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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 어사(御史)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1925년
이광수

1. 御史(어사)

 
1
월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춘향이 홀로 옥중에 누웠으니 그 제야 비로소 몸이 아프다. 천근 만근으로 내려 누루는 것도 같고 칼 송곳으로 푹푹 쑤시는 것도 같고 이따금 이따금 하 도 매맞은 자리가 아파서 정신이 아뜩아뜩하기도 하다. 얼 음장같이 찬 방바닥 벽틈 창틈으로 들여 쏘는 살을 에는 듯 한 찬바람, 이 속에서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리. 꽃 같은 청 춘에 애매히 죽는 것도 서러우려든, 백년 해로 언약한 정든 님 못 뵈옵고 죽는 몸, 칠십 노모 혼자 두고 옥중 원혼되는 신세 생각하면 매맞은 자리보다도 생각하는 가슴이 더욱 아 프다.
 
2
"살고지고 살고지고 아무렇게라도 살아나고지고, 실 끝만 치라도 살아남아 도련님 뵈옵고지고 도련님 뵈온 뒤어든 고 대 죽다 설으리."
 
3
춘향이 신음하고 누워 있노라니 문득 옥문에서 왁자지껄 하는 소리 들린다—
 
4
"열라면 열어!"
 
5
하는 호통이 들리더니,
 
6
"사또께서 아시면 소인은 주리경을 치게요?"
 
7
하는 옥사장의 애걸하는 소리가 들린다.
 
8
"웬 잔소리야? 기생을 옥에 가두면 외입장이 따라올줄을 모를 병신이 있더냐. 어서 열어, 바삐 열어!"
 
9
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옥문을 쾅쾅 찬다.
 
10
"사또 분부에 춘향이 방에는 사내라고는 그림자도 못비취 게 하고 지나가던 수코양이도 얼른 못하게 하라하시니 못 열겠소."
 
11
하고 옥사장이 좀 딱딱히 잡아떼니 문득 여러 사람의 말소 리가 나며'짝'하고 따귀 붙이는 소리가 나며,
 
12
"압다 이놈아 사또 아니라 오또 육또의 분부기로 두려워 할 내님이신 줄 알았더냐."
 
13
하는 소리가 나고 또,
 
14
"여보소 따릴 것은 아닐세. 젠들 무슨 죄 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어선 인종지말이 하여 먹다 남겨 놓은 옥사장구 실을 다닐 망정 아직도 사람의 껍데기는 안 벗어 놓았으니 그래도 인정 없겠나......"
 
15
"여보소 옥사장네 동생, 그리 말고 문을 열소. 후환 있거 든 우리네가 담당함세. 사또 아니라 사또 할애비기로 사람 을 초고초장 찍어서 아작아작 통으로 먹을라고."
 
16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17
"올희 인숙이 말이 올희. 춘향이가 불쌍하지 아니한가. 이 렇게 덮을 것도 가지고 왔으니 문을 열소. 활인공덕되네."
 
18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19
"덮을 것도 덮을 것이지마는 나는 이렇게 약을 달여 가지 고 왔는데 이게 식으면 되겠나, 어서 열소 어서 열어!"
 
20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21
"약보다도 미음이 제일일세. 나는 조 미음을 진케 달여 꿀 덤썩 타서 가지고 왔는데 식는 것도 걱정이어니와 손이 뜨거워 견디겠다고. 어서 열게 어서 열어."
 
22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23
"그러면 잠깐만 보고 가시오."
 
24
하고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왈짜 육칠 인이 옷에 묻은 눈을 툭툭 털면서 우루루 춘향이 누운 곳으로 들어 온 다. 저마다 춘향의 곁으로 와서,
 
25
"춘향아 어떠냐?"
 
26
"죽일 놈들 같으니."
 
27
"염려마라. 내가 맹세코 너를 살려 주마."
 
28
"주제넘은 놈 같으니. 네깐 놈이 살리기는 누구를 살려?
 
29
내야말로 너를 살려 주마—외육촌 누님의 시아주버니의 처남 이 재동 대감의 청지기외의 동생이어!"
 
30
"주릴할 놈 같으니, 그게 그리 장하냐. 내야말로 춘향이를 살려 내련다. 내가 인제 무과급제하여 전라 병사하여 오는 길이면 영락없다, 영락없어. 자 이 미음이나 먹어라."
 
31
"육시를 할 녀석 같으니. 네 놈이 전라 병사 하기를 기다 리느니 내 손자가 병조 판서 하기를 기다리겠다. 내야말로 춘향이를 살려 내련다. 너희같이 주동이 깐 놈들이 무엇을 안단 말이냐?"
 
32
"어디? 네까짓놈이 어떻게 저를 살린단 말이냐?"
 
33
"어허 이놈 내 님이 누구신 줄을 모르는구나. 내 이르께 들어 보아라. 다시 사또놈이 저를 끌어내어 따리지 아니하 면 잘 생각하였으니 말할 것 없고, 만일 다시 제 사또 따귀 를 눈에서 횃불이 나도록 딱 붙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하여 놓은 뒤에 춘향을 두 팔로 살짝 안고 나온단 말이어—어떠 냐."
 
34
"이놈아 그만 일이야 낸들 못하랴."
 
35
"어허 그놈 방정맞은 놈이로고. 내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 각을 하고 있는데 제가."
 
36
이 모양으로 떠들며 그래도 춘향을 위로하노라고 상처도 만져 보고 약도 먹이고 미음도 먹인다.
 
37
춘향도 인정이 고마와서,
 
38
"이렇게들 와 보아 주시니 황송하오."
 
39
하고 일일이 대답을 한다.
 
40
이렇게 밤이면은 왈짜들이 모여들어 어떤 때에는,
 
41
"각설 이때에."
 
42
하고 한글 책을 보고 어떤 때에는,
 
43
"일성 옹주에 덩꽁지 가고 삼년 적리에 관산월이라. 장림 수풀에 범이 긴다. 세목 죽었는데 네목 재간다."
 
44
하고 투전판이 벌어지고 어떤 날 저녁에는,
 
45
"백사 아삼오륙하고 쥐부리사 오삼륙하고 제칠삼오 제팔 관이 묘하다 열 여섯씩 들이소."
 
46
하고 골패가 벌어지고 한편에서,
 
47
"네대 갈 수야 오구일성 어렵다. 조장이로고나. 반식하자.
 
48
석류 먹는 듯이나 그만 있소. 척척 섞어 쥐어라. 석조하공정 (夕鳥下空庭)이로고나. 일 잎은 변이요, 바닥 둘째잎을 내어 놓소. 어디 갈까 이 애 한자는 반이나 하지."
 
49
하고 돈을 끌어들이고 또 한편에서는,
 
50
"삼십십삼천 파루(罷漏)쳤다. 먼동이를 다리고 당당홍에 정초립이건 양재로 넘나든다. 시뻘겋다 이사칠(二四七)을 들 이소."
 
51
하고 야단이요. 어떤 날은 하인 시켜 바둑판 들리고 와서,
 
52
"이말 죽네 검은이 안말이—오공도화 십사수로 꼭 죽었지?
 
53
옳다 여기 한 구멍 있고나. 그러면 그렇지."
 
54
하고 떵떵 바둑을 두고, 또 어떤 날은 장기를 두노라고,
 
55
"장군렵이야귀(將軍獵而夜歸)하니 속위호어중수(石爲虎於 中藪)로다. 장이야 군이야!"
 
56
"말떠궁 비취고 차을나 장이야!"
 
57
"이애 아서라 그것은 외통일다."
 
58
하고 '물려라''못한다''저포!''저포!'
 
59
하고 야단이요. 한편에서는,
 
60
"펄펄상쥐 덜걱해쥐 연대남산, 진동장군, 들통황제, 호위 군관, 과천동작이, 뚝섬 뒷뜰, 돌아나온다 났고 났고 났고나, 팔왕산초도, 오호대장의, 여산 칠십리 돌아나온다."
 
61
하고 법석이요.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술잔이나 먹고 흥에 겨워 탁견씨름 기롱으로 옥이 떠나가도록 쿵캉거리고 심하 면 싸움이 나서 멱살을 추켜들고 따귀를 붙이고 그러면 또 싸움 말리노라고,
 
62
"이 사람아 말게."
 
63
"어 아니꼬운 놈 같으니."
 
64
하고 법석이 난다.
 
65
이렇듯이 분난이 나니 옥사장이 겁도 나고 화도 나나 이 패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마른 경을 칠 지경이요,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옥이 결단이라 공손히,
 
66
"여보 이리 구시다가 사또 염문에 들리면 우리들이 다 죽 겠소."
 
67
하고 애걸하면 한 왈짜 내달으며, 여보아라, 사또 말고 오또라도 염문 말고 소곰문을 하면 누를 날로 육포를 하랴. 기생 수금하면 우리네가 줄입하는 것이 응당이지 네 걱정이 무엇이니?
 
68
하고 호기를 부리고 그러면 다른 왈짜가 나서며,
 
69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네가 제 소일 하랴다가 제게 해롭 게 하는 것이 의가 아니여."
 
70
하면 여러 왈짜들,
 
71
"옳다 네 말이 옳아."
 
72
하고 춘향더러 잘 자라 하고 이불 귀도 눌러 주고 흩어져 버린다.
 
73
왈짜들이 떠들다가 돌아가면 옥중은 고요한데 살 없는 앞 문과 외만 남은 뒷벽에서는 뼈를 부는 상풍은 새벽 이를 흩 날리며 살쏘듯이 들어오니 골절이 다 저려 온다. 눈을 감은 들 잠이 오리. 끝없는 듯 긴 밤을 뜨고 새고 울고 새니 도 련님 생각 어머니 생각 죄없이 형벌 받아 원통한 생각만이 들고 나고 들고날 뿐이다.
 
74
월매는 춘향을 옥에 두고 집에 돌아오니 맘을 지접할수가 없어 울며 불며 끌탕만 한다. 끌탕만 하면 무엇하나. 의원을 찾아가 약도 묻고, 무당 판수를 찾아가 무꾸리도 하고, 절에 가서 불공도 하고 아무리 하여서라도 춘향의 병이 나아지 라, 춘향이가 옥에서 나와지라, 부덩부덩 애를 쓰나 날이 가 고 달인 가도 병도 낫지 아니하고 옥에서 나올 길도 바이 없다.
 
75
이로부터 춘향은 옥중에 매인 몸이 되어 겨울 가고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 오고 봄 겨울이 다녀 가기 두 번이나 세 번이나 되었건마는 기다리는 서울 소식도 당언하고 놓일 기약도 망연하다.
 
76
변 부사는 술취한 때 생각난 때 심사난 때 궁금한 때 한 달에 세 번 좌기할 때, 춘향을 끌어 들여 얼리고 달래고 조 르고 수뇌하고, 호령하고, 때리고 하건마는, 춘향의 굳은 마 음 다질수록 더 굳으니, 털끝만치나 변할 리 있으랴마는, 갈 수록 변하고 쇠하는 것은 춘향이 몸이라 목숨이 모질어 붙 어 있기는 하건마는, 살은 다 떨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였으 니 옛날에 곱던 양자 다시 볼 길이 바이 없다.
 
77
겨울에는 추워 고생, 여름에는 축축하고 곰팡 나고 냄새 나는 방바닥에 벼룩 빈대는 어찌 그리도 많으며, 모기 각다 귀는 어찌 그리 극성스러운고. 물고 뜯고 쏘고 서물거리고 사르르 거리니 잠은 들며 몸은 가만히 둘 수가 있을까. 문 자국 긁은 자리가 덧나고 진무르고 어떤 것은 고름이 들고 어떤 것은 진물이 흘러 낮에나 좀 눈을 붙이려 하면 청파리 쇠파리 모두 모여들어 기어다니고 빨아 먹으니 낮잠인들 잘 수가 있나,
 
78
"가시고 안 오는 님 꿈에라도 뵈오련만 잠 못 이루오니 꿈 어이 이루리까 여름 밤 짜르다 하옴을 못내 설어노라."
 
79
더구나 동풍은 스르르 불고 궂은비 내릴 때면 몸의 아픔 더욱 견디기 어렵고, 비오다가 개인 밤에 캄캄한 옥창으로 길 잃은 반딧불이 소리없이 들어와서, 높으락 낮으락 번쩍 번쩍 방안으로 돌다가 말없이 나간 뒤에 어디서 부엉이 부 흥부흥하는 소리나 두견이 귀촉도귀촉도 하는 애끊는 소리 를 어찌 차마 들으리.
 
80
지리한 여름도 지나가고 소슬한 추풍이 나뭇잎 펄펄 날리 고 벽틈에 귀뚜라미 밤을 새어 울고.
 
81
"님 그린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추야장 긴긴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82
한 옛 노래를 생각하고 나도 귀뚜라미 넋이나 되어 한양 칠백리를 꿈을 타고, 날아가서 삼각산 슬픈 사정 하소연이 라도 하고 싶건마는, 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에 끼룩끼룩 기러기 소리 소리치는 새벽이 되도록 끄을 줄 모르니 어느 잠이 하마 들어 어느 꿈을 타고 가리.
 
83
"묻노라 저 기러기 북으로 음일진댄 삼각산 한강수를 앉어 날리 엇스려든 엇지타 님의 소식을 아니 전코 가나냐."
 
84
그러나 기러기 무슨 뜻 있으리. 한양을 지나오기는 하였으 련마는 도련님 소식은 전할 줄 모르고 반야 삼경에 중천에 소리질러 수심 많은 사람의 겨우 든 잠만 깨운다.
 
85
달이 수상히 밝으니 아마도 추석일까. 낮에 철석철석 울려 오던 소리 떡치는 소리 는다. 붉은 대추 흰 오려송편 그것 을 생각하리라는 이날에 늙으신 어미니 얼마나 심흰들 설우 시랴.
 
86
어젯밤 이불 속이 심히 찼으니 아마도 서리 쳤을 듯, 서리 쳤으면 단풍 때요, 단풍 때 지나면 김장 때다. 실 고추는 누 라 하고 겨울 옷은 누라 짓나. 부모님 도련님 위해 김장도 하여 보고 다듬이 바느질도 하고 싶다. 재 손수 다듬어서 내 손수 지은 옷을 님에게 입혀 놓고 한 번만 보았으면 고 대 죽은들 한 있으랴. 가을이 슬프단 말 내게만 진정이요 세상 사람께는 허사로다. 부모 계시고 님만 있을진대 슬픈 가을이 어디 있으랴. 삭풍 한실이 흩날릴수록 님의 품이 더 욱 따삽고 오동시달 긴긴 밤은 길사록 좋을 것이언마는 옥 중에 홀로 매운 몸은 골수까지 얼어드니 이 겨울로 또 어이 지내리.
 
87
죽지 말자 죽지 말자—아무리 하여서라도 죽지 말고 살아나 서 그리던 님 보온 후에 이 원통한 심회를 풀고야 말자.
 
88
어느덧 겨울도 다 지나고 옥창에도 봄바람이 불어 오고 수 인의 귀에도 종달새 소리가 들려 오면,
 
89
"아—봄인가—또한 봄인가."
 
90
하는 한탄이 나오고 금할 수 없는 눈물이 솰솰 흐른다.
 
91
세월은 가네 가네. 물 흐르듯 살닫듯 세월은 가네. 세월은 가고 가고 기다리는 님은 안 오시니 어쩔가나.
 
92
옥빈 홍안이 옥중에 다 늙기로 그것이 서러우랴마는 삼생 에 그리던 님을 다시 못 뵈옵고 죽을진댄 혼백인들 점여내 어 산호상벽 옥힘에 차곡차곡 담아다가 님의 눈에 뵈고 지 고. 보상 후에야 썩어진들 관계하랴마는 님 있을 때 이 썩 는 이 간장을 님도 모르게 다 썩힌다면 아 어찌하리. 참 마 이산(馬耳山) 높은 봉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나의 슬픈 눈 물 비삼아 띄웠다가 님 계신 옥창 밖에 뿌려나 주려무나.
 
93
요렇든 아픈 몸도 님을 보면 나으리라.
 
94
죽어 만일 혼이 있어 한양에 날아가 그리는 님을 뵈올수만 있다 하면 차라리 칼머리에 이 머리를 바서 버려 혼만 빠져 나아가 나비같이 새나같이 구름같이 님의 곁으로 날아라도 가련마는 한생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뵈여지라 모진 목숨을 붙잡아간다.
 
