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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巖[성암]의 길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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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김동인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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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

 

1.1. 5.1

 
3
국제 도시 나가사끼.
 
4
일찌기 뇌산양(賴山陽)이 그(성암)에게, 나가사끼 탐승을 권하였고 또한 관 다산(菅茶山) 선생도 역시 나가사끼 탐승을 권하였다. 그런 권고가 없을지라도 나가사끼는, 성암에게 있어서는 동경(憧憬)의 도시였다.
 
5
거기는 난인(蘭人)과 청인이 적지 않게 살고 있었고, 그들과의 거래가 많으므로, 따라서 이국의 색채를 다분히 띠고 있던 도시였다.
 
6
난인은 성암에게 있어서는 관심되지 않는 인종이었다. 그러나 청인은 ―.
 
7
당(唐) 이래로, 이 나라의 문물 제도는, 그 나라로부터 수입하고 혹은 본따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8
그런 문물과는 비교적 관련이 없이 살아 가는 무사와 상인의 계급은 그러 하지도 않았지만 한학자(漢學者) 한시인(漢詩人)들의 숭당(崇唐) 사상은 심한 것이었다 그 지역의 . 학문을 숭상하는지라, 그 지역의 온갖 문물을 숭상하였다. 문물을 숭상하는 심리는, 그 고장 사람들까지 숭상하게 되었다.
 
9
이 사상은 차차, 근본을 잃고 말(末)만 취하게 되어, 저 땅의 물건이면 무엇이든 무조건하고 숭상하였다. 그리고, 겸쳐, 저 땅의 사람들까지 무조건 하고 숭상하였다.
 
10
나가사끼에 와 있는 지나 사람들은 모두가 장사아치였다. 장사아치의 가운데도 무론 글자를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구별하지 않았다. 저 땅의 사람이면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거니 하는 선입관이 있는지라, 장사아치들도 모두 훌륭한 학자로 보였다. 이 땅의 이름있는 학자들이 모두 머리를 숙여 저 사람(淸人)들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 하고, 학문을 전수해 달라 하고, 한결같이 그들을 숭상하였다.
 
11
한시인인 성암도 역시 그 예에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의 본 성씨(稻津氏[도진씨])를 버리고 양(梁)씨를 일컬었으며, 안해 홍란도(역시 稻津氏) 장씨(張氏) 홍란이라 하고, 평소에 청국을 숭배하였으며, 청인이 많고 살고 청국 풍습이 많이 건너와 있는 나가사끼를 한 번 가 보고자 함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12
“나가사끼는 참 좋은 곳이야.”
 
13
“바루. 언제 와 보신 것 같구료.”
 
14
“내 형(山陽)두 그러구, 다산(茶山) 선생도 그러시니까 말이지.”
 
15
“나가사끼서 소주(蘇州) 비단 오비(オビ ― 띠) 한 감 ―”
 
16
“소주 비단으로 띠는? 주제넘게. 내 훈도시(フンドシ ― 샅바)나 한 감사 지.”
 
17
“그만두세요.”
 
18
일찍부터 생각하고, 그 뒤 깎고 다듬고 갈고 하여 지은 노래가 있었다.
 
19
아직 직접 나가사끼에 발은 못 들여놓았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에 의지하여 지은 것이었다.
 
 
20
萬疊峯圍一席天 [만첩봉위일석천]
21
海雲崖樹碧於煙 [해운애수벽어연]
22
市樓籠地無空闊 [시루롱지무공활]
23
佛刹綠山互接連 [불찰록산호접련]
24
落日鐸聲亞蘭舘 [락일탁성아란관]
25
迥風旗影淛江船 [형풍기영제강선]
26
時淸不見窺窬者 [시청부견규유자]
27
夷往鸞來二百年 [이왕란래이백년]
 
28
남국(南國) 여름의 상쾌한 해풍(海風)을 받으며, 성암 내외는 동경의 나가사끼에 발을 들여놓았다.
 
29
문정(文政) 칠년, 성암이 서른여섯 살, 그의 안해는 스물한 살이었다.
 
