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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약의 도락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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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를 보내고 나서 윤직원 영감은 퇴침을 돋우 베고, 보료 위에 가 편안히 드러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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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한 십삼 와트 전등불에 담배 연기만 자욱하니, 텅 빈 삼 칸 장방 아랫목에 가서 허연 영감 하나만 그들먹하게 달랑 드러눈 것이, 어떻게 보면 징그럽기도 하고, 다시 어떻게 보면 폐허(廢墟)같이 호젓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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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은 멀거니 드러누었자매 심심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춘심이년이나 어서 왔으면 하겠는데, 저녁 먹고 곧 오마고 했으니까 오기는 올 테지만, 그년이 이내 뽀로로 오는 게 아니라 까불고 초라니짓을 하느라고 이렇게 더디거니 싶어 얄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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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도 까맣게 기다려집니다. 간 일이 궁금도 하거니와, 여덟신데 오래잖아 라디오를 들어야 하겠으니, 그 안으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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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몇 술 뜨다가 말아서 속도 출출합니다. 이런 때에 딸이고 손자 며느리고 누가 하나 밥상이라도 들려 가지고 나와서, 진지 잡수시라고 권을 했으면, 못 이기는 체하고 달게 먹을 텐데, 그런 재치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것들이거니 하면 다시금 화가 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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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한 깐으로는 삼남이라도 내보내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불러다가 후루룩 쭉쭉 먹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는 어금니 밑에서 사뭇 신침이 괴어 나오고 가슴이 쓰리기는 하지만, 집안 애들이 볼까 보아 체수에 차마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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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오나 했더니 대복이가 첫찌(?)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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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에 국방색 당꾸바지에, 검정 저고리에, 오그라붙은 칼라에, 배애배 꼬인 검정 넥타이에, 사 년 된 맥고자에, 볕에 탄 얼굴에, 툭 불거진 광대뼈에, 근천스럽게 말라붙은 안면 근육에, 깡마른 눈정기에…… 이 행색과 모습은 백만장자의 지배인 겸 서기 겸 비서 겸, 이러한 인물이라기는 매우 섭섭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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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살림살이에 노상 시달리는 촌의 면서기가, 그날 출장을 나갔다가 다뿍 시장해 가지고 허위단심 집엘 마침 당도한 포즈랬으면 꼬옥 맞겠습니다. 실상 또 면서기 출신이 아닌 것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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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가 방으로 들어만 섰지 미처 무어라고 인사도 하기 전에 윤직원 영감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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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였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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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습니다. 가차압을 나가는 집달리를 따라갔으니 물어 보나마나 알 일이지마는 성미가 급해 놔서 진득이 저편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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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다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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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는 늘 치여난 훈련으로, 제가 복명을 하기보다 주인이 묻는 대로 대답을 하기 위하여 넌지시 꿇어앉아 다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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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다가 붙있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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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광으가 나락이 한 오십 석이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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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거 참 마침이구만……! 그래서 그놈으다가 붙있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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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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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펶네! 인제 경매헐 때 그놈을 우리가 사머넌 거 갠찮얼 것이네! 나락이닝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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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잔히여두 그럴라구 다아 그렇게 저렇게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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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니 대복이가 누구라고 그걸 범연히 했을 리가 없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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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먹고 알먹고 하는 속인데, 윤직원 영감은 채무자의 재산을 가차압을 해놓고, 기한이 지난 뒤에 경매를 하게 되면, 속살로 그것을 사가지고 그것에서 다시 이문을 봅니다. 그 맛이 하도 고소해서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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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거, 일 십상 잘되뒶네……! 그래서, 그분네, 술대접이나 좀 펶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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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십 원 어치나 술을 멕있더니, 아마 그 값이 넉넉 빠질라넝개비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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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두 잘펶네! 