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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덕기는 오늘 병화의 상점 구경을 나섰다. 초상 이후로 처음 출입이다. 복재기지마는 상제 대신 노릇도 하여야 하고, 집안 처리도 할 일이 많아서 바쁘기도 하였고, 정초에 나다닐 필요가 없어서 들어앉았다가 오래간만에 길 구경을 하는 것이다.
4
전차가 효자동 종점에 가까워졌을 때 덕기는 차 속에 일어서서 박람회 이후로 일자로 부쩍 는 일본집들을 유심히 보았으나 산해진이란 간판은 눈에 아니 띄었다. 차에서 내려서 되짚어 내려오며 차츰차츰 뒤지다가 좌등상점이란 간판이 붙은 가게의 유리문 안을 기웃해보니, 과실이 놓이고 움파니 미나리니 하는 것이 눈에 띈다. 담배도 있다. 담배나 한 갑 사며 물어보리라 하고 문을 득 여니 여점원이 해죽 나온다... 필순이다! 덕기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설 뻔하였다. 필순도 가슴에서 두 방망이질을 하며 얼굴이 화끈 취해 올라와서 어쩔 줄을 몰랐다.
5
"여기 계신 줄을 몰랐군! 김군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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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올라 앉으세요. 이제 곧 오시겠죠."
8
조그만 다다밋방에는 이전 병화 방에서 보던 일깃거리는 밥상만한 책상이 놓이고, 화로 앞에는 방석 한 개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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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신기한 듯이 상점 안을 이 구석 저 구석 돌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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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요. 서대문 감옥에 나가셨에요. 이제 곧 오시겠지요."
13
필순은 부리나케 방 안을 치우고 방석을 내놓으며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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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들어간 이들을 면회도 하고, 식사 차입도 하려고요. 벌써 가셨으니까 좀 있으면 오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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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덕기가 곧 간다고 할까보아 애를 쓰면서, 복제 당한 인사를 하고 싶으나 무어라고 한지 몰라 얼굴이 또 발개졌다.
17
감옥 친구에게 차입을 할 만큼 셈평이 핀 것도 고마운 일이지마는, 셈이 좀 돌렸다고 감옥 친구들을 잊지 않고 없는 돈에 차입이라도 하는 것은 무던하다고 덕기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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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좌등이란 간판이니, 일본 사람 것을 샀나요?"
19
덕기의 이 말에 필순은 좀 의아하였다. 병화는 돈이 덕기에게서 나온 듯이 말을 하던데 덕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수작이다. 필순도 피혁이 돈뭉치를 두고 간 줄을 알기 때문에 이 상점도 그것으로 하는 줄 알았더니 병화는 절대로 그 돈이 아니라고 부인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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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 사람 이름인데 아직은 그대로 둔다나 봐요. 이 동네 단골이 떨어질까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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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대관절 돈은 누가 대는 것일꼬? 덕기는 역시 궁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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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구지레한 양복쟁이 둘이 길거리에서 원광으로 기웃거리는 것이 내다보이다가 없어지더니, 또 조금 있다가 한 청년이 성큼 들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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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꼴이라든지, 길게 자란 머리라든지, 사꾸라 몽둥이는 아니지마는 이 겨울에 우악스런 단장을 짚은 것이라든지, 험상궂은 눈을 잠시 한때 가만두지 않고 두리번거리는 것이라든지, 형사도 아닐 것 같고, 전일의 병화가 다시 온 것 같으나, 필순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31
"그의 남편은 누구요? 바깥주인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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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첫마디부터 끝마디까지 훌닦아세우는 소리를 하다가 휙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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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쫓아나가며 물었으나, 그 괴상한 청년은 대답도 없이 뺑소니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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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을 찾아온 것 같지도 않고 김군을 아는 모양도 아니요, 얼른 보기에는 쌈하러 다니는 장사패나 주의자 같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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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눈을 깜짝거리며 얼굴이 해쓱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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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오는 이도 없에요. 얼마 동안은 관계를 끊겠다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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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김청이라고 행세를 하는군요? 형사들은 안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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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형사들은 이렇게 맘을 잡고 실속을 차리게 되어서 마치 환자가 병이 나면 의사가 파리채를 날리듯이, 저의 벌이가 안 되겠다고 놀리면서도 어쨌든 고마운 일이라고 저희들 집에도 통장을 트자 하고, 친구들도 단골을 몇 군데 소개까지 해주다시피 좋아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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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러나 으레 형사들의 버릇으로 다른 데 가서 김 아무개는 이젠 아주 전향해서 돈벌이에 맛을 들이고 어쩌고 한다고 선전을 할 것이니까, 친구들이야 변절한이라고 가만 있지 않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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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지금 왔던 청년이 병화를 문책하러 온 동지일 것이라는 말눈치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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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런 것도 벌써 짐작하고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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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친구가 무슨 봉변이나 아니 당할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병화가 정말 경애가 시키는 대로 겸노상전으로 반찬 가게의 배달도 못할 것은 아니요. 또 먹고살자면 사내답게 벗고 나서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것이지마는 그렇다고 동지를 배반하고 형사들의 도움까지부터 형사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 아니요, 또 이용할 수 있으면야 이용한대도 상관이 없는 일이지마는, 병화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문제를 삼자면 얼마든지 삼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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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주인이 경애라고 하던 말을 생각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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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지마는 경애에게 이만큼 벌일 돈이 있을까? 