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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園硏究 (춘원연구) ◈
◇ 10. 「再生(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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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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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硏究 (춘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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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再生(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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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生[재생] 발표 당시에 이 「재생」만치 독자의 환영을 받은 작품도 조선에서 드물었거니와, 발표가 끝난 뒤에 또한 이 「재생」만치 빨리 잊히어 버린 작품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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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생」이 동아일보상에 연재될 때에 얼마나 많은 학생(그 중에서도 여학생)이 신문 배달부를 마치 정인이나 기다리듯 기다렸으며, 서로 소설의 전개를 토론하며 슬퍼하고 기뻐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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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치 전 조선의 청년 남녀에게 공전의 환영을 받은 「재생」이 또한 어찌하여 그렇듯 일찌기 버림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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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으로 초출발을 할 때는 춘원에게는 열과 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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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으로 재출발을 할 때는 겁과 ‘소심’과 ‘시험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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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으로 제3차 출발을 할 때는, 다시 회복한 자신 이외에 ‘어차피 신문소설이 아니냐’는 무책임한 느낌이 섞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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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에 대하여 너무도 무책임하였던 증거로는 이 소설의 중요 인물인 백윤희의 본댁이, 첫머리에는 다방골이라 하고 얼마 내려가다가는(이사도 안하였는데) 관수동으로 되고 더 내려가다가는 관철동으로 된 점으로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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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型的[전형적] 人物[인물] 이 소설에는 「무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의 전형적 인물이 등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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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 그는 미션 칼리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학교의 가장 전형적 여성이다. 허영심이 꽤 많고 정조에 대하여 분명한 관념을 못 가졌고, 눈이 높고, 그러면서도 판단력과 이지가 결핍된- 가장 전형적의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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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구─ 그는 고지식하고 꽁하고, 여자라는 것을 신성시하는 한 개 샌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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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 그는 예수교 계통으로 미국을 다녀온 가장 보편형의 인물로서 ‘지어서 하는 듯한 공순한 태도와 웃음’의 주인이요, 여학생들의 엉덩이를 추근추근히 따라다니는 인물이요 한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면 즉각으로 제2 후보자로 돌아서느니만치 변통성 좋은- 지금 보통 말하는 바 미국 박사라면 그 전면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타입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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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희─ 그는 조선식 ‘오입쟁이’라면 그 전폭이 설명되는 타입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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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주요 인물과 그 밖에 부속 인물 몇몇이 섞여서 한 개의 비극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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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미년 만세통에, 순영이는 그의 오빠와, 오빠의 친구 봉구와 함께 비밀 출판 등을 하다가 봉구와 오빠는 관헌에 붙들려서 囹圄[영어]의 몸이 되고 순영이는 다시 W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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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백윤희라는 부자가 등장을 하여 순영의 다른 오빠를 가운데 내세워 가지고 순영이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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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구는 만세통에 순영과 함께 숨어 다니면서 지내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옥중에서도 순영만 생각하며 자기 딴에는 순영도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하고 스스로 위로받고 있지만 정동 처녀의 대표적 성격을 가진 순영은 지난 시절의 소꼽놀이를 그냥 기억할이만치 한가하고 수구적의 여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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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순영의 오빠는 제 누이를 백윤희에게 선보일 양으로 순영을 기숙사에서 불러 내어서 함께 산보가자고 얼러서 동대문 밖 백윤희의 별장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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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갑부 백의 별장의 호화로움은 이 허영심 많은 계집애의 마음의 한편 구석을 단단히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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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순영의 마음에는 ‘이 세상에는 이러한 호화로운 생활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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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은 그해 겨울방학 때에 또 둘째 오빠에게 불리어서 오빠의 집에 나간 순영은 오빠를 따라서 그 밤으로 동래온천으로 갔다. 작자는 이때에 순영의 심리를 조금도 보여 주지 않았지만(않았는지 혹은 출판상 착오인지 불명하다. 왜 그러냐하면 滙東書舘[회동서관]판 「재생」에는 상편 38, 39의 양회가 유락되어 소설의 이야기도 연결이 안 된다) 순영은 필시 자기가 동래로 가는 사건에 대하여 무슨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순영은 자기 둘째 오빠의 위인을 알며 그 위에(작자는 역시 그런 말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여학생으로서는 백윤희에 대하여 자존심상으로라도 자기를 다시 찾을 것을 분명히 믿고 있었을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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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기의 동래행에 대하여 어떤 정도까지의(공포 섞인) 희망이라도 품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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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동래는 백윤희가 먼저 가 있었다. 