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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바깥애 ◇
해설   목차 (총 : 42권)     이전 18권 다음
1932년
염상섭
1
삼대(三代)
2
18. 바깥애
 
 
3
"자아, 보고를 하세요."
 
4
"무슨 보고?"
 
5
"몰라요!"
 
6
하고 경애는 앵돌아져 보인다.
 
7
"남의 부탁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8
"참 깜박 잊었군."
 
9
하며 병화가 웃다가,
 
10
"그렇게 몸이 달거든 xx유치원에 가보슈."
 
11
하고 또 웃어버린다.
 
12
"흐흥... 그런 데 있는 것이야?"
 
13
"응, 그런 데 있는 것이야."
 
14
경애의 코웃음치는 양이 우스워서 병화도 까짜를 올리듯 이렇게 대꾸를 한다.
 
15
"이름은?"
 
16
"그렇게 쉽게 거저 대줄 수야 있나! 나도 기밀비를 상당히 쓰고 반나절이나 다리 품을 팔고 얻어온 레폰데..."
 
17
"만나 보았소? 예쁩디까?"
 
18
"응, 쫓아가 보았지. 양귀비 외딴칩디다."
 
19
대답이 너무 허청 나오는 것 같아서 경애는 도리어 김이 빠지었다. 어쨌든 그 여자가 xx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사실인 듯싶으니 그렇다면 매당집인가 하는 술집에 드나드는 여자려니 하던 추측과는 틀렸을 뿐 아니라 듣고 보니 의외에 질투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고 보면 뜨내기로 노는 계집과 달라서 자기와 얼마쯤 경쟁적 적수가 될 것이요, 또 정말 미인이고 보면 자기에게 별안간 덤벼드는 것은 무슨 수단으로 농락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농락일까? 그 계집이 이혼을 해달라고 하도 조르니까 본마누라가 있는 것은 싹 속여버리고 경애 자신의 소생을 떼어다가 '자, 이렇게 헤어지고 자식까지 뺏아왔다'고 증거를 보이려는 수작인가? 일전부터 자식은 자기가 데려가마고 서두르던 생각을 하면 더욱 이렇게밖에 의심이 아니 들어간다. 어쨌든 이 김에 자기와는 셈을 닦고 자식 문제는 귀정을 내리는 것인가 보다고 경애는 생각하는 것이다.
 
20
'만일 그렇다면 더군다나 가만히는 안 있을걸! 게도 잃고 구럭도 잃고 망석중이를 만들어놓고 말걸!'
 
21
하고 경애는 혼자 분에 못 이겨 입술을 악물었다.
 
22
"그래 아범이 일러줍디까? 나 좀 못 만나볼까?"
 
23
경애가 열심으로 물으니까,
 
24
"글세 xx유치원으로 쫓아가서 김의경이만 찾으면 당장일걸!"
 
25
하고 병화는 추겨내는 눈치다.
 
 
26
병화의 발을 들으면 어젯밤에 경애와 헤어진 뒤에 술을 한잔 더 먹고 싶으나 집으로 나가서 필순의 부친을 끌고 나오기도 싫고 동지를 찾아서 끌고 다니는 것도 요새 형편에 더욱 안 되었고 해서 종로 바닥을 빙빙 돌다가 영애의 부탁을 생각하고는 화개동으로 '바깥애'를 찾아갔더라 한다. 물론 '바깥애'에게 선심도 쓸 겸 주붕으로 선술집에나 끌고 갈까 하는 생각이 더 긴하였던 것이다. '바깥애'는 조상훈 씨 저택에까지 들어갈 갈 것 없이 동구의 반찬가게 앞 병문에서 마침 잘 만났다.
 
27
"여보! 동무 매우 춥구려, 한잔 합시다그려."
 
28
병화는 댓바람에 이렇게 말을 붙였다.
 
29
아범- 아범이니 '바깥애'니 하는 것은 조상훈 집의 아범이요 조상훈의 '바깥애'지 병화에게는 친구다. 병화는 도리어 이런 친구와 놀기가 좋았다.-은 얼떨떨하여서 한참 바라만 보고 말이 아니 나왔다. 어제 일도 어제 일이거니와 별안간 이런 농담을 붙이는 게 암만해도 정신에 고동이 잘못 틀린 것 같다.
 
