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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류(濁流) ◈
◇ 6 조그마한 사업 ◇
해설   목차 (총 : 19권)     이전 6권 다음
1937.10
채만식
1
탁류(濁流)
 
2
6. 조그마한 사업
 
 
3
언덕 비탈을 의지하여 오막살이들이 생선 비늘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4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님(明姙)이네가 도통 오 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 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한테 이 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
 
5
대지가 일곱 평 네 홉이니, 안방 세 식구, 건넌방 세 식구, 도합 여섯 사람에 일곱 평 네 홉인 것이다.
 
6
건넌방에는 시방 먹곰보도 없고, 그의 아낙도 없고, 아랫목에는 제돌쟁이 어린것이 앓아누웠고, 윗목에서는 경쟁이가 경을 읽고 앉았다.
 
7
방 안은 불을 처질러 놓아서, 퀴퀴한 빈취(貧臭)가 더운 기운에 섞여 물큰 치닫는다.
 
8
어린것은 오랜 백일해로 가시같이 살이 밭고, 얼굴은 양촛빛이다. 그런 것이 입술만 유표하게 새까맣게 탔다. 폐렴을 덧들였던 것이다.
 
9
눈 따악 감은 얼굴이며, 꼼짝도 않는 사족에는 벌써 사색(死色)이 내려덮었다. 목숨은, 발딱발딱 가쁜 숨을 쉬는마다 달싹거리는 숨통에만 겨우 걸려 있다. 몇 분도 아니요, 초(秒)를 가지고 기다릴 생명이다.
 
10
경쟁이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윗목으로 벽을 향하여 경상 앞에 초연히 발을 개키고 앉아 경만 읽는다.
 
11
경상으로 모서리 빠진 소반 위에는, 밥이 한 그릇에 콩나물 한 접시, 밤 대추 곶감을 얼러서 한 접시, 북어가 세 마리 이렇게가 음식이요, 돈이 일 원짜리 지전으로 두 장, 쌀이 두 되는 실히 되겠고, 소지(燒紙)감으로 접은 백지가 석 장, 일 전짜리 양초에 불을 켜서 꽂아 놓은 사기접시, 그리고 소반 옆으로는 얼멍얼멍한 짚신이 세 켤레, 대범 이와 같이 차려 놓았다. 병자한테 붙어 있는 귀신더러 이 음식을 먹고, 이 짚신을 신고, 이 돈으로 노수를 해서 딴 데로 떠나라는 것이다.
 
12
이렇게 차려 놓은 경상 앞에 가서 경쟁이는 자못 엄숙하게 북을 차고 앉아 경을 읽는데…… 북을 얕게 동당동당 동당동당 울리면서 청도 북대로 고저와 박자를 맞추어 나직하고 느릿느릿,
 
13
“해―동조―선 전라―북도 군산부―산상― 정 권씨―댁…….”
 
14
무엇이 어쩌구저쩌구 한바탕 주욱 외우다가는, 목소리를 일단 위엄 있이,
 
15
“오방신자앙―”
 
16
처억 불러 놓고서 이어, 북도 빨리, 청도 빨리 몰아 들입다 귀신을 불러 대는데, 아마 세상 귀신이란 귀신은 있는 대로 죄다 나오는 모양이다. 게다가 계급도 가지각색이요, 개명을 톡톡히 한 경쟁이든지, 심지어 ‘한강철교 연애하다가 빠져 죽은 귀신’까지 불러 댄다.
 
17
대체 이렇게 숱해 많은 귀신들이, 한 부대(一個部隊)는 넉넉한가 본데, 겨우 그 앞에 차려 놓은 것만 가지고 나누어 먹자면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이 날 텐데, 본시 귀신이란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런지 저희끼리 오쟁이를 뜯는 꼴은 볼 수 없다.
 
18
아무튼 그렇게 귀신 대중(大衆)을 불러 놓더니 그 담에는 갑자기 북소리와 목청을 맹렬하게 높여, 그러느라고 발 개킨 엉덩이를 들썩들썩, 팔을 번쩍번쩍 쳐들면서 크게 꾸짖어 가로되,
 
19
“너 이 귀신들!…… 빨리 운감을 하고, 당장에 물러가야 망정이지, 그러지 안할 양이면, 신장을 시켜 모조리 잡아다가, 천리 바다 만리 바다 쫓어 보내되, 평생을 국내 장내도 못 맡게 하리라아.”
 
20
고 냅다 풍우를 몰아치듯 추상 같은 호령을 하는 것이다.
 
21
이렇게 한 대문을 걸찍하게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하고, 그러자 마침 먹곰보네 아낙이 숨이 턱밑까지 차서 허얼헐 판자문 안으로 들어선다.
 
22
그의 등뒤에서는 승재가 낡은 왕진가방을 안고 따라 들어오고, 또 그 뒤에는 명님이가 따라섰다.
 