그날 밤 순영은 백윤희에게 정조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이튿날 도로 학교 기숙사로 도망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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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다시 종교 학교의 기숙사 안에서 외양뿐은 경건한 생활을 거듭하고 있을 때에 난데 없는 밀고장이 학교 당국자에게 뛰쳐들었다. 즉, 순영은 백윤희와 동래 온천에서 정교를 맺었다는 사건에 대한 밀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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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은 딱 잡아떼었다. 그런 일이 없노라 하였다. 본시 신용 받은 순영이라 순영의 말이 서기는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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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학교의 의심은 좀 풀어 놓았지만 순영의 마음에는 다시 파도가 일었다. 이제는 자기는 깨끗한 사람이 못 된다는 생각이 통절히 가슴에 서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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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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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은 또 오빠의 집으로 나왔다. 나오고 보니, 세상은 기숙사보다 넓고 자유로왔다. 오빠는 이번은 노골적으로 ‘백이 원산 별장에서 기다리니 그리로 가자’고 달랬다. 순영은 ‘불덩어리같이 뜨거운 살이 그립고 힘있게 자기를 꽉 껴안던 두 팔이 그리워져서’ 오빠를 따라서 원산으로 갔다. 원산서는 오십여 일을 백윤희와 내놓고 부처 생활을 하였다. 그동안에 술도 먹어 보았고 담배도 배웠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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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열한시 차에는 해수욕장에 왔던 손님들이 많이 탔다. 순영을 아는 서양인과 조선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조금도 꺼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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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셔요. 나는 몸이 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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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침대로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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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일에 순영은 이만침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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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그해 가을에 감옥에 들어갔던 봉구가 나왔다. 감옥에서 몇 해 오로지 순영만 그리던 봉구는 출옥하자 곧 순영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러나 순영은 회답도 안하였다. 안하는 동안 비로소 봉구가 자기를 그렇듯 사랑하던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허영의 여인은 번민하였다. 번민이라야 인생으로서의 번민이 아니라, ‘백에게 갈까’ ‘봉구에게 갈까’하는, 양손의 떡 格[격]의 번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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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봉구를 충동하여 봉구에게 돈 오백 원을 만들게 하고 둘이서 釋王寺[석왕사]로 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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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시어요!”하고 순영은 봉구의 어깨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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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봉구는 퍽 싱겁게 대답하였다고 혼자 낯을 붉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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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뻐요 미스터 신이 그렇게 저를 사랑해 주시니깐 기뻐요, 저를 오래오래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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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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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래오래 아주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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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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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지요? 그런다고 그러세요! 네.(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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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한 여인은 자기의 허물을 감쪽같이 감추고 천진한 청년과 함께 음락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순진한 청년 봉구는 이 음녀를 그대로 잔뜩 믿기 때문에 아무 의심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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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석왕사에서는 의외의 일이 돌발한다. 즉 순영과 백의 관계를 아는 ‘선주’라는 여인이 나서서 무심코 순영에게(봉구와 동반했을 때) 향하여 금년 여름 원산서 애기나 배지 않았느냐는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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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봉구의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불길이 일어났을 때에 순영은 어떤 태도를 취하였나? 그는 변명치 않았다. 단지 자기 좌수 무명지를 이빨로 딱 하니 깨물어서 거기서 흐르는 선혈로 ‘영원불변’이라 쓰고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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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단의 효과는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봉구는 다시 힐난하지도 못하고 ‘내가 잘못했소이다’고 女神[여신] 전에 사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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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여행중, 순영은 봉구라는 인물에 대하여 비로소 연애를 느꼈다. 그 순진함이 마음에 푹푹 박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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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여행에서 돌아와서 한 달 미만에 백부자에게 시집(첩으로)을 가 버렸다. 그런데 시집을 가기 전날 순영은 이전 석왕사 갈 때 비용 기타의 오백 원을 곱다랗게 봉구에게 반송했다. 즉, 순영에게 있어서는 그 오백 원만 도로 주면 봉구에게는 아무 의무감도 느끼지는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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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 소설의 무대는 두 곳으로 갈라진다. 서울 동대문 밖 백 부자의 별장의 美花[미화] 순영은 깊은 안방에서 봉구가 힐난하러 올까 봐 전전긍긍히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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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봉구는 제 늙은 홀어머니를 버려 두고 서울서 자취를 감춘다. 그가 金英鎭[김영진]이라는 변명으로서 몸을 나타낸 곳은 인천 김모라는 취인소 중개점이었다. 그는 거기 점원으로 들어갔다. 