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동진과 일복은 엄영록의 집에 다다랐다. 일복은 여태까지 술이 깨지 않았는지 얼굴빛이 붉은 데다가 양순의 집으로 비록 자기 직접은 아닐지라도 연담을 하러 가는 것을 생각하매 부끄러웁기도 하며 또 한옆으로는 한 번 허락하였던 것을 물리치고 오십이나 된 장돌뱅이에게 돈 백 원에 팔았다는 것을 생각하매 공연히 두 주먹이 쥐어졌다 펴졌다 하며 팔이 불불 떨린다.
3
그가 양순의 집에 들어가는 심리(心理)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초례청에 들어가는 나이 어린 신랑 수줍어하는 듯한 그것과 또 한 가지는 흉적(凶敵)을 물리치려 그 소굴로 들어가는 연소무인(年少武人)의 의분이 넘치는 그것이었다.
4
동진은 먼저 마당에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 하루 판 돈을 세던 양순 어미는 동진을 보더니 술 항아리 옆으로 비켜 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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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은 인사 대답을 하고 마루에 걸터 앉아 사면을 한 번 둘러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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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두 눈을 더러웁게 스르르 감는다.
17
이러다가 일복이 웬일인지 뚫어지도록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마루끝에 서 있는 것을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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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마룻바닥을 가리킨다. 동진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이 두루마기를 휩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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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는 잔을 씻고 안주를 담더니 미안한 듯이 빙긋 웃으며,
28
"안주가 있어야죠. 에그, 맨술만 잡숫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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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두 잔을 부어 놓는다. 일복은 술을 보더니 진저리나 치는 듯이 상을 찌푸리고 얼굴을 내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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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나는 정말 못 먹겠어요. 지금도 머리가 아퍼 죽겠는데요."
34
"무얼 공연히 그러십니다그려. 오 ⎯⎯ 장모에게 어여쁘게 보이려고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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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떨어지자 어미는 일복을 보더니 고개나 끄덕거리는 것 같이 곁눈으로 일복을 바라본다. 일복은 얼굴이 더욱 빨개지며 이 양반이 유일복 씨란다 하는 듯이 슬그머니 얼러맞추는 동진의 두름성 있는 말을 듣고서는 이제는 주저할 것 없다는 듯이 안심이 된다. 그러나 참말 먹을 수 없는 술이나마 하는 수 없이 안 받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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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주를 먹은 뒤에 뒤로 물러앉았다. 동진은 마루에 걸쳤던 두 다리를 마루 위로 올려 놓으면서 부어 놓은 술을 마시더니 잔을 탁 내려놓고 안주를 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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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보게, 내 말 한 마디 할 것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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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젓가락을 놓고 다시 고개를 처들어 양순 어미를 보면서,
39
"그래 이번 일은 어떻게 된 셈인가? 오늘 온 것은 다름이 아냐. 그 일 때문에 온 것이야."
40
그 말이 나오자 양순 어미는 그 말 나오는 것이 귀찮은 듯이 공연히 딴소리를 하려고 앵 하고 모여드는 모기를 두 손으로 날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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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얼핏 대답하지 않는데 조금 조급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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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웬일야? 곡절을 알 수가 없으니."
44
동진은 재우쳐 묻는다. 양순 어미는 벌써 알아차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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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미안히 여기는 중에도 비웃는 듯이 씽긋 반웃음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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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라구요. 참 미안한 말씀을 벌써 하려다가. 그렇지만 정혼을 하여 놓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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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한 잔 술이 또 취하여 공연히 말이 하고 싶은 중에도 동진의 교섭이 점점 진전할수록 마음 조마조마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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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글쎄 그게 무슨 짓인가? 자아 여기 앉으신 이가 그 어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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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그런 생각 먹지 말고 내가 말한 것대로 이 어른에게 허락하게. 오늘은 이 어른이 직접으로 자네의 말을 들으시려고 몸소 오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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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소개하는 소리를 듣고서 허리를 다시 펴고 몸을 고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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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보기는 두어 번 보았으나 알지를 못하였소. 나는 유일복이요. 아마 이미 동진 씨에게 말씀을 들었을 듯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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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어미는 동진을 바라보고 태연한 웃음을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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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하랍니까? 어서 술이나 드소."