결국에 부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병화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알은척하기도 싫은 일이나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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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한참 제 생각에 팔렸다가 은근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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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될 거야 무엇 있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손 서투르고 애가 쓰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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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런 퉁사정을 할 만큼 어느 틈에 친해졌는가? 하고 필순은 신기한 일 같고 남자의 얼굴이 다시 치어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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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좀더 공부를 하시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들을 했지마는 아무거나 경험 삼아 해볼 데까지는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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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또 한참 만에 말을 꺼내면서 병화의 편지에 필순의 일은 너 알아 하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모처럼 재미를 붙여서 하는 것을 또 다시 마음을 헛갈리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말을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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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덕기의 뒷말을 기다리고 한참 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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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할 처지도 못 되죠마는, 저 따위가 무슨 공부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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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필요한 때 말씀만 해주시면 좋을 대로 의논이라도 해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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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퍽 대담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마음 먹은 대로 한 마디 표시를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이런 호의를 필순이 혹시 의심하거나 오해하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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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확실히 반기는 낯빛이다. 얼굴이 발개지며 입 속으로 무어라고 대답을 하는 모양이나, 덕기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 고맙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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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는 문전에 자전거를 세우고 소리를 치며 들어온다. 오늘은 양복 외투에 의관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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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사가 되어서 말공대가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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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예,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그런 구멍가게 물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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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아까 수상한 사람이 왔어요. 형사 모양으로 으르딱딱거리고 갔는데 또 올 눈친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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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병화는 다 듣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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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만나지는 않았지마는 별일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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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는 태연히 웃어 보이나, 별일 없는 것이라는 그 말이 별일 있다는 반어로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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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둥이찜을 하러 온다네. 누구라든가 하는 일본 형사하고 동사를 한다든가- 형사가 돈을 대주어서 한다는 소문이 났다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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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가 실없이 넘겨짚는 소리를 하니까 병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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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다가 덕기를 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점방에 연달린 방은 다다밋방이요, 다시 곱들어서면 거기는 온돌방이다. 덕기는 거기서 필순의 모친을 만났다. 바느질을 하고 앉았다가 반색을 하며 일어나서, 복제 인사를 하고 피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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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의 집까지 이리로 떠나온 것을 보고 덕기는 또 의아했다. 얼른 보기에 변화는 이 집 사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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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의 모친을 내쫓고 둘이만 마주 앉아 병화가 말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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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자기의 실없는 말이 들어맞았는가 싶어서 도리어 속으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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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 리야 있나마는, 일부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보이. 지금 감옥에를 갔더니 그 속에 들어앉은 사람까지 벌써 내가 이일을 벌인 것을 알지 않겠나. 누가 면회를 가서 내 말을 했던가 보네마는 아까 왔다는 게, 물론 그 축일 듯하기에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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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자들과 발을 뚝 끊어버린 것이 잘못 아닌가. 양해를 얻어둘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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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자식들과 양해는 무슨 양해인가. 공연히 헐고 다니는 축은 우리 편과는 또 다른 xx파니까. 말하자면 기분적 테러-폭력단-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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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네 패에서는 어떤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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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야 얼마 남았나. 하지만 그 사람들도 지금 와서는 옹호한다느니보다는 방관하는 모양이지. 어쩌면 직접 내게 맞닥뜨릴 수가 없으니까, 저자들이 떠들고 다니는 것을 속으로는 도리어 좋아라 하고 구경이나 하거나, 부채질을 하는 모양일 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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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말일세. 왜 별안간 고립을 해버리나? 게다가 형사들의 주선을 받고 하니까, 더 의심을 받게만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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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상관 없어. 