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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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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윤동주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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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시

2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3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4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5
나는 괴로워했다.
6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7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8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9
걸어가야겠다.
 
10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 자화상

12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13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14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15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16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17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18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19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20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3. 소년

22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4. 눈 오는 지도

24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25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5. 돌아와 보는 밤

27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28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29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30
31
이제 창문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32
밖을 가만히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 같은데
33
비를 맞고 오는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34
35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36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37
38
이제,
39
40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6. 병원

42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 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43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 곳에 찾아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44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7. 새로운 길

46
내를 건너서 숲으로
47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48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49
나의 길 새로운 길
 
50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51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52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53
오늘도...... 내일도 ......
 
54
내를 건너서 숲으로
55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8. 간판 없는 거리

57
정거장 플랫포옴에
58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
59
60
다들 손님들뿐.
61
손님 같은 사람들뿐.
62
63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64
집 찾을 근심이 없어.
65
66
빨갛게,
67
파랗게,
68
불붙는 문자도 없이
69
70
모퉁이마다
71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72
불을 켜놓고,
73
74
손목을 잡으면
75
다들, 어진 사람들.
76
다들, 어진 사람들.
77
78
봄, 여름, 가을, 겨울
79
순서로 돌아들고.
 
 

9. 태초의 아침

81
봄날 아침도 아니고
82
여름, 가을,겨울,
83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84
빠알간 꽃이 피어났네,
85
햇빛이 프른데,
86
그 전날 밤에
87
그 전날 밤에
88
모든것이 마련되었네,
89
사랑은 뱀과 함께
90
독(毒)은 어린꽃과 함께.
 
 

10. 또 태초의 아침

92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93
전신주(電信柱)가 잉잉 울어
94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95
무슨 계시(啓示)일까.
96
빨리
97
봄이 오면
98
죄(罪)를 짓고
99
눈이
100
밝아
101
이브가 해산(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102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103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11. 새벽이 올 때까지

105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106
검은 옷을 입히시오.
 
107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108
흰 옷을 입히시오.
 
109
그리고 한 침실(寢室)에
110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111
다들 울거들랑
112
젖을 먹이시오
 
113
이제 새벽이 오면
114
나팔소리 들려 올 게외다.
 
 

12. 무서운 시간

116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117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118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119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120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121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122
나를 부르는 것이오?
 
123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124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125
나를 부르지 마오.
 
 

13. 십자가

127
쫓아오든 햇빛인데
128
지금 교회당 꼭대기
129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130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131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132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133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134
괴로웠던 사나이
135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136
처럼
137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138
모가지를 드리우고
139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140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141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4. 바람이 불어

143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144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145
바람이 부는데
146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147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148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149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150
바람이 자꼬 부는데
151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152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153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15. 슬픈 족속

155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156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157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158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6. 눈감고 간다

160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161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162
163
밤이 어두웠는데
164
눈감고 가거라.
165
166
가진 바 씨앗을
167
뿌리면서 가거라.
168
169
발부리에 돌이 체이거든
170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17. 또 다른 고향

172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173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174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175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176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177
백골을 들여다보며
178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179
백골이 우는 것이냐
180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181
지조 높은 개는
182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183
어둠을 짖는 개는
184
나를 쫓는 것일 게다.
 
185
가자 가자
186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187
백골 몰래
188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8. 길

190
잃어버렸습니다.
191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192
두 손의 호주머니를 더듬어
193
길에 나갑니다.
 
194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195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196
담은 쇠문을 굳게 담아
197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198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199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200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201
쳐다 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202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203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204
내가 사는 것은 다만
205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1)
 
 

19. 별 헤는 밤

207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208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9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210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211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212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213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214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215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216
별 하나에 추억과
217
별 하나에 사랑과
218
별 하나에 쓸쓸함과
219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220
별 하나에 시와
221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222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223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224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225
어머님,
226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227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228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29
내 이름자를 써 보고,
230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231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232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233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34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235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236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원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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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시
 
  2. 자화상
 
  3. 소년
 
 
 
  6. 병원
 
 
 
 
 
 
 
  13. 십자가
 
 
  15. 슬픈 족속
 
 
 
  18.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윤동주(尹東柱) [저자]
 
  1941년 [발표]
 
◈ 참조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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