23
주인과 승재가 방으로 들어서도, 경쟁이는 모른 체 그냥 앉아 경만 읽는다.
 
24
“아가아, 업동아!”
 
25
먹곰보네 아낙은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린것의 얼굴 위에 엎드려 끌어안을 듯이 들여다본다.
 
26
어린것한테서는 싸늘하니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눈을 떠본다든지, 입술을 달싹거린다든지, 하다못해 손끝을 바르르 떤다든지.
 
27
승재는 대번 보고서 짐작은 했지만 아무려나 이왕 온 길이니 청진기를 꺼내서 귀에 걸고 다가앉는데, 먹곰보네는 그제야 놀란 눈을 흡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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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머니 이것이 죽었나 베!”
 
29
하면서 당황히 서둔다.
 
30
승재는 어린것의 앙상한 가슴을 헤치고 청진기로 들어 보는 것이나 가느다랗게 담 끓는 소리만 들리는 둥 마는 둥, 맥은 아주 그치고 말았다.
 
31
승재는 청진기를 떼고 물러앉으면서 이마를 찡그린다.
 
32
“아직 살었나 봐요!”
 
33
먹곰보네 아낙은 어린것의 가슴에 손을 대보다가 아직 따뜻한 온기가 있으니까, 그것이 되레 안타까워 미칠 듯이 납뛴다.
 
34
“……네? 아직 살었나 봐요? 어서 얼른 좀…… 아가 업동아? 업동아? 엄마 왔다. 엄마…… 젖 먹어라. 아이구 이걸 어떡해요! 어서 손 좀 대주세유!”
 
35
“소용 없어요, 벌써 숨이 졌는걸!”
 
36
승재는 죽은 자식을 놓고 상성할 듯 애달파하는 정상이 불쌍한 깐으로는, 소용이야 물론 없을 것이지만, 당장이나마 원이라도 없으라고 강심제 한 대쯤 주사를 놓아 주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그러나 우선 인정에 못 이겨 그 짓을 했다가는 뒤에 말썽이 시끄럴 것이니 차라리 눈을 지그시 감고 모른 체하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37
처음 한동안 승재는 부르는 대로 불려가서,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린 병자라도 가족들이 붙잡고 매달리면 효과야 있건 없건 구급주사를 꾸욱꾹 놓아 주곤 했었다. 그러나 대개가 시기를 놓친 병자들이라 살아나지를 못하고 주사 기운이 없어지면 그만이곤 하는데, 그럴라 치면 개개 주사가 생사람을 잡았다고 승재를 칭원하고 심한 사람들은 승재게로 쫓아와서 부르대기까지 한다.
 
38
그러던 끝에 달포 전에는 필경 멱살을 떠들려 경찰서까지 간 일이 있었다.
 
39
그때 승재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병원 주인인 달식이의 주선으로 놓여 나오기는 했으나, 석방이 아니라 불구속(不拘束) 취조라는 것이었었다.
 
40
그 뒤에 일은 아주 무사했으나, 그 일을 겪고 나서부터 승재는 인제 의사면허를 얻기까지는 되도록 절망상태인 듯싶은 병자한테는 가기를 피하고, 혹시 마지못해 불려가기는 한다더라도, 아예 함부로 손은 대지 않기로 작정을 했었다.
 
41
그러던 터인데, 오늘도 병원에서 일곱시나 되어 돌아오니까, 명님이가 먹곰보네 아낙과 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명님이는 집을 가리켜 주느라고 같이 왔던 것이다.
 
42
승재는 먹곰보네 아낙한테 아이가 백일해 끝에 한 사날 전부터 딴 증세가 생겨 가지고 몹시 보채더니, 인제는 마디숨을 쉬고 담이 끓는다는 말을 듣고 벌써 일이 그른 줄 짐작했었다. 그래서 따라오지 않을 것이지만, 울상으로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무어라고 꾀를 쓰지 못하고 와보기는 와보았던 것이다.
 
43
와서 보니 경을 읽고 있는 꼴이 우선 비위가 상하는데, 아이는 벌써 죽었고, 해서 만일 경을 읽힐 정성으로 이틀만 미리 닦아 서둘렀어도 이 가엾은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자식을 죽이고 애처로워하는 어머니가 불쌍하기보다도 밉살머리스러워서 못 했다.
 
44
“그래두 저 거시키…….”
 
45
먹곰보네 아낙은 또다시 어린것의 시체에다가 손을 대보고 부르고 하다가 승재한테 애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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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라더냐 하는, 침을 노면 살아난다는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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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전 소용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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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남들은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을 살렸다구 그러든데유? 제발 좀 살려 주세요!…… 이걸 죽이다니, 아이구머니 이것을 죽이다니!…… 네? 제발 좀…….”
 
49
“소용 없대두 그래요!”
 
50
승재는 듣는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볼먹은 소리로 지천을 한다.
 