의심을 받거나 말거나, 그놈들이 와서 두들겨 패거나 말거나... 그렇지만 자네에게 하나 부탁할 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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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시작할 때 벌써 1000원 가까이나 쓰고 앉었네. 이 점방을 넘겨오는 데는 400원밖에 안 들었지마는 무슨 물건이 변변히 있던가. 그래서 5,600원 어치나 우선 들여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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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돈 말이 나오는구나 하고 들을까 말까 하는 것부터 속으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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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돈은 불시에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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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왔든지간에 말일세. 어쨌든 그 돈이 자네에게 나왔다고 누구에게든지 해왔으니 무슨 일이 있어서 조사를 당하든지 또는 무릎맞춤을 할 경우에는 전향하고 장사를 한다기에 자네가 1000원을 무조건으로 나를 취해 주었다고만 대답해주게. 그리고 1000원의 수수(주고받은 것)는 자네 조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조부가 가지셨던 현금을 꺼내다가 병원에서 주었다고만 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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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어렵지 않은 일일세. 그런 헛생각이면야 얼마든지 내줌세마는, 그래 그 1000원이란 것을 어디서 나온 것이기에 그렇게 쉬쉬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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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말한 지경이면야 자네게 이런 얼뜬 부탁을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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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저쪽에서 돌아나왔다는 게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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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두 미쳤나? 설마 그렇게 사귀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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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축객인가? 좀더 이야기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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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들이 또들 올 거니까 자네가 있으면 재미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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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야 더구나 갈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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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자네 따위 샌님이 한몫 거들어주려나? 자네 같은 부르주아는 어설피 걸리기만 하면 뼈도 추리기 어려울걸세.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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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병화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양복을 벗고 점원 옷으로 부덩부덩 갈아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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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는 두부살에 바늘뼈던가! 그는 하여간 자네 지금 편쌈판에 나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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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그래도 그대로 갈 수가 없어서 잠깐 서성거리니까 문이 드르르 열리며 아까 왔던 청년이 문밖에 우뚝 서서 병화를 건너다보고 고갯짓으로 불러낸다. 병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서며 덕기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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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넨 어서 가게. 내일 모렛새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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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가다가 문안에 진흙 발자국이 드문드문 몹시 난 것을 보자 필순을 돌아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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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웬 흙이 넉절했나. 좀 쓸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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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친다. 필순은 대답을 하며 쫓겨나왔으나 이런 것 저런 것 경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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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한나절 녹인 땅이 벌써 꺼덕꺼덕 얼어간다. 두 청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눈치도 없이 넘어가는 햇발을 비껴 받으며 전차 종점으로 걸어간다. 필순과 덕기는 쓸쓸한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전차 종점에서 오른쪽을 꼽드려 가는 것을 보자 덕기는 잠깐 다녀오마 하고 따라선다. 필순은 덕기마저 걸려들까 보아 애가 쓰이기도 하나 말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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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추성문으로 돌쳐서려 할 제 병화가 휙 돌려다보더니 덕기가 뒤를 밟는 줄 알자 가락 손짓을 하며 멈칫 섰다. 덕기가 줄달음질 쳐 가는 것이 멀리 보인다. 기다리고 섰던 병화와 잠깐 무어라고 하더니 덕기는 돌쳐서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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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나란히 보고 섰다가 소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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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문 안으로 해서 삼청동 친구의 집으로 간다는군요. 삼청동 110번지로 가는데, 한 시간 안으로 올 것이니 아무 염려 말라기는 하나 내가 쫓아간대도 별수는 없을 거요, 집에 좀 가 봐야는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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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집에서 저녁 상식을 안고 지내고 자기를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어서 가 보아야는 하겠다. 한 번쯤 상식 참례를 안하기로 상관없을 듯하나 첫 삭망도 안 지낸 터에 아직은 여편네들에게만 맡겨서 지내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슨 핑계같이 알 것이 안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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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러시죠.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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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의 모친은 이렇게 대꾸를 하여주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애가 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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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버니는 어디 가서 이때껏 안 오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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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오시거든 곧 좀 가보시라 하시지요. 나도 집에 가서 상식만 지내고 도 오지요.
