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고 적막(寂寞)한 수면(水面)에 스러져 가는
2
내 그림자와 핼금한 해 그늘을 들여다 보려노라.
9
비록 빗기여 나는 반향(反響)은 없다 하여도
10
물건(物件)마다 따르는 그림자야 없으랴.
13
애달픈 적성(笛聲)엔 토장(土墻)의 반향(反響)이 있고,
14
소조(小鳥)의 노래엔 소조(小鳥)가 따라 울으며,
16
우수(憂愁) 가득한 내 가슴의 부르짖음엔,
47
물거품 위에 남긴 발자취같이 내 설움은 없어졌어라,
48
오오 하느님이여, 너는 묘(妙)하게도 또한 고운 것에게 인생(人生)을 주었어라.
49
일찍 나는 설워했노라, 일찍 나는 울었노라,
50
그러나 지금(只今) 내게는 사랑하던 추억(追憶)만 남아있어라.
51
이리도 춥고 고독한 방(房)안에 밤이 깊도록
52
혼자 있는 가엾음이여, 수심(愁心)이여, 살뜰함이여!
53
그림자는 누이 같은 손을 내 이마에 놓으며,
54
시계(時計)는 쓸데없이 소리를 내여라 오오, 잠잠치 못할 말이여!
55
일찍 나는 사랑했노라, 일찍 나는 괴로웠노라, 일찍 나는 울었노라,
56
그러나 지금(只今) 내게는 사랑하던 추억(追憶)만 남아있어라.
57
지나간 날의 정열(情熱)은 날마다 나뭇잎같이 흩어져가며,
58
나의 맘은 지금(只今) 애달픈 청춘(靑春)의 다음 되는 가을이어라.
59
그리도 많은 고뇌(苦惱)에 나는 세상(世上)을 미워했노라,
60
그러나 지금(只今) 내게는 관서(寬恕)와 사랑밖에 없어라.
61
물거품 위에 남긴 발자취같이 내 설움은 없어졌어라,
62
나는 내 절망(絶望)의 부르짖음과 내 사랑의 이름을 침묵(沈默)에 넷노라.
63
나는 아직도 사노라! 죽으려던 것이! 나는 아직도 사노라,
64
아아 이것이야 영겁(永劫)의 기적(奇蹟), 끝없는 신비(神祕)가 아니랴.
65
나는 고요히 지금(只今) 적막(寂寞)한 야반(夜半)에 혼자 비노라,
66
이 세상(世上)은 내와는 멀리 떨어져, 평온(平穩)도 하며, 아름다워라.
67
아아 하느님이여, 너는 묘(妙)하게도 또한 고운 것에게 인생(人生)을 주었어라.
68
물거품 위에 남긴 발자취같이 내 설움은 없어졌어라.
69
일찍 나는 설워했노라, 일찍 나는 울었노라,
70
그러나 지금(只今) 내게는 사랑하던 추억(追憶)만 남아있어라.
73
전율(戰慄)의 시절(時節)이여, 나는 이런 때를 좋아하노라,
74
하늘은 화판(花瓣) 위에 찬 빗방울을 내려 부어라.
75
태양(太陽)은 작은 산(山) 위와, 안개 안에,
76
부금(敷金)한 철괴(鐵塊)와 같이 붉은 빛을 놓아라.
77
이따금 둔(鈍)한 빛만 지내가며 번득이어라,
78
그러나 황혼(黃昏)은 와서 바람은 불어 풀은 붉어라.
79
이러한 때, 가까운 밤에 모든 것은 고요한데,
90
물방아의 옛 못을 낙엽(落葉)으로 덮을 때,
92
일찍 방아가 돌던 빈 소사(小舍)를 채울 때,
94
해가 오래, 붉은 댕댕이 넉줄이 얽힌 담 벽(壁)을
95
혼자 기대고, 차고 적막(寂寞)한 수면(水面)에 스러져 가는
96
내 그림자와 핼금한 해 그늘을 들여다 보려노라.
99
죽은 사람에게, 맑은 새암에, 어두운 지평(地平)에,
100
떨어진 꽃에, 빛 변(變)한 잔디에, 썩어 가는 목엽(木葉)에,
101
너울을 만들려고, 푸른빛조차 없는 임중(林中)에 초부(樵夫)가 찍어 놓은 나무에,
102
겨울 안개에, 적막(寂寞)케도 애달픈 많은 자연(自然)에 내 몸을 비(比)기려노라.