51
“……왜 진작 나한테루 오든지 하질랑 않구서, 이게 무어람? 자식을 생으로 죽여 놓구는…… 인전 편작이라두 못 살려 놓아요!”
 
52
승재는 골이 나는 대로 해 부딪고, 왕진가방을 집어 들고 마루로 나선다.
 
53
먹곰보네 아낙은 어린것의 시체를 얼싸안고, 울음 섞어 넋두리를 시작한다.
 
54
경쟁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 안 할 듯 여전히 초연하게 앉아 경만 읽는다.
 
55
“그년의 경인지 기급인지 고만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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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곰보네 아낙이 눈이 뒤집혀 가지고 악을 악을 쓴다.
 
57
“네?”
 
58
경쟁이는 선뜻 경 읽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선뜻 알아듣는 것을 보면, 옆에서 벼락을 쳐도 모른 체 열심으로 경을 읽던 것은 실상은 건성이요, 속은 말짱했던 모양이다.
 
59
“……그만두라면 그만두지요!”
 
60
끙 하고 북채를 놓더니 혼자서 무어라고 두런두런, 돈을 비롯하여 소반에 차려 놓았던 것을 견대에다 주워담는다.
 
61
“……죽는 것두 다아 제 명이지요! 인력으루 하나요. 끙!”
 
62
“오라지는 건 어떻구?…… 왜 제 명대루 죽을 것을, 경을 읽으면 꼭 낫는다구는 했어?”
 
63
먹곰보네 아낙의 악쓰는 소리를 등뒤로 들으면서 승재는 침울하게 그 집 문간을 나섰다.
 
64
승재는 효험이야 있거나 말거나 간에, 또 뒷일이야 아무렇든 간에, 자식을 잃고 애통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뜻으로, 소원하는 주사라도 한 대나마 놓아 주는 시늉을 하지는 않고서 되레 타박을 한 것이 후회가 났다.
 
65
이 사람들도 자식을 위해 애쓰는 정성은 매일반이다. 결과야 물론 자식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을 좌우하게 되지마는, 그야 무지한 탓이지 범연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66
그러고 보니 가난과 한가지로 무지도 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큰 원인이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는 양식과 동시에 지식도 적절히 필요하다.
 
67
승재는 생각을 하면서 절절히 그것을 여겨 고개를 끄덕거린다.
 
68
네 살에 고아가 되어, 생판 남과도 진배없는 친척에게 거둠을 받아 자라났으니, 역경이라면 크게 역경일 것이다. 그러나 역경은 역경이면서도, 승재의 지나오던 자취에는 일변 단순함이 없지 않았었다.
 
69
그는 세상이라는 것을 별반 볼 기회가 없었다. 인간 감정의 복잡한 갈등이나 생활과의 심각한 단판씨름 같은 것을 스스로 경난은 물론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다.
 
70
그는 다만 병원에 앉아 검온기(檢溫器)를 통해서, 맥박(脈搏)의 수효나 청진기(聽診器)를 통해서, 뢴트겐(X光線)이나 타진(打診)을 통해서, 주사기를 들고, 처방전을 들고, 카르테를 들고…… 이렇게 다만 병든 인생만을 대해 왔었다.
 
71
그래서 병이라는 것이 인생의 큰 불행임을 알았다. 단지 그것뿐이었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이라는 것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이 하나하나 떨어진, 그리고 생리적인 인생을 의미한 것이었었다.
 
72
그러다가 그가 군산으로 와서 있으면서 비로소 조금 분간 있이 인생을 보게 되었다.
 
73
서울의 옛주인에게 있을 때에는 치료비 없이 왔다가 도로 쫓겨가는 병자들을 그리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군산의 금호의원으로 와서는 그러한 정상을 가끔 보았다.
 
74
승재는 울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병이 큰 고통인데, 그것을 치료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 인간 세상의 한구석에는 이러한 불행이 있다는 것에 그는 통분했던 것이다.
 
75
그러던 끝에 하루는, 설하선염(舌下腺炎)으로 턱과 얼굴이 팅팅 부은 소녀 하나가, 부친인 성싶은 중년의 노동자와 같이 병원의 수부에 와서 치료비가 얼마나 들겠냐고 물어 보더니, 십 원이 넘겨 먹겠단 소리에 다시 두말도 없이 실심하고 돌아서는 것을 승재는 보았다. 그들이 지금의 명님이와 그의 부친 양서방이었었다.
 
76
승재는 그들이 다른 돈 없이 온 병자들처럼, 돈이 없으니 그냥 치료를 해달라거니 이 다음에 벌어서 갚겠거니 이렇게 조르고 사정을 하고 하지도 못하고, 겨우 얼마나 들겠느냐고 물어만 보고서 큰돈 십 원이 넘겠다고 하니까, 낙심이 되어 추렷이 돌아가는 양이 어떻게나 가엾던지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병원 문 밖으로 그들을 따라 나와서 집이 어디냐고, 번지와 골목을 잘 알아 두었다.
 