 

1.2. 5.2

 
31
“양 선생의 성화는 이 나가사끼에도 자자해서, 일찍부터 익히 듣고 사모했읍니다마는 ―”
 
32
나가사끼에 강운각(江芸閣)이라는 청국 상인이 있었다. 딴 나라에 와서 크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니만치, 재산도 풍부하였다. 일대의 풍류랑이요,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본 사람으로도 친구가 많았다. 약간 한 글도 알았다. 자류의 풍월도 읊었다.
 
33
한낱 장사아치니, 제 글을 알면 얼마나 알랴마는, 지나라 하면 덮어놓고 숭상하는 당시의 한학자들은 다투어 운각과 사괴었다.
 
34
이렇게 되매 운각도 인젠 제법 학자인 체하였다. 스스로도 풍월을 읊조렸거니와 일본인들의 시에 대하여 비평도 가하였다. 이 지방의 한학자들은 그를 꽤 숭상하고 그에게 지도를 빌었다. 그래도 지나인이요, 그래도 약간한 글자는 있는지라, 그의 의견에는 그래도 얼마만치 들을 바이 있었다.
 
35
당시의 한시인의 예에 벗어나지 못하여, 운각을 한학자인 듯 여기고 있는 성암은 그와 사괴기 시작하며, 그에게 자기 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36
“양 선생의 시에는 선생 자신이 자주(自註)를 다셨지만, 그 주가 없으며, 마치 주역(周易) 같아서 뜻을 알아보기 힘들어요. 예컨대, 선생이 쯔끼가세에서 매화를 보시고 또 미우하에서 매화를 보시고 지으신 노래.
 
 
37
梅花不見只聞香 [매화부견지문향]
38
遍野漫山春渺茫 [편야만산춘묘망]
39
非有鼻神能諦觀 [비유비신능체관]
40
直須喚做白雲鄕 [직수환주백운향]
 
41
이라신 노래가 있지요. 그 기구(起句) ‘매화불견’ 운운도 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좌우간 뜻은 통하기는 해요. 그러나, 결구(結句) ‘비유비신’ 운운은, 선생이 스스로 주(註)를 다셔서, 비신 ― 즉 냄새 맡은 신령의 덕을 빌지 않고는 단지 부연 구름 동리로밖에는 볼 수 없다. ― 즉 꽃 향내가 나기에 여기를 매화밭으로 알지, 그렇지 않으면, 백운(白雲)의 마을로 알리라 하는 뜻이라 하셨기에 그렇게 여기지, 그 주만 없으면 어떻게 그렇게 여기겠어요.”
 
42
그렇게 해석하고 보면 그 시상으로야 참 훌륭하지만, 그 노래만 읽고는 그게 주역이지 어떻게 그렇게 해석을 하겠어요?
 
43
또 이번에 선생의 이도사끼(イトサキ)에서의 노래가 있지요. 이 나가사끼에서도 모두들 선생의 명작이라고 읊고 외고 있읍니다마는
 
 
44
詩酒還成半日遊 [시주환성반일유]
45
此生隨處送悠悠 [차생수처송유유]
46
他年夢裹問陳述 [타년몽과문진술]
47
細雨春帆雙鷺洲 [세우춘범쌍로주]
 
48
란 것 말씀입니다.
 
49
주(註)를 보면, 시주(詩酒)로써 한나절을 보냈다. 내 늘 이렇게 유유하게 세월을 보낸다. 뒷날 누가 오늘날의 일을 물으면, 가랑비 가운데서 배를 띄우고 쌍로주에 놀았다 하리라, 하는 뜻이라지만, 주를 읽기 전에는 그 해석 얻기 어려우리다.
 
50
요컨대 선생의 노래의 대부분은, 주(註)가 있어야 알 수 있고, 주가 있고도 또한 주의 해설까지 있어야 하겠으니,
 
 
51
往自不安行更難 [왕자부안행경난]
52
荆釵何暇共酣歡 [형채하가공감환]
53
吾生唯有飄〇以 [오생유유표〇이]
54
慚殺高人梁伯鸞 [참살고인량백란]
 
55
이며, 또는
 
 
56
連山中斷一江過 [련산중단일강과]
57
禹鏊隨開豈讓功 [우오수개기양공]
58
薄夜潮聲驅萬里 [박야조성구만리]
59
平公塔畔月如弓 [평공탑반월여궁]
 
