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때에 공명(孔明) 선생은 노숙(魯肅)과 한가지로 남병산(南屛出) 올라가서 칠성단(七星壇)을 모을 제 지세(地勢)를 상탁(相度)하고 동남방 적토(赤土)로 단을 뫃되 방원(方圓)은 이십사 장이요 일층고(一層高)는 삼척인데 매일층(每一層) 삼척씩 고(高)는 구척이로다. 동서 사방을 응하야 기호를 표하였으되 동방칠면(七面)에는 청룡기(靑龍旗)요 서방에는 백호기(白虎旗)요 남에는 주작(朱雀)이요 북에는 현무지상(玄武之狀)하고 중앙에 황기(黃旗) 꽂아라 오방기치(五方旗幟)를 동서 사방으로 좌르르르 벌리어 꽂고 공명은 동짓달 스무날 갑자일(甲子日)에 머리 풀고 발 벗고 단전(壇前)에 내도하여 노숙(魯肅) 불러 이른 말이
2
「자령(子敬)은 본진으로 먼저 돌아가서 주공근(周公瑾)을 상대하고 용병이나 잘 하소서. 양(亮)이 지금 비는 바에 만일 응함이 없을지라도 괴이케 아지를 마오」
3
노숙청령(聽令)하고 본진으로 돌아가고 그때 공명 선생 단(壇)에 올라 앙천암축(仰天暗祝)한 후에 붉은 용봉기(龍鳳旗)에 한실모사(漢室謀士) 제갈량사명(諸葛亮司命)이라 써 붙이고 바람 소식을 기다릴 제 청룡 주작(靑龍朱雀) 양깃발이 현무지상(玄武之狀) 술해방(戌亥方)으로 펄펄펄펄 넘나드니 동남풍일시가 분명하다. 그때 공명 생각하되 이미 바람은 얻은지라 내 몸을 구하리라.
4
산발(散髮) 도선(徒跣)한(1) 채 학창의(鶴창衣)를 걷어 안고 백우선(白羽扇)을(2) 손에 들고 오강변(吳江邊)으로 내려가니 강천(江天)이 요확 샛별이 둥실 떴다. 지는 달이 비꼈난데 오강어구 매인 배에 상산(常山) 조자룡(趙子龍)이 앉았다가 선두(船頭)에 뛰어내려 읍하여 하는 말이
5
「선생은 외방군중(外邦軍中)에 안녕히 다녀오시며 동남풍은 무사히 빌어 계시나이까」
6
그때 또한 공명 반기 여겨 자룡의 손을 잡고
7
「양(亮)은 잘 다녀오거니와 현주9賢主)태평하며 제장(諸將) 군졸이 다 무사하뇨」
8
자룡 함께 배를 타고 오강을 저어 떠나가니 차강(此江) 신선(神仙)이 그 아닐런가. 공명은 자룡과 더불어 하구(夏口)로 돌아가고 그때 주유(周瑜), 노숙(魯肅)더러 이른 말이
9
「공명의 말이 그르도다. 공명은 제아무리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무불능통(無不能通)할지라도 정해년월(丁亥年月) 방금 융동시(隆冬時)에 동남풍을 제 어이 빌 수 있으리요」
11
「공명의 재략(才略)을 보오니 허언(虛言)할 사람이 아니오니 잠간 기다려 보사이다」
12
말이 끝나지 못하여 모진 바람은 지동치듯 구름은 뭉게뭉게 뇌성벽력(雷聲霹靂)은 우루루루, 빗방울은 뚝뚝뚝뚝 떨어지니 주유 대경(大驚)하여 북창을 열고 남병산(南屛山) 바라보니 단상의 깃발은 펄펄펄 나부끼어 현무기(玄武旗)를 가리키며 술해방(戌亥方)을 쫓아 왕래하니 동남풍일시 분명하다. 주유는 서성(徐盛)·정봉(丁奉) 양장(兩將)을 불러 엄숙히 분부하되
13
「공명의 탈조화(奪調和)는 귀신도 난측(難測)이라. 이 사람을 살려 두었다가는 동오(東吳)의 화근(禍根)이니 먼저 죽여 없애리라. 너희 양장은 남병산을 나는 듯이 올라가 공명의 머리를 버혀를 오라!」
14
양장 수령(守令)을 듣고 장창(長槍)을 비껴들고 남병산 올라가니 크게 부는 동남풍에 깃대 지끈 부러지고 뜬 떨어진 차일(遮日) 장막(帳幕)은 펄렁펄렁 흩날릴 제 좌우 산곡(山谷)을 둘러보니 집기장사(執旗將士)는 당풍입지(當風立地)요 지자(智者) 공명은 거지이구(去之已久)라 수단장사(守壇將士) 여짜오되
15
「선생은 제 지내고 바람 소식을 아신 연후 오강변으로 행하더이다」
16