77
저녁때, 승재는 우선 병원에 있는 기구 중에서 간단한 수술기구와 약품 같은 것을 빌려 가지고 명님이네를 찾아가서 수술을 해주었다.
 
78
그는 마침 병원에서의 거처를 그만두고, 방을 얻어 따로 있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밤저녁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는 계제에 결심을 하고, 왕진기구 일습과 약품을 장만해 가지고 본격적으로 야간개업(夜間開業)을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치료비나 약값은 받지를 않고, 가난한 제 낭탁을 기울여 가면서…….
 
79
이 노릇을 승재는 스스로 조그마한 사업으로 여겨 거기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되, 무심했지 달리 그것을 평가를 하거나 자성(自省)함이 없었다.
 
80
하다가 오늘 마침 먹곰보네 집에를 불려와, 그렇듯 경이나 읽히면서 자식을 갖다가 생으로 죽이고 마는 미련스런 인간들을 보자니 그만 보도록새 짜증이 나서, 전에 없이 골딱지를 냈던 것인데…….
 
81
그러나 그것도 무슨 정성이 미흡한 탓이 아니요 무지한 소치라면야 그만이겠지만, 그러니 그들이 그렇듯 무지한 이상 시료병원(施療病院)이 거리마다 늘비하다고 하더라도 별수가 없겠거니 싶고, 그 무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결에 승재 제 자신이 길을 걸어가다가 어떤 거대한 장벽에 가서 딱 닥뜨린 것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어찌할 줄을 모를 것 같았다.
 
82
그 끝에 가면, 시방 제가 여태까지 재미를 붙여 해오던 이 노릇이, 그만 신명이 뚝 떨어지고 흥이 하나도 나지를 않는 것이었었다.
 
 
83
승재가 다뿍 풀이 죽어서 문간으로 나가는데 명님이는 벌써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84
“여기 있었니?”
 
85
승재는 마음이 산란한 중에도 명님이가 귀엽고 반갑던 것이다.
 
86
“……둘러봐두 없길래 어디루 갔나? 했지…… 어머니랑 아버지랑 다아 안 계시드구나?”
 
87
“네에…….”
 
88
명님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내민다.
 
89
“……인 주세요, 제가 들어다 디리께.”
 
90
명님이는 지금 저한테 끔찍이 고맙고, 또 노상 살뜰하게 귀애해 주는 이 ‘남서방어른’이 저희 집에를 온 것이 언제나 마찬가지로 좋았고, 게다가 가방을 들어다 주기는 더욱 좋았던 것이다. 승재는 괜찮다고 물리치다가, 명님이의 그러한 마음성을 아는 터라 이내 가방을 제 손에다가 들려 준다.
 
91
“그럼 요기, 요 아래까지만……?”
 
92
“네에.”
 
93
명님이는 좋아라고 가방을 들고 앞을 서서, 깔끄막진 언덕길을 내려간다.
 
94
“아버진 일 나가셨니?”
 
95
“네에.”
 
96
“어머닌?”
 
97
“빨래해 주려 가시구요.”
 
98
“그럼 요샌 밥 잘 해먹겠구나?”
 
99
“네에…… 아침에는 밥 해먹구, 저녁에는 죽 쑤어 먹구 그래요.”
 
100
“으응, 그나마라두…… 그렇지만 즘심은?”
 
101
“안 먹어요. 그래두 먹구 싶잖어요.”
 
102
눈치가 빨라서 승재가 그 다음에 물을 말까지 지레 대답을 하던 것이다.
 
103
“먹구 싶잖을 리가 있나! 배고프지?…… 요새 해가 퍽 긴데…….”
 
104
“그래두 배는 안 고파요.”
 
105
“명님이 좋아하는 청국만두 사주까? 시켜 보내 주까?”
 
106
“아이, 싫여요! 괜찮아요!”
 
107
명님이는 깜짝 반색을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선다.
 
108
승재는 전엣일이 문득 생각나서 중국만두라고 했던 것이다. 승재가 처음 명님이네 집을 찾아가서 수술을 해주고, 그 뒤에도 매일 다니면서 심을 갈아 주곤 했는데, 거진 다 나아갈 때쯤 된 어느 날인가는 중국만두가 먹고 싶다고 저의 부모를 조르다가 지천을 듣는 것을 마침 보았었다. 어린애요 살앓이를 하던 끝이라, 입이 궁금해서 무엇이고 두루 먹고 싶을 무렵이었었다.
 
109
승재는 잠자코 있다가 나와 중국 우동집에 부탁해서 만두를 세 그릇 시켜 보내 주었다. 했더니, 그 이튿날 또 갔을 때, 명님이네 부모의 치하도 치하려니와 명님이가 좋아하는 양은 절로 미소가 나오게 했었다.
 