60
이며 또는,
 
 
61
雪灑笠檐風卷袂 [설쇄립첨풍권몌]
62
呱呱索乳若爲情 [고고색유약위정]
63
他年鐵拐峯頭嶮 [타년철괴봉두험]
64
叱咜三軍是此聲 [질타삼군시차성]
 
65
이란 노래들을, 주가 없고, 또 그 위에 고실(故實)을 모르고서야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66
성암뿐 아니라, 일본 한시인들의 한시는, 역사를 뒤적이고 고실(故實)을 뒤적이고 그 위에 옥편을 뒤적이어, 할 수 있는 대로 어렵고 까다로운 문자를 찾아내어 이것을 쓰기를 ,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말을 그냥 한문 글자로 직역하여, 예컨대 ‘봉황은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의 ‘죽실이 아니면’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일본 말 아라사 레바(アラサレバ)를 그대로 써서 ‘非有竹實[비유죽실]’등으로 나타내며, 또는 자기 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주를 붙여서, 남에게도 그렇게 해석하기를 강요하는 등, 지나인으로서는 머리 끄덕이지 못할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67
운각은 학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압운이라든가 시의 격(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한시’에 쓰이는 말을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니만치, 거기 대한 비평은 적절하였다.
 
68
더우기 단지 청인이면 존숭하는 성암은 머리를 숙여 그의 의견을 고맙게 들었다.
 
 

1.3. 5.3

 
70
성암 내외는 어떤 고찰(古刹)을 숙소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가사끼의 일본 시인이며 청국 장사아치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71
성암도 안다. 저 청인들은 한낱 장사아치에 지나지 못함을. 그들에게는 무슨 학문의 소양도 없고, 그 위에 시상(詩想)도 없는 글을, 시재 가슴에 느끼는 즉흥으로 성암의 시에 응수한다.
 
72
‘한시’가 대체 저들의 일상 쓰는 ‘언어’에서 나온 것이매, 게다가 운이나 붙이면 노래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73
그러나, 내용(시상)이 없는, 단지 문자는 희롱이었다.
 
74
거기 비기자면 자기의 노래는….
 
75
무론 내 나라 말이 아니매, 언어 구사에는 어색한 점이 많으리라. 글자의 오용(誤用)도 있으리라.
 
76
그러나 내 노래에는 시상이 있다. 시의 생명인 ‘상’이 있다. 그 ‘상’을 나타냄에 혹은 글자 사용에는 틀린 점이 많을지나 그것은 수련하면 진보될 기교에 지나지 못하고, 시의 본체를 구성하는 시상은, 저 사람들과 비길 바가 아니다.
 
77
이만한 자존심과 자우심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본래 하도 동경하고 하도 사모하던 중국 문물이라 그 나라 사람들을 대하면 저절로 존경하는 생각이 일었다.
 
78
나가사끼에 와 있는 저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강운각이 가장 학문도 나았고 인격도 나았고, 교제성도 나았다.
 
79
성암은 숙소 고찰을 나와서 매일 운각을 찾았다. 운각은 성암을 화월루(花月樓)에 초대하여 놀고 하였다.
 
80
화월루의 수소(袖笑)라는 여인이 운각의 정부였다.
 
81
성암과 홍란, 운각과 수소, 이 두 패거리의 남녀는 한 좌석에서 함께 놀고 하였다. 처음 몇 번은 그렇게 지냈지만 차차 안해를 데리고 청루(靑樓)에 다니는 것이 좀 자미 없기도 하고 운각도 또한 홍란의 앞에서는 마음대로 놀지 못하는 양도 보이는 위에 성암 자신도 얼마만치 구속되는 느낌이 있으므로, 안해에게 갑갑하겠지만 혼자 남아 있으라고 부탁하고 혼자 다니게 되었다.
 
82
“이봐 홍란. 그렇지 않겠느냐 말이야. 적어두 우리나라 당당한 여시인이요 화가인 홍란 여사 어전이니, 사내며 더우기 청루 계집들이 어떻게 마음대로 놀겠느냐 말이야.”
 
83
“못 놀면 어때요? 당신두 그만했으면, 싫증도 안 나셔요?”
 
