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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근참기 (白頭山 覲參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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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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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적 위관(偉觀)인 삼지미(三池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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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가도 여전한 밀림지대이다. 하루쯤으로야 우리의 장원심밀(長遠深蜜)한 지미((至味)를 다 알겠냐 하는 듯, 이깔나무의 장림(長林)은 여전히 그 끌밋한 맵시와 싱싱한 빛과 삑삑한 숱으로써 사람의 턱 밑에 종주먹을 댄다. 이제는 여간 송락(松絡)의 전당(殿堂)만으로 지리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울 만하고, 좀 더 단조로 나가다가는 이 장림이 행려(行旅)의 뇌옥(牢獄)처럼 생각도 될 듯하여, 행여 우리 백두산님께 조그마한 구설이라도 돌아갈까 겁을 내었더니, 이것을 모르실 하느님이 아니시라, 여기 대한 준비가 진작부터 조금도 허루치 아니하였다. 하마 싫증이 날 뻔 한 대목에 이르러 일대 변화가 마침 등대(等待)하고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나불나불한 입술을 놀릴 짬을 주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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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설핏해지는 듯도 하고, 좀 주춤해지는 듯도 하여, 임상(林相)이 얼마쯤 수런수런한 뜻을 띠기 비롯함을 야릇이 생각하자마자, 노우(路右)의 임중(林中)에서 문득 소염(昭艶)한 기운이 와짝 내달아오는 것은, 히여멀거니 수더분하게 생긴 미인에 비의(比擬)할 만한 일 소호(小湖)이었다. 취림(翠林)으로 울을 하고, 으슥히 또 그윽히 혼자 드러누워서 영겁의 무슨 깊은 슬픔을 품고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고 일으키지 못하는 듯한 고뇌에 눌린 구멍이 거의 막히게 외었던 사람의 입에서 후유 하는 한숨 소리가 기약한 일 없이 일제히 나온다. 끝없는 삼림의 사막에 한참 머리가 띵하다가, 홀지(忽地)에 현전(現前)하는 이 오아시스에 만(萬斛)의 양미(凉味)를 느끼고 새 정신이 번쩍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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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가 쉬어 가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지마는 “조금 가면 더 좋은 데가 있다”하고서 지로인(指路人)이 듣지 아니한다. 글쎄 하고 좀 더 가노라니까, 떴던 눈이 감겼던 것처럼 번쩍 뜨이면서 어마어마한 광경이 앞으로 내닫는다. 나왔다, 나왔다, 조화의 의장(意匠)이 어떻게 갸륵하고 조화의 수법이 어떻게 엄청난 것을 단적(端的)하게 표증(表證)하는 큰 물건이 여기 하나 또 나왔다. 아까 던 것에 비하면 무염(無鹽)을 보다가 서시(西施)나 대하는 듯한 뚜렷하고 염위하고 환하고 우람스러운 일 대지(大地)가 번듯하게 거기 있다. 천궁(天宮)의 일부이던 청유 일장(一張)이 무슨 사품에 이리로 내려와서 제가 제 미에 홀려 지내느라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것 같다. 이 속에 들어와서 저런 경(景)이 생기다니! 조화가 아니 짓궂으신가! 본디부터 이만 절정을 보이자고나 하시기에 그 무서운 임로(林路)를 뚫고 나오게 하신 것일지 모르기도 하겠지마는, 여하간 그동안 지낸 것이 어떻게 괴롭고 지리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빚을 갚고도 나머지 있고, 그 때를 씻고도 나머지 있음을 앙탈할 수 없는 푼푼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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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들이 터지고 큰 숲이 덮이고 큰 산악이 이것을 환위(環圍)하고, 그 한복판에 명경 같은 소호가 몇 개 박혀 있다함으로는 얼른 상상이 가지 아니하겠지마는, 시방 우리 안전에 전개한 대광경이란 것도 요하건대 이 몇 가지 요소에 벗어날 것은 없다. 이 몇 가지 요소가 들어서 가장 숭엄 움대 유비(幽秘) 미묘(美妙)한 국면을 현출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소(野素)는 야소로, 산소(山素)는 산소로, 임소(林素)는 임소로, 수소(水素)는 수소로, 또 숭엄성은 숭엄성으로, 웅대성은 웅대성으로, 유비와 미묘성은 또한 각기 제성능대로 최대한도의 능률을 발휘하여 일대 조화체로 출현한 때에 이렇게 경탄할 광경, 명부득(明不得) 상부득(狀不得) 대광경을 이룸은, 어째 여기 한번 생긴 것인지, 으레 그렇게 되란 법은 아니라 함이 가할 것이다. 산야 수택(數澤)이 어디 없을까마는 우주미의 가장 신비한 일부면을 이만큼 강렬하게 시현한 것은 어디든지 있을 것-다른 데 또 있으리라고 할 수 없을 우리는 말하고 싶다. 으리으리한 중에 간질간질한 것을 담아 놓은 이 초특미(超特美)의 소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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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십백리(十百里)에 중중위잡(重重圍匝)한 대삼림이, 이제 알매 너 같은 끔찍한 보배를 고이고이 위하시는 조물주의 생파리(生笆籬)이었구나! 여기는 삼지(三池)라 하여 고래로 이름이 높이 들린 곳이니, 대개 대소(大小) 참치(參茬)한 여러 늪이 느런히 놓인 가운데 셋이 가장 뚜렷한 고로 대수(大籔)를 들어서 이름한 것이라 하며, 실상 늪의 수로 말하면 시방도 넷 혹 다섯으로 볼 것이며, 오랜 전일 (前日)에는 혹 더 많았을 것이 필연하니, 한번은 칠성지(七聖池)의 이름이 있음은 필시 일곱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면, 대저 이 삼지는 본디 허항령(虛項嶺) 이쪽의 대야(大野)를 관류(貫流)하던 장하(長河)려니, 백두산의 신폭발 당시에 용암과 경석(輕石)등이 쏟아져 내려와, 혹은 하상(河床)을 메워 버리기도 하고, 혹은 하류를 끊어 버리기도 하여 하신(河身)이 그만 동강동강 나게 되었는데, 다른 것은 필경 다 말라붙어 버리고, 그중 웅덩이가 좀 깊고 부근에 독립한 수원을 가진 것 몇 만 앉은뱅이로일망정 의연히 생명을 붙여 오는 것이 이 삼지라 한다, 그러면 고하신(古河身)의 단편(斷片)으로 말하면 옛날일수록 많아서, 십백천개(十百千箇)가 성산주련 일진대 본디 지(池)의 수에 인하여 얻은 이름 아님이 여기서 분명하다 할 것이요, 대개는 삼랑성(三郞城) 삼성산(三聖山) 삼일포(三日浦)등이 삼과 같이 신을 의미하는 한 고어의 사음(寫音)이 아닐까를 설상(設想)케 한다. 