95
삼생에 못 잊은 것은 어머님 은혜로다. 처음에는,
 
96
"이년아 가고 안 오는 그놈을 기다리고 수절하는 네가 어 리석다. 네가 이러다라 죽은들 이 몽룡이 놈이 알기나 하랴 —통부를 보내어 알기로 살았을 제 안 오는 녀석이 너 죽었 다고 오긴들 하며 죽은 뒤에야 그놈이 와서 네 시체를 옥합 에 담아 저의 선산에 시조 할아비 무덤을 파내어 버리고 묻 어 준다 한들 무엇하리, 쓸데 없다 쓸데 없다. 사랑도 짝사 랑은 어리석은 일어어든 서방도 알아 주는 것이지 네가 수 절을 하기로 정절 부인이 나린단 말이냐, 열녀 정문이 나린 단 말이냐, 쓸데 없다. 쓸데 없다—네 수절은 헛수절이다! 아 서라 수절도 다 고만두고 사또 수청들어라. 인생이 몇 날이 리—청춘이 몇 날이리. 살아 생전뿐이다—."
 
97
젊었을 때 흥청거리고 사는 게 내 것이지 수절도 다 개떡 같다 하고 두고두고 말하였으나 그때마다 춘향은,
 
98
"마오 마오 그럴 말씀 마오. 내 한 번 이씨 가문에 몸을 허락하였으니 살아도 이씨집 사람이요, 죽어도 이씨집 혼이 라, 철석같이 굳은 정절 변할 리 있사오리까. 또 도련님이 공부하시느라고 지금 비록 못 오시나 대장부일언 해고석란 이라도 불변한다 하였사오니 변할 리 있사오리까. 어머님 그리 마오. 불행히 이 몸이 도련님 못 뵈옵고 옥중에서 죽 거들랑 산지도 구치말고 육진장포로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 한양 성내 올려다가 도련님 다시시는 노변에 묻어 주면 도 련님 왕래시에 지하에서 음성이라도 들으랴오."
 
99
하여 울며 간하므로 월매도 마침내 그 말에 감동하여 다시 는 훼절하기를 권치도 아니하고 거진 날마다 파루치면 혹은 약도 달이고 혹은 미음 원미도 달여다가 권하며,
 
100
"아나 먹어라 먹어야 산다. 네 정도 가소롭다. 도련님이야 꿈에나 너를 생각하랴. 소견 없는 생각 말고 미음이나 먹으 려무나. 네 병세를 요량하니 회춘하기 망연하다. 님을 그려 상사병 매를 맞아 장독병, 게다가 음식을 전폐하니 산귀신 이 되었구나."
 
101
할 뿐이었다.
 
102
자식 생각은 부모라고, 월매는 이 의원 저 의원 이름난 이 원은 다 찾아 다니며 좋다는 약은 다 지어다 먹인다. 의원 따라 혹은 냉이요, 혹은 담이요, 혹은 습이요 하여 도담탕 반하탕 삼화탕 이진탕은 담 다스린다고 쏘고, 순기산 강활 탕 통성산 방풍산은 풍 다스린다고 쓰고, 여름에 더위 먹었 다고는 향수산 이향산익 원산 육화탕을 쓰고, 몸이 여위고 밥이 안 내리는 것은 회충이라 하여 회충 다스린다고 회충 탕 연번산, 벽금탕을 쓰고, 근심으로 난병이니 아마도 험로 라 하여 게부탕, 보허탕, 심신환을 쓰고.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병은 울화병이라 하여 육울탕, 활혈탕, 청량산, 삼화탕을 쓰고, 또 어떤 의원 말은 그렇게 약을 써서야 쓰 느냐. 모든 병은 허약하여 나는 것이니 보혈기 하는 것이 으뜸임라 하여 팔물탕, 대보탕, 익기탕, 환약으로는 청심환, 보명단, 태화환, 광제환을 화제하고. 또 어떤 의원은 이 병 은 황쇄족쇄에서 온 병이라 하여 서경탕을 쓰고 답답증을 푼다 하여 해울탕을 쓰건마는 님 그리는 상사병에 일분 효 험이 있으랴.
 
103
어떤 의원은 중한 병에 약으로 되랴. 동인경(銅人經)에 빠 른 것이 침구 밖에 없다 하여 태양이니, 태음이니, 소양이 니, 소음이니, 양명이니, 권음이니 하여 태흉합곱에 사관도 하며 기혈 허로에 보사도 하고 턱아래 장수혈에 침삼분구칠 장(鍼三分灸七壯)하고 결후상 겸천혈에 침삼분구오장. 포구 혈자오혈과 통천혈기문혈을 아무리 뜨고 주어도 일신 삼백 육십 온혈에 님 생각이라는 혈이 없으니 무엇하랴.
 
104
춘향이 마침내 화를 내어,
 
105
"아모 것도 나는 싫어, 약도 싫어, 침도 싫고, 뜸도 싫고, 도련님만 보고지고. 이 몸이 죽어서 님을 잊어야 옳단 말가.
 
106
살어서 이대도록 애타고 그리워야 옳단 말가. 혈육으로 생 긴 몸이 이리 설고 어이 살리.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사자 하 니 고생이라. 전생 죄악 아닐진댄 가중동포정영하다. 애고 애고 어이하리."
 
107
하고 한탄하니 월매는 더욱 기가 막혀,
 
108
"약으로도 못 나을 병이면 신에게나 빌어 볼까. 옛날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으니 지성으로 빌진댄 설마 응치 아 니하랴."
 
109
하고 곧 택일하고 목욕 재계하고 소문난 판수 불러 경단을 설하고 온갖 경을 다 읽는다. 볼설천지팔양경, 삼귀삼지 삼 재경, 금강경, 태을경, 공작경, 반야경, 삼심경, 조왕경, 천수 풀이 도액경 축사하는 옥취경을 다 읽으며 안택경도 읽어,
 
110
"여시아문 일시붙여 공작보살 관세음보살 마하살."
 
111
하고 사흘 이레 경 읽어도 듣지 아니하니 이번에는 무당을 불러,
 
112
"야학산조는 삼천죽절로 풍덩 드리쳐 꽃구경 가자."
 
113
"얼씨고나 조리씨구 거드러거려 놀아 보자."
 
114
"해진걸립 헌걸립에."
 
115
"얼씨구나 조리씨구......"
 
116
이 모양으로 굿을 하여도 반점 효험이 없다. 월매도 그만 시전하여 하루는 춘향을 찾아와서 더럭더럭 화를 내며,
 
117
"애고애고 설운지고. 어인 년의 팔자가 이대도록 기박한 고. 조상부모하고 중년 고생하고 말년에 너 하나를 두어 인 생락을 보잤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뉠 바라고 사자느냐?
 
118
한군사 제갈 양을 갈충보국하랴다가 오장원 추월야에 장성 한 떨어지고, 서산에 백이숙제 두 임금을 안 섬기어 수양산 에 굶어 죽고, 주류천하 개가취는 할고사군 하랴다가 명상 산에 불타 죽고, 삼려대부 굴원이도 위국진춘 애쓰다가 멱 라수에 빠졌거니와 이년아 너는 무슨 짝에 옥중 원혼이 된 단 말이냐. 너도 열녀 되랴거든 개천궁게나 빠지려무나. 너 를 배고 조심할 제 활부정 불식하고 석부정 불좌하고 더러 운 것 볼세라, 위태한 곳 갈세라 십삭 몸을 조히 가져 너를 낳아 기를 적에 진자리에 내가 눕고 마른 자리 너를 뉘여 부증생남증생녀로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금이야 옥이야 귀 히 길러 금볼 같은 내딸 아기 이리 될 줄 어이 알리."
 
119
하고 몸부림을 하고 우는구나.
 
120
춘향도 눈물지며,
 
121
"어머니 우지마오, 하늘이 설마 무심하겠소? 내가 일생에 지은 죄 없으려든 하늘이 설마 무심하리—아니 죽고 살아나 서 어머님 봉양할 터이니 어머니 우지 마오."
 
122
하고 정성으로 위로한다.
 
123
"너도 열녀 되랴거든 개천궁게나 빠지려무나."
 
124
하고 월매가 돌아간 뒤에 춘향은 제 신세를 생각하고 어머 니 신세를 생각하고 혼자 잠 못 이루고 울다가 문득 어슴푸 레 잠이 들었는지 춘향의 몸이 구름같이 훨훨 날아 한 곳에 다다르니 거울같이 맑은 물에 달빛이 비치이고 우거진 푸른 대숲 여름 바람에 버석버석 소리를 낸다.
 
125
"이게 어딘가—내가 어디를 왔나?"
 
126
하고 의아하며 홀로 배회할 때에 문득 소복 입은 차환 한 쌍이 춘향 앞에 읍하고 서며,
 
127
"낭낭께서 낭자를 청하시니 이리로 오옵소서."
 
128
하고 푸른 빛 나는 쌍둥을 들고 앞길을 인도한다. 춘향이 차환의 뒤를 따라가니 대숲 다하는 곳에 한 큰 집이 있고 층계 위 검은 현판에 황금 액자로,
 
129
"만고정렬황능묘(萬古貞烈黃陵廟)"
 
130
라고 뚜렷이 쓰이어 있다.
 
131
"그러면 내가 소상강(瘙湘江)에 왔나."
 
132
하고 계상을 바라보니 촛불이 휘황한 곳에 소복 입은 부인 두 분이 앉았다가 춘향이 이름을 보고 옥패를 넌짓 들어 오 르기를 청한다.
 
133
춘향이 공손히 읍하여,
 
134
"진세천인이 어찌 감히 존엄한 좌석에 오르리이까."
 
135
하고 사양한즉,
 
136
"기특하고 엄전하다. 조선이 자고로 예의지방이라 충효와 열행이 갸륵한 줄을 알거니와 너는 청루 출신으로 저대도록 갸륵하니 소상 만리에 꿈길도 멀거니와 한 번 보고 싶어 어 진 사람으로 수고를 시켰으니 심히 불안하도다."
 
137
하고 일변 칭찬하며 일변 자리에 오르기를 청한다.
 
138
춘향이 계하에서 국궁 재배하고,
 
139
"첩이 비록 배운 배 없사오나 일찍 고서를 보아 부인의 사적을 오매 사모하옵더니 오늘날 부인을 대하오이 이제 죽 사와도 한이 없나이다."
 
140
하고 시녀의 인도를 받아 제에 오르니 이상한 향기가 진동 하여 정신이 황홀하여진다. 두 부인과 좌우에 벌여 있는 여 러 부인에게 공손히 읍하고 자리에 앉았다.
 
141
춘향이 자리에 앉기를 김다령 부인은 춘향을 보며,
 
142
"네가 나를 안다 하니 나의 말을 들어 보아라. 우리 성군 대순씨(大舜氏)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蒼悟山)에 봉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강에 피눈물 뿌려 소상강 대수풀 이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마다 원혼이라. 창오산붕상수절 (蒼悟山崩湘水絶)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竹上之淚乃可滅)이 라 천추에 깊은 한을 호소할 곳이 없었더니 너를 보고 말이 로다."
 
143
하는 말이 맺지 못하여 방성 대곡하니 좌우에 앉은 부인들 이 일시에 일어나 읍한다. 부인이 울음을 그치고 옥패를 넌 짓 들어 좌우를 가리키며,
 
144
"여기 모인 여러 부인을 네 아마도 모르리라. 니는 태임 (太姙)이요, 이는 태사(太似)요, 이는 태강(太姜)이요, 이는 맹강(孟姜)이라."
 
145
하는 부인의 말이 맺지 못하여 남벽에서 어떤 부인이 추추 히 울고 나와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146
"네가 춘향이냐. 갸륵하고 기특하고. 네가 나를 모르리라.
 
147
주루명월옥소성(奏樓明月玉蕭聲)에 농옥하던 화선이라. 소사 의 아내로서 주화산(奏華山) 이별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어 옥통소로 원을 푸니 곡종비거부지처(曲終飛去不知處)에 산하 벽도루춘자개(山下碧桃樓春自開)는 나를 두고 이른 말이 라."
 
148
하는 말이 맺지 못하여 동벽에서 어떤 미인이 단정히 들어 오며 춘향이 손을 잡고,
 
149
"여보게 춘향이 자네 나를 어찌 알리. 십괵명주(十明珠)로 사던 석숭(石崇)의 소애 녹주(綠珠)로서 불측한 조 왕륜(趙 王倫)은 나와 무삼 원수런고. 누전각사불운설(樓前却似紛耘 雪)하니 정시화비옥쇄시(正是花飛玉碎時)라 낙화유사타루인 (落花猶似墮褸人)은 나의 원혼 그 아닌가."
 
150
말이 맺지 못하여 음풍이 일어나고 찬 기운이 소삽하며 촛 불이 벌렁벌렁 휘휘처 툭 꺼지면 무엇이 때그르르 아래와 덜커덩 하는데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처량한 울음 소리만 낭자하며,
 
151
"여보아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랴. 나는 한 고조(漢 高祖)의 척부인(戚夫人)이로라. 우리 화상룡비후에 여후(呂 后)의 독한 손이 조왕여의(趙王如意) 참살하고 나의 수족 끊 은 후에 두 눈 빼고 암약(癌藥) 먹여 인체 호소할 곳 없었더 니 너를 보고 이 말이라."
 
152
하는 말이 끊이매 다시 음풍이 일고 우는 소리 멀어져가며 촛불이 밝아진다.
 
153
이때에 어떤 부인이 황황히 들어오니 만좌 부인들이 일어 나 맞는다. 한헌을 필한 후에 그 부인이 춘향의 손을 잡고,
 
154
"내 오기 늦었다. 유명의 길이 달라, 내 너를 여기서 보니 서로 보기가 늦었도다. 네 나를 모르리라. 나는 신라 박 제 상(朴堤上)의 아내로라. 가군이 국명 받아 일본으로 가신 후 에 춘부춘 추부추에 돌아올 줄 모르시니 무정한 동해수를 주야로 바라다가 일생에 맺힌 원한이 수리재 임 가신 길에 일편석이 되여 있어 일천년 풍우 속에 혼이라도 기다리니 뉘를 보고 일말 하리 너를 보고 이 말이로다."
 
155
하고 흑흑 느껴 우니 만좌가 모두 눈물이다.
 
156
춘향이 무슨 말을 하렬 적에 동방으로 실솔의 소리 스르르 일어나며 일쌍 호접이 펄펄 난다. 깜짝 놀라 잠을 깨니 먼 촌에 닭이 울고 종각에 파루 소리,
 
157
"뎅......뎅......"
 
158
들려온다. 전신에 땀이 쭉 흘렀다.
 
159
"꿈도 이상도 하다."
 
160
하고 춘향은 꿈에 본 광경을 일일이 되풀이하여 생각하더 니,
 
161
"아마도 내가 죽으랴는 꿈이로다."
 
162
하고 옥창으로 비겨드는 지새는 달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 라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스르르 두 뺨에 흘러 내린다.
 
163
이날 아침에 문간 사령이 나와 옥사장을 보고,
 
164
"사또께서 또 형장 많이 깎아 올리라 하옵시니 내일은 아 까운 춘향이가 또 모진 매를 맞나 보이. 이제 또 맞으면 살 수 있나. 춘향 보고 서울 편지나 한 번 해 보라 하소."
 
165
하고 들어갔다.
 
166
옥사장이 이 말을 듣고 춘향을 보고,
 
167
"여보 서울댁 편지나 한장 해보소. 서울서 알고 보면 그 저 있을 리야 있소? 오늘도 사또께서 형장 깎아 올리라 하 옵시니 아마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나나 보오."
 
168
하고 근심하는 빛을 보이니. 춘향도 한숨을 지으며,
 
169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이 말을 들으시면 얼마나 놀라실 까."
 
170
하고 주저하는 것을 옥사장이,
 
171
"놀라시는 것도 놀라시는 것이어니와 사또께서 조금도 마 음이 풀리는 빛은 없고 갈수록 더 독만 오르는 모양이니 이 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날는지 알 수 없으니 잔말 말고 어서 편지 하소."
 
172
하고 권하는 바람에 춘향은,
 
173
"그 말도 당연하오. 그러면 사람이나 하나 얻어 주오."
 
174
하고 몽룡에게 편지를 썼다.
 
175
옥사장이 몽룡을 모시던 방자 뽈짝쇠를 불러 오니 춘향이 반겨하며,
 
176
"돈 열 냥 줄 것이니 서울 가 다녀오면 겨울옷 한 벌 하 여 주리다."
 
177
하고 편지를 내어 준다.
 
178
"압다 그런 말이 당한가. 서울댁의 일이 내 일이니 내 안 가고 누가 가리. 주야배도 다녀옴세."
 
179
하고 돈받아 견대에 넣어 허리에 둘러때고 편지 받아 넣고 충충충 뛰어 나간다.
 
180
"편지는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고."
 
181
몽룡이 서울로 올라온 후로 춘향을 생각하는 정이 가슴에 못이 되어 아무리 잊으려도 잊을 길이 바이 없고 깨면 생각 이고 장면 꿈이다. 꿈에 다니는 자취 곧 날 양이면 박석퇴 넘는 고개 바위라도 닳으리라.
 