84
“아니지. 그럴 법 없지. 그렇지 않으냐 말이야. 나두 좀 ― 임자두 들었겠지만, 시의 말 쓰기(용어 구사)가 어색하구 서툴단 말이지. 우리 일본말이 아니구 청국 말로 쓰자니 그럴 밖에. 그걸 저 친구들과 평소에 사괴노라면 익숙해지겠단 말이지. 또 임자두 시 서투른 사람의 안해라기보다 대시인 양성암의 안해라는 편이 좋지 않겠나.”
 
85
“그럼 저두 함께 익히면 좋지 않아요?”
 
86
“내 배워다가 가르쳐 줄께. 임자야 나한테 배워야지.”
 
87
“저두 직접 ―.”
 
88
“아냐 아냐. 아니래두 그런다. 내 잘 배워다가 가르쳐 주마. 남의 남자에게 구차스럽게 배울 것 없이, 제 영감께 배우면 멋이 쿡 드느니. 내 딸 착하지, 말 잘 들어 이쁘지. 내 밀조(蜜棗)사다 주마. 소주(蘇州) 비단 고시마끼(コシマキ ― 무지기·일본식 속치마) 사다 주마. 참 이쁠 테지. 너무 이뻐서 잠시두 눈을 떼지 못했다가는 성암 선생 노래도 못 지을 테니, 기처(棄妻)할까.”
 
89
어름어름 떼어 버렸다.
 
90
나가사끼에 깃들이고 있는 이국 계집의 정취가, 성암을 유혹하는 바였다.
 
91
본시 방랑하던 성미 ― 안해를 맞고, 그 뒤는 이내 안해 동반으로 시골길 더듬노라고 다른 데 눈팔 겨를이 없었다.
 
92
여기서 청인들을 작반하여, 이국 정취에 배회하니, 곁에 안해 달한 것이 귀찮았다. 핑계 좋게 떼어 두고, 혼자 좀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
 
93
좋은 말로 안해를 뗀 뒤에, 성암은 혼자서 청인들을 찾았다.
 
94
결혼한 이래, 이렇게 혼자 마음껏 돌아다니기 처음이었다. 훨씬 자유롭고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95
그러나 ―놀이를 끝내고 취안이 몽롱하여 숙소인 고찰로 찾아 돌아오면, 안해 홍란은, 밤화장 고이 하고, 책상귀에 기대어 글씨공부를 하며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밤이 늦어서 자(子)시에 돌아와도, 축(丑)시에 돌아와도, 또는 인(寅)시에 돌아와도, 안해는 한결같이 그냥 깨어서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96
이 안해를 보면, 칵 미안한 생각이 마음에 솟아오르고 하였다. 야반의 안해를 대하고 보면, 아까의 놀이가 진실로 싱겁고 의의 없고 가치없는 것으로 보였다. 내일은 다시는 나가지 않고, 안해를 데리고 이 근처의 산책이나 하리라, 안해가 물길러 우물에 나갈 때도 함께 따라가 주리라. 잠시도 안해의 곁을 안 떠나서, 그로 하여금 외로운 느낌은 결코 생기지 않게 하리라.
 
97
이렇게 결심하고 하였다.
 
98
그러나, 하룻밤의 수면으로 지난날의 피곤을 다 삭이고, 새로운 원기의 아침을 맞으면, 그의 마음은 저절로 뒤숭숭해지고, 또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는 그였다.
 
99
더욱 성암의 마음에 켱기는 것은, 비용 ― 돈의 문제였다.
 
100
짐작컨대 준비해 가지고 온 금전은 다 썼거나, 적어도 거진 다 썼을 것이다. 안해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물었다가는 십중팔구는 없어요 소리가 나올 것이 무서워 묻지 못하고, 안해에게서 무슨 불길한 선고가 나올 것을 전전긍긍히 기다렸다.
 
101
어떤 날 드디어 그 문제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102
그 날도 역시 취하여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매, 늘 화려한 옷으로 화장 곱게 하고 남편을 기다리던 안해가, 이 날은 검소한 옷을 입고 있었다.
 
103
“미울세. 왜 낡은 옷으로 영감을 맞아?”
 
104
어색하여 역시 농으로 물었다.
 
