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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마지막 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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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3~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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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文壇) 30년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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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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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당국의 조선어 탄압정책이 강화됨에 따라서 일반 독자층에는 그 반동으로 조선문 서적 구입이 높아졌다. 전에는 한 판(版(판)ㅡ1천 부) 발행하면 10년 걸려야 다 팔린다던 조선문 서적이 초판 3, 4천 부는 으례껏 팔리고, 좀 잘 팔리면 1만 부는 나가게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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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때 막다른 곬에 든 문사들의 생활에 약간의 여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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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행본이라면 으례 500페이지 이상이 표준이다. 웬만한 젊은 작가들은, 500페이지를 채울 만한 작품이 없었다. 그런지라, 조선문 서적 잘 팔리는 시절에도 그 혜택을 입는 작가란 몇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신 문 잡지 등, 신작 발표기관은 총 스톱을 한 시절이라, 이 땅의 문사들은 대개 轉業(전업)을 하거나 폐업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御用學者,(어용학자) 御用文士(어용문사)만이 일본글로 작품을 써서 연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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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사들을 시달리는 협위 가운데 늘 정책적 협위 밖에, 또 '징용' 이라는 협위도 있었다. 그때의 문사들이란 대개 징용 적령자였다. 게다가 무슨 착실한 직업이 없었다. 그런 위에 교만하여 郡吏(군리), 面吏(면리)들에게 미움 사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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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역시 그 협위를 받는 축이었다. 그때 나이는 40을 겨우 지났지만 징용 연령이 50세까지로 확대됨에 따라서 그 범위 안에 들게 되어서 늘 전전긍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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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인보국회' 회장 阿部(아부) 某(모)의 보증이 있으면 징용을 면할 수 있다 하므로 생각다 못하여 그때의 간사이던 鄭人澤(정인택)을 찾아서 그대의 간사를 내게 양도하라 하였더니 정은 그래도 간사 자리가 아깝든지, 누구 다른 사람의 간사 자리를 알선하마 약속하고 이리하여서 구한 간사 자리로써 겨우 안심을 한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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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인택, 金龍濟(김룡제), 이무영 등은 조선총독상을 받았다 하여 아주 기개높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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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은 軍浦里(군포리)에 자리잡고 앉아서 고기에 굶주린 친구들이며 총독부 고관들을 초대해서 '닭고기會(회)' 등을 베풀어 대접하며, 서울서는 볼 수도 없는 호화연회 등을 하며 있었다. 총독부 제조 '문인보국회'라는 것으로 이들과 연락되는 춘원 이광수는 思陵(사릉)이라는 곳에 초당을 짓고 거기 나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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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춘원은 거기서 요한을 기탁하여 자기의 심정을 말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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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東亞文學者大會(동아문학자대회)로 上海(상해)에 갔을 때 그때 요한은 和信(화신)의 商用(상용)으로 상해에 왔었는데, 그때 요한은 상해 영미인의 생활을 보고 에쿠, 일본이 졌구나 깨달았지요. 그 풍부한 물자를 가진 나라를, 돌쩌귀까지 빼서 쓰는 일본이 어떻게 당하겠느냐고 심각하게 느꼈읍니다. 참 상해는 풍부하거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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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로 보아서 춘원은 지난날 일본이 꼭 이기리라는 신념하에서 그의 정직한 성격이 조선사람을 위하여 조선사람이 장차라도 살려면 일본에 협력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황국신민화'를 그렇게 부르짖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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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춘원은 몹시 번민하고 있었다. 상해 등지를 돌아본 결과로 일본의 패배는 필연적인 일인 모양인데 일본이 전패하고 조선이 일본의 동반자로 몰락하면여니와, 일본 거꾸러지고, 조선이 그 탓에 소생한다면 조선 민족의 일본인화를 활동한 자기는 당연히 반역자로 몰릴 형편이라, 그 때문에 매우 번민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때 나는 또 다른 일 때문에 춘원과 자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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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패의 최후 계단을 우리 문사들은 어떻게 뚫고 나오는가? 그 새의 조선문 박해의 기나긴 기간을 통하여 그야말로 삼순구식의 고경을 겪어온 조선 문사들이 빛나는 신생 조선의 날까지를 무엇을 먹고 무엇을 쓰고 뚫고 나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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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난한 문사들에게 1년간의 생활비를 뒤대에 주어서 초비상 시국을 무난히 뚫게 할 수단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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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안출해 낸 것이 이런 수단이었다. 즉 춘원에게는 어떤 후원자가 있어서 춘원이 무슨 일을 하겠다면 몇백만 원 뒤대어 줄 호의까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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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을 선두에 내세워 작가의 단체를 하나 조직케 하고 그것을 핑계로 몇 백만 원 끌어내어 문사 한 사람에게 수삼만 원의 현금을 지불하여 근거 없 는 문사들이 국가 비상시국에도 그 물결에 휩쓸려들지 않도록 해보자는 것 이었다. 그 계획이 진행되는 즈음에는 8월 보름달, 국가 해방이 돌연히 이 른 것이다. 동시에 신흥 조선문학도 일본인의 제압 아래서 해방되었다.
【원문】마지막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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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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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