애인을 금전에게 빼앗긴 봉구는 자기도 부자가 되어 자기를 차 버린 애인을 돌려 볼 마음으로 그곳에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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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日[후일]의 後悔[후회] 춘원이 이런 경우에 있어서 흔히 주인공으로 하여금 비장한 기분 아래 國士的[국사적] 행동을 취케 하는 것이 상투 수법이 었는데 여기서 그 비장벽을 버리고 가장 속적인 취인 중개점으로 가게 한 것을 춘원은 후일 후회했을는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소설의 말미에서 봉구로 하여금 취하게 한 입장은 위에 말한 그런 도정을 밟은 뒤에야 더 적절하겠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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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상자 측으로 보자면 이 발전은 가장 자연스런 것이다. 봉구와 같은 성격의 사람이 그런 경우를 당하면 그 길(중개점 점원)을 밟은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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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얼마 중개점에 있는 동안에 봉구는 주인의 신임을 얻고, 주인의 가정 내사까지 도맡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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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개점 김씨 집 가정 내막을 보면, 주인 김씨는 단지 호인이라는 一語[일어]로 끝날 사람이며 전처 소생 맏아들 ‘경훈’은 동경서 공부를 하는 학생인데 위인이 좀 부족하게 생겼고, 소박데기 맏딸(역시 전처 소생)이 있고 작은딸(지금 아내 소생) 경주도 좀 부족한 편인데 W여학교에 통학중이며, ‘경훈은 사랑 골방에 있는 금고를 엿보고 경주 어머니는 안방 금고를 엿보고 시흥집(맏딸)은 거기서 떨어지는 부시러기를 엿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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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서, 봉구는 주인 김씨 내외의 신임을 사고 작은딸 경주의 짝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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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金色夜叉[금색야차]」의 貫一[관일]과 같이 오로지 금전만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위에 자기를 차 던진 순영에게의 애착을 그냥 잊을 수 없는 봉구는 경주의 사랑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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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순영의 남편 백 부자도 월미도에 놀러 왔다가 이 김씨에게 米豆[미두]를 사려고 십만 석 팔기를 주문하였는데 그 증거금 이십만 원을 받아 가라는데 그것을 받아 올 역할을 봉구가 지게 되었다. 봉구는 이 기연을 통절히 느끼면서 이십만 원을 받아 오러 월미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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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작자의 붓은 조금 지나쳐서 월미도서 봉구로 하여금 여관 하녀가 아기 수레에 모시고 있는 아기를 걸핏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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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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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지르고 그 아기가 자기와 순영과의 아이라 단정을 하게 하였다. 생후 이 개월여의 어린애에게 능히 아무 예비 지식도 없이 이만한 판단을 어떻게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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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차차 복잡하여진다. 김씨의 맏아들 경훈은 좀 덜난데다가 어떤 사상 단체에게 이용되어 자기 아버지에게서 돈 삼십만원을 훔쳐 내려고 늘 벼르던 중이다. 그리고 이 날 봉구가 월미도로 간 날이 그 약속한 최후 기한이다. 그 날까지 삼십만 원을 변통치 못하면 피살당할 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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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백 부자에게 이십만 원을 받아 가지고 돌아온 봉구는 그 돈을 주인에게 전할까 하였으나 불행히 주인을 만나지 못하여 그냥 있던 중, 밤 아홉시경에 의외에 순영의 방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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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은 봉구가 제 남편에게 왔다 간 것을 알고 이즈음 차차 봉구가 그리워 오던 차에 봉구 생각이 심하여, 봉구에게 용서함을 빌러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뾰롱한 봉구는 마음으로는 통곡을 하였으나 표면 끝끝내 냉담하게 순영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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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김씨 집에서는 좀 덜난 위인 경훈이 돈을 빼앗을 양으로 제 아버지를 권총으로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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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혐의는 즉시로 봉구에게 씌워진다. 봉구는 주인 피해범으로 잡히어가고 그 봉구를 옹호한 죄로서 경주도 공범으로 잡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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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소설은 상편이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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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상반부와 하반부를 나누어서 말할 필요가 있다. 상반부를 쓰고 춘원은 병이 심하여 그의 폐를 하나 잘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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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수술 때문에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다행히 경과가 양호하여 다시 完人[완인]이 되게 되었다. 그러나 수술 때문에 소설을 오랫동안 신문 지상에서 끊쳤고, 건강이 회복된 뒤에야 다시 집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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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巧[기교]에 完全[완전] 춘원의 전 작품을 통하여 이 「재생」 상편만치 기교에 있어서 완전한 자가 없다. 거기는 백 부자의 집이 茶屋町[다옥정]이 되었다. 觀水洞[관수동]이 되었다 한 희극은 있지만, 그 외에는 일점의 나무랄 데가 없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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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트를 꾸미는 데 있어서 너무도 흥미 일방으로 만든 것과 취급된 문제가 너무도 「금색야차」 식이기 때문에 통속소설의 비방은 면치 못하겠지만, 기교에 있어서는 만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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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하편이 씌어지기 때문에 전편을 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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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에서는 어떻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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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격의 사람이면 이렇게 진전되어야 하겠다는 점을 하편에서는 무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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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봉구가 국사적 기분으로 해외로 탈출치 않고 주식중개점 점원으로 취직한 등으로 성격을 주요시한 것이 분명하지만 상편에서는 성격을 무시하고 사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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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 봉구, 백윤희, 경주 등 몇 사람이 등장하여 전개될 장면은 「재생」 하편과는 다를 것이다. 