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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자의 슬픔 ◈
◇ 10 ◇
해설   목차 (총 : 12권)     이전 10권 다음
1919년
김동인
 

1. 10

 
2
이튿날 아침.
 
3
엘리자베트는 눈을 번쩍 뜨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주머니는 방 안에 없었다. 부엌에서 덜겅거리는 고로 거기 있나 보다 그는 생각하였다.
 
4
전에는 그리 주의하여 보지 않았던 그 방 안의 경치에서 병인의 날카로운 눈으로 그는 새로운 맛있는 것을 여러 가지 보았다.
 
5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담벽 사면에 붙인 당지들이다. 일본 포속(布屬)들에서 꺼내어 붙인 듯한 그 당지들을 엘리자베트는 흥미의 눈으로 하나씩 하나씩 건너보았다.
 
6
그 다음에 보인 것은 천장 서까래 틈에 친 거미줄들이다. 엘리자베트는 그 가운데 하나를 자세히 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동안에 욍 하니 날아오던 파리가 한 마리 그 줄에 걸렸다. 거미줄은 잠깐 흔들리다가 멎고 어디 있댔는지 보이지 않던 거미가 한 마리 빨리 나와서 파리를 발로 움킨다. 파리는 깃을 벌리고 도망하려 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거미줄은 대단히 떨렸다. 그렇지만 조금 뒤에 파리는 죽었는지 거미줄의 흔들림은 멎고 거미 혼자서 발발 파리를 두고 돌아다닌다. 엘리자베트는 바르륵 떨면서 머리를 돌이켰다.
 
7
'저 파리의 경우와…… 내 경우가, 어디가 다를까? 어디가……?'
 
8
엘리자베트가 움직할 때에 파리가 한 마리 욍 나타났다. 그 파리의 날기를 기다리고 있었던지 다른 파리들도 일제히 웅― 날았다가 도로 각각 제자리에 앉는다…….
 
9
엘리자베트는 눈을 감았다. 상쾌한 졸음이 짜르륵 엘리자베트의 온몸에 돌았다. 엘리자베트는 승천(昇天)하는 것 같은 쾌미를 누리고 있었다.
 
10
이때에 오촌모가 샛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11
엘리자베트는 눈을 번쩍 떴다. 오촌모는 들어와서 물에 젖은 손을 수건에 씻은 뒤에 엘리자베트의 머리곁에 와 앉았다.
 
12
"좀 나은 것 같으냐?"
 
13
"무엇 낫지 않아요."
 
14
"어디가 아파? 어젯밤 새도록 헛소릴 하더니……."
 
15
"헛소리까지 했어요?"
 
16
엘리자베트는 낯에 적적한 웃음을 띠고 묻는 대답을 하였다.
 
17
"그런데 어디가 아픈지는 일정하게 아픈 데가 없어요. 손목 발목이 저리저릿하는 것이 온몸이 다 쏘아요. 꼭…… 첫몸할 때……."
 
18
"왜 그런고…… 원."
 
19
"왜 그런지요……."
 
20
잠깐의 침묵이 생겼다.
 
21
"앗!"
 
22
좀 후에 엘리자베트는 작은 소리로 날카로운 부르짖음을 내었다. 낯에는 무한 괴로움이 나타났다.
 
23
"왜 그러냐!?"
 
24
오촌모는 놀라서 물었다.
 
25
"봤다는 안 되어요."
 
26
엘리자베트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27
"그럼 보지 않을 것이니 왜 그러냐?"
 
28
"묻지두 말구요!"
 
29
"묻지두 않을 것이니 왜 그래?"
 
30
"그럼 안 묻는 거인가요?"
 
31
"그럼 그만두자…… 그런데 미음 안 먹겠냐?"
 
32
"좀 이따 먹지요."
 
33
엘리자베트는 괴로운 낯을 하고 팔과 다리를 꼬면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가 참다 못하여 억지로 말했다.
 
34
"아주머니 요강 좀 집어 주세요."
 
35
오촌모는 근심스러운 낯으로 물끄러미 엘리자베트를 들여다보다가 말없이 요강을 집어 주었다.
 
