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호라, 건곤(乾坤)이 혼합하고 천지 개벽하는 법은 열 뒤 회가 있으니, 가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요, 세는 1만 8백년이라. 대개 건곤이 혼합하고 천지 만물이 형용을 알지 못하다가 자회에 비로소 하늘이 생긴지 1만 8백년 후에야 축회에 비로소 땅이 생기고, 땅이 생긴지 1만 8백년 후에야 인회에 비로소 사람과 만물이 생기고, 묘진사오미신유 일곱 회를 무사히 지내다가 술회에 이르러 만물이 도로 스러지고 해회에 천지 무너져 형용을 알지 못하다가 자축인 3회가 돌아오며 천지 다시 개벽하고 만물이 생하나니, 이러하므로 엿적에 인황씨(人皇氏) 구관제(九官制)가 지방을 각기 아홉에 나눌새 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 형주, 예주, 익주, 옹주를 구주(九州)로 나누어 각칭 임금이라 하였더라.
3
옹주(雍州) 땅에 한 산이 있으니 이름은 구궁산이라. 그 산 속에 한 깊은 토굴이 있고 토굴 안에 한 짐승이 있으니 성은 서(鼠)요, 이름은 쥐요, 별호는 대쥐(大州)라. 금수(禽獸)중의 으뜸으로 세상에 남에 생애 없는고로 인간 사람 감추는 음식을 도적하여 먹기로 생업을 삼더니, 태호 복희씨 시절에 인간에서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바로서 남가여혼(男嫁女婚)을 이루게 할제, 비단이 없는고로 산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겨 신물 삼는 법을 마련하였다.
4
서씨가 이 소문을 듣고 가죽을 잃을까 염려하여 인간을 하직하고 구궁산 깊은 굴 속에 은신하여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므로, 밤이면 산에 올라 양식을 거두어 자뢰하고 낮이면 자손으로 더불어 의사를 강론할새, 일일은 서대쥐 그 자손더러 일러 가로되,
5
"슬프다. 우리 서씨 문호 문장 이름이 항상 끊이지 아니하므로 세상에서 오행전서(五行全書)와 기문벽서(奇文僻書)에 혹 알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우리 서씨 문중에 의논하는고로, 복희씨 비로소 팔괘를 베풀어 점술과 문필을 알게 하실새 머리로 육갑(六甲)을 이루고자 하나 무엇으로 으뜸을 삼으리요, 우리 십여 대 조부의 문장 이름을 듣고 청하여 육갑의 문리를 의논하매 우리 조상이 말씀하시되
6
'만일 팔괘와 글을 이루고자 할진대 갑을병정은 이미 정하였으나 아랫자를 나에게 문의하시니 이는 쉬운 바라. 천지 생하시매 우리 서씨를 위하여 자회(子回)로부터 생하니, 자는 우리를 두고 이름이니 머리를 갑자(甲子)라 하고 땅은 축회(丑回)로부터 생하니 을축(乙丑)이라 하고, 만물은 인회(寅回)로부터 생하니 병인(丙寅)이라 하여 차차 그 이류를 좇아 육갑을 지을진댄 무엇이 어렵다 하리요'
7
하시니 복희씨 대찬(大讚)하사 우리 조상을 스승님이라 하사 고조 수백 대에 이르도록 문장을 지켜 오더니, 너의 등대에 이르러서는 생애에 골몰할 뿐 아니라 학식이 없으니 서씨의 문장 이름을 이어가고자 하나 내 나이 천세에 이르러 너의 무리 무식하고 허물을 이르며 가르치매 운무(雲霧)는 흉중에서 일어나고 글에 어둡고 뜻이 김은 것을 탄식하니 형극(荊棘)은 구중에 있고 눈은 점점 어두워지고 머리는 백발을 재촉하는지라. 슬프다. 너희 연소한 무리들은 고금역대(古今歷代)의 치란안위(治亂安危)와 흥폐존망(興廢存亡)이 지금은 어느 나라 시절인 줄 아느냐."
8
여러 자서제질(子壻諸姪) 모든 쥐들이 모두 대답하되,
9
"왕대인(남의 할아버지의 존칭)의 말씀을 듣사오니 소손 등이 심히 비감하옵니다. 역대세사(歷代世事)를 어찌 자세히 알리요마는 동중서(董仲舒) 글에 이르기를 문견박이지익명(聞見博而知益明)이라 하오니 문견이 너르면 아는 게 밝을 것이요, 광무군(光武君) 말에 하였으되 지자천려(知者千慮)에 필유일득(必有一得)이라 하오니, 비록 학업은 업사오나 선조로조차 항상 하옵시는 말씀을 듣사오니 문견이 약간 있사옵니다. 대저 삼황(三皇) 전에는 조세계(造世界) 전이라 가히 상고치 못하려니와, 듣자오니 복희씨는 사신인수(蛇身人首)로 진땅의 왕이 되어 글을 지으며 가취를 이르고 그물을 맺아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고 짐승을 잡는 수렵법(狩獵法)을 내시고, 여와씨(女蝸氏)는 생황(笙篁)을 만들어 음률(音律)을 맞추고, 신농씨(神農氏)는 인신우수(人身牛首)로 곡부(曲阜)에 도읍하여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며 백초를 맛보아 의약(醫藥)을 내시고 저자를 베풀어 장사를 가르치며, 황제씨는 간과(干戈 : 무기의 총칭)를 지으사 치우(蚩尤)를 탁록( 鹿)들에서 싸워 사로잡고 주와차를 지으며, 금천씨는 새로써 벼슬을 기록하고, 고양씨는 신령을 위하여 제사를 가르치며, 고신씨는 세상에 나매 신령하여 스스로 이름을 부르고, 당요씨는 정중의 명협(蓂莢-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루에 한입씩 났다가 16일부터 한잎씩 떨어져 그믐에는 다 떨어지고, 작은달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이를 보고 달력을 만듦. 달력풀.)을 보고 책력을 지으며, 평양에 도읍하사 토계삼등의 모자를 불전하며, 제순시(帝舜氏)는 효로써 고수를 섬겨 불견간하시고 아황여영(娥皇女英)을 취하여 이비(二妃)를 삼으시고 오현금 지어내어 백성의 탐모를 푸시고, 하우씨는 제순의 명을 받아 홍수를 다스리고 세 번 집 문을 지나시되 8년 불입하고 육행승차(六行乘車)하여 수행승선(數行乘船)하셨고, 성탕(成湯)은 무도한 것을 내치사 이윤으로 정승을 삼아 국정을 맡기시고 7년 대한에 육사로 대우를 얻으시며, 무왕은 주(紂)를 멸하시고 여상(呂尙)으로 승상을 삼아 국사를 총임하여 주씨를 보익하고, 진시황은 여불위(呂不韋)의 자식으로 진나라 왕이 되어 열국을 진멸하고 스스로 황제되어 만리장성을 쌓아 오랑캐를 막고 장자 부소(扶蘇)를 내쫓고 장생불사하려고 방사(方士) 서시(徐市)에게 불사약을 구하려다가 사구평대에서 죽었으며, 한천자 유방은 백사를 베이고 포의로 일어나 항우와 더불어 호해를 파하고 파촉 한중에 도읍한 후 장량의 결승천리와 소하(蕭何)의 불정양도와 한신의 전필승공필취(戰必勝功必取)와 진평(陳平)의 육출기계로 항우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통일하였더니, 그 후에 왕망(王莽)이 찬역하여 한을 폐하고 자칭 천자라 하더니 한광무 유문숙이 군사를 백수촌에 일으켜 왕망을 멸하고 다시 한실을 중흥터니 한영제 때에 이르러 십상시의 난을 만나 황건적이 창궐하고 동탁이 찬역하매 천하를 삼분하여 한종실 유현덕이 서천에 도읍하여 한실을 붙들더니, 그 후에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고 천하를 통합하여 국호를 진이라 하고, 그 후에 수양제가 사마씨를 진멸하고 자칭 천자라 하니, 수양제의 일총 신하 동평장군 이연(李淵)의 셋째아들 세민이가 위징, 진숙보, 서무공 삼걸의 도움으로 수양제를 몰아 내고 금융성의 이밀을 파하여 이연을 세워 고조 황제를 삼고 국호를 대당이라 하더니, 지금은 그 아들 세민이 그 뒤를 이어 황제 되었으니 이 세상은 당태종 세민황제 시절이 아니오니까."
10
서대쥐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굽은 허리를 길게 펴고 뾰족한 주둥이를 치켜들고 두 귀를 발록거리며 앞발로 수염을 어루만지며 허허 간간 대소하여 가로되,
11
"기특하도다. 내 나이 늙으므로 교학(敎學)지 못하매 너희들이 굴문을 나가는 바 없이 항상 토굴 안에서 생장하여 정저와(井底蛙)같이 준준무식일가(蠢蠢無識一家 : 한 집안이 굼뜨고 어리석어 아주 무식함) 하였더니 오늘날 네 말을 들으니 나의 무식한 흉금이 열리고 어두운 눈이 밝아져 삼황오제를 지금 뵈옵고 맹자를 당장 모신 듯하오니, 이는 서씨문호의 홍복(鴻福)이요 너의 학문 재주는 생이지지(生而知之 : 배우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통해서 앎)라. 내 매양 염려하는 바는 내 나이 많은고로 사후에 학업을 폐하여 예의 염치를 알지 못하고 무식한 탕자(蕩子)되어 우리 서씨 문중에 삼강이 무너지고 오륜이 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였더니 이제 너의 말을 들으니 지식이 명약관화(明若觀火)라 장하고 기쁘도다."