하편에 있어서는 이 소설 전체를 신파 비극적 결말을 맺게 하기 위하여 旣製[기제]의 코스에 억지로 인물들을 끌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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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작자는 ‘이 인물들이면 이렇게 전개되리라’는 필연 코스를 취하지 않고 신파 비극식의 코스를 만들어 놓은 뒤에 인물들을 억지로 그리로 몰아 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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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하편에 있어서는 등장 인물들은 제 성격에 맞지 않는 코스를 가느라고 그야말로 작자의 채찍에 몰려서 허덕허덕 쫓겨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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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편의 코스는 작자가 본시 「재생」을 쓰려고 시작한 때의 기도는 결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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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부터가 「재생」인 이상에는 종말에 있어서 무슨 ‘재생’적 사건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종말에서는 여주인공 순영은 구룡연 물에서 비참한 최후를 보았으며, 남주인공 봉구는 마음에 없는 생활을 자포적 기분으로 ‘사회나 위하여 바치자’고 자기희생적 심경을 취하였으니 거기 무슨 ‘재생’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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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지상에 게재 당시에 그렇듯 환영받고 끝난 뒤에 그렇듯 빨리 잊힌 연유도 여기 있다. 신파 비극적 사건의 매력에 끌렸던 것이요 신파 비극적 安價[안가]의 매력이기 때문에 장속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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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편을 이하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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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으로 잡혀간 봉구는 어떠한 심문에도 입을 봉하고 대답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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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자기의 이름이 봉구인 것과 같이 封口[봉구]이다. 봉구의 성격으로는 함직한 일이다. 영웅감으로라도 그랬을 것이며 염세적 자포 기분으로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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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침묵은 법정상의 봉구의 입장을 매우 나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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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순영은 이 때문에 매우 마음을 썼다. 여기는 작자의 말 일절이 가장 이때의 순영의 심정을 잘 설명할 것이다.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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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으로 하여금 이렇게 마음의 아픔을 깨닫게 한 것은 물론 백(남편)에게 대한 불만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어린애를 낳음으로 하여서 생긴 정신의 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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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순영을 위로하여 주기 위하여 인순이라는 여성이 등장을 한다. 순영의 동창 선배요 기숙사 시대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이런 타입의 여성은 춘원이 즐겨서 작품상에 등장을 시키나니 「무정」에 있어서 ‘김병욱’이와 한 타입의 여성으로서 이지, 의지, 주장, 도덕관, 연애관 등이 비상히 밝고 활발성과 친절성이 풍부하며 그 위에 또한 교만치는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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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가 유리하게 됐읍니다. 참 어쩌면 그렇듯 기지가 많으시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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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재판소 사건은 유야무야중에 없어져 버린다. 남편도 그다지 의심을 안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박한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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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하고 순영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책망하였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 남편을 사랑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내 ‘의무’가 아닐까? 어린애(봉구와의 새에 낳은 그러나 표면은 백씨의 아이)는? 누가 알길래? 나 밖에 누가 알길래. 그렇다. 자기는 이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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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고 안심하고 도리어 남편이 자기를 의심할 것을 근심한다. 수일 후 검사국에 불리운 그는 이전 공판정에서의 공술을 전면으로 부인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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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봉구의 사건은 유리하게 전개될 듯하다가 다시 떨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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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봉구는 그런 것을 모른다. 자기가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또한 지극히 미워하던 순영이가 공판정에서 그렇듯 자기를 변명하여 준 일에 대하여 감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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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내렸다. 봉구는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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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작자의 붓은 외도로 벋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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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형 판결에 대하여 봉구는 맹렬히 생의 집착을 느꼈어야 할 것이다. 일찌기 순영을 굽어보기 위하여 취인 중개점으로 달아났던만치 凡人[범인]인 봉구는 여기서 사랑하던 순영의 悔心[회심]까지 보았는지라 무엇보다도 생을 가장 바랐어야 할 것이다. 하루바삐 세상에 나가서 다시 순영을 품에 안고 즐겁게 살 날을 생각하며 ‘살려 살려’ 애타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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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춘원의 비장벽은 이 남주인공으로 하여금 비장한 코스를 밟게 하기 위하여 성격을 무시하고 외도를 밟게 하였다. 여기서 봉구는 한 희극적 영웅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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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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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장한 영웅감으로 봉구는 공소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사형의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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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변호사에게는 봉구의 이러한 심리는 알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였다. 