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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巖[성암]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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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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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1. 2.1

 
3
성암이 머리를 깎은 것은 그의 스무 살 때의 일이었다. 불붙는 향학열을 누를 수 없어, 제 집안의 장손이라는 자리를 벗어 버리고, 아우에게 가독(家督)과 재산을 죄 물려주고 배움의 길을 ‘에도(江戶)’로 떠난 것이 그의 열아홉 살의 일이었다.
 
4
‘에도’에 나와서는 창평숙(昌平塾)에 들려 하였다.
 
5
그러나 창평숙은 막부 직신(直臣)의 자제의 교육을 목적한 서재니만치, 웬만한 번사(藩士)며 처사의 자제들도 좀체 창평숙의 숙생이 되기는 힘들었다. 성암 따위 시골 서민의 자식은 염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6
하릴없이 창평숙을 단념하였다.
 
7
처음 고하정리(古賀精里)의 문에 들었다. 일찍부터 시골서 그 명성만을 듣고 사모하던 이 노유(老儒)의 문하에서 성리의 학을 닦다가, 북산(北山)의 문에 적을 옮겼다.
 
8
북산 선생은 당대 첫손가락 꼽히는 시인일 뿐더러, 온갖 학문에 있어서 이름 높은 학자였다.
 
9
게다가 성미가 청렴하여, 그 집안이 대대로 막부 직신(直臣)의 떳떳한 집 안이었지만 끝끝내 벼슬에 오르지 않고, 자제 훈육에 그의 일생을 바쳤다.
 
10
그 문하에서 성암은 여러 선배(성암이 가장 나이 어렸다)들 틈에, 배움의 길을 더듬었다.
 
11
일대의 시종(詩宗) 북산 선생의 문하에서 시에 눈뜬 것도 이때였다.
 
12
성암의 시인으로서의 천품과 재질은 이 거장의 문하에서 비로소 눈뜨고 눈 뜬 뒤부터는 무럭무럭 자라서, 삽시간에, 그의 선배들의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13
시는 글재주❲文才❳뿐으로는 안 된다. 글재주의 아래 시상(詩想)이라 하는 것이 복재해 있어야 한다. 다른 선배들이 글재주만으로 이렁저렁 당면의 시를 읊어 나가는 동안, 시인으로서의 천품을 가지고 있는 성암에게서는 진정한 ‘노래’가 연하여 우러나왔다. 아직 노래를 구성하는 글에 있어서는 얼마의 서투름이 있다 하지만 서투른 문장으로 조성된 풍부한 ‘시상’의 노래는 그의 모든 선배들을 압도하기에 넉넉하였다.
 
14
동시에 그의 성래의 유흥선도 이 번화한 대 ‘에도’에서, 날개를 벌리기 시작하였다.
 
15
악우들의 유혹에도 유리(遊里)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다.
 
16
한 번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면 그 끝을 보고야 마는 이 정열의 젊은 시객은 유리의 달콤한 맛과 , 향그러운 미녀의 체취에 접촉하자, 그만 거기 빠지고 말았다.
 
17
틈을 타서, 틈을 내어서, 그의 발길은 ‘아사꾸사’의 유리에 헤매었다.
 
18
‘화선(花扇)’이라 하는 한 미회에게 성암의 온 정열은 부어졌다.
 
19
그러나, 여기도 일어나는 것은 현실이라는 가혹한 문제였다. 유리에 드나드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이 젊은 시인의 앞에 적지 않은 고뇌를 주었다.
 
20
본시는 적지 않은 재산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재산은 통 아우에게 물려주고, 현재 그의 오촌 아저씨가 관리하는 형편이매, 한두 번 두세 번은 보통 학비 이외의 금전에도 응하기는 했지만 너무도 도수가 잦고 또한 그 청구하는 금액이 서생의 신분으로는 좀 넘치는 액수가 되매, 차차 말썽이 붙어 오다가 종내는, 일정한 학비 이외에는 한 푼 반 전도 보내지 못하겠다는 선고가 내렸다.
 
