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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16 ◇
해설   목차 (총 : 17권)     이전 16권 다음
1926년
나도향
 

16

 
2
동진과 일복은 엄영록의 집에 다다랐다. 일복은 여태까지 술이 깨지 않았는지 얼굴빛이 붉은 데다가 양순의 집으로 비록 자기 직접은 아닐지라도 연담을 하러 가는 것을 생각하매 부끄러웁기도 하며 또 한옆으로는 한 번 허락하였던 것을 물리치고 오십이나 된 장돌뱅이에게 돈 백 원에 팔았다는 것을 생각하매 공연히 두 주먹이 쥐어졌다 펴졌다 하며 팔이 불불 떨린다.
 
3
그가 양순의 집에 들어가는 심리(心理)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초례청에 들어가는 나이 어린 신랑 수줍어하는 듯한 그것과 또 한 가지는 흉적(凶敵)을 물리치려 그 소굴로 들어가는 연소무인(年少武人)의 의분이 넘치는 그것이었다.
 
4
동진은 먼저 마당에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 하루 판 돈을 세던 양순 어미는 동진을 보더니 술 항아리 옆으로 비켜 앉으며,
 
5
"어서 오시소"
 
6
하고서 인사를 한다.
 
7
"괜찮은가?"
 
8
동진은 인사 대답을 하고 마루에 걸터 앉아 사면을 한 번 둘러보더니,
 
9
"재미가 어떤고?"
 
10
"언제든지 그렇지요. 장 그렇지요"
 
11
하면서 두 눈을 더러웁게 스르르 감는다.
 
12
"죄다들 어디 갔는가? 아들서껀."
 
13
"모르겠쇠다. 동리에 갔는가요."
 
14
"또 딸은?"
 
15
어미는 방을 가리키며,
 
16
"저 방에요."
 
17
이러다가 일복이 웬일인지 뚫어지도록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마루끝에 서 있는 것을 보더니,
 
18
"이리 올러오시죠"
 
19
하고서 마룻바닥을 가리킨다. 동진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이 두루마기를 휩싸고서,
 
20
"올러앉이소"
 
21
하며 일복을 권하는 듯이 쳐다본다.
 
22
일복은 허리 굽혀 사례를 하고,
 
23
"녜"
 
24
하며 걸터앉았다.
 
25
동진은 담배를 피워 물고,
 
26
"그런데 술이나 한잔 주게나그려."
 
27
어미는 잔을 씻고 안주를 담더니 미안한 듯이 빙긋 웃으며,
 
28
"안주가 있어야죠. 에그, 맨술만 잡숫나요?"
 
29
하고서 두 잔을 부어 놓는다. 일복은 술을 보더니 진저리나 치는 듯이 상을 찌푸리고 얼굴을 내흔들며,
 
30
"에그, 나는 정말 못 먹겠어요. 지금도 머리가 아퍼 죽겠는데요."
 
31
그래 동진은 억지로 권하면서,
 
32
"한 잔만, 꼭 한 잔만 잡수세요."
 
33
"녜, 정말 못 해요."
 
34
"무얼 공연히 그러십니다그려. 오 ⎯⎯ 장모에게 어여쁘게 보이려고 그러십니까?"
 
35
이 말이 떨어지자 어미는 일복을 보더니 고개나 끄덕거리는 것 같이 곁눈으로 일복을 바라본다. 일복은 얼굴이 더욱 빨개지며 이 양반이 유일복 씨란다 하는 듯이 슬그머니 얼러맞추는 동진의 두름성 있는 말을 듣고서는 이제는 주저할 것 없다는 듯이 안심이 된다. 그러나 참말 먹을 수 없는 술이나마 하는 수 없이 안 받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시었다.
 
36
그리고 안주를 먹은 뒤에 뒤로 물러앉았다. 동진은 마루에 걸쳤던 두 다리를 마루 위로 올려 놓으면서 부어 놓은 술을 마시더니 잔을 탁 내려놓고 안주를 씹으며,
 
37
"그런데 여보게, 내 말 한 마디 할 것이 있네"
 
38
하고서 젓가락을 놓고 다시 고개를 처들어 양순 어미를 보면서,
 
39
"그래 이번 일은 어떻게 된 셈인가? 오늘 온 것은 다름이 아냐. 그 일 때문에 온 것이야."
 
