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 나뭇잎이 비가 오아라, 혼의 비가 내려라,
9
가을의 따님은 낙엽(落葉)을 밟고 있어라,
11
아아 그러나 지금(只今) 바람은 나뭇잎과 나의 희망(希望)을 불어 날리어라.
12
아아 바람이여, 내 맘까지 불러가거라, 내 맘은 이리도 무거워라!
15
생각하면 내가 사랑하던 흰 장미꽃이 피었던 곳은 저곳인 듯하여라……
17
아아 태양(太陽)이여, 너는 두 번 나의 장미를 꽃피게 하지 않으려는가?
20
생각하면 그때 일은 이곳인 듯하여라, 하늘빛도 푸르러라……
21
우리들의 눈은 희망(希望)이 가득하였어라.
22
아아 하늘이여, 너는 지금(只今)도 별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25
생각하면 그때 일은 이곳인 듯하여라…… 우리들의 맘이 만나던 순간(瞬間)은……
26
그러나 지금(只今) 바람은 불어 내 몸이 떨리어라……
27
아아 부는 바람이여, 내 맘까지 불러가거라, 내 맘은 이리도 무거워라.
29
황혼(黃昏)의 때는 가이없어라, 아아 설어라,
30
장미꽃은 조심(操心)스러운 듯이 미소(微笑)를 띄우고,
31
맑은 향훈(香薰)을 우리의 맘속에 부어 넣으며
33
버리운 여자(女子)와 같이 핼끔한 스러져 가는 햇볕에는
34
오려는 밤에 지금(只今) 생기는 사랑의 다사로움이 있으며
35
사주(四周)의 공기(空氣)는 몽환(夢幻)에 가득하였어라.
36
맑은 목장(牧場)의 풀에 누워, 피로(疲勞)를 고치는 ‘인생(人生)’은
37
샛말간 눈을 뜨며, 그 입술을 고요한 키스에 바치고 있어라.
38
황혼(黃昏)의 때는 가이없어라, 아아 설어라,
39
저녁 안개는 신생(新生)의 별을 박사(薄紗)로 싸고 어리우며,
40
두 나래는 사모(思慕)하는 듯이도 탄모(歎慕)하는 듯이도
41
봉래향(蓬萊鄕)의 피안(彼岸)까지 바람에 따라 불리어 흘러라.
42
종루(鐘樓)의 십자가(十字架)를 비추이며,
44
파리한 포플라의 높은 가지에 불같이 붉어라.
46
창(窓)에 기대어, 하염없이도 머리를 빗는 버리운 여인(女人)과 같아라.
47
황혼(黃昏)의 때는 가이없어라, 아아 설어라,
48
피었다가는 스러져 가는 너의 화향(花香)의
49
청량(淸凉)과 습음(濕陰)이 지상에 떠도는 동안에
51
햇볕은 무디어, 공간(空間)으로 가고 말아라.
52
그윽한 전율(戰慄)은 지구(地球)의 흙 위에 내리며,
53
수목(樹木)들은 저녁 기도(祈禱)의 천사(天使)인 듯하여라
54
오오 잠깐 머물러라, 가는 때여! 생(生)의 꽃이여! 잠깐 머물러라!
55
빨리도 한 절반(折半) 잠든 너의 곱고도 푸른 눈을 열어라……
56
황혼(黃昏)의 때는 가이없어라, 아아 설어라,
57
여인(女人)은 눈가에 가슴의 생각을 그윽히 띄우며,
58
지금(只今) 박명(薄明)에 생기는 사랑의 살뜰함이 보여라
59
오오 세상(世上)의 사랑이여, 빛도 흰 ‘부재(不在)’의 따님이여,
62
우리가 명일(明日)에 맛들 향료(香料)가 가득한
64
죽음이 떠돌며 아득히는 희미한 황혼(黃昏)의 때를 사랑하여라,
65
인생(人生)길의 하루에 피곤(疲困)한 ‘생(生)’의 정적(靜寂) 속에서
66
몽환(夢幻)의 노래를 듣는 시간(時間), 황혼(黃昏)의 때를 사랑하여라,
68
봄, 떨어지기 쉬운 청색(靑色)의 아네모네여,
69
너의 밝은 눈의 핼금한 고뇌(苦惱)의 속에
70
사랑은 가이없는 혼(魂)을 감추어 두었으나,
71
너는 지금(只今) 부는 바람에 떨고 있어라.
72
여름, 언덕의 갈대는 나를 보라 하는 듯이,
73
바다로 흘러가는 물에 그림자를 비추어 있을 때,
74
애닯게도 저녁 물속에 누워 있는 그림자는
75
한가하게 소리 없이 물 마시러 가는 암소의 무리러라.
76
가을, 나뭇잎의 비가 내려라, 넋이 ‘혼(魂)’의 비가 내려라,
77
사랑에 몸이 죽은 넋이 ‘혼(魂)’의 비가 내려라,
78
아낙네들은 적막(寂寞)하게도 서방(西方)을 바라보나
79
수목(樹木)은 공간(空間)에 망각(忘却)의 비(碑)를 나타내어라.
80
겨울, 눈 이불을 덥고 누었는 녹안(綠眼)의 아낙네여!
