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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14 ◇
해설   목차 (총 : 17권)     이전 14권 다음
1926년
나도향
 

14

 
2
의성이라 고운사다. 울울창창한 대삼림(大森林)이 제철형(蹄鐵形)으로 등을 껴안아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은 높이 뜬 솔개가 그 중턱에서 배회한다.
 
3
절 옆으로 흐르는 잔잔한 시내 소리는 숲 속에서 울려나오는 자규(子規)의 소리와 이리저리 얼키어 한아(閑雅)한 정조에다 새긴 듯한 무늬를 놓아 놓는다. 가운루(駕雲樓) 옛집이 구름을 꿰뚫지는 못하였으나 천여 재 시일을 구슬 꿰듯 하였고, 최고운(崔孤雲) 선생의 목소리는 들을수 없으나 그의 발자취를 고를 수 있는 듯하다.
 
4
여기 온 지 며칠이 되지 못한 김우일은 사무실 뒷방에 혼자 누웠다. 너무 고요한 것이 피부를 간지럽게 문지르는 듯하다. 저쪽 선방(禪房)에서 참선하는 소리가 가끔가끔 그 간지러운 정적을 긁어 줄 뿐이다.
 
5
우일은 혼잣말로,
 
6
'이상하다!'
 
7
하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8
"오늘 저녁에는 다시 한번 나가 보리라!"
 
9
할 즈음에 그 절 주임(主任)의 대리를 보는 중 하나가 앞 복도를 지나다가 우일을 보고서 합장하고 와 앉는다. 얼굴빛은 자둣빛같이 검붉으나 건강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나타내며 미목(眉目)이 청수하여 그의 천분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웃음지으며 말을 꺼낼 때에 하얀 이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긴다.
 
10
"심심하시지요?"
 
11
그는 꿇어앉아 친절하게 물어 본다.
 
12
"네, 조금 무료합니다. 그러나 퍽 좋습니다."
 
13
"무얼 좋을 거야 있겠읍니까마는 속계(俗界)보다야 조금 한적한 맛이 있지요."
 
14
"조금뿐이 아니라 퍽 많습니다. 이런 데서 살면은 늙지를 않을 것 같습니다."
 
15
"네. 헤헤, 그렇습니다. 건강에 관계가 조금 있지요."
 
16
우일은 화제를 돌리어,
 
17
"그런데 이 절에 모두 몇 분이나 계십니까?"
 
18
"몇 사람 안 됩니다. 한 이십여 인밖에."
 
19
"여자라고는 하나도 없겠지요?"
 
20
그 중은 시치미나 떼는 것처럼,
 
21
"없읍니다"
 
22
하니까 우일은 의심쩍은 듯이,
 
23
"네 ──"
 
24
하고서는 멀거니 서 있다. 그러니까 그 중은 할 말이 없어 군 이야기처럼,
 
25
"안동읍에 가 보신 일이 계신가요?"
 
26
"한 두어 번 가 보았지요. 거기에는 나의 절친한 친구 한 사람 있어서요."
 
27
"네, 그러세요. 누구십니까요?"
 
28
"네, 지금 은행에 있는 유일복이라는 사람예요."
 
29
이 말을 들은 중은,
 
30
"유일복 씨요!"
 
31
하고 고개를 기웃하고 무엇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32
"그의 본댁이 의성이지요?"
 
33
"네. 바로 우리 집하고 가깝습니다."
 
34
김우일은 이 중도 그러면 혹시 유일복을 짐작하는가 하여,
 
35
"그것은 어떻게 아십니까?"
 
36
"녜, 알 만한 일이 있어요. 들으니까 그이가 은행 일을 고만두었다나 보아요."
 
37
김우일은 깜짝 놀라는 듯이.
 
38
"그럴 리가 있나요?"
 
39
"아니올시다. 고만두었읍니다. 그럴 사정이 있어요."
 
40
김우일은 속마음으로 일복 사정은 나같이 자세히 알 사람이 없는데 내가 모르게 일복이 은행 일을 그만두었다니 네가 잘못 알았다 하는 듯이,
 
41
"아마 똑같은 이름이 있는 게지요"
 
42
하니까 그 주지 대리는,
 
43
"그러면 우일 씨 아시는 그 어른이 저 아는 그이가 아닌 게지요."
 
44
"그렇지만 안동은행에는 유성(柳姓) 가진 이가 그 사람밖에 없는 걸요."
 
45
"그러면 정희라고 아십니까?"
 
46
"은행 지배인의 딸 말씀입니까?"
 
47
"녜, 녜. 바로 맞었읍니다."
 
48
"알고 말고요. 그이가 유일복과 정혼한 이죠."
 
49
"바로 맞었읍니다. 녜, 녜."
 
50
주지 대리는 한숨을 후 쉬더니,
 
51
"참 가엾은 일예요"
 
52
하고 고개를 숙인다.
 
53
우일은 무슨 가탄한 일이 일복과 정희 사이에 생겼는가 하여,
 
54
"무슨 일이요?"
 
55
하니까 그 중은,
 
56
"말씀할 것까지는 없읍니다마는…가엾어요."
 
57
우일은 궁금증이 나서 무슨 일인지 어떻게 해서든지 알아보려고,
 
58
"무슨 일인지 가르쳐 주십쇼그려.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어도 요사이 그 사람의 소식을 듣지 못해서 궁금하던 차인데요."
 
59
"녜, 일복 씨하고 그렇게 친하시다 하고 또 우일 씨를 신용하는 까닭에 말씀은 하겠읍니다마는 정희 씨가 일전에 돌아갔지요."
 
60
이 말을 들은 우일은 자기의 동생의 죽음을 들은 듯이,
 
61
"녜? 죽어요?"
 
62
중은,
 
63
"네"
 
64
하고서 점잖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며 입속으로 중얼중얼 염불을 하였다.
 
65
"어떻게 하다가요? 병이 났었든가요?"
 
66
우일은 바짝 달라붙어 앉았다.
 
67
"아니지요."
 
68
그 중은 다시 점잖게 고개를 내흔들더니,
 
69
"물에 빠졌지요"
 
70
하며 입맛을 다셨다.
 
71
우일은 중의 얼굴을 무엇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듯이 한참 들여다보았다.
 
72
그리고 여태까지 민틋한 얼굴에 윤기가 번쩍거리고 그야말로 영광(靈光)이 있는 듯하더니 지금 자기가 속마음에 어제 저녁 자기가 변소에 갔을 때에 이 절에는 여자가 하나도 없다는 데서 여자를 본 것과 또는 그 여자가 정희와 똑같은 것을 본 것을 생각하면서 그 중의 얼굴을 보니까 그 윤기와 영광은 어디로 사라지고 짐승의 털 같은 검은 수염과 사자 입 같은 길게 째진 입과 이리의 욕심 많은 눈 같은 두 눈이 보일 뿐이다.
 
73
아무리 신심(信心) 깊다는 승(僧)ㆍ목사(牧師) 등 여러 종교가에게 대하여 착실한 신임을 하지 못하는 우일은 속으로 '너도 사람인 이상에야 죄를 안 짓고는 어디가 가려워서 못 견디는 모양이로구나?'하였다.
 
74
우일은 얼굴 빛을 다시 냉정하게 고치고서.
 
75
"어째 그랬을까요?"
 
76
"그것은 그 유일복 씨 까닭이지요. 그이가 아마 마음을 주지 않었든 모양예요."
 
77
"녜."
 
78
우일은 대답할 뿐이다.
【원문】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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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향(羅稻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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