145
덕기는 자기 집에 전화를 걸어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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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이 한소끔 모여드는 손님을 혼자 치르고 나니까, 벌써 전등불이 들어왔으나 간 사람은 감감하고, 부친도 돌아오지를 않는다. 모친은 저녁밥을 지어 놓고 나와서 마주 붙들고 걱정을 할 따름이나, 어떻게 하는 수도 없다. 무슨 일을 꼭 당하는 것만 같아서 입의 침이 바짝바짝 마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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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시시각각으로 문밖에 나가서 병화가 가던 추성문 쪽을 뿌연 열사흘 달빛에 비쳐보고 서서, 검은 그림자만 가까이 와도 가슴이 덜렁하고 올라오는 전차 속에 비슷한 사람만 띄어도 반색을 하였으나 모두 눈속임이었다. 6시나 되어 덕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식을 지내고서 거는 모양이다. 그저 감감 무소식이란 말을 듣고 누구나 사람을 얻어서라도 보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밥을 먹고 오마 한다. 여기서도 사람을 구해 보낼 생각은 있으나 아주 낯 서투른 사람을 보낼 수 없이 부친만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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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암만해두 제가 갔다 와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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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은 또 모친을 졸랐다. 벌써부터 필순이 나서겠다는 것을 모친은 날이 저물었는데 달은 있다 하여도, 어린 딸을 내놓아서 삼청동을 헤매게 할 수가 없어서 조촘조촘하고 붙들어둔 것이다. 필순 역시 가게를 모친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손님이 와도 담배 한 갑을 변변히 팔 수가 없을 것이 걱정이 되어 멈칫거렸으나, 부친도 이렇게 늦은 것을 보니, 어디서 섰다. 이제는 모친도 잡지를 않았다.
150
이런 때 경애나 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나 오늘 온종일 경애는 얼씬도 안 하고 하루 해가 졌던 것이다.
151
필순을 내보내 놓고 모친은 안절부절을 못하며 문을 열고 내다보고 섰으려니, 전화가 또 따르르 운다. 이번도 덕기에게서 온 것이다. 덕기는 필순이 갔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삼청동으로 다녀서 오마고 한다. 그만만 해도 적이 마음이 놓인다.
152
그런 후에도 얼마 만에 우비 씌운 인력거 한 채가 쭈르르 오더니 상점 앞에 뚝 선다. 쓰러질 듯이 내리는 사람은 홍경애다.
153
이 여자가 언젠가처럼 또 취했나보다 하는 얄미운 생각이 나면서도 반가웠다.
157
"병화씨는 벌써 아까 해 있어서..."
158
하고 필순의 모친은 대답을 하다가 깜짝 놀라며,
160
하고 경애의 왼편 뺨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한쪽 볼이 부풀어오른 데가 퍼렇게 멍이 들었다 불빛에 자세히 보니 부은 편도 눈도 충혈이 되고 작아졌다.
161
필순의 모친은 가슴이 서늘해지며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자기 딸의 얼굴이었다.
162
"그럼 그 때 나가서 안 들어왔에요? 누구 하구?"
163
경애의 목소리는 울음 섞인 것처럼 콧소리로 약간 떨었으나 주기도 없지는 않았다.
164
"글쎄, 그래서 지금 필순이를 쫓아보내고 기다리는 중인데, 대관절 어디서 저렇게 되었소?"
165
경애는 입을 악물고 눈물이 글썽글썽하다가, 거기에는 대답을 안하고,
168
인력거꾼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화개동 청요릿집에서 왔다고 한다. 저 부르는 대로 80전을 한푼 깎지 않고 주고, 급히 들어와서 그 청요릿집에 누구 누구 있었더냐고 물어보았으나 경애는,
169
"아실 것 없에요. 나 혼자 있었에요."
170
할 뿐이다. 경애까지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나간 사람들이 모두 무사하지는 않으리라는 또한 가지 애가 늘었다.
171
아무리 물으나 경애는 잠자코 앉아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가 눈물이 똑똑 떨어뜨린다. 지금 욕을 보던 것을 생각하고 분에 못 이겨서 쓴 눈물이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172
"그래 따님은 어디로 찾아나선 것인가요?"
173
경애는 한참만에 목소리를 가다듬어가지고 묻는다.
175
경애는 발딱 일어선다. 두 눈은 금시로 마르고 어쨌든 찾아나서겠다고 살기가 쭉 내솟은 눈치다.