무엇이구, 멕이먼 되는 세상잉개루…… 그럼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시장컸네…… 저― 거시기…… 아―니 그만두구,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이따가 이얘기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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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은 아까 올챙이와 말이 얼린 만창상점의 수형조건을 상의하려다가, 그거야 이따고 내일이고 천천히 해도 급하지 않대서, 대복이의 시장하고 피곤할 것을 여겨 그만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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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으로는 이문 속으로 탈이나 없고 할 경우면, 실상은 탈을 내는 일도 없기는 하지만, 더러 대복이를 위해 줄 만도 합니다. 대복이는 참으로 보뱁니다. 차라리 윤직원 영감의 한쪽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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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은 전대복(全大福)인데, 장차에는 어떻게 될는지 기약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반평생을 넘겨 산 오늘날까지, 이름대로 복이 온전코 크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박복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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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과 한고향입니다. 면서기를 오 년 다녔고 그 중 사 년이나 회계원으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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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꼽하고 착실하고 고정하고 그러고도 사람이 재치가 있고, 이래서 윤직원 영감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런 결과 윤직원 영감네가 서울로 이사해 올 때에, 자가용 회계원 겸, 서무서기 겸, 심부름꾼 겸, 만능잡이로다가 이삿짐과 한가지로 묻혀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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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십 년, 대복이는 까딱없이 지내 왔습니다. 참말로 윤직원 영감한테는 깎아 맞췄어도 그렇게 손에 맞기는 어려울 만큼 성능(性能)이 두루딱딱이로 만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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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삭빠르고 고정하고 민첩하고, 잇속이라면 휑하니 밝고…… 이러니 무슨 여부가 있을 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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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두부를 오늘 저녁에는 세 모만 사들여 보낼 예정이라면, 사는 마당에서는 두 모하고 반만 사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부 반 모는 서울 장안을 온통 매고 다녀야 파는 데가 없으니까, 더 줄여서 두 모를 삽니다. 결국 이 전 오 리를 아끼려던 것이, 그 갑절 오 전을 득했으니, 치부꾼으로 그런 규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복이라는 사람이 돈을 아끼는 그 솜씨가 무릇 이렇다는 일롑니다. 진실로 얼마나 충실한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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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대서 사람이 잘다고만 하면, 그건 무릇 인간성을 몰각한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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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가 가령 주인네 반찬거리를 세 모를 사들여 보낼 두부를 두모하고 반 모만 사고 싶다가, 반 모는 팔질 아니하니까 두 모를 사는 그 조화가 단지 돈 그것을 아끼자는, 즉 순전한 목적의식만으로만 그러던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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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돈이야 뉘 돈이 되었든, 살림이야 뉘 살림이 되었든, 그 돈을 졸략히 쓰는 방법, 거기에 우선 깊은 취미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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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때문에, 두부를 세 모를 살 텐데 두 모 반을 못 사서 두 모만 산 때라든지, 윤직원 영감의 심부름으로 동대문 밖을 나가는데 갈 제는 걸어서 가고 올 제만 타고 와서 전찻삯 오 전을 덜 쓴 때라든지, 이러한 날은 아껴 쓰고 남긴 그 돈 오 전을 연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무한히 유쾌해합니다. 그 돈 오 전을 그렇다고 제 낭탁에다가 넌지시 집어넣느냐 하면, 물론 절대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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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는 그러므로, 가령 한 사람의 훌륭한 도락가(道樂家)로 천거하더라도 결단코 자격에 손색이 없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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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가지각색 고서(古書)를 모으기에 재미를 붙입니다. 별 얄망궂은 책들을 다 모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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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화분 가꾸기에 재미를 들입니다. 올망졸망 화초들을 분에다가 심어 놓고 그것을 가축하느라, 심지어 모필로다가 잎사귀에 앉은 먼지를 털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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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락이 남이 보기에는 곰상스럽기나 했지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지만, 그걸 하고 있는 당자들은 천하에도 없이 끔직스레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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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돈을 쓰는 데 요모조모로 아끼고 졸이고 깎고 해가면서, 군것은 먼지 한 낱도 안 붙게시리 씻고 털고 한 새말간 알맹이돈을 만들어 쓰곤 하는 대복이의 그 극치에 다다른 규모도, 그러니까 뻐젓한 도락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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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 영감과 대복이 사이에는 네 것 내 것이 없습니다. 죄다 윤직원 영감의 것이요 대복이 것은 하나도 없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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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윤직원 영감은 대복이를 탁 믿고 월급이니 그런 것은 작정도 없이, 네 용돈은 네가 알아서 쓰라고 내맡겼은즉, 한 백만 원 집어 쓸 수도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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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복이에게 매삭 든다는 것이란 게 극히 적고도 겸하여 일정한 것이어서, 담배 단풍표 서른 곽과(만약 큰달일라치면 삼십일일날 하루는 모아 둔 꽁초를 피웁니다) 박박 깎는 이발삯 이십오 전과, 목간삯 칠 전과 이런 것이 경상비요, 임시비로는 가장 하길의 피복대와 십 전 미만의 통신비가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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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한 중에서도 주인 윤직원 영감의 살림이나 사업에 드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그대도록 바닥이 맑아 빠안히 들여다보이는 제 비용도 가다간 용하게 재주를 부려서 뻐젓하니 절약을 해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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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쉬운 예를 들자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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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는 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 ) 목간을 하는데, 그 비용은 물론 칠 전입니다. 