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春園硏究 (춘원연구) ◈
◇ 11. 「麻衣太子(마의태자)」 ◇
해설   목차 (총 : 15권)     이전 11권 다음
1938.1~4
김동인
1
春園硏究 (춘원연구)
2
11. 「麻衣太子(마의태자)」
 
 
3
「麻衣太子[마의태자]」도 東亞日報[동아일보] 「마의태자」도 춘원의 대부분의 장편소설과 마찬가지로 동아일보 지상에 연재된 것이다.
4
그러나 이 「마의태자」에 대하여서는 그다지 쓸 말이 없다.
5
첫째로 이 「마의태자」는 작자의 본래의 플랜에 의지하여 쓴 자가 아닌 모양이다. 이 소설이 근 칠백 頁[혈]이나 되는 거책인데도 불구하고 마의태자에 관한 부분은 겨우 그 말미에 數頁[수혈]에 지나지 못하고 사백여 頁[혈]이나 되는 대부분을 弓裔[궁예]의 이야기로 종사하였다. 아마 작자는 본시 먼저 궁예로 시작하여 신라 말년의 어지러운 정계를 성큼성큼 소개하고 마의태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본편에 착수하려던 것이 서편이 본격적으로 되고 너무 길어지므로 본편인 部[부]를 간략히 꾸민 모양이다.
6
역사로 고찰하자면 金傅[김부] 왕의 세자 되는 마의태자라는 사람은 ‘단지 역사를 배경삼아 가지고 태자의 인물과 성격과 행사 등은 순전히 작자가 창작을 하여서뿐 한 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지 史上[사상]의 마의태자는 이야기의 주인이 될 거리가 없다.
7
시정의 한 호한이던 김부라는 사람에게 갑자기 왕위가 구을러왔다. 그 덕에 부의 아들이 태자가 되었다. 그 뒤 신라가 망하매 왕 되는 부는 고려의 臣子[신자]가 되어 고려로 갔는데 태자는 그것을 깨끗다 아니하고 皆骨山[개골산]으로 들어가서 여생을 마의를 입고 초근을 먹으며 보냈다 하는 것 뿐이다. 그런지라 난국의 신라 말년을 배경으로 이 마의태자를 주인공 삼아 한 개 이야기를 꾸미자 하면 절호의 것이 꾸미어질 것이다.
8
춘원도 처음에는 그것을 뜻하였으리라. 더구나 마의를 입고 석굴에서 여생을 보냈다 하는 태자의 비장한 마지막은 춘원의 즐겨하는 바로서, 이 한 가지의 효과를 겨누고라도 넉넉히 춘원이 취재할 만한 자이다.
9
그러나 그 시초를 궁예에서 한 춘원은 궁예전을 창작해 내는 흥미에 쏠려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이 반도에 대제국을 건설하려던 궁예의 雄志[웅지]도 춘원의 비위에 맞는 자로서 춘원은 이 흥미 때문에 이 소설의 제목까지도 잊어버리고 붓을 그리로만 돌렸다. 그러면서도 거북하기는 한지 내려가다가 한두 번 억지로 장래의 마의태자를 등장시키고 그 註[주]로서 ‘이 분이 장차 마의태자가 되실 분이다’고 암시는 잊지 않고 하였다.
10
그런지라 이 이야기의 제목이 「마의태자」라 된 것은 잘못 된 일이다.
 
11
또한 이「마의태자」는 소설이 아니다.
12
소설로서의 일관한 이야기의 줄기가 없고 계통이 없다.
13
이 이야기에는 소설적 의미의 주인공도 불분명하다. 사백여 頁[혈]이 되는 전편으로 끝이 났다 하면 당연히 궁예를 주인공이라 하겠으나 그 뒤로 근 삼백 頁[혈]이 첨가되었으며 더구나 궁예가 죽은 뒤 근 이십 년 후의 일에 까지 미쳤으며 제목까지가「마의태자」로 되었으니 궁예를 주인공이라 할 수도 없고 만약 궁예와 마의태자의 새에 무슨 유기적 연락이라도 있었으면 또한 그렇게라도 볼 수가 있겠지만 그야말로 궁예와 마의태자는 소설적으로 아무 연락도 볼 수가 없으니 말하자면 두 개의 이야기를 맞이은데 지나지 못한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14
그것으로뿐 아니라 소설로서의 요소는 거지반 무시당하였으니 이것은 소설로는 볼 수가 없는 바다.
 
