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문  한글 
◈ 강원도유생홍재학등소략 (江原道儒生洪在鶴等疏略) ◈
해설   본문  
홍재학 (洪在鶴)
1
신들이 삼가 듣건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오륜 오상(五倫五常)의 법과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왕(先王)과 선성(先聖)들이 하늘의 뜻을 이어 만세에 기준을 세운 것도 이것이고 후대의 임금과 후대의 현인(賢人)들이 강구하고 밝혀서 후세에 전수(傳授)할 것도 이것입니다.
 
2
오복오장(五服五章)을 권면한 것도 이것을 잘하였기 때문이고 오형(五刑)으로 위엄을 보인 것도 이것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은 천지(天地)의 대경(大經)이고 고금(古今)의 대의(大義)입니다. 한 가지라도 혹시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의복이 오랑캐들과 같아지고 인류는 짐승이 되어서 천지가 뒤집힐 것입니다.
 
3
오늘날 나라의 형세가 몹시 위태롭다는 것을 온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한 해 두 해 그럭저럭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일이 없던 것에 대하여 전하가 어찌 그 까닭을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은 실로 열성대(列聖代)에서 풍속과 교화를 바로잡고 기강을 세워서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이러한 거조는 비단 전하의 종사(宗社)를 위하여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신들이 사학(邪學)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이며, 비단 전하의 일신을 위할 뿐만 아니라 실로 전하의 자손을 위한 것이며, 비단 전하의 자손을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신들의 자손과 형제, 친척을 위한 것입니다.
 
4
대체로 갈아도 닳지 않고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는 것은 오직 성현(聖賢)이라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물에 의하여 변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현들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반드시 말하기를, ‘눈으로는 정당하지 않은 글을 보지 말고 귀로는 예가 아닌 소리를 듣지 말라.’라고 하였고, 반드시 말하기를, ‘차라리 한 해 동안 글을 읽지 않을지언정 하루라도 소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고 참판(故參判) 이항로(李恒老)의 말에, ‘사는 곳을 삼가야 하는 바 사는 곳에 따라 모습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가까이하는 것을 삼가야 하는 바 가까이하는 데 따라 기질이 닮아가기 때문이다. 지키는 일을 삼가야 하는 바 지키는 일에 따라 마음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모습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에 그 비늘이 물결모양 같고 사슴은 산에서 살기에 그 뿔이 삐죽해졌으며 거북과 자라는 바위 위에 살기에 그 등갑이 바위처럼 험해졌다. 기질이 닮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을 묻어두면 돌도 지남철로 되고 나무를 물에 담그면 나무도 미끄러워진다. 마음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하지 않을까 근심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봐 근심하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절실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오늘날 온 나라에서 입는 것은 서양 직물이고 서양 물감을 들인 옷이며 온 나라에서 쓰는 것은 서양 물건입니다. 접견하는 사람도 서양 사람이고, 탐내어 침 흘리는 것도 서양의 기이하고 교묘한 것들입니다. 사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과 지키는 일이 다 서양의 것이니 형체와 기질과 마음이 어찌 다 서양 것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5
대체로 서양의 학문이 원래 천리(天理)를 문란하게 하고 인륜(人倫)을 멸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심합니다. 서양의 문물은 태반이 음탕한 것을 조장하고 욕심을 이끌며 윤리를 망치고 사람의 정신이 천지와 통하는 것을 어지럽히니, 귀로 들으면 내장이 뒤틀리고 눈으로 보면 창자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 맡거나 입술에 대면 마음이 바뀌어 본성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호응하고 전염병이 전염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6
이른바 《중서문견(中西聞見)》, 《태서문견(泰西聞見)》, 《만국공법(萬國公法)》 등 허다한 그들의 요사스런 책들이 나라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명사(名士)와 석유(碩儒)들은 새 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여 거기에 빠져 들어가서 즐기면서 돌아올 줄을 모르고 번갈아 찬미하자 이름 있고 지위 있는 사람도 하루가 못 되어 휩쓸립니다.
 
7
혹시 힐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서 변명하기를, ‘이것은 바로 저 나라의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서 윤리를 망치는 가르침이 아니다. 이런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견문을 넓히고 흉금을 틔우려는 것이므로 윤리를 망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하니, 아! 이 한 마디 말은 이미 그 속에 푹 빠진 자의 말입니다.
 