103
그러나, 내 몸은 바다와 같아라, 언제나 피어 방향(芳香)을 놓으며
104
지나가는 때를 아끼지 않고, 모래 위에 흐득여 울면서 거품을 남기고
105
지나가는 바다와 차라리 내 몸은 같지 않으랴.
114
표박(飄泊)의 몸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115
‘설움’의 흐득이는 울음소리와 같아라.
116
녹색(綠色)에서 황색(黃色), 황색(黃色)에서 홍색(紅色)으로,
117
또는 황금색(黃金色)에서 황금색(黃金色)으로
118
나뭇가지의 잎들이 늙어갈 때, 나는 느끼노라,
119
가을에서 가을로 흩어져 가는 ‘내 과거(過去)’를.
120
솟아있는 산봉(山峰)에서 산봉(山峰)으로, 수풀의
121
새빨간 떡갈나무와 새파란 소나무를 흔들며,
122
‘괴로움’과 같이도, ‘바다’와 같이도
123
부는 바람에는 엄숙한 소리가 숨어 있어라.
126
달빛에 그윽한 방향(芳香)을 놓는 저녁 공기(空氣) 안에,
127
젖은 갈밭에 자는 물의 향기(香氣)가 퍼질 때,
129
황색(黃色)의 일광(日光)에 비치어, 긴 하룻날도 넘고 말아라.
130
지지는 듯한 태양(太陽) 아래서 둘이 함께 붉은 땅과
131
굳은 뿌리를 파면서 우리가 생각하였던가,
132
뜨거운 모래 위에 우리의 걸음이 핏빛의 자취로
134
사랑은 희망(希望) 없는 고통(苦痛)에 넘어진 우리의 맘에
135
그 높은 화염(火焰)을 피웠을 때, 우리가 생각하였던가,
136
우리를 타치던 불이 꺼지고, 재[灰]가 우리의 저녁을
138
젖은 갈밭에 생각 깊은 물의 향기(香氣)에 따라
139
넘어가는 곱은 오늘 하루가 포플라 잎 사이로
140
둥글게 떠오르는 황색(黃色)의 월광(月光)에 비치어,
141
한가하게 넘어가리라고, 우리가 생각하였던가.
151
그것은 나무 사이에서 웃으며 소곤거리는
162
만일 내가 무심(無心)의 사랑을 하였다 하면
164
만일 내가 무심(無心)으로 사랑을 하였다 하면
165
그것은 그대의 보드라움과 진실(眞實) 때문입니다.
167
만일 내가 진심(眞心)으로 사랑을 하였다 하면
168
그것은 따스한 그대의 살과 찬 손 때문입니다
169
마는 지금(只今) 나는 그대의 그림자를 찾아 돌 뿐입니다.
172
오오 장미여, 그대는 병(病) 들었어라
176
깊은 홍색(紅色)의 열락(悅樂) 가득한
179
그대의 목숨은 병(病) 들어 죽게 되었어라.
190
그러하다 어떤 모를 맹목(盲目)의 손이
196
호흡(呼吸)도 된다면 사변(思辨)이 없음은
209
흔들리는 듯한 저녁하늘에 백합(百合)과 같아라,
210
푸른 오팔[단백석(蛋白石)]의 너의 광휘(光輝)에는
211
청아(淸雅)로운 수도녀(修道女)의 고움이 있어라.
212
오오 황금색(黃金色)의 달이여, 망각(忘却)을 내리어라!
215
다만 하나 하늘에 걸린 백합(百合)의 꽃이여! 아욱꽃이여!
223
호궁(胡弓)의 줄을 고요히 뜯고 있어라.
231
호궁(胡弓)의 곡조(曲調)는 어떠할까나.
237
지금(只今) 왔어라, 내 꿈을 치려고.
250
저 편(便) 들가로 작은 새들은 날아라,
251
아아 저곳에는 사월(四月)의 꽃도 있어
259
어느 날이나 또 한 번 웃으며 바라보랴.
271
나는 비노니, 곡조(曲調)의 설움이나 기쁨을
274
울지도 말아라, 희멀금한 침묵(沈默),
276
이것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支配)케 하여라,
288
홀몸의 새, 지아비를 도곡(悼哭)하여라,
290
아래엔 엄한(嚴寒)의 천류(川流)가 흘러내려라.