13
"부친은 근심치 마옵소서, 문장재사(文章才士)와 영웅열사(英雄烈士)는 신수의 좋은 바가 아닙니다. 옛날 항량(項梁)도 그 조카 항우(項羽)로 하여금 글을 가르치매 이루지 못하고 검술(劍術)을 가르치매 또 불성(不成)커늘, 항량이 노하여 꾸짖으니 항우 가로되,
14
'글은 기성명하면 그만이요 검술은 일인적(一人敵)할 따름이라, 족히 배울 바 없사오니 만인대적(萬人對敵)을 배우고자 하나이다.'
15
하거늘 항량이 그 말을 듣고 기특히 여겨 즉시 병법을 가르쳐 이름을 천추에 유전하였고, 한나라 사마천은 만고문장으로 고금을 통달하고 역대를 박람(博覽)하여 흉중에는 오거서를 품고 입에는 공맹을 송독(誦讀)하는 글로도 마침내 불알을 썩히는 독한 형벌을 당했으니, 글이 비록 이적선(李謫仙), 두목지(杜牧之)를 압도한들 무엇이 유족하리요, 속담에 일렀으되 곤궁은 문장에서 나고 재승박덕(才勝薄德 : 재주는 있으나 덕이 작음)이라 하니 글은 우리 서씨 호적이나 남의 손을 빌어쓰지 아니하면 족할지라. 자고로 제왕영웅과 충신 효자와 열녀 효부며 부귀 공명과 문장 등 역사 각인을 평론할진대 제(薺)나라 전횡은 일국왕으로 지방이 6천여 리요 갑이 백만이로되 오히려 노중에서 자문(自刎)하였으며, 초국 사람 오사(五奢)의 아들 오자서는 오왕 부차(夫差)를 섬길새 월왕 구천(句踐)이 오자서의 이름만 들어도 혼비백산 전율증이 나매 오자서는 영웅의 이름이 각국에 전파하되 마침내 한 자루 촉루검 아래 자문이사(自刎而死)하였고, 지백의 신하 예양은 충성을 다하여 몸에 옷칠을 하여 남의 종도 되고 벙어리도 되어서 거지 노릇을 하면서 임금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다가 충성을 이루지 못하고 조양자에게 죽었으며, 주문왕의 아들 백읍고는 그 아버님께서 유리옥에 갇히사 7년을 돌아오지 못하시니 출천지효(出天之孝)를 다하여 부친을 구하려다가 효를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달기에게 독을 받아 함분(含忿)코 죽었으며, 제나라 왕촉은 국파군망(國破君亡)한 연후에 새로운 임금이 왕촉의 어진 일화를 듣고 부르매 왕촉이 불청왈
16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不更二夫)라'
17
하고 인하여 목을 매어 죽었으니 열절은 비록 유전하나 임금의 망함을 구하지 못하고 제 몸이 죽었으며, 진나라 서고의 아들 석숭(石崇)은 천하 거부로서 만승천자(萬乘天子)를 지나되 오히려 명을 보전치 못하고 마침내 머리를 베였으며, 한 장군 박소는 활훈의 아우요 천자의 외숙이로되 행의불치함으로 천자가 신하 등을 거상입혀 조상하매 박소 마지못하여 스스로 목 찔러 죽었으며, 한나라 곽광은 어린 임금을 받들어 정사를 도우매 벼슬이 박육후를 봉하고 평서대장군 대사마를 겸하고 임금의 스승이 되어 금달(禁 )에 출입한 지 20여 년에 공명이 지중하여 비록 제 몸은 무사 보전하였으나 곽광이 죽은 후에 자손이 멸망하고 곽씨 제족이 진멸하였사오니, 대저 예로부터 제왕 영웅과 충효 열절과 부귀 공명과 문장이라 이른 자들이 와석종신(臥席終身 : 자기 명대로 살다가 죽음)하기 어려운지라 무엇이 선하며 쉬하다 하리요. 우리 서씨는 대대 선비로 학업을 펴지 말고 성명이나 기록하고 자손은 오입잡기나 말고 난봉이나 없으면 욕급선조는 면할 것이요, 추수 여 3백 60일에 권솔이 기한(飢寒)을 알지 못하고 위로 조상 신령의 사시향화(四時香火)를 받들며 백발 쌍친(白髮雙親)을 고당(高堂)에 모셔 조석 감지를 봉양하며 아래로 층층 자녀를 영솔하여 부화 부순하며 우애 돈독하여 상하 화목하고 계견이 구순하여 화기자생 군자실(和氣自生君子室)이요 가화만사성이면 성자 신손이 계계승승하리니, 부질없이 제왕 영웅과 충효 열절과 부귀 공명 문장을 하처에 쓰리요. 원컨대 부친은 심려를 허비하사 쓸데없는 근심을 말으시고 만수무강으로 여년을 마치기 바라나이다."
19
"선재(善哉)라 네 말이여, 기재(奇哉)라 네 말이여, 진실로 군자로다. 너 같은 아들을 두었으니 문왕의 백자와 곽분양의 천손(天孫)을 어찌 귀하다 하리요."
20
좌우 쥐로 하여금 술을 가져오라 하여 수십 배를 마시고 주흥을 못 이겨 증손 외손 새앙쥐를 명하여 글을 지으라 하더니, 홀연 토굴 밖으로서 쥐 하나 황급히 들어와 복지문안(伏地問安)하거늘 서대쥐 자세히 보니 선대로부터 부리던 청지기 쥐라. 급히 물어 가로되,
21
"네 무슨 일이 있관대 이리 급히 오느뇨."
23
"소인이 생업이 없사와 동절에 처자를 보전키 어려우매 거월망야(去月望夜)에 달이 밝기로 하동 장처사 집 용정하는 백미를 탈취코자 아랫방을 찾아 들어가 본즉 동편 구석으로 큰 독이 있삽거늘 좌우 벽을 인연하여 독전에 올라 굽어 살펴본즉 백미는 있사오나 반 독밖에 차지 못하오매 좌사우상하오나 탈취하올 길이 없삽는지라, 처자가 여러 날 굶고 소인만 기다리는 일을 생가가온즉 빈 몸으로 돌아갈 길이 망연하옵고 소인도 또한 3,4일 굶사오매 식욕이 대발하와 결단코 독으로 뛰어내려 우선 주린 배를 충복은 하였사오나 다시 몸이 벗어날 계책이 없는지라, 십여일을 독 속에서 잘 먹고 지내더니 마침 장처사의 생일을 당하여 송편 쌀을 내느라고 비자(婢子)로 하여금 곧 박을 들려 들어오거늘 소인이 총망 중에 한 계교를 생각하고 쌀을 헤치고 몸을 백미 중에 감추고 동정을 본즉 그 비자 박을 들고 독 중 쌀에 무수히 떠내 가지고 나갈새 소인이 바가지 쌀 속에 묻혀 나오다가 방문 밖에 나거늘 쌀을 헤치고 뛰어 도망하여 온즉, 그간 처자는 소인을 기다리다가 여러 날 소식이 없으매 필시 죽었다 하고 소인의 처는 건넛산 박화촌의 서달쥐에게 재가(再嫁)하옵고 어린 자식은 홀로 토굴에 엎드려서 어미를 부르며 우는 형상이 심히 잔인한지라. 이러므로 오래 문안을 아뢰지 못하여 하정에 황공 불안하온 중 이러한 곡절을 모르시고 소인의 위인을 무상하다 통촉하실까 황송만만인고로 오늘 문안차로 나옵더니 동굴 문하에 가까이 이르러는 사람의 자취가 있삽기로 놀라 몸을 잠깐 풀 가운데 숨겨 동정을 살피온 즉, 한사람은 갓 쓰고 홑단 창의(氅衣 : 벼슬아치가 평시에 입는 웃옷. 소매가 넓고 뒷솔기가 갈라짐)를 입고 초혜(草鞋)를 신고, 한 사람은 검은 갓 쓰고 청직영을 입고 검정신을 신었으되 일장고지(一張告紙)를 토굴 동편율목(栗木) 늘어진 가지에 걸고 이르되,
24
'대당 천자께서 금용성을 치려 하실제 팔괘동에 거(居)하는 서씨 종족이 금융성 창고 안의 백만 석 양미를 모두 훔쳐 없앰으로써 금융성을 파하매 이는 구궁산 서씨의 공이라 하사 태종 세민 황제 특별히 서씨에게 가자(加 )를 내리시고 옹주 본관에 조서를 내리사 구궁산 팔괘동 사면 40리를 사패(賜牌)하여 서씨를 주노니, 만일 사람이나 금수라도 서씨 종족에게 사패한 율목과 초목을 침범하면, 자본관으로 극별 엄금하라 하시기로, 나는 본관 아전일러니 황제의 교지를 나무에 걸고 가나니 만일 서씨 종족에서 이 일을 알거든 교지를 거두어 가라.'
25
하고 인하여 사람이 산을 내려가매 소인이 그 소리를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급히 나와 고달하나이다."
26
여러 젊은 쥐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손뼉치며 이르되,
27
"우리 왕대인께서 천은이 망극하여 가자를 얻었으니 서씨 문중이 광채배승(光彩倍勝)하도다."
28
무수히 지저귀되 서대쥐는 나이 많아 경력이 있으매 경솔한 자와 다른지라. 여럿을 꾸짖어 물리치고 말 전하던 청지기 쥐를 보고 일러 왈,
29
"요사이 반삭(半朔)이 지나도록 오는 일이 없기로 일기는 차고 백설이 만적하매 왕래길이 불편하여 오지 않는가 하였더니 원래 이런 연고 있었구나. 들으매 놀랍고 가련하도다. 나는 네 살림이 이같이 곤궁함은 생각지 못함이니 오히려 내가 너를 요량하는 마음이 부족함이라. 사세여차(事勢如此)어든 댁에 와서 내게 말하기 창피할 테이면 여러 서방님께 이런 사유의 말을 대강 했을 터이면 여러 서방님꼐 이런 사유의 말을 대강 했을 터이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요. 너의 슬기로운 계교 아니었던들 하마 위태할 뻔하였도다. 고인이 일렀으되 기한(飢寒)이 지심이면 불고염치라 하였으니 위방불입(危邦不入)이요 난방불거(亂邦不居 :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아니하며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아니한다)라 하였거늘, 네 나이 이미 천여 세라 연소경박자(年少輕薄子)와 다른지라 어찌 위태함을 생각지 못하였느뇨. 지금 너에게 한두 석 양미를 주고 싶으나 졸연히 가속이 없으매 뉘라서 조석을 공궤(供饋)하리요. 그 사이 네 자식이나 데리고 아주 댁에 와 있다가 내두(來頭 : 이 때로부터 닥치는 앞일)를 보아 지내라."
