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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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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김유정
1
거반 오정이나 바라보도록 요때기를 들쓰고 누엇든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키어 가지고 대문밖으로 나섯다.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만치 볶다가 열벙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튀어나오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2
그러나 종로가 항상 마음에 들어서 그가 거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버릇이 시키는 노릇이라 울분할때면 마지못하야 건숭 싸다닐 뿐 실상은 시끄럽고 더럽고해서 아무 애착도 없었다. 말하자만 그의 심청이 별난 것이었다. 팔팔한 젊은 친구가 할일은 없고 그날그날을 번민으로만 지내곤하니까 나종에는 배짱이 돌라앉고 따라 심청이 곱지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불평을 남의 얼골에다 침 뱉듯 뱉아붙이기가 일수요 건뜻하면 나믜 비위를 긁어놓기로 한 일을 삼는다. 그게 생각나면 좀 잣달으나 무된 그 생활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향락일런지도 모른다.
 
3
그가 어실렁어실렁 종로로 나오니 그의 양식인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연은 마음의 거울이다. 온체 심보가 이뻔새고 보니 눈에 띠는 것마다 모다 아니꼽고 구역이 날 지경이다. 허나 무엇보다도 그의 비위를 상해주는건 첫재 거지였다.
 
4
대도시를 건설한다는 명색으로 웅장한 건축이 날로 늘어가고 한편에서는<1936심청,163> 낡은 단칭집은 수리좇아 허락지 않는다. 서울의 면목을 위하야 얼른 개과천선하고 훌륭한 양옥이 되라는 말이었다. 게다 각상점을 보라. 객들에게 미관을 주기 위하야 서루 시새워 별의별 짓을 다해가며 어떠한 노력도 물질도 아끼지 않는 모양 같다. 마는 기름때가 짜르르한 헌 누데기를 두르고 거지가 이런 상점 앞에 떡 버티고서서 나리! 돈한푼 주-, 하고 어줍대는 그 꼴이라니 눈이시도록 짜증 가관이다. 이것은 그 상점의 치수를 깎을뿐더러 서울이라는 큰 위신에도 손색이 적다 못할지라. 또는 신사 숙녀의 뒤를 따르며 시부렁거리는 깍쟁이의 행세 좀 보라. 좀 심한 노이면 비단껄- 이고 단장뽀이고 닥치는 대로 그 까마귀발로 웅켜잡고는 돈 안낼 테냐고 제법 훅닥인다. 그런 봉변이라니 보는 눈이 다 붉어질 노릇이 아닌가! 거지를 청결하라. 땅바닥의 쇠똥말똥만 칠게 아니라 문화생활의 장애물인 거지를 먼저 치우라. 천당으로 보내든, 산채로 묶어 한강에 띠우든…
 
5
머리가 아프도록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어청어청 종로 한복판으로 들어섯다. 입으로는 자기도 모를 소리를 괜스리 중얼거리며-
 
6
"나리! 한 푼 줍쇼!"
 
7
언제 어데서 빠젓는지 애송이거지 한 마리(기실 강아지의 문벌이 조곰 더 높으나 한 마리)가 그에게 바짝 붙으며 긴치않게 조른다. 혓바닥을 길게 내뽑아 웃입술에 흘러나린 두 줄기의 노란코를 연실 훔처가며, 졸르자니 썩 바뿌다.
 
8
"왜 이럽소, 나리! 한 푼 주세요"
 
9
그는 속으로 피익, 하고 선웃음이 터진다. 허기진 놈 보고 설렁탕을 사달라는 게 옳겟지 자기보고 돈을 내랄적엔 요놈은 거지 중에도 제일 액수 사나운 놈일 게다. 그는 드른 척 않고 그대루 늠늠이 걸었다. 그러나 대답 한 번 없는데 골딱지가 낫는지 요놈은 기를 복복 쓰며 보채되 정말 돈을 달라는 겐지 혹은 가치 놀자는 겐지, 나리! 웨 이럽쇼, 웨 이럽쇼, 하고 사알살 약을 올려가며 따르니 이거 성이 가서서라도 거름 한 번 무르지 않을 수 없다.
 
10
그는 고개만을 모루 돌리어 거지를 흘겨보다가
 
11
"이 꼴을 보아라!"
 