182
입맛이 없어지고 잠도 잘 들지 못하니 몸은 더욱 수척하고 정신은 혼몽하여진다. 부모도 다 버리고 세상 공명도 다 버 리고 훌쩍 날아 춘향에게로 갈 맘이 불일 듯하거니와 그렇 게 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리.
 
183
"아니다—이리 할 수 없다. 이러다가 내 몸에 병이 들어 만일 죽어지면 부모에게 불효도 되려니와 춘향은 누구를 의 지하며 또 대장부 세상에 났다가 위로 성군을 도와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어 아름다운 이름을 죽백에 전하지 못하면 천 지가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며 지하에 무슨 낯으로 영웅 호 걸을 대하랴—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184
하고 몽룡은 불철주야로 공부하기를 시작하였다.
 
185
"어서어서 공부하여 어서어서 대과급제하는 것이 춘향이 를 속히 만나는 길이다."
 
186
하고 몽룡은 춘향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더욱 공부에 힘썼다.
 
187
원래 신동이라 일람촉기라는 칭찬을 받는 몽룡은로서 주마 가편으로 드립다 공부를 하니 마치 탄탄대로상에 철리마 달 리듯이 공부가 일취월장한다. 사서 오견을 통달한지 오래거 니와 고금사기며 제자백가의 시집 문집을 모조리 내려보고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경은 잊을 것도 없고 선가(仙家) 불가(佛家)의 수없는 책을 한 번 내리 열람하고 글 읽다가 쉬일 때에는 글씨를 익힌 뒤에는 시도 짓고 글도 지으니 삼 년이 다 못하여 이 몽룡이라면 소년 문장으로 장안에 이름 이 높게 되었고 더우기 시왕 서로는 대가를 압두한다고까지 하게 되었다.
 
188
이렇게 소년 문장 이 몽룡의 명성이 장안에 헌자하니 대가 에서 혼인을 청하는 곳도 비일비재언마는 모두 물리치고 더 욱 공부에만 골몰하였다.
 
189
이 백은 다 무엇인고. 한 퇴지도 우습다. 황 산곡 백낙천은 이를 것도 없거니와 두 자미 도 연명도 두려울 내가 아니로 다 하리만큼 몽룡의 포부는 크게 높게 되었다.
 
190
이때에 알성과를 뵈옵시니 몽룡이 시지를 품에 품고, 동인 사초 강목, 옥편, 장막, 포장, 동대우산, 포전, 말장목, 가초 묶어 구종 지어 앞세우고, 장중에 들어가니 팔도 선비 구름 같이 모였다. 현제판(懸題板) 아래 등대 꽂고, 장전을 바라 보니 백설 같은 백목차일을 보게 위에 높이 치고 세백목설 포장은 구름같이 들려 있고, 어전(御前)을 바라보니 양산 일 산 청흥흑개 기번(旗幡) 보독(輔讀) 봉미선(鳳薇扇)과 용기 (龍旗) 봉기(鳳旗) 호미창(虎尾槍)자개창(紫介槍)삼지창(三枝 槍) 언월도(偃月刀)를 위의 엄숙하게 둘러 꽂고, 병조 판서 (兵曹判書) 도총관(都總管) 승사각신(丞司閣臣)이 어전에 늘 어서고, 금관조복에 서대옥대(犀帶玉帶) 띠고 사모(紗帽) 품 대(品帶) 쌍학흉배(雙鶴胸背) 호수입식(虎鬚笠飾) 청철익(靑 綴翼)에 착군복(着軍腹) 패통개(佩筒盖)는 선전관(宣傳官)이 분명하고 선상(先廂)에 훈련 대장(訓練大將) 중앙에 금군 별 장(禁軍別將) 후상(後廂)에 어영 대장(御營大將) 총관사(總官 使) 별군직(別軍職)과 좌우포장(左右捕將)이 늘어 서고, 위내 금군(偉內禁軍) 칠백명과 전명사알별감(傳命司謁別監)이며 무예차지통장(武藝次知統長)이며, 가전가후별대마병(駕前駕 後別隊馬兵) 좌우에 정원사령(政院使令) 팔십명 나장(邏將) 이며 근복군사(近伏軍士) 대답하고, 어전뇌자(御前牢子) 벌 어섰다.
 
191
시위가 정제한 후에 사알(司謁)이 소리 높여,
 
192
"시관전진전진(試官前進前進)"
 
193
하고 외치니 사관이 고복(叩伏)한 후에 대독관(代讀官)이 글제를 받아 들고 현제판(懸製版)에 내어 거니 그 글제는,
 
194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
 
195
이라 하였다.
 
196
몽룡이 글제를 보더니 꽃밭다 같은 가슴 속에 비단 같은 생각이 물결치듯 솟아온다. 용미연 좋은 벼루에 한림풍월 먹을 갈아 순 황모필 반증동을 흠썩 풀어 왕희지의 필법으 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 휘지하니 문불가점이라 일천(一天) 에 선장(先場)하니 사시관이 글을 보고,
 
197
"과연 만고 문장이요 일 대 명필이로구나."
 
198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며 자자마다 비점이요, 구구마다 관주를 주어 상지 상등으로 장원을 매겨 내뜨리고, 이전에 탁봉(坼封)한 후 장원급제로 금방(金榜)에 뚜렷이 이 몽룡이 라 이름을 쓰고, 청철익 앞을 헤치고 자 세치 긴 소매를 보 기 좋게 활개지며, 정원사령(政院使令)이 충충충 걸어나와 장원봉(壯元峰) 연못가에 뚜렷이 나서면서,
 
199
"이 준사 자제 이 몽룡! 이 몽룡!"
 
200
하고 두세 번을 부르니 장중이 뒤집히고 춘당대가 떠가는 듯하다.
 
201
몽룡이 세수를 다시하고 도포를 고쳐 입고, 선걸음에 썩 나서니 정원 사령이 부액하여 신래진퇴(新來進退)하고, 어전 에 사배(四拜)하고, 어주삼배(御酒三杯) 마신후에 몸에는 청 삼(靑衫)을 입고, 머리에는 어사화(御賜花)를 꽂고, 우으로 주시는 풍악 속에 홍화문(弘化門)을 나서서, 천금 준마상에 둥두렷이 높이 앉아 장안 대로상으로 돌아올 제 은폐청개 (銀陛靑盖)는 앞을 서고, 금의화동(錦衣花童)이 쌍저를 비겨 부니, 뉘라 칭찬하지 아니하며, 뉘라 부러워 아니하랴. 일문 에 큰 영화로 종족이 모여 치하하니 인간에 좋은 것이 장원 급제 밖에 또 있을까?
 
202
사흘 동안 유과하고 선형에 소분한 후에 궐내에 들어가 인 견숙배(引見肅拜)하고 계하에 복지(伏地)하니 성상이,
 
203
"너를 불차(不次)로 쓸 터이니 내외직에 무슨 벼슬을 원하 느냐. 네 소원을 일러라."
 
204
하고 하교하시니 몽룡은 고두사은하고,
 
205
"소신(小臣)이 연소미재(年少微才)로 천은이 망극하와 소 년 급제를 주시니 아리울 바를 모르오나, 구중궁궐 운심(雲 深)하고 사해팔방에 왕화불급(王化不及)하여, 원방에 탐관오 리 수재곡법(受財曲法) 빙공영사(憑公營私)하여 환과고독(鰥 寡孤獨) 민간 질곡 아울 길이 없사오며, 사직지분(社稷之分) 생민대제(生民大制)는 보국대신과 어사오니, 어사를 제주하 옵시면 민간의 각색 각난이며, 각읍의 탐관오리 역력히 살 펴다가 탑하(榻下)에 아뢰오리이다."
 
206
"인재로다. 기특하다. 높은 벼슬 다 버리고 암행어사 구하 는 뜻이 다시 보국충신이로다."
 
207
하고 칭찬하신 후에 전라 어사를 특차하시니, 평생의 소원 이라 어찌 아니 황감하랴.
 
208
어전에 하직하고 수의(繡衣) 유천(鍮天) 삼마패(三馬牌)를 두고리뼈에 단단히 차고 물러나오는 길로 군관(軍官) 비장 (裨將) 서리(書吏) 반당(伴當)을 택출하여 변복시켜 선송(先 送)하고 삼방하인(三房下人) 귀속하여 남 모르게 장을 두고, 몽룡은 철대없는 파랍에 무명실로 끈을 달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갓풀관자 조회당을 걸어 매고 다 떨어진 베 도포를 아무렇게나 걸쳐입고, 칠푼짜리 목통대에다 다 해어진 맛부 치를 웃대님 질근 매고, 변죽 없는 부채를 들고 암행어사란 부모 처자에게도 알리지 못하는 법이라고, 사당 하직하고 청파억졸 분부하고, 남대문 썩 나서서 전라도로 내려간다.
 
209
칠패팔패 이문골, 도저골, 쪽다리를 지나, 청파배다리, 들모 루, 밥전거리, 모래톱 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들 건너 남태령(南太嶺) 넘어, 인덕원(仁德院) 지나 과천(果川)에서 중화하고, 갈미사근내 군포내 미륵당이를 지나, 오봉산(五峰 山) 바라보고, 지지대(遲遲臺)를 올나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 교구정(交龜亭) 돌아 들어 팔달문(八達門)을 내달아 상 류천(上流川) 하류천(下流川) 대황교(大皇橋) 진개를 거쳐, 떡점거리에 중화하고, 중밋 오뮈진위(振威) 칠원(漆原) 소사 (素沙) 비트리 천안(天安)삼거리 지나, 금제(金啼) 역마 갈아 타고, 덕정(德亭)원려 광정 활원 모르원 세숫막 지나, 공주 (公州) 금강(錦江) 휙근 지나, 경천(憬天) 노성(魯城) 황화정 (皇華亭)이 은진 닥다리 능기울 삼례(參禮)를 지나, 여산관 (礪山館)에 숙소하고. 삼례(參禮) 역졸 분부하고, 고산(高山) 지나 전주 감영 들어가서, 한벽루(寒壁樓)를 구경하고 남천 교(南川橋) 돌아 들어 반숙말에 역리 역졸 모두 불러 모든 군호를 정하고, 은밀히 삼배도(三陪道)를 분발한다.
 
210
"너는 예서 내달아서 여산(礪山), 익산(益山), 금구(金溝), 태인(泰仁), 정읍(井邑), 고부(古阜), 흥덕(興德), 고창(高廠), 무장(茂長), 장성(長城), 광주(光州), 남평(南平), 능주(綾洲), 화순(和順), 동복(同福), 창평(昌平), 옥과(玉果)로 돌아 금월 십오일 오시에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211
"여이."
 
212
"너는 예서 내달아 임피(臨皮), 옥구(沃溝), 금제(金堤), 만 경(萬頃), 함열(咸悅), 부안(扶安), 영광(榮光), 함평(咸平), 나 주(羅州), 영암(靈岩), 해남(海南), 장흥(長興), 보성(寶城), 흥 양(興陽), 낙안(樂安), 순천(順天), 광양(光陽), 좌수영(左水 營), 구례(求醴) 들러 곡성(谷城) 다녀 금월 십오일 오시에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213
"여이."
 
214
"나는 예서 전주(全州), 임실(任實), 무주(茂朱), 용담(龍 潭), 금산(錦山), 진안(鎭安), 장수(長水), 순창(淳昌), 담양(潭 陽)을 둘러, 운봉(雲峰) 다녀 남원 사십 팔면을 소소히 염탐 하고, 분중에 머물 것이니 너희들은 급급히 다녀오디 백문 이 불여인견이라. 남의 밀을 믿지 말고 탐관오리와 불충 불 효하는 놈들, 친척 이이웃 음해하는 놈들 술먹고 주정하고 우악하고 어른 존경 모르는 놈, 살인강도 하는 놈, 국고 투 식하는 놈, 유부녀 간통하는 놈, 남의 분묘 사굴하는 놈, 어 진 아내 모함하고 가장두고 서방하고, 제 것 두고 빌어먹고 주색잡기로 판 난 놈, 남의 집에 불놓기, 있는 소리 없는 소 리 거짖말로 꾸며대는 놈, 낱낱이 적어 쥐고 금월 십 오일 오시에 일각 지체 말고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215
"여이."
 
216
이렇듯 분부하여 각처로 떠나 보내고 몽룡은 독행으로 전 주를 떠나 내려간다.
 
217
각읍 수령들은 어사 떴단 말을 풍편에 얻어 먹고 옛 공사 다 버리고 새 공사 닦을 적에 모다 선정이요, 모두 명관이 어니와 못 견디어 나는 놈은 삼판 관속이요,육방 아전이라 관청비는 가슴치고 이방아전은 속이 탄다.
 
218
관전(官錢) 목포(木浦) 환상(還上) 결전(結錢) 복수(卜數) 문 서를 닦으려니 동창(東倉) 서창(西倉)에 수많은 미곡과 목포 는 문턱으로 내입(內入)이라 하여 반 넘어 원님이 먹어 버렸 으니 무엇으로 충수하며 무슨 명목으로 하기(下記)하랴. 이 방은 부르거니 호방은 쓰거니 물끓 듯한다.
 
219
몽룡은 각읍 소문 염탐하여 듣는 대로 보는 대로 낱낱이 적어 쥐며, 노고바위를 지나 임실경 내에 다다르니 때는 마 침 모춘이라 농부들이 갈거니 심으거니 하다가 탁주 병에 점심 먹고, 담배를 피어물고 쉬는 참에 몽룡이도 그 곁에 앉아 담배 한대 얻어 붙여 물고 한 농부더러 말을 붙인다.
 
220
"여보소, 두 소가 함께 가니 어느 소가 잘 달아나오?"
 
221
"소 들으면 노여할 데 그 말하여 무얼하노."
 
222
"그도 그럴 듯하니 안 듣는 이 말이나 할까—자네 고을 원 님 정치는 어떠하다든가?"
 
223
"우리 골에 사망이라고 네 가지 망 있는 것 듣지도 못하 였나—내 이를게 들어 보소. 부자는 패망, 아전은 도망, 백성 은 원망, 출패는 양망—이게 사망 아닌가."
 
224
모두 농부 하하 웃고 몽룡도 웃는다.
 
225
그러나 농부들은 몽룡의 행색이 수상한 것을 보고 서로 눈 짓하며 픽픽 웃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226
그중에 한 농부가 두 눈이 우묵 양볼이 쪽쪽 헛김 나는 골 통대로 꼍불에 푹 박고 담배를 붙이더니 몽룡을 보며,
 
227
"이분네야 어디 삶나? 요런 맵시 구경하소. 실을 팔러 다 니나? 망건 앞은 덜 떴는가?"
 
228
하니 다른 농부 하나가,
 
229
"가만 두송 이사람들! 입은 도포를 보아 하니 그리하여도 쇠끗일세."
 
230
하고 빙정거런다.
 
231
또 한 농부가,
 
232
"기롱마소. 갓상하네. 보아하니 당초에는 선이 노던 왈짜 로세."
 
233
또 한 농부가,
 
234
"의복꼴로 보아하니 그래도 옷거리가 제법일세."
 
235
또 한 어린 농부가 몽룡이 담뱃대를 가리키며,
 
236
"자시는 담뱃대는 전장을 몇 번이나 만났나요?"
 
237
또 한 늙은 농부가 댓진을 빨아들여 누런 침을 퉤 하고 뱉 으며,
 
238
"이 사람들 가만 두소. 저런 사람 무서우니. 아닌 밤중에 다니다가 불지르기가 일수니라—이런 사람은 건드리지를 않 는 것이 상수니라."
 
239
또 한 농부 고개를 저리로 돌리며,
 
240
"꼴이 저리 되었거근 진작 낙향하려무나. 우리네 같이 농 사나 해 먹으려무나."
 
241
하고 담뱃대를 떤다.
 
242
더벅머리 아이놈도 많이 모여와서,
 
243
"이애 구경났다—거지났다."
 
244
하고 가까이 와서 몽룡의 옆구리를 꾹 찌르기도 하고 몽룡 의 등에다가 모래를 던지기도 한다.
 
245
한 농부가 담뱃대를 허리에 찌르고 채찍을 들고 일어나며,
 
246
"에라 에라 가만 두어라. 모양 거룩하옵시다. 영정조(英宗 朝) 시절에 났더면 인물장사 어데 가며 남원 땅에 들어가면 춘향이 서방 갈 데 없다—다들 갈던 밭일나 갈자 신선 놀음 에 도낏 자루 썩어질라."
 
247
한 농부 내달아 이 농부의 뺨을 치며,
 
248
"이자식! 백옥 같은 춘향이를 제 아무리 못 듣는다기로 뉘게다 비하느니. 미친놈 몹쓸놈이로구나."
 
249
하고 왁자 지껄 싸우고 떠든다.
 