40
그 말이 나오자 양순 어미는 그 말 나오는 것이 귀찮은 듯이 공연히 딴소리를 하려고 앵 하고 모여드는 모기를 두 손으로 날리면서,
 
41
"망할 놈의 모구, 사람 못 살겠군"
 
42
하니까, 얼핏 대답하지 않는데 조금 조급한 듯이,
 
43
"응? 웬일야? 곡절을 알 수가 없으니."
 
44
동진은 재우쳐 묻는다. 양순 어미는 벌써 알아차리고서,
 
45
"무엇을요?"
 
46
하면서 미안히 여기는 중에도 비웃는 듯이 씽긋 반웃음을 웃었다.
 
47
"내가 자네 아들에게 청한 것 말야?"
 
48
그때야 어미는,
 
49
"녜 ──"
 
50
하며 긴 대답을 하고서,
 
51
"나는 무엇이라구요. 참 미안한 말씀을 벌써 하려다가. 그렇지만 정혼을 하여 놓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52
"정혼을 하였어?"
 
53
"녜."
 
54
일복은 한 잔 술이 또 취하여 공연히 말이 하고 싶은 중에도 동진의 교섭이 점점 진전할수록 마음 조마조마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진은,
 
55
"흥!"
 
56
하고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57
"여보게, 글쎄 그게 무슨 짓인가? 자아 여기 앉으신 이가 그 어른일세"
 
58
하며 일복을 가리키더니,
 
59
"자아, 그런 생각 먹지 말고 내가 말한 것대로 이 어른에게 허락하게. 오늘은 이 어른이 직접으로 자네의 말을 들으시려고 몸소 오셨으니,"
 
60
일복은 소개하는 소리를 듣고서 허리를 다시 펴고 몸을 고쳐 앉아서,
 
61
"참 보기는 두어 번 보았으나 알지를 못하였소. 나는 유일복이요. 아마 이미 동진 씨에게 말씀을 들었을 듯하오."
 
62
하니까 어미는 조금 냉담하게,
 
63
"참 말씀은 많이 들었읍니다"
 
64
하고서 걸레로 방바닥을 훔쳤다.
 
65
동진은 조금 더 바싹 들어앉더니,
 
66
"어떻게 할 터인가? 허락할 터인가?"
 
67
하니까 어미는 동진을 바라보고 태연한 웃음을 웃으면서,
 
68
"무엇을 어떻게 하랍니까? 어서 술이나 드소."
 
69
"술야 먹겠지마는 그 말 대답을 해야지."
 
70
"글쎄요"
 
71
하고서 일복을 가리키며,
 
72
"약주 한 잔만?"
 
73
하며 주전자를 들어 먹겠느냐는 의견을 들으려 한다.
 
74
"아니, 싫소. 싫어. 진저리가 나오."
 
75
일복은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이킨다. 동진은 한 잔을 마시더니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으로 안주를 뒤적거리면서,
 
76
"사람이란 그래서 안 되네. 어린 딸을 생각해야지. 자네가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한 짓이지. 글쎄 이 사람아, 지금 말하자면 갓 피는 꽃봉오리 같은 젊은 딸을 오십이나 넘은 늙은 사람에게다 주다니, 안 돼. 안 될 일야"
 
77
하니까 어미는 그래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서 한참 있다가,
 
78
"그것도 연분이지요."
 
79
"연분!"
 
80
동진은 어미를 한 번 쳐다보더니,
 
81
"연분이 무슨 빌어먹을 연분인가? 그래 젊은 딸을 늙은 놈에게 팔어먹는 것이 연분야?"
 
82
하고 조금 어조가 불온히 나가는 것을 들은 일복은 자기까지 미안한 생각이 나서, 어미는 오죽하랴 하는 듯이 어미의 기색을 살피었다. 그러나 어미는 또 한번 씽긋 웃더니,
 
83
"그것도 다 연이 있길래 그렇게 되지요."
 
84
동진은 껄껄 웃어 쓸데없는 분격을 잘못 말한 것을 덮어 버리면서,
 
85
"그렇지. 그러나 그 연을 이쪽으로 끌어와 보게그려. 그것은 자네 입에 달린 것이 아닌가?"
 