그러나 이는 삼지란 이름의 기원이 원고(遠古)에 있음을 단정해 놓은 뒤의 말임이 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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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의 중에 크기로나 아름다움으로나 으뜸이 되는 자는 가운데 있는 것이니, 주회(周回)가 7·8리에 차란 물이 잠자는 것처럼 고요한데, 동북 양면에는 경석 부스러진 무게 없는 모래가 백사장을 이룬 밖으로 나직나직한 이깔숲이 병장(屛障)처럼 에두르고, 서로 들어가면서는 얽은 구명 숭숭한 것이 거의 다할 만하여서 잘록한 목장이가 지고, 동글우뚝한 일 소도(一小島)가 바로 소담스럽게 지상(池上)에 용기하여 옹울(蓊鬱)한 임상과 고아(古雅)한 석태(石態)로써 간두일척(竿頭一尺)의 의장을 보였으며, 지의 미남(微南)으로는 기다라니 뭉툭한 일평정봉(一平頂峰)이 하마 산만할 뻔 한 국면에 큰 결속미를 더하여 이 내곽(內廓)만의 풍광만 하여도 이미 한없는 충족과 견실을 갖추어서 아무 데 무엇을 견줄지라도 손색을 보지 못할 한 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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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심지의 미는 삼지만의 홑겹미가 아니라 일면으로는 백두산 이하 간백(間白)·소백(小白)·포태(胞胎)·장군(將軍)등 7·8천 척의 준극(峻極)한 산악들이 멀리서 위요하고, 일면에는 천리 천 평이라고 하는 대야심림(大野深林)이 끝없이 터져나가서, 웅박(雄博) 호장(豪壯)의 갖은 요소를 발보였으니, 이러한 외곽을 얻어서 삼지의 미는 다시 기천백 등의 가치를 더하며, 그리하여 문무겸전(文武兼全) 강유쌍제(剛柔雙濟)이 일대 승경은 다른 아무 데서도 볼 수 없는 천하 독특의 지위를 얻었다. 이와 같은 대산과 고언과 장곡(長谷)과 김협에 이렇듯한 미소(美素)가 이만한 경(景)으로써 생성하였음을 어쩌다가 한 번 있을 일이요, 어쩌다가 한 군데 생긴 것인 만큼 그 신기하고 소중함이 여간일 수 없다. 일체의 각삭하고 간교하고 이상야릇한 기교랄 것은 하나도 가지지 아니한 채, 다만 큰 바대와 다만 굵은 금과 다만 평순함과 다만 탄솔(坦率)함만으로써 성립된 것인 만큼- 아무 아로새긴 것 없이 어떠한 아로새김으로도 비방(比方)할 수 없는 대기(大奇)·절묘(絶妙)·진미(眞美)·여호(如好)인 만큼, 삼지를 초점으로 하여 출현한 미의 일대 서어클은 백두산미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실로 조화의 가장 자신 있는 대걸작이요, 인류의 가장 의의 있는 한 재산일 것이다. 버성긴 듯하면서 촘촘할 대로 촘촘하고, 어설픈 듯한 중에 있을 것이 다 있는 여래미(如來美)는, 물론 백두산 전 가치의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일 분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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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의 물은 보기에 찬 것과 반비례로 대리에 다스하다. 실측한 바를 거(據)하건대, 평균20도 가량의 온도를 가졌고, 최고 온도 22도 반까지를 보이거니와, 만약 온수의 천원(泉源)을 발견하고 냉수의 침입을 격리할진대, 온천으로의 소용이 넉넉할 것을 기필할지며, 또 백두산의 북록(北麓)에는 시방 온천으로 실용되는 곳이 있는 터인즉, 남록(南麓)인 이곳에도 온천의 용출됨은 당연타 할지니, 나는 믿기를 멀지 아니하여 이곳이 온천장으로 이용되어 상당한 설비를 가지게 되고, 삼지의 세계적 실질이 아울러 세계적 대명(大名)을 누리리라 한다. 나는 단언하기를 삼지는 세계적절경이요, 또 가장 특색과 별미를 가진 그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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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湖沼)는 유독(流瀆)의 도회인 동시에 전설의 좋은 무대이니, 전설이 있어서 호소 벌거벗음을 면하는 것이요, 전설이 고와야 호소 비로소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는 것이다. 삼지는 지(池) 자체 만으로나 그 환경까지로나 내지 그 내력에서나 가장 풍부한 전설소(傳說素)와 가장 적호한 전설적 동기를 가짐이 필연이지마는, 오래 황역(荒域)으로 매몰된 결과는 전하는 아무것과 징(徵)할만한 무엇이 아울러 없다. 기다(幾多)의 원시 철학자와 민중 시인의 유현(幽玄)ㅎ나 심금을 사출(寫出)한 비단옷이 마침내 자취 없는 꿈으로 돌아가고, 이제 와서 삼지의 미는 보기에도 딱한 적라(赤裸)의 미가 되어버렸다. 그 자신도 바람에 얼기도 하고, 비에 젖기도 하여, 옷 없는 설움을 퍽 많이 맛보려니와, 잠시 지나는 우리의 보기에도 말할 수 없는 쓸쓸과 심심과 섭섭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물적 조건이 탁절(卓絶)한 만큼 삼지의 정신적 빈한이 특히 눈에 뜨이기도 하나니, 없어진 전설은 어쩔 수 없거니와, 혹 시가로, 혹 회화로, 그 파묻힌 생명을 들추고 그 쭈그러진 혼령을 펴냄은, 금후 진역(震域) 예술가의 삼지 내지 백두산에 대한 큰 의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숫된 마음과 아울러 그 꽃다운 숨결로써 짜낸 비단 치마를 그의 몸에 입히고, 틀어 만든 화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고, 골라 놓은 건반을 그의 앞에서 아룀이 백두산을 젖꼭지로 하여 우주의 생명 즙을 빠는 우리들의 존고(尊高)한 소임일 것이다. 심령의 채홍(彩虹)이 뚜렷이 삼지 위에 걸쳐 설 때에, 어떻게 많은 영광의 여휘(餘輝)가 컴컴한 우리 마음의 구석구석까지를 비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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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로서 전설 없음이 심상한 일이랄 수 없음을 느끼는 나는 여러 가지 심회가 감지를 향하는 용춤 춤을 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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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조(千萬條) 오색선을 사방으로 휘뿌리면서 오룡(五龍) 멍에 한 황금차를 타고 ‘그님’이 동천(東天)을 헤치고 오르사, 봉황새 춤추는 곳을 바라고 남으로 남으로 걸음을 재촉하실 때에 이깔나무 바늘 끝마다 에서는 천지간 ‘깨끗’의 정화(精華)가 뭉친 이슬방울이 제석망(帝釋網)의 마니주처럼 조랑조랑 달리고, ‘컴컴’의 외막(外幕)과 ‘부유스름’의 내위(內幃)가 차제(次第)로 걷혀 간 삼지의 면에는 엷붉은 운영(雲影)과 금비늘 돋친 미파(微波)가 한데 어우러져서 ‘반짝반짝’으로부터 ‘숨얼숨얼’에까지의 대음정(大音程)으로 ‘새움’의 찬송을 고성 합창하는데, 새끼 데린 수변(水邊)의 사슴과 동무 따르는 수상의 비오리가 다 각각 사랑과 그리움의 일착희(一齪戱) 일결가(一闋歌)를 연출하고 베개봉(峰) 숲속으로서 조금씩 새나오는 바람에는 밤새껏 다 못한 임중 여선들의 미남신(美男神) 시샘을 그려 보자. 