21
그러나 화선과의 정사에 침혹한 이 정열의 젊은이는 쉽사리 화선과의 연분을 끊을 수가 없었다.
 
22
빚을 내어 그냥 화선에게 다녔다. 빚도 못 지게 되매, 화선이 있는 기루(妓樓)에 외상으로 다녔다.
 
23
섣달 그믐.
 
24
밀린 빚은 일단 청산해야 되는 속세의 빚장이의 성가신 날이 이르렀다. 포주의 빚 채근이 자심하였다.
 
25
아직 이런 단련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성암은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쩔쩔매었다.
 
26
이런 때, 같은 북산 문하의 사람으로 막부의 옥리(獄吏)로 있는 모가 성암을 동정하여 이런 진언을 하였다.
 
27
“머리를 잘라, 포주에게 내어주게. 가객(謌客)은 중 머리❲僧頭❳라도 무관하이.”
 
28
“머리가 얼마짜리라고 포주가 들을까.”
 
29
“뒤는 내 담당하마.”
 
30
빚에 몰려 진퇴유곡하게 된 이 순진한 젊은이는, 면도를 내어 자기의 검은 머리를 썩 잘라 버렸다.
 
31
빚 대신 머리털을 받고, 이 따위 머리가 돈값이 되느냐고 그냥 기루에서 투정할 때에, 벗(막부 옥리)이 맡아 나섰다.
 
32
“이 짐승 같은 놈. 터럭과 피부는 부모의 끼치신 물건이야. 이 귀중한 터럭으로 사죄를 하는데도 그냥 투정이냐. 그럼 당장에 이 터럭은 도로 붙여 올려라. 돈은 내가 주리라.”
 
33
여차하면 칼이라도 뽑으려는 기세에, 기루에서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34
머리를 자른 성암 ― 빚에 쫄리어 머리는 잘랐으나, 생각하매 세상사 한심하였다.
 
35
청운에 뜻을 주고, 집안은 아우에게 물려주고 ‘에도’로 배움의 길을 닦으러 올라왔거늘 지금 이 승형(僧形)으로야 청운이 무엇이고 출세가 무엇이냐. 고향의 집도 아우에게 물려준 배니 돌아갈 집도 없다.
 
36
그렇다고 가지가지의 계급의 층층의 백만 인구가 끓는 이 대‘에도’도 승 형의 한 소년을 포옹할 빈 자리가 없다.
 
37
내 고향에 돌아가 내 종조부께나 몸을 의탁하자. 일찌기 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있는 종조부야말로 이 승형 소년의 가장 의탁하기 쉬운 곳이다.
 
38
스승 북산께 그 뜻으로 하직을 고하였다.
 
39
그러나 스승은 그 의견에 찬성하지 못하였다.
 
40
“네 재주가 아까와. 왜 그 재주 길러서 이름을 육십 주에 떨칠 생각을 못 두고, 고향 진토에 묻히려느냐.”
 
41
“선생님. 그러니 이 승형으로야 ―.”
 
42
“네 서민의 자손으로도 청운에 뜻을 두지 않았느냐. 서민의 자손이나 승 형의 인생이나, 사분(士分) 못 되기는 일반이니라. 또 ― 말이로다. 사분이라 해도 국주, 대명(國主, 大名)이 있고 ‘하따모도(ハタモト ― 旗本[기본])’가 있고 배신(陪臣)이 있고, 층층의 계단이 있지만 위로는 덕천(德川)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을 비롯하여 한낱 하향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성천자(聖天子)의 적자이기는 일반이니 승형의 서민이라고 높은 뜻 못 둔다는 법 없느니라.”
 
43
스승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타일렀다.
 
44
“네가 재질이나 범상할 것 같으면 내 이런 말도 않겠다마는 네 재질은, 초야에 묻어 두기는 아까워. 잘 닦고 기르면 길이 청사에 빛날 이름을 왜 초야에 적이랴. 더 배워라 더 닦아라. 예로부터 ‘에도’서 배우고 대판(大阪) 서 돈벌고 경도(京都)서 호강한단 말도 있거니와 배우기는 ‘에도’에서 배워야 한다.”
 