250
몽룡이 한참 동안 욕을 얻어 먹었으나 '백옥 같은 춘향'
 
251
이란 마지막 마디가 좋아서 흐뭇하어 그곳을 후리치고 또한 곳으로 다다르니 깊숙한 총림 속에 물소리가 더욱 좋다. 몽 룡이 시냇가 반석 위에 앉아 떠도는 구름도 보고 울어오는 새 소리도 들으니 솟는 흥을 이기지 못하여 풍월한 절귀를 읊으니,
 
252
"우게무석게환속이요 유석무게석불기라 차지유게겸유석하니 천위조화아위시를."
 
253
(有憩無石憩還俗 有石無憩石不奇 有石無憩石不奇 天爲造化我爲詩) 제필하고 돌아서니 갈 길이 아득하다. 시내를 따라 깊이 깊이 들어가니 날은 이미 석양인데 어디로서 종소리 은은히 울려 온다. 아마 절인가 보다. 노곤도 하고 시장도 하니 이 곳에서 오늘밤을 지내리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니 골짜기 닿는 곳에 일좌 불당이 석양을 띄고 있다.
 
254
판두방에 들어가 저녁밥을 얻어 먹고 밤을 지낼 제 여기 모여 공부하던 소년 선비들이 몽룡을 보고 거지로만 여겨 박장 대소하며 온가지로 보채고 기롱한다. 몽룡이 참담 못 하여 정색하고,
 
255
"상없이들 실체하니 선배 도리어 해연하오."
 
256
한즉 소년 공부객들도 좀 겸연쩍어 웃음을 그치고 저희끼 리 의논하기를,
 
257
"제가 가장 양반인 체하니 만일 양반이면 글을 알 것이니 운자를 불러 글을 짓거든 경대하고 글을 못 짓거든 타둔방 축(打臀放逐)하자."
 
258
"그러자."
 
259
하여 규장전운(奎章全韻)을 펴 놓고 여러 선배들이 고르고 골나 강운으로만 골라내니 푸를창(蒼) 창포창(菖) 되강(羌) 소똥구리당(糖) 기장이 량(梁).
 
260
몽룡이 운자를 보고 응구첩대하니,
 
261
"우연위객 도산창 (偶然爲客到山蒼)하니
262
약포향생 구절창 (藥圃香生九節菖)을
263
사외옥봉은 련북극 (寺外玉峰蓮北極)이오
264
불전금엽은 자서강 (佛前金葉自西羌)을
265
신여야학 녕수붕 (身如野鶴寧受鵬)하랴
266
심사한선 불선당 (心似寒蟬不羨螳)을
267
종파상방 인진반 (鍾罷上方因進飯)하니
268
등반선채 촉취량 (登盤仙菜促炊粱)을."
 
269
이 글을 보고 여러 선배들이 백배 사례하며 술을 나누어 밤이 늦도록 즐긴다. 몽룡은 눈치를 아니 체오리만큼 가끔 소문을 탐지하려고 여러 말을 물은 끝에,
 
270
"내가 남원 읍내 사람에게 취심차로 정변(呈辯)코자 하니 부사가 공사나 분변하는지요?"
 
271
하고 물었다. 한 선배 나서며,
 
272
"남원 부사 말을 마오. 탐재 호색하기로는 둘도 없지요.
 
273
내 말을 들어 보오. 백성이 소를 잃고 도적 잡아 고과(告課) 하니 부사란 자가 양척을 불러 놓고 원척에게 분부하는 말 이 네 소가 몇 필이냐? 원척 대답이 황소 하필, 암소 한 필 다만 두 필 두었드니 황소 한 필을 이놈이 도적하였나이다 한즉 부사가 도적놈더러 하는 말이, 너는 소가 몇 필이니?
 
274
소인은 적빈하와 소 한 필도 없나이다. 그런즉 부사란 자 하는 말이 소 임자놈 들어 보아라! 너는 무슨 복으로 두 필 씩 소를 두고 또 저 놈은 무슨 죄로 한 필도 없단 말가? 어 차어피에 한 필씩 나누었으면 사면이 무탈하고 송리가 공평 이라 하고 소임자의 소를 뺏아 소 도둑놈을 주었으니 이런 공사 또 있소? 그도 그러려니와 백옥 같은 춘향에게 욕을 보고 엄형 중치하여 하옥하니 춘향이 병이 든지 해포만에 거월 초생에 그만 죽어 저산 너머 초빙하여 묻었으니 긴들 아니 직악이요?"
 
275
몽룡이 춘향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설운 마음이 복받쳐 입시울이 비쭉비쭉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그 선배가 밖에 나가 중을 불러,
 
276
"춘향이 죽었단 말을 하였더니 걸인의 형상을 보니 불승 비감 불금 유체하니 그 아니 고이하냐. 패 하나를 깎았다가 아모 초빙한테라도 꽂아 놓고 멀리 서서 구경이나 하자."
 
277
하고 목패에,
 
278
"본부기생수절원사춘향지묘(本府妓生守節寃死春香之墓)"
 
279
라고 뚜렷이 써서 중놈을 주어 보내었다.
 
280
몽룡은 춘향 죽은 말을 듣고 어찌 할 줄을 몰라 날도 새기 전에 절에서 나와 희미한 달빛 밑에 풀밭으로 수풀사이로 허둥지둥 춘향의 무덤을 찾다가 마침내 찾아내어 무덤 앞에 펄썩 앉으니 모골이 송연하고 정신이 황망하다. 남부끄런 줄도 전혀 잊고 통곡하며 하는 말이,
 
281
"아이고 춘향아 네 이것이 웬 일이니? 우리 둘의 백년 기 약 이제는 모두 허사로고나. 천리 원정 내 오기는 너만 보 려 함일러니 죽단 말이 웬 말이냐? 공산야월 적막한데 누웠 구나 잠자나냐. 내가 여기 왔건마는 모르는 듯 누웠고나. 산 초와 야화는 해마다 네 무덤에 푸르련마는 네 옥골량량혼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 애곡 애곡 설운지고. 춘향아! 춘향 아! 얼골이나 잠깐 보자 음성이나 한 마디 들어 보자 너를 어디가 다시 보리. 보고 싶어 어찌하라느냐! 차마 설어 못 살겠다—지금 날 다려가거라."
 
282
하고 애연히 슬피 우니 추목도 눈물을 머금은 듯 금수도 느끼는 듯 밤 이슬은 몽룡의 옷을 축축이 적신다.
 
283
이때에 건넛마을 강 좌수가 막내동이 외딸을 죽여 버리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담배만 피 우더니 새벽 닭이 재오쳐 울 때에 어이한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문을 열고 바라보니 죽은 딸의 초빙한 무덤 앞에 정녕 어떤 사나이가 앉아 운다. 고이히 여겨 곁에서 자는 마누라를 흔들어 깨우며,
 
284
"고이한 일이로군. 여보 마누라 우리 아기가 살았을 때에 시집 못간 처녀여든 어떤 놈이 와서 백년 기약이 허사니 보 고 싶어 어이 살리 하고 두다리고 울고 앉았으니 이런 요변 이 또 있는가. 알마치 밤일세 망정 남 들으면 망신이라 어 허 고이한 놈 다 보겠다."
 
285
하고는 마누라의 대답도 다 듣지 아니하고 소리소리질러,
 
286
"이놈 여보아라, 고도쇠야 몽치 차고 건너가서 아가씨 무 덤에 앉아 있는 놈을 란장결치 박살하고 오너라?"
 
287
고도쇠 영을 듣고 눈꿉을 주먹으로 뚝뚝 떼며 몽치를 차고 달려 건너가,
 
288
"이놈! 이놈! 어디서 빌어먹던 놈이건데 남의 아가씨 무덤 에 와 앉아선 애곡 데고 울음을 울어 남이 곤한 잠을 깨우 게 하느냐?"
 
289
하고 몽치를 둘러메고 덤비니 모아룡이 착급하여 혼이 떠 서 삼십륙계 줄행랑으로 저사하고 달아나니 그렇지 않아도 밤 이슬에 젖은 옷에 땀이 쪼르르 흘러 전신에서 무럭무럭 김이 오른다.
 
290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바라보니 기암이 충충한 절벽이 둘 린 곳에 폭포 하나가 떨어지고 좌우 반석상에는 제명이 무 수하다.
 
291
"어 봉변이로군. 춘향의 무덤 아닌 것만 다행이다. 에이 내가 어리석다. 여기서도 남원 부중인 삼 사십리나 되거든 춘향이 죽었기로 무덤이 여기 있을 리가 있다고—그악 소년 들한테 속았군."
 
292
하고 혼자 빙그레 웃고 차고 맑은 시냇물에 세수를 하고 앉아서 땀을 들이며 오언 절구 한 수를 지었다—
 
293
"보월하니 천화영이요 등교하니 답수성을 산중에 다재상하니 다면이 반조정을."
 
294
(步月穿花影 登橋踏水聲 山中多宰相 石面半朝廷) 시내를 따라 풍경을 완상하며 걸음걸음 올라가니 하늘에 닿은 되봉우리 중턱에 일좌 불당이 있고 거기서 재올리는 종소리가 들려 온다.
 
295
이 절은 만복사(萬福寺)라. 일찍 월매가 자식을 비노라고 논 섬지기 시주하고 정성으로 비던 곳이다. 춘삼이 난 후에 도 해마다 두 번씩 춘추에 재를 올리더니 춘향이 애매한 죄 로 중장 맞고 죽게 되었다고 도량을 소세하고 불공축원을 하는 것이다.
 
296
어떤 중은 편발을 쓰고 어떤 중능 낙관을 쓰고 어떤 중은 가사를 메고 또 어떤 중은 바라를 들고 또 어떤 중은 광쇠 를 들고 또 어떤 중은 죽비를 들고 또 어떤 중은 목탁을 들 고 또 어떤 중은 증쇠를 들고 조고마한 상좌 놈은 상모단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 법고를 울리니,
 
297
"두리둥둥둥."
 
298
광쇠를 치니,
 
299
"차르르 차르르."
 
300
증쇠를 치니,
 
301
"땅......땅......땅땅땅땅."
 
302
바라를 치니,
 
303
"처르릉......처르릉."
 
304
그중에 늙은 중이 목탁을 또딱 치며 엎데었다 일어났다 하 며, 나무아미 타불 나무서방정토 극락세계 이십육만억 구천구백 동명동호 대 자대비 나무아미타불 석가여래 문수보살 지장보살 천수천인 관제보살 마하살 미륵불 관세음보살 오백나한 팔부신장 원효(元曉) 의상(義湘) 지공(至恭) 무학(無學) 이 모양으로 부르면 모든 중들은 합장하고 엎드리며
 
305
"나미아미 타불."
 
306
하고 처르르 꽹 또도락 두리둥둥 하며 울린다.
 
307
노승은 더욱 정성스러운 소리로
 
308
"해동 조선국 전라좌도 남원부 임자생 공명 성 춘향은 서 운이 불길하여 옥중에 갇히어 모진 형벌에 명재경각이 오니 한양 삼청동 이 몽룡씨 대과급제하여 전라 감사나 전라 어 사 점지하시기를 소......원......성......취."
 
309
하고 축원한다.
 
310
몽룡은 감격하여 혼잣말로
 
311
"우리 선형덕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이 덕이로구나."
 
312
하고 한탄하였다.
 
313
절에서 재밥으로 요기하고 길을 떠나 앞고개로 넘어갈제 건너 비탈 좁은 길로 어떤 더벅머리 아이놈이 신세타령을 부르곤 올라온다— 어사가리 너히 어이가리 너허, 한양 천리를 네 어이 가리.
 
314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대광보국 숭록대부 팔도방백 각읍수령 하여 가고—요내 신세 어떠하여 십세 안에 양친 굼로하고 삼 십이 다 되도록 마누라 하나 못 얻어 보고 길품 팔아 먹단 말가. 단 십릴르 못다 와서 발가락이 다 물었네 잔약한 요 내 다리 몇 날 걸어 서울 가리 조 자룡의 청총마연 이제 잠 깐에 가련마는—어이 설운지고 한양 칠백리 어이 가려나.
 
315
몽룡이 그 아이가 다 올라오기를 김다령,
 
316
"아나 이 애야."
 
317
하고 부른즉 그 아이 우뚝 서며,
 
318
"아나 이 애라니! 새파란 젊은 양반이 나 많은 총각 어른 을 보고 아나 이애?"
 
319
"이애 내가 실수하였다—너 어디 가느냐."
 
320
"서울 가오."
 
321
"서울 어디 가느냐."
 
322
"남원 춘향이란 아이 편지 갖고 삼청동 구관 사또 댁으로 가오."
 
323
몽룡이 반겨하며,
 
324
"그 편지 이리 다고. 너 공교히 나를 아니 만났더면 허행 할 뻔하였다."
 
325
하고 편지를 달랐고 손을 내이미니 그 아이 어이가 없어,
 
326
"그 어인 말씀이요? 댁이 누군데 남의 규중 편지를 달라 고 하오?"
 
327
"헌 도포나 얻어 입고 다니면 양반이요? 행세가 양반이라 야 양반이지."
 
328
"내 행세 잘못 간 것 있느냐?"
 
329
"불규인사서(不窺人私書)라니 남의 편지를 보자는 게 양반 의 행세요? 후리 아들놈의 행세지."
 
330
"어 그놈 나중에는 무슨 소리가 나올는지 모르겠구나."
 
331
하고 몽룡이 허허 웃고,
 
332
"내가 그 편지를 달랠 만하기에 달라는 게다. 염려 말고 이리 다고."
 
333
"그러면 도련님과 일가나 되시오?"
 
334
"오냐 내가 도련님과 일가다. 또 네가 그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가더라도 도련님은 절로 공부하러 가시고 안계시니, 그 편지 전할 길 바이 없고 또 만일 대감께서 알으시면 너 만 경칠 터이니 그 편지를 나를 주면 내가 대신 전하마."
 
335
"분명 그러하오?"
 
336
"두 말이겠느냐."
 
337
"그러면 편지를 누를 주었다고 하라오?"
 
338
"내가 그리 가는 길이다."
 
339
"그러면 반삭 받은 것은 어찌하란 말이요?"
 
340
"글랑 그만 두어라—양반이 두 말 하랴."
 
341
"꼭 떼어 보지 않고 전하랴오?"
 
342
"아무렴."
 
343
아이놈이 그제야 전대를 끌러 춘향의 편지를 내어,
 
344
"옜소."
 
345
하고 몽룡을 주며,
 
346
"꼭 신전하고 답장 맡아 보내시오—급한 편지요—그래야 양반이요."
 
347
하고 못 미더운 듯이 몽룡을 본다. 몽룡이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들며,
 
348
"오냐 염려마라."
 
349
아이놈이 산굽이라 돌아서기를 기다려 몽룡이 편지를 떼어 보니,
 
350
"별후광음이 우금삼제에 천리 한양에 어안(魚雁)이 끊였사 오니, 하희봉창이 갈유기극하오리까. 부모님 뫼시옵고 채의 도무(彩衣蹈舞) 하옵시며 요조숙녀와 좋은 짝을 지으시와 종 고화명(鍾鼓和鳴) 하옵는지, 첨앙불급하와 복모불임하옵나이 다. 소첩은 일야상사로 낭군 오시기만 기다리옵고 화조월석 을 눈물로 보내옵더니, 신관 도임 후에 수청 분부 거절하온 죄로 엄형중치를 당하옵고 황쇄족쇄로 옥에 있는지, 이미 두성상이라, 아직 병든 몸이 일우잔명을 근보하오나, 옥졸의 말이 미구에 장하 원혼이도리라 하옵기 삼가 척소(尺素)를 닦아, 차생영결(此生永訣)이나 하옵나니 바라건댄 낭군은 천 만보중하시와 공성명수(功成名遂) 하신 후에, 황천에서 서로 만나 금생에 미진한 연분이나 이으시게 하시옵소서. 조희를 대하오매 억색하여 사뢰올 바를 알지 못하와 불비잠상.
 
351
년월일에 남원 옥 중 소첩 춘향은 상서."
 
352
라 하고 다시,
 
353
"소첩은 낭군을 위하와 수절 원사오니 도로혀 이몸이 영 화어니와, 불쌍한 모친을 딸을 잃고 누를 의지하오리까. 낭 군께옵서 어엿비 여기시와, 노모를 댁 곁에 두시옵고 생전 에 구제하시다가, 사후에 해골이나 거두어 주시오면, 돌아갈 길 없는 원혼이 지하에 눈을 감겠사오며 결초보은하리이 다."
 
354
하였다.
 