이것이 어떻게 아름다운 신화, 신락(神樂)의 일 발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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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온갖 눈 어지러움과 귀 아픔은 이미 모조리 컴컴과침침의 두 아가리로 나뉘어 먹히고, 우주의 무대가 슬그머니 돌면서 얼음 수레에 은뚜껑을 덮어 타신 달 아씨가 은하의 무자위를 이리저리 대서 먼지의 뜨거움을 식히고 또 닦으실 때에 차성세계(此星世界)의 남선(男仙)에게서 피성세계(彼星世界)의 여선에게로 상사불견(相思不見)의 애끊는 소식을 가지고 가는 체부(遞夫) 유성(流星)이 급한 심부름 맡은 듯싶게 쏜살같이 빠르게, 잔북같이 오락가락하고, 풀 밑에 우는 메뚜기와 나무 기슭에 헤매는 담비가 무비 없는 임을 있어지라 하는 꼴인데, 무릇 우묵한 곳, 으슥한 곳, 그윽한 곳에서는 음충 신(神 )의 입 다문 지휘 하에서 새벽 방지에 대한 온갖 음모와 비계(秘計)가 부산하게 진행하고 동혈(洞穴)에 숨은 철학자 ‘고요’와 나무 밑에 앉은 시인 ‘흥얼’과 기타 남의 눈에 뜨이기 싫어하는 허다한 ‘스스름’ '빙충맞이’ ‘어리배기’ 들이 삼지를 에둘러서 다 각기 한 자리씩을 잡고서 다 각기 한 가지 사건씩을 마들어내니, 그 어수선한 내용과 어지러운 경상(景象)이 어찌 또한 서시인(曙詩人) 아학자(兒學者)의 호개(好個) 제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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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상에 편운(片雲)이 뜨자마자 천지가 문득 먹물에 들고, 우레가 우르르 번개가 번쩍하며 모진 바람, 사나운 비가 세계를 단번에 부숴버릴 듯 할때 여기 인드라의 무서운 형모(形貌)가 나타나지 아니하였을까? 아지랭이의 화환(花環)이 포태산(胞胎山)의 허리에 걸리고 소백산(小白山) 늦너구리가 새끼 밴 배를 주체하지 못하며, 눈 녹은 자리에 꽃이 소복소복하고, 아침에서 저녁까지와 눈에서 귀에까지가 도무지 ,따뜻과 즐거움과 노래와 춤뿐일 때에, 여기 비너스의 아름다운 정령(精靈)이 내려오지 아니하였을까? 천 년의 풍우는 이미 전설의 꽃동산을 말끔하게 삼지에서 소탕해 버렸다. 사람에 아는 이가 업소 삼지 당자가 또한 입을 다무니, 이것을 어디가 알까? 이것이 언제나 들춰날까?
 
 
 

2. 옥수밀림(玉樹密林)의 천리 천평(千里 天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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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찰소리에 재촉되어 차마 떨어지기 싫은 삼지를 버리고 백두산 가는 협로로 들어서서 북으로 행진하게 되었다. 원래 허항령은 백두산 대간(大幹)으로 내려와서 갑산(甲山)과 무산(茂山)의 분계가 되는 동시에 함경남북도의 경계가 된 것이니, 갑산 보혜면(普蕙面)의 포태리(胞胎里)로부터 무산 삼장면(三長面) 농사동(農事洞)까지 2백 리 무인지경을 연락하는 일 조로(條路)가 실로 허항령의 등성이로 나서 국경 방호선상(防護線上)의 요해(要害)를 짓는데, 우리는 삼지 앞에 와서 이 길을 놓아서 소홍단수(小紅湍水)를 끼고 동남으로 관모산(冠帽山)를 거쳐 증산(甑山), 노은산(盧隱山)의 사이로 하여 농사동으로 보내 버리고, 북녘 간삼봉(間三峰) 밑으로 바로 뚫린 길을 들어서니 이 길은 실로 국경너머 백두산을 거쳐서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으로 이르는 통로로 중간에서 내두산(奶頭山)가는 길이 갈려 나간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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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항령에 와서부터 백두산이 임초(임梢) 밖으로 약간 보여 왔지마는, 심지가에 와서야 비로소 전신이 환하게 보이는데 비교적 촉수(矗秀)의 뜻을 띤 소백산과 다소 돌올한 맛을 가진 간백산(間白山)에 비하여, 어디까지든지 둥싯 뭉수레하여 조금도 작태를 볼 수 없는 백두산이다. 허옇게 두리두리하여, 놓은지 큰지조차 모르게 평범과 수더분을 극한 것이 백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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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네째의 늦을 차제로 지나면, 가끔 개척했던 듯한 진황지(陣荒地)가 나오고, 도 수흔(水痕)이 오래지 아니한 듯한 초택지(草澤地)도 보이고, 또 하상이었던 듯한 백사지도 뻗쳐 있어서, 이만해도 어제의 행정처럼 연하여 대해에 파도를 보는 듯하고, 이따금 계곡도 지고 봉만(峰巒)도 생긴 곳이 있어서 얼마만큼 인세(人世)의 풍광과 유사를 보이니 눈에 싫증도 나지 아니하고, 숨까지 퍽 부드러움을 깨닫겠다. 그런데 이러한 포치(舖置)도 실상 하늘같은 대산(大山)의 품속에 든 바다 같은 대야(大野)의 한 구석 주름살임을 생각하면 펀펀한 채 백두산이 어떻게 깊다람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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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항령 올라서면서부터 비롯한 평야가 가고가도 그지가 없다. 어저께 진일(盡日)토록 걸어나온 밀림도 요하건대 그 입구일 따름이며, 오늘 하루 옥신각신할 길이 또한 그 서북으로 치우친 한 자락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백두산이 오지랖을 벌리고 포태산이 오른 깃이 되고, 견산(甄山)이 왼 깃이 된 주회(周廻) 기백천 리(幾百千里) 되는 동안이 실상 커다란 한 벌을 이루어, 백두산으로 하여금 높음과 한 가지 크고 넓음의 임자가 됙 하니, 이것이 예로부터 천평(天坪)이라 하여 신비향으로 저문(著聞)한 곳이며, 『북새기략(北塞記略)』 저자의 말대로 두만강(豆滿江) 좌우지지(左右之之)〔곧 시방 서북양간도(西北兩間島)〕를 총(總)히 천평이라 한다 할진대, 그 광무(廣袤)가 실로 불가량(不可量)할 것이다. 천평이란 백두산 기슭의 총명(總名)이라 하면-이것이 고의(古意)라 하면 간도(間島)도 물론 이의 일부가 아닐 수 없을 것이어니와, 그 남반(南半)인 조선 부분만 하여도 엄청나게 넓은 지역을 포괄하여, 사람의 휴차(胸次)를 시원케 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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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지 이 넓은 들에 큰불이 났었다. 