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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巖[성암]의 길 ◈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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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김동인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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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1.1. 6.1

 
3
뇌산양(賴山陽)은 성암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좋은 후원자였다. 성암을 위해서는, 몸이나 정성이나 아끼는 것이 없었다.
 
4
붓 한 자루를 밑천삼아, 붓으로써 구복(口腹)의 문제, 의식 거처의 문제 온갖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성암에게는 동정자 이해자 후원자가 절대로 필요하였다. 뇌산양을 그의 아버지의 대부터 유관(儒寬)으로 내려왔으니만치, 면이 많고 지반이 넓으며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으니만치, 위신도 많았다. 그 산양이 정성을 다하여, 혹은 물질로, 혹은 정성으로 성암의 뒤를 보아준 것이었다.
 
5
나이 사십에, 아직 안정할 집도 마련하지 못한 성암은 이리저리 방랑하며, 시작(詩作)에 정진하고 있었다.
 
6
안해 홍란도 또 가까이 불렀다.
 
7
고달픈 세상을 헤엄쳐나아가는데, ‘안해’라는 것은 지대한 부담인 동시에 또한 지대한 위안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하도 고되고 어려워서, 탁 절망에 빠지려 할 때에, 곁의 젊은 안해를 돌아보면 안해 부양의 의무를 통절히 느끼는 동시에, 안해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는, 다시금 성암의 용기를 돋구어 주는 것이었다.
 
8
안해를 다시 불러 곁에 두고, 가난과 싸우며 세상과 싸우며, 오직 대성(大成)의 날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었다.
 
9
근기(近畿)의 명소라는 명소는 다 찾아 보았다. 좋은 벗 찾아 아름다울 경개를 순유하는 동안 그의 시낭(詩囊)은 부쩍부쩍 늘었다.
 
 

1.2. 6.2

 
11
천보(天寶) 삼년 여름(마흔네 살) 성암은 다시 ‘에도(江戶[강호])’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한 가지로는,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나이 불혹(不惑)을 지난 지금까지도, 만날 내일의 조반쌀을 어디서 생길까고 근심하는 불안정한 생활이 인제는 진저리났다. 표랑에 계속하는 표랑으로, 내 집 한 간 없이, 오늘은 이 주막에서, 내일은 저 주막으로 흘러다니는 신세가 나이 사십을 지나고 보니, 인젠 고달픔이 뼈에 사모쳤다.
 
12
‘에도’는 이 나라의 학문의 중심지라, ‘에도’에 자리잡고 천하에 제자들을 부르면,(인제는 흔들림 없는 대가(大家)이매) 제자들도 문하에 모여들 것이다.
 
13
제자들을 문하에 모으기만 하면, 지금같이 조반쌀을 위한 근심은 저절로 해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그 점보다도, 성암에게는, ‘에도’라는 땅이 그리웠다. 아니, ‘에도’보다, ‘에도’의 강호시사(江湖詩社)가 그리웠다. 지난 젊은 시절에, 뜻 같은 젊은이들과 짝하여 벙으는 연꽃, 지는 사꾸라를 즐기던 그 지역이, 늙어 가면 차차 새삼스러이 그리워졌다. 재옥가지(才玉加池)의 우거진 버드나무 그늘에서, 피어오르는 시상(詩想)에 적적한 싯구(詩句)를 생각해 내느라고 안달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동시 그 땅이 그리웠다.
 
15
나이가 마흔넷.
 
16
게다가, 당당한 시의 대가.
 
17
체신도 있겠거늘, 아직 시골로 돌아다니며, 시회(詩會)와 땜질의 근소한 수입으로 연명이나 해가는 지금의 처지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18
다시 ‘에도’로 나가 볼까는 생각을 하기는 벌써 오래 전부터였지만, 이때에 비로소 결정을 하고 안해와도 의논하고 또, 장차 뇌산양과도 의논하려 하였다.
 
19
인제 경도로 가서, 산양과도 그 의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그 어떤 날, 경도의 산양이 히고네(ヒコネ ― 그때:성암 내외는 히고네에 부접하고 있었다)로 찾아왔다.
 
20
그때 마침 방에 누워서 , 여름날 저녁의 상쾌한 바람을 즐기고 있을 때, 문간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21
산양의 음성이었다.
 
22
벌떡 일어났다. 흩어진 옷을 수습하였다. 현관으로 나가려 할 때, 현관에서는 또 ‘여보슈, 여보슈’찾는 소리가 들렸다.
 
23
다시 들으매, 산양의 음성이 아닌 것 같았다. 목이 갈리고 기운없는 그 소리는, 어디인지 낯익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양의 음성은 아닌 것 같았다.
 
24
서생(書生)이나 하녀도 없고, 안해는 지금 부엌에서 설거질하고 있는 모양이므로 성암이 몸소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25
나가 보니 역시 산양이었다.
 
26
“아, 웬 일이셔요?”
 
27
“갑자기 성암을 좀 만나구 싶어서!”
 
28
“올라오셔요.”
 