45
스승은 간곡히 성암을 격려하였다.
 
46
스승의 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47
그러나 지금, 이십 년 지니고 있던 머리를 잘라 버리고 또한 오래 정들였던 ‘화선’과 떨어지기로 결심한 오늘에 있어서는 성암에게는, 모든 것이 모두 귀찮고 마음 냅떠지지 않고, 희망 붙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48
고향이라고 시원하고 신통한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이 백만 대 ‘에도’같이 매끄럽지 않고 쌀쌀하지는 않을 것이다.
 
49
이리하여 성암은 스승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스승께 하직하고 동료들과도 작별하고, ‘학(學)’ 아직 겨우 초보를 들여놓은 뿐으로, ‘에도’를 떠나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1.2. 2.2

 
51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도 마음붙지 않았다. 그의 마음 자체가 고적한 것이지 ‘에도’가 고적한 바가 아니었으매, 고향이라고 신통하게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책도 펴보기 싫었다. 한 귀의 습작(習作)조차 읊어지지 않았다.
 
52
때때로 화계사에 종조부 태수(太隨)대사를 찾아 한담으로 신통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53
이렇게 무위의 날을 보내다가, 이듬해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났다.
 
54
천자 계오신 경도로 올라가 보기 위해서였다.
 
55
역시 승형이었다. 가사를 입지 않고 고깔을 쓰지 않은 이 중 아닌 승형 청년은, 우울한 심사를 가슴에 가득히 품은 채 경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56
이 감개의 청년이 경도에서 본 바는? 천자 계오신 마을 경도가, 덕천 장군의 서울 ‘에도’에 익은 청년 시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었나.
 
 

1.3. 2.3

 
58
경도(京都) 들러서 천자 계오신 곳을 절하고, 유서 깊은 고적들을 찾아보려는 것이 성암의 본시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성암은 경도에서 이 본시의 계획을 의식적으로 내어던졌다.
 
59
번화하고 창성한 ‘에도’에 젖은 성암에게는 쓸쓸하고 고요한 경도는 너무도 눈물겨웠다. 팔백팔 정, 인구 이백만을 자랑하는 덕천씨의 서울 ‘에도’에 비기어, 성천자의 계신 곳은 어쩌면 이다지도 쓸쓸하랴.
 
60
보지 않아야지 ― 생각치 않아야지 ― 보고 생각하고 대조하자면 자연히 불쾌하여졌다. 아니, 불쾌뿐 아니라 불쾌가 도를 넘쳐서 노여웠다.
 
61
천자의 계신 곳이 이렇게 검소하고 질박하거늘 덕천씨는 제 무엇이길래, 그렇듯 호화롭고 그렇듯 뽐내는가. 보지 않고 생각치 않고 대조하지 않아야지, 보고 생각하고 대조하자면 불끈불끈 불쾌와 노염이 솟아올랐다.
 
62
의식적으로 보기를 피하고 대조하기를 피하였다. 그리고 학자들이나 사괴며 시도(詩道)나 좀더 닦고자 하였다.
 
63
그러나 경도의 학자들은 성암의 희망을 이루어 주지 못하였다.
 
64
학자가 없는 바가 아니었다.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한 학자로서, 퇴계(退溪) 우암(尤庵)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의 뒤를 물려받아, 순전히 학문을 연구하는 학도들이지 시(詩)를 읊조리는 ‘작가(作家)’들이 아니었다.
 
65
그들도 간간 시를 읊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시상(詩想)에 없는 단지 문자의 회롱에 지나지 못하였다.
 
66
그들은, ‘시’만을 읊조리고 ‘시’만을 숭상하는 것을 천하게 보고, ‘학문의 외도’라 본다.
 
67
성암은 한동안 경도에서 배회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68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역시 클클하고 답답한 고향이었다.
 
69
게다가, 그의 마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시에 대한 변함없는 동경심이었다.
 
70
그가 먼젓번 머리를 깎고 고향으로 돌아오려 할 때, 그의 스승 북산(北山)도 간곡히 말하였지만, 자기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자기가 장차 나아갈 길은 ‘시도(詩道)’다. 자기에게 시인으로서의 천분이 있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안다.
 