어떠한 학자의 추상과 같이 한 3백 년 전의 백두산 최근 분화에 인한 여파일는지도 모르거니와, 여하간 신토(燼土)에 움돋는 나무의 수령이 대개 백허 년 내지 2백 년쯤 됨으로써 이 불이 수삼백 년 전에 났던 것만은 대개 의심이 없고, 또 그 일부분에는 분명히 사람의 실수에 인한 그 이후의 소적(燒跡)으로 인(認)할 증좌도 있다. 삼지로서 20리쯤이나 나가서 간백산을 정서(正西)로 볼 만한 무렵으로부터 이 불탄 자리가 비롯하여 가지고는 지엽(枝葉)은 타서 없어지고 껍질은 썩어 떨어지고 목간(木幹)만 우뚝하게 남은 나무들이 마치 전간목(電桿木)으로 못자리를 부은 듯하며, 그 아래는 믿둥이 부러져 넘어진 나무들이 총죽(叢竹)를 어지러이 헤뜨린 것처럼 종횡착종(縱橫錯綜)하게 얽혀져 누웠으매, 쓸쓸스럽게 보자면 만목황량(滿目荒凉)에 눈물도 날 만하건마는, 원체 웅대한 외곽에 둘려 있는지라, ‘불이라도 한번 시원히 났었군!’ 하는 장쾌한 생각이 날 뿐이며, 푸른 밀림의 작일일(昨一日)에 비하여, 허연 소간(疎幹)의 금일일(今一日)리 또한 조화의 유의작(有意作)인 양하여, 백두산 아니고는 다시 못 볼 두 광경을 다만 미의 천공(天供)으로 섭수(欇收)하기에 바쁠 뿐이다. 그중에도 백피(白皮)를 그저 지니고 있는 백화림(白樺林)의 소적(燒跡)은글자 그대로의 옥수경림(玉樹瓊林)을 들어온 듯하여, 이것 만에서도 백두산이 선성(仙聖)의 향(鄕)임을 느끼게 함이 있다. 철분 소흔(燒痕) 삼분 치림(稚林)의 틈으로 천곡(淺谷), 저구(低丘)를 수없이 상하하여 약 25리허(許)쯤 와서 일 강릉(一岡陵)의 위에서 중화(中火)를 하였다. 부집게일망정 새풀처럼 배게 섰으니 나무를 없달 수는 없지마는, 많기는 많은 채 잎새가 없고 따라서 그늘이 없고, 다라서 밥먹은 동안도 뙤약별을 가려 볼 수 없다. 그뿐인가, 삼지로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는 지상(池床)과 천로(川路)는 늘비히 보이되, 웅덩이는 새로에 작은 샘 하나 없어서, 땅은 밖에서 볶이고 목은 안에서 타서, 오늘이야말로 복중의 산길을 가는 성싶다. 수통에 준비한 이상으로 목마른 이들의 수탄(愁嘆)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더니, 점심밥을 먹게 됨에 미쳐서는 ‘잡숫고 남은 거든 조금만 나눠 주시오’ 하는 걸수성(乞水聲)이 여기저기서 야단이다. 간신(艱辛)과 결핍을 감내함이 도리어 등산의 일락(一樂)이라고도 하거니와, 반일(半日) 이상 물구경을 못하고, 밥을 먹어도 목을 축이지 못하는 간고는 아무라도 어렵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니, 수통 바닥에 묻은 수흔이라도 돌려가며 핥으려 들어, 과연 일적만금(一滴萬金)의 의사를 보임이 공연한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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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심산의 중에서 사막적 여행미를 맛볼 줄 알았으며, 누가 이 취중중(翠重重)한 울림(鬱林)의 정중(正中)에서 사람이 낙타 아님을 한하게 될 줄을 뜻하였으랴. 이러한 변화도 바다 같은 백두산 속이기에 얻어 보는 것이지 하면 그지없이 거룩하심을 이것으로도 다시 한 번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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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볶이라 함이 가한 밥일망정 향적공(香積供) 이상의 맛남으로 배를 불리고 미지근해진 한 깍지 물엘망정 감로(甘露) 이상의 청윤(潤)이 일신에 주편(周偏)하게 되매, 비로소 눈을 들어 사방의 형승(形勝)을 살피고 고개를 속여 천추의 변전을 짐작도 해 볼 기운이 났다. 돌아다보건대 두리뭉수레하여 혼돈 그것과 같은 백두산은 대지의 파복(皤腹)이 조화를 그득히 담아 가진 성부른데, 간백산의 뾰루퉁함과 소백산의 뾰족뾰족함은 마치 ‘언제 쓰실 양으로 그 조화를 감추어만 두십니까?’하여 백두산 어머니의 너무 지중(持重)하심에 하나는 말 못하는 화증을 내고 하나는 참다가 못하여 짱알짱알하는 듯함이 재미있으며, 내다보건대 하늘에 창을 낼 것 같이 혼자 불쑥 뽑나서 위력 그것과 같은 포태산은 천왕의 위완추권(偉腕麤拳)도 같고 지령(地靈)의 대포 거탄(巨彈)도 같이 ‘시방까지는 참았거니와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고 인간의 온갖 불의 사특(邪慝) 비도(非道) 완경(頑哽)을 노목질시(怒目疾視)로 벼르고 으르는 듯함이 든든하며, 허항령 저 밖에 텁텁하게 막힌 것은 한(漢)의 때, 당(唐)의 구정물, 몽고의 먼지, 왜(倭)의 부스럼에 물려 지내오는 수난기 국토의 처녀성 잃은 냄새가 혹시 풍편(風便)에라도 신역(神域)을 침오(侵汚)할까 보아서 성결을 회복할 동안까지 외계를 차단한 듯함이 탐탐하며, 동북의 트란스 밖으로 두만강 건너 북간도까지 연진(煙塵) 아드간 대야(大野)가 안력(眼力)을 궁하게 한 뒤에 만 것은, 우리 현실의 사정을 초월하여서 시원하던 기왕과 아울러 시원할 장래를 표상한 것 같음이 그지없이 마음에 느긋하며, 더욱 코밑에 바싹 들어와 있는 간삼봉(間三峰)은 작은 대로 얌전한 것이 파랗게 수림에 덮여서 대체가 폐허 같은 중에서 홀로 부흥의 신예(新銳)를 발보임이 또한 어떻게 씩씩한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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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자리! 당년에 번무(繁茂)와 울창과 경건(勁健)을 자랑하던 모든 것이 하나도 옛 생명과 호흡을 지니는 것이 없고, 나무나무의 겯고틀던 가지가지의 시새고 다투던. 잎새잎새의 누르고 띠밀던 허다한 파란곡절과 시비득실이 불길한 입으로 들어가서 찬 재 한 줌으로 화해 버린 이 자취는 분란에서 분란으로 뜀박질하고, 쟁퉁서 쟁투로 숨바꼭질하는 어수선한 자연계에, 산야에 홍수처럼 삼림에는 산화(山火)란 혁명률(革命律)이 있어, 필요할 때마다 일대 확청(廓淸), 일대 환원작용이 행함을 가장 실감적으로 깨닫게 하는 산 교과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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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개벽된 이래로 이 땅의 위에 몇 번이나 파랗게 덮였던 삼림을 발갛게 태워 버리고 하얗게 벗어졌던 땅에 파란 삼림이 다시 나서, 자라서, 우거져서, 그리하여 배게 덮였다가는 도로 타 없어졌던가? 임지(林地)와 초토(焦土)와의 윤회전변(輪廻轉變)은 1천 8백 번보다 얼마나 더 많이 유위무상(有爲無常)의 대설법(大說法)을 상주연설(常住演說)하였는가? 또 앞으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 묘음(妙音)을 되풀이하려 하는가? 얼마나 많은 웃음과 노래와 슬픔과 한숨이 이 맷돌의 틈에 으스러져서 가루가 괴고, 그리하여 꿈의 바람에 솰솰 날아 흩어질 터인가? 어허, 어느 마고선녀(麻姑仙女)를 만나서 저간의 소식을 들어 볼까나. 불탄 자리! 나는 거기서 짜라투스트라를 보았다. 솔로몬을 보았다. 석가모니를 보았다. 더욱 부집게 사이 한가하고도 득득(得得)하게 피어 있는 이름 없는 초화들의 위에 동서고금 어떠한 시인, 역사가에게서도 듣지 못하던 인성·인사의 그윽한 기밀(機密)을 퉁기어 받았다. 그리하여 손길을 마주잡고 고개를 숙였다.