12
그리고 시선을 안으로 접어 꾀죄죄한 자기의 두루마기를 한번 쭈욱 훑어보였다. 하니까 요놈도 속을 채렸는지 됨됨이 저렇고야, 하는 듯싶어 저도 좀 노려보드니 제출물에 떠러저 나간다.
 
13
전차길을 건너서 종각 앞으로 오니 졸찌에 그는 두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가 행차하는 길에 다섯 간쯤 앞으로 열댓살 될락말락한 한 깍쟁이가 벽에 기대여 앉엇는데 까빡까빡 졸고 잇는 것이다. 얼골은 뇌란 게 말라빠진 노루가 죽이 되고 화루전에 눈 녹 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야 신병이 있는 데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얐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듯 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된 어린 거지는 시르죽은 고양이처럼, 큰놈의 무릎 우로 기어오르며, 울 기운 좇아 없는지 입만 벙긋벙긋, 그리고 낯을 째프리며 튀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 즉 아마 시골서 올라온지도 불과 며칠 못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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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그는 잔뜩 상이 흐렷다. 이 벌레들을 치워주지 않으면 그는 한 거름도 더 나갈 수가 없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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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문득 한 호기심이 그를 긴장시켯다. 저 쪽을 바라보니 길을 치고 다니는 나리가 이 쪽을 향하야 꺼불적꺼불적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뜻밖의 나리였다. 고보 때에 가치 뛰고 가치 웃고 가치 즐기든 그리운 동무, 예수를 믿지 않는 자기를 향하야 크리스찬이 되도록 일상 권유하든 선냥한 동무이었다. 세월이란 무엔지 장내를 화려히 몽상하며 나는 장내 "톨스토이"가 되느니 "칸트"가 되느니 떠들며 껍적이든 그 일이 어제 같건만 자기는 끽 주체궂은 밥통이 되었고 동무는 나리로- 그건 그렇고 하여튼 동무가 이자리의 나리로 출세한 것만은 놀램과 아울러 아니 기쁠 수도 없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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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저게 오면 어떻게 나의 갈길을 치워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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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머직아니 섯는 채 조바심을 태워가며 그 경과를 기다리엇다. 따는 그의 소원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은 단 일분도 못걸렷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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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야 으-ㅇ, 응 갈테야요"
 
19
"이자식! 골목안에 백여 있으라니깐 왜 또 나왓니, 기름강아지같이 뺀질뺀질한 망할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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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야, 으-름, 응, 아야야, 갈텐데 왜 이리차세요, 으-ㅇ, 으-ㅇ" 하며 기름강아지의 울음소리는 차츰차츰 멀리 들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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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 어서 가바, 쑥 들어가-" 하는 날벽력!
 
22
소란하든 히극은 잠잠하였다. 그가 비로소 눈을 뜨니 어느덧 동무는 그의 앞에 맞닥드렷다. 이게 몇 해만이란 듯 자못 반기며 도무는 허둥지둥 그 손을 잡아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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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누구냐? 너 요새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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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쾌활한 낯에 미소까지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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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간만이로군!"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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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늘 놀지, 그런데 요새두 예배당에 잘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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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틈틈이 가지, 내 사무란 그저 늘 바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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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고마워이, 보기 추한 거지를 쫓아주어서 나는 웬일인지 종로깍쟁이라면 이가 북북 갈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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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그야 내 직책으로 하는 걸 고마울 거야 있나" 하며 동무는 건아하야 흥잇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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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웃음을 보자 돌연히 그는 점잖게 몸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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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당신의 사도 ‘베드로’를 나리사 거지를 치워주시니 너머나 감사하나이다" 하고 나즉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감사와 우정이 넘치는 탐탁한 작별을 동무에게 남겨 놓앗다.
 
32
자기가 ‘베드로’의 영예에서 치사를 받은 것이 동무는 무척 신이나서 으쓱이는 어깨로 바람을 치올리며 그와 반대쪽으로 거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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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화창한 봄날이엇다. 전신줄에서 물찍똥을 나려깔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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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구 배리구"
 
35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는 그 무슨 곡조인지 하나도 알랴는 사람이 없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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