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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7 장 ◇
해설   목차 (총 : 20권)     이전 7권 다음
1906년
이인직
1
사람은 쇠전 한푼짜리가 못 되더라도 조선서 지체 좋고 벼슬하고 세도 출입이나 하고 대문만 큼직하면 그 집에 사람이 들락날락하는지라. 전동 김승지 집 큰사랑방에 식전 출입으로 온 사람도 사오 인 있었는데, 주인 영감이 아낙에서 주무시고 아직 안 나오셨단 말을 듣고, 주인 못 보고 가는 사람뿐이라, 그 중에 탕건 쓰고 키 자그마하고 얼굴에 손티 조금 있고 나이 사십여 세쯤 된 사람은 큰사랑방으로 들어가더니, 해가 열시 반이나 되도록 안 가고 있더라. 주인 김승지는 어젯밤에 그 부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생전에 다시는 첩을 두면 개자식이니 쇠아들이니 맹세를 짓고, 그 마누라의 눈에 어찌 그리 잘 보였던지, 그 부인과 김승지가 언제 싸웠더냐 싶게 정이 새로이 드는 듯하니, 김승지 맹세가 거짓말 맹세가 아니라 중무소주(中無所主)한 마음에 참말로 한 맹세일러라.
 
2
밤이 새는 줄을 모르고 둘이 주책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 부인은 본래 부지런한 사람이라, 식전에 일어나서 계집종에게 지휘할 일을 지휘하는데, 김승지가 잠이 깨어서 일어나려 하니,
 
3
"여보, 어느새 일어나서 무엇 하시오. 어제는 잠도 잘 못 주무셨으니 더 주무시오. 감기 들으시리다. 몸조심하시오."
 
4
하면서 김승지의 새옷을 내서 뜨뜻한 아랫목 요 밑에 묻어 놓는데, 김승지는 잠은 깨었으나 일어나지 아니하고 드러누워서 담배를 먹으면서 마누라를 보고 싱긋 웃으니, 부인은 까닭 없이 따라 웃더라.
 
5
그때 김승지 마음에는 마누라 없이는 참 못 견디겠다 하는 생각뿐이라.
 
6
해가 낮이 되어서 사랑에 나가니, 계동 박참봉이 와서 앉았더라.
 
7
김승지가 어젯밤에 그 부인을 대하여 다시는 첩 두지 아니한다고 맹세할 때는 춘천집을 내려보낼 작정으로 한 맹세인데, 사랑에 나와서 박참봉을 보더니 별안간 춘천집 생각이 다시 난다.
 
8
"어어, 식전에 일찍이 나셨소그려. 내가 어젯밤에 댁으로 좀 가려 하였더니 몸이 아파서 못 갔소."
 
9
"허허 영감, 정신이 없으시구려. 지금이 식전이오니까. 내가 오기는 식전에 왔습니다만 지금은 낮이올시다. 허허허……."
 
10
"오늘이 그렇게 늦었나. 나는 밤에 대단히 앓았어. 오늘 못 일어날 듯싶더니, 억지로 행기를 하니 좀 낫군."
 
11
하면서 얼굴이 불그레하여지더니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하여 하는 말이,
 
12
"여보, 어제 댁에 사람 하나 보냈지요. 좀 잘 맡아 주시오. 그리하고 무엇이든지 강동지와 상의하여 돈 드는 것만 내게 말하시오."
 
13
박참봉이 김승지의 얼굴만 물끄러미 보며 말을 듣고 앉았더니, 창 밖에 남산을 건너다보며 허희탄식하며,
 
14
"나는 영감을 뵈올 낯이 없소. 나를 믿고 영감 별실을 내 집으로 보내셨는데, 부탁 들은 본의가 없이 되었으니, 어떻다 말씀할 길이 없습니다."
 
15
김승지가 박참봉의 말을 귀로 들었는지 코로 맡았는지 딴소리만 한다.
 