사람이란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은 것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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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지만 이 심리는 윤 변호사뿐 아니고 온 독자도 이해치 못할 자다. 작자 자신도 이해치 못할 것이다. 단지 작자의 기정 코스에 봉구를 억지로 끌어 온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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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사형 선고를 받은 뒤의 봉구의 성격은 지리멸렬이었다. 그는 대체 지사적 비장한 기분으로 사형을 달갑게 받으려 하는지? 혹은 죽음에 대하여 극도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사람인지 독자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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混亂[혼란]된 서술 감옥 안에서 윤 변호사의 면회를 받고 도로 감방으로 돌아온 뒤의 수십 면은 독자로서는 도저히 갈피를 차릴 수 없는 혼란된 서술이다. 작자의 붓이 지향 없이 난무할 뿐이지 합리적의 심리 진전은 얻어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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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난무하던 붓을 작자는 장차 어떻게 맺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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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받은 지 닷새째 되는 날 즉, 이 날 안으로 공소를 하지 않으면 일심 판결이 확정되는 날 봉구는 갑자기 생에 대한 집착을 느꼈다. 그러나 작자는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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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변호사에 대하여 그렇게 큰 소리(공소할 필요가 없다는 말)를 하여놓고 또 검사와 판사에게 그렇게 큰 소리를 하여놓고 이제 다시 공소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염치 없는 일같이 생각되었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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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술하였다. ‘생’에 대한 욕망에도 능히 염치 문제가 낄 틈사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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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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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봉구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차마 典獄[전옥]에게 얘기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를 여지없이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때문에 봉구는 더욱 괴로왔다. 그는 주먹으로 벽을 때려보았다. 발로 방바닥을 굴러 보았다. 그러나 튼튼한 벽과 방바닥은 다만 텅텅 하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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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봉구는 정신 빠진 사람 모양으로 키보다는 높은 창에 붙어서 멀거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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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애타하고 초조해 하는 봉구의 가슴의 한편에 이 생사 문제보다도 더욱 긴하게 염치 문제가 개재할 여유가 있을까. 단지 독자의 마음을 충동키 위하여는 주인공 성격을 무시하고 붓이 외도로 벋어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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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봉구의 생사가 어떻게 될지 미지수로 남겨 둔 채 작자는 슬쩍 딴소리를 꺼내었다. 일찌기 「무정」에 있어서 영채로 하여금 대동강에 빠져 죽으러 길을 떠나게 한 뒤에 붓을 딴 길로 옮겨서 독자로 하여금 속을 타게한 奇謀[기모]를 작자는 또 여기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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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富者[부자]의 別莊[별장] 무대는 동대문 밖 백 부자의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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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은 어떤 날 본마누라 문병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매 남편은 웬 머리땋아 늘인 여자와 백주에 同衾[동금]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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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는 당연히 부처 싸움이 일어난다. 그런 뒤에는 자기 집을 뛰쳐나와서, 이젠 자기가 재학하던 학교에 피 부인을 찾아 간다.(여기도 또한 상편에서는 W학교더니 여기서는 V학교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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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하러 피 부인을 찾았는지 알 수 없다. 작자도 설명치 않았다. 이 때의 순영은 반 광란의 인물이라 작자도 광인의 행동에는 설명을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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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피 부인은 처음에는 순영을 냉담하게 대하다가 마지막에는 순영을 동정하여 순영을 입맞춘다. 그때 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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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부인의 입맞추고 등을 만짐은 순영의 영혼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마치 전기와 같이 순영의 영혼을 찌르르 하게 흔들어 들추어서 새로운 영혼을 이루는 듯하였다. 순영의 눈물흐르는 눈앞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였던 광명의 세계가 번뜻 보였다. 아침 햇빛이 넘치는 새로운 세계에 끝없는 푸른 벌판이 열린 듯하였다.(약)
119
순영은 자기가 하려고 가지고 왔던 말을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오직 한 마디 할 말이 있다 하면 그것은
120
‘선생님 말씀은 과연 옳으십니다. 저도 오늘부터는 선생님 말씀대로 새생활을 시작하겠읍니다. 제 맘이 흐리고 어두워서 보지 못하였던 것을 선생님께서 분명히 보여 주시었읍니다’할 것뿐이다.
 
121
운운하여 일견, 순영은 진심으로 회오를 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있어서 누차 순영이의 임시적 회오를 보고 희망을 붙였다가 낙망하고 한 독자는 역시 이를 신용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과연 신용할 수 없었다.
122
춘원의 작품에 흔히 나와서 도리어 장면을 그르치는 것이 이 극적의 경건한 씬을 만들기 위하여 작자는 작중 인물의 성격으로서의 필연적 발전을 고려치 않고 이런 장면을 끼우기를 즐겨한다.
123
그러는 일방 감옥에 있는 봉구는 사형의 선고를 받은 몸이라 당연히 죽을 것이지만 하늘이 그의 무죄를 돌보아 주었던지 우연히 진범인 경훈이가 사상 관계 사건으로 잡혔기 때문에 봉구의 冤罪[원죄]가 드러나서 봉구는 다시 광명한 일월을 보게 되었다.
124
비장한 장면을 부러 만들기 위하여 봉구의 성격을 무시하고 ‘묵묵히 사형을 기다리는 봉구’를 만들었던 작자는 이 소설의 기정 코스 (봉구의 무죄출옥)을 밟게 하기 위하여는 좀 어색한 필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사정에 경훈과의 대면장이며 봉구의 출옥 장면은 슬슬 넘겨 버려서 실감을 주지를 않았다.
125
봉구와 함께 출옥한 경주(인천 김 의관의 작은딸)는 도로 인천으로 내려간다. 그 경주를 정거장까지 전송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봉구는 돌아오는 길에서 의외에도 순영이를 보았다.
 
126
순영도 비극의 코스를 밟는다.
127
그는 피 부인을 만난 날부터 남편의 집에서 나왔다.
128
나오기는 나왔다. 그러나 순영과 같은 성격의 사람으로서는 다시 들어갈 길을 예정하지 않고는 나오지를 않을 것이다. 법정에서 봉구를 변호하고 돌아와서도 그냥 남편의 품을 그린 이 여자이매.
1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이 소설에 비극적 결말을 짓기 위해서 순영으로 하여금 감연히 남편의 집에서 뛰쳐나오게 하였다. 뿐더러 순영은 그냥 남편의 집으로 안 갔으며 남편이 누차 사람을 보내서 도로 오라 할 때도 순영은 귀도 안 기울이고 남편이 직접 와서 달랠 때도 여전히 잡아떼었다.
130
이것은 백씨의 성격으로도 하지 않을 일이요, 순영이의 성격으로도 못할 노릇이다. 단지 작자의 비장벽이 순영을 그런 코스로 인도한 따름이다.
