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13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16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17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19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20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22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24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25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27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28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31
이제 창문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32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 같은데
33
비를 맞고 오는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35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40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42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 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43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 곳에 찾아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44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02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117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124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173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175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176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205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1)
215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222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233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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