는 것이 편하지…… 그러나 춘천집은 어데 가서 있누. 불쌍한 사람이지……."
 
18
하면서 돌아다보니, 점순이는 간단 말도 없이 살짝 나가고 없는데, 침모의 모녀가 춘천집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원문】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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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의 성(鬼--聲) [제목]
 
  이인직(李人稙) [저자]
 
  1906년 [발표]
 
  신소설(新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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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