110
명님이는 제 병이 아주 나은 뒤에는 가끔가끔 승재를 찾아와서 무엇 내의고, 양말자박이고, 벗어 놓은 것이 없으면 조르다시피 뺏어다가는 저의 모녀가 잘 빨아서 꿰맬 데 꿰매고, 기울 데 기워서 차곡차곡 챙겨다 주곤 했다. 이것이 명님이네 식구가 승재를 위하여 애써 줄 수 있는 다만 한 가지 정성이던 것이다.
 
111
그러한 근경인 줄 아는 승재는 차차 그것을 기쁘게 받고, 그 대신 간혹 명님이네 집에를 들렀다가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있는 눈치가 보이면 다만 양식 한 되 두 되 값이라도 내놓고 오기를 재미삼아서 했다. 승재가 끊어다 주는 노란 저고리나 새파란 치마도 명님이는 더러 입었다.
 
112
승재는 명님이가 명님이답게 귀여우니까 귀애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명님이는 일변 승재의 기쁨이기도 했다.
 
113
그것은 승재의 그 ‘조그마한 사업’의 맨 처음의 환자가 명님이었던 때문이다. 승재는 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그 중에는 생사가 아득한 중병환자를 잘 서둘러 살려 내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다지 중병도 아니요 수술하기도 수나로운 명님이의 설하선염을 수술해 주던 때, 그리고 그것이 잘 나았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도저히 다른 환자의 치료에서는 맛볼 수 없이 큰 것이었었다.
 
114
그렇듯 명님이는 승재의 기쁨이기는 하지만, 한편 또 명님이로 해서 슬픔도 없지 않았다.
 
115
명님이네 부모가 명님이를 기생집의 수양녀로 주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다.
 
116
승재는 명님이가 장차에 매녀(賣女)의 몸이 될 일을 생각하면, 마치 친누이동생이나가 그러한 구렁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같이 슬프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승재는 명님이를 만나면 그 일을 안 뒤로는, 겉으로 반가움이 솟아나서 웃는 한편, 속에서는 그 반가움 못지않게 슬픔이 서리곤 했다.
 
117
이러한 갈피로 해서 명님이는 일변 승재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가 인생을 살피는 한 개의 실증(實證)이요 세상을 들여다보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새까지도 그러했거니와, 이 앞으로도 그러할 형편이었었다.
 
118
승재는 앞서서 비탈길을 내려가는 명님이의 뒤태를 눈여겨보면서 무심코 한숨을 내쉰다.
 
119
“벌써 열세 살!……”
 
120
그의 등뒤에서는 유난히 긴 머리채가 치렁거려 제법 계집애 꼴이 박혀 보인다.
 
121
승재는 이 애가 이렇게 매초롬하니 장성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불안스러 견딜 수가 없었다.
 
122
“명님아?”
 
123
부르는 소리에 명님이는 대답 대신 해뜩 돌려다본다.
 
124
“요새두 어머니 아버지가 저어, 거시기 음! 그 집으루 가라구 그리시든?”
 
125
승재는 좀 거북해하면서 떠듬떠듬 물어 본다. ‘그 집’이란 팔려 갈 기생집 말이다.
 
126
“네에…… 그래두…….”
 
127
명님이는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대답을 한다.
 
128
“흐응…… 그래서?”
 
129
“지가 싫다구 그랬지요, 머.”
 
130
“흐응…… 그러니깐 무어래시지?”
 
131
“그럼 죄꼼 더 크거던 가라구 그래요.”
 
132
“그럼 명님인 어머니 젖 먹구퍼서 싫다구 그랬나?”
 
133
“아녜요! 아이 참…….”
 
134
명님이는 승재가 혹시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고서,
 
135
“……놀리실려구 그리시느만, 머.”
 
136
“아냐, 놀리는 게 아니구…….”
 
137
“그렇지만 머, 어머니 보구퍼서 남의 집에 어떻게 가서 있나요?”
 
138
“그럼 더 자라면 어머니 보구 싶잖은가?”
 
139
“그렇다구 그러든데요? 어머니두 그리시구, 아버지두 그리시구…… 그러니깐 인제 죄꼼 더 자라거던 가라구.”
 
140
“흐응, 더 자라거던!”
 
141
승재는 먼눈을 팔면서 혼자 말하듯이 중얼거린다.
 
142
승재는 속으로 촌사람들이 돼지새끼나 송아지를 팔래도 너무 어리고 젖이 떨어지지 않아서 어미를 찾고 소리를 지르니까, 아직 좀더 자라게 두어 두고 기다리는 것 같은 그러한 정상을 명님이네 집에다 빗대 보던 것이다.
 
143
돼지새끼나, 혹은 송아지나 그놈이 조금만 더 자라 제풀로 뛰어다니면서 밥도 먹고, 꼴도 먹고, 그래 젖이 떨어지면 장에 내다가 팔려니 하고 기다리는 촌사람이나, 일변 딸자식이 철이 좀더 들어서 부모도 그려 않고, 그 동안에 가슴도 좀더 볼록해지고, 키도 좀더 자라고 하면 기생집에다가 수양딸로 팔아먹으려니 하고, 매일같이 고대고대 기다리고 있는 명님이네 부모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144
승재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무심결에 캐액 하고 침을 뱉는다.
 