8
옛날 우리 순조 대왕(純祖大王)이 사학을 배척하여 말하기를, ‘생각건대 온 세상이 새것을 좋아하는 기풍은 바로 풍속을 좀먹는 근세의 나쁜 습관이다. 걸핏하면 명물(名物)을 고증한다고 핑계하면서 다투어가며 기이하고 박식한 것을 본떠 한 번 굴려서 숨은 것을 알아내어 괴이한 행동을 하고 두 번 굴려서 이단과 불경한 행동을 저지른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거룩한 임금의 말씀이며 진실로 만세의 큰 훈계입니다.
 
9
그들이 말하는 ‘견문을 넓히고 흉금을 틔운다.〔廣見聞而開胸襟〕’는 말이 이미 공자(孔子)가 말한 육예(六藝)가 아니니, 이것은 남모르는 것을 알아내어 괴이한 행동을 하며 이단과 불경한 짓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0
예로부터 이교(異敎)는 대개 사이비(似而非)를 발전시켜서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켜 마침내는 짐승을 이끌고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묵자(墨子)는 아버지를 무시하였는데도 ‘인(仁)’에 가깝다고 하였고 양자(楊子)는 임금을 무시하였는데도 ‘의리(義理)’에 가깝다고 하였으며 향원(鄕愿)은 덕을 어지럽히면서도 ‘중용(中庸)’에 유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耶蘇〕, 마테오 릿치〔利瑪竇 : Matteo Ricci〕의 심보로 토설한 것과 웅삼발(熊三拔), 만제국(萬濟國)의 뱃 속에서 나온 말들은 유사하기로는 분전(分錢)만큼이고 그 화(禍)는 산악과 같으며, 가깝기로는 터럭 끝만큼이고 그 어긋나기로는 연(燕) 나라와 월(越) 나라처럼 멉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견문을 넓히고 흉금을 틔우는 데 도움으로 삼는다고 하니, 어찌 독약을 먹고 갈증을 풀려고 하며 독초를 먹고 굶주림을 면하려 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11
이른바 황준헌(黃遵憲)의 책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전하에게도 올리고 조정 반열에도 드러내 놓으면서 하는 말에, ‘여러 조목에 대한 그의 논변은 우리의 심산(心算)에도 부합됩니다. 서양 사람이 중국에 거주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다 사학을 믿는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과연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까? 이것이 과연 자기가 한 일과 척촌(尺寸)의 간격이라도 있다 하겠습니까?
 
12
대체로 물은 습지로 흘러가고 불은 건조한 것에 붙으며 바른 것은 바른 것과 서로 통하고 간사한 것은 간사한 것과 서로 통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만약 전하의 명령을 전대(專對)하는 사신(使臣)이 엄정하게 사학을 배척하기를 마치 찬 서리와 뜨거운 태양처럼 대하였다면 저 사람이 어찌 감히 버젓이 이 흉측한 말을 입 밖에 냈겠습니까? 만약 전하의 조정에서 집정(執政)하고 있는 재상들이 정당한 의견을 극력 견지하면서 엄하고 굳세게 하여 범접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저 이른바 왕명을 전대하는 사신이 어찌 감히 버젓이 이 흉측한 말을 내놓았겠습니까?
 