105
안해는 미소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미소가 마치 우는 듯한 언짢은 얼굴이었다.
 
106
“미워. 감자 장수 할멈같이. 자 우리 홍란, 새 옷 갈아입구 일어나 춤을 한 번 추지.”
 
107
“…”
 
108
“응? 좋은 옷 어땠어?”
 
109
“여보세요.”
 
110
“왜?”
 
111
“옷 팔았어요.”
 
112
“무얼?”
 
113
“쌀이 떨어졌어요. 차례루 차례루, 오늘 마지막 하레기(ハレキ ― 나들이옷) 팔았어요.”
 
114
취기가 한꺼번에 달아났다.
 
115
책망? 무에라 책망하랴.
 
116
“그러면 왜 좀 미리 말 안했어?”
 
117
“…”
 
118
“왜?”
 
119
“말씀드리면 뭘 합니까. 사내어른 마음 들뜨신 때 ―. 기다리노라면 언제든 그만두실 날이 올 것을.”
 
120
더 할 말이 없었다.
 
121
“홍란. 미안하이. 맹서하마. 인젠 다시 안 나가마.”
 
122
그 새 놀이에 달떠서 몰랐지만, 집은 씻은 듯이 맑았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쌀은 어제 산 것이니 있지만, 다른 반찬감은 아무 것도 없었다.
 
123
오늘부터는 다시 나가지 않으려는 남편을 위하여 무슨 반찬거리를 장만하려 나가려 하는 안해를 성암은 말렸다.
 
124
“반찬거리는 내 장만하마.”
 
125
어떤 청국인 친구에게, 도야지고기를 좀 보내 달라는 편지를 써서, 상좌시켜 나가사끼 시내로 보냈다.
 
126
오래간만에, 진실로 오래간만에 내외는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았다.
 
127
“역시 우리 마누라가 으뜸일세.”
 
128
“왜요. 화월루 매우(梅雨)는 어떠시구요.”
 
129
“지저분하게. 이름부터 왜 산뜻하게 홍란이라든가 못하고 매우람. 에 퀴퀴하구 지저분해.”
 
 

1.4. 5.4

 
131
홍란이 낡은 절에서 홀로이 지아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쓸쓸히 지내는 동안에, 홍란의 마음에 잔뜩 움돋은 것은 고향 생각이었다. 고향이래야, 자기네 가정은 단 두 내외가 다 이곳에 와 있으니, 가정 생각은 날 것이 없지만, 그래도 거기는 부모가 있고 동생이 있고, 함께 자란 동무가 있고, 낯익은 우물과 행길이 있다.
 
132
고향을 떠나서 객지살이 삼 년, 비록 고향에는 내 집도 없을지라도 그래도 객지는 인제는 겨웠다. 게다가 남편은 홀로이 놀러 다니고, 가난까지 겹치고 보니, 고향 그리운 생각은 나날이 더하였다.
 
133
남편이 청인들과의 놀이를 그만둔 뒤에도 얼마를 더 나가사끼에 있었다.
 
134
인제부터 다시 여행을 계속함에 그 비용을 얻기 위해서였다.
 
135
안해 홍란이 곁에 있고 홍란의 끊임없는 독려와 애정이 있었기에 면했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방랑의 길에 빠질 뻔한 성암은, 마음 가다듬은 뒤에는 다시 시작(詩作)에 열중하였다. 행상의 준비였다. 다시 여비를 준비해 가지고 나가사끼를 떠나서 그해 연말에 하관(下關)에 들었다.
 
 
136
思歸三葳未能歸 [사귀삼위미능귀]
137
紅獨依微照曉緯 [홍독의미조효위]
138
憶得東風舊粧閣 [억득동풍구장각]
139
姉呼妹喚整春衣 [자호매환정춘의]
 
140
홍란의 제야시(除夜詩)였다.
 
141
“새 옷 입고 널뛰고 싶지?”
 
142
“누가 안 그렇대요?”
 
143
“경도(京都)에 가서 새 옷 지어 주마.”
 
144
“언제 경도에 갈 날이 있을까요?”
 
145
“늙기 전에야 가지.”
 