145
그러나 이어, 그들 양순하디양순한 명님이네 부모의 얼굴을 생각하면, 고약스럽다는 반감보다도 불쌍한 마음이 앞을 섰다.
 
146
승재는 명님을 돌려보내고, 콩나물고개로 해서 초봉이네 집으로 돌아왔다.
 
147
안방에서들은 마침 저녁을 먹는지 대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들리고, 승재 방에는 자리끼 숭늉이 문턱 안에 들여놓여 있었다.
 
148
이 한 그릇 자리끼 숭늉은, 계봉이가 하던 말마따나 소중한 생명수이었었다.
 
149
승재는 갈증도 나지 않았지만, 물그릇을 집어 들고 후루루 들이마신다. 물은, 물을 마셨다느니보다 초봉이로 연하여 가득 넘치는 행복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150
이튿날 아침.
 
151
진작부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성층권(成層圈)의 연구(硏究)??라고 하는 신간을 읽고 있던 승재는 사발시계가 저그럭저그럭 가다가 일곱시 반이 되자, 읽던 책을 그대로 펴놓은 채 푸시시 일어선다. 일곱시 반은 병원에 출근하는 시간이다. 인제 가서 소쇄를 하고 조반을 먹고 나면 여덟시 반, 여덟시 반부터는 진찰실에 나가 앉아야 한다.
 
152
승재는 버릇대로 낡은 소프트를 내려 쓰고 툇마루로 나앉아서 구두를 신노라니까, 문 밖에선지 왁자하니 사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153
그러거나 말거나 승재는 무심히 구두를 신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는데, 그러자 별안간 지쳐 둔 일각문을 와락 열어 젖히면서 ‘먹곰보’가 문간 안으로 쑥 들어서는 것이다.
 
154
승재는 대번, 이건 또 말썽이 생겼구나 생각하면서 주춤하니 멈춰선다. 그는 명님이네 집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먹곰보의 얼굴을 익히 알던 것이다.
 
155
술속 사납고, 싸움 잘하기로 호가 난 줄도 잘 알고…….
 
156
먹곰보의 뒤에는 그의 아낙이 따랐고, 먹곰보가 떠드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도 두엇이나 일각문으로 끼웃이 들여다본다.
 
157
“이놈, 너 잘 만났다!”
 
158
먹곰보는 승재를 보자마자, 황소 영각하듯 외치면서, 눈을 부라리면서, 쏜살같이 달려들면서 승재의 멱살을 당시랗게 훑으려 잡는다.
 
159
세모지게 부릅뜬 눈하며, 본시 검은데다가 술기와 흥분으로 검붉어, 썩은 생선빛으로 질린 곰보 얼굴을 휘젓고 들이미는 양은 우선 흉하기 다시 없었다.
 
160
놀란 것은 승재요, 그는 설마 이렇게야 함부로 다그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어마지두 쩔매는데, 그러자 먹곰보는 멱살을 움켜쥐기가 무섭게,
 
161
“이놈!”
 
162
소리와 얼러, 철썩 뺨을 한 대 올려 붙인다.
 
163
승재는 아프기보다도 정신이 얼떨떨해서 더욱 당황해한다.
 
164
“아이구머니! 저를 어째애!”
 
165
계봉이가 마침 학교에 가느라고 책보를 안고 대뜰로 내려서다가 그만 질겁하게 놀라, 동당거리고 외친다. 안방에서 식구들이 우 하고 몰려나온다.
 
166
“그래 이놈!”
 
167
상관 않고 땅땅 어르면서 먹곰보는 수죄(數罪)를 하는 것이다.
 
168
“……네가 이놈, 침대롱깨나 가지면 김생원 박생원 한다더라구, 그래 네가, 의술깨나 한다는 놈이, 남의 어린 자식이 방금 죽는다는 것을 보구서두 약 한 봉지를 써주지를 않구 침 한 대 놓아 달라구 애걸복걸을 해두 그냥 말었다니…… 그래서 필경 내 자식을 죽여 놓아?…… 이놈!”
 
169
이를 부드득 갈면서 승재의 맷집 좋은 따귀를 재차 본새 있게 올려 붙인다.
 
170
승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못 하고 뻐언하니 마주 보기만 한다.
 
171
먹곰보네 아낙이 슬금슬금 들어와서, 사내의 팔을 잡고, 좋은 말로 하지 왜 이러느냐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기는 해도, 승재가 얻어맞는 것이 고소한 눈치다.
 
172
뒤늦게 정주사가 신발을 끌고 허둥지둥,
 
173
“원 이게, 웬 행패란 말인고!…… 너 이 손! 이걸 놓지 못할 텐가!”
 
174
내려오면서 호령호령한다.
 