71
단지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흉금에 솟아오르는 구상을 글자로써 넉넉히 나타낼 만한 기술이 부족하다. 이 기술을 닦기 위하여는 이름높은 스승의 문하에서 더욱 더 수양을 닦을 필요가 있다.
 
72
스승 북산의 말마따나, 이 천품을, 시골서 진토에 묻어 버리기는 애석하였다. 이름을 해내에 떨치고 천추에 남긴다는 것은 혹은 과한 욕심일는지 모르나, 시골서 이름없이 삭아 버리기는 그래도 애석하였다.
 
73
고향서 한동안 굴다가, 성암은 다시 ‘에도’로 뛰쳐올라갔다.
 
74
다시 옛날 스승 북산의 문하에 들었다. 좀더 닦고자.
 
 

1.4. 2.4

 
76
다시 북산의 문하에서.
 
77
성암의 본질은 비로소 껍질을 깨뜨리고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명옥(名玉)은 명공의 손에 걸려서 비로소 명옥으로서의 본질을 나타내었다. 북산 선생의 좋은 지도 아래서 성암의 시명(詩名)은 나날이 높아 갔다.
 
78
이리하여, 젊은 시인으로의 성암의 이름이 꽤 자자하게 되었을 때에, 스승북산이 세상을 떠났다 . 그러나, 인제는 스승의 지도가 없을지라도 자기의 길을 걸어나갈 만한 자리가 잡힌 성암은, 더욱 열심으로 자기의 길을 닦아 나아갔다.
 
79
성암은 오따마가(オタマガ)지(池)의 강호시사(江湖詩社)의 한 객원으로 들었다.
 
80
이 시절은 성암에게 있어서는 일생을 통하여 가장 기쁘고 즐거운 시절이었다. 글벗❲文友[문우]❳들을 짝하여, 연못가에 거닐며 흥나는 대로 노래를 읊으며, 혹은, 캄캄한 침야의 못가에서 연꽃 벙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럭무럭 자라는 시상에 무럭무럭 자라는 기교에 ― 자기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자기의 성장을 즐기며, 좋은 벗 짝하여 아름다운 곳 찾아다니며 놀던 강호시사의 몇 해는 성암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절이었다.
 
81
성암의 방랑성은 이때에 배태된 것이었다. 독신자의 구애없는 몸이라, 생각나는 때 생각나는 곳을 향하여, 붓 한 자루를 벗삼아 표연히 나가서, 지방의 글벗들을 찾아다니며, 혹은 십여 일, 혹은 너덧 달씩 방랑을 하고 하였다.
 
82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 칠팔 년, 서른 살 나는 해에 그는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83
고향에 돌아는 왔지만 역시 클클하고 답답한 고향은 마음에 맞지 않아, 이듬해 봄에 또 다시 표랑의 길을 떠났다.
 
84
한동안 또 표랑하다가, 그래도 또 고향이라고, 찾아 돌아오니, 그의 동생이 안해맞이를 하여 새 살림을 차리고 있는 것이었다.
 
85
아우 내외의 의좋은 것을 보니, 아닌게아니라 은근히 부러웠다. 생래의 방랑성 때문에, 서른두 살이라는 지금도 아직 총각으로 지냈고 거기대하여 아무 부자연성이며 불만을 느껴 본 일이 없지만, 아우 내외의 아늑한 신혼 생활을 보니, 적지 않게 마음이 동요되었다.
 
86
이리하여 성암도 드디어 경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87
안해맞이를 하고, 열일곱 살의 어린 안해와 꿀 같은 속살거림의 신혼 생활 몇 달을 하고 나니, 생래의 방랑벽은 또다시 그를 충동하여, 창해의 물결치는 소리 귀에 쟁쟁하고 우거진 논밭 새로 다니는 발의 촉감의 유혹 막을 바이 없어 ‘이 깎은 머리 자라기까지’라는 핑계로 어린 안해 집에 남기고 또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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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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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16년 0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