36
엘리자베트는 요강을 타고 앉았다. 나올 듯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는 오줌은 그에게 큰 아픔을 주었다. 한 십 분 동안이나 낯을 무한 찡글고 있다가 내어놓을 때는 그 요강은 피오줌으로 가득 찼다.
 
37
"피가 났구나!"
 
38
오촌모는 놀란 소리로 물었다.
 
39
"……네."
 
40
"떨어지려는 것이로구나."
 
41
"그런가 봐요."
 
42
말은 끊어졌다.
 
43
엘리자베트의 마음은 무한 설렁거렸다. 그 가운데는 저픔과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44
"깨를 어떻게 먹으면 올라붙기는 한다더라만……."
 
45
잠깐 후에 아주머니가 말을 시작했다.
 
46
"그건 올라붙어 무엇 해요."
 
47
엘리자베트는 낯을 찡글고 대답하였다.
 
48
"그래도 낙태로 죽는 사람두 있너니라……."
 
49
엘리자베트는 대답을 하려다가 말이 하기 싫은 고로 그만두었다.
 
50
말은 또 끊어졌다.
 
51
엘리자베트는 '죽어두 좋아요'라고 대답하려 하였다.
 
52
'죽으면 뭘 핬나.'
 
53
그는 병적으로 날카롭게 된 머리로 생각하여 보았다.
 
54
'내게 이제 무엇이 있을까? 행복이 있을까? 없다. 즐거움은? 그것도 없다. 반가움은? 물론 없지. 그럼 무엇이 있을까? 먹고 깨고 자는 것뿐─―── 그 뒤에는? 죽음! 그 밖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그것뿐으로도 살 가치가 있을까? 살 가치가 있을까? 아, 아! 어떨까? 없다! 그러면? 나 같은 것은 죽는 편이 나을까? 물론. 그럼 자살? 아!'
 
55
'자살? (그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모르겠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 보자. 죽는 것도 무섭지 않고, 사는 것도 싫지도 않고─―── '
 
56
이때에 오촌모가 말을 시작했다.
 
57
"내가 가서 물어 보고 올라."
 
58
"그만두세요."
 
59
그는 우덕덕 놀라면서 무의식히 날카롭게 말하였다.
 
60
"그래두 내 잠깐 다녀오지."
 
61
아주머니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62
아주머니가 나간 뒤에 그는 또 생각하여 보았다.
 
63
내 근 이십 년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앞일은 그만두고 지난 일로…… 근 이십 년 동안이나 살면서, 남에게, 사회에게 이익한 일을 하나라도 하였는가? 벗들에게 교과를 가르친 일─―──이것뿐! 이것을 가히 사회에 이익한 일이라 부를 수가 있을까? (그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64
응! 하나 있다! '표본!' (그는 괴로운 웃음을 씩― 웃었다.) 이후 사람을 경계할 만한 내 사적! 곧 '표본!' 표본생활 이십 년…… 아……!
 
65
그러니 이것도 내가 표본이 되려서 되었나? 되기 싫어서도 되었지. 헛데로 돌아간 이십 년, 쓸데없는 이십 년, '나'를 모르고 산 이십 년, 남에게 깔리어 산 이십 년. 그 동안에 번 것은? 표본! 그 동안에 한 일은? 표본!
 
66
그는 피곤하여진 고로 눈을 감았다. 더움과 추움이 그를 쏘았다. 그는 추워서 사지를 보들보들 떨면서도 이마와 모든 틈에는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래는 수만 근 되는 추를 단 것같이 대단히 무거웠다.
 
67
괴로움과 한참 싸우다가 오촌모의 돌아옴이 너무 더딘 고로 그는 그만 잠이 들었다.
 
68
자는 동안에 여러 가지 그림자가 그의 앞에서 움직였다. 네모난 사람이 어떤 모를 물건을 가지고 온다. 그 뒤에는 개가 따라온다. 방성 뒷산에서 뫼보다도 큰 어떤 검은 물건이 수없이 많이 흐늘흐늘 날아오다가, 엘리자베트의 있는 방 앞에 와서는 주먹만하게 되면서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어온다. 하나씩 하나씩 다 들어온 다음에는 도로 하나씩 하나씩 흐늘흐늘 날아 나가서 차차 커지며 뫼만하게 되어 도로산 가운데서 쓰러져 없어진다. 다 나갔다는 도로 들어오고 다 들어왔다는 도로 나가고, 자꾸자꾸 순환되었다. 엘리자베트는 앓는 소리를 연발로 내며 이 그림자들을 보고 있었다.
 
