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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6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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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인직
1
가까운 이웃집에서 불쌍하다 하는 이야기 소리는 지척이 천리라 계동 박참봉 집에 있는 춘천집의 귀에 들리지 아니하나, 멀찍한 전동 김승지 집에서 풍파가 일어나서 소요하던 모양은 춘천집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이 생각이 난다.
 
2
춘천집이 박참봉 집에 오던 날 저녁부터 김승지 오기만 기다리는데, 박참봉 집 문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만 나도 김승지가 오거니 반겨하고 개가 짖어도 김승지가 오거니 기다리다가, 종로에서 밤 열두시 종 치는 소리가 땡땡 나더니 장안이 적적하고 김승지는 소식이 없다.
 
3
박참봉 집 건넌방에는 춘천집이 혼자 있어서 근심중에 잠 못 들어 있고, 사랑방에는 주인 박참봉이 남의 내외 싸움에 팔자 없는 시빗덩이를 맡았나 보다 생각하다가 잠이 들지 아니하였는데, 그 윗목에는 강동지가 어데 가서 술을 그렇게 먹었던지, 아무 걱정 없는 사람같이 잠이 들어서 반자가 울리도록 코를 고는데, 건넌방과 사랑방이 지척이라 춘천집 귀에 강동지 코고는 소리만 들리니, 춘천집이 한숨을 쉬며 혼자말로,
 
4
"우리 아버지는 잘도 주무신다. 내 설움이 이런 줄 알으시면 오늘밤에 저렇게 시름없이 잠 들으실 수 없으렷다. 서울 와서 이런 줄 알았으면 신연강 깊은 물에 풍덩 빠져 죽었을걸, 원수의 목숨이 붙어 있어서 이 밤에 이 근심을 하는구나. 시앗 싸움이니 강샘이니 귀로 듣기는 들었으나, 내 몸이 그런 일 당할 줄이야 꿈이나 꾸었을까. 세상에 시앗 싸움이 다 그러한가. 우리 안마누라만 그러한가. 남의 첩 되는 사람은 사람마다 이 광경을 당하나. 이 광경을 당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인가. 춘천 솔개 동내서 동구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하고 자라나던 이내 몸이 오늘 서울 와서 이것을 당하니, 자다가 벼락을 맞아도 분수가 있지, 에그 기막혀라. 내가 오늘 교군 타고, 김승지 집에 들어갈 때에 철없고 미련한 이내 마음에는 김승지 집 개만 보아도 반가운 마음뿐이라. 그 마음 가진 이내 몸이 그 중문간에 교군을 내려놓고 앉았다가, 안대청이 떠나가도록 야단치는 안마누라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정신이 아득하여지면서 이 몸이 죽지도 말고 살지도 말고, 아무 형체 없이 살짝 녹아져서 빈 교군만 남았으면 좋을 듯한 생각뿐이라. 내 생각 그러한 줄을 어느 사람이 알았으랴. 그 광경을 다 보고 다 들은 우리 아버지가 내 설움을 조금도 모르시고서 저렇게 잠들어 주무시니 하느님이나 알으실까. 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일생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더니, 이렇게 좋은 일을 지어 주셨구나. 오늘 저녁에는 김승지 영감이 정녕 오신다더니, 소식도 없으니, 영감이 아버지를 속였는지 아버지가 나를 속였는지…… 오냐 그만두어라. 오거나 말거나…… 나같이 팔자 사나운 년이, 영감이 오기로 무슨 시원한 일이 있겠느냐. 하늘같이 믿고 있던 우리 아버지도 나를 속이거든, 남남끼리 만난 남편을 믿을소냐. 부모도 믿을 수가 없고, 남편도 쓸데없는 이 세상에, 누구를 바라고 있으리요. 차라리 죽어져서 이 설움을 잊었으면, 내 신상에 편하리라. 보고지고, 우리 어머니를 보고지고. 어머니가 나를 보내면서 울며 하는 말이, 어미 생각하지 말고 잘 가거라 하시더니, 그 말한 지가 며칠이 못 되어서 길순이 죽었단 말을 들으시면 오죽 설워하실까. 어머니를 생각하면 죽기도 어려우나, 내 신세를 생각하면 살아 있을수록 고생이라. 무정하다, 김승지는 전생에 무슨 원수를 짓고 만났던고. 산같이 중한 언약을 맺고, 물같이 깊은 정이 들었다가, 이별한 지 반 년 만에 내가 그 집 중문까지 갔다가, 영감이 교군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와 신 소리와 엇기침하는 소리만 내 귀에 들렸으니, 그 소리 한마디가 영결이 되었단 말인가…… 오냐, 그럴 것 없다. 영감을 미워하고 원망을 하였더니, 이 몸이 죽기로 결심하니, 밉던 마음도 없어지고 원망하던 마음도 풀어진다. 영감이 내게 무정하여 그러한 것도 아니요, 마누라 투기에 겁내서 그러한 것이라. 나는 안마누라가 어떠한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 이럴 줄을 모르고 영감에게 허신을 하였으려니와 영감도 본마누라의 성품을 모르고 첩을 얻었던가? 어찌 만났던지 만난 것은 연분이요, 이별은 팔자이라, 연분이 부족하고 팔자가 기박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니, 할 일 없는 일이로다. 차라리 영감이 내게 무정하였더면 나도 잊었을는지, 서로 생각하며 만나지 못하는 그 마음은 일반이라. 이 몸은 황천으로 가더라도 영감의 정표는 내 몸에 가지고 가노라."
 