176
"에구 천만에! 이러고서 또 어디를 가신단 말요. 조덕기 씨도 간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십시다."
177
필순의 모친은 지성으로 말렸으나, 이 근처 인력거방이 어디냐고 연해 물으며 쏜살같이 달아난다.
178
필순의 모친이 쫓아나가 보니 경애는 인력거방을 찾아가는지 종점 편으로 종종걸음을 쳐 간다. 아까 인력거에서 내릴 때는 곧 쓰러질 것 같더니, 저렇게 생기가 돋아난 것을 보면 악이 받쳐서 그렇기도 하겠지마는 자기만 곤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병화가 붙들려갔다는 바람에 발악이 난 모양이다.
179
경애는 인력거방을 찾느라고 진명 여학교 편으로 꼽드리려는 모양이더니, 주춤 서며 멀리 바라보는 거동이다. 이것을 본 필순의 모친도 정신이 홱 돌며 큰길로 나서서 부연 달빛에 비쳐보니, 검은 그림자 한 떼가 이리로 향하여 온다. 설마 이 밤중에 추성문으로 넘어오랴 싶었으나, 경애가 곧장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필순의 모친도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였다.
180
의외다! 좌우로 부축을 해서 앞에 선 사람은 분명히 자기 남편이다. 그 뒤에 경애가 달아나서 매달리듯이 붙드는 사람은 병화이었다.
181
"이게 웬일이냐? 에구머니 생사람을 이게 무슨 이리냐?"
182
모친은 숨이 턱턱 막히며 우는 소리를 떤다.
184
딸과 외투 입은 원삼에게 부축이 되었는데, 그래도 걸음은 싱싱히 걷는다.
185
"먼저 가셔서 자리를 펴노셔요. 방에 불이나 때 노셨는지?"
186
배두루마기 위에 외투를 입은 덕기가 병화 옆에서 걸으며 주의를 시킨다.
187
필순의 모친은 허둥지둥 앞서 달아난다.
191
병화는 코피가 나서 손수건을 오려 막았기 때문에 코먹은 소리를 하나 흥분한 기운꼴 찬 음성이다.
192
"그럼 청요릿집 안 가셨구려? 망할 놈들."
194
"그렇다우. 어떤 놈들이 바커스로 와서 당신이 급히 오란다고 하기에 따라갔더니 세 놈이나 앉아서 찧구 까불구 마냥 먹구..."
196
"그러기로 당신까지야 그럴 게 무어 있나."
200
"동네 건달 같은 놈들이데 무슨 짓은 안하겠기에!"
203
병화는 자기 맞은 것은 여하간에 경애에게까지 손찌검을 했다는 데에 가슴이 아프고 분통이 터졌다.
204
"차차 이야기하죠. 한데 어디를 다쳐셨소? 결리거나 쑤시진 않우?"
205
"쑤시긴... 아무렇지두 않지마는 코피가 좀 나서..."
207
"어디서 뒹굴었기에 모두 진흙투성이슈? 몇 놈이나 돼요?"
208
"모두 여섯 좀이나 되지마는 술 먹은 세 놈이야- 아마 그놈들이 청요릿집에 온 놈이겠지마는- 도리어 혼 좀 났을걸..."
209
겨우 상점 앞에 와서 불빛에 보니 그 꼴이란 당사자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을 두고 녹인 수렁이 거죽만 살얼음이 잡힌 데서 30분 넘어나 뒹굴었으니, 양복은 진흙으로 배접을 한 거나 다름없고 손과 얼굴이란 차마 볼 수가 없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필순의 부친은 오히려 얼굴은 상한 데가 없으나 병화의 양복은 넉절을 한 진흙 위에 선지피가 고랑을 져서 흐르고, 입가는 사람 잡아먹은 범의 입이 저럴까 싶었다. 오른손등은 깨물렸는지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가고 그저 피가 줄줄 흐른다. 문전에 구경꾼이 모일까보아서 옆 골목으로 해서 안으로 데려다 놓고, 씻기고 벗기고 하기에 한창 부산하였다. 그 동안에 덕기는 이때껏 따라온 인력거꾼에게 후히 행하를 하여 돌려보냈다. 이것은 수하동서 타고 간 인력거꾼이다. 인력거는 삼청동 편 돌층계 아래에 놓아두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시 추성문 안으로 넘어가서 끌고 갈 모양이다. 덕기는 인력거를 타고 화개동으로 가서 '바깥애' 원삼을 불러가지고 앞장을 세웠으나 무슨 일이 있을까보아 인력거꾼까지 응원대로 데리고 다닌 것이었다.