 

1.5. 5.5

 
147
새해, 봄도 지나고 여름도 지나고 가을도 지나고, 겨울 시월에야 성암 내외는 겨우 다시 오노미찌까지 돌아왔다. 여기서 한 달, 저기서 두 달, 히로시마 같은 데서는 뇌향평(賴香坪)을 만나기 때문에 반 년이나 놀았다.
 
148
옥포(玉浦)에서 배를 탔다.
 
149
그때 맞은편에서도 배 한 척이 이리로 향하여 왔다.
 
150
가까이 이르렀다. 서로 어긋나면서 맞은편 배를 보니, 그 배 승객 가운데는, 경도의 뇌산양이 있다.
 
151
“양성암!”
 
152
산양도 성암을 알아보고 고함쳤다.
 
153
“아! 산양 형! 어떻게 여기를?”
 
154
“숙(叔) 춘풍(春風)이 별세하세서 그 장례에 참예코자. 성암은?”
 
155
난 형의 권고대로 “ 구주 일대를 탐승하고 지금 돌아가는 길이외다.”
 
156
두 배의 상거가 차차 벌어졌다.
 
157
“성암! 경도에 오시거든 찾아 주시오.”
 
158
“아마 명년 봄에야 경도에 가게 되리다. 그때 찾으오리다.”
 
159
“그럼.”
 
160
“산양 형!”
 
161
빠른 물살에 나누이는 배의 상거는 벌써 서로 소리를 알아듣기 힘들게 되어 간다.
 
162
뜻안한 곳에서, 존경하는 선배 뇌산양을 만났다가 다시 헤어진 성암은 손을 들어 산양의 배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163
산양도 못내 애석한 듯이, 뱃전에 앉아서 이리로 손을 치고 있다.
 
 

1.6. 5.6

 
165
오까야마에서 또 과세를 하였다.
 
166
문정(文政) 구년, 성암 서른여덟.
 
167
나니와에 들어서 좀 어름어름하는 동안에, 경도에서 오는 소식에 의지하면, 지금 아라시야마의 꽃이 한창이라 한다.
 
168
꽃 생각도 났다. 그 위에, 작년, 옥포에서의 뇌산양과의 약속도 생각났다.
 
169
황황히 짐을 꾸려 가지고 배에 올랐다.
 
170
“꽃때에는 양 형 내외분이 꼭 오실 줄 알았소이다.”
 
171
산양은 손을 들어 환영하였다.
 
172
산양은 성암을 위하여, 까모가와에 뱃놀이를 열었다. 산양과, 산양의 안해, 성암과 성암의 안해, 이 두 패거리 내외의 조촐한 뱃놀이였다.
 
173
나가사끼에서, 강운각과 수소, 성암과 홍란, 이런 두 패거리의 놀이를 여러 번 겪어 보았지만, 그때의 난잡하고 소란하던 놀이에 비하여, 서로 존경하고 서로 이해하는 두 친구와 그들의 좋은 짝들의 놀이라, 그 취미는 아주 달랐다.
 
174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까모가와에 배를 띄우고, 서로 시서를 토론하고 경개를 상미하는 아담한 잔치였다.
 
175
“성암. 나가사끼의 취미가 어때요?”
 
176
“마굴입디다. 거기 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고 유혹되더니. 일단 떠나고 보니 거기서 지낸 내 꼴이 되려 부끄럽거든요.”
 
177
“강운각의 인상은?”
 
178
운각은 내 노래를 흉보던걸요 “ . 어렵고 까다로운 문자를 억지로 얻어 내어, 어울리지도 않게 사용하고 ―.”
 
179
“흐 ― ㅁ”
 
180
“또, 우리나라 사람이 한문에 무식하다구요. 예컨대 ‘피할 수 없다’는 말은 불능피(不能避)라 해야 하는데, 일본인은 피불능(避不能)이라구 하구, 요컨대 한문 공부를 더 해야겠다구.”
 