69
이렇게 무서운 그림자를 한참 보고 있을 때에,
 
70
"얘 미음 먹어라."
 
71
하는 오촌모의 소리가 나는 고로 눈을 번쩍 떴다.
 
72
그는 미음 그릇을 들고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저런 큰 그릇을 원 어찌 들고 다니노? 키도 댓자밖에는 못 되는 노파가…….'
 
73
오촌모가 미음 그릇을 놓은 다음에 엘리자베트는 그것을 먹으려고 엎디었다. 아픔이 온몸에 쭉 돌았다…….
 
74
"숟갈이 커서 어찌 먹어요?"
 
75
그는 놋숟갈을 보고 오촌모에게 물었다. 그는, '숟갈이 커서 들지를 못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76
"어제두 먹던 것이 커?"
 
77
엘리자베트는 안심하고 숟갈을 들었다. 그것은 뜻밖에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았다. 그는 곁에 놓인 흰 가루를 미음에 치고 먹기 시작하였다.
 
78
"아이고 짜다."
 
79
그는 한 술 먹은 뒤에 소리를 내었다.
 
80
"짜기는 왜 짜? 사탕가루를 많이 치구……."
 
81
병으로 날카롭게 된 그의 신경은 그의 자유로 되었다. 마치 최면술에 피술자(被術者)가 시술자(施術者)의 명령을 절대로 복종하여, 단 것도 시술자가 쓰다 할 때에는 쓰다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의 신경도 절대로 그의 명령을 좇았다. 휜 가루를 소금이라 생각할 때에는 짜게 보였으나 사탕가루라 생각할 때에는 꿀송이보다도 더 달았다. 그렇지만 그의 신경도 한 가지는 복종치를 않았다. 아픔이 좀 나았으면 하는 데는 조금도 순종치를 않았다.
 
82
미음을 먹는 동안에 오촌모가 투덜거렸다.
 
83
"스무 집이나 되는 동리 가운데서 그것 아는 것이 하나두 없단 말인가 원……."
 
84
"무엇이요?"
 
85
엘리자베트는 미음을 삼키고 물었다.
 
86
"그 올라붙는 방문 말이루다. 원 깨를 어짠대든지……."
 
87
엘리자베트는 성이 나서 대답을 안 하였다.
 
88
미음을 다 마신 다음에 돌아누우려다가 그는,
 
89
"읽!"
 
90
소리를 내고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어디가 아픈지 똑똑히 모를 아픔이 온몸을 쿡 쏘았다. 정신까지 어지러웠다.
 
91
"어찌? 더하냐?"
 
92
"물이 쏟아져요."
 
93
엘리자베트는 똑똑한 말로 대답하였다.
 
94
"어째?"
 
95
"바람이 부는지요?"
 
96
"얘 정신채레라."
 
97
엘리자베트는 후덕덕 정신을 차리면서,
 
98
"내가 원 정신이 없어졌는가?"
 
99
하고 간신히 천장을 향하고 누웠다. 천장에는 소가 두 마리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리 시작하였다. 두 마리의 소는 싸움을 시작했다.
 
100
'떨어지면……?' 생각할 때에 한 마리는 그의 배 위에 떨어졌다. 일순간 뜨끔한 아픔 뒤에는 아뭏지도 않았다.
 
101
'앍' 소리를 내고 그는 다시 천장을 보았다. 소는 역시 두 마리지만 이번은 춤을 추고 있다.
 
102
"표본생활 이십 년!"
 
103
그는 중얼거리고 담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거기서는 남작과 이환과 도야지와 파리가 장거리 경주를 하고 있었다.
 
104
'흥! 재미있다. 누구가 이길 터인고?'
 
105
그는 생각하였다.
 
106
조금 있다가 그는 생각난 듯이 수군거렸다.
 
107
"표본생활 이십 년!"
【원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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