30
"청지기 쥐 덕을 못내 감축하거늘 서대쥐 그제야 나가서 그 말대로 만일 교지가 있거든 가져오라."
31
하니 장자쥐 명을 듣고 같이 토굴 밖으로 나가 동구에 이르니 과연 동편 밤나무 늘어진 가지에 교지가 걸렸거늘 노복쥐로 하여금 밤나무에 올라가서 가져오라 하여 가지고 토굴로 들어가서 대쥐에게 올리니라. 대쥐가 교지를 받아 보니 백옥 같은 일폭화전에 생칠(生漆) 같은 참먹으로 머리에 교지라 쓰고 그 아래 다시 썼으되,
32
'구궁산 팔괘동 거하는 서대쥐 종족을 데리고 금용성 낙구창에 허다한 양미를 없이하여 대공을 이루어 그 공이 불소한지라. 이러므로 구궁산 팔괘동 사면 40리 내의 백자(柏子) 율목(栗木)4만 6천 주를 사급(賜給)하노라. 동족이 대대로 생업을 삼고 서대쥐로 특별히 작위를 내리어 가선대부 행동지 통정대부 겸 옹주첨사'
34
'대당태종(大唐太宗) 6년 병인월 일(日)'
35
이라고 쓰고, 서촉 단청 붉은 주홍으로 일월 두 자 아울러 어인(御人)이 분명히 찍혀 있었다. 서대쥐와 모든 쥐 배람(拜覽)하기를 다하매, 정중에 향안(香案)을 배설하고 교지를 향안 위에 세우고, 서대쥐 머리에는 서피(鼠皮) 제물관이요 몸에도 서피 제물 관대(冠帶)를 입고 발에도 제물 목혜(木鞋)를 신고 허리에도 제물 요대(腰帶)를 띠고 향안앞에 나아가 북향사배(北向四拜)하여 천은을 사례하고 난 후, 대소 남녀 쥐를 데리고 중당에 좌를 정하매 장자쥐 나와 왈,
36
"부친이 연장 6백순(六百旬 : 旬은 10년을 일기로 한 명칭, 六白旬은 六千歲를 이름)에 이르시되, 관직을 얻지 못하사 만세 후 명성이 회소할까 하옵더니 오늘날 가자를 얻사와 입신양명하옵시니 서씨 문호가 찬란하옵니다. 원컨대 당상에 잔치를 배설하사 향당(鄕堂) 종족과 인리(隣里) 빈객을 청래하여 만년의 행락으로 즐기기를 바라옵나이다."
38
"오호라 나의 천사 모년(暮年)이 일박서산(一迫西山)에 이르러 고은(高恩)이 호대(浩大)하사 영화 이름을 얻으니 이른바 고목(枯木)이 생활하고 사골부생(死骨復生)이라. 바라는 데 지나고 복이 과하여 무엇이 부족다 하리요마는 헤아리건데 잔치를 배설하여 즐김은 실로 경사 아님이 아니로되 이 같은 흉년에 백종(百種)이 극귀하고 물가는 고등한데 만일 잔치코자 할진대 소용 물품이 불소하여 수천금에 지나리니 나의 일시 즐거움만 생각하고 공연히 재물을 남용하여 후세 자손의 생산 가업을 허비하리요, 그런고로 다시는 잔치하자 말을 말라."
39
장자쥐와 모든 쥐들이 다시 나와 강청하거늘 서대쥐 불청하고 허락지 않는지라. 서대쥐의 처 고산 서씨쥐 나와 가로되,
40
"낭군은 고집 말으소서, 옛날 현철의 말에 일렀으되 시지불행(時至不行)이면 반수기앙(反隨其殃 : 때가 이르러도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이 따른다)이라 하였으니, 때에 돌아오는 낙을 한갓 재물만 아껴 즐기지 않으면 오히려 돌아오는 근심이 있을 것이요, 남에게 수전노(守錢奴)라 재물 아낀다는 비방을 면치 못할 것이요, 후세 자손을 염려하심은 부모되는 마음에 떳떳한 일이나 성인이 이르시되 1천 이랑 전답을 자손에게 전함이 한 재주 가르침만 못하고 수만금 재물을 자손에게 전함이 책 한 권 전함만 못하다 하였고, 한나라 태부 소광은 천자와 태자가 주신 재물 수백만금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종족 향당과 고구와 빈객에게 나누어 주어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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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가 주신 금으로 어찌 자손을 생각지 않으리요마는 이것을 자손에게 전하는 것은 다만 게으름을 가르침이라.'
42
하고 황백금을 나누어 주었으니, 이제 낭군은 여년이 비조즉석(非朝卽夕 : 아침이 아니면 저녁이란 뜻으로, 시기가 임박했음을 뜻함)이라 천자께서 주신 율목이 4만여 주이니 그만하여도 자손의 산업이 백세에 능족하거든 어찌 소소 재물을 아껴 일문 친척에 한번 즐김을 폐하리요, 원컨대 낭군은 쾌히 허락하여 자손의 청구하는 말을 좇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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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통달로써 나의 무식한 흉금을 열어 어두운 마음을 깨닫게 하니 부인은 진실로 여중군자(女中君子)요 치마 두른 장부라. 어찌 나 같은 졸장부야 부끄럽지 않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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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여 장자쥐에 분부하여 당상 잔치를 허락하니 장자쥐 크게 기뻐하여 즉시 길일을 택하니 3월 15일이 상원가자생 기복덕일(起福德日)이라. 모든 쥐를 불러 잔치를 준비하여 서사(書士)쥐로 하여금 한 장 회문을 지으니 그 회문에 하였으되,
46
'무릇 천지간에 바다가 가장 넓고 만물 중에 사람이 오직 영웅이로되 청천백운에 깃을 떨쳐 나는 새와 산중 암혈에 걸음을 달려 발섭(跋涉)하는 벌레들이나 조금오작(鳥禽烏鵲)이며 강천계간(江川溪間)에 비늘 잠겨 부유하는 어류들이 다 각각 천하의 이기(理氣)는 있는지라. 대저 우리 서씨는 태극이 조판(肇判)함으로부터 으뜸으로 세상에 나매 여러 번 역대를 지나고 자주 고금이 바뀌어 서씨 자손이 각처에 유학하매, 촌수 멀어지고 친척이 끊어져 동서 각처의 종친은 변하여 남이 되고 남북 사방의 족당은 헤어져 구주에 이르니, 옛날 문왕의 자손이 열국에 번성하여 동부모 동골육이로되 세월이 차차 오래매 후속(後屬)이 소원하여, 서로 치고 싸워서 구수(寇讐)가 되되 주천자 오히려 능히 금치 못하였는지라. 우리 서씨 자손이 또한 주나라 후속 같으며 서로 세계(世系)를 알지 못하고 상생(傷生) 지경에 이르니 어찌 한심치 않으리요, 슬프도다. 우리 서씨 문중의 문장 어른이 나라에 대공을 이루므로 당천자 어여삐 여기사 작위를 내리고 자가를 주신고로 오늘 잔치를 배설하여 서씨 족당으로 더불어 천은을 공락(共樂)코자 하여 이같이 회문을 써서 각처 서씨에게 고시하노니 원근 무론하고 우리 조판 서씨를 일일이 전하여 3월 15일 내로 구궁산 팔괘동으로 일제히 내회하시되 만일 불참하는 자 있으면 서씨 문호의 폐족이라.'
49
라 하였다. 이 회문을 노복 20명에게 주어 각처로 보내고 그 뒤에 잔치의 모든 준비와 대소 범절을 갖추는 동안에 어느덧 잔치 일자가 이미 수일이 격하였는지라. 주구에 흩어진 서씨 등이 회문을 보고 찾아 전하여 청천에 구름 모이듯 하고 춘산에 안개 모이듯 하여 늙은 쥐는 창안백발(蒼顔白髮 : 늙은이의 쇠한 얼굴빛과 센 머리털)에 막대를 짚고 어린 쥐는 옥면단발(玉面短髮)에 짚신을 끌고 구궁산을 찾아 나오니 수일 내에 팔괘동 중에 서씨 종족이 불가승수(不可勝數)라.