29
걸터앉아서, 김발을 푸는 산양을 성암은 굽어보았다.
 
30
서로 못 본 지 겨우 너덧 달이다. 그런데, 그동안에 산양의 변화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31
야위어서 뺨이 쑥 들어가기 때문에, 광대뼈가 놀랍게 솟아오르고, 얼굴은 종이빛같이 창백하고, 숨찬 듯이 어깨가 들먹거리는 양이, 보통 몸, 보통 건강 상태가 아니었다.
 
32
일전에 산양에게서 이즈음 몸이 좀 불편하다는 글을 받기는 받았다. 그러나 환절기의 지나가는 탈쯤으로 알았더니 지금 대하고 보니, 심상치 않은 용태인 모양이었다.
 
33
“신상이 왜 그렇게 ―.”
 
34
“조금 앓았소이다.”
 
35
조금만 앓은 모양이 아니었다.
 
36
“무슨 탈이기에 ―”
 
37
“폐 ― 피두 꽤 토하구 ―”
 
38
“그 신상으로 어떻게 ―”
 
39
“친구가 히고네에서 살림을 하였다는데, 한 번 와 보고 싶긴 하지만, 탈이 나 좀 차도가 생기면 올까 올까 벼르나 어디 차도가 보입디까. 그래, 이 꼴로 왔구료.”
 
40
감발을 끄르고 발을 닦고 올라왔다.
 
41
“부인은?”
 
42
“설거질하나 봅니다. 부르지요.”
 
43
아니 아니 내 곤해서 “ , , 다리를 좀 뻗치고 있고 싶은데, 부인이 오시면 황송해서 ―”
 
44
“아, 참 삼조 방에 들어가 애전에 좀 누우시지요. 오죽 곤하실까.”
 
45
산양은 꽤 곤했던 모양이었다. 그다지 사양하지도 않고 곁방으로 가서, 성암이 펴주는 자리에 들고 말았다.
 
46
“성암! 하늘은 내게 인색하시게도 명(命)을 안 빌리시는구료. 내 나이 겨우 쉰셋, 아직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
 
47
산양은 자리에 들면서, 숨찬 숨을 모다쉬며 이런 말을 하였다.
 
48
“그런 말씀두 하시나. 그게 ―”
 
49
“자고로 허파를 앓고 다시 일어난 사람이 없으니까….”
 
50
이튿날부터, 산양은 성암을 채근하여 근처의 명승을 탐승하러 다녔다. 하도 산양의 피곤해 하는 양이 민망하여, 천천히 쉬어 가면서 탐승하기를 권하여 보았지만 산양은 굳이 성암을 몰아 앞세우고 탐승다녔다. 한 십여 일을 함께 돌아다녔다. 성암의 안해 홍란이며, 근처의 친구들도 모두 찾아 데리고.
 
51
어떤 날, 산양은 유난히 일찍이 차리고 나서려 하였다. 아직 다른 벗들은 아무도 온 사람이 없고, 홍란도 아직 설거질도 못한 이른 새벽에 ―.
 
52
“아 벌써요? 아무도 아직 안 왔는데.”
 
53
“아니, 성암과 단둘이서 나갑시다. 사실로는 내 조금 조용히 성암께 의논하고 부탁할 일이 있어서 ―”
 
54
이리하여 단둘이서 나섰다.
 
55
자그마한 배를 하나 세내어 가지고, 둘이서는 물에 떴다.
 
56
강 복판 가운데 이르러서, 첨벙 닻을 주었다. 산양의 부탁으로 ― 산양은 문득 성암의 딱 앞에 와 앉았다. 무릎을 꿇고 손을 맞잡고 성암의 앞에 꿇어 엎드렸다.
 
57
“양 형! 양 형!”
 
58
“아 웬 일이셔요?”
 
59
“양 형! 내 양 형께 절실한 부탁이 있소이다. 들어 주시오.”
 
60
“산양 형의 부탁이시라면 내 무얼 사양하리까. 이렇게까지 안하신들, 어서 일어나셔요.”
 
61
“아니, 내 하두 절실하고 거룩한 부탁이라, 소홀히 하지 못하겠소이다.”
 
62
“대체 무엇이오니까?”
 
63
“양 형, 글을 살려 주시오. 시를 활용해 주시오. 보통 문자들과 같이 단지 단지 글을 글로만 희롱하시지 말고 글을 살려서 살려서 이용해 주시오!”
 
64
“?”
 
65
“내 필생의 사업이, ‘일본외사(日本外史)’와 ‘일본 정기(日本政記)’의 찬술이어. 글을 단지 글로 희롱하지 않고 글을 이용해서 ― 글의 교화력, 선전력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국체 사상을 백성들에게 침투케 해보려던게 내 필생의 사업이었소. 그 두 찬술은 이렁저렁 끝이 났다 하지만, 그냥 국민사상을 선도할 만한 찬술이 계속되지 못하면, 국민은 전사는 잊어 버리고 다시 뒷걸음질칠 것이외다. 누구, 후계자가 뒤를 이어서 꾸준히 국민정신을 지도해 주지 않으면, 국민정신은 퇴폐해 버릴 게외다. 조용한 기회 있을 때마다 양형과 늘 한탄한 바지만 무가정치(武家政治)를 청소해 버리고 하루바삐 왕정 복고의 세월을 현출해야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는 날까지, 꾸준히 국민정신을 옳은 길로 끌어 주어야 할 게외다.
 