 
 
 

3. 조선국(朝鐥國) 태생지(胎生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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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승을 거(據)하건대, 조선 인문(人文)의 창건자는 실로 이 백두산으로써 그 최초의 무대를 삼아서, 이른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희막(戱幕)을 개시하고, 그 극장을 이름하되 ‘신시(神市)’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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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단군의 탄강지(誕降地)요 조선국의 출발점이라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가장 기념에 치(値)하는 이 중대한 유적은 대개 언 지점으로써 의(擬)하던 것일까? 이는 실로 조선의 역사적 민족적 일대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지마는, 시방까지 이것을 문제로 한 이도 없는 만큼, 우리의 여기 대한 의식은 다른 것보다 절실과 명료를 결한 느낌이 있다. 이는 반도의 통일이 불행히 남수(南陲) 신라의 손에 되어 고구려 편의 문헌이 잔멸(殘滅) 무존(無存)하고 또 강토상에는 백두산이 오래 반도 인민의 이목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백두산에 관한 일체 전승이 모두 회폐(晦蔽)에 돌아감에 말미암음이 큰 것이지마는, 백두산이 다시 반도 인민에게로 돌아온 지도 이미 오랜 세월인데, 아무것보다 먼저 상기되어야 할 이 중요한 문제가 이때까지 한각(閑却)되었음은 민족적 나산(懶散)도 극(極)하다 할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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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입국지(立國地)를 천 평에 의(擬)하기는 십 수 년 전에 발표한 우리의 계고차존(稽古箚存)으로써 시초를 삼으려니와, 그때의 이유 삼은 바는 조선의 고전(古傳)을 거(據)하건대 그 국근(國根)인 환국(桓國)도 천국을 의미하고 수군(首君)인 환웅(桓雄)도 천왕을 의미하는 등 약간 잔여한 명구가 모두 천(天)으로써 일관하였는데, 전설상의 발상지로 동방의 천산인 백두산이 정(頂)에는 천지를 대(戴)하고 신(身)에는 대하(大河·승가리우라)를 수(垂)하고, 요(腰)에는 천평을 대(戴)하는 등, 다 없어지고 겨우 남은 지명들이 시방까지 판에 박은 듯 천자(天字)를 지녀옴이 결코 우연이 아니겠음으로부터 추론함이었다. 그러나 천평의 정황이 어떠한 것인지는 무론 알 길이 없고,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원시시대엘망정 국가적 무대임에 가합한 여부는 논의 할 길이 없어 퍽 궁금하게 알던 것이러니, 이제 천평의 실지(實 地)를 와서 보고, 영산을 부(負)하고 성림(聖林)을 옹(擁)하여 그 유비(幽秘) 평연(平衍)함이 원시국가의 발생지로 최적 흡호(恰好)함은 막론이요, 거악(巨嶽)이 위(圍)하고 장강(長江)이 윤(潤)하여 그 광대웅려함이 근대국가의 장성지(長成地)로도 가장 우월한 조건을 구비하였음을 봄에 미쳐, 이 천 평이 고전(古傳)의 상(上)에서 국가의 요람지로 의정(擬定)됨이 과연 우연한 것 아님을 깊이 느끼지 아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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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민(生民· 혹 왕족)의 천강지(天降地)를 태백산정(太白山頂)으로 생각하는 샘족이 그 전국(奠國)의 초지(初地)를 태백산 바로 밑의 이러한 건국상 적토(適土)에 두려 함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요, 또 백두산이 자래(自來)로 줄곧 신국가의 태모지(胎母地)임이 사실인데, 이것이 우연한 것 아니라, 실상 여러 가지로 자연, 필연한 유가 있음에 말미암음임을 교량(較量)해 보면 조선의 국가적 발생이 백두산에 있었다. 함이 다만 전설적 의상(擬想)에서 나온 것 아니라 다분으로, 또 긴절(緊切)하게 잡아떼기 어려운 사실적 배경 (혹 근거)의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국가의 조성(肇成)이 백두산 하에 있었음을 인(認)한다 할진대, 그 지점이 비길 데 없이, 또 옴치고 뛸 수 없이 이 천 평일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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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 가면 천 평이란 이름의 비우연성이 더 일층 심도를 더함을 깨닫는다. 대저 삼한의 비리(卑離), 예(濊)의 불이(不而), 백제의 부리(夫里) 신라의 벌 내지 북방 제국의 부여(夫餘)가 군읍 내지 방국(邦國)을 의미하는 어(語)임은 이제 새삼스럽게 해석할 것까지는 없는 일이 어니와, 천평의 평(坪)은 곧 ‘벌’의 역(譯)이요, ‘벌’은 고어 ‘’의 전(轉)이니, 천 평은 실상 ‘’의 역자(譯字)로 대개 단군고전에 나오는 환국 그것이거나, 그렇지 않아도 그 유어(類語)임을 추단함이 불가할 것 없으며, 또 일방으로 동일한 근본 설화로서의 일 분기(一分岐)로 볼 일본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タ カ ヌ ノ ハ テ)에서 비추어 보아서도 천 평의 설화적 의의가 무엇임을 알 것이다. 이렇게 전설상으로나 언어상으로나, 또 실제적 형편으로나 조선국가의 산욕(産褥)이 이 천 평인 것은 대개 변통이 없을 일이니, 그래도 의심이 있다 하면 그것은 다만 천 평 조국(肇 國)의 역사적 사실의 여부가 문제라 할 것이로되, 이것은 내가 여기 번제(煩提)하기를 피할 것이요, 다만 조선의 고국가가 대개 산상에 있었음과 또 종교적 이유로 고산 영악(靈嶽)이 가장 존귀한 국체의 보유자이었음과, 및 송화강·압록강의 곡지(谷地)가 문헌 이전부터 국가생활지이었음 등의 여러 가지로 명확한 사실만 여기 부설(附說)하여 두겠다. 또 아무리 줄잡아도 전설상의 국본지(國本地)―환국(桓國) 내지 신시로 일컫는 지점이 시방 천 평에 당함이 하나의 의심 없음을 여기 단언하여 두고 싶다. 번쇄현란(煩瑣眩亂)한 역사적 고증은 전문가와 아울러 전문적 기회로 미루어 두자. 우리는 아직 동안 이론적 갈등을 초월하여서 우리 조선 민족들끼리 시방까지 마음과 마음으로 물려 내려오고 관념과 관념에 얽어매여 있는- 항상 생명 있고 언제까지도 생명 있는 국민, 신념상의 국가 민족적 성지·영장(靈場)·신적(神蹟)을 순연한 그대로, 전통정신상 존재 그대로 경앙(景仰)하고 향모(嚮慕)하고 탄미하고 미감(味感)하여, 그리하여 그리로서 유일(流溢)하는 종족적 영천(靈泉)과 국토적 법유(法乳)에 구원(久遠)한 생명을 북돋우고 길러 가기만 하자. 이만한 것에서라도 우선 타는 듯한 목을 여기 와서 축이며, 시들어가는 고갱이를 여기 와서 생기나게 하면 그만이 아니냐. 절대한 신념의 위에서야 주관, 객관의 대립할 여지가 무엇이며, 전설과 사실의 절연(截然)한 경역(境域)이 어디 있으랴. 가시덤불 밖에 흐린 구름 속에서라도 낭연(郎然)한 고월(孤月)이 만심(萬心)을 직조(直照)할 따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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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조선 1만 년의 천 평이 여기에 널려 있다. 1만 년의 풍변운환(風變雲幻)이 여기저기서 굼실굼실하고 어른어른하고 벌떡벌떡한다. 