131
이 순영의 수난적 비극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기 위하여 작자는 더욱 곡필을 하였으니 즉 인순이가 순영이에게 대한 태도이다.
132
인순이는 아주 온순하고 애정의 權化[권화]로서 일찌기는 순영이가 백의 첩 노릇을 할 때도 함께 월미도까지 가서 벗을 하여주던- 순영이에게는 지기지우였다. 순영이가 남편의 집을 뛰쳐나와서 쓸쓸한 생활을 할 동안 순영은 인순이라도 좀 만나 보고 싶어서 인순이에게 편지를 하였다.
133
그랬는데 인순에게서는 회답도 오지 않고
 
134
(상략)어느날 저녁 신문에 인순이 사진이 나고 인순은 미국에 유학 가는 길로 그날 밤차로 일본을 향하여 떠난다는 말이 났다. 그 기사를 볼 때에 순영은 실망과 분노와 시기가 한데 섞인 무서운 불쾌감을 깨달았다.
135
그 이튿날 저녁 엽서 한 장이 왔다-.
136
‘편지는 받았으나 길 떠날 준비에 분주하여 가지 못하였으며, 옛 일을 다 회개하고 새생활을 시작하려 하신다니 기껍사오며 아무쪼록 주의 뜻을 잊지말고 나아가시기를 바라나이다. 총총 이만.’
137
이렇게 냉정한 편지다.(약)
 
138
작자가 상편에서 보여 준 인순이의 성격은 결코 불우에 있는 친구를 냉대할 사람이 아니다. 단지 작자가 고의로 순영의 환경을 더욱 비참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막을 꾸며 넣은 것이겠으나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고의로 인순을 얄밉게 보는 결과를 짓게 한 것으로서 작중 인물에게 대하여 범한 작자의 죄과라 아니할 수 없다.
139
美國[미국] 博士[박사] 金氏[김씨] 登場[등장] 이 고적한 순영에게 또 미국 박사 김씨가 추근추근 찾아 다닌다.
140
함께 미국이고 어디고 얼려 가자 한다. 김 박사는 그 새 많은 여자의 엉덩이를 쫓아 다니다가 다 실패를 하고 다시 순영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순영이의 뱃속에 지금 생장하는 백씨의 씨를 떼어 버리자, 그리고 멀리 말썽 없는 고장으로 가자, 연하여 꾀는 것이었다.
141
이 유혹에 솔깃하면서도 주저하고 주저하면서도 거절하는 기괴한 심리를 탄복할 수밖에 없다. 아직껏 순영의 성격을 잃어 버리고 비극적으로만 끌어가려고 갈팡질팡하던 붓은 여기서 수십 頁間[혈간]을 다시 제 길로 들어서서 움직인다.
142
그리고 그동안의 한 에피소드로서 작자는 조선 사회의 일면을 독자의 앞에 공개한다. 즉, 이 불운한 여성을 좀 어떻게 건드려 볼 양으로 신문기자며, 문사라는 일당이 연하여 찾아와서 서로
143
“기미 도오까? 얍바리 와가, 슝에이상와 비진다로? (자네 어떤가? 역시 우리 순영 씨 이쁘지?)”
144
“오이, 꼬라. 와가 슝에이또와 게시카란소. (에이, 이사람아. 우리 순영씨라고 해서는 안 되지)”
145
등등 야료를 하다가 순영에게 욕을 얻어 먹은 뒤에는 그 분풀이로 순영의 사건을 아주 고약하게 신문에 낸다.
 
146
이런 등등 아주 수난의 생활을 하던 순영은 어떤 날 결심을 하고 봉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출옥한 뒤에도 봉구는 순영을 잊지 못하여 앙앙불락하고 있었다. 이 꽁한 샌님은 순영을 미워하고 싶으나 미워하지도 못하고 가슴만 태우며 있다. 그런데 인천 김경주에게서 지금 급한 일이 있으니 내려와 달라는 통지를 받고 바야흐로 길을 나서려 할 때 순영이 봉구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147
미워하려 하나 미워할 수도 없던 순영의 방문을 받은 봉구는 필시 마음은 환희로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 냉연히 맞았다. 순영은 봉구에게 울면서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봉구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하다.
148
이 냉담(表面上[표면상]의)은 어떤 정도까지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후일 경주의 그렇듯 끓는 애모를 차 버리고 일생을 자발적 독신 생활을 하니만치 순영을 연연불망하는 봉구로서 끝까지 이렇듯 냉담한 표면을 가식할 수가 있었을까.
149
이것은 단지 작자가 이 작의 기정 결말로 봉구를 끌어가기 위하여 봉구의 행동을 강제하였다.
 
150
장면은 일전하면서 인천.
151
경주의 어머니 임종이다. 경주의 아버지는 비명횡사를 하고 그의 장자인 동시에 상속인인 경훈이는 尊親族[존친족] 故殺犯[고살범]으로 옥중에 있는 지라, 그의 유산에는 문제가 많아지게 되었다. 제각기 먹어 보겠다고 달려든다. 더구나 경주의 어머니조차 다시 일어나지 못할 중태라 가정 소란이 대단하였다.