210
그 다음에 덕기는 원삼을 시켜서 가게 빈지를 얼른 들이게 하고 일변 전화통에 매달려서 자기 집 단골 의사를 불러냈다.
211
그들은 일곱 사람의 작당이었다. 실상 그 중에서 한 사람만이 모든 내용을 알고, 이 한 사람이 지휘를 한 것이다.
212
한 사람에게 두 사람씩 매달려서 붙들어갔다. 맨 먼저 출입한 필순 부친이 근처에서 장맞이를 하던 사람에게 붙들려갔고, 병화를 지키던 한 패는 병화가 상정에서 뛰어나와서 내려가는 전차를 휙 집어타는 바람에 놓치고서 돌아올 때까지 반나절이나 장맞이를 하여 잡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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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중에도 제일 곤경을 치른 사람은 경애이었다. 보지도 못한 사람이 와서 병화가 술이 몹시 취했는데 당신만 데려오라고 야단이니 잠깐만 가자고 서두르는 바람에 쫓아나섰던 것이라 한다. 안국동서 전차를 내려서 화개동 마루턱의 조그만 더러운 청요릿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대로 따라 들어갔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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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 그놈 벌써 지옥 갔네. 만나고 싶건 지옥 가서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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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끼리 이런 수작을 할 때는 겁이 또다시 더럭 나고 불한당 굴에 붙잡혀 왔구나! 하며 떨리었다. 경애는 어떡하든지 빠져나오려고 앙탈도 해 보고 꾸짖어도 보고 강권하는 대로 고분고분히 술잔도 들어보고 하였으나 기회를 엿보다 일어서려면 한 놈이 문부터 가로막는 데에 하는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도 듣기 싫은 것은 병화에 대한 욕설이요, 또다시 놀란 것은 무턱대고 돈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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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말에 경애는 어찔하였다. 모든 비밀이 탄로된 줄로만 알았었다. 병화도 그 때문에 벌써 붙들려가지나 않았나 애가 쓰이고 이 사람들이 형사들의 끄나풀이 아닌가도 싶던 것이었다. 그러나 경무국의 기밀비를 먹은 것을 내놓으라고 얼러대는 데에 가서 경애는 겨우 안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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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경무국에 드나들었나? 5000원 나왔다더구나? 김병화에게 2000원 주어서 장사시키면야 3000원은 남았겠구나? 우리들에게 그것만 슬쩍 주면 우리 대장에게고 뉘게고 시치미를 떼고 눈감아버릴 것이요, 당장에라도 보내주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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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얼러도 대고 달래기도 하는 것을 듣고는 비로소 안심도 되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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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에게로 가십시다. 그러면 김병화하고 의논을 해서 결정집시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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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곧 들을 듯이 좋은 낮으로 선선히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를 않았다. 나중에는, 뺨을 갈기며 위협을 하였다. 이러기를 두세 시간이나 하다가 저희도 하는 수 없던지, 수군거리고 나서 병화를 부르러 간다고는 하였으나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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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저희끼리 서로 밀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에 경애를 데려온 지가 술이 덜 취하였다 하여 어름어름 나가더니, 얼마 만에 데려온다던 병화는 안 오고, 또 다른 나이 지긋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더라 한다. 주정꾼에게 또다시 실랑이를 받고 앉았던 경애는 하여간 맑은 정신을 가진 청년을 만난 것만 다행하였으나 이번에야말로 불한당의 두목이 들어온 것 같아서 속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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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이 쑬 들어서면서 배반이 낭자한 것을 보고 두 주정꾼을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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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술들을 웬 돈이 있어서 이렇게 먹는 거야? 저리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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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치니까, 두 청년이 쥐구멍을 찾듯이 슬슬 피핸 나가는 것을 보고 경애는 어쨌든 마음이 시원하고 이 청년이 도리어 믿음직한 것 같기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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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경애더러 앉으라 하고 점잖이 말을 붙였다. 경애는 이자가 시킨 일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밉고 분하면서도 점잖은 수작에 더욱 마음이 놓이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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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꾀어 왔소? 당신이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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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병화군의 친구요. 미안하게는 되었습니다마는 묻는 말씀을 한마디만 분명히 대답을 해주시면 곧 가시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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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을 꺼내놓고 병화의 쓰는 돈의 출처를 대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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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 쓰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까요? 그까짓 말 묻자고 바쁜 사람을 속여서 이런 데로 끌어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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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말이 아니라, 필요하니 이실직고를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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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것부터 말을 하슈. 저번에 댁에 와서 묵고 간 사람 아시겠구려? 