292
얼은 땅 위엔 한 송이 꽃이 나 있으랴,
301
지금(只今) 이 때, 세상(世上)의 맘은 새롭게
307
석양(夕陽)의 광휘(光輝), 아아 태양(太陽)의 이별(離別)이러라
308
스러져가는 광휘(光輝) 속에 소리가 있어 말하나니
309
“생명(生命) 그대의 생명(生命)의 꽃을 피우려고
310
암흑(暗黑) 속에 검고 큰 장미꽃을 피우려는
312
아아 동경(憧憬)키 쉬운 희멀금한 그대의 노래,
314
그러나 이는 아직 열정(熱情)의 여명(黎明)이러라.
315
석양(夕陽)은 고운 빛을 가진 그대의 눈 안에
321
아아 변(變)키 쉬운 사월(四月) 하늘에 떠도는 빛이여,
322
그 회색(灰色)의 변(變)키 쉬운 눈[眼]을 생각게 말아라.
323
오오 소낙비가 땅에 내릴 때, 빛나는 빗방울이여,
324
나의 흐르기 쉬운 뜨거운 눈물을 생각게 말아라.
325
오오 인적(人跡) 없는 거칠은 땅을 떠도는 바람아,
326
뜻밖에 듣게 되는 설운 말을 생각게 말아라.
327
아아 쓸데없이 차고 흰 바위에 밀어오는 바다여,
328
괴로움만 많은 과거(過去)를 생각게 말아라.
329
오오 봄비에 다사하게 젖은 대지(大地)여,
330
나에게 망각(忘却)의 꽃을 얻게 하여라
336
아아 보아라, 남천(南天)은 눈물하나니.
339
애달프다, 나는 사뇌(思惱)에 곤비(困憊)했노라,
340
아아 보아라, 의혹(疑惑)은 내 영(靈)을 뚫고드나니.
23. 유랑(流浪) 미녀(美女)의 예언(豫言)
345
유랑(流浪) 소녀(小女)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346
그리고 그대를 결(決)코 속이지 않지요.
347
소녀(小女)다운 몽상(夢想)과 그리하고
349
인생(人生)의 행복(幸福)이 어떤지도 알아요
350
또 사랑의 고통(苦痛)이 어떤지도 알지요.
352
진정(眞正)한 운명(運命)인 줄로 알으시고
354
그대와 함께 하여 떠나지 않을 줄로 믿으시지요.
355
그대의 사나이의 사랑이 태양(太陽) 볕 아래서
356
영구(永久)하게 변(變)치 않을 줄로 믿으시지요
358
영구(永久)하게 변절(變節)되지 않을 줄로 믿으시지요.
360
내 사랑의 그리고 내 고귀(高貴)의 님이여
361
진정(眞正)한 말을 말하는 나를 믿어주세요
362
유랑(流浪) 소녀(小女)는 결(決)코 그대를 속이지 않아요.
363
영구(永久)한 사랑과 영구(永久)한 즐거움은
364
공허(空虛)로운 아름다운 희망(希望)밖에 아니되지요
365
세상(世上)에는 온갖 것이 달라져요, 하고
366
세상(世上)에는 모든 것이 지나가지 않아요?
367
사랑하는 사람과 지기(知己)의 벗을 위하여는
369
하여 끊치 않고 애모(哀慕)하는 생각만
371
내 사랑의, 내 고귀(高貴)의 내 님이여
373
유랑(流浪) 소녀(小女)는 그대를 동정(同情)하기는 합니다,
375
숙명(宿命)인 죽음을 대항(對抗)할 만한
377
그리고요, 저주(咀呪) 받은 운명(運命)을 대항(對抗)할 만한
378
수호법(守護法)은 지금(只今)까지 존재(存在)치 못해요.
379
그래도 잊지 말으시고 기억(記憶)하세요
380
내 사랑의, 내 고귀(高貴)의 살뜰한 님이여
381
이 세상(世上)에는 다만 하나 무엇이 있습니다.
382
그 무엇은 결(決)코 그대를 속이지 않습니다.
383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단도(短刀)지요
386
그것들은 진정(眞正)한 축복(祝福)이 되지요.
387
여보세요, 잊지 말으시고 기억(記憶)하세요
388
내 사랑의, 내 고귀의 아름다운 님이여
389
단도(短刀)가 그대의 원수를 갚아드리며
390
독약(毒藥)이 그대를 거짓하지 아니하지요.
391
내 사랑의, 내 고귀(高貴)의 내 님이여
393
유랑(流浪) 소녀(小女)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394
그리고 그대를 결(決)코 속이지 않아요.
395
소녀(小女)다운 몽상(夢想)과 그리하고
397
인생(人生)의 행복(幸福)이 어떤지도 알지요
398
또 사랑의 고통(苦痛)이 어떤지도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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