181
“운각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우리 일본인은, ‘불능 피’라 안 쓰고 ‘피불능’이라구 쓰고도 사꾸아따하즈(サクアタハズ)로 읽으니까, 결국 같은 일이외다. 우리는 일본인에게 읽히고자 쓰는 노래니까, 일본인이 그렇게 읽어 주었으면 그뿐이지요. 글자는 저 나라 글자지만 그것을 빌려다가 쓰는 우리가 히후노오(ヒフノウ ― 避不能[피불능])라 읽지 않고 우리 식으로 사꾸아따하즈라 읽는 이상에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법식으로 쓰는 편이 옳을 것이외다. 모든 것이 다 그럴 것이외다. 우리는 어디까지든 일본인이니까, 우리의 부족한 건 혹은 저 나라에서 빌려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빌려다가는 우리에게 적합하도록 소화시켜서 쓰는 일이 옳을 것 이외다. 부인, 성암 형이 혹은 나가사끼서 부인께 못살게는 안구십디까?”
 
182
홍란은 명랑히 웃었다 ―
 
183
“왜요? 매우(梅雨)라나 하는 소주 계집에게 홀짝 반해서, 야단했답니다.”
 
184
“고약한 친구로군.”
 
185
성암도 웃었다 ―
 
186
“투(妬)는 칠거지악에 드는 건데, 머리에 뿔을 돋아 가지구 강짜해서―.”
 
187
“뭐이 또!”
 
188
“기처(棄妻)할까 했는걸요.”
 
189
산양은 앞의 술잔을 들며 조금 물러 앉았다 ―
 
190
“제 고국을 등지고, 일본 나가사끼까지 밀려나와 있는 저들이니 무슨 큰 인물은 없지만, 운각은 그래두 그 가운데서는 좀 출중한 사람입디다.”
 
191
“좀 경박한 것이 탈이더군요.”
 
192
“저들은 그대로 한족(漢族)의 종자 ― 여진(女眞)족에게 밀려, 나라도 잃고 외국까지 밀려나온 사람들이니, 다른 것 다 집어치우고 돈벌이나 해보자, 말하자면 불우(不遇)의 사람들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인도(印度)와 같은 운명, 영국인에게 국가 주권까지도 유린당하는 그런 비참한 운명을 눈앞에 보면서도, 여진족 지배하의 ‘청국 국가 운명’ 따위는 고려할 생각도 안 하고 내 돈벌이나 잘하자 ― 즉 자포자기 ― 동정할 만한 가련한 사람들 이외다.”
 
193
술좌석에도 튀어져나오는 우국지사(憂國志士)로서의 탄식이었다. 한(漢)민족의 운명, 청국의 현황을 탄식하는 산양의 말의 뒤에는 덕천(德川)씨 지배하에 있는 야마도 민족의 근심도 감추여 있는 것이었다.
 
194
성암은 고요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1.7. 5.7

 
196
사 년간의 표랑을 끝내고, 성암 내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197
이 긴 여행은, 분명히 성암의 견문과 아울러 시상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
 
198
송시(宋詩)에서 당시(唐詩)로의 복귀에 힘쓰던 성암은, 이 긴 여행에서 ‘일본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아니, ‘일본시’라기보다 성암시였다.
 
199
시의 주제를, 대자연이든가 혹은 회고, 적막 등에서 잡는 한시의 전통을 벗어나서, 시사(時事) 우국 등에서, 노래의 주제를 얻기에 주력하였다.
 
200
문장에 대해서도, 이것은 일본식 한문이 아닌가, 이것은 문법에 틀리지 않는가 등의 구속감을 벗어 버리고, 그런 문제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대담성을 어느덧 얻었다.
 
201
옥편을 뒤적이고 고실을 뒤적이어, 노래 한 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고심을 하던 그런 고심도 차차 줄어들어서, 자연스러운 구가 술술 솟아나게 되었다.
 
202
사 년간의 여행으로 이만한 성과를 얻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03
그러나 고향에 돌아오고 보니, 눈앞에 막히는 문제는 역시 생활 문제였다.
 
204
고향에서는 ‘행상’을 할 곳도 없었다. 기본 재산은 무론 없었다.
 
205
동생이 부자였다. 그 동생의 재산이라 하는 것이, 본시는 성암의 것이었다. 그러매 떳떳이 동생에게 생활 부조를 요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고, 성암 자기는 그래도 그런 문제에 구애되지 않았지만 안해 홍란이 싫어하였다.
 
206
일 년간을 고향에서 자존심과 싸우고 가난과 싸우다 못해, 일 년 뒤, 문정 십년 사월에, 성암은 또 보따리를 싸 가지고,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207
“내 돈 벌어 집으로 보내줄 테니, 집에서 기다리게.”
 