13
이런 것으로 본다면 전하의 사신과 집정 재상은 전하의 사신, 집정 재상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심복으로서 구라파(歐羅巴)와 내통한 것이니, 어찌 삼천리 우리 옛 강토가 오늘에 와서 개 돼지가 사는 곳으로 되고 500년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예의(禮義)가 오늘에 와서 거름에 빠질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14
‘우리 주자와 육상산(陸象山)의 말과 같아서 전하여 가르쳐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교사를 맞이하여 교련하도록 아뢴 것은 부녀자들과 아이들도 다 그 흉패함을 알고 있습니다. 사신이 이런 말을 올렸는데도 전하는 그를 저자에서 처단하지 못했고, 재상과 대신(大臣)들이 전하에게 확고한 결심을 가질 것을 권했어도 전하는 상방(尙房)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베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두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신하들 중 바른 의견을 견지하고 사교(邪敎)를 배척한 사람들을 유배 보내고 형벌을 가하여 죽이기에 있는 힘을 다하였으니, 전하께서 부추겨주고 억제하는 것이 왜 이렇게도 차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의환(義煥)과 이승훈(李承薰)의 귀신이 장차 세상에 종사(宗師)가 되고, 공맹(孔孟)과 정주(程朱)의 책이 장차 세상에서 크게 금지당하며, 공자와 주자의 글을 외우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선비들이 장차 흉악한 무리로 되고, 머리칼을 자르고 관복을 찢는 화가 장차 코앞에 박두하여 다시 제어하지 못할까봐 신들은 저으기 두렵습니다. 대체로 그들에게 제재를 받으면 모든 변이 다 생길 것이니, 일이 벌써 이런 지경에 이르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5
사람들은 말하기를, ‘어찌 이렇게까지 심하겠는가?’라고 하지만, 신들은 이 말이 너무 생각없이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나무허수아비를 순장(殉葬)하지만 종당에는 700명의 생명을 순장하며, 애초에는 몇 방울의 샘물과 한 점의 불꽃처럼 미미하나 종당에는 큰 바다가 되고 큰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례로 일어나는 일이므로 스스로 멈추지 못합니다. 더구나 오늘 전하께서 부추겨주고 억제하는 차이가 어찌 나무 허수아비나 한 방울의 물, 한 점의 불꽃처럼 미미한 것이겠습니까?
 
16
중국이 시궁창에 빠지자 온 세상에 짐승냄새가 풍긴 지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한 줄기 봄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붙어있는 것은, 비유하면 천지에 숙살(肅殺)의 기운이 가득할 때 큰 과일 한 개가 높이 달려서 생기가 가지 끝에 남아 있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천지가 애호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소중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찌 차마 이것까지 없애버려서 음(陰)만 있고 양(陽)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겠습니까? 만물을 생산하는 천지의 마음이 결코 이렇듯 어둡지는 않을 것입니다.
 
17
전하께서 진실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인심에 응하여 괴이한 요물들을 확 쓸어버리고 해와 달의 밝음을 더 높이 올려 이미 막힌 성인의 길을 열고 이미 거꾸러진 하늘 기둥을 떠받든다면, 하늘이 도와주고 사람들이 순종하여 이로움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롭지 않은 것이 없어지게 될 것이며 천하 만세에 공로가 되는 것이 하우(夏禹)가 홍수를 다스리고 주공(周公)이 맹수를 몰아낸 것처럼 높고도 클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18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의 기강을 떨치고 사직(社稷)을 위하여 죽는 의리를 결단하여 싸워 지킬 계책을 결정하소서. 뜻을 세워서 기(氣)를 통솔하고 사심(私心)을 극복하여 아랫사람을 거느릴 것이며, 일가(一家)에서 모범을 보여 먼 곳까지 미치게 하고 나라 안에 있는 서양 물건들을 거두어서 네 거리에다 놓고 불태워 버리소서.
 
19
무릇 신하로서 멋대로 의견을 내세워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을 위협하며 뜬소문을 꾸며내어 멀고 가까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자들은 목을 베어 거리에 매달도록 하고, 사교에 빠져 들어가서 호랑이 앞잡이인 창귀노릇을 하기 좋아하는 자들을 죽여 버림으로써 우리나라 삼천리 경내에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며, 강화(江華)·덕원(德源)의 여관(旅館)에 머물러 있는 서양 사람과 성 안팎을 무시로 드나드는 서양 사람들을 모조리 몰아내어서 우리나라 예의의 풍속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소서.
 
20
바른 것을 부축하고 사악한 것을 배척하다가 전하에게 죄를 얻은 사람들은 그 재주와 덕의 높고 낮음과 명망이 있고 없음에 따라 조정에 등용하여 녹봉(祿俸)00과 직위로 잘 대우하여 나라를 부흥시키고 역적을 치기 위한 직책을 맡기며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부지하기 위한 방책을 의논하소서.
 