떡가루처럼 부서진 작은 모래 한 알도 대황조(大皇祖)의 거룩하신 경륜을 싣고 있던 나머지요, 썩어 문드러진 나무등걸 하나라도 대황조의 부으신 우로(雨露)의 여택(餘澤)을 입은 것들임을 생각하면서, 안전에 보이는 하찮은 무엇엔들 건숙(虔肅)히 정례(頂禮)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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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우묵히 팬 곳은 그것이 우리 황조의 나라위해서 분주하시던 발자취요, 하늘 바라고 기축하시던 무릎 자국 아님을 누가 알며, 저기 저 도두룩한 곳은 그것이 천조께는 백심(白心)의 제물을 올리고 국군(國君)에게는 적성(赤誠)의 공물(貢物)을 바치던 선민(先民)의 축단(築壇) 아님을 누가 담보한다 하느냐. 우리는 심상히 보는 저 검정 구름 한 장도 봄 새 씨를 뿌리고 가뭄에 시폈다 하였을 것이며, 시방은 우습게 버려 두어서 사람의 눈에 한 번 들켜 보지도 못하고 마는 것들이지마는, 저기 저 나무의 몇십백천 대 할아비들쯤은 팔자 좋아서 대신궁(大神宮)의 들보도 되고, 황극전(皇極殿)의 기둥도 되며, 청복(淸福)이 있어서 시인의 창호에 월화(月華)와 짝도 짓고, 철학자의 경행장(經行場)에 풍뢰(風藾)와 벗도 하였으려니와 그렇지 못해도 혹은 재목 혹은 그릇으로 민생 일용에 각각 그 소용을 이루어, 제자리를 얻지 못하던 것이 하나도 없던 것이 무론이다. 안전에 삼렬(森列)한 무엇이 우리로 능히 허루하게 볼 것이냐? 경중(京中)만 17만 8천 936호에 1천 360방(坊)이 55리에 연긍(延亘) “집들이 가지런히 잇대어 있고 초가 한 채도 없이 풍악 소리가 길가에서 끊이지 아니 하였다”라고 하던 신라의 부려(富麗)가 반드시 이 천 평에도 있었으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 추로생활(椎鹵生活)을 하는 중에 오직 진인 (震人)만이 관검문화(冠劒文化)를 유(有)하고, 모두 수렵 생활을 하는 중에 오직 진인만이 경종경제(耕種經濟)를 행하여 군계(群鷄)의 일학(一鶴) 같은 초특한 문화를 가졌던 당시 신시 비교적 부려는 그 정신에 있어서 도리어 신라 이상의 가치 있던 것임이 무론이니, 문화와 재력에 있어서 조선은 언제든지 동방에 있는 선진자(先進者), 우월자이었으며, 이단서는 무론 제일착의 신시로부터 비롯한 일이었다. 위에 천왕 단군이 계시어 진호(鎭護)와 무육(撫育)과 근려(勤勵)와 지도가 비지(備至)한 바에, 천하는 태평하고 오곡은 풍양(豊穰)하고, 산업은 성왕하고, 문물은 격앙(激昻)하니 생취(生聚)의 증가와 종성(種姓)의 번식이 눈에 번쩍 뜨이지 말려 해도 어찌 못하였을 것이다. 태마(駄馬) 맨 저 초지도 당년에는 어떠한 부촌의 여각(閭閣)이든지, 어떠한 귀인의 원림(園林)이든지 미인의 떨어뜨린 향택(薌澤)과 명가(名歌)의 남아 있는 강조(强調)가 하마하면 흙 밑 모래틈에 묻혀 있기도 할 것이요, 오랜 풍우에 무찔리고 씻겨져 있는 둥 없는 둥 한 저 능천(陵阡)도 실상 어떠한 호소년(豪少年)들의 주마(走馬)·투화(投丸)·협탄(挾彈)·비응(飛鷹)하는 행락지이었던지 모를 것이다. 얼마나 많은 굴자평(屈子平)이 귀책(龜策)도 풀어 주지 못하는 설움을 삼지의 가에 행음(行吟)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귀 씻고 소 먹이던 물의 청탁을 홍단수(紅短水) 가에 다툼질하던 것일까? 의관만 고구(古邱)를 이루었나, 화초조차 유경(幽徑)을 꾸민 것이 없고, 가무만 석몽(昔夢)을 지었을까, 조작(鳥雀)조차 석양에 읊조리는 것이 없으니, 울고 싶어도 울 거리와 몸부림 할 언덕조차 변변치 못한 천 평의 쓸쓸이여! 형언할 수 없는 느꺼움에 열두 방망이가 가슴에서 어지러이 춤춤을 깨달을 뿐이다. 다 타버린 이 황원만에야 기번(Edward Gibbon)인들 내가 어찌하며 메콜리(Thomas B Macaulay)인들 내가 어찌하랴. 가슴에 넘치는 그지없는 감개는 온통으로 뭉쳐서 호메로스나 기다릴거나. 베르질리우스에게나 붙여 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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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평은 조선역사의 요람기를 파묻은 큰 무덤이다. 행여 신성한 유적이 염루(染陋)한 후인의 손에 들어갈까 무서워서 천화(天火)의 폭발이 이를 회신(灰燼) 만들고, 용암의 유피(流被)가 이를 석결(石結)해 놓은 건정(乾淨)한 고적지이다. 육안에 보일 것은 하나도 없으되, 한번 심안을 열면 성라(星羅)한 돌멘도 볼 것이요, 기포(基布)한 마세바도 볼 것이요, 하늘 찌르는 오베리스크의 첨비(尖碑)도 볼 것이요, 땅이 꺼질 로제타의 거석도 볼 것이요, 월계관 다투는 올림피아의 선수도 볼 것이요, 야수와 생명을 내기하는 콜로세움의 투사도 볼 것이요, 삼월 고구려의 낙랑(樂浪]) 회렵(會獵)의 발단도 볼 것이요, 새끼 시절의 국선(國仙) 풍범(風範)도 볼 것이요, 알 시기의 팔관전례(八關典禮)도 볼 것이요, 정감(鄭鑑)의 비조(鼻祖)인 신지씨(神誌氏)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서 민족 만년의 운명을 기록하던 광경도 볼 것이요, 혁거세(赫居世)의 본생(本生)인 왕검(王儉)님이 인문(人文) 영세(永世)의 기초를 전정(奠定)하던 상황도 볼 것이니, 안전의 저것이 흙덩이요, 타다가 남은 모래뭉치라 하면, 그렇지 아니한 것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저 흙과 저 모래가 이러한 어수선과 뒤숭숭과 많음과 큼을 집어삼킨 시간의 대분묘임을 알아야 한다. 이 천 평을 색독(色讀)하요 이때까지 온 생명과 모든 기능이 이 속에 감추어져 있게 돈 민족 호흡, 역사혼의 유폐 압착되었던 활력을 석방 발양하여 조선인의 생활에 한없는 시간적 윤택을 주게 하는 시인은 시방 우리의 가장 교망(翹望)하는 인물의 한 사람이 요, 또 언제든지 나오지 아니하면 아니 될 일대 인물이다. 이런 이의 손에 비기(祕機)와 신의(神義)가 들추어 나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적 생명-시간적 생활은 영원히 근원 있는 물과 뿌리 있는 나무 그릇을 못할 것이다. 시인이 나와야 한다. 민족 시인, 역사 시인, 백두산 시인, 천 평 시인이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그 찬 재의 허물을 벗기고 그 밑에서 구원히 뜨거운 불길을 날리는 조선민족의 떡잎 정신을 거양(擧揚) 규창(叫唱)하여야 한다. 위대한 천재자가 있어 그 마음의 갈래와 말의 보습으로써 이 천추(天秋) 진황(榛荒)의 거친 것을 다듬고 딱딱한 것을 누그러뜨려서 길어도 마르지 않는 어느 생명의 샘을 거기서 뚫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불탄 그루에 덮인 이 벌판 그대로에 평양(平壤)의 정전(井田)이란 것 같은 바둑판적 시가가 있는 셈 치자. 어느 거리에서는 국민 도의(道義)의 진숙(振肅)을 고창하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서, 어느 거리에서는 인민 권리의 신장을 역설하는 부루터스를 찾아서, 어느 거리에서는 알렉산더의 박물관을 찾아서, 어느 거리에서는 케에자르의 개선문을 찾아서, 어느 골목에서는 디오게네스이 통(桶)을 찾아서, 어느 골목에서는 이사야의 채찍을 찾아서, 어느 골목에서는 솰만 성인의 이야기를 주머니를 찾아서, 어느 모퉁이에서는 이솝 노인의 비유 뭉텅이를 찾아서, 어느 모퉁이에서는 메도우샤의 머리를 찾아서, 어느 모퉁이에서는 크레오파트라의 코를 찾아서, 어느 모퉁이에서는 아나크레온의 술잔을 찾아서, 어느 모퉁이에서는 살로메의 쟁반을 찾아서, 이 각계의 생명을 살려내고, 이 각개의 가치를 나타내고 이 각개와 우리 생활과의 미묘한 소식을 꼬드겨내는 천 평 찬송의 시인이 나와야 하겠다. 