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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오유월일기 (壬午六月日記) ◈
◇ 1882년 7월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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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찬 (翊贊) 민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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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2년 7월 1일 (양 8월 8일)

2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천.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 한 첩을 올렸다
 
 

2. 1882년 7월 2일 (양 8월 9일)

4
맑고 더웠다. 민영기가 모시고 가 지평 섬실의 전 현감 한정옥(安鼎玉)집으로 옮기셨다. 민응식은 사람들 이목에 시끄러움을 꺼려 뒤에 출발했고 여주읍에 이르러 묵었다.
 
 

3. 1882년 7월 3일 (양 8월 10일)

6
이슬비가 오더니 밤에는 몹시 쏟아졌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 한 첩을 올렸다. 인후증세가 다시 더했다. 민응식이 왔다.
 
 

4. 1882년 7월 4일 (양 8월 11일)

8
이른 이침에 비가 오더니 저녁에 그쳤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양위탕 한 첩을 올렸다. 전 오위장 구연소(具然韶)를 충주병영에 보냈다.
 
 

5. 1882년 7월 5일 (양 8월 12일)

10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인후증세가 점차 나아지셨다.
 
 

6. 1882년 7월 6일 (양 8월 13일)

12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양위탕 한 첩을 올렸다. 민영기를 양근 자잠리에 보냈다.
 
 

7. 1882년 7월 7일 (양 8월 14일)

14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한 첩을 올렸다. 민긍식이 들어왔다.
 
 

8. 1882년 7월 8일 (양 8월 15일)

16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양위탕 한 첩을 올렸다. 민영기가 돌아왔다.
 
 

9. 1882년 7월 9일 (양 8월 16일)

18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옥체 다리부스럼이 다 아물었다.
 
 

10. 1882년 7월 10일 (양 8월 17일)

20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11. 1882년 7월 11일 (양 8월 18일)

22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민영기, 민영식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꺼려 먼저 나왔다.
 
 

12. 1882년 7월 12일 (양 8월 19일)

24
맑음. 안정옥이 모시고 가 매산 오봉학 집 숙소로 돌아왔다.
 
 

13. 1882년 7월 13일 (양 8월 20일)

26
맑음. 민영위 집 뒷채로 옮기셨다.
 
 

14. 1882년 7월 14일 (양 8월 21일)

28
비가 종일 내렸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15. 1882년 7월 15일 (양 8월 22일)

30
구름 끼더니 비를 뿌렸다. 그대로 머무르셨다. 안정옥을 서울에 보냈다.
 
 

16. 1882년 7월 16일 (양 8월 23일)

32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우철(又哲)이 와서 서울소식(京報)을 들었다. 안정옥이 중도에서 청사(淸使)가 내건 방문(榜)을 베껴서 돌아왔다. 김천찰방 민치헌(閔致憲)이 왔다.
 
 

17. 1882년 7월 17일 (양 8월 24일)

34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민치헌을 서울에 보냈다. 이현식(李賢植)이 민영익의 봉서를 가지고 왔다.
 
 

18. 1882년 7월 18일 (양 8월 25일)

36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이현식이 돌아갔다. 안정옥을 서울에 보냈다.
 
 

19. 1882년 7월 19일 (양 8월 26일)

38
비가 오다가 오후에 그쳤다. 그대로 머무셨다. 옥후가 학질증세로 편치 않으셨다. 향사 평위산(香砂平胃散) 두 첩을 올렸다.
 
 

20. 1882년 7월 20일 (양 8월 27일)

40
맑음. 그대로 머무셨다. 수삼 한 냥쭝을 올렸다.
 
 

21. 1882년 7월 21일 (양 8월 28일)

42
맑음. 그대로 머무셨다. 수삼 한 냥쭝을 올렸다. 학질 증세가 가라앉지 않았다.
 
 

22. 1882년 7월 22일 (양 8월 29일)

44
맑음. 그대로 머무셨다. 안신사물탕(安神四物湯) 두 첩을 올렸다. 민치헌과 안정옥이 서울에서 돌아왔다.
 
 

23. 1882년 7월 23일 (양 8월 30일)

46
비가 종일 왔다. 그대로 머무셨다. 수산 한 냥쭝을 올렸다. 학질증세가 더했고 양성 의인(醫人) 박응종(朴應鍾) 처소에 사람을 보냈다.
 
 

24. 1882년 7월 24일 (양 8월 31일)

48
맑음. 그대로 머무르셨다. 밤에 산삼 다섯 전쭝(戔重)을 올렸다. 안정옥이 (중궁전하께서 내려주신) 봉서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25. 1882년 7월 25일 (양 9월 1일)

50
맑음. 이른 아침에 산삼 다섯 전쭝(戔重)을 올렸다. 민영위 집 안채로 옮기셨다. 학질증세가 한결 같았다. 양성 의인 박응종이 왔다.
 
 

26. 1882년 7월 26일 (양 9월 2일)

52
맑음. 그대로 머무셨다. 이른 아침, 박응종이 진찰하러 들어갔다. 가미군자탕을 두 첩 올렸다. 좌찬성 민태호 집 하인이 봉서를 가지고 왔다. 같은 달 19일, 전 감찰 심의순(沈宜淳)이 환정곤위사(還正壼位事:왕비의 자리를 도로 바르게 하는 일)로 오장경 제독에게 정문(呈文)을 했고 장차 며칠 안으로 (궁중전하를) 영접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한 까닭에 부사 과 김설현(金卨鉉)이 이 일을 아뢰기 위해 서울에서 이른 아침 왔다. 이현식이 왔다. 이날 밤, 봉서와 무감 8명이 내려왔고 화복(華服)의 전교를 들었다.
 
 

27. 1882년 7월 27일 (양 9월 3일)

54
맑음. 그대로 머무셨다. 학질 증세가 점차 덜했다. 가미군자탕 한 첩, 가감군자탕 한 첩을 올렸다. 영접할 배종관원이 내려왔다. 안정옥이 회답봉서를 가지고 내려왔다.
 
 

28. 1882년 7월 28일 (양 9월 4일)

56
맑음. 아침에 가감군자탕 한 첩을 올렸다. 손시(오전 8시 반에서 9시 반까지)에 가마를 움직여 죽산부 내아를 숙소로 했다. 가감군자탕 한 첩을 올렸다.
 
 

29. 1882년 7월 29일 (양 9월 5일)

58
맑음. 이른 아침이 가감군자탕 한 첩을 올렸다. 오전 6시경(卯刻) 가마를 움직여 양지현 내아에 이르렀다. 잠깐 머물러 낮수라를 자셨다(晝停). 민영익이 왔다. 학질 남은 증세가 있었다. 땅거미 질 무렵 용인현 동헌 숙소에 이르렀다. 평진탕 한 첩을 올렸다.
【원문】1882년 7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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