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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7 ◇
해설   목차 (총 : 17권)     이전 7권 다음
1926년
나도향
 

7

 
2
"나무아미타불!"
 
3
정희는 눈을 떴다. 온몸이 땀에 젖은 데다가 새벽 바람이 불어 척근 척근하게 한다.
 
4
"누구십니까?"
 
5
하고 자기를 문지르고 있는 사람을 바로 쳐다보았으나 그의 얼굴 윤곽이라든지 음성이라든지 또는 몸짓이라든지 한 번도 만나 본 기억이 없는 사람인데 머리에는 송낙(松蘿)을 썼다.
 
6
"나무아미타불!"
 
7
을 또 한 번 외더니 가슴을 내려앉히고 한숨을 한 번 쉬고,
 
8
"누구신지는 알 수 없으나 젊은신 양반이 어째 그런 마음을 잡수셨을까요?"
 
9
정희는 일어나 앉으려 하지는 않고 고개를 힘없이 그 여승(女僧)의 무릎 위에서 저쪽으로 돌리며,
 
10
"그거야 말씀해 무엇 하겠읍니까마는 어떻든 고맙습니다"
 
11
하고 다시 하늘을 쳐다보니 아까 있던 별은 여전히 깜박거리고, 아까 보이던 산도 여전히 멀리 둘리어 있고, 아까 자기를 삼키려던 물은 여전히 흘러 가느라고 차르럭거린다.
 
12
"고맙기야, 이것도 다 부처님이 지시하심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젊으신 이가 물에 빠지려 하심은 반드시 곡절이 있을 듯한데요. 저에게 말씀을 하시고 어서 바삐 날이 밝기 전에 댁으로 가시지요. 소문이 나면 좋지 못할 터이니까요."
 
13
정희는 또다시 한참 있다가 겨우 일어나려 하니까 그 여승은,
 
14
"염려 마시고 누워 계세요. 신열이 이렇게 나시고 가슴이 이렇게 뛰시는데"
 
15
하며 아직 주름살이 잡히지 않은 사십 가까운 여자의 손으로 정희의 머리를 짚어 준다. 정희는,
 
16
"저에게는 이제부터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예요. 지금 당신이 나를 구하신 것이 세상 사람이 혹 그것을 잘한 일이라고 칭송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는 사람은 벌써 이 세상에서 한 가지 반 가지의 행복을 얻지 못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세상에 살어 있는 것이 고통이며 불행한 것을 안 까닭에 죽으려 한 것이니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해서 더욱 행복은 된다 할 수 없드래도 사는 것보다 나으니까 죽으려 한 것이겠지요. 지금 당신이 나를 구한 것이 당신의 자비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도리어 고통의 연쇄가 될는지도 알 수 없어요."
 
17
여승은,
 
18
"그렇지요. 그것도 그렇지요. 그러나 이 세상의 괴로움은 극락에 들어가는 어비입니다⋯"
 
19
말도 마치기 전에 정희는,
 
20
"알었읍니다. 신심(信心) 깊으신 당신으로는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당신은 당신 마음 가운데 언제든지 극락이나 열반이란 당신 자신이 믿는 바 이상경을 동경하는 까닭에 이 세상에서 살어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의 마음에는 당신과 같이 굳세인 힘을 주는 것인 천당도 아니요 극락도 아니요 그 무엇인 것이 없어졌읍니다."
 
21
여승은,
 
22
"그 무엇이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23
"녜, 그것은 말씀하지 않으렵니다. 그 말을 하여서 도리어 자비하신 당신의 마음을 걱정되게 할 것은 없으니까요. 그것은 청정하신 당신의 마음을 도리어 불쾌한 감정으로 물들이게 할 터이니까요. 도리어 당신네들에게는 죄악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모든 종교 모든 속박 모든 세력을 깨뜨려 부술지라도 그것 한 가지는 우리 인류가 존재한 그 날까지는 길이길이 우리 인생에게 최대의 신앙을 줄 것입니다."
 
24
여승은 알아챈 듯이 한참이나 묵묵히 있다가,
 
25
"알었읍니다. 알었세요. 그러면 저는 또다시 말씀을 여쭈어 보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26
"네, 그 말 하나는 물어 주지 마세요. 그것은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알어질 날이 있을 터이니까요. 그런데 여보세요. 저는 다만 청정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렵니다. 저의 영(靈)에게도 아무 흠이 없고 저의 육(肉)에게도 아무 흠이 없이 죽고 싶어요. 종교에 헌신한 사람이 어떠한 종교의 한 가지 신앙만으로써 그의 일생을 마칠 때 그가 영생의 환희를 깨닫는 것과 같이 나는 아무 매듭과 아무 자국이 없는 영과 육으로 영원한 대령(大靈)과 영원한 만유(萬有) 속에 안기고 싶어요."
 
27
여승에게는 그 무슨 의미인 줄 알아듣지 못한 듯이 다만 묵묵히 앉아 있을 때 저쪽 갈라산 앞에서 삐걱삐걱 새로이 밝아 오는 새벽 기운을 흔들며 낙동강 하류로 흘러가는 뗏목 젓는 소리가 들려 온다.
 
28
두 사람은 일시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정희는 일어나 앉아 사면을 둘러보았다. 새벽빛은 벌써 온 하늘에 가득 차고 작은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동쪽 하늘에 여왕의 이마를 치장하는 금강석 알 같은 샛별이 번쩍번쩍할 뿐이다.
 
29
"어서 가십시다."
 
30
사람도 없는데 누가 듣는 듯이 여승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황망히 정희를 재촉한다 정희도 . 여승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러나 어데로 갈꼬?
 
31
"댁이 어디세요?"
 
32
"나는 갈 집이 없어요."
 
33
"그러실 리가 있나요? 봐 하니 그러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34
"우리 집이라고 있었기는 있었지만은 이제부터는 우리 집이 아녜요. 있다 하드래도 가기를 원치 않으면 가지 못해요."
 
35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36
"무엇을 어떻게 해요. 나는 벌써 죽은 사람예요. 그러기에 아까도 말씀했거니와 죽으려는 사람을 구하시는 것이 당신에게는 자비가 될는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행복이 못 된다 하였지요."
 
37
"그러면 소승하고 같이 가세요."
 
38
"고맙습니다. 녜, 녜, 나를 어디로든지 데려다 주세요. 그러고 나의 살어 있는 것 누구에게든지 알리지 말어 주세요."
 
39
"그것은 어째서요?"
 
40
"네, 그것은 그렇지요 ── 한참 있다가 ── 요 다음에 말씀하지요."
 
41
여승은 정희의 발바닥 발을 보더니,
 
42
"신을 신으시지요"
 
43
하였다.
 
44
이 말을 들은 정희는 그 소리를 듣고 구두를 신으려 하다가 무엇을 생각한 듯 얼른 말머리를 돌리어,
 
45
"싫어요. 죽으려다 다시 산 사람이, 죽으려 할 제 벗어 버린 신을 다시 신으려 하니까 어째 몸서리가 쳐지는구려. 그대로 발바닥으로 가지요."
 
46
두 사람은 걸어간다. 먼 곳에서 바라보매 송낙 쓴 중의 등에 정희가 업히어 강물을 건너는 것이 희미히 보인다. 그리고 저쪽 의성으로 통한 고개 비스듬한 길 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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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향(羅稻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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