비누를 쓰지 않으니까 꼭 칠 전 외에는 수건이나 해지면 해졌지, 다른 것은 더 들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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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젠가는 그 한 달에 한 번씩 하던 그 목간을 약간 늦추어 한 달 하고 닷새, 즉 삼십오 일 만에 한 번씩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번을 한 결과로는 매번 닷새씩 아낀 것으로 해서 일곱 달 동안에 여섯 번의 목간을 했고, 동시에 한 달 목간삯 칠 전을 절약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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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과를 거둔 날의 대복이는 대단히 유쾌했습니다. 진실로 입신(入神)의 묘기(妙技)로 추앙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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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는 그의 과히 늙지는 않은 양친이 윤직원 영감네 땅을 부쳐 먹고 지내면서 그다지 고생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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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고향에서 시부모를 섬기고 있었는데 연전에 죽었고, 그래 대복이는 시방 홀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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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가 불쌍하고, 시골 살림이 각다분하고, 홀아비 신세가 초라하고 하기는 하지만, 그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과연 복이 될는지 무엇이 될는지 아직은 몰라도, 복이려니 하는 대망을 아무튼 홀아비가 된 그걸로 해서 품을 수만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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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 그가 임자 없는 사내인 것과 일반으로 안에는 시방 임자 없는 여편네 서울아씨가 있어서, 우선 임자 없는 기집 사내가 주객이 되었다는 것이 가히 원칙적으로는 그 둘은 합쳐 줄 조건이 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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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란 놈은 언제고 원칙을 생색내 주려 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복이의 대망도 장차 어떻게 될는지 모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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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둘이서(아니 저쪽에서) 뜻이 있어야 하고, 윤직원 영감이 죽어 버리거나, 그러잖으면 묵인을 해주거나 해야 하겠으니, 그것이 모두 미지수가 아니면 억지로다가 뛰어넘을 수는 없는 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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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윤직원 영감이 막고 못 하게 하는 것을 저희 둘이서만 배가 맞아서 살잔즉 서울아씨의 분재받은 오백 석거리가 따라오지 않을 테니, 그건 대복이로 앉아서 보면 목적을 전연 무시한 결과라 아무 의의도 없을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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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복이라는 사람이 본시 계집에게 반하고 어쩌고 할 활량도 아니요, 반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그러니 더구나 목 움츠리에, 주근깨 바탕에, 납작코에, 그런 빈대 상호의 서울아씨가 계집으로 하 그리 탐탁하다고 욕심이 날 이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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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홀아비라는 밑천이 있으니까, 오백 석거리로 도금한 과부라는 데에 오직 친화성(親和性)이 발견될 따름이고, 그게 대망의 초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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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시방 대복이는 제일단의 문제로, 서울아씨가 저에게 뜻이 있으면 하고 바랍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일이 한 조각은 성공이니까, 매우 기뻐할 현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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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령 서울아씨가 쫓아 나와서 제 허리띠에 목을 매고 늘어지더라도, 제이단의 난관인 윤직원 영감의 묵인이나 승낙이 없고 볼 것 같으면 알짜 오백 석거리의 도금이 벗어져 버린 서울아씨일 터인즉, 그는 단연코 그 정을 물리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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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게 먹고 가늘게 싸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인제 죽을 때는 단돈 몇천 원이라도 끼쳐 줄 눈치요, 그것만은 외수가 없는 구멍인 것을, 잘못하다가 그 구멍마저 놓쳐서는 큰 낭패이겠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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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방님 오꾶넌디 저녁 진지상 주어기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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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이가 안방 대뜰로 올라서면서 띄워 놓고 하는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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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방 오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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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경손이와 태식이를 데리고, 무슨 이야긴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서울아씨가, 와락 반가운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마루로 나오더니 이어 부엌으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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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방이고 반서방이고 간에, 그의 밥상을 알은체할 며리도 없고, 또 계제가 그렇게 되었더라도 삼월이를 불러 대서 시키든지 조카며느리들한테 밀든지 할 것이지, 여느 때는 부엌이라고 들여다보지도 않는 서울아씨로, 느닷없이 이리 서두는 것은 적실코 한 개의 이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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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손이가 그 이변을 직각하고서 서울아씨가 나간 뒤에다 대고 고개를 끄덱끄덱, 혓바닥을 날름날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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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씨는 물론 그런 눈치를 보인 줄은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이변스러운 것조차 미처 깨닫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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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렇다고 또 서울아씨가 대복이한테 깊수룸한 향의가 있는 것이냐 하면, 실상인즉 그게 매우 모호해서 섬뻑 이렇다고 장담코 대답하기는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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혓바닥은 짧아도 침은 멀리 뱉는다고 합니다. 