30
"술도 아무것도 싫습니다. 그 편지다 내노세요. 그것 때문에 오늘 종일 다릿골만 빠지고 저 댁에서 쫓겨나게 되고- 흥, 참 수가 사나우려니까..."
 
31
아범은 잡담 제하고 맡긴 것 내놓으라는 듯이 손을 내밀고 섰다.
 
32
"편지가 무슨 편지란 말요?"
 
33
"응, 외투가 또 바뀌었군! 훌륭한데요! 그러나 그 외투- 편지 든 내 외투 말씀예요! 그건 얻다 내버리셨에요?"
 
34
아범은 막 내 외투라고 한다.
 
35
"글쎄 이 사람아! 그까짓 외투니 편지니 사람두 되우 녹록은 하군. 이따 찾아 줄게 술이나 먹으러 가잔 말야."
 
36
"천만의 말씀 마시고 외투든지 편지만 내노세요. 왜 또 오셔서 히야까시를 하십니까?"
 
37
아범은 어제부터 심사 틀리는 분수로 할 양이면 한번 집어세거나 한술 더 떠서 '그래보세그려. 한잔 낼 텐가?' 하든지 무어라고 대꾸를 하고 따라나서서 여차직하면 입은 외투를 벗겨라도 보고 싶었으나 그래도 상전의 친구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38
"글쎄 외투구 편지구 찾아준단밖에. 퍽두 조급히는 구는군. 춥건 이러 벗어 줄게 입우."
 
39
하며 병화는 입은 외투를 정말 벗어주려는 듯이 서두른다. 벗어주면 당장 아쉽다는 생각도 잠깐 까먹었던 것이다.
 
40
"주면 못 입을 게 아니지만 누구를 까짜를 올리는 거요? 약주가 취했건 곱게 가 주무슈."
 
41
아범은 볼멘소리로 불공스러이 대꾸를 하다가 구경거리나 난 듯이 눈을 휘둥그래서 물계만 보고 섰는 병문 친구들을 돌려다보며 입속으로,
 
42
"나 온 별꼴을 다 보겠군!"
 
43
하고 중얼거리었다.
 
44
"압다. 입게그려. 어제 그것보다 아주 신건인데."
 
45
한 자가 껄껄대며 충동이나까,
 
46
"못 이기는 체하고 입어두게그려. 게다가 술까지 생기고... 복야 명야 하는구나."
 
47
"어디 나두 대서볼까. 말하지만 그 외투 입어 주는 품삯으로 술 사 준다는 게 아닌가? 그게 무어 어려운가! 나리, 내가 대신 입어다 드릴까요?"
 
48
제각기 한 마디씩 하고는 미친 사람이나 놀리듯이 웃어대었다.
 
49
병화는 옆에서 떠드는 것은 못 들은 척하고 외투를 훌떡 벗더니,
 
50
"자아, 우선 입우. 편지도 그 속에 들었으니... 이제 가겠지? 친구가 술 한 잔 먹자는데 이렇게 실랑이를 할 거야 무어람."
 
51
하고 벗은 외투를 똘똘 뭉쳐서 복장을 안기듯이 아범에게 내민다. 병화는 물론 강주정이었다. 아범은 외투를 정말 벗는 것을 보니 놀랍고 의아하여 시비조가 쑥 들어가고 미안한 생각이 도리어 났다.
 
52
"그럼 갈 테니 어서 입스십쇼. 그리고 제가 손을 넣어서는 안 되었으니 편지나 꺼내십쇼."
 
53
하며 아범은 다시 말공대가 나왔다.
 
54
"주머니 속의 편지가 도망갈 리는 없으니 자, 가세."
 
55
하고 병화는 외투를 뭉뚱그려 든 채 앞장을 섰다. 아범도 헛기침을 하고 따라섰다.
 
56
"이왕이면 외투도 입고 대스게그려."
 
57
"술 사 달라고 조르는 놈은 보았어도 술 사주마고 시비하는 사람은 요새 세상에 좀 보기 드문데!"
 