69
"술야 먹겠지마는 그 말 대답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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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주전자를 들어 먹겠느냐는 의견을 들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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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싫소. 싫어. 진저리가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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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이킨다. 동진은 한 잔을 마시더니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으로 안주를 뒤적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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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그래서 안 되네. 어린 딸을 생각해야지. 자네가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한 짓이지. 글쎄 이 사람아, 지금 말하자면 갓 피는 꽃봉오리 같은 젊은 딸을 오십이나 넘은 늙은 사람에게다 주다니, 안 돼. 안 될 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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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어미는 그래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서 한참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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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이 무슨 빌어먹을 연분인가? 그래 젊은 딸을 늙은 놈에게 팔어먹는 것이 연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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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금 어조가 불온히 나가는 것을 들은 일복은 자기까지 미안한 생각이 나서, 어미는 오죽하랴 하는 듯이 어미의 기색을 살피었다. 그러나 어미는 또 한번 씽긋 웃더니,
83
"그것도 다 연이 있길래 그렇게 되지요."
84
동진은 껄껄 웃어 쓸데없는 분격을 잘못 말한 것을 덮어 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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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러나 그 연을 이쪽으로 끌어와 보게그려. 그것은 자네 입에 달린 것이 아닌가?"
88
"혼인을 무르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90
"그렇지만 이번 일은 무를 형편이 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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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무슨 형편야 . 그까짓 놈에게 나는 싫소 하며는 제가 또 무슨 큰 소리를 할라구."
95
동진은 무엇을 알아차린 듯이 들었던 젓가락으로 소반 변죽을 탁 치면서,
96
"옳지, 알겠네. 그거야 염려 말게, 이 사람아! 그까짓 것을 가지고 그러나? 돈 말일세그려. 돈 때문에 그렇지? 하하, 그거야 내가 있는데도 그러는가? 아마 말하기가 부끄러워 그러나보이그려. 그거야 벌써 생각해 둔 거야."
99
하고서 놀려먹듯 웃더니, 다시 어미를 보고서,
100
"이 사람아, 아무리 하기로 이 어른이 돈 몇 백 원이야 못 해 주실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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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속으로 문제는 그것 하나면 낙착이 되리라 하면서도 혼인 이야기를 하는데 돈이라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주 불쾌하였다. 그러나 어떻든 잘 되기만 기대하는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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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우리도 벌써 의논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염려는 할 것이 없겠지요"
104
그러고 나니까 반 이상의 허락을 받은 듯하여 일복은 부질없이 기꺼운 중에도 죄던 가슴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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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석유 남포에 켜 놓은 불빛으로 마주앉은 어미를 볼 때 기름 때 묻은 머리채를 이리저리 설기설기하여 틀어 얹은 것과 두 발의 열 발가락이 짐승의 발같이 험상스러웁게 생긴 것과 격에 맞지 않는 은가락지를 목우상(木偶像)의 손가락에 끼워 놓은 것 같은 것까지 반 이상은 벌써 눈에 익어 짐승 같은 발가락과 격에 맞지 않는 은가락지와 때 묻은 머리채가 벌써 자기 장모의 그것이 되고 만 듯하다. 그래서 아까 여기를 들어올 때에 깨달았던 그 의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잦아지는 재미에 웃음으로 꽃피는 화목한 가정에 앉은 듯할 뿐이다. 그리고 마루 밑에서 정정하고 나서는 그 집 개까지 벌써 자기집 개가 되고 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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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미는 얼굴에 차디찬 정이 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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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고개를 내두르는 두 눈에는 어떠한 여성에게서든지 볼 수 있는 암상맞은 광채가 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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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돈도 바라지 않고요, 아무것도 싫어요. 상사람은 상사람끼리 혼인을 해야지 후환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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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다시 어미를 보았다. 그러고서는 양을 보려다가 여우를 본 것 같이 적지 않은 낙망이 되면서도, 그러나 한 번 더 다지는 수작이려니 하고서 일복은 있는 말솜씨를 다 내어,
113
"이 사람아, 양반하고 혼인해서 후환 있을 것이 무엇인가?"