50
마침내 잔칫날을 당하매 모든 쥐들이 연석에 참여할 새 눈을 들어 살펴보니, 비록 토혈이나 배산임류(背山臨流)하고 비산비야(非山非野)한대 자좌오향(子坐午向 : 하도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음)으로 수십 간의 와가(瓦家)를 이뤘으니, 월중단계(月中丹桂)로 기둥과 들보를 삼았으며, 명명한 월광은 일실이 조요하고 삼산(三山)의 오동으로 창호(窓戶)를 이루었으니, 주란화각(朱欄畵閣 : 丹靑칠을 곱게 하여 화려하게 꾸민 누각)은 반공에 높이 솟았으며 용루봉정(龍樓鳳亭)은 좌우에 즐비하고 옥란과 주렴(珠簾)을 처마에 드리웠으니 아침 태양과 저녁 달은 구름 속에 그림같이 보이고, 맑은 바람에 부딪치는 풍경은 쟁쟁한 소리 심히 요란하며, 왕회지의 필법과 조맹주의 체법이며 서화부벽(書畵付壁)이 분명하고 분분사창(紛紛紗窓) 가득히 아로새겨 있으며, 사면의 벽을 살펴보니 동쪽 벽에는 당우시절 허유가 요임금의 천하 전함을 마다하고 영천수에 귀 씻은 더러운 물 안 먹인다고 고삐를 잡고 상류로 올라가는 형상 그렸고, 서쪽 벽에는 육신선 황석공이 교의에 걸터앉아 한인 장자방이 두 손으로 신을 들어서 황석공의 맨발에 신기는 형상을 걸었으며, 남쪽 벽에는 한 종실 유황숙이 제갈공명 보려 하고 와룡강 남양초당 풍설 중에 찾아가서 삼분천하 의논코자 삼고초려 그렸으며, 북벽에는 풍채 좋은 두목지가 일륜거에 높이 앉아 주사청루(酒肆靑樓)지날 적에 노류장화(路柳墻花)의 창녀들이 옥안(玉顔)을 보려하고 동정호 누른 귤을 다투어 던지면서 불러대는 형상이 그려 있고, 아로새긴 기둥에는 입춘 글씨를 붙였으되 원앙 지상에 쌍쌍비요 봉황루하에 쌍쌍도며 화동에 조비남포운이요, 주렴은 모권서산우(暮捲西山雨)라. 백년 3만 6천 일에 일일수경 3백배(하루에 모름지기 3백 잔을 기울임)라. 청천일장지(靑天一場紙)가 사아복중지(似莪腹中紙)라. 이런 풍류 글귀가 전자팔분(篆字八分)이며 해자(楷字)로써 당호를 붙였으되 만수재, 채련당, 망월루, 장락헌, 양선각, 산수각, 만화당, 치족재 등등 현판이 씌어 있으니, 개개히 명필이요 용사비등(龍蛇飛騰 : 용이 움직이는 것같이 아주 활기 있는 필력을 가리킴)이라. 창전(窓前) 푸른 취병(翠屛)은 사시로 봄빛을 띄어 있고 단하(段下)의 삼층화계(三層花階)는 기화요초를 분분히 심었으니 화향(花香)이 촉비(觸鼻)하고, 창가 아래로는 난초 황국이며 석죽화 원추리를 줄줄이 심었으며 뒤에는 천봉만학과 층암절벽이 봉봉이 산을 지어 주산을 이루었고, 좌편에는 창창한 푸른 송백(松柏)이 사시장춘을 이루었고 우편에는 마디마디 푸른 녹죽 백세청풍으로 절개를 자랑하고 앞으로는 옥 같은 내와 맑은 시내에 흐르는 물결이 잔잔하여 은린옥척(銀鱗玉尺 : 크고 좋은 물고기)이 물을 따라 왕래하고, 때는 마침 삼춘가절이라, 백화는 만발하여 분분히 날아 동중(洞中)에 나부끼며 백운 같은 차일(遮日)과 빛나는 포진(鋪陳)은 청천을 가리어 운소에 솟았는데, 만수재 넓은 집에 서대쥐 대연을 배설하고 늙은 쥐로 더불어 동락할새, 머리에 화향청사건(花香靑紗巾)을 쓰고 몸에 운무학모(雲霧鶴毛)의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촉오화대를 띠고 발에는 무릉백화를 신었으며, 치아에는 황금빛이 비치고 손에는 오색의 비렴선(飛廉扇)을 들었으니, 몸은 비록 작으나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 찬란한지라. 서대쥐 주석에 좌정한 후에 문방사우를 좌우에 벌여놓고 어른 쥐를 대접하고, 산수각 넓은 집은 장자쥐 대연을 배설하여 종친을 대객하고, 망월루에는 차자쥐 잔치를 배설하고 고구쥐를 대접하고, 장락헌에는 삼자쥐 잔치를 배설하여 빈객쥐를 대접하고 서대쥐 처 고산 서씨는 만화당에 배설하여 종친 고구 친척의 부인 쥐를 접대하니 갖가지 음식 풍족하다. 강남의 누른 귤과 송강의 노어회( 魚膾)와 서역의 청포도와 북경의 용안육 왕대추며 천태산 천일주와 한무제의 옥로주며 유령의 장취주에 옥진가효(玉軫佳肴)와 진수성찬으로 풍악을 즐겨 노는 환성이 여류하더라.
51
장자쥐 의관을 정제하고 앵무배에 장생주를 부어 들고 서대쥐 앞에 나아가 꿇어 양수로 받들어 올려 왈,
52
"옛날 주무왕은 곤륜산에 올라가서 서왕모로 더불어 반도연 잔치할제 서왕모께 드려 천세를 일컬었는데, 소자는 오늘 잔치에 한잔 장생주를 부친 좌하에 올리옵나니 건곤이 불로장재(不老長在)한데 번화강산이 금백년이라. 이 장생주 잡수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53
서대쥐 흔연히 웃고 잔을 받아 마시고 장자쥐 일어나 절하고 물러가더니, 차자쥐도 또한 노자의 불로주를 부어 들고 또 양수로 올려 왈,
54
"옛날 동방삭이는 한무제에게 교지화조(交趾花鳥)를 드렸거니와 소자는 오늘 한잔 불로주를 부친 슬하에 올리옵나니 천상사시(天上四時)는 춘작수(春作壽)요 인간오복은 수위선(壽爲先)이라, 부친은 이 불로주 한잔 마시사 연년익수(年年益壽)하심을 축수하나이다."
55
서대쥐 흔연히 웃고 잔을 받아 마시니 차지쥐 일어나서 절하고 나가서늘, 장자쥐 다시 풍악을 갖추어 기생쥐 20명으로 하여금 연석에 나가 가무하라 하니 기생 등이 공교로운 단장과 아리따운 빛으로 청군홍상(靑裙紅裳)을 나부끼며 섬섬옥수와 단순호치(丹脣皓齒)로 노래를 부르니 그 노래에 가로되,
56
'하늘이 서씨를 응함이여 자회에 열림이로다. 서씨 하늘을 좇음이여 으뜸으로 세상에 나도다. 낙구창(落口倉)의 곡식을 흩음이여 대당(大唐)이 창흥(昌興)하도다. 공을 나타냄이여 서씨 문호의 빛남이로다. 인간의 알지 못함이여 허욕으로 망신하고 사자(死者)는 불가부생이며 불여생전 일배주로다. 두어라 인간금수에 사생고락은 한가진가 하노라.'
57
노래를 폐하매 낭랑한 소리와 쟁쟁한 음률은 오히려 초창( 愴)한지라. 서대쥐 듣기를 다하매 슬픈 마음이 자연 동하여 눈물을 머금고 모든 빈객을 대하여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58
"내가 나이 천여 세에 조상 선음(先蔭 : 선조의 숨은 은덕)으로 기한을 알지 못하고 일신이 무병하여 신상에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슬하에 백자 천손이 좌우로 시립(侍立)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하며 출필고 반필면(出必告反必面 :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고하며 돌아와서는 반드시 어버이께 뵘)하매 조금이라도 불효를 끼치는 자손이 없어서 경세경년과 송구영신에 다만 영화 경사의 즐거움만 알았고 천추 만세에 괴로움을 모르더니, 차호(嗟乎)라 수삼 년 전으로부터 우연히 가변(家變)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둘째 증손쥐가 본디 총명이 과인하여 논어 효경 등 물을 것이 없고 성품이 인후단정하여 버릴 것이 없으나 주색에 빠져서 매양 염려하더니 수년 전 벗으로 더불어 밤에 놀러 났다가 박봉현 집 술독에 빠져 죽었고, 세째 현손쥐는 녹음을 구경코자 하여 동구밖에서 한유하다가 괴서방에게 물려 가고 넷째 고손쥐는 효심이 극하여 제 아비의 병으로 기름을 얻어 한약을 지으려고 산 너머 윤석사 집에 갔다가 덫에 치여 죽고 다섯째 외손녀쥐는 이팔청춘에 행실이 부정하므로 서방에 반하여 나간 지 두어 해로되 종시 소식을 알지 못하매 종야 근심하는 바이러니, 오늘을 당하여 죽은 자녀를 생각하니 기쁜 가운데 슬픔이 나고 슬픈 가운데 기쁨이 나는도다. 이는 일희일비요 반생반사라 어찌 가석(可惜)치 않으리요."
59
인하여 눈물이 나는지라. 모든 아들쥐들이 위로하여 취흥이 도도하더니 그 때 구궁산 봉우리 서동쪽에 한 짐승이 있으되 이름은 다람죄라. 본디 성품이 강약하고 위인 불인(爲人不仁)할 뿐 아니라 일에 게으르고 몸을 심히 아끼는지라. 고로 가세(家勢) 빈한하여 하루 두끼는 아예 않고 삼순구식(三旬九食 : 30일에 아홉끼밖에 못 먹는다는 뜻으로, 가계가 매우 어려움)이 어려웠다.
60
이 때 마침 서대쥐 집에 잔치 연다는 말을 듣고 갈건포의(葛巾布衣)에 짚신을 신고 문을 나오거늘 계집 다람쥐 물어 가로되,
61
"낭군은 어디로 가고자 하느뇨, 이제 굶은 지가 3일이라. 기력이 쇠진하여 겨우 행보를 옮겼다가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면 행여 수리에게 해를 볼까 염려 무궁하리니 낭군은 멀리 가지 말으소서."
63
"내 본시 서대쥐와 일면(一面) 교분이 있더니 들으니 이번에 당상한 후 오늘 잔치를 배설하여 빈객을 대접한다 하는고로 한번 찾아가서 주식을 얻어다가 우리부부 한때 기갈(飢渴)을 면할까 하노라."