5
하면서 만삭한 배를 어루만지더니, 복중에 있는 애가 무슨 말이나 알아듣는 듯이 배를 굽어보며 하는 말이,
 
6
"너는 형체가 생겼다가 세상 구경도 못 하고 북망산으로 가는구나. 오냐, 잘 간다. 인간에 와서 보면 근심이 많고 좋은 일은 드무니라. 내가 너를 낳아 놓고 나 혼자 죽으면, 어미 없는 어린것이 무슨 고생을 할는지 알 수 있느냐. 우리 아버지는 나 죽는 것을 모르시고 코골고 주무신다. 너의 아버지는 너 죽는 것을 모르시고 본마누라 주먹에서 사지를 꼼짝 못 하고 계신가 보다. 나도 믿을 곳이 없는 사람이요, 너도 믿을 곳이 없는 애라. 믿을 곳 없는 인생들이 뭣 하려고 살아 있겠느냐. 가자 가자. 우리는 우리 갈 곳으로 어서 가자……."
 
7
하면서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정신없이 등잔불을 보는데, 눈앞에 오색 무지개가 선다. 본래 약한 마음이라, 칼로 목 찔러 죽지 못하고 아픈 줄 모르게 죽을 작정으로 물에나 빠져 죽으려고 우물을 찾아 나가더라.
 
8
그 집이 기어들고 기어나는 오막살이 초가집이라. 안방, 건넌방, 아랫방이 솥발같이 나란히 있는데, 그 아랫방을 박참봉이 사랑으로 쓰고, 그 외에는 중문도 없고 대문만 있는 집이라, 아무리 발씨가 선 사람이라도 문 찾아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 없는지라, 춘천집이 대문간에 가서 빗장을 여느라고 신고를 한다.
 
9
사람이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여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겁이 나서, 빗장을 붙들고 숨도 크게 못 쉬고 대문에 붙어 섰다.
 
10
한참씩 있다가 조금씩 빼어 보는데, 제풀에 놀라서 그치다가 빗장이 덜컥 열리는데, 전신이 벌벌 떨려서 가만히 섰다.
 
11
사랑방에서 박참봉이 기침을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12
"거― 누구냐……."
 
13
춘천집이 깜짝 놀라서 문을 왈칵 열고 문 밖으로 나가는데, 원래 박참봉은 벌거벗고 잠자던 사람이라, 옷 입고 불 켜고 거래하고 나오는 동안에 춘천집은 문 밖으로 살짝 나서서 계동 큰길로 나가려는데, 길가 왼손편에 벌 우물 있는 것을 못 봤던지 단숨에 계동 병문까지 내려가서 잿골 네거리로 향하여 가다가 계동궁 담 밑에 있는 우물을 보았더라. 새벽 달은 넘어가고 행길이 적적한데, 춘천집이 우물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 말이,
 
14
"하느님 하느님, 인간에 길순이 있는 줄을 알으십니까? 알으시면 길순의 죽는 것도 알으실 터이지…… 전생에 무슨 죄를 짓고 생겨나서 이생에 이 설움을 지니고 저승으로 가는지…… 미련한 인간이라, 제가 제 죄를 모를 터이나, 길순의 마음에는 길순이가 아무 죄도 없습니다. 어지신 하느님이 인간 만사를 굽어보시고 짐작이 계시련마는, 어찌하여 길순이는 이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지…… 이 몸이 죽은 후에 송장이 우물에서 썩을는지, 누가 끌어내서 무주공산에 버릴는지 모르거니와, 혼은 춘천 솔개로 훌훌 날아가서 이 밤으로 우리 어머니 베개 옆에 가서 어머니 꿈에나 보이고저…… 어머니 생전에는 꿈에 가서 보일 것이요, 어머니 사후에는 혼을 만나 뵈오리라. 그러나 사람이 죽어지면 그만이라. 혼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혼이 있어서 만나 보기로, 반가운 줄을 알는지 모를는지, 살아서 다시 못 보는 것만 한이로다. 오냐, 한이 있어 죽는 년이 또 무슨 한탄 하겠느냐. 이 설움 저 설움 이 생각 저 생각 다 잊어버리고, 갈 곳으로 가는 것이 제일이라."
 
15
하더니, 치마를 걷어 쥐고 우물돌 위로 올라가는데, 본래 춘천집이 계집애로 있을 때에는 조그만 물방구리 이고 다니면서 물도 길어 보았는데, 솔개 동내 우물가에는 사면으로 뗏장을 놓아서 짚신 신은 발로 디디기 좋게 만든 우물이라, 그러한 우물에서 발씨가 익은 사람이라, 그날 밤에는 신을 신고 판자쪽 같은 돌 위로 올라가다가 입동머리 새벽 기운에 이슬이 어려 서리가 되었는데, 촌놈이 장판 방에서 미끄러지듯 춘천집이 돌 위에서 미끄러져 가로 떨어지며,
 
16
"에그머니……."
 
17
소리를 지르고 꼼짝 못 한다.
 
18
아홉 달 된 태중이라, 동태가 되었던지 뱃속에는 홍두깨를 버티어 놓은 듯하고 사지를 꿈적거릴 수 없는데, 큰길에서 신 소리가 저벅저벅 나더니, 시꺼먼 옷 입은 사람이 앞에 와서 우뚝 서면서, 한두 마디 말을 묻다가 대답이 없거늘 검은 옷 입은 사람이 호각을 부니, 그 사람은 잿골 네거리 순포막의 순검이라.
【원문】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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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