58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로군!"
 
59
"압다 우리 같은 막벌이꾼하고 술집에 같이 들어서기가 싫으니까 모양을 내서 데리고 가자는 말인 게지."
 
60
"선 뵈러 가나! 괭이털은 내 뭘 해."
 
61
"제 꼴은 얼마나 얌전하기에."
 
62
"어쨌든 땡일세. 나두 어디 밤 새구 섰어볼까? 혹시 그런 활불이라도 걸릴지."
 
63
"옳은 말일세. 꼼짝 말고 그대로 섰게. 동명태가 다 되면 새벽녘쯤 경성부에서 '들 것' 들고 모시러 올 테니 '고택골' 나가 막걸리 한 잔 먹여줌세그려."
 
64
뒤 남은 병문 친구들은 두 사람이 화개동 마루턱으로 우중우중 내려가는 것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서서 이런 객담을 입심 좋게 주거니받거니하는 것이었다.
 
65
술을 5,6배나 먹도록 아범은 첫잔부터,
 
66
"그렇게 못 먹는뎁쇼. 그렇게 못 먹는뎁쇼."
 
67
하고 사양을 하였으나 그 외에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넓적넓적 잘 먹었다.
 
68
"우리 인사나 하고 지냅세."
 
69
병화는 이제야 생각난 듯이 말을 걸었다.
 
70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원삼이라고 합니다."
 
71
고 아범은 꾸벅하였다.
 
72
"나는 김병화요, 그러나 성은 없단 말요? 원씨란 말요?"
 
73
술청에 앉았는 주인은 두 사람의 수작에 싱긋 웃었다. 들어올 때부터 양복쟁이는 이 추운 날 외투를 뚤뚤 말아 들고 서로 입으라고 미는 양이 우스웠지만 실컷 먹다가 이제야 통성명하는 것도 우스웠다.
 
74
"네. 제 성은 김가입지요. 저도 꼴은 이렇습니다만 청풍 김가랍니다."
 
75
원삼은 술이 들어가니까 마음이 확 풀려서 이런 소리도 하였다.
 
76
"허허. 알고 보니 우리 종씨로군! 하지만 꼴이 이렇다니 어때서 말이요. 청풍 김가면 또 어떻단 말이오?"
 
77
하고 병화는 웃었다.
 
78
"일자 무식으로 남의 행랑살이나 다니니 말씀입죠."
 
79
"구차하면 글 못 읽고 글 못 읽으면 무식하지 별수 있소. 하지만 청풍 김가라는 것이 자랑이 아닌 것처럼 무식한 것도 흉이 아니오. 남의 행랑방살이를 하기로 내 노력 팔아먹는데 부끄러울 거 있소. 놀고 먹는다면 모르겠지만..."
 
80
병화는 평범한 말이나 힘을 주어서 가르치듯이 말하였다. 그 언성이 매우 친절한 데에 원삼은 좀더 말이 하고 싶으나 자기 뜻을 말로 표시할 줄 몰랐다.
 
81
"무식한 것이 걱정이면 내가 가르쳐주리다. 40 문장이란 옛적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82
"말이 그렇지, 이 나이에 무에 되겠습니까? 그건 간신히 기성명이나 하니 그대로 늙어 죽는 것이지만 어린놈이나 남과 같이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83
그것두 좋은 말이야. 더구나 기성명을 하는 다음에야..."
 
84
"통감 셋째 권까지는 뱄더랍니다마는 20여 년을 이렇게 살아오니 무에 남았겠습니까? 그저 목불식정은 면하였을 따름이죠."
 
85
아범은 문자를 한번 쓰면 자탄과 자긍이 뒤섞인 소리를 한다.
 
86
"그럼 염려 없소. 넉넉히 책을 볼 것이니 내 요담을 제 책을 가져다 줄게 읽어 보우. 공부라는 것은 사서 삼경을 배워야 맛이오? 아무 책이나 잡지 같은 것이라도 소일삼아 보아두면 지식이 느는 것이 아니오? 자식을 가르치려도 세상 물정을 알아야 아니하우?"
 