65
"불가하오. 비록 일면교분(一面交分)이 있으나 불청객이 자래로 청치 않는 자리에 감이라 봉비천인(鳳飛千 )에 기불탁속(飢不啄粟 : 봉이 천 길을 날매 주려도 좁쌀은 먹지 아니한다)은 장부의 염치요 사불관면은 군자의 예절이라 하였나니 어찌 기갈로써 염치를 불고하리요."
67
"그대의 말이 비록 옳으나, 옛날 한광무는 무루청의 두죽(豆粥)을 구하며 호타하의 맥반(麥飯)을 취하였으되 필경은 만승천자(萬乘天子)를 이뤘거늘, 나 같은 필부야 어찌 소소 염치를 구애하리요."
68
하고 인하여 소매를 떨치고 바로 구궁산 팔괘동을 찾아가니, 분분한 풍악과 요요한 가성이 구름 밖에 들리고, 번화진찬(繁華珍饌) 미주가효(美酒佳肴)는 분분 왕래하는지라. 다람쥐 바로 연석으로 나아가니 모든 빈객이 서로 보고 면면상고(面面相顧 : 서로 말없이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봄)하며 말이 없거늘 바로 만수재를 향하여 청상으로 올라가 서대쥐를 보고 예하여 가로되,
69
"소생 다람쥐는 오래 엎디어 영감 대인의 명성을 듣사오나 고루한 일신이 문을 닫고 목을 움쳐 출두키 어려운고로 한 번도 배알치 못하였더니 요사이 듣자오니 영감이 천은을 입어 가자를 받으셨다 하오매 경조상문(慶弔相問)은 예불가폐(禮佛可廢)라 당돌히 연석에 나와 감히 하례를 드리나이다."
70
서대쥐 몸을 일으켜 답례한 후 별설일담하여 다람쥐를 맞아 좌정하매, 다람쥐를 자세히 살펴보니 형용이 초췌하고 의표가 남루하여 빈곤이 용모에 나타나거늘 마음이 측은하여 가로되,
71
"나는 연로다병(年老多病)하여 몸은 비록 살았으나 세상을 두문불출한지 오랜지라 매양 그대를 한번 찾고자 한 마음은 그윽하나 지척이 천리요 등하불명이라. 상거(相距)는 비록 멀지 않으나 구름이 사이를 격하매 뜻과 같지 못하더니 뜻밖에 오늘날 이같이 누지(陋地)에 왕굴(枉屈)하여 나 같은 폐인을 찾으니 이는 나의 바람에 지나고 우리 문호에 광채배승(光彩倍勝)하도다."
72
말을 마치매 장자쥐에 명하여 주병(酒甁)을 갖추어 지극히 관대하더니, 이윽고 일락함지(日樂咸池)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하매 좌객이 다 흩어져 각기 귀가 할새 제객이 대취하여 원근을 헤아려 서로 붙들며 이끌어 완보서행(緩步徐行)으로 주홍을 띄어 혹 소동파의 적벽부도 외우며 월공을 대하여 풍월도 읊으며 돌아가니 팔괘동중이 잔치 이튿날이라 수수 적막하더라.
73
서대쥐 장자쥐와 노복쥐로 하여금 포진 차일과 허다기명을 일일이 수습하여 조사하라 분부하고 정당(正堂)에 올라 동자쥐로 하여금 방중에 일쌍 등촉을 밝히고 자리에 나아가 안석(案席)에 몸을 의지하여 앉거늘, 이 때 흩어지고 당중이 조용한 틈을 타서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슬피 고하여 왈,
74
"소생이 오늘날 미주성찬으로 선대지덕을 입사오니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오나 오히려 미진한 소회가 있삽기로 감히 황공한 말로써 고하옵나니 칠랍하시리이까."
76
"그대의 소회(所懷)를 아지는 못하거니와 모름지기 은휘치 말고 실정을 말하라."
78
"소생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혈혈적신(孑孑赤身)이 토혈에 의지하여 귀로는 공맹을 들음이 없고 손에는 문필을 배움이 없어, 낮이면 고봉준령의 솔씨를 주으며 층암절벽의 개암을 거두고 근동원촌(近洞遠村)의 모맥( 麥)을 구하여 산전야답의 서속(黍粟)을 취하여 평생 잔명을 근근자생(僅僅資生)하옵더니, 이 같은 겸년(謙年 : 흉년)을 당하와 주우며 거둠이 없사온즉 양탁(糧 )은 비고 약한 자식과 파리한 계집은 기한을 견디지 못하오니 목석간장(木石肝腸)이라도 목불인견이라. 좌사우상에 생계 무료하와 구구한 사정을 고하옵나니 빌건대 대인영감은 자비심을 드리우사 백자(柏子), 황률(黃栗) 수삼두를 쾌히 허락하여 대급하시면 이는 한 되 물로 확철( 轍 : 막다른 괴로운 경지. 곤궁한 경우의 비유.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고인 물에 있는 붕어)의 마른 고기를 살리며 병의 밥을 내어 여상의 주림을 먹이심이니, 혼천재은을 살아서는 마땅히 머리를 숙여 갚고 죽어서는 마땅히 풀을 맺아 갚으리니 애지연지하시고 긍지휼지(矜之恤之)하심을 바라나이다."
79
서대쥐 듣기를 마침에 심히 애련하여 가로되,
80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비감한지라. 고진감래와 흥진비래는 자고상사라. 하늘에도 불측풍운(不測風雲)의 조화있고 만물에도 조석 길흉화복이 있나니, 옛날의 한신은 바지 아래 욕을 받고 표모(漂母)의 밥을 빌었으되 마침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되었고, 소진은 자간 지 수월에 집에 돌아옴에 아내는 베틀에 내리지 아니하고, 아지미는 부엌에 불사르지 아니하되 마침내 육국정승(六國政丞)이 되었는지라. 그대 비록 아직 곤궁하나 자고로 영웅군자 한번 군궁은 면하기 어려운고로, 고인이 일렀으되 함지사지(陷地死地) 이후에 생하고 치지망지(置之亡地)이후에 존(存)이라 죽을 땅을 당하면 살 곳이 열린다. 하였으니, 그대는 빈곤(貧困)을 혐의치 말고 하늘을 순히 하여 돌아오는 때를 기다리라."
81
인하여 세간 청지기 쥐를 불러 생률(生栗)1석과 백자(柏子) 5두를 주라 하여 노복쥐로 하여금 달석사택으로 보내되 잔치 여물(餘物)을 큰 표자(瓢子)에 담아 부송하라 하고 다람쥐더러 일러 왈,
82
"생률 백자는 비록 약소하나 이는 한 잔 물로 아방궁(크고 화려한 집의 비유로 쓰임)의 불을 구함이요 한 그릇 밥으로 맹상군의 3천 객을 먹임이라. 모름지기 갚음을 생각지 말고 한때 조석 보태라."
84
"대인의 활명지택(活命之澤)으로 박한 목숨을 고렴(顧念)하사 천한 목숨을 구하시니 이른바 물 없는 고기를 잡아 대해에 넣음이라 어찌 감격지 않으리요."
85
인하여 하직을 고하고 양식을 거느려 집으로 돌아오니, 계집 다람쥐 밤이 깊도록 소식이 없으매 마음에 우민하여 문을 의지하고 바라더니 달이 서산에 기울고 닭이 새벽을 보하매 멀리 바라보니 다람쥐 양식을 가지고 오거늘 크게 기뻐하며 맞아 양식을 거두어 들이고 노복쥐를 돌려보낸 후에 표박의 옥미 성찬을 이끌어 한가지로 방중에 들어와서 처자로 더불어 나누어 먹을새, 다람쥐 계집 다람쥐더러 서대쥐의 잔치 장려함과 서대쥐의 후은(厚恩)을 칭송하며 얻어온 바 양식으로 기탄없이 삼촌을 지내게 되었는지라. 이러구러 일원은 여류하고 광음은 훌훌하여 봄 여름 다 지내고 가을에 거둔 양식이 2,3두에 지나지 못하매 초겨울에 이미 다 먹어 버리고 엄동이 또다시 돌아오니 종세(終歲)는 불과 일순에 신정은 십여 일이 남은지라. 다람쥐의 대소가는 모두 한 끼의 죽이 어렵고 부엌에는 한 줌의 나무가 없었는지라. 손을 비비며 위태히 앉았다가 계집 다람쥐더러 일러 가로되,
86
"내 본시 백면서생(세상의 물정에 어두운 선비)으로 몸이 선비되어 위로 조상의 기업이 없고 아래로 친척의 생업이 없이 섬섬약질이 동취서대(東取西貸 : 여기저기 여러 곳에서 빚짐)하여 구구한 잔명을 보존하나 마음은 항상 안빈낙도를 일삼더니 정초는 불원하고 제석이 격알한데 조상신령이 한 그릇 병탕(餠湯)을 흠향(歆饗)할 길 없는지라. 자탄 내하(柰何)오."
88
"낭군의 말을 들으니 사세고연(事勢固然 : 일의 형세가 그러함이 당연함)이나 대장부 세상에 나매 예의 염치를 알지 못하면 이는 무용필부라. 낭군이 또 팔괘동을 치의(致意)하나 당초에도 염치를 불구함이 장부의 도리 아니어늘 다시 가서 두 번 말함은 차마 남자 소위 아니라. 사생이 명이 있거늘 어찌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여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요. 내 비록 여자나 낭군을 위하여 차마 권하리니 낭군은 만 번 생각하소서."
90
"내 어찌 염치를 모르리요마는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 : 궁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우면 예의 염치를 가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라. 염치를 돌아볼진대 처자를 보전치 못할지라. 이러므로 나아가 동정을 보고자 함이요 사세를 보아 주선하리니 그대는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91
말을 마치고 의관을 수리하고 바로 팔괘동으로 나가 다람쥐 왔음을 통하니, 이윽고 청하거늘 다람쥐 청상에 올라 서대쥐를 향하여 예하매 서대쥐 일어서서 답례한 후, 서로 좌정한 후 서대쥐 말을 내어 가로되,
92
"지난번 연석에 창황히 만나 피차 별회를 다 못 펴고 숙숙히 이별한 후 지금껏 경경하더니 오늘 다시 만나매 심히 다정한지라. 그 사이 연하여 무양(無恙)하던가."