서성·정봉 그 말 듣고 황황분주(遑遑奔走) 급히 걸어 남병산 얼른 지나 오강 어구 당도하니 물결은 워르렁 작파(作波)로다. 공명 선생의 거래 종적(踪跡) 호호망망(浩浩茫茫) 유예(猶豫) 미결에 수졸(水卒)이 들어 여짜오되
17
「작일(昨日) 일모시(日暮時)에 난데없는 일엽소선(一葉小船) 강상에 매였기로 양양강수(洋洋江水) 맑은 물에 고기잡는 어선이며 십리 장강(長江) 벽파상(碧波上)에 왕래하는 지룻밴가. 오호상(五湖上) 연월야(烟月夜)에 범상공(范相公) 가는 밴가. 야박진회(夜泊秦淮) 근주가(近酒家) 술 사 싣고 가는 밴가. 만단의심(萬端疑心)을 하였더니만 어떤 산발 도선(散髮徒跣)한 사람 학창의(鶴창衣) 걷어 안고 그 배 향해 오더니만 그 배 안에 일원 대장(犬將)이 선두(船頭)에 뛰어내려 읍하고 귀에다가 입을 대고 소근소근하며 끄덕끄덕하더니 둘이 그 배 함께 타고 노를 저어 갔사오니 공명인지 누구인지 모르나이다」
20
날랜 배를 잡아 타고 바람같이 쫓아갈 제 강상에 떴는 배는 흰 부채[白羽扇]가 뒤적이니 공명이 탄 배가 분명하다. 서성, 정봉 크게 외여 왈(曰)
21
「저기 가는 공명 선생 가지 말고 배 머물러 내 하는 말을 듣고 가소서. 우리 주공(主公) 대장(大將)께서 긴히 한 말 전코 오라고 신신부탁(信信付託)하시더이다」
22
그때 공명 먼저 알고 허허- 대소(太笑)하며
23
「서성, 정봉은 오지 말고 양(亮)은 이미 하구(夏口)로 가더라고 회보(回報)하라」
24
서성, 정봉 못 들은 체 점점 휘어 따라오니 자룡이 분(憤)을 내어 선두(船頭)에 썩 나서 크게 외여 하는 말이
25
「저기 오는 서성, 정봉 말 들어라 우리 선생 높은 재조(才操) 너희 나라 들어가서 동남풍 빌어 주고 유공히 가는 길에 너희 무삼 괴(乖)한 심사(心事) 해할 마음 두었단 말가. 너회 심사 먼저 안고로 하구로 가노라 일후(日後) 다시 보자 회보하라」
26
서성, 정봉 못 들은 체 양(兩) 돛을 치켜 달고 불고사생(不顧死生) 쫓아오니 자룡이 크게 외여 이른 말이
27
「너의 죄상(罪相) 죽여 마땅하나 위국지심(爲國之心)은 일반이요 양국화친(兩國和親)이 머지 않기로. 아직 죽이든 아니하니 이내 수단(手段)이나 시행(施行)하노라!」
28
철궁(鐵弓)에 왜전(矮箭) 먹여 각지손을 휘어들고 좌궁(左弓) 우겨지며 우궁(右弓)제쳐질까. 줌앞날까 줌뒤날까. 각지손을 지긋 떼니 바람같이 빠른 살 서성, 정봉 탄 배 돛대 와지끈 물에 텀벙 떨어지고 용총(龍총)은 끊어져 닻줄은 와르르르 뱃머리 빙빙빙 워르렁 출렁 자룡이 또 한살을 철궁에 먹여 들고
29
「서성, 정봉 말 들어라. 장판교(長板橋) 큰 싸움에 맹덕 (孟德)의 팔십만병 팔공산(八空山) 초목(草木)같이 내 한칼에 다 베었거든 조고마한 일폭(一幅) 소선(小船) 내 어이 그저 두랴. 가는 배 돛 지우고 오는 배 바라보니 백보 안에 들었구나」
30
각지손을 지긋 떼니 번개같이 빠른 살이 서성 쓴 투구 맞아 떨어지니 서성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사공더러 묻는 말이
33
「전일 장판교 싸움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맹덕의 팔십만 대군을 대전하고 본진(本陣)으로 돌아와도 후주(後主) 잠들어 깨지 않았다던 상산(常山) 땅의 조자룡이오」
34
서성, 정봉 그 말 듣고 할일없이 빈 뱃머리를 스르르르 돌리며 탄식하여 이른 말이
35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叔)은 덕(德)이 두터워 저런 모사(諜士) 명장(名將)을 두었건마는 오왕(吳王) 손권(孫權)은 다만 인자(仁慈)뿐이로구나. 천의(天意)를 거역치 못해 탄식뿐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