87
"이르다뿐이겠습니까?"
 
88
원삼은 제가 판무식이 아니라는 자랑 끝에 부친 대까지도 글자나 하는 집안이라는 자랑을 하고 싶었으나 병화의 말이 다를 데로 새니까 원삼도 얼쯤얼쯤 대꾸만 해 두었다.
 
89
"제 이름이 원래 원삼이는 아니랍니다. 행렬자를 달아서 분명히 지었었으나 서울 올라와서 이 지경이 되니까 일가고 무어고 다 끊어버리고 아주 숨어 버리느라고..."
 
90
원삼은 그래도 자기의 근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91
"또 청풍 김씨가 나오는 구려? 이름은 부르자는 이름이지 족보 놓고 골라 내자는 이름이겠소?"
 
92
하고 병화는 듣기 귀찮다는 듯이 핀잔을 주면서도 그만큼 행세하던 집자손으로 아무리 영락하였기로 말투까지 저렇게 '아범'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혼자 우습기도 하고 그럴 것이라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93
병화의 생각으로 하면 이러한 사람이 자기의 동지가 되리라고 믿는 것도 아니요, 또 동지로 끌어넣자는 것도 아니다. 처자가 줄줄이 달린 50줄에 든 사람을 끌어내세우느니보다는 그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의식만 가지고 그 동무들에게 이해를 가지게 전도를 하게 되는 정도에 만족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노라면 자식들도 그 감화를 받을 것이니 후일 정말 일꾼은 그 자식들 가운데서 구할 것이라고 비교적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아쉽다고 비루먹은 당나귀 한 마리까지 앞에 내세우고자 욕심을 부리다가 그 새끼까지 굶겨 죽이느니보다는 그 자식을 잘 길러줄 만큼 그 아비를 교양시키는 한도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또 이러한 생각으로 병화는 병문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이다.
 
94
병화는 자기의 첫째 볼일이 끝나니까 둘째 볼일- 경애의 부탁을 염탐하기로 하였다.
 
95
병화는 편지를 내주면서 차츰차츰 들으니 원삼은 처음에는 실실 웃기만 하다가 한잔 김이기도 하지만 어떤 집 하인이나 상전을 헐고 싶은 생각은 가진 것이라 고맙게 굴어준 대접으로 저 아는 대로는 일러준 것이다.
 
96
"작은댁인가 싶어요. 어제는 xx유치원--저어 xx골에 있는 유치원 말입쇼. 그리고 매삭 보내는 돈을 보내드리고 이 답장을 맡아온 것입니다마는 그 아씨 댁은 모르겠에요."
 
97
"그런데 작은댁인지 무언지 어떻게 알았소?"
 
98
"저번에 안동 별궁 뒤에 있는 어느 댁으로인지 그리 한 번 편지를 가지고 가 본 일이 있는 뎁쇼. 그 집이 보통 여염집 같지는 않고 그 아씨 댁 같지도 않고... 좀 자세히 알 수가 없어요."
 
99
"어떤 집이기에?"
 
100
"글쎄올시다. 누구 작은댁 같기도 하고 술집 같기도 한데 주인 마나님은 늙수그레하고 젊은 아낙네들이 많아요."
 
101
"그럼 색주가인 게로군?"
 
102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러나 손님들이 술은 자세요."
 
103
그러나 원삼이 그 집 번지는 모른다 하여 병화는 집만 자세히 물어 두었다.
 
104
그 여자의 편지에 거기가 그 집이구나 하는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105
"요 담 또 편지 가지고 갈 일이 있거든 내게 기별 좀 못해 줄까?"
 
106
"그럽쇼. 댁만 알려주시면."
 
107
원삼은 선선히 대답을 하였으나 병화의 지이 새문 밖이라는 데는 입을 딱 벌렸다.
 
108
"술값이야 주지. 어쨌든 그렇게 해 주우."
 
109
병화는 이런 객쩍은 부탁을 하는 자기의 합일 없는 사람 같은 짓이 속으로는 낯이 붉어졌으나 경애의 환심을 사자면--그리고 상훈을 떼 버리게 하자면 발바투 뒤를 캐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원문】바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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