94
"소생이 향자 영감의 구활지은(救活之恩)을 입사와 소생의 수다 잔약한 명이 춘하육삭(春夏六朔)을 무고히 지낸지라. 생아자는 부모요 재생자는 대인이오니 쇼생의 부처 매양 서로 대하여 화산의 풀을 맺으며 수호(水湖)의 구슬을 머금어 대인의 은혜 갚기를 원하는 바일러니, 자연 생계로 말미암아 장구지계(長久之計)는 없고 고식지계(姑息之計 : 임시 변통의 계획) 뿐이라 초추(初秋)에 약간 거둔 양미 2,3두를 초동에 없이하고 산간에 흐르는 열매나 거두고자 하나 백설이 만건곤하여 천산에 조비절(鳥飛絶)하고 만경(萬頃)에 인적멸(人跡滅)이라. 처처에 쌓인 눈에 발섭(跋涉)하기 어려운 중 이 같은 종세(終歲)를 당하여 전가는 술 빚고 후가는 떡을 쳐서 송구연신에 조상 신령을 향화코자 함이어늘 지어소생(至於小生)하와는 집이 가난하고 몸이 잔약하여 정초 제석에 선조 향화를 받들 길이 없는지라. 옆드려 바라나니 기왕에 구활(救活)하신 바는 명심불망하거니와 다시 대덕(大德)을 내리오사 박주일배(薄酒一盃)라도 차례를 받들어 불효를 면케 하올진대 분골쇄신하더라도 소생이 사생간 보은하오리니 원컨대 대인은 재삼 생각하심을 바라나이다."
96
"그대는 내 말을 들으라. 본디 우리 서씨 누천세에 당내지친(黨內至親 : 팔촌 이내의 친척, 가장 가까운 일가)과 원근제족이 경향 각처에 분산 유락하여 부요자도 있으며 빈곤자도 있으매 구년 신정과 경조상문(慶弔相問)이며 궁교빈족(窮交貧族 : 빈곤한 벗과 친척)에 소요되는 재산이 매년 매월에 만여금이 지나고 가중소솔(家中小率)과 상하 노복이며 조상 신령의 사시 향화를 의논할진대 용도를 불가형언이라. 이러하므로 그대의 구청하는 바를 청종치 못하니 불여불문이요, 불여불청이라. 모름지기 나의 부족이라 혐의치 말고 일후 다시 상종함을 헤아리라."
97
다람쥐는 본디 성품이 표독하고 마음이 불순한지라, 서대쥐의 허락지 않음을 보고 독한 안모(顔貌)에 노기를 돌돌하여 몸을 떨치고 일어나 가로되,
98
"분재(忿哉)며 통재(痛哉)라. 빈자소인(貧者小人)이 빈무성명(貧無姓名)이라더니 나를 두고 이름이라. 집이 가난하면 군자도 욕을 받고 몸이 곤궁하면 남의 천대를 받으며, 귀하여야 집안 개도 보고 공경한다. 그러나 두고 보시오. 부귀도 매양이 아니리라. 오호라, 한나라 양기는 일문 내에 제후가 7인이요 황후는 3인이요 삼공육경(三公六卿)은 57인으로 부귀 영총(榮寵)이 여차하되 일조일석에 처자 형제와 노비 계견이 일제히 사망하였나니 부귀는 끈이 있어 매양 차고 있는 것 아니요 빈천은 씨가 있어 매양 빈천만 낳을 바 아니며, 옛날 북해상에 19년 고생하던 소무도 돌아올 때 있었으니, 내 비록 빈천하나 귀불귀(歸不歸)를 어찌 의논하리요, 가히 분하고 가히 통석하도다."
99
인하여 노발대발하여 가거늘 서대쥐 도리어 웃고 가로되,
100
"옛말이 옳도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요 은반위수(恩反爲 )라 함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로다. 그러나 영피부아(寧彼附莪)이언정 아불부피(莪不附彼)하리니 후일 다시 그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102
이때 다람쥐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집에 돌아오니 계집 다람쥐 나와 맞아 가로되,
103
"낭군이 이번 갔다가 노기를 띠어 돌아오니 알지 못할세라. 노중에서 호협 방탕자를 만나 혹 봉변이라도 당하셨나이까."
105
"그런 일은 없으나 그대 말을 듣지 않고 다만 신정지초(新正之初)에 절화(絶火)를 면할까 하고 가서 서대쥐 보고 슬픈 소리와 애련한 말로 생각하기를 바라노라 한즉 서대쥐 답이 궁가 빈족을 구제하기에 염불급타(閻不及他)라 하고 빈 말로 불안한 말만 하는 줄 언어 불순하고 여간 재물이 있어 집이 부요하다 자시하고 대접이 경박하니, 설사 본디 저축함이 없을진대 용혹무괴(容或無怪 : 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할 것이 없음)로되 세전의 기물이 많을 뿐 아니라 요사이 천자께서 사패하신 율목이 4만여 주라 나를 생각하여 활협(闊狹 : 남을 도와 주려는 마음, 일을 주선하는 능력)한대도 수백 석 줄 것 아니요, 많으면 1,2석이요 적으면 1,2두 줄 것이어늘 내가 이 같이 무료히 돌아옴을 괘념치 아니하니 어찌 통분치 않으리요, 생불여사(生不如死)요 욕사무지(欲死無地)라. 내 마땅히 산군(山君)에게 송사하여 이놈을 잡아다가 재물을 허비토록 엄중한 형벌로써 몸을 괴롭게 하여 나의 분을 풀리라."
106
계집 다람쥐 이 말을 듣고 크게 꾸짖어 가로되,
107
"낭군의 말이 그르도다. 천하 만물이 세상에 나매 신의로써 으뜸을 삼나니, 서대쥐는 본래 우리로 더불어 항렬이 남과 다름이 없고 하물며 내외를 상통함도 없으되 다만 일면 교분을 생각하고 다소간 양미를 쾌히 허급하여 청하는 바를 좇았으니, 서대쥐가 낭군 대접함이 옛날 주공이 일반의 삼토포하고 일목의 삼아발에 지나거늘, 한번도 치하함이 없다가 무슨 면목으로 또 구활함을 청하매 허락지 아니하였다고 오히려 노함이 무신의한 일이어늘, 항차 포악한 마음을 발하여 은혜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오히려 관청에 송사를 이르고자 하니, 이는 이른바 적반하장이요, 은반위수(恩反爲 :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들고, 은혜가 도리어 원수가 된다)라. 낭군이 만일 송사코저 할진대 서대쥐의 벌장(罰將)을 무엇으로 말하고자 하느뇨, 지지(知之)면 불태(不怠)라 하니, 원컨대 낭군은 고서를 박람함이 있을진대 소학을 익히 알리라. 다시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갚기를 힘쓰고 험언의 마음을 버릴지라. 서대쥐는 본디 관후장자(寬厚長者)라 반드시 후일에 낭군을 위하여 사례를 할 날이 있으리니 비록 천한 여자의 말이나 깊이 찰납하여 후회막급지 않도록 하옵소서."
109
"이 같은 천한 계집이 호위인사(虎威人士)로 나를 가르치고자 하느냐. 계집이 마땅히 장부의 견욕함을 분히 여김이 옳거늘 오히려 서대쥐를 관후장자라 일컫고 날더러 포악하다 꾸짖으니 이내 형세 곤궁함을 보고 배반할 마음을 두어 서대쥐를 얻고자 함이라. 자고로 부창부수는 남녀의 정이요 여필종부는 부부의 의이어늘 부귀를 따라 이심(異心)을 둘진대, 빨리 가고 지완(遲緩)치 말라."
110
계집 다람쥐 발연 대로하여 눈을 부릅뜨고 귀를 발록이고 꾸짖어 가로되,
111
"그대로 더불어 이성지친(二姓之親)을 맺어 유자생녀(有子生女)하여 남취여가(男娶女嫁)하여 고초를 감심하고 그대를 좇는 바는 부귀를 부운(浮雲)같이 알고 빈천을 낙으로 알아 상강(湘江)의 이비(二妃)를 효측하고 여상(呂尙)이 마씨를 꾸짖는 바이어늘, 더러운 말로써 나를 타욕하니 이는 일시 조석을 아껴 처자를 내치고자 함이라. 고인이 일렀으되 조강지처는 불하당(不下堂)이요 빈천지교는 불가망(不可忘 : 구차하고 천할 떄 고생을 같이한 아내는 내칠수 없으며, 가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다)이라 하였나니, 오늘날 빈천의 고락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이같이 수욕하니, 두 귀를 씻고자 하나 영천수가 멀어 한이로다. 오늘 수양산을 찾아가서 백이 숙제 채미(採薇)타가 굶어 죽은 일을 좇으리니 그대는 홀로 자위하라."
112
말을 마치며 행장을 수습하여 훌쩍 문 밖으로 나가더니 자취가 보이지 않는지라. 다람쥐 더욱 분노하여 가로되,
113
"소장지변(蘇張之辯)은 유아이사(由莪而死)라. 도시 서대쥐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라 내 당당히 서대쥐를 설욕하고 말리라."
114
인하여 일장 소지(訴紙)를 지어 가지고 바로 곤륜산 동중에 이르러 백호궁의 형방(刑房)을 찾아 들어가서 다람쥐 원정(原情) 올림을 고하니 이때 백호산군이 태산오악을 순행하다가 곤륜산으로 돌아와 각처 짐승의 선악을 문죄코자 하더니 홀연 형부 아전이 들어와 고하되,
115
"하도산 낙서동 등지에 거하는 다람쥐 원정차로 궁문 밖에 대후하였나이다."