15
무론 단순한 야사도 아니다. 이 이야기의 안에 나오는 사건은 대부분이 춘원의 제작으로서 정사와 야사에서 얻어 볼 수 없는 바다.
16
이 이야기의 초두는 소설적 필법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차차 내려가면서 사건이 복잡다단하여 감을 따라서 어느덧 어름어름 변하여 버렸다.
17
喜劇的[희극적] 唱劇調[창극조] 더우기 전에 「일설 춘향전」을 쓰기 위하여 李海朝[이해조] 편의 창극 춘향전 「옥중화」를 읽고 그 인상이 아직 꽤 많이 머리에 남아 있는 춘원은 이「마의태자」가운데도 희극식 창극조를 많이 집어 넣었으니 에컨대 궁예가 아슬라성에서 나날이 명망이 높아 갈 때에 그의 선배 되는 양길이 이것을 시기하여 원회를 보내어 궁예를 모살하려 할 때, 양길의 딸 난영(그는 궁예의 애인이다)은 제 애인을 구하고자 아슬라성으로 달려온다. 자객인 원화는 가장 친우인 체하고 궁예를 찾아와서 궁예와 대작을 하면서 바야흐로 칼을 몰래 뽑으려 하는 이 위급하고 아슬아슬할 찰나에 남복한 난영이 달려오는 것이다.
 
18
난영은 궁예의 앞으로 한 걸음 가까이 나가며 넌짓 팔을 들어 노래 가락으로
19
‘석남사 깊은 밤에
20
눈 헤쳐 찾던 사람
21
아슬라 머나먼길
22
어이하여 오다던고
23
독한 칼 품은 옛 벗을
24
삼가소서 함이라.’
25
하고 머리에 쓴 오각선을 벗어 버렸다. 그것은 난영이었다.
 
26
이런 창극식 장면이 수없이 나온다.
27
무론, 신라시대에는 가무를 좋아하였다는 말은 전하되 그것도 정도 문제이다.
28
또한 그 풍속과 제도에 있어서도 좀더 고전 색채가 나도록 제작을 하였어야 될 것이다. 너무도 현대식이기 때문에 가다가 소좌가 나오고 중위 하사 졸이 나올지라도 돌연감을 느끼지 않을 만치 되었다.
29
등장 인물의 이름이 근 백 개나 나오는 것도 독자를 번거롭게 하고 갈피를 차리지 못하게 한다. 모두가 계통 있는 한 개 줄기를 뽑아 내지 않기 때문이다.
30
한 개의 講談[강담] 말하자면 순전한 한 개의 강담이다. 高座[고좌]에 앉아서 부채를 부치며 이야기로서 들려 줄 종류의 것이다.
31
이만한 내용을 일껏 꾸며 가지고 왜 한낱 강담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기우의 장면을 즐겨하는 춘원은 「마의태자」가운데도 여러 군데 기우를 집어 넣었는데 궁예왕이 산중에서 죽을 때에 하숙하였던 주인 집 노옹이 뜻안한 30년 전의 궁예의 스승이던 白夜國仙[백야국선]인 등, 마의태자를 사모하다가 뜻밖에 마의태자의 아버지의 아내가 된 낙랑공주가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불공하러 입산하였다가 또한 뜻안한 마의 태자와 비장한 회견과 이별을 하는 등, 그 밖에도 기우가 꽤 여러 군데 있다. 여기는 춘원의 斥唐主義[척당주의]가 좀더 심각히 들었어야 할 터인데 그것조차 없었다.
 
32
「마의태자」는 한 개 재미있는 강담― 이 이상 더 말할 바가 없다.
【원문】11. 「麻衣太子(마의태자)」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69
- 전체 순위 : 883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40 위 / 184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6) 춘향전
• (1) 기음노래
• (1) 신계후전
• (1) 육친의장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춘원연구 [제목]
 
  김동인(金東仁) [저자]
 
  1938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해설   목차 (총 : 15권)     이전 11권 다음 한글 
◈ 春園硏究 (춘원연구)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