서울아씨는, 다 참, 양반의 집 자녀요 양반의 집 며느리였고, 친정이 만석꾼이요, 내 몫으로 오백 석거리가 돌아올 테고, 이러한 신분을 가져다가 사랑방 서사 대복이와 견줄 생각은 일찍이 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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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가령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얼려 가지고 대복이한테로 팔자를 고친다 치더라도, 그거나마 마다고 물리치지는 않을지언정, 대복이라는 인물이 하 그리 솔깃하거나 그래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텝니다. 하고, 오로지 그가 치마를 두른 계집이 아니고 남자라는 것, 단연 그것 하나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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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로 들면, 같은 남자일 바에야 대복이보다는 어느 모로 따지든지 취함직한 남자가 하고많을 텐데 하필 그처럼 눈에도 안 차는 대복이냐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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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울아씨는 시집을 갈 수 있는 숫처녀인 것도 아니요, 신풍조를 마신 새로운 여인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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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지 하나의 낡은 세상의 과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은 알아도, 남자가 있는 줄은 의식적으로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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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또, 결단코 절개가 송죽 같아서가 아니라, 눈 가린 마차말〔馬車馬〕이 마차를 메고 달리는 것과 일반으로 훈련된 본능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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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라는 것은, 그 이유는 몰라도 그냥 그저 두 번째 남편을 맞지 않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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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서울아씨도 장차 어떠한 고패에 딱 다들려서는 그 훈련된 본능을 과연 보존할지가 의문이나, 아직까지는 털고 나서서 개가를 하겠다는 의사는 감히 없고, 역시 재혼이라는 것은 못 하는 걸로 여기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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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더러 그 문제를 가지고 빈약한 소견으로 두루두루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아무리 둘러대 보아야 그것은 힘에 벅찬 거역이어서, 도저히 가망수가 없으리라 싶기만 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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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다면서 대복이한테 그가 심상찮은 마음의 포즈를 보인다고 한 것은 역시 공연한 데마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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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막상 그렇지 않은 소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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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라고, 중성(中性)이 아닌 바에야 생리적으로 꼼짝못할 명령자가 있는 것을, 그러니 이성이 그립지 않을 이치가 없습니다. 서울아씨도 이성이 그립습니다. 지금 스물아홉인데 십이 년 전에 일년 동안 겨우 남편과 지내고서 이내 홀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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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 되어 오니 그 이성 그리움이 차차로 더합니다. 그가 성자(聖者)다운 수련을 쌓지 않은 이상, 단지 과부라는 형식만이 있어 가지고는 호르몬 분비의 명령인, 한 개의 커다란 필연을 도저히 막아 낼 수는 없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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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는 극히 자연스러운, 그러나 일종 근육적인 반사작용으로써 이성을 그리워하고, 무의식한 가운데 이성을 반겨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여자 서울아씨던 것이요, 그런데 일변 그의 세계란 것은 겨우 일백마흔 평이라는 이 집 울 안으로 제한이 되어 있고, 그 제한된 세계에는 오직 대복이가 남자로 존재해 있을 따름이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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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서울아씨는 대복이라면 그와 같이 의식보다도 제풀 근육이 반사적으로 날뛰어 몸이 먼저 반가워하고, 그것이 날이 갈수록 남의 눈에 뜨이게 차차로 현저해 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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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서울아씨의 근육이 풍겨 내놓은 이변은, 그러나 저 혼자서는 도저히 발전을 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은 한낱 재료일 따름이요, 겸하여 의사의 판단과 상량을 치르지 않은 것인즉, 미리서 대복이를 위하여 축배를 들 거리는 못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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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남이가 웬만큼 눈치가 있었더라면, 밥상을 들고 나가서 대복이더러 넌지시 아 서울아씨가 펄쩍 뛰어나오더니 평생 않던 짓을, 밥상을 차린다, 이것저것 반찬을 골라 놓는다, 또 숭늉을 데운다, 뭐 야단이더라고, 이쯤 귀띔이라도 해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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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야 대복이도 속이 대단 굴저했을 것이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무슨 모션을 건네 보려고 궁리도 할 것이고 그랬을 텐데, 삼남이란 본시 제 눈치도 모르는 아인 걸 남의 눈치를 알아챌 한인(閒人)은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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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대복이는 전에 없던 밥상인 것만 이상히 여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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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손이 그 애가 능청맞은 애라, 제 대고모의 그러한 이변을 발견했은즉 혹시 무슨 장난이라도 할 듯싶고, 그 끝엔 어떤 일이 생길 듯도 하고 하기는 합니다마는 물론 꼭이 그러리라고 단언은 할 수 없는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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