175
먹곰보는 힐끔 돌려다보더니 꾀죄한 정주사의 풍신이 눈에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아래로 한번 마슬러 보다가,
 
176
“이건 왜 나서서 이 모양이야! 꼴같잖게!”
 
177
유씨와 초봉이는 벌벌 떨고만 섰고, 계봉이는 휘휘 둘러보다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간다.
 
178
“……이놈, 경찰서루 가자. 너 같은 놈은 단단히 법을 좀 가르쳐야 한다.”
 
179
먹곰보는 을러 대면서 멱살을 잡은 채로 잡아 낚아챈다. 바로 그때다, 퍽 소리와 같이 장작개비가 먹곰보의 옆구리를 옹글게 후려갈긴다. 계봉이의 짓이었었다.
 
180
계봉이는 이를 악물고 억척으로, 이번에는 팔뚝을 후려갈기려는 참인데, 아 저런 년 보았느냐고 정주사가 나무라면서 떠밀어 버린다.
 
181
지나가던 사람이 여럿 문간으로 끼웃거리다가 몇은 슬금슬금 마당으로 들어서서 구경을 한다.
 
182
정주사는 달려들지는 못하고 돌아가면서 연신 호통만 하고 있고, 계봉이는 분에 못 이겨 새액색 어쩔 줄을 몰라한다.
 
183
“헤에, 참 내!”
 
184
승재는 뒤를 돌려다보면서 누구한테라 없이 바보처럼 한번 웃더니, 그러다가 어찌 무슨 생각으로, 먹곰보가 멱살을 잡고 버팅긴 팔목을 슬며시 훑으려 쥐고 불끈 잡아 비튼다.
 
185
먹곰보는 하잘것없이 주먹을 편다. 다 같은 장정이라도 승재가 완력이 솟고, 한데다가 먹곰보는 술이 취해 놔서 그다지 용을 쓰지 못하던 것이다.
 
186
승재는 부챗살같이 손가락을 쫙 편 먹곰보의 비틀린 팔목과 얼굴을 한참이나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그의 아낙한테로 밀어 젖힌다.
 
187
“……데리구 가요!…… 내가 죽였수? 당신네가 죽였지.”
 
188
먹곰보는 나가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버팅기고 선다.
 
189
“오냐, 이놈 보자, 적반하장(賊反荷杖)두 유분수가 있지, 이놈 네가 되레 사람을 치구…….”
 
190
먹곰보가 끄은히 왜장을 치면서 비틀거리고 도로 덤벼드는 것을 그의 아낙이 뒤에서 허리를 그러안고 늘어진다. 그러자 마침 양서방이 명님이를 뒤세우고 헐러덕벌러덕 달려든다.
 
191
“이 사람이 환장을 했나? 이건 어디라구…….”
 
192
양서방은 들어단짝 지천을 하면서, 먹곰보를 사정없이 떠밀어 박지른다.
 
193
“아, 성님!”
 
194
“성님이구 지랄이구 저리 물러나! 당장, 괜시리…….”
 
195
양서방은 먹곰보를 한번 떠밀어 내던지고, 승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술 먹은 개라니, 저 녀석이 시방 자식을 죽이고 환장을 해서 그러는 거니, 참고 탄하지 말라고, 제 일같이 사정을 한다. 승재가 멱살잡이에 따귀까지 두 대 얻어맞은 줄은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196
승재는 별말 안 하고, 어서 데리고 가라고 흔연히 대답을 한다.
 
197
먹곰보는 더 덤비려고는 안 하고, 몸을 휘청거리면서 승재더러 욕만 거판지게,
 
198
“이놈아, 네가 명색 의술을 한다는 놈이 그래 이놈, 내 자식이 죽은 것을 보고두 모른 체해야 옳아? 그리구서 왜, 진작 뵈잖었느냐구 내 여편네게 호령을 해? 이놈 당장 목을 쓸어 죽일 놈, 이놈. 이노옴! 내 자식 내놔라. 이놈.”
 
199
“업동 아버진 괜히 생떼를 써요…….”
 
200
명님이가 진작부터 나설 듯 나설 듯하다가 그제야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여러 사람더러 들으라는 듯이 먹곰보를 몰아세운다.
 
201
“……다아 죽어서 아주 숨도 안 쉬구 그랬어요. 그런 걸 주사를 놓는다구 죽은 애기가 살아나나요?…… 괜히, 죽은 송장한테 주사를 놨다가 정말 죽였다구 애맨 소리 듣게요?…… 생으로 어거지를 쓰믄, 본 사람두 없나, 머…….”
 
202
정주사는 대개 그러한 곡절이려니 짐작도 했지만, 명님이가 앙알앙알 앙알거리는 말을 듣고 나서는 쾌히 속은 알았다. 속을 알고 보니 먹곰보가 더욱이 괘씸했다.
 