지금 어디 가서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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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청년이 기밀비 5000원 논래를 하며 등을 쳐먹으려고 하는 것과는 달라서, 정통을 쏘며 족치는 데에 경애는 진땀이 빠졌었다. 달래고 어르고 하는 품이 여간 형사에 질 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서너 번 뺨까지 후려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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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년이 농락을 부려서 김병화를 유혹하고 타락시킨 것이니까, 너부터 그대로 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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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곧 사람을 잡을 것같이 서둘렀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확실히 병화나 필순의 동지 같기도 하나 혹시는 동지인 척하고 속을 뽑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요, 설혹 동지라도 발설을 할 일이 못 되니 경애는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하는 비장한 결심을 하였던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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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대끼기를 또 한 시간이나 하였을 때쯤 되어서 또 다른 보지 못하던 청년 하나가 기웃이 들여다보니까, 가만히 있으라 하고 나서는 수군수군하고 들어와서 '나는 바빠서 가기는 가지만 일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게니, 잘 생각해 두었다가 그 때는 바른 대로 대야 돼!' 하고 의외로 뒤가 물게 총총히 가버리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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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병화를 불러다놓았다는 기별이 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병화는 일장 설화를 가만히 돋고 누웠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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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애는 그러고도 또 주정꾼들에게 붙들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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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나오려는데 어디 숨었었던지 그 두 놈이 화닥닥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 정말 눈물이 핑 돌아요. 그래 하는 수 없기에 이번에는 취한 사람을 덧붙여서는 안 되겠다 하고 또 얼마 동안을 살살 달래고 빌고 한 뒤에 셈을 해오라고 해서 요릿값을 선뜻 치러주니까 그제야 좀 마음이 풀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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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술 사먹여가며 매맞은 셈쯤 되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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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순의 모친은 옆에서 남편의 허리를 주물러가며 분해 못 견딜 듯이 한 마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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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쨌든지 저희끼리도 말이 외착이 나니 그 웬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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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경애는 부은 뺨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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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하편에서는 기밀비니 어쩌니 하고, 두목가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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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한두 사람 이외에야 아나. 그 아래서 노는 사람들이야 제멋대로 떠들 것이 아니겠소. 그뿐 아니라, 그 두 사람은 진정한 동지도 아니요, 말하자면 여기 집적 저기 집적 하고 돌아다니는 덜렁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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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저 그런 듯싶더군! 기밀비 3000원이 어디 있는지 저희들이 먹겠다고 허욕이 나서 덤비는 수작이 왜 그리 덜 익었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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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비로소 생긋 코웃음을 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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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따위 위인들이 무얼 하겠다고 하는 건가? 거기도 직업적 브로커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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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누가 탐탁히 일을 시키나! 그렇지만 그런 사람도 있어야 되거든! 무슨 일이나 혼자 하는 줄 아나? 우선 오늘 일만 해도 경애씨를 후림새 있게 불러오는 데 난봉깨나 피어보고, 덜렁대는 그런 모던 보이가 적임자요, 또 김병화가 기밀비를 먹었다- 하는 소문을 내놓자면 말일세. 그런 위인이란 저희 집 재산을 다 까불리고 이제는 요릿집은 고사하고 술 먹을 밑천도 없고 기생집에 가야 푸대접이요, 다마쓰기도 돈 들고 집에 들어앉았자니 갑갑하고 하니까, 일이 있으나 없으나 서울이 좁다고 싸지르는 축이니 발은 넓어서 안 가는 데가 없으니까, 필요한 때 무슨 말 한마디만 들려 내보내면 신문 호외 이상으로 당장 그 소문이 짝 퍼지네그려. 따라서 또 그 대신에 소문을 알아들이는 데도 그만큼 유용한 정보망이 없다네. 내가 이런 장사를 벌인 것도 그런 사람을 먹여 기르자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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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붉은 맹상군일세그려? 하지만 아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다고 모가지 두엇 가자고 다녀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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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주의를 해야지. 하지만 그 대신에 잘 양성만 해놓으면 그 중에서 정말 동지를 얻을 수도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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