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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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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나도향
 

4

 
2
집에 돌아와 하룻밤을 새고 은행 일을 마친 그 이튿날 저녁 때, 일복은 또 다시 영호루를 향하여 갔다. 멀리 보는 공민왕(恭愍王)의 어필 현액(御筆縣額)이 그를 맞이하는 듯이 바라보며 있을 때 그 전에 그리 반갑지 않던 영호루가 오늘에는 웬일인지 없지 못할 것 같이 반가웁고 그리웁다. 그러나 처녀를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영호루가 연상되고, 영호루를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그 처녀가 생각이 된다.
 
3
양복 주머니에서 그 처녀가 준 자주 헝겊을 꺼내어 보며,
 
4
'이것을 갖다 주어? 가서 다시 한번 만나 봐? 그렇다! 가 보는 핑곗거리는 단단히 된다.'
 
5
해는 바야흐로 서산을 넘으려 하고 저녁 연기는 온 읍내를 덮기 시작한다.
 
6
일복이 그 주막집 앞을 다다랐을 때 그는 또다시 주저하였다. 만일 내가 이것을 돌려 보낼 때 그 처녀가 있어서 나를 또 보고 웃으면 모르거니와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노? 그렇기는 고사하고 보고도 웃지 않으면 어찌하나?
 
7
웃지도 않으려면 있지 않는 게 좋고 없으려면 내가 가지 않는 것이 좋지!
 
8
그는 바로 들어가지를 않고 일부러 영호루를 돌았다. 그리고 영호루 주춧돌 틈으로 그 집을 엿보았다.
 
9
그때였다. 또다시 어저께와 같이 그 처녀는 물동이를 이고 물 길러 갔다.
 
10
넘어질까 겁하여 두 눈을 아래로 깔고 물 길러 갔다. 걸음걸음이 향 자취를 땅위에 인박고 발끝 발끝마다 , 꽃그림자를 그리는 양순은 텅 빈 물동이에 사랑의 샘물을 가득 채우려는 듯이 물 길러 갔다. 쓰지 않은 새 그릇 같은 양순의 가슴속에 새로운 사랑의 씨를 담아 주려는 일복이 뒤에 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물만 길러 갔다.
 
11
일복은 그 뒤를 따라갔다. 좁은 비탈길을 지나고 언덕 아래 길을 거쳐 밭이랑을 꿰뚫고 언덕 모퉁이 하나를 돌아 포플라 그늘이 슬며시 걸친 우물에 왔다.
 
12
우물에 허리를 굽혀 물을 뜨는 양순은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다만 두레박을 물 속에 텀벙 잠가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잦혀 누일 뿐이었다.
 
13
저녁 그늘진 곳에 수분 섞인 공기가 죄는 일복의 마음을 더욱 으스스하게 한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 가는 저녁날에 아무도 없이 다만 나뭇가지 속에서 쌕쌕하는 고요한 곳에 단둘이 서 있는 것이 어째 그의 마음을 정욕으로 가늘게 떨리게 한다.
 
14
양순이 물동이를 들고 일어서려 할 때이다. 일복은, '에헴"'고 기침을 하였다. 양순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고 그 서 있는 사람이 일복임을 알고서 겨우 안심하는 중에도 '나는 누구라구. 왜 사람을 놀라게 하느냐'하며 반가와하는 가운데 얄미웁게 토라지는 듯이 반쯤 웃었다. 일복은 다만,
 
15
"이것 가지고 왔는데"
 
16
하고 그 헝겊을 꺼내 놓았다. 그 처녀는 그것 한번 들여다보고 또 일복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고서는 그것을 받으려 하지도 않고 물끄러미 서 있었다.
 
17
"자, 받어요"
 
18
하고 그 헝겊을 그 처녀의 손에 쥐어 주는 일복의 얼굴은 빨개졌다.
 
19
그리고 몸이 떨리었다. 아무 소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은 양순은 웬일인지 섭섭한 기색을 띠고 서 있다가 아무 소리 없이 물동이를 이었다. 그리고 구름이 발에 걸치는 듯이 느럭느럭 힘없이 걸어갔다.
 
20
일복은 다만,
 
21
"내일도 또 저녁 때 물긷지?"
 
22
하였다. 그러니까 그 처녀는,
 
23
"네"
 
24
할 뿐이었다.
 
25
두 사람이 다시 언덕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에는 일복은 언덕 위에 올라서서 멀리 그 처녀가 자기 집으로 물동이 이고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26
양순은 물을 독에 부어 놓고 누가 쫓아오는 듯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방구석에 돌아앉아 훌쩍훌쩍 울면서 손에 든 헝겊을 손에다 단단히 쥐었다.
 
27
"그이가 왜 이 헝겊을 도루 주었노?"
 
28
할 때 눈물 방울은 삿자리 위에 떨어졌다.
 
29
"그이가 이 헝겊을 싫어하는 것인 게지?"
 
30
할 때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느껴 울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개를 들고 먼 산을 볼 때,
 
31
"내가 준 헝겊을 도루 줄 때에는 나를 보기 싫어 그리한 것인 게지?"
 
32
하고서는 또다시 눈물 방울이 따르륵 두 뺨에 굴렀다.
 
33
"그런 줄 알았더면 애당초 주지를 말 걸!"
 
34
양순은 웬일인지 울음이 복받쳐 올라오고 어두운 방구석이 마음 죄게 답답하다. 그러다가는,
 
35
"나는 내일은 물길러 가지 않을 터이야"
 
36
하고 그 헝겊을 갈갈이 찢어 창 밖에 내버렸다.
【원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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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향(羅稻香) [저자]
 
  1926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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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