화전자리 같은 이 천 평도 그러한 시인의 눈에는 봉래선원(蓬萊仙園)보다 더 훌륭한 꽃밭일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의 체에 걸려 나온 뒤로부터는 이 천 평이 아무에게든지 군방요란(群芳繚亂)한 좋은 동산일 것이다. 시인이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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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으로서 하계(下界)에 내려온 신시인민(神市人民)의 첫 웃음은 무슨 기쁨을 보고 터졌으며, 첫 울음은 무슨 슬픔을 말미암아 나왔던가? 가장 큰 감격은 어떠한 모퉁이에 그네의 마음을 들레었으며, 가장 큰 고민은 어떠한 경우에 그네의 머리를 아프게 하였던가? 그네의 노래는 어떠한 임을 그리워할 때에 가장 미묘한 음절로 남의 고막에 울렸으며, 그네의 춤은 무슨 잔치를 베풀었을 때에 가장 신기한 선율을 남의 감관(感官)에 박았던가? 그네의 가장 잘 도취의 심경을 얻던 술과 시는 무엇이며, 가장 깊이 적정(寂靜)의 심경을 들던 선행(禪行)과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네의 즐겨서 이야기하던 제목이 시방이나 마찬가지로 호랑이 아니면 도깨비이며, 그네의 좋아서 장난하는 종류가 그때도 또한 씨름 아니면 태껸이던가? 그 사회의 정황과 시대의 속상(俗尙)과 인정의 기미와 풍물의 정조를 재현하고 활현(活現)하고 영현(靈現)하는 천 평 본위의 민속 시인이 나오지 아니하면, 우리의 고향은 캄캄한 그믐밤이라 할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생활의 초석을 비추어 주기 위하여 높이 언덕마루에 영(靈)의 등불을 켜는 시인을 우리는 간절히 기다리지 아니치 못한다. 천 평을 위하여, 천 평의 연장인 전 조선을 위하여, 천 평의 완성자일 구원(久遠)의 조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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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평이 본디 신국의 고허(故墟)임을 감념(感念)하는 이는 이 많은 일행의 중에서도 혹시 나 한 사람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넓고 좋은 땅을 유한(遊閑)하게 둠이 황송하여, 마치 하늘이 주신 보배를 사람이 잘못하여 천대하는 것 같은 미안을 품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인 성부르다. 그런데 아무의 눈에도 얼른 뜨이고 아무의 마음에도 얼른 생각나는 이 땅이 나라의 감이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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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 나라 하나 만들게 생긴 땅이다.’ ‘그 벌 하나만 해도 나라 하나를 만들기에는 너무 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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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좋은 이상국 건설의 후보지로군.’ ‘옛날 일은 모르거니와, 아무 때고 일 독립국이 되고 말터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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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이 입 저 입에서 나온다. 이런 말은 들을 탓으로는 우리의 천 평 환국론의 천성인어적(天聲人語的) 순증(純證)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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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터전만 그러한가. 이 일행만 가져도 나라 한 판이야 넉넉히 차리지. 군대도 있고 교사도 있고 학자도 있고 실제가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마필 기계도 있고, 도 동남동녀의 씨를 받을 것도 있으니 나라의 무엇을 마련하여 내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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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주저앉아서 돈 없고 세납(稅納)내지 않고 경찰도 귀찮지 않은 새나라 하나를 만들었으면’하여, 빚에 졸리고 차압에 성가시고 순사에게 물려지내던 모든 불평을 여기서 단번에 벗어버릴 급진적 생각을 하는 이도 있다. 현상을 타파하겠다 하는 일념만은 용기라고도 하겠지마는, 새로 전개되는 국면이 도로아미타불일진대, 전개한 수고만이 헛노릇 아닐까? 못살게 구는 그이는 누구요, 시방 이 사람들은 누군데, 도로 그 사람 본위로 만들어질 나라에서 무슨 다른 복리를 찾으려 하는지, 생각하면 우습고 딱한 말이요, 더욱 귀여운 우리 자식 천 평 아동에게까지 ‘モモカラワマレタモモタラワ’를 불리우기가 소름이 끼치지 아니하나 하면, 일시의 지나가는 말일 망정 깊이 민연(愍然)한 생각을 금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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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야, 천 평에 새 나라를 만들자. 나도 그 국민이 되어 보자. 그러나 천 평국의 건국 요소에는 우리의 동정(童貞)과 성결(聖潔)로써 무엇보다도 큰 것을 삼자. 그 국민의 혈관엘랑 순결한 태백혈이 흐르게 하고, 그 국민의 순결한 태백어가 쓰이도록 하자. 이러한 새 나라를 우리 손으로 기어이 만들자. 현실에는 만들지 못할지라도, 이상에라도 만들자. 남은 다 그만둘지라도 각기 자기만은 마음속에 깊이, 또 탄탄하게 이 나라를 배포하여 두자. 시방 당장 이 나라를 천 평 여기 현전(現前)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천 평 여기서 이 나라 하나씩을 각개의 마음에 배포해 가지고 갈 수는 물론 있다. 본지(本地)의 풍광으로써 꾸민 이 나라야말로 무슨 돈놀이꾼이 있으며, 집달리(執達吏)가 들어오며, 사벨의 푸른 기운이 있으랴! 동무야, 천 평 여기서 새 나라 생각을 잘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의 마음속에 배포하여라. 마음엔 밴 자식은 일로 낳아야 말 것이니, 마음의 나라보다 더 적확한 실지가 없는 것까지를 생각하여라. 심중의 천 평과 현실의 천 평이 결코 원거리가 아니며, 아니 실상 본일비일(本一非一)인 것이다’ 하는 장설법(張設法) 버릇이 내 목구멍에서 날름거림도 우스웠다. 나팔 소리가 났다. 될뻔댁의 나라는 수초(水草) 따르는 북방민족의 그것처럼 동북을 향하여 꿈틀꿈틀 이동하기를 비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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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구슨벌’로, ‘거칠봉(峰)’거쳐 무산(茂山)으로 통한 세로(細路)를 우로 두고 지나면, 그리도 절펀하던 산화(山火)의 초야(焦野)도 십 수리 만에 끝이 나고, 백화(白樺)도 낙엽송의 치수림(稚樹林)으로 비롯하여 숲이 다시 걸음을 따라 짙어간다. 