86
"그러면 혼인을 무르라는 말씀이지요?"
 
87
"그렇지 그래."
 
88
"혼인을 무르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89
"그러면?"
 
90
"그렇지만 이번 일은 무를 형편이 되지 못해요."
 
91
동진은 어미를 홀겨보더니,
 
92
"형편이 무슨 형편야 . 그까짓 놈에게 나는 싫소 하며는 제가 또 무슨 큰 소리를 할라구."
 
93
"그래도 못 돼요."
 
94
"무엇이 못 돼?"
 
95
동진은 무엇을 알아차린 듯이 들었던 젓가락으로 소반 변죽을 탁 치면서,
 
96
"옳지, 알겠네. 그거야 염려 말게, 이 사람아! 그까짓 것을 가지고 그러나? 돈 말일세그려. 돈 때문에 그렇지? 하하, 그거야 내가 있는데도 그러는가? 아마 말하기가 부끄러워 그러나보이그려. 그거야 벌써 생각해 둔 거야."
 
97
동진은 일복을 돌아다보며,
 
98
"사람이 저렇게 용렬합니다그려"
 
99
하고서 놀려먹듯 웃더니, 다시 어미를 보고서,
 
100
"이 사람아, 아무리 하기로 이 어른이 돈 몇 백 원이야 못 해 주실 줄 아는가?"
 
101
일복은 속으로 문제는 그것 하나면 낙착이 되리라 하면서도 혼인 이야기를 하는데 돈이라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주 불쾌하였다. 그러나 어떻든 잘 되기만 기대하는 그는,
 
102
"그거야 우리도 벌써 의논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염려는 할 것이 없겠지요"
 
103
하고서 동진의 말에 뒷받침을 하였다.
 
104
그러고 나니까 반 이상의 허락을 받은 듯하여 일복은 부질없이 기꺼운 중에도 죄던 가슴이 내려앉았다.
 
105
그리고 석유 남포에 켜 놓은 불빛으로 마주앉은 어미를 볼 때 기름 때 묻은 머리채를 이리저리 설기설기하여 틀어 얹은 것과 두 발의 열 발가락이 짐승의 발같이 험상스러웁게 생긴 것과 격에 맞지 않는 은가락지를 목우상(木偶像)의 손가락에 끼워 놓은 것 같은 것까지 반 이상은 벌써 눈에 익어 짐승 같은 발가락과 격에 맞지 않는 은가락지와 때 묻은 머리채가 벌써 자기 장모의 그것이 되고 만 듯하다. 그래서 아까 여기를 들어올 때에 깨달았던 그 의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잦아지는 재미에 웃음으로 꽃피는 화목한 가정에 앉은 듯할 뿐이다. 그리고 마루 밑에서 정정하고 나서는 그 집 개까지 벌써 자기집 개가 되고 만 듯하다.
 
106
그러나 어미는 얼굴에 차디찬 정이 돌면서,
 
107
"고만두세요"
 
108
하며 고개를 내두르는 두 눈에는 어떠한 여성에게서든지 볼 수 있는 암상맞은 광채가 나면서,
 
109
"저는 돈도 바라지 않고요, 아무것도 싫어요. 상사람은 상사람끼리 혼인을 해야지 후환이 없어요."
 
110
일복은 다시 어미를 보았다. 그러고서는 양을 보려다가 여우를 본 것 같이 적지 않은 낙망이 되면서도, 그러나 한 번 더 다지는 수작이려니 하고서 일복은 있는 말솜씨를 다 내어,
 
111
"그러면 내가 상사람 노릇을 하지"
 
112
하니까 동진도 잠깐 웃다가,
 
113
"이 사람아, 양반하고 혼인해서 후환 있을 것이 무엇인가?"
 
114
어미는,
 
115
"어떻든 저 어른에게 내 딸 드릴 수는 없어요"
 
116
하면서 일복을 원망이나 있는 듯이 가리킨다. 동진은 기가 막힌 듯이 허허 웃고서,
 
117
"그것은 또 어째서?"
 
118
"왜든지요."
 
119
"말을 해야지?"
 