152
여기서 경주의 어머니는 첫째로는 딸 경주의 장래를 부탁하고자, 둘째로는 재산 정리를 부탁하고자 고인 적부터 신임해 오던 봉구를 부른 것이다. 경주 모의 임종석에서 넘어가는 마지막 목숨을 억지로 멈추고 자기 딸과 봉구의 손을 마주 잡혀 놓고 ‘내 딸을 거두어 주게’하는 부탁을 내리고 드디어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정성에도 감동치 못하는 봉구. 봉구는 그래도 경주를 아내로 맞을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의 생각하는 것은 순영뿐이다. 순영 이외의 여인은 여인으로 볼 줄을 모르는 봉구이다.
 
153
이리하여 이 소설은 여기서 일단락을 맺고 그리고는 껑충 뛰어서 삼 년이라 하는 세월이 흘러간 뒤의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이 소설의 전체를 망쳐 버린 모순된 비극을 향하여 급템포로 내려간다.
154
삼 년 뒤.
155
순영은 영등포 방직공장의 여공으로 그 새 모진 목숨을 부지하여 왔다. 그때는 이전 백씨와 헤어질 때에 그의 배에 들었던 백씨의 씨가(계집애다) 생겼다.
156
백씨에게서 전염된 성병 때문에 계집애는 소경이 되었다.
157
이 순영이는 지금 그의 생애의 청산을 하려는 길에 마지막으로 봉구를 한번 더 만나 보고 싶어서 봉구를 찾아간다.
158
그때는 봉구는 비통한 가슴을 부둥켜안고 금곡서 농사를 짓고 야학 선생 노릇을 하며 뜻 없는 여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159
이때의 봉구의 심경을 작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160
야학을 가르치고 눈 위에 비친 달을 밟으면서 늦게야 집으로 돌아올 때에 그는 눈 위에 끌려 오는 혹은 앞서 가는 자기의 외로운 그림자를 보고 울지 아니하였던가. ― 울 때마다 그의 눈물 속에는 순영이를 생각하는 깊은 슬픔이 녹아들지 않았던가. 경주가 인천에 있는 자기 집도 버리고 봉구를 따라와 진일 궂은 일을 다 하여 가며 오직 봉구의 곁에만 있기를 원할 때에 봉구는 경주의 그 참되고도 측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가슴에 깊이 박힌 순영의 생각을 떼어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중략)
161
‘나는 이로부터 혼자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나는 혼자다. 영원히 혼자다.’
162
‘인제부터 조선의 강산이 내 사랑이다. 내 임이다. 불쌍한 백성이 내 사랑이다. 내 임이다. 죽고 남은 이 목숨을 나는 그들에게 바치련다. 그들과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들과 같이 고생하고 같이 굶고 같이 헐벗자! 그들의 동무가 되고 심부름꾼이 되자, 종이 되자!
163
모든 빛나는 것이여! 모든 호화로운 것이여. 모든 아름다운 것이여! 다 가라. 조선의 백성들이 다 안락을 누릴 때까지 내 몸에 안락이 없으리라, 다 한가히 놀 수 있을 때까지 내게 한가함이 없으리라.’
164
‘만일 순영과 같이 한다면?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꿈일러라. 다시 오지 못할 꿈일러라.’
165
‘가자! 우리 임에게로 가자! 불쌍한 조선 백성에게로 가자! 거기서 그들과 같이 땀을 흘리고 그들과 같이 죽어 그들과 같은 공동묘지에 묻히자.’
 
166
이 센티멘탈한 문장으로 엮어 내린 봉구의 비장한 결심은 어떤 전제가 있기 전에는 존재치 못할 것이다. 봉구의 성격으로는 이만한 자기 학대벽은 가졌을 사람이지만 이런 결심을 내리기에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167
순영은 봉구에게 안 온다는 條件[조건] 즉 순영이 영구히 봉구에게 올 가망이 전무하다 하는 조건이다.
168
이 땅에 바치자 한 봉구의 결심은 작자도 말한 바와 같이 ‘순영이 이미 없으니 이 땅에나 바치자’는 자포적 심경에서 나온 자다. 이러한 심경으로서 자기를 학대를 하는 사람에게 순정이 다시 찾아온다 하면 그 결과가 어떠할까?
169
그는 몇 번 더 냉담을 가식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자의 눈물을 보면 그는 이 앞에 감읍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70
경주도 봉구의 집에 와서 산다. 그렇다고 夫妻[부처]가 된 바가 아니다. 경주는 봉구가 너무도 그리워서 ‘그저 곁에 두어 두시오’하고 와서 함께 한 집에 살 따름이다. 이리하여 이 금곡 농촌에는 殉情的[순정적] 자기 희생자 한 사람과 자포적 자기 희생자 한 사람이 세상에 기묘한 생활을 하고 있다.
171
여기 순영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사흘 동안을 무위히 있다가 元山[원산]으로 가노라는 한 마디를 남겨 놓고 다녀간 지 엿새 만에 금강산 온정리에서 부친 순영의 편지는 왔다. 그 편지에는 자기는 자살하러 이곳에 왔으며 이 편지가 ‘사랑하는 봉구 씨’에게 이를 때쯤은 자기는 벌써 죽었으리라는 말이 적히어 있다.