203
그러나 그보다 더 괘씸하기는, 아까 자기를 보고 근육질을 하던 것이다. 과연 생각한즉 분하기도 하고, 계제에 먹곰보가 인제는 한풀 죽었는지라 기운이 불끈 솟았다.
 
204
“거 고현 손이로군!”
 
205
정주사는 노랑수염을 거슬려 가면서 눈을 깜작깜작, 음성은 위엄을 갖추어 준절히 꾸짖기 시작했다.
 
206
“……그게, 그 사람이 돈을 받고 하는 노릇도 아니요, 다아 동정심으로 그리는 것인데, 그러니 가서 보아 준 것만이라두 감사할 것이지, 그래 오죽 잘 알아보구서 손두 대지 않았으리라구!…… 네끼 고현 손 같으니라구!…… 아무리 무지막지한 모산지배기루서니 어디 그럴 법이 있나!”
 
207
호령이 엄엄한 푼수로는 당장 무슨 거조가 날 것 같으나, 오직 발을 구를 따름이다.
 
208
승재와 양서방은 한편으로 비껴 서서, 승재는 어제 겪은 일을, 양서방은 먹곰보가 아이를 나서는 잃고, 나서는 잃고 하다가 사십이 넘어 마지막같이 또 하나를 낳아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하던 참인데 그렇게 죽이고 보니 눈이 뒤집히는데, 간밤에 그의 아낙이 말을 잘못 쏘삭여서 그래 더구나 환장지경이 된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9
먹곰보는 인제는 기운을 차리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퍼근히 주저앉아서 무어라고 게걸거리기만 한다.
 
210
정주사는, 승재가 그 동안 역시 이러한 일로 여러 번 봉변을 했고, 급기야 한 번은 경찰서에 붙잡혀가기까지 했었으나, 다 옳은 일을 한 노릇이기 때문에 무사히 놓여 나왔다고 구경꾼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일장 설명을 한다.
 
211
그러고는 다시 한바탕 먹곰보를 꾸짖어 가로되,
 
212
“너 이 손, 그 사람이 맘이 끔찍히 양순했기 망정이지, 만일 조금만 무엇한 사람이면, 자네가 당장 죽을 거조를 당했을 테야!…… 내라두 한 나이나 더얼 먹었으면, 자네를 잡어 엎어 놓고 물볼기를 삼십 도는 치구래야 말았지, 다시는 그런 버릇을 못 하게…… 어디 그럴 법이 있나! 고현 손이지…… 이 손! 그래두 냉큼 물러가지를 못해?!”
 
213
마지막 정주사는 푸달진 노랑수염을 잔뜩 거슬리면서 소리를 꽥 지른다.
 
214
그러나 호령은 역시 큰 효험이 없고, 먹곰보네 아낙과 양서방이 양편에서 부축하다시피, 겨우 일각대문 밖으로 ‘고현 손’을 끌고 나간다.
 
215
초봉이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절로 가슴을 만진다.
 
216
계봉이는 부친의 말마따나 그 ‘고현 손’을 잡아 놓고 물볼기를 때리든지 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좋게 돌려보낸다고 그만 암상이 나서,
 
217
“저 녀석을! 저 녀석을 거저…….”
 
218
사뭇 안달을 하더니 휘휘 둘러보다가 장작개비를 도로 둘러메고 나선다.
 
219
“이년!”
 
220
정주사는 장작개비를 뺏어 부엌으로 들이뜨리면서,
 
221
“……계집애년이 배운 데 없이, 거 무슨 상스러운 짓인고!”
 
222
“그래두 그 녀석을!…… 그 녀석이 우리 남서방을, 마구…….”
 
223
계봉이는 분을 못 참아 쫑알거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금시로 굵다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러자 마침 승재가 땅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집어 털고 섰는 것을, 별안간 우루루 그 앞으로 쫓아가더니, 두 주먹을 발끈 쥐고 승재의 가슴패기를 마치 다듬이질을 하듯이 동당동당 두들기면서, 지천에 새살에,
 
224
“바보! 남서방 바보야. 그깐 녀석한테 따구를 두 번씩이나 얻어맞구서두 왜 잠자쿠 있어?…… 왜 그래? 왜 그래?…… 이잉, 난 몰라! 남서방 미워.”
 
225
그래도 시원찮은지 물러서서 쌀쌀 몸부림을 친다.
 
226
정주사와 유씨는 서로 치어다보고 피쓱 웃어 버린다. 초봉이는 가슴속이 뿌듯하고, 하다못해 눈물이 솟아 고개를 숙인다.
 
227
승재도 감격했다. 그는 계봉이의 하는 양이 꼬옥 친누이동생의 응석같이 재롱스러워서 등이라도 다독다독 해주고 싶었다.
 
228
“괜찮아요! 좀 맞으믄 어떤가? 나 아프잖어. 어여 학교 가요, 응?”
 
229
“누가 아파서 말인가! 머…….”
 
230
계봉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타박을 준다.
【원문】6 조그마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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