숲속의 나무 밑으로는 세엽척촉(細葉躑躅)·고산백합·석죽(石竹)·엉겅퀴 기타 허다한 초화들이 일시에 만개하여 춘사(椿事)가 한참 바다 같은데 고운 빛 맑은 내가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이 근처의 봄은 7월에 비롯하여 8월 중순이면 가니, 그러므로 온갖 초목이 이 동안에 일제히 개화 결실하기를 바빠하여 춘색의 난만함이 평야보다 무덕짐이 있다. 홍자(紅紫)의 난파(亂派)가 큰 놈은 용춤을 추고 작은 놈은 앙감질을 하는 창망(蒼茫)한 화해(花海) 중으로, 우리의 연합 대함대는 일자 종렬진(縱列陳)을 지어 가만가만 항진을 계속한다. 조선이 백두산을 잊어버렸다. 생각한다 하고 안다 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별로 낫지 못한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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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천 평은 아주 답답히 잊어버렸다. 민족생화의 근거인 여기를 이렇게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관례 없이 아는 다음에야, 그네에게 무슨 근기(根基) 있는 일과 싹수 있는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선의 모든 것-사람의 마음과 나라의 운명까지도 공중에 둥둥 떠서 어느 바람에 어떻게 나부끼는지 모르게 됨이 실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큰 과거도 거느리지 못하는 자에게 큰 장래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 있을 리 없나니, 개구리밥같고 버들개지같이 닿은 데와 박힌 데 없는 오늘날 조선 사람에게 화 있을진저. 그런데 이무서운 병근재원(病根災源)은 실로 백두산과 그 천 평을 잊어버릴 때에 비롯하였음을 생각할 것이다. 그 대신 조선인이 자기로 돌아오고 자기에 눈뜨고 자기에 정신 차리려 하면, 또한 백두산 의식 천 평 관념으로부터 그 출발점을 삼지 아니하면 아니될 줄 알 것이다. 이를 위하는 역사가·철학자·시인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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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의 세기라 하는 근대는 과연 고고적(考古的) 위적(偉績)으로 전대에 탁절(卓絶)한 바 있다. 회신(灰燼)의 중에서 봄베이의 2천 년 전 영화를 끄집어냄과, 토사의 밑에서 아나우(Anau)의 1만 년 전 문화를 들추어낸 것은 질로나 양으로나 야 영원히 자랑할 가치를 가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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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천평의 고적은 바람에 불려서는 아나우 같은 토변(土變)을 당하고, 불이 붙어서는 봄베이 같은 회화(灰禍)를 입어, 이중의 분묘에 깊이 그 종적을 숨기고 말았으며, 또 살사 타년(他年)에 다소의 고허(故墟)를 뒤적거릴 기회가 있을지라도, 문화의 성질과 발달의 정도가 동일하지 아니한 바에, 반드시 터키스탄이나 이태리 반도에서와 같은 유물을 집어내리라고 할 수가 없지마는, 설사 천 평 천리가 속속들이 공환(空幻)한 것이라 할지라도 시인·애국자·예언자의 눈에는 텅텅 빈 것이 그대로 꽉꽉 들어참일 것이다. 또 시인도 예언자도 아무것 아닌 심상한 사람일지라도 진실로 천왕 이래의 혈통과 단군 이강(以降)의 화연(化緣)을 가진 조선인일진대, 그에게는 아무것은 다 그만두고서 천 평이란 이름 하나가 이미 무한한 감흥의 원천이요, 지혜의 고장(庫藏)일 것이다. 청평이라는 개자(芥子)의 속에 일체 민족생활의 수미산(須彌山)을 넉넉히 용납할 것이다. 괭이나 가래나 고고의 학자나 대학의 교수나 하나도 소용할 것 없이, 천 평이라는 일어(一語)에 심심증오(心心證俉)하는 환연(煥然)한 일물(一物)이 있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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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분화가 설사 베주비어스의 할아비 치는 맹열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비화(飛火)와 여파의 잔멸할 수 있는 것은 취락이나 가옥이나 인축(人畜)이나 물품이나 유형저(有形底)의 것과 일시적의 것에 그쳤을 것이다. 겁운(劫運)이 미진수(微塵數)를 지내고, 창상(滄桑)이 해옥주(海屋籌)보다 많더라도 초연자재(超然自在)하여 일관직전(一貫直傳)하는 무형 저의 일물(一物)과 구원적(久遠的)일물로 말하면 그럴수록 도리어 꿋꿋하고 싱싱하게 화불능소(火不能燒),수불능표(水不能漂)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네 심령의 맨 밑바닥에 유전(流轉)해 내려가는 것이다. 무엇이냐하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대원력(大願力)에 버티어서 극과완성(克果完成)할 마지막까지 항상 백열적치(白熱f赤幟)하는 ‘신시심(神市)心)’이 그것이다. 인간을 천국화하여 거병멸악(去病滅惡)의 청명건곤(淸明乾坤)을 출현하리라 하는 환웅대심(桓雄大心)은 세월이 갈수록, 경력이 많을수록, 그 내포외연(內包外延)이 늘고 붓고 그 기대(基臺) 범위가 커지고 탄탄해짐이 있을 뿐일 것이다. 위대한 당년의 대경륜(大經綸) 무대가 시방 저렇게 초래(草萊)요, 회신뿐임을 볼 때에, 우리 천업신도상(天業神道上)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성의가 더욱 격앙하며 더욱 발월(發越)함을 깨달음이 있을 다름일 것이다. 나도 그러한 것처럼 남은 더하고, 시방도 그러한 것처럼 이다음에는 더하여, 천 평의 황량이 그대로 천업회홍(天業恢弘)의 가속적 책진(策進)의 기연(機緣)을 지을 따름일 것이다. 화전의 곡식이 제 거름에 더 잘 되는 셈으로, 청평의 소흔(燒痕)은 마침 대조선의 정신의 화전 같은 소임을 보게 됨일 것이다. 이렇게 부쩍부쩍 다시 붙어 오는 환국적 세계통일심에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부을 이가 다른 이 아닌 천평 시인 · 천 평 예언자들이다. 누가 천 평을 가리켜 빈 들이라 하며, 찬 재밭이라 하랴? 이것은 실로 구원한 조선심의 묘포(苗圃)며 옥토며 대압토(大壓土)며 대생육(大生育)·대결실 · 대수확지이다. 아무 데서도 뜨지 못하던 민족맹(民族盲)이라도 여기 와서는 번쩍 눈뜨지 아니치 못할 의왕천(醫王天)이야말로 이 천 평이다.
【원문】백두산 근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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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192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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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