120
"말요?"
 
121
"그래."
 
122
"그 말해 무엇 하게요? 안 하는 것이 좋지요."
 
123
"무슨 말인데 못 할 것이 무엇이야. 알기나 하세그려."
 
124
"어떻든 저는 저의 딸을 아무리 나이 늙은 장돌뱅이라도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좋아요."
 
125
일복은 다시 살이 에이는 듯한 불쌍한 정과 피가 끓는 듯한 분노가 가슴에서 일어난다. 그리고서 가끔가끔 방 안에서 크게 못 하는 가는 양순의 기침 소리를 들을 때 일복은 그 어여쁜 양순을 수염이 짐승의 털 같이 나고 수욕(獸慾)이 입 가장자리와 두 눈에서 낙수지듯 하는 그놈의 장돌뱅이가 이리 발 같은 두 손을 넓게 벌리고 자기의 만족을 채우려고 덤벼드는 듯할 때 악 소리를 치면서 덤벼들어 그놈을 당장에 죽여 흠 없고 깨끗한 양순을 구해 내고 싶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온몸을 진저리치듯 떨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126
"무어요? 그것은 어째 그렇소?"
 
127
하고서 바싹 가까이 다가앉았다. 어미는,
 
128
"녜, 녜. 그것은 아무리 나이 젊고 얌전하고 재주 있는 당신이라도 남의 목숨을 끊게 한 어른에게는 드릴 수가 없단 말예요."
 
129
일복의 머릿속에는 번개같이 정희가 보였다. 정희!
 
130
일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벙벙히 천장만 바라보고 앉았었다. 그의 입은 무엇으로 풀 발라 봉한 듯하였다.
 
131
이 말을 들은 동진은 눈 크게 뜨며 어미를 쥐어지를 듯이,
 
132
"무어야? 누가 사람을 죽게 해?"
 
133
하니까 어미는 태연한 얼굴로,
 
134
"꽃 같은 젊은 아가씨를 죽게 한 이가 누구십니까?"
 
135
하며 일복을 쳐다본다. 일복은 그 자리에 엎드러질 듯이 낙망하였다.
 
136
"여보!"
 
137
일복의 목소리는 떨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138
"동진 씨!"
 
139
하려니까 어미는 하려던 말을 채 마치지 못한 듯이,
 
140
"흥, 물에 빠진 귀신은 사라지지도 않고 언제든지 등 뒤에 따러 다닌답니다. 그런 이에게 딸을 줘요!"
 
141
동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일복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앉았더니,
 
142
"여보!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하는 수가 없이 하오. 그런데 동진 씨!"
 
143
말에 눈물이 마룻바닥에 떨어진다.
 
144
"동진 씨! 나의 마음을 말하려 하나 그 말이 없고 귀를 가졌으나 들어 줄 사람이 없읍니다. 여보세요. 만일 나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딸을 줄 수가 없거든, 줄 수가 없거든 말씀여요…"
 
145
일복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사면을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고서,
 
146
"저에게 주지는 않을지라도 제발 오십먹은 장돌뱅이에게는 주지 말어 달라고 해 주세요"
 
147
하고서는 그 자리에 엎드러져 울었다. 그러려니까 그 어미는 다시 깔깔 웃으면서,
 
148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그려. 내 딸이지 당신의 딸은 아니지요. 내 딸은 언제든지 내 맘대로 하렵니다."
 
149
이 말을 들은 일복은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서 어미에게 달려들며,
 
150
"이 아귀야! 딸의 피를 빨아먹는 독사야! 너 같은 것들은 모두 한번에…"
 
151
하고서 발길을 들려 하니까 동진이 덤벼들어 말리면서,
 
152
"고만두십쇼. 고만두세요. 그것을 그러시면 무엇 합니까?"
 
153
어미는 분해서 씩씩하며,
 
154
"무어요? 아귀요? 내가 아귀여요? 어째 내가 아귀요?"
 
155
하고 말대답을 하려니까, 동진은 호령을 하면서,
 
156
"가만 있어! 무엇이라 지껄여?"
 
157
일복은 눈물을 씻으면서,
 
158
"에 ── 분해요. 내가 죽드라도 저런 짐승 같은 것은 살려 두기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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