116
하거늘 백호산군이 형부관에 명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이라 하는지라. 다람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형졸을 따라 백호궁 전정(前庭)에 이르르니 전후좌우에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을 나직이하여 복지대령(伏地待令)하였더니, 이윽고 전상(殿上)에서 형부 관헌이 나와 소지를 빨리 올리라 하니, 다람쥐 품속에서 일장 소지를 내어 받들어 올리는데 백호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본즉 사연에 가로되,
117
"하도산 낙서동에 거하는 다람쥐는 다음의 사단(事端)을 고하나이다.
118
신은 본디 낙서동에서 나서 자라 천성이 어리석고 마음이 졸직(拙直)하온바 항상 굴문을 나오는 바 없고, 밖으로는 강 건너 친척 없으며 오척에 동자 없고 척신이 고고하여 다만 미천한 계집과 약한 자식으로 더불어 낮이면 초산에서 나무를 베며 산야에서 밭을 갈고, 밤이면 탁군에 자리를 치며 패택에 신을 삼고, 춘하에 사엽하며 추동에 독서하여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만수 천산 깊은 곳에 꽃을 보면 봄철을 짐작하고 잎을 보면 여름을 깨닫고 낙엽으로 추절을 양도하며 상설로 동절을 알아, 문호에 명철보신(明哲保身)으로 일삼고 청운에 공명을 기약지 아니하여 부귀를 뜻하지 아니하고 천수만목(千樹萬木)의 열매를 거두어 양식을 삼고 일일재산을 계산하옵더니, 천만 의외로 지난 달 망야에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쥐 놈이 노복쥐 수십 명을 데리고 모야 삼경에 신의 집에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돌입하와 천봉만학에 흐르는 생률과 고봉준령에 떨어진 백자를 천신만고하여 주우며 거두어, 풍한설절(風寒雪節)에 깊은 엄동을 보전코자 저축하온 양미 수십여 석을 탈취하여 가며 오히려 신을 무수 난타하온즉, 신의 슬픈 정세는 땅 없는 의로요, 망양이라. 호천함지(昊天咸池)에 호소할 곳 없는고로 극통하와 한 조각 원정을 지어 가지고 엎디어 백호산군 명정지하(明政之下)에 올리옵나니 신의 참상을 살피신 후에 장처를 발하사 이 같은 서대쥐 놈을 성화착래(星火捉來)하여 엄형중치(嚴刑重治)하와 잔약한 신의 약탈된 양미를 찾아 주옵소서, 혈혈무의(孑孑無依)하온 잔명이 함한원사(含恨怨死)하옴이 없게 하옵심을 천만 빌어 산군주 처분만 바라나이다. 무진 정월일 소지라."
119
하였거늘 백호산군이 남필의 제사(題辭)를 불러 왈,
120
"대개 만물의 경중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곡직을 알진대 양언을 들음만 같음이 없나니 일편의 말만 듣고 선, 불선을 가벼이 판결치 못할지라. 소진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요, 소장(訴狀) 양인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야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 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쥐를 즉각 착래(捉來)하여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백변하리라."
121
한번 제사하매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쥐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청령하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122
"내 들으니 서대쥐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이러니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설분하고 또 소송당한 놈이 피차 예물 바치는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백 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
123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발호하고 예기(銳氣)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여성대호( 聲大呼)하여 가로되,
124
"서대쥐 정소(呈訴)를 만나매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 : 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공식으로 주는 글발)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쥐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125
독촉이 성화 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비월하여 급급히 들어가서 서대쥐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쥐 호흡이 천축하고 한출첨배(汗出沾背 : 부끄럽거나 무서워서 땀이 배어 등을 적심)하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굴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황황망조(遑遑罔措 : 마음이 급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함)하거늘 서대쥐 왈,
126
"너희들은 노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匕首)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요."
127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쥐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쥐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128
"오별감은 그 사이 무양하셨느뇨, 나는 층암절벽 한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절승처에 산군을 시위하여 유현의 길이 다른지라. 마음은 항상 그윽하나 승안접사(承顔接詞 : 웃어른을 만나뵙는 일)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지에 왕굴하여 의외 청안(淸顔)을 대하니 패자예차(牌子預差)는 서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요."
129
오소리는 본디 마음이 양정한지라 서대쥐의 대접이 심히 관후함을 보고 처음에 발발하던 마음이 춘산에 눈 녹듯이 스러지는지라. 서대쥐더러 왈,
130
"우리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서대쥐와 다람쥐로 더불어 재판코자 하여 성화 착래하라 분부 지엄하니 빨리 행함이 옳거늘 어찌 조금이나 지체하리요."
132
"오별감 말씀이 옳은지라. 어찌 두 번 청함이 있으리요마는 성인도 권도(權導)함이 있나니 원컨대 오별감은 두 번 살피라."
133
모든 쥐들이 일시에 간청하며 서대쥐는 오소리의 손을 잡고 장자쥐는 너구리를 붙들고 들어가기를 청하니, 너구리는 본래 음흉한 짐승이라 심중에 생각하되,
134
'만일 들어가는 경우에는 죄인 다루는 데 거북할 테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기왕 뇌물을 받으려면 톡톡히 실속을 차려야 한다.'
136
"관령은 지엄하고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어느 때에 술 마시고 완유(玩遊)하리요, 관령이 엄한 줄 알지 못하고 다만 일배 박주에 팔려 형장이 이 몸에 돌아오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가. 나는 굴 밖에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137
하고 말을 마치며 나와 수풀 사이에 잦혀앉아 종시 들어가지 앉는지라. 서대쥐 이 말을 듣고 오소리 더러 너구리를 청하라 권하매, 오소리 나아가 너구리를 이끌어 가로되,
138
"서대쥐 이처럼 간청하거늘 어찌 차마 거절하리요. 잠깐 들어가 동정을 봄이 좋도다."
140
"그러면 전례(典禮)는 어찌한다 하느뇨."
141
오소리가 너구리 귀에 대고 대강 이르니, 너구리 그제야 오소리와 더불어 가니 주란 화각(朱欄畵閣)이 굉장한지라. 전상에 올라 서대쥐와 더불어 좌정 후에 다람쥐 기송(起送)한 일을 수어 수작하더니 거무하(居無何 : 있은 지 얼마 안 되어서)에 안으로서 주찬이 나오는지라. 잔을 잡아 서로 권할새 수십 배를 지난 후에, 장자쥐 화각(畵角) 모반에 황금 20냥을 담아 서대쥐 앞에 드리니, 서대쥐 황금을 가져 오소리 앞으로 밀어놓으며 가로되,
142
"이것이 대접하는 예는 아니나 서로 정을 표할 것이 없으매 마음에 심히 무정한고로 소소지물로써 구정을 표하나니 양위(兩位) 별감은 겸의치 말고 나의 적은 정성을 거두소서."
144
"서대쥐의 관대함이 감사하던 중 이같이 후의를 끼치시니 받는 것이 온당치 못하오나 감히 물리치지 못할지라. 그러나 서대쥐는 조금도 염려치 말고 다람쥐와 결송케 하면 내일 재판할 때에 우리 둘이 집장(執杖)할 터이오니 어찌 다람쥐를 중좌하여 서대쥐의 분을 설치치 못하리요."
145
하고 인하여 서대쥐와 더불어 떠날새, 장자쥐와 노복쥐로 하여금 왕래 잡비와 소용지물을 구비하여 가지고 바로 백호궁 앞에 이르러는 서대쥐를 문에 세우고 오소리 들어가더니, 이윽고 안으로서 호령 소리 나며 하리(下吏) 분분히 나와서 서대쥐를 이끌어 들어갈새 서대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고 안연히 전상 앞으로 들어가며 잠깐 눈을 들어 보니 백호산군이 몸에는 돈점 황전포(黃纏袍)를 입고 금색 양안(兩眼)을 높이 떴으니 위풍이 늠름하고 기상이 위엄한지라. 좌우를 둘러보니 녹판관, 저판관 이며 장주부, 웅주부, 백호산군을 옹위하여 청상좌우에 가득하고 여우, 토끼와 너구리, 오소리는 계하에 열립하고 위엄이 상중을 진압하는지라. 서대쥐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이 가까이 나아가 길이 읍하고 섰거늘 백호산군이 소리를 크게 질러 왈,
146
"네 어찌 이같이 무식 무례한고. 글에 일렀으되 수중 청룡은 만어왕이요 산상백호(山上白虎)는 백수장이라 하였으니 나는 백짐승의 장수이거늘 네가 내 면전에 이르러 길이 읍하고 절을 아니함은 어찌 됨이뇨."
147
서대쥐 안색을 불변하고 눈을 깜짝이며 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하여 왈,
148
"산군의 이르시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온지라. 대개 산군은 천산만악과 태산오악을 순사하사 짐승의 선악을 살피시는 직임(職任)이요, 신은 벽재하우(僻在下愚)하고 양지편소(良知偏小)하여 거친 뫼와 깊은 골에 웅거(雄據)하여 다만 산군 절제를 받을 따름이로되, 만리강산과 사해팔황(四海八荒)안에 허다한 만물은 당천자의 신민 아닌 것이 없나이다. 이제 신의 몸위에는 당천자께서 내리신 교지가 머물렀는고로 길이 읍만 하고 절하지 아니함은 실로 당천자께 욕되지 않도록 함이요 산군의 위엄을 범함이 아니오니, 원컨대 산군은 살피소서."
150
"진실로 선재라. 이는 충의의 말이라. 그러나 들으니 요사이 다람쥐와 더불어 무슨 결원이 있어 남의 과동(過冬) 양식을 도적하였다니 무슨 연고인고."