16
"아니, 그렇게 말할 것 무엇 있소. 내 첩이 댁에 가 있어서 무엇이든지 박참봉에게 폐를 끼쳐서야 쓰겠소? 그러나 박참봉은 한집안 같으니 말이지, 춘천집이 댁에 가서 있는 것을 우리 마누라가 알면 좀 좋지 아니하기도 쉬우니, 하인들 귀에도 들리는 것이 부질없소. 우리 마누라가 듣기로 내야 어떠할 것 무엇 있소? 박참봉이 우리 마누라에게 미움을 받을까 염려하여 하는 말이오."
 
17
"그런 말씀은 바쁘지 아니한 말씀이오. 큰일난 일이 있습니다. 영감 별실이 지금 한성병원에 가서 있습니다."
 
18
"왜, 졸시에 무슨 병이 났소?"
 
19
박참봉이 본래 찬찬한 사람이라 춘천집이 우물에 빠져 죽으려다가, 우물돌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져서 동태 되어 꼼짝을 못 하는데, 잿골 네거리 지서 순검이 구하여 자기 집에 기별하던 말과, 자기가 한성병원으로 데리고 가던 말을 낱낱이 하니, 김승지는 그 말을 듣고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라.
 
20
"여보, 춘천집에서 당한 일에, 돈 드는 것만 내게 말하고, 어떻게 하든지 박참봉이 잘 조처만 하여 주시오."
 
21
"네, 그러면 아무 염려 말고 계시오. 내가 다 조처하오리다."
 
22
박참봉이 그 길로 다시 한성병원으로 가서 춘천집을 보니 베개는 눈물에 젖었는데, 춘천집이 눈을 감고 누웠더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백로같이 흰 복색 한 일본 간호부가, 서투른 조선말로 춘천집을 부른다.
 
23
"여보, 손님이 오셨소."
 
24
춘천집이 눈을 떠서 보니 어제 계동서 처음으로 보던 박참봉이라. 생소한 박참봉을 보고 김승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새로이 비 오듯 하며 아무 말도 없는지라.
 
25
"지금은 좀 어떠시오?"
 
26
"세상에 살아 있다가, 고생 더 하란 팔자이라, 죽으려 하다가 죽지도 못하고 몸에 아무 탈도 없는 모양인가 보이다."
 
27
"새벽에는 동태가 된 모양이더니 지금은 어떠하시오?"
 
28
"무슨 약인지 먹고 지금은 진정이 됩니다."
 
29
"며칠이든지 병원에서 조리를 잘하고 계시면, 그 동안에 집을 구하여 편히 계실 배치를 하야 드릴 터이니 아무 염려 말고 계시오. 내가 오늘 아침에 전동 가서 김승지 영감을 만나 뵈었소. 그 영감이 하도 애를 쓰시니 보기에 민망합디다."
 
30
"영감이 내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 것 같으면 내가 이 지경에 갈 리가 있습니까."
 
31
하면서 눈물이 가득한 눈에 기쁜 빛을 띠는 것 같더라.
 
32
박참봉이 어젯밤까지는 춘천집이 내 집으로 온 것을 두통으로 여기던 마음이, 오늘 한성병원에 와서 춘천집의 모양을 보더니 측은한 마음이 한량없이 생겨서 김승지의 부탁대로 춘천집을 위하여 매사를 힘써 주선할 마음이라.
 
33
"아무 심려 말고 계시면, 범사가 다 잘될 터이니, 어서 조리만 잘하시오."
 
34
박참봉이 춘천집을 위로시킬 말이 무궁무진하나, 사면이 다 겸연쩍은 마음이 있어서, 간단한 말로 위로를 시키고 일어서 나가니, 그때 춘천집 마음에는 강동지가 왔다 가더라도 그렇듯 섭섭한 마음이 있었을는지. 박참봉이 애쓰는 것이 고맙고 불안한 생각뿐이더라.
【원문】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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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직(李人稙) [저자]
 
  190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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