21
기무아문(機務衙門)을 혁파(革罷)하고 5위(衛)의 제도를 되살리며, 내영(內營)의 경비를 옮겨 군사들의 늠료(廩料)를 후하게 주며, 무당과 중들의 기도를 금지시키고 배우의 놀음놀이를 멀리하며, 노닐며 즐기던 구습을 혁파하고 나라를 근심하고 근면하는 덕을 다하소서. 장상(將相)을 선임하고 사우(師友)를 가까이하며, 어질고 준수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간사한 자들을 물리치며 쓸데없는 비용을 절약하고 사치를 금지하며, 언로(言路)를 넓게 열고 많은 좋은 말들을 잘 받아들이며, 정학(正學)을 숭상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배척하며, 기강을 엄숙하게 세우고 풍속을 변화시키며, 민력(民力)을 아껴서 기르도록 하고 군정(軍政)을 밝게 닦으며, 상하원근(上下袁近)이 순수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견지하기를 금석(金石)처럼 하며 신실(信實)하기를 사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한다면, 삼군(三軍)의 군사들이 싸움을 하기 전부터 기세가 절로 배가 될 것이며, 온 나라 백성들이 상을 받지 않더라도 마음이 자연히 굳건해질 것이며, 풍속과 교화는 온 세상에 떨치고 의리는 온 천지에 넘쳐날 것입니다. 동쪽으로는 왜(倭), 서쪽으로는 서양, 북쪽으로 러시아[俄羅斯]도 또한 우리나라의 의리를 사모하고 우리나라의 위엄을 겁내어 감히 무례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삼가 사도(四道) 유생들이 올린 상소에 대하여 내리신 전교를 보았는데, 신들은 채 다 읽기도 전에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더욱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전하는 무슨 까닭에 온 나라 사람들의 입으로 한결같이 말하는 공론(公論)을 이처럼 굳게 거절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비단 신들이 상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자년(1876) 초에 최익현(崔益鉉)·이학연(李學淵)·장호근(張皓根)의 무리들이 주장한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문신(文臣)으로 허원식(許元栻)·유원식(劉元植)과 무신(武臣)으로는 홍시중(洪時中)·황재현(黃載顯)과 포의(布衣)로는 이만손(李晩孫)·김조영(金祖榮)·김석규(金碩奎)·한홍렬(韓洪烈) 등이 쟁론한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상세하거나 소략한 점은 같지 않으나, 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편안한 것과 위태로운 것, 유지하는 것과 멸망하는 것의 큰 분류에 대해서는 한 입에서 나온 말처럼 같았는데 전하는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을 가하고 유배를 보냈으니, 이것이 간언(諫言)을 따르는 성주(聖主)의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말세에 간하는 말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겸손하게 선(善)을 받아들여 대업을 이룩하는 것입니까, 오만하게 자기 스스로 성인인 체하는 것입니까? 이 한 가지 일만 해도 이미 상서로움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 못 되는데, 지난번 경상도(慶尙道) 유생들의 상소에 대한 비답과 요즘 전교하신 일은 더욱 심한 것이 있으므로 조목조목 진달하겠습니다.
 
23
비답에, ‘사(邪)를 물리치고 정(正)을 지킨다.’라고 하였고, 또 ‘모조리 잡아 없앤 것이라면 병인년(1866)·신미년(1871) 경의 일을 실로 말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어느 하루라도 척사위정(斥邪衛正)의 정령(政令)을 내린 적이 있습니까? 사학(邪學)의 무리들을 언제 잡아서 처단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이와 같은 비답과 전교가 역사책에 기록된다면 후세에 전하를 어떤 임금이라고 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한가한 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고도 오히려 남들이 말하지 않고 남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어찌 경들의 말을 기다리겠는가?’라고 한 전교는 확실히 자족하여 남은 자기만 못하게 여기는 병통이 있습니다. 거룩한 임금의 마음이 원래 이래야 하겠습니까?
 
24
전하의 비답에, ‘다른 나라 사람이 모의한 글을 무엇 때문에 심각히 연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에게 이해 관계가 없으면 정말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는데, 화(禍)가 장차 하늘에 닿겠으니 어떻게 철저히 분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5
심지어 이만손이 죄를 받은 것은 더욱 듣는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하였습니다. 남의 글을 볼 때 그 뜻을 이해하면 글귀에 좀 작은 실수가 있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지금 ‘좌단(左袒)’한다는 말이 비록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문리를 대강 이해하는 사람은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남의 말을 막기에 급급해하지만 공의(公議)는 더욱 세차게 일어나고 있으니 어떻게 금지할 수 있겠습니까?
 