172
봉구는 곧 행장을 수습하고 금강산을 향하여 떠난다.
173
外金剛[외금강] 九龍淵[구룡연]의 씬 외금강.
174
구룡연 가는 길.
175
소경 딸을 이끈 초라한 여인이 단풍의 금강산을 구룡연을 향하여 길을 더듬고 있다. 비극적 奇遇[기우]가 생긴다. 즉 순영의 모교 생도들이 수학여행을 온 것이다. 이리하여 상거 만 리나 되는 양자의 대조가 독자의 눈앞에 展列[전열]된다.
176
그 뒤에는 이 모녀는 폭포 속으로 잠겨 버린다. 봉구가 허덕허덕 달려왔다.
177
시체를 얻은 봉구.
178
‘아아. 순영이! 안 죽어도 좋을 것을’자기 학대벽을 다분히 가진 이기청년은 일이 저질러진 뒤에 후회를 한다.
179
얼마나 사랑하던 사람인고. 어떻게나 사랑하던 사람인고. 그런데 그 사람은 소리 없이 시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구나! 한 마디만 말을 하였으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봉구 자기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순영을 사랑하여 왔다는 것과 순영의 지나간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겠다는 말만 들려 준 뒤에 순영이가 죽었더라도 한이 없을 것 같았다.
180
금곡 왔을 때에 봉구가 한 마디만 부드러운 말을 하여주었더라도 순영이가 죽지는 아니하였을 것을―순영을 사랑하노라고 한 마디만 하여주었던들 순영은 자기의 품 속에서 남은 세상을 살아 갈 수도 있었을걸―세상에서 다시 지접할 곳이 없어 자기를 찾아온 순영을 자기마저 냉대하여 죽음의 나라로 보낸 것을 생각할 때에 봉구의 가슴은 칼로 에는 듯이 아팠다.
181
그러나, 봉구와 같이 자기 학대벽이 강한 인물에게는 순영의 주검 앞에서 자기의 지난 실수를 스스로 책하는 편이 통쾌하지 않을까. 순영과 일생을 같이하여 調信之夢[조신지몽]을 歎[탄]을 하느니보다는 이 편이 행복될 것 이다.
182
그리고 이 아래서 희극 한 개가 더 연출되고 이 상하 편의 「재생」은 막을 닫친다.
183
순영의 오빠 순홍이 갑자기 뛰쳐나온다. 수년 전에 어디다가 폭발탄을 던지고 잠적하였던 순홍이가, 봉구가 홀로 밤에 순영의 시체 앞에 밤경을 할 때에 그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누이의 시체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표연히 어두움 가운데로 사라지는 것이다.
184
이리하여 이튿날 神溪寺[신계사] 동구 밖에 새 무덤이 생기고.
185
‘나의 사랑하는 아내 순영의 무덤. 무정한 봉구는 울고 세우노라.’
186
하는 비석이 섰다는 것으로 「재생」은 아무 ‘재생’도 없이 종막을 고한다.
 
187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이 결말은 작자의 본시의 기도는 아니리라.
188
‘순영을 밉게 보기 때문에 봉구는 세상을 버리고 농촌에 숨었다,’
189
그때에 세상살이에 시달리고 시달린 순영이(어떤 곡절로든) 봉구를 찾아온다. 봉구는 아직껏 그렇게 밉게 보던 순영을 만났다. 순영의 눈물을 보았다. 봉구가 진심으로 순영을 미워하던 것이 아니었다. 순영의 눈물을 볼 때에 봉구의 마음은 다 녹아 버렸다.
190
‘그리고 회개한 여인과 용서한 남자의 두 사람은 새로운 활기로써 그들이 재생의 길에 나선다.’
191
이런 기도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 하면 「재생」이라는 제목은 무의미하다.
192
이 作[작]의 死因[사인] 요컨대「재생」은 그 단원에 있어서 이것을 비극적 비장미를 내게 하기 위하여 작중 인물들을 억지로 딴 길로 끌어들인 데 이 작의 사인이 있다.
193
이「재생」전체를 읽은 뒤에 독자의 머리에 그냥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비극이었다 하는 개념 이외에는 남는 자가 없다.
194
무엇이 이런 비극을 지었느냐?
195
작자도 대답 못할 것이고, 독자도 대답 못할 것이다. 여기 대답하려면「재생」의 내용을 전부 다시 되풀이하여야 하지, 합리적 원인을 들 수가 없다.
196
왜?
197
이 소설 자체가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으니까.
198
이 소설의 내용이 흥미 일방인지라, 독자는 그 압력에 끌리어서 단숨에 말미까지는 읽을 것이다.
199
그러나 독파한 뒤에 深思[심사]할 근터리를 주지 못한 이 소설은 따라서 ‘읽기를 강제하고 생각키를 금한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200
흥미에 끌리어서 一氣[일기] 독파한 뒤에 맹랑한 느낌을 받는 연유가 여기 있다. 이 소설은 소설 속의 몇 개의 인물의 行狀記[행장기]지 그것이 합쳐서 한개 인생을 보여 주지 못하였다.
【원문】10. 「再生(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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