81
너의 두발(頭髮)은 서리와 고통(苦痛)과 소금에 쌓이었어라,
82
너의 미이라 ‘목내이(木乃伊)’여, 또는 저주(咀呪)를 무서워하지 않는 취잔(取殘)의 맘이여,
83
설은 홍수정(紅水晶)이여, 자거라, 너의 불사(不死)의 육체(肉體) 속에서.
85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86
적막(寂寞)도 하고 습기(濕氣)도 있는 가을의 때다,
90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91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지금(只今) 애달픈 가을은
92
그 외투(外套)의 앞깃을 가득히 하고 떨고 있다마는
94
네 맘과 같이 가벼운 공기(空氣) 안에서
95
안개는 우리의 우울(憂鬱)을 흔들며 위로해 준다,
96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97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갈바람은 사람과 같이 흐득이며 운다,
99
딸기나무는 피곤(疲困)한 팔을 흐트러치고 있다
101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102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갈바람은 몹쓸게 짖으며 우리를 꾸짖는다,
105
들비둘기의 고운 나래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106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107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지금(只今) 애달픈 가을은
113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114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115
옷을 벗은 포플라 나무들은 몸을 떨고 있으나
118
춤을 춘다, 춤을 춘다, 그 잎은 아직도 춤을 춘다,
119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121
어디인지도 모르나 안개 속에 섬이 있다.
123
성(城)에는 작은 등(燈)불이 빛나는 넓은 방(房)안이 있다,
124
이 방(房) 안에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127
그들은 누구가 와서 문(門)을 두드리기를 기다린다.
128
그들은 등(燈)불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132
이리하여 그들은 잠간(暫間) 동안의 침묵(沈默)을 말로 깨친다,
141
어찌되면 죽음이 내일(來日)까지 아니 올지도 모르겠다.
142
넓은 방(房)안의 작은 등(燈)불 아래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윽히 미소(微笑)하며 안심(安心)하라고 한다.
151
그 꽃의 향훈(香薰)만은 더욱 많아졌어라.
153
그리하고 이 상처(傷處)를 가슴에 넣어 두어라,
154
폭풍우(暴風雨)의 장미꽃과도 너는 같아라,
155
수함(手函)에 이 장미를 넣어 두어라,
158
폭풍우(暴風雨)는 그 비밀(祕密)을 지켜주리라,
159
이 상처(傷處)를 가슴에 품고 있어라.
161
시몬아, 너의 목은 흰 눈 같이 희다,
162
시몬아, 너의 무릎은 흰 눈 같이 희다,
166
네 맘을 녹이려면 이별(離別)의 키스.
167
눈은 적막(寂寞)하게도 소나무 가지에 쌓였다,
168
네 이마는 적막(寂寞)하게도 흑발(黑髮)의 아래에 있다.
169
시몬아, 너의 누이 되는 흰 눈이 뜰에서 잔다,
170
시몬아, 너의 나의 흰 눈, 그리하고 내 애인(愛人)이다.
172
시몬아, 나뭇잎 떨어진 수림(樹林)으로 가자,
173
낙엽은 이끼와 돌과 소로(小路)를 덮었다.
174
시몬아, 낙엽(落葉)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175
낙엽(落葉)의 빛깔은 좋으나, 모양이 적막(寂寞)하다,
176
낙엽(落葉)은 가이없이 버린 땅 위에 흩어졌다.
177
시몬아, 낙엽(落葉)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178
황혼(黃昏)의 때면 낙엽(落葉)의 모양은 적막(寂寞)하다,
179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落葉)은 소곤거린다.
180
시몬아, 낙엽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181
가까이 오렴, 언제 한 번(番)은 우리도 불쌍한 낙엽(落葉)이 되겠다,
182
가까이 오렴, 벌써 밤이 되어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183
시몬아, 낙엽(落葉)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196
임금(林檎)나무에는 임금(林檎)이 가득하다,
200
구임금(鳩林檎)도 청임금(靑林檎)도 따자,
202
임금(林檎)주 만들 임금(林檎)도 따자,
210
임금(林檎)나무에는 임금(林檎)이 가득하다,
214
그리하고 나의 임금(林檎)나무가 되어다오,
216
너의 맘에 있는 벌, 그리하고 내 과수원(果樹園)의 벌을,
222
바퀴는 돋는 이끼에 푸르다, 바퀴는 돈다 큰 구멍 속을
223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26
마치 밤에 바다 위를 기선(汽船)이 지나가는 듯하다,
227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29
사위(四圍)는 어둡고 무거운 석구(石臼)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230
석구(石臼)는 조모(祖母)보다도 착하고 조모(祖母)보다도 늙었다,
231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33
석구(石臼)는 착한 나만한 조모(祖母)님,
234
아이의 힘으로도 멈추고, 적은 물도 그것을 움직인다,
235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38
석구(石臼)는 우리를 살리며 도와주는 땅을 만든다,
239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41
석구(石臼)는 사람을 양육(養育)한다,
242
사람을 따르며 사람을 위하여 죽는 종순(從順)한 짐승을 양육(養育)한다,
243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245
석구(石臼)는 일한다, 운다, 돌아간다, 주저린다,
246
옛적의 옛적부터, 이 세상(世上)의 처음부터.
247
멋 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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