355
몽룡은 편지를 다 보지 못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울음 이 북받침을 깨달았다. 그러나 죽은 줄 여겼더니 살았으니 다행이요, 또 내가 왔으니 염려 없다 하고 그곳을 떠나 남 원 부중을 향하고 내려갈 제, 어떤 총각 두 놈이 호미를 차 고 소시랑을 메고 잠방이를 잔뜩 부르걷어 시커먼 다릴르 볼기짝까지 내오놓고 논두렁으로 걸어 갈면서 소리를 한다.
 
356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뻔뻔히 놀고도 호의호식 염려없는데, 어떤 사람 팔자 긴박하여 밤낮 일하고도 배골는고. 아이고 내 이 신세야.
 
357
하면 한 놈은,
 
358
"이 마을 총각 저 마을 처녀 시집 장가 제법일다. 공번된 하늘 아래 세상 일이 경위지다."
 
359
하고 노래를 부른다.
 
360
몽룡이 두 총각의 뒤를 따라가니 어떤 매우 큰 부자의 농 터인 모양이라. 여러 십명 남녀가 일자로 늘여 엎데어 모를 심다가, 점심 먹노라고 둘러앉아 쉬는 판에, 짖궂은 머슴들 이 두레박과 괭이를 울리며 춤추며 먹이고 받고 상사되를 부른다.
 
361
"두리둥둥 꽹마꽹 어여루 상사뒤여."
 
362
"선리선곤(仙李乾坤) 태편시절 강구미복(康衢微服)등요듣 는 요 임금이 버금이라."
 
363
"두둥둥 상사뒤여."
 
364
"천생 만민하실 적에 필 수지직 다르것다."
 
365
"어여루 상사뒤여."
 
366
"이음양 순사시는 삼정승 육판서 대관님네 직분이요."
 
367
"어여루 상사뒤여."
 
368
"사서오경 제작백가 공부하여 대과 급제하옵기는 선비님 네 직분이요."
 
369
"어여루 상사뒤여."
 
370
"높은 데 갈면 밭이 되고 낮은데 갈면 논이 된다. 오곡백 과 농사 지어 부모 공양하옵기는 우리네의 직분이요."
 
371
"어여루 상사뒤여."
 
372
"기러기떼 늘어 엎데어 게거름이 제격이란, 투고 씨운 보 리밥에 보리 탁주 맞춤이라."
 
373
"어여루 상사뒤여."
 
374
"초두벌 만다리에 기음을 매어 갈 제 유월 염천 더운 날 에 한덕화하 어찌할꼬."
 
375
"어여루 상사뒤여."
 
376
하고 몽룡이 우두커니 섰는 양을 보고 끽끽거리고 일제히 웃는다.
 
377
"승편 세월 좋을씨고 우리 성상 덕이로다. 타작한 첫 곡 식은 상감님께 공을 하세."
 
378
"상사뒤 상사뒤여."
 
379
"남은 곡식 있거들랑 부모 공양하여 봅세."
 
380
"두리둥둥 상사뒤여."
 
381
"또 남은 곡식이 있거들랑 차자권속 먹여 봅세."
 
382
"암 그렇지 상사뒤여."
 
383
"또 남은 곡식 있거들랑 일가친척 구제합세."
 
384
"여여루 상사뒤여."
 
385
"여바라 농부야 들어 보소. 불쌍하고 가련하고나 남원에 춘향이 가련하다."
 
386
"어여루 상사뒤여."
 
387
"백옥 같은 춘향이가 비명횡사하단 말가불측한 이 도령은 한 번 가고 소식 없네."
 
388
"어여루 상사뒤여."
 
389
그중에 한 농부,
 
390
"아따 이 도령놈이 오기만 오량이면 논두렁에 엎어놓고 넓적하도록 가랫장부 볼기를 따려 주련마는."
 
391
하니 다른 농부들이 모다 하하하 웃는다.
 
392
몽룡이 말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앉았다가 무슨 핑계로 말 을 붙여 볼 양으로,
 
393
"저 농군 여봅시. 검은 소로 논을 가니 컴캄하지 아니 하 지?"
 
394
그 농부 몽룡을 보며,
 
395
"그렇기에 밝으라고 볏다랏지."
 
396
"볏달았으면 응당 더우려니."
 
397
"덥기에 성애장 붙였다오."
 
398
"성애장 붙였으니 응당 차지."
 
399
"차기에쇠게 양지머리 있다오."
 
400
이렇게 수작할 때에 한 농부 나서며,
 
401
"우습고 싱거운 자식 다 보겠다. 얻어 먹는 비렁방이 녀 석이 반말지거리가 웬 일이야. 저런 녀석은 근중을 알게 서 를 순대째 빼어 줄가 보다."
 
402
하고 불량한 눈을 사라리니 그중에 늙은 농부 하나가 힐끗 몽룡을 보더니,
 
403
"아서라 그말 마라. 그분을 솜솜히 뜯어 보니 주제는 허 술해도 손길을 보아하니 양반일시 적실하고 세폭 자락이 과 히 맥물은 아니로다—저런 것이 어사 같아서 무서우니라."
 
404
한 농부 픽 웃으며,
 
405
"영감 너무 아는 체마오. 손길이 희면 다 양반인가요. 나 는 이놈을 뜯어 보니 움속에서 송굿질만 하든 갓바치 아들 이 분명하오."
 
406
하고 하하 웃는다.
 
407
늙은 농부가 몽룡을 보고,
 
408
"어디 살며 어디로 가시오?"
 
409
하고 미안한 듯이 물으니 몽룡은,
 
410
"서울 살더니 능광주(綾光州) 땅으로 관관차로 가는 길에 노자는 떨어지고 공교히 점심때기에 요기나 할까하고 앉았 지."
 
411
하는 말을 듣고 늙은 농부가 주선하여 열애 한술밥으로 한 그릇을 두둑이 준다. 몽룡이 잘 먹은 후에 치사하고,
 
412
"다시 보자이까."
 
413
하야 작별하고 그곳을 떠났다.
 
414
그곳을 떠나 얼마를 가니 길가에 주막이 있고, 집뒤 정자 나무 밑에 영감이 앉아 총홀치꼬며, 막걸리를 파는데 갓쓰 고 중추막 입고 긴 담뱃대 중등을 쥐고, 삼 사인이 둘러앉 어 권커니 사양커니 다들 반장은 된 모양이다. 몽룡이 보선 목 주머니를 똑똑 떨어 돈 한푼을 내어 쥐고,
 
415
"술 한잔 내자이까."
 
416
하니 영감이 몽룡의 행색을 보고,
 
417
"돈 먼저 내시오."
 
418
한다.
 
419
몽룡이 쥐었던 돈을 내어 주고 한푼어치 막걸리를 줄라 받 아 먹고 입 씻고 나서,
 
420
"영감도 한잔 먹으리이까."
 
421
하니 영감이,
 
422
"앗으시오 고만두오 지나가는 행인이 무슨 돈이 넉넉하여 나를 한잔 먹이시려오."
 
423
하고 사양한다. 몽룡이 시침이 떼고,
 
424
"내가 무슨 돈이 있어 남을 술 먹일까. 영감의 술이니 촐 촐한데 한잔이란 먹으란 말이지."
 
425
한즉 영감이 성을 내며,
 
426
"내 술을 내가 먹든지 마든지 인역은 무엇이완대 먹으란 말으라 총집을 하옵소?"
 
427
몽룡이 웃으며,
 
428
"그야 정 먹기 싫거든 먹지 말라이까 공연히 남과 싸움하 려 드노."
 
429
하고 좌중을 돌아보며,
 
430
"그 말은 다 웃노라 말이어니와 나는 본래 서울 사람으로 소간 있어 남원에 오거니와 본관이 명관이라지?"
 
431
한즉 좌중이 모두 웃는다. 영감이 얼굴을 찡기며,
 
432
"명관이라 하오."
 
433
"그 웬 말인고?"
 
434
좌중에 한 사람이 나앉으며,
 
435
"명관이지—밝을명자 명관이 아니라 어두울명자 명관이 지."
 
436
"그 어찌 그러하오?"
 
437
"본관이란 양반이 쇠를 매우 좋아하는 양반이지요. 송사 야 옳거나 그르건나 돈만 주면 이기어 주고 돈이라면 아이 고름에 채인 것까지 씨없이 긁어 가는데, 남원 사십 팔면에 녹슨 돈 한 푼 안 남았고 이대로 가면 일후에 낳는 아이는 돈 얼굴도 못 보지요."
 
438
몽룡이 놀라는 체하고,
 
439
"어허 민세 말 아니요."
 
440
다른 사람이 나앉아 가래침을 드스르며,
 
441
"돈도 돈이려니와 인명이 부지할 길이 없지요—살인이 남 면 너희 동네가 본래 지광인희한데 한 사람 죽은 것도 큰일 이어든 또 한 사람이 죽으면 되겠느냐. 몰아내치라 하니 이 런 송사 또 있으며 봄철에 매 호에 계란한개 씩 주고 가을 에 영계 한 마리 씩 바치라 하고 감영에서 환상 한 섬 타오 면 말가웃씩 떼어내고. 세곡 한 섬에 열 냥 하면 관수 값은 열 두석 냥 받고 향교 소임 값 받고 하기 깎고 소임 파니 이러고 백성이 살 수 있소?"
 
442
또 한 사람이 나앉아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드리며,
 
443
"그나 그 뿐이요? 탐재호색이 아무리 한테 붙은 문자기로 본관처럼 호색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이요—기생이나 희롱하 는 것이야 누라 말라 하겠소마는, 반반한 계집만 눈에 띄면 사족을 못 쓰고 기어코 일을 내이니 남원 관속의 계집 하나 성한 것 없지요. 그나 그뿐인가 수절하는 계집애까지 훼절 을 하라고, 때리고 가두고, 춘향이도 그 약질이 인제 장하 원혼 될 터이니 그런 앙급자손할 일이 또 어디 있소?"
 
444
영감이 꼬는 총을치를 홱 내던지고 돌아 앉으며,
 
445
"본관도 본관이려니와 구관의 아들 이 몽룡이란 자가 원 채 죽일 놈이지요. 그놈이 백옥 같은 춘향일르 꾀이어 백년 가약을 정하여 놓고는, 한 번 서울 간 뒤로 이내 소식이 없 고 춘향이가 저렇게 죽게 되어도 일향 모른 체하니, 도시 그런 행세가 있단 말이요? 그놈이 남원 땅에 발을 들여 놓 는 날이면 하늘 높은 줄을 알려 주련마는! 어 무정 맹랑한 아이 년석이 다 있겠나."
 
446
몽룡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447
"그러면 구관도 원 노릇을 잘못하였나 보오."
 
448
하고 눈을 떠보니 영감이,
 
449
"해괴한 말 다 듣네.
 
450
하는 듯이 눈을 끔뻑거리며,
 
451
"구관이야 명관이지—백성들이 동비를 세우자고 숟가락을 거두지요."
 
452
한다.
 
453
몽룡이 주막을 떠나 점점 부중으로 가까이 들어가니 면주 인은 걸태전령(乞太傳令) 하러 가고 풍헌(風憲) 약정(約正) 면임(面任)들은 답인(踏印) 수결(手訣) 받아 들고 가가호호에 민간수렴하노라고 야단이다. 이달 십오일이 본관 원님 생신 이라 하여 대주소호 분등하여 돈과 쌀을 들이라고 하고, 각 면 부민을 성책하여 일등에 송아지 한 마리, 일등에 면주 한 필 받아들이니, 민원이 창천하고 집집이 울음이다. 농시 방장에 남부여대하고 부로후유하고 길에 닿은 것이 이 이땅 에 살 수 없어 정든 고향 이별하고 유리하는 백성이다.
 
454
백성이 도탄에 들었으니 백일이 무광하고 산천도 무색하 다. 몽룡이 비감하여 눈물을 머금고,
 
455
"이 백성 어이하리 이 백성 어이하리 도탄에 든 이 백성을 내 어이하리?"
 
456
하고 한탄하며 석양을 띠고 박석퇴를 올라섰다.
 
457
좌우 산천 바라보니 모두 옛 보던 것이요.
 
458
길가에 늙은 소나무는 춘향과 이별할 때 가리켜 맹세하던 것이다. 사시장청을 자랑할 솔잎도 춘풍추우에 몇 번을 떨 어지고 새로 피었건마는 춘향의 절개는 한 번도 일운 적이 없었다.
 
459
늘어진 수양버들은 내 나귀 매던 곳이요, 멀리 뵈는 선원 사(禪院寺)는 양반 종성 듣던 데다. 교룡산(蛟龍山) 영주 고 개 어느 것이 안 반가우랴. 부중에 늘어선 집 예와 다름 없 건마는 어른은 더 늙고 아이들은 자랐으니 간혹 예보던 모 습이 눈에 익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폐포파립에 걸객으 로 차린 구관 자제 이 몽룡을 알아볼 이는 바이 없다.
 
460
한 걸음 한 걸음 남문을 나서서 광한루에 오르니 오작교자 바로 앞인데 춘향이 그네 뛰던 나무는 예와 같이 잎이 푸래 꾀꼬리만 울어낸다. 옛일을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건마는 인 사 변천을 헤오보니 감개 또한 무량하다.
 
461
남원 부중으로 이리 저리 거닐면서 민정도 살피고 예보던 곳을 구경도 하다가, 해가 지고 황혼이 되기를 기다려, 방자 데리고 옛날 다니던 길로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 문전이 냉 락하고 처마는 기울고 담은 무너지어 옛 면목이 간 곳 없 다. 대문짝에 붙인 장수 그림은 투구와 부월머리만 남아 있 고 문 위에,
 
462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라고 몽룡이 글씨로 써 붙인 것도 풍만 우세에 다 떨어지고 귀할귀 자만 남아 있 고, 행랑채는 찌그러지고 중문간도 흩어지고 안채도 돌아보 지를 아니하여 나간 집 같고 앞 뒤벽은 자빠지고 면회한 뒷 담도 간간히 무너져서 솔가지로 막아 놓았고 중문 안을 엿 보니 춘향이 있던 부용당은 살만 남은 덧문이 꼭꼭 닫았는 데, 붙였던 상산사호 네 신세는 간 곳도 없고 바둑판만 희 미하고, 연못가에 두루미 한 쌍 놓았던 것도, 한 짝은 간데 없고, 한 짝만 남아 있어 죽지는 상하고 한 다리는 절어 외 나래만 펼쳐 들고 두루쭉두루쭉하고, 섬 밑에 파초도 말라 버리고, 한 떨기 푸른 대만 옛빛을 안 고치고 오는 손을 기 다린다.
 
463
향나무 밑에 비루먹은 청삽살이 기운없이 졸다가 구면객도 몰라보고 뽀시시 일어나며 컹컹 짖고 내닫는다.
 
464
'마당에 꼴을 비고 아궁이에서 토끼 자고 부뚜막에 다람 쥐 기고 물두멍에 땅벌레 집 밥 솥에는 개아미집'이란 말 은 옛말로 들었거니와, 어찌하면 이대도록 황량하게 되었을 까. 연못도 다 메우고 화초단석 가산도 모두 다 무너지고 화분은 깨어져서 이리 대굴 저리 대굴 굴렀으니 옛 모양은 어디서 찾나. 중문을 엿보아도 인기척이 끊였으니 웬 일인 고 하고 한 걸음, 두 걸음 앞마당으로 들어가니 뒤꼍으로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소리없이 걸어가서 가만히 엿보니 월매가 황토로 모은 단 위에 새소반에 정하수를 떠놓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빈다—
 
465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전에 비나이다."
 
466
서울 계신 이 몽룡씨 대과 급제하여 전라 감사나 전라 어 사 하여 나려와서 우리 춘향 살려 주게 하옵소서.
 
467
하고 같은 소리를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빌고는 절하고 절하고는 또 빌고 상단이를 시켜 정화수를 갈아 놓 고 또 빈다.
 
468
빌기를 다한 후에 기운없이 비슬비슬 상단에게 손을 끌려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질탕관에 죽을 쑤노라고 진나무에 불 을 불어 몽당치마로 눈을 씻으며 성화한다.
 
469
하도 불은 안 붙고 연기만 대고 나니 월매 부지깽이를 탁 내어 던지며,
 
470
"날 잡아 갈 귀신은 어디 갔노. 곧 칼끝을 물고 엎더지기 라도 하련마는 저를 두고 어찌하리—자는 듯이 죽고 지고 천 산지산 할 것 없이 이가 놈이 원수로구나."
 
471
하고 몸부림을 한다.
 
472
몽룡이 살그머니 중문 밖에 나섰다가 기침하며,
 
473
"춘향 어미 게 있는가."
 
474
하고 부르니 첫 소리는 못 알아듣고 둘째 소리에 겨우,
 
475
"게 누구와 계시오?"
 
476
하고 중문을 바라본다.
 
477
"내로세."
 
478
"내라니 누구란 말인가.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그 누구라 날 찾는고."
 