26
전교에, ‘이웃 나라와 사귀어 사이좋게 지낸다.’라고 하였는데, 신은 또 의혹됩니다. 옛날의 우호 관계에서 과연 ‘황제(皇帝)’라는 거짓 칭호로 우리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습니까? 과연 수천 호(戶)의 집을 동래(東萊)에 살게 하였습니까? 과연 덕원(德源)과 같은 요충지를 주었습니까? 과연 인천(仁川)과 같은 요충지를 허락하였습니까? 과연 그들을 천연정(天然亭)에 맞이해 들인 적이 있었습니까? 과연 조지서(造紙署)에 맞이해 들인 적이 있었습니까?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기이한 재주와 교묘한 기술을 배우게 한 적이 있었습니까? 과연 서양 물건을 교역한 일이 있었습니까? 과연 서양 물건들을 실어들인 일이 있었습니까? 과연 그들이 말한 대로만 따른 일이 있었습니까? 옛날에 이웃 나라와 교린(交隣)한 것은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웃 나라와의 교린은 조종(祖宗)의 땅을 깎아먹고 백성들의 피를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27
또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물러가서 학업에 전심하라.’ 하였는데, 오전(五典)과 사유(四維) 외에 따로 이해할 만한 도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환한 대낮에 도깨비들이 이 세상에 용납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신은 하교를 어떻게 받들지 모르겠습니다. 또, ‘먼저 가르쳐주고 뒤에 형벌을 가하라.’ 하였으나 신들은 미욱하여 이 하교를 받들 수 없습니다.
 
28
또 삼가 요즘 내린 윤음(綸音)을 보니, 실로 전하의 뜻이 척화(斥和)에 근엄하게 하면서도 도리어 상도(常道)에서 벗어난 것에 연연하고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설사 숨은 것을 찾아내고 가리운 것을 들춰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데 대해서는 신들이 더욱 의혹됩니다. 지금 동래·덕원·도하(都下)에 있는 서양 사람들이 여전하고,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며 화의(和議)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여전하며, 서양 기술을 연습하고 서양 물건을 교역하는 일도 여전합니다. 이와 같은 데도 덕을 세운다고 말하겠으며 정도(正道)를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29
대체로 지난날에도 척화를 주장하다 전하에게 죄를 받은 자들은 그 죄를 용서하고 그 계책을 썼는데, 어찌하여 문서만 만들어 가지고 만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만 사람의 눈을 가리우는 것으로 좋은 계책을 삼습니까?
 
30
신들을 비롯한 소두(疏頭) 몇 명에 대하여서는 전하의 힘으로 사구(四寇)에서 형벌을 가할 수도 있고 영남(嶺南)의 해변에 찬배(竄配)할 수도 있으며 저자 거리에서 찢어 죽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온 나라의 백성들이 집집마다 원망하고 사람마다 분노하는 것은 전하의 힘으로써도 제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31
전하께서 이처럼 전에 없던 지나친 조치를 취하고도 막연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학문을 일삼지 않으므로 아는 것이 이치에 밝지 못하고 마음은 사심을 이기지 못하며 안일에 빠진 것을 달게 여기고 참소로 권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32
전하께서 배우지 않는 것은 어찌 다른 까닭이 있겠습니까? 재상 이하의 미욱스럽고 이익만 즐기고 염치없는 무리들이 전하의 학문과 덕행이 전진하면 반드시 앞으로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물리치게 될 것이므로 모든 정사에서 자기 무리들이 그 사이에 발을 붙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을 깊이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경연(經筵)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고 어질고 준수한 사람들을 내쳐버리며 도학(道學)을 썩은 선비의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삼고 속류(俗流)들을 재주 있고 부릴 만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억누르거나 추켜세우고 권한을 주거나 빼앗는 것을 한결같이 자기 뜻대로만 하였습니다. 전하의 총명을 이토록 극도로 흐리게 하였으니 그 죄악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문】강원도유생홍재학등소략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미분류〕
▪ 분류 : 개인기록물
▪ 최근 3개월 조회수 : 2
- 전체 순위 : 7139 위 (5 등급)
- 분류 순위 : 105 위 / 10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홍재학(洪在鶴) [저자]
 
  # 상소문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기록물 > 개인기록물 해설   본문   한문  한글 
◈ 강원도유생홍재학등소략 (江原道儒生洪在鶴等疏略)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0년 07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