208
이번에는 안해를 두고 떠나기로 하였다.
 
209
“어디 어디로 다니실 예정이야요?”
 
210
“경도에 가서 묻혀 있겠네.”
 
211
“그러면?”
 
212
“산양(山陽) 형은 인정 있고, 이해 있는 사람이니까, 좋도록 주선을 해주겠지.”
 
213
형으로서의 자존심상, 동생에게는 차마 구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 알아주는 산양에게는 가슴 터놓고 자기의 빈곤을 호소하고, 그 선후책을 의논할 수도 있었다.
 
214
“내 땜장이 노릇을 할까 하네.”
 
215
“땜장이란요?”
 
216
“무론 매시(賣詩)도 하고, 시회도 열고 하겠지만, 남의 지은 시를 땜질― 즉 얼마씩의 사례를 받고, 서툰 데를 고쳐 주고, 잘못된 데를 수정해 주고 ― 말하자면 땜질일세그려. 옷 땜질, 그릇 땜질은 할 줄 모르지만, 시 땜질은 내 당해 내마.”
 
217
“그게 될까요?”
 
218
“되구말구. 시를 배우는 사람이 자기 지은 시에다가, 성암 대선생이 이렇게 이렇게 해야 좋다고, 땜질해서 본때를 보여 주면 거저 배우는 것보다 훨씬 진보가 빠를 것일세. 싸구려 싸구려루, 북을 두들기며, 에 또, 여기는 양성암 대선생의 대장간이외다, 한시, 대책, 서간, 무엇이든 가져오면, 감쪽같이 때우고 고쳐 드립니다. 에에 싸구려 싸구려루 크게 외치면, 남으로는 팔장(八丈)에서 북으로는 에소(蝦夷[하이])까지 문이 메어서 몰려올 것일세. 임자두 함께 가서, 문간에서 손님을 불렀으면 좋겠구만.”
 
219
“싫어요.”
 
220
홍란은 고향에 돌아와서는 집 한 간 마련하고 거기 엉덩이를 붙이자고 함께 돌아왔던 노릇인데, 막상 고향에 돌아와 보니, 그럴 가망 보이지 않고, 시가의 친척이며 친정의 친척이 모두 버젓이 살아 가는 가운데, 홀로이 삐어져서, 집 한 간 없고 그날그날의 살림조차 구차하게 지내는 것이 가슴 아팠다.
 
221
이름 좋은 개살구라고, 시인 양성암의 성화는 지금 육십 주에 찬연히 빛나지만, 어름이 직접 밥이 되지 않고, 명예가 직접 그들의 구차함을 구원해 주지 못하니, 자존심을 유지키 위해서 남에게 창피한 꼴은 보이기 싫고, 홍란의 여인으로서의 마음은 진실로 괴로웠다.
 
222
바가지를 안 긁으려야, 안 긁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서 긁는 바가 아니고, 체면을 버티기 위하여 긁는 바였다.
 
223
행장에 붓 한 자루를 싸 가지고, 행상에 겸 땜질을 하기 위한 길을 떠났다.
 
 
224
擾擾輪蹄塵滿城 [요요륜제진만성]
225
浮名世利日紛爭 [부명세리일분쟁]
226
如何林下忘會者 [여하림하망회자]
227
也策嬴慘去入京 [야책영참거입경]
 
228
소연한 경도의 땅으로 향하는 자기의 심경이 스스로 가엾었다.
 
229
더우기 매시(賣詩)만도 아니요, 시 땜질을 목적하고 떠나는 자기의 처지가 가엾었다.
 
230
“안해란 참 인생 행로의 지대한 부담이로다.”
 
231
일 년 전, 나니와에 배회하다가, 경도에 꽃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듣고 황황히 경도로 달려가던 그 날이 회상되었다.
 
232
오늘도 그 날과 마찬가지로 노변에는 꽃이 한창이요, 시내에는 봄물이 용용히 흐른다.
 
233
만물이 새 봄을 맞아 소생하려는 이 봄날, 성암은 가볍지 못한 가슴을 붙안고 길을 더듬었다.
【원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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