479
"내로세—내로세."
 
480
"내라니 동편 굴뚝의 아들이란 말인가. 걸객도 눈이 있지 집 모양을 보아하니 무엇을 주리라고 이런 집에 들어 왔노.
 
481
옥에 갇힌 딸 먹이랴고 싸라기죽 한줌을 끓이옵네—다른 집 에나 가보소."
 
482
"이 사람 나를 몰라? 자네가 나를 몰라?"
 
483
월매 그제야 알아들은 듯이 일어나 나오며,
 
484
"오호 김 풍헌님 와 계시오? 돈 두냥 꾸어온 것 수히 가 져 갈 것이니 너무 그리 재촉 마시고 설운 사정이나 들어 주시오—저 점옥이 아시지요? 금산 사는 점옥이요. 그 애는 신관 사또 수청들어 주야통창 행락하고, 남원읍 대소사에 제게 먼저 청을 하면 백발백중 영락없고. 사또가 대혹하여 저의 아범을 행수군관(行首軍官) 제 오라비는 서창고자(西倉 庫子) 주고 읍내 논 열섬지기 군청뒤 밭 보름가리, 모다 치 면 오륙천금어치나 주었으니 요런 것을 마다하고 춘향이년 의 짓을 보시오."
 
485
"이 사람 내로세."
 
486
"오호 내 점어 이 풍헌 자제인가."
 
487
"아니로세—나를 몰라?"
 
488
"옳의 이제야 알겠네. 자네가 봉우재 사는 어린 돌인가.
 
489
이 사람 향내에 먹고 간 죽 값 칠 푼 주고 가소. 요사이 어 려워서 못 견디겠네."
 
490
하고 월매 몽룡이 앞으로 바싹 다가서니 몽룡이 한끗 측은 하고 한끗 어이없어 사면을 돌아 보아 듣는 사람이나 없나 보고,
 
491
"이 사람 나를 몰라? 내가 춘향이 서방 이 도령이로세."
 
492
하고 중문으로 들어서려 하는 것을 월매 두 손으로 몽룡의 가슴을 밀어 내치고,
 
493
"애고 이놈의 자식—어디서 난 놈의 아들이냐? 늙은 것이 곧이 듣고 불러들여 재우거든 짭짤한 것 도적질하여 갈 양 으로 그러느냐. 해를 곱다케 지이다가 같지 아닌 자식 다 보겠네. 상단이 나와서 이 녀석 내어 쫓고 대문 닫아 걸어 라."
 
494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495
몽룡이 중문 밖으로 떼밀려 나가면서,
 
496
"이 사람 망녕일세. 내가 정말 이 도령일세. 내 사정 들어 보소. 가운이 불행하여 과거도 못 마치고 벼슬도 끊어져서 가산을 탕패하고, 유리걸식 다니더니 우연히 예와서 소문을 들으니 자네 딸이 날로 하여 엄형 중지 당하고 옥에 들어 죽을 고생을 한다 하니, 더 볼 낯이 없건마는 옛 정리를 생 각하고 한 번 만나 보기나 할까 하고 찾아 왔네. 이미 왔던 길이니 저 나 잠깐 보고 가세."
 
497
하니 월매 이 말을 듣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 서더니 다시 가까이 들어와 안질 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자세히 치어보더니, 아이가 어른되고 없는 수염은 났을 망정 영락 없는 이 몽룡이라 손벽을 치고 강동 강동 뛰놀면서,
 
498
"애고 이것이 웬 일인고—이 노릇 매우 잘 되었네. 대한 칠 년 비바라듯 구 년 지수 해 바라듯 하늘같이 바라고 믿 었더니 이를 어찌한단 말고. 정성도 쓸 데 없다—천지신명도 무심하구나. 내 딸 춘향이 인제는 죽었네—애고 애고 애고 애이."
 
499
하고 몽룡이옷자락을 터러잡고 복장을 퍽퍽 치받치며 악을 쓰고 운다.
 
500
"이 사람아 말 듣소. 내 딸을 속여 놓고, 서울로 올라가서 편지 한 장 아니하고, 삼년이나 지났다가 내 딸이 죽게 되 어도 살려 주지도 못하고 요꼴을 하고 왔으니, 이 일을 어 찌한단 말인가. 날 처죽이고 가오, 애고 내가 살아 무엇하 리. 인제는 하릴없이 내 딸이 죽었네 그려. 아이 아이."
 
501
하고 월매가 몽룡의 앞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대굴대굴 군다.
 
502
"너무 설어 마오, 왕사는 물론하고 사람의 일이란 도무지 모르는 것이니, 과도히 끌탄 마소. 천지신명이 무심할 리 있 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니 앞날을 기다리소."
 
503
"앞날! 앞날! 앞날도 기달렸네. 삼년이나 지성으로 빌고 기다린 앞날이 요모양이니 이제 무슨 앞날 있나—저승에서 기다리란 말인가!"
 
504
이때에 상단이 나와,
 
505
"마님 그리 마오. 우리 아가씨가 그 서방님을 어떻게 알 으셨소?"
 
506
하고 몽룡을 향하여,
 
507
"서방님 찬 진지 데워 놓았으니 시장하신데 저녁 진지 잡 수시오."
 
508
하고 다시 월매의 팔을 붙들며
 
509
"들어가서 저녁 진지 잡수시오."
 
510
하고 안으로 인도한다.
 
511
몽룡이 풋김치와 고추장을 밥그릇에 부어 모두 함께 버무 려서 시장하던 끝에 아귀아귀 퍼 넣으니 상단이 마루 끝에 서 보고 눈물진다.
 
512
몽룡이 잘 먹고 나서 냉수로 양추한 뒤에 담뱃대를 내어 들고,
 
513
"여보 장모 담배나 한 대 주소."
 
514
하고 손을 내어미니 월매 고개를 픽근 돌리며,
 
515
"갖초 갖초 먹으랴네 그려—담배가 어디 있다든가."
 
516
"나도 호박 잎 먹네."
 
517
"아무게면 상관 있나 한 대 주소."
 
518
월매 방구석을 찾아 쌈지를 내어 던지니 몽룡이 쌈지를 떨 어 가루 담배 한 대를 꽉꽉 눌러 피어 물고 태연히 앉았다.
 
519
월매는 그것이 눈꼴이 틀려 몇 번이나 입을 비쭉거리더니 몽룡의 앞으로 다시 돌려앉으며,
 
520
"여봅소 어둡기 전에 나가서 잠자리나 찾읍소."
 
521
몽룡은 빙그레 웃으며,
 
522
"내가 여기 와서 자네 집에서 안 자면 어디서 잔단 말인 가."
 
523
"내 집이 어디 있다던가. 저를 옥중에 넣은 후에 자네가 농창지듯 먹고 쓸다 남기고 간 가장집물 방매하여 삼년간 옥바라지에 이 집인들 내 집이리. 환상관채(還上官債) 태산 이라 하릴없이 집을 팔아 환상관채 수쇄하고 집도 없는 거 지라네."
 
524
"그러면 자네는 왜 와 있나."
 
525
"탕관에 죽 쑤러 왔지요."
 
526
"그러면 어디서 자나."
 
527
"읍내 과부집, 홀어미집 두루 가지."
 
528
상단이 곁에 섰다가 차마 보지 못하여,
 
529
"마님 그리마오. 모처럼 오신 서방님을 가시라기 부당하 오. 모깃불 피우시고 이야기나 하시든가, 파루 치거던 옥에 가서 아씨나 만나 보시고, 돌아와서 아씨 계시던 방 치우고 주무시게 하시오."
 
530
하는 말에 월매도 감동이 되었는지 길게 두어 번 한숨을 쉬고 푹 까라진다.
 
531
몽룡이 상단더러,
 
532
"상단아 기특하다—너도 나로 하여 이 고생이니 후일에 내 가 네 공을 몰라보랴."
 
533
모깃불 피어 놓고 세 사람이 우두커니 마주 앉았으니 무슨 이야기인들 있으랴. 몽룡은 퇴침을 베고 누워 파루치기만 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린다.
 
534
춘향이 몽룡에게 편지를 부치고 그날 종일 몽룡을 생각하 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 새벽녘에 야속한 잠이 들어 한 꿈을 얻으니 생시에 보던 체경의 복판이 깨어지고, 뒷동산에 앵두 꽃이 백설같이 흩 날리고, 자던 방문 얼굴 위에 허수아비가 날려 보이고,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 보인다.
 
535
춘향이 꿈을 깨니 전신에 소름이요, 등골에 찬 땀이 흐른다.
 
536
"아마도 내 죽을 꿈인가 보다. 허수아비 달린 것은 내가 내일 죽어 섬거적에 싸여 나갈 꿈인가 보다. 거울이 깨어져 보이니 파경이이라 하였으니, 혹 도련님께 해로운 꿈이나 아닌가—한번 가신 후에 소식이 끊였으니 어찌 안 오실 리도 없건마는 만일 돌아가셨으면 혼이라도 오시련마는 아이고 꿈도 수상하다."
 
537
"진정 도련님은 어찌 되신고. 날 사랑하던 도련님이 경성 에 가신 후 나를 그려 병이 들어 그래서 못 오시나. 나보다 나은 님 얻어 두고 사랑겨워 못 오시나. 소년 금방(金榜) 괘 명하여 벼슬에 올랐다가 소인의 참소 입어 천리 원적(遠謫) 하셨는가. 날 찾아 오시다가 도적 만나 죽으셨나. 요조 숙녀 장가들어 유자 생녀하고 금술 좋아 날 잊었나. 청루 주사에 풍류 협객 추축하며 술이 취해 못 오시나. 이런 연고만 없 으면 일정 한 번 오시련만. 오시지는 못하여도 일장 서신이 라도 있으려든 어인 일로 못 오시나."
 
538
"꿈이 하도 수상하다. 아마도 흉몽이요, 길몽일 리 만무하 니, 이팔 청춘 이 매 몸이 그린 님 못 뵈옵고 남원 옥중에 서 수절 원사하라는가. 원통하고 절통하고 원통하다—그러나 차라리 흉한 것은 내 몸에만 돌아오고 우리 낭군은 부귀 공 명하고 백년 향수하옵소서.
 
539
이렇게 혼자 한탄하고 빌 적에 날이 이미 세이고 노고지리 우짖는다.
 
540
이때에 옥문 밖으로 읍내 김 판수가 지팡이로 길을 찾아,
 
541
"무꾸리를 하오! 무수하리."
 
542
하고 외치며 지나가니 춘향이 하도 답답하여 마침 들어 왔 던 옥사장을 보고,
 
543
"어젯밤 꿈이 하도 흉하니 장님 불러 해몽이나 하려하 오."
 
544
한즉 옥사장도 가긍히 여겨 뛰어나가,
 
545
"여보 김 판수—."
 
546
하고 부른다.
 
547
김 판수 멈칫 서서 두리번두리번하며,
 
548
"게 누랄께?"
 
549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해몽을 하려 하니 옥으로 들어갑 소."
 
550
소경이 더듬더듬 옥문으로 들어올 제 굴송이 같은 눈을 번 득번득 번득이며 불똥 디딘 걸음으로
 
551
"어대로 갈까, 어 어디로 갈까."
 
552
하고 소리만 공구어서 건정건정 들어가다가 옥 문턱에 발 을 채어 헛수 인사 한 번 하고 겸연쩍어,
 
553
"대도 평안하오?"
 
554
하고 춘향이 방으로 들어가 지팡이와 담뱃대를 발뿌리로 꽉 누르고 두 무릎을 쪼구려서 뜸뜬 듯이 앉아 손을 내밀어 더듬더듬 춘향의 몸을 만지며,
 
555
"이애 무안하다. 원수에 생애에 골몰하여서—요사이 어른 들 윤감, 아이놈들 역질 배송하고 푸닥거리, 방수보기, 날받 이, 중경에 산경 읽기, 이사에 안택경 읽기 계에도 참여하고 또 의합하는 동관들끼리 투전, 장기 소일 하늘라고 네 말은 들은지 오래건마는 한 번 와서 정다이 묻지도 못하고, 이리 만나니 할 말이 없다. 그래 요새 중장을 연하여 당한다더니 상처나 과치 않느냐?"
 
556
춘향이 맹렬한 성품에 소경놈의 뺨을 개뺨 치듯하고 싶건 마는 불을 꾹 참고,
 
557
"장님 여보, 소시적에 우리 집과 격장하여 사시며, 어머니 와 결의 남매 맺으시고,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내 딸 아 내 딸아 하고 귀여워하지 아니하셨소? 그런 것이 엊그제 같소. 그때 나도 장님을 아저씨처럼 아버지처럼 따랐으니, 장님인들 나를 친딸처럼 조카처럼 아니 생각하겠소?"
 
558
하니 이 말에 판수가 한편 모으로 슬며시 물러 앉으며 열 없어,
 
559
"고년의 자식 정신도 좋다. 과연 그럼한 번하거니."
 
560
하고 춘향의 몸에서 손을 떼고 물러 앉는다.
 
561
소경이 열 없는 김에 저만큼 멀찍이 물러 앉으며,
 
562
"그는 그러하거니와 어떤 놈이 너를 이렇게 치더냐—김 패 두가 치더냐 이 패두가 치더냐, 똑바로 일러라. 너 매질하던 놈 설치는 내 하여 주마. 형방패 두 놈이 오월 오일에, 날 받으러 내게로 오니 이후에 택일하려 오거든 꼭 절멸일을 받아 주어 생급살을 맞춰 된 탐색이를 먹이리라. 사람 놈이 매질을 한들 공대지 몹시 박아쳤으랴응!"
 
563
하고 심히 분해하더니 음성을 낮추고 눈을 껌벅껌벅하며,
 
564
"아무캐나 신수점이나 쳐보아라. 어디 식전 정신에 잘쳐 주마—그래 꿈이 어찌하여?"
 
565
하고 고개를 쑥 내어민다.
 
566
춘향이 꿈 꾼 사연을 다 이야기할 때에 마침 옥담 위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고,
 
567
"또 저놈의 까마귀가 까욱까욱하는군, 아마도 날 잡아 가 라냐 보지."
 
568
하고 비감한 빛을 보이니 판수 능청스럽게,
 
569
"그는 그렇지 아니하다. 같은 까마귀라도 흉한 집에 울면 흉조요, 길한 지에 울면 길한 징조니라, 네음성이 매우 길할 걸!"
 
570
하고 위선 춘향을 위로한 뒤에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571
"이애. 내가 네 점에 돈을 받겠느냐마는 무물불성이라 돈 을 안 놓으면 신령이 동하지 않는 법이다."
 
572
하고 복채 놓기를 권한다.
 
573
춘향이 주머니를 떨어 돈 네 푼을 떨어 놓으니 호천(戶天) 호지(戶地) 호일(戶日) 호월(戶月)이다.
 
574
"가진 것이 이뿐이니 복채 적다 말고 해몽점을 명명히 잘 쳐주오."
 
575
"오냐 글랑 염려 마라—내 딸의 점을 범연히 하겠느냐."
 
576
하고 판수는 코를 치씻으며 열 손가락을 게 발 모양으로 버스럭거려 주머니를 어루만져 산통을 내어 손에 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산통을 눈 위에 번듯 들어 솰솰 내흔들면서,
 
577
"천하언재(天下言哉)시리오마는 고지즉응(叩之卽鷹)하나니 신기명이시니 감이순통(感而順通), 감이순통, 감이순통—복걸 천지신명 일월성신은 조림하토(照臨下土), 민지화복(民之禍 福) 팔팔육십사괘(八八六十四卦) 삼백육십사효(三百六十四 爻)...... 제갈 공명 선생, 원 천강 선갱, 곽 곽 선생, 이 순 풍, 강 절소 선생, 마의도사 제위 선생 배괘동자 척괘 동자 원사강림 상통천문 하달리 금우(今遇) 태세(太歲) 갑자(甲子) 오월 기해삭(己亥朔) 십 사일 갑술(甲戌) 해동 조선국 전라 좌도 남원부 갑진생(甲辰生) 시을사복차로 근복문하오니 연 전분에 신관 사또 도임 신정지초에 수청 거행 아니한다 하 와 횡피 중장하고 인위 수금하니, 지금 삼년, 백병이 충출하 고 사생을 미탄증거야(간밤) 일몽이 여차여차하옵기에 지성 으로 감복문하오니 유하소흉(有何所凶)이온지 이 상사병으로 손기혈(損氣血)이 연여야! 복걸신명을 물비소시(勿秕昭示) 물비소시."
 
578
하고 산통을 왈각왈각 흔들어서 거꾸로 잡아 산대로 빼어 세어 보고 부채를 두드리고 점괘를 푼다.
 