66
장차, 칼을 들고 실력으로 그 일을 해낼 사람은 무인(武人)들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생겨 나도록,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그런 시절을 희망하도록 만드는 것은 문사의 직책일 것이외다.”
 
67
산양은 또 잠시 말을 끊었다. 머리를 조금 들어 성암을 쳐다보았다.
 
68
“양 형. 우리나라에, 문사의 수효는 적지 않소이다. 술잔을 들고, 달을 노래하고 꽃을 찬송하라면 당송(唐宋)의 시인에게 그다지 손색이 없을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게외다. 그러나 ―.”
 
69
숨찬 듯이 또 말을 끊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숨을 태워 가지고 다시 계속하였다 ―
 
70
“숨이 차서 많은 말을 못하겠소이다. 그러나 내 뜻을 양 형은 짐작하실테니, 여러 말 말고, 내 뒤를 맡아 주시오. 나는 산문이요. 양 형은 운문으로 그 길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의 글의 힘이 ― 무인들의 칼의 힘보다 훨씬 나으리다. 뒤를 맡아 주시오. 뒤를 맡아 주시오. 양형 밖에는 마음놓고 뒤를 부탁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구료. 글에도 능하고, 사람들이 믿고, 그 위에 건실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언뜻 보이질 않는구료.”
 
71
성암은 잠자코 들었다.
 
72
가슴을 파먹어들어가는 병에 걸리어서 목숨이 단석에 있으면서도, 나라를 근심하는 적심에만은 변함이 없는 이 학구의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73
문장의 선전력을 알고 문장의 감화력을 알고 이 선전력 감화력을 국민 사상 지도에 쓰려는 산양의 심정 ― 그 일의 성과를 보지 못하고 몹쓸 병에 거꾸러지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의 이 지도자의 마음의 아픔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74
이런 자리에 있어서 그대의 , 병이 과하지 않으니 마음 든든히 가지라는 등의 입에 발린 인사로 당면을 속일 수는 없었다. 숨이 차기 때문에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지극히 간단한 말로 당부한 바이지만, 그 요령과 뜻은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는 성암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비로소 대답하였다.
 
75
“산양 형. 이런 일이야 어찌 누구에게 당부를 받고야 할 일이리까.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이야 마땅히 자진해서 할 일. 내 나이 산양 형보다 겨우 아홉 살 아래니 낸들 여생이 얼마나 많으리까마는, 그래도 아직 다행히 몸이 큰 탈 없으니 잘만 삼가면 천수는 보지하오리다. 그렇기만 하면 형의 말씀 폐부에 새기고 늘 고려하오리다.”
 
76
“응 그것, 천수 그 점을 명심하시오. 우리는 무인(武人)과 달라서, 이 몸뚱이를 내어놓아 몸뚱이로써 앞장선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국민사상 지도에 나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니, 그 점을 잘 유의해서, 경솔한 일은 피해야 할 것이외다. 앞장선 무인이 일이백 희생되는 것 그닷지 않지만, 뒤의 한 지도자가 없어지는 건 막대한 손실이니까, 그 점을 잘 유의해서, 막부 당국의 기휘의 예봉은 할 수 있는껏 피해야 할 게외다. 자기의 한몸 경솔히 폐하면 여간한 무인 몇 백 명 잃는 데 비기지 못할 손실이니까 그 ‘천수’를 다하도록 경솔히 일찍 폐하지 않도록, 그 점 주의해야 할 일이외다.”
 
77
산양은 성암에게, ‘에도’로 나아가기를 권고하였다. 천하의 젊은이들이다 모이는 ‘에도’에 숙(塾)을 열고 젊은이들을 모아 은연중 무가 정치의 그릇을 알게 하고 대의명분을 일으키면, 그 가운데서 장차 적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테니 꼭 결심하고 ‘에도’에 나가기를 권고하였다.
 
78
“형의 권고가 안 계실지라두 ‘에도’에는 나갈까고 생각은 했지만 ― 온 형의 그 병이 걱정이외다그려.”
 
79
“사람은 장생은 바라지 못할 게라, 내가 났던 보람만 이렁저렁 남겼으면 그만이니까 죽는 게야 무에 아까우리까마는 그래도 생각했던 일이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좀 미흡하구료. 성암이 뒷일을 맡아 주실 테니 뒷걱정은 없겠지만, 그래두 내 눈으로 좀더 보구 싶어.”
 
80
적적히 미소하는 산양의 눈가에는 눈물이 어리어 있었다.
 
81
- (미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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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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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16년 0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