151
하고 인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여 서대쥐와 대송할새 다람쥐의 소지를 내어 서대쥐에게 읽혀 들이며 분부 왈,
152
"서대쥐는 들으라. 다람쥐의 소지(訴旨) 원정(原情)이 이와 같으니 사실이 과연 이러한고, 조금도 은휘(隱諱)치 말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
153
서대쥐 말을 듣고 전상을 우러러 소리를 높이며 왈,
154
"산군 조령지하에 어색하온 말로 감히 품달키 어려운지라. 바라건대 잠깐 머무르시면 한 장 소지를 베풀어 하정을 고달하리이다."
155
산군이 이에 허락하니 서대쥐 지필을 취하여 수유간에 일장 소지를 지어 올리거늘 산군이 그 소지를 받아 보니 사로되,
156
"구궁산 팔괘동에 거하는 서대쥐는 아뢰나이다. 무릇 소지의 사단은 신이 엎대어 들으니, 자고로 만물의 쟁소(爭訴)하는 바는 나라의 도 없으면 임금의 덕이 없는 사유라. 고로 걸주는 행악하여 백성이 도탄에 들고 만민이 함원(含怨)하매, 양민이 변하여 도적을 이루고 생송이 그치지 아니하여 형벌하는 자 길에 짝하고 주검이 저자에 쌓이니, 이는 나라에 도 없고 임금의 도 없음이오 무왕은 대의를 행하사 조민벌죄(朝民罰罪)하여 어짐을 행하며 덕을 끼치시니 은혜가 초목에 미치고 만방에 떨치기 때문에 산무도적하고 도불습유(道不拾遺 : 나라가 태평하고 풍속이 아름다워 백성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아니함)하며 도적이 화하여 양민이 되고 남녀는 길을 사양하며, 농부는 이랑을 사양하고, 백성은 송사를 알지 못하며 획지위옥(劃地爲獄)이라고 기불입하고, 각목위리(刻木爲籬)라도 기어코 상대치 아니하여 죄를 범함이 없고 송사를 알지 못하여 옥이 40여 년이 비었으니,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진대 만물이 다투어 송사함은 위에서의 덕지유무(德之有無)에 있는지라. 지금은 당천자 새로 즉위하사 대사천하 하시매 백성이 쟁송(爭訟)을 알지 못하고 왕화가 사해에 미쳤거늘, 산군은 백 짐승의 장수(長首) 되시고 천집 말의 왕이 되사 인의를 짐승에게 베푸시며 덕을 짐승에게 끼치시며 태산오악의 천만 짐승이 산군의 교화를 힘입었으면 어찌 짐승 사이에 도적과 쟁송이 있으리요마는 엎디어 생각건대 산군의 용맹은 천산만학에 순행하사 백 짐승의 으뜸이로되 위엄은 천리 밖에 나지 못하고 덕은 백리 밖에 베풀지 못하사, 수하(手下)의 작은 짐승이 산군의 교화를 입지 못하고 항상 사이에 서로 소송을 일으키며 쟁송지경에 이르니 슬프기 그지없소이다. 이번 송사도 신과 다람쥐 사이에 무도함이 아니라 책재원수(責在元帥 : 책임이 가장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있음을 일컫는 말)라. 산군의 교화가 이르지 못함이요 덕이 무왕을 효측치 못함이라.
157
신은 구궁산에 거한 지 수년에 조상의 전하온 재물이 수천 금에 지나고 겸하여 요사이 당천자 사급하옵신 율목이 4만 주에 지나오니 항상 마음에 과복함을 염려하는 바요, 상하 권솔이 매양 무슨 볼일이 있어도 출필고(出必告) 반필면하옵거늘 노복 종이라도 하일에 무엇이 부복하여 타인의 양미를 엿보아 도적을 하오리까. 다람쥐는 수십 세를 내려오며 빈한(貧寒)한 것은 천산만학이 중소공지(衆所共知 : 뭇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일)요, 성품이 본래 장구지계하는 원려(遠慮)가 없고 다만 고식지계하로 어제 거두어 오늘 살고 금일 취하여 내일 지내오며, 또한 가중이 본디 적막하여 훼장삼척(喙長三尺 : 허물이 드러나서 숨기어 감출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에 사벽이 무애어늘 무엇이 넉넉하여 도적맞을 수십 양미를 어느 겨를에 저축하오리까. 다람쥐가 거년에 애연한 사장을 신더러 말하옵기에 생률백자 1, 2석을 주어 구활하온 후 금년 신정에 다시 나와 두 번 와 사정하오나 마침 신의 집에 용도가 많아서 그 청을 들어 주지 못하였더니 그로 활원하와 보은함은 생각지 않고 이 같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니 어찌 억울치 않사오리까. 증공의 글에 일렀으되 도적이 증거를 밝혀야 도적에게도 도리어 복을 주게 된다고 하였으며, 옛날 한태조는 진나라를 멸하고 함양에 들어가 포로와 더불어 삼장법(三章法)을 언약할제 살인자는 사하고 상인자(傷人者)와 도적은 죄로 다스리기로 국법을 밝혔사오니, 원컨대 산군은 진상을 명찰하신 후에 만일 신이 도적에 나타나는 형상이 분명하올진대 쾌히 신을 명정기죄(明正基罪 : 명백하게 그 죄명을 집어냄)하와 일후 다른 짐승으로 하여금 징계하시고, 산군도 덕화를 멀리 베푸지 못하사 교화 널리 흐르지 못하므로 이런 송사가 생기는 것이오면 스스로 탄식을 하옵시고 신 등의 쟁송함을 그르다 마옵소서"
158
백호산군이 서대쥐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159
"예로부터 일렀으되 재하자(在下者)는 유구무언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당만사라.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나라 임좌는 그 임금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한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무덕함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와 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요, 어불성설이니 다람쥐는 엄형정배(嚴刑定配)하고 서대쥐는 즉시 방송(放送)하라."
160
제사 이미 내리니 서대쥐 일어나 다시 꿇어 가로되,
161
"산군의 밝으신 정사를 입어 방송하심을 입사오니 황감무지하온지라 다시 무엇을 고달하리요마는 신의 미천한 하정을 감히 산군께 앙달하옵나니, 다람쥐의 죄상을 의논하올진대 간교하온 말로써 생심코 기군망상(欺君罔上 : 임금을 속임)하온 일은 만사무석(萬死無惜)이요 죽어도 죄가 남겠으니, 헤아리건대 다람쥐는 일개 작은 짐승으로 기갈이 몸에 이르고 빈곤이 처자에 미치매, 살고자 하오나 살기를 구하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또한 구하지 어려우매 진퇴유곡하던 항우(項羽)의 군사라. 다만 죽기를 달게 여기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고로 방자히 산군께 위엄을 범하였나 보나 오히려 생각하올진대 가련한 바이어늘, 다람쥐로 하여금 중형으로 다스릴진대 이는 죽은 자를 다시 침이요 오히려 노승발검(怒蠅拔劍 : 파리에 화내어 칼을 뺀다는 뜻이니, 곧 사소한 일에 화내는 사람을 비웃는 말)이오니, 복망 산군은 지정의 위엄을 거두사 다람쥐로 하여금 쇠잔한 명을 용대(容貸)하고 하택의 덕을 끼치사 일체 방송하시면 호천지덕을 지하에 돌아간들 언감망기(焉橄忘棄)하오리까. 찰지찰지하심을 바라옵고 바라나이다."
162
산군이 듣기를 다하매 길이 탄식하여 가로되,
163
"기특하도다 네 말이여. 다람쥐가 대불(大佛)의 선을 누르고저 하니 불로 하여금 월광을 가리고자 함이라. 서대쥐의 선언(善言)으로 좇아 다람쥐를 방송하노니 돌아가 서대쥐의 선심을 본받으라."
164
하고 인하여 방송하니, 다람쥐 백배 사은하고 만만치 사한 후 물러가니라. 백호산군과 녹판관, 저판관이며 모든 하리(下吏)등이 서대쥐의 인후함을 못내 칭송하더라.
165
서대쥐 문 밖에 나와 장자쥐 불러 선시 가지고 온 재물을 흩어 백호궁 하리들에게 나누어 주고 왈,
166
"이번 송사에 무사히 돌아감은 그대 등의 주선함이라. 아직 약간 재물로써 소소한 정을 표하나 일후에 다시 사례할 날이 있으리라."
167
하고 면두에 서로 이별을 고하고 노복쥐와 더불어 곤륜산을 하직하고 팔괘동으로 돌아올새, 다람쥐 비록 포악한 마음이나 회과자책(悔過自責 : 허물을 뉘우쳐 스스로 책망함)하며 서대쥐의 후의를 감격하여 송사함을 심히 뉘우치며 부끄러움을 머금고 마지 못하여 서대쥐와 더불어 노중에서 스스로 작별할새, 서대쥐가 다람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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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오늘 일을 조금도 부끄러이 말고 오히려 전일로 더불어 다름이 없이 문경에 사죄(謝罪)를 맺어 길이 함원을 으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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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장자쥐를 불러 가진 바 남은 전량(錢糧)을 상고하니 다만 수십 냥이라. 인하여 다람쥐를 주어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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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형세를 익히 아니 집으로 돌아가 가중 범어사를 대강 보부족(補不足)하라."
171
다람쥐 부끄러워 차마 받지 못하거늘 서대쥐 간절히 권하며 오늘의 정의를 배반치 아니함을 이르니, 다람쥐 마지 못하여 만만배사(萬萬拜賜)하여 전량을 받아 가지고 오히려 눈물을 머금어 스스로 죄를 꾸짖으며 돌아가매 서대쥐 또한 돌아갈새, 이후로부터 서대쥐와 다람쥐끼리 서로 좋음을 맺아 다투지 아니하나 다람쥐는 항상 제일을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서대쥐를 만나면 서로 피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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