579
"내외효(內外爻)로 작괘하니 가인지비(家人之費) 되었고 나. 초효(初爻)는 소양구진(少陽句陳)인데 묘형제천록(卯兄弟 天碌)이요. 이효(二爻)는 소음등사(少蔭騰蛇)로다. 축재천을 지세신(丑才天乙持世身)이요. 삼효(三孝)는 소양백호(少陽白 虎)로다. 해문서안정(亥文書安靜)이요. 사효(四爻)는 소음현 무(少陰玄武)로다. 미형제천을(未兄弟天乙)이 발동이라. 기손 신관응명(己巽申官鷹命)되고, 육효(六爻)는 소양주작(少陽朱 雀)이라. 묘형제천록(卯兄弟天碌)되고 입해구주지괘(入海求 珠之卦)요. 개화결실지상(開花結實之象)이라. 갑술중신에 신 유공(甲戌中旬申酉空)하니, 방공(房空)은 아니었다. 오효에 역마(驛馬)가 발동하니 이 자손이 삼형살(三刑殺)."
 
580
하고 말을 뚝 그쳤다가, 판수 고개를 기웃거리며,
 
581
"이애 춘향아!"
 
582
하고 부른다.
 
583
"예."
 
584
"그 점괘 매우 묘리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이 지세(持 世)한데 응(應)이 세(世)를 생(生)하였으니 이 도령이 과거하 여 청포를 입은 격이요. 천복귀인성(天福貴人星)에 역마발동 (驛馬發動)하였으니 분명 외임(外任)하여 나가는 형상이요.
 
585
연자괘(鳶子卦)가 비취었으니 둥실둥실 떠다니는 솔개 벼슬 이요. 자손이라 하는 것은 공명에는 화약이다. 삼형살(三刑 殺)이 띠었으니 이 아니 고이하랴. 응효(應爻)로 논지컨대 도모지 남이 없고나—올컷다 아니로다 열읍 수령 관속들을 형추파직(刑推罷職)할 것이니 암행수의(暗行繡衣) 분명하 다......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꽃이 떨어져 보였으니 열매 맺을 꽃이요.
 
586
거울이 깨어져 보였으니 소리 내일 기상이라. 문상(問喪)에 현허인(懸虛人)하니 만인개앙시(萬人皆仰視)라—허수아비를 문 위에 달았으니 만 사람이 우러러 볼 괘요. 산붕(山崩)하 니 작평지(作平地)요, 해갈(海渴)하니 성공안(成功岸)이라—허 거, 점 좋다! 이애 춘향아 부대 부대 구에 올 것이니 두고 보라."
 
587
"일이 점과 같을진댄 무슨 한이 있으리까마는 맹랑한 말 씀 듣기 싫소."
 
588
하고 춘향이 귀찮은 듯이 눈을 사르르 내려 감으니 판수가 골을 내어,
 
589
"할 말이 그리 없어 햇부리를 놀린단 말이냐. 고름맺고 내기하자—아무커나 대길하니 의심 말고 두고 보라."
 
590
하고 맹세를 하니 춘향도,
 
591
"글쎄 말씀과 같은진댄 작히나 좋겠소마는 이런 년의 팔 자에 웬 걸—."
 
592
"영락없다. 두고 보아!"
 
593
하고는 말말 끌에 생각하니 복채 달라기는 어렵고 그렇다 고 안 받아 가지고 가기는 더 어려워 의뭉스럽게 슬기를 낸 다—.
 
594
"이애 춘향아 이새는 내가 사망이 없고 살기가 극난극난 하여 밥맛 본지 오늘조차 며칠인지 모른다. 어제 아침건너 뛰고 오늘 아참 잔입이요. 오늘 저녁 할 일 없으니 허구한 날 참 난처하다. 저번에는 동문 밖 장에 갔다간 쇠뿔 참외 는 한푼에 일곱씩 수박은 한 푼에 둘씩이언마는 욋돈 한 푼 이 없어 못 사먹고 장바닥을 어루만지니 참외 껍질, 수박 껍질이 늘비하기에 배때기에 씻어 훔치고 오며 생각하니 조 언광좌 중에 그런 꼴이 있느냐. 허언 시장하고 속 쓰리다."
 
595
춘향이 이 말 듣고 비녀를 빼어 주며,
 
596
"불쌍하오. 김 판수님 이것이 빌고 약소하나 팔아서 일시 나 보태시오."
 
597
판수 이면을 차려,
 
598
"이애 아무리 무물불성이라 하였은들 적이나 하면 보태어 줄어야 할 터에 네 점을 치고 무엇을 받으랴—남 들으면 무 엇으로 알겠느냐. 앗어라 그만 두어라 사람의 인사 용렬하 다."
 
599
하고 오른손으로 사양하면서 왼손으로 받아 집어 넣고 열 없어서,
 
600
"이애 이런 말을 하면 싫어는 하더라마는 옛말이니 하거 니와 너의 어머니 소시적엔 놀기도 좋더니라마는 너는 개천 에서 용난 세음이라. 그 속으로 나서 너의 어머니께 적은 없고 저렇듯 깨끗하니 고맙고 갸륵하다—시장하니 다시 보 자."
 
601
하고 지팡이와 담뱃대 들고 일어선다.
 
602
"아이고 편안히 가시오."
 
603
하고 춘향은 판수를 보낸 후에 혼잣말로,
 
604
"점이 무얼 맞을리."
 
605
하고 혼자 한탄한다.
 
606
밤이 아슥하도록 몽룡은 월매와 함께 파루 치기만 기다리 다가 상단에게 초롱을 들리고 옥으로 찾아갔다. 그때까지도 월매는 몽룡이를 쓴 오이 보듯하여 말 한마디도 아니하고 몽룡이 꼴이 보일 때마다 성가신 듯이 고개를 피끈 돌려 버 린다.
 
607
그러나 몽룡은 상관하지 아니하고 어붓어미 따라가는 자식 모양으로 두어 걸음 서너 걸음 뒤떨어져서 따라 왔다.
 
608
월매 옥문 밖에 다다라서 주먹으로 옥문을 두드리며,
 
609
"춘향아. 아가 자느냐."
 
610
하고 부르니 춘향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았다가 깜짝 놀 라며,
 
611
"아이고 어머니 아닌 밤중에 왜 또 오셨소? 밤에나 평안 히 쉬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밤마다 오시다가 어머니마저 병 환이 나시면 어찌하오?"
 
612
"내가 자려한들 잠이 오느냐 너를 안 보고 가면 맘이 놓 이느냐. 그래 오늘은 좀 어떠냐? 먹은 것이나 잘 나렸니?
 
613
먹은 것이 있어야 나릴 것이나 있지.
 
614
"오늘은 잘 나렸으니 염려마오."
 
615
"다리 쑤시는 것은 좀 어떠냐. 오늘은 까무려뜨리는 증은 없었니?"
 
616
"괜찮아요. 나은들 그렇게 속히 낫겠소."
 
617
월매 미음 그릇을 구멍으로 들여보내며,
 
618
"옜다. 미음이나 좀 마시어 보아라—그래도 먹어야 사느니 라."
 
619
춘향이 그 미음 그릇을 받아 두어 모금 마시더니 오약질을 하며,
 
620
"아이고 싫소."
 
621
하고 미음 그릇을 도로 내어 보내는 것을 월매 도로 들여 보내며,
 
622
"아니 먹고 어찌 사느냐. 억지로 한 모금이라도 더 먹어 라. 아따 암치 보풀 여기 있으니 씹어서 물만 입가심하고 뱉아 버려라. 비위가 가라앉느니라."
 
623
하고 암치 기름 발라 부풀은 것과 약포육 놓은 접시를 들 여 보낸다.
 
624
"아무 것도 싫소."
 
625
"그러면 흰 죽이나 쑤었다 주랴."
 
626
"그것도 구역이 나서 싫소."
 
627
"그러면 무슨 의이나 쑤어주랴."
 
628
"아이고 생목 꼬아 나는 싫소."
 
629
"그러면 무엇을 먹고 싶으냐—먹고 싶은 것을 말을 하려무 나."
 
630
"아무 것도 먹기 싫소. 입에서 안 받는 것을 어찌하오. 너 무 성화하지 마시고 그만 돌아가시오 서울서 오늘도 편지 아니 왔소?"
 
631
"편지는 와서 무엇하느냐—그까짓놈의 편지도 인제는 다 발랐다."
 
632
춘향이 깜짝 놀라며,
 
633
"왜? 그게 무슨 말씀이요? 서울서 무슨 기별 왔소? 도련 님 댁에 무슨 일이나 나시었소? 편지도 다 바랐다니 무슨 말씀이요? 꿈이 하도 흉하더니 무슨 일이 났나 보구려. 웬 일이요 말씀하오!"
 
634
하고 목소리가 떨린다.
 
635
월매 화를 내며,
 
636
"일이 나도 큰일이 났다. 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도령 인가 서캐도령인가 한 자가 팔도 거지에도 상상거지가 되어 가지고 그래도 뻔뻔스럽게 너를 본다고 여기 왔다."
 
637
춘향이 옥문 구멍으로 매어 달리려고 애를 쓰다가 땅바닥 에 주저 앉으며,
 
638
"도련님이 오셨소? 그것이 정말이요? 어디? 어디? 어디?
 
639
어디?"
 
640
하고 일어서려고 손으로 옥문만 긁는다.
 
641
"여기 왔다. 눈깔은 멀뚱멀뚱하고 살아서 여기 왔다."
 
642
하고 월매가 뒤로 물러서며 몽룡이 그제야 월매 섰던 자리 에 가 서며,
 
643
"춘향아 내가 왔다. 내가 왔다."
 
644
하고 눈물겨운 소리로 소리를 쳤다.
 
645
"내라니 누구란 말이요?"
 
646
"내다. 이 도령이다. 이 몽룡이다."
 
647
"도련님이라니, 도련님이라니? 목소리는 분명 도련님이로 구려. 얼굴을 좀 바싹 대어 주시오! 우러러나 보게."
 
648
하고 춘향이 울며 일어나지 못하여 애를 쓰니 몽룡이 갓을 뒤로 젖히고 얼굴을 옥문 구멍으로 대며,
 
649
"어디 있느냐. 좀 뒤로 물러 앉어 얼굴이나 보여라."
 
650
상단이 곁에서 등을 번쩍 드니 불빛이 옥문으로 흘러 초췌 한 춘향의 얼굴을 비추인다.
 
651
춘향이 고개를 들어 몽룡을 바라보며,
 
652
"오셨구려! 오셨구려! 날 보러 오시기는 오셨구려! 그리도 유신하여 오시기는 오셨구려! 우리 서방님이 오셨네."
 
653
하고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되풀 이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몽룡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보고 앉았다.
 
654
몽룡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655
"저 꼴이 웬 일이냐. 선녀같이 아름답던 네가 날로 하여 저꼴이 되었구나. 춘향아 염려마라. 만고 열녀 성 춘향을 하 늘이 몰라 보시며 천지신명인들 몰라보시랴."
 
656
"나는 고대 죽어도 한이 없소. 생전에 서방님 한 번 뵈었 으니 고대 죽기로 어떠하겠소. 오늘밤에 죽더라도 한이 없 거니와 서방님은 웬 일이시오? 어찌하여 얼굴은 저대도록 검으시고 수염은 저대도록 거칠으시고 저 망건 저 갓끈이 웬 일이시오?"
 
657
월매 곁에서 듣다가,
 
658
"거지에도 우거지 상상거지라니깐. 내 말을 무엇으로 믿 느냐. 수절 수절 하더니 과연 기절을 할 일이로다. 이런 비 렁방이를 보고 수절을 하였으니 무슨 깨보송이가 쏟아졌느 냐. 수절도 쓸데 없고 칠성 기도도 모두 다 허사로다. 이년 아 애초에 내 말만 들었을 양이면 거드럭거리고 잘 살 것을 요년아. 네 팔자를 네 손으로 요따위를 만들고 내 신세까지 꺼벅꺼벅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이놈아 이 이가놈의 자식아!
 
659
내 딸 살려 내어라! 네가 대신 죽고라도 금옥 같은 내 딸을 살려 내어라! 내일이면 사또 생신 잔치 끝에 내 딸 잡아내 어 죽인다 하니 네 놈이 대신 죽고 내 딸 살려 내어라!"
 
660
하고 몽룡의 헌 도포자락에 매어달려 악을 쓰니 상단이는 울며,
 
661
"마님! 마님! 이리 마시오!"
 
662
하고 월매를 붙들고 춘향은 몸부림을 하면서,
 
663
"어머니 이리 마시오! 나 죽는 것을 보시랴오? 잘 되어도 내 낭군 못 되어도 내 낭군—유리 걸식하여도 내 낭군이니— 어머니 서방님을 괄시마오!"
 
664
하고 몽룡을 향하여,
 
665
"서방님 웬 일이요? 어찌하여 그리 되었소? 무슨 가운이 불행하여 그리 되시었나요. 대감께서 높은 벼슬하시다가 참 소 받아 그리 되시었소? 나를 생각하시노라고 공부도 못하 시다가 그리 되시었소? 대관절 웬 연고요."
 
666
하고 애를 쓰니 몽룡이 곧 설파해버려 시원히 알려 주고 싶은 마음 불 일 듯하건마는 암행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 로 그리할 길도 없고 다만 맥맥히 춘향을 내려다 보고 섰을 뿐이다.
 
667
춘향은 더욱 성화하여,
 
668
"왜 말이 없소? 말이야 왜 못하오? 시원히 알게 말이나 하시오!"
 
669
하고 콩볶듯 보채다가 그만 울어 쓰러지며,
 
670
"서방님더러 말하라는 내가 잘못이요. 행색이 저대도록 되시었으니 응당 큰일이 있었으려니—서방님인들 차마 그 말 씀을 어찌하시겠소? 말하라고 조르는 내가 잘못이요."
 
671
하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672
"아이고 이년의 팔자야! 내 팔자야! 전생의 무슨 죄로 털 끝만한 죄도 없이 삼년 동안 준장 엄수 옥중 원혼 되고 하 늘같이 믿고 기다리던 서방님마저 저 모양이 되었으니 아이 고 내 신세야—죽을 년의 팔자로다."
 
673
춘향이 고개를 들어 몽룡을 바라보며,
 
674
"서방님 나는 이왕 죄 많아 죽는 년이니 서방님의 일생 액도 내가 맡아 갈 것이니, 서방님을랑 부대 부대 이제부터 라도 공부 시작하셔서 대과급제 얼른하여, 높은 벼슬에 오 르시어 내 원수 갚아 주시고, 명문 거족에 혼인하여 요조숙 녀 배필지어 부대 부대 백세를 누리시오—백세 천세 누리실 때에 서방님만 바라고 옥중에서 썩어지다가 수절 원혼이 된 춘향을 생각이나 하여 주시오! 잊지나 말아 주시오!"
 
675
하고 다시 쓰러져 우니 음침한 옥중이 모두 울음소리로 변 한 듯하여 처량하기 짝이 없다.
 
676
몽룡도 입술을 꼭 물고 참다 못하여 울음이 터져 소리를 내어 울고, 상단이도 등을 든 채로 한 팔로 눈물을 씻고 월 매는 땅에 엎더져 소리가 없다.
 
677
몽룡이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떨어 버리고,
 
678
"춘향아 설어 마라!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니 설어 마라.
 
679
가뜩이나 병든 몸이 기운 상할라—우지마라. 살려주마!"
 
680
하고 흑흑 느낀다.
 
681
"서방님 생각을 내가 아니 말씀하여 무엇하오?"
 
682
하고 춘향이 설움을 참고 정신을 가다듬어 똘똘한 목소리 로
 
683
"내일은 본관 생신이라 이날이면 한 번씩 나를 잡아 내어 다가 열 읍 수령 모인 앞에 일장 국문하고, 매오 치는 날이 요. 어저께 문간 사령 말이 형장 단단한 놈으로 많이 깎아 들이라고 분부하였다 하니 내일은 정녕 내가 죽을 것이요.
 
684
죽기 전에 한 번 서방님을 뵈오니 그만 해도 한이 없거니와 이년의 욕심이 한 번만 죽기 전에 더 뵙고 싶으니 오늘 밤 에 집에 가셔서 서방님 나하고 노시던 부용당에서 나 덮던 이불 덮고, 편안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 늦도록 주무시고, 옥 문 밖에 와 계시다가 내 칼머리나 들어 주오! 이생에 마지 막 소원이니 서방님 들어 주오!"
 