115
"어떻든 저 어른에게 내 딸 드릴 수는 없어요"
116
하면서 일복을 원망이나 있는 듯이 가리킨다. 동진은 기가 막힌 듯이 허허 웃고서,
122
"그 말해 무엇 하게요? 안 하는 것이 좋지요."
123
"무슨 말인데 못 할 것이 무엇이야. 알기나 하세그려."
124
"어떻든 저는 저의 딸을 아무리 나이 늙은 장돌뱅이라도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좋아요."
125
일복은 다시 살이 에이는 듯한 불쌍한 정과 피가 끓는 듯한 분노가 가슴에서 일어난다. 그리고서 가끔가끔 방 안에서 크게 못 하는 가는 양순의 기침 소리를 들을 때 일복은 그 어여쁜 양순을 수염이 짐승의 털 같이 나고 수욕(獸慾)이 입 가장자리와 두 눈에서 낙수지듯 하는 그놈의 장돌뱅이가 이리 발 같은 두 손을 넓게 벌리고 자기의 만족을 채우려고 덤벼드는 듯할 때 악 소리를 치면서 덤벼들어 그놈을 당장에 죽여 흠 없고 깨끗한 양순을 구해 내고 싶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온몸을 진저리치듯 떨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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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바싹 가까이 다가앉았다. 어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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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 녜. 그것은 아무리 나이 젊고 얌전하고 재주 있는 당신이라도 남의 목숨을 끊게 한 어른에게는 드릴 수가 없단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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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의 머릿속에는 번개같이 정희가 보였다. 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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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벙벙히 천장만 바라보고 앉았었다. 그의 입은 무엇으로 풀 발라 봉한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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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동진은 눈 크게 뜨며 어미를 쥐어지를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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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젊은 아가씨를 죽게 한 이가 누구십니까?"
135
하며 일복을 쳐다본다. 일복은 그 자리에 엎드러질 듯이 낙망하였다.
137
일복의 목소리는 떨리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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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니까 어미는 하려던 말을 채 마치지 못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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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물에 빠진 귀신은 사라지지도 않고 언제든지 등 뒤에 따러 다닌답니다. 그런 이에게 딸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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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일복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앉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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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하는 수가 없이 하오. 그런데 동진 씨!"
144
"동진 씨! 나의 마음을 말하려 하나 그 말이 없고 귀를 가졌으나 들어 줄 사람이 없읍니다. 여보세요. 만일 나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딸을 줄 수가 없거든, 줄 수가 없거든 말씀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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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사면을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고서,
146
"저에게 주지는 않을지라도 제발 오십먹은 장돌뱅이에게는 주지 말어 달라고 해 주세요"
147
하고서는 그 자리에 엎드러져 울었다. 그러려니까 그 어미는 다시 깔깔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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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그려. 내 딸이지 당신의 딸은 아니지요. 내 딸은 언제든지 내 맘대로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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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일복은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서 어미에게 달려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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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귀야! 딸의 피를 빨아먹는 독사야! 너 같은 것들은 모두 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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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발길을 들려 하니까 동진이 덤벼들어 말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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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두십쇼. 고만두세요. 그것을 그러시면 무엇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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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요? 아귀요? 내가 아귀여요? 어째 내가 아귀요?"
155
하고 말대답을 하려니까, 동진은 호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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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 분해요. 내가 죽드라도 저런 짐승 같은 것은 살려 두기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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