685
하다가 참던 울음에 목이 메어 입술을 물어 참고,
 
686
"그리고 내가 매를 맞을 때에도 저 만치 서 계시어 매맞 는 것이라도 보시면 운명할 때에도 서방님 한 번 마지막으 로 더 보고 죽을 것이니 부대 부대 내 소원 들어 주오. 그 리고 내 목숨이 딱 넘어가거든 서방님이 본관에게 말하셔서 내 시체를 서방님 몸소 안고 나와, 집에 갖다가 서방님 누 우셨던 자리에 누이시고, 매맞아 성한 곳없는 내 몸이나 한 번 손으로 쓸어 주시고 그러시다가 천행으로 다시 살아나면 서방님 한 번 더 뵈오려니와 만일 명치끝이 싸늘하게 식어 지거든 서방님 손수 눈이나 감겨 주시고 춘향아 춘향아 내 춘향아, 잘 가거라 후생에 다시 보자 하고 세 번만 불러 주 시고, 그리고는 남의 손 내 몸에 일절 대지 말고 서방님 손 수 아무렇게나 염습하여 산지도 구할 것 없이 아무런 데나 묻어 주시었다가, 서방님 대과 급제하시고, 높은 벼슬 하신 뒤에 내 해골을 파다가 이씨댁 선형 한편 구석에 묻어 주시 고, 춘추성묘 오실 때에 한 번씩 찾어 오셔서, 춘향아! 춘향 아! 내가 왔다 하고 술 한 잔이라도 부어 주시면, 지하에 있 는 혼이라도 기뻐할 것이니 부대 잊지 말고 내 소원 들어 주오."
 
687
하고 또 소리를 내어 운다.
 
688
몽룡은 불쌍하고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여 두 발로 땅바닥 을 탕탕 구르며,
 
689
"안 죽는다거든 내 말을 믿으려무나! 살려 주마. 우지마 라!"
 
690
하여도 춘향은 믿으려 아니하고, 만사를 단념한 듯이 도리 어 눈이 반동반동하여,
 
691
"어머니!"
 
692
하고 월매를 부른다.
 
693
월매는 모기소리 같은 목소리로,
 
694
"왜야?"
 
695
"어머니!"
 
696
"무슨 말이냐? 애고 가엾어라."
 
697
"어머니! 어머니! 애쓰시기도 오늘 뿐이요. 내일 이맘 때 면 내몸은 벌써 식어 버릴 것이니 불효한 이 자식을 안 낳 으신 줄만 아시고 잊어버려 주시오. 늙으신 어머니 말년에 낙을 보여드리고자 주야로 빌었더니, 못하고 돌아가니 애원 하고 절통하오. 내일은 아무리하여도 죽을터이니 어머니는 부대 오시지도 마오. 이 자식 매맞아 죽는 꼴을 어머니가 어이 차마 보시리! 부대 오지 마오. 없는 년으로만 여기시고 부대 부대 잊어주시오."
 
698
"나 하나 죽어지면 어머니 설어 어이 살리—누를 믿고 살 으리. 서방님 부대 우리 어머니를 돌아보아 주오—춘향을 사 랑하시거든 어머니를 살아 생전 구원하여 주시다가, 우리 어머니 살으시면 며칠 살겠소—돌아가시거든 서방님이 주장 하여 물이나 안 날 데다 깊이 깊이 묻어나 주오. 서방님 부 대 부대 내 부탁을 잊지 말고 죽는 년의 소원을 들어 주 오!"
 
699
몽룡이 우는 소리로,
 
700
"안 죽는다는데 그러네. 살려 주마 하여도 아니 믿네".
 
701
하고 위로하니 춘향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 믿으려고 아니하고,
 
702
"여보 서방님 내가 한 번만 더 맞으면 북두칠성 삼태경이 다투어 명을 주어도 살 가망은 바이 없으니, 죽는 나도 설 거니와 나 죽는 것 보시는 서방님의 맘은 얼마나 하겠소.
 
703
서방님도 내일은 나 매 맞는 것 보지 마시고, 삼문밖에 소 리도 안 들리는 곳에 계시다가 내 시체를 삼문 밖으로 끌어 내치거든 서방님 마침 섰다가 시체라도 거두어 주오. 집에 갔다가 곧 염습은 말고 아까 말한 대로 옷을 벗겨 자리에 누여 놓고 서방님 더운 침이라도 흘려 넣고 고요하게 한식 경이나 기다려 보아 주시오.—천행으로 살아나면 서방님 모 시고 하루라도 살아보게—살고지고.살고지고."
 
704
하고 또 울다가,
 
705
"그래도 깨어나지 못하거든 춘향아! 잘 가거라, 황천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 나무아미타불이나 불러주오—그리고 아기 상두에나 담아다가 아무렇게나 묻으시되 부대 수절원사성춘 향지묘(守節寃死成春香之墓)라고 서방님 글씨로 패 하나만 박아 주오."
 
706
하고 이윽히 정신이 아득하여지는 모양이더니 다시 정신을 차려,
 
707
"서방님 부대 우리 어머니 버리고 가지 마오—아무데도 가 지 마시고 우리 집에 계시어 글 공부나 하시오!"
 
708
하고는 다시,
 
709
"어머니!"
 
710
하고 월매를 불러,
 
711
"어머니! 나 죽는 것 설어 마시고 서방님과 같이 여년을 지나시오. 부대 서방님 괄시 말고 내 입던 옷가지 패물까지 모두 다 내어 팔아, 반 값에라도 탕탕 팔아 서방님 갓, 망 건, 도포, 중추막, 긴옷, 속옷, 속속들이 장만하되 고은 나의 바꾸어서 안은 모두 면주로 하고 제일 다듬이를 곱게 하고 수품을 곱게 지어다가, 서방님 입히시고, 서방님 버선 본은 내 실첩 속에 들었으니 몽고삼승 바꿨다가 안팎 버선 지어 드리되, 버선코가 너무 높지 말게 발에 맞게 지어 신켜 드 리고 윤돌이집 갓방에 닷냥 주고 갓을 맞추되 대우량은 맑 게 하고 중밋철대 굵게 말고 은각을랑 부대 놓고 칠광 있게 하여 오고, 신꼽추계 망건을 맞추되 값을 깎지 말고 돈냥이 나 넘겨 주고라도 상지상으로 맞추시고, 진쇠에게 평양 본 으로 울이 너무 높지 말게 조촐하게 맞추어 신키오. 유리 걸식하더라도 관망이 선명하면 남이 천대를 아니하는 것이 니 어머님 부대 그리하여 주오. 그리고 부용당 정결하게 치 우시고 서방님 계시게 하시고, 조석공궤사시되 내가 있어 할 때 처럼 된 진지는 싫어하시니 진지를 축축이 지으시고, 가끔 등골 사다가 탕을 하여 드리고, 즐겨하시는 염통산적, 양볶기에 체육초도하여 놓고 겠지 않은 암치, 기름 발라 보 풀으고 약포육 놓고 어란도 버혀 놓고 편포나 좀 오려 놓고 장김치를 좋아 하시니 육소 넣어 장김치도 담그시고, 평생 에 즐기시는 약주는 안주 겸하여 부대 부대 잊지 말고 많이 드리시고, 진지 막 잡수시고 담배 한 대 멀만하여 차관에 생강 좀 점여 놓고 황다(黃茶) 좀 집어 놓고, 귤병 좀 떼 넣 어 넣어 매음 달큼 빛을 맞춰 곱게 달여다가 드려 주오. 문 방사우 서책도 소원하는 대로 장만하여 드려 글 공부하게 하시되 공부하실 때에는 부대 조용하게 하여 드려 주오—어 머니 어머니! 내 말대로 하여 주오!"
 
712
월매 춘향이 부탁하는 말을 듣고 독을 내어,
 
713
"나는 밤낮으로 네 시중만 듣건마는 전혀 말 선물뿐이지, 모주 한 잔 사먹을라고 돈 한 푼 주는 일이 이 때까지 없더 구마는, 이 원수 놈은 보는 듯 마는 듯 올 팔어라, 노리개 팔어라, 호사시켜라, 잘 먹여라 하니 어찌한 곡절이냐. 자세 히 알자. 내 맘 같으면 이 년석을 숙마 바로 동여 대도 단 단한 참나무 뭉치로 주리를 한참 틀었으면 속이 시원하겠 다."
 
714
하고 악을 쓰니 춘향이 울며,
 
715
"어머니 만일 그리시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불효는 될지언정 당장 죽어 버리야오!"
 
716
하고 아드득 이를 가니 월매 놀래어,
 
717
"오냐. 네 말대로 하마. 낸들 분수 없겠느냐. 네 말대로 한다."
 
718
"부대 내 말대로 하여 주오."
 
719
하고 춘향이 상단을 불러,
 
720
"지금 내가 한 말 네가 들었으니 더할 말도 없다마는 나 죽은 후에라도 지성을 다하여 서방님을 섬겨 다오. 어머니 잘 봉양하고 맘 편안하게 하여 다오. 이생에서 네 부대 내 말 잊지 말고 지금 어머니와 서방님 모시고 집에 돌아가서 방 깨끗이 치이고 불도 좀 때고 서방님 편안히 주무시게 하 여 드려다오. 너만 믿는다—너만 믿는다."
 
721
상단이 울며,
 
722
"아씨 염려마시오—말씀 아니하시기로 범연하리이까."
 
723
과도히 설어 말고 몸을 보중하오!
 
724
"고맙다. 네 말 들으니 맘이 가득하다. 네 맘을 내 알고 내 맘을 네 아니 무슨 별말 또 있으랴. 너만 믿는다."
 
725
하고,
 
726
"서방님 손이나 좀 들여 보내오!"
 
727
하며 두 손을 치어든다.
 
728
몽룡이 옥문 구멍으로 한 손을 들여 보내니 춘향이 그 손 을 덥석 잡고 매어 달리며,
 
729
"영결이란 말이 웬 말이요?"
 
730
하고 운다. 몽룡이 싸늘한 춘향의 손을 꼭 쥐어 주며,
 
731
"영결될 리 만무하다. 남원 부사 죄악이 관영하였으니 내 일 안으로 무슨 일이 날 것이니 염려 말고 편안히 밤을 지 내어라. 내일 또 보자."
 
732
하고 유심하게 춘향의 손을 두세 번 쥐어 주나 춘향은 종 시 그 뜻을 알지 못하고,
 
733
"내일 부대 오시오! 옥문 밖에 섰다가 칼머리나 들어 주 오! 삼문 밖에 섰다가 신체나 찾아 주오!"
 
734
"오냐 염려마라. 내일 다시 만날 것이니 마음 놓고 잘 자 거라."
 
735
"서방님 부대 편안히 주무시오!"
 
736
"오냐 잘 자거라. 내일 보자."
 
737
"어머니 안녕히 주무시오."
 
738
"내 걱정은 말고 네나 잘 있거라. 식전에 미음 쑤어 오 랴?"
 
739
"예 미음 쑤어 주오!"
 
740
"아씨 안녕히 주무시오!"
 
741
"오 상단아. 잘 자거라. 어머니 잘 붙들어 드리라. 아니 상단아. 내 삼층장 속에 담배 둔 것 있으니 내어서 서방님 드려라!"
 
742
"예 아씨 부대 안녕히 주무시오."
 
743
"오 조심해 가거라."
 
744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도 멀어지고 얼른얼른하는 등불 조차 멀어지니 춘향이 억지로 참았던 울음이 다시 북받쳐 혼자 쓰러져 울 때에,
 
745
"이애 춘향아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746
하고 옥문 밖에서 몽룡의 소리가 들린다.
 
747
춘향이 자기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여망없이 생각하고 여 자의 일편된 맘에 혹시 자수나 아니할까 하여 돌아온 것이다.
 
748
"어찌하여 가시다가 돌아왔소?"
 
749
하는 춘향의 말은 영령하다.
 
750
"이애 네가 아까 날더러 유인처럼 만 번이나 부탁한 것이 있거니와 나도 네게 부탁할 말이 있다."
 
751
"무슨 부탁이요?"
 
752
"내일이고 모레고 내 얼굴을 다시 보고 죽어야 네 부탁대 로 하여 주지, 만일 나를 다시 안 만나고 죽으면, 네 소원대 로 새로이 네 송장이를 길가에 넘너져서 개천 구렁으로 굴 러 들어가도 나는 모른 체하고 도리어 악착한 원수로 알 터 이다. 그러니 부대 나를 잠결이라도 다시 만나 보고 죽고 살기를 결단하라."
 
753
"글랑 그리 하오리다. 어서 가서 주무시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노여 마시오!"
 
754
"오냐 그리한마. 늙은이가 무슨 허물 있느냐."
 
755
몽룡이 춘향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월매 를 따라가니 상단이 등불을 들고 서서 기다린다.
 
756
월매 몽룡을 힐끗 보며,
 
757
"그래 어디로 가랴오?"
 
758
"어대로 가? 자네 집으로 가지."
 
759
"이것이 참 소위 들에질이요구려. 집없는 줄 번히 알고 집이란 웬 말이요."
 
760
"그럼 자네는 어대 가나?"
 
761
"나는 읍내 어떤 과부집은로 가지요."
 
762
"이 사람 그렇거든 자네가 잘 곳에라도 같이 가세."
 
763
월매 피끈 돌아서며,
 
764
"난장 맞고 발가락 뽑히고 나까지 쫓겨나서 노중에 자게 하려나? 실없은 말 말고 어서 다른 데나 가보지—상단아. 어 서 가자."
 
765
"이제 내가 어대를 간단 말인가."
 
766
하고 몽룡이 월매의 뒤를 따라서니 월매 귀찮은 듯이 멈칫 하며,
 
767
"가라 하면 갈게지 어대를 오나?"
 
768
"내가 어대로 가나? 자네집에 안 다리고 가겠거든 갈 데 를 말하소."
 
769
"자네게는 굴뚝 없는 집이 제격이지."
 
770
"굴뚝 없는 집이 어대 있담."
 
771
"객사동 대청도 없어?"
 
772
"옳의. 자네 말이 옳의. 전라도 오십삼관 객사 동대청이 다 내 집이로세. 그러면 나는 가네. 내일 또 보세."
 
773
하고 몽룡이 돌아서서 걸어가니 월매 시원 섭섭하여 물끄 러미 몽룡의 가는 양을 보다가,
 
774
"내일 우리 집에 올 것 없네—아침 지을 것도 없으니 애여 올 생각도 마소."
 
775
하고 상단이를 재촉하여 가버린다.
 
776
몽룡이 그 길로 객사 공청을 찾아가니 넓으나 넓은 대청에 땀내 나는 거지떼가 우글우글 가로 눕고 세로 누워 어떤 거 지는 그리도 가려운지 한 팔을 뒤로 돌려 손도 잘 안 닿는 데를 득득 긁고 어떤 늙은 거지는 한편 구석에 일어나 앉아 서 달빛을 반이나 몸에 받고 담배를 피우다가 몽룡이가 오 는 것을 보고,
 
777
"신수가 멀끔한 사람이 왜 객사를 찾아 다니노?"
 
778
"왜 나는 못 올 사람인가?"
 
779
"와도 잘 자리가 없으니 딱하단 말일세. 금년에는 웬 젊 은 거지가 이다지 많아져서 우리같이 늙은 놈은 빌어 먹기 도 난처하니 딱한 일이로세."
 
780
이렇게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한 거지 두 거지 눈을 비비고 일어나며,
 
781
"남 곤하여 자는데 누가 이리 지저려싸?"
 
782
하고 한 거지가 중얼거리니 또 한 거지 손으로 마룻바닥을 탁 치고 일어나며,
 
783
"이런 제기 남 한참 장가들어 큰상 앞상 받아 먹고 한바 탕 잘 먹으랴는 판에 객없이 떠들어 싸하서 꿈을 깨어 놓으 니 대체 무슨 심사람."
 
784
하고 역정을 쓰면 이 역정 쓰는 소리에 다른 거지 또 놀라 깨어 일어나며,
 
785
"이런 빌어먹다 오라를 질 자식들이 왜 아닌 밤중에 잔 소리야 어디 잠자겠다구."
 
786
하고 뿌시시 일어나고 그 소리에 또 한 거지 깨어나며,
 
787
"이 사람들 무어 먹을 것이나 생겼나—혼자 먹지 말고 나 도 좀 주소."
 
788
하고 벌떡 일어나 두리번 두리번 살펴 보아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열 없는 듯이 도로 드러 누우며,
 
789
"공연히들 떠드는군—빌어 먹을 놈들."
 
790
하고는 코를 골기 시작한다.
 
791
그 중에 한 거지 일어나더니 잠결에 암행인 것도 다 잊어 비리고 몽룡의 앞에
 
792
"소인 아뢰오."
 
793
하고 허리를 굽신하고는 그제야 아차 안되었다 깨닫고,
 
794
"허 꿈 고약하다."
 
795
하고 도로 주저앉는다.
【 】어사(御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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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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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106.240.***.***)   
2021-03-11 12:23:29
춘향전 중에 최고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 소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한 작품 중에는 이광수의 '허생전 (이광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광수 허생전 강추...
“게시작품”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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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일설춘향전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25년 [발표]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이광수의 장편소설 (1925)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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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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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