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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園硏究 (춘원연구) ◈
◇ 4. 「無情(무정)」과 「開拓者(개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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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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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硏究 (춘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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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無情(무정)」과 「開拓者(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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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을 발표한 기관은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요, 당시의 유일한 조선문 신문이던 〈每日申報[매일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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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은 「무정」의 대부분을 동경 조선 유학생 감독부 기숙사에서 썼다. 쓴 동기는 무론 한 가지로는 문학적 창작욕이나, 또 한편으로는 약소한 고료로나마 학비를 좀 벌어 보겠다는 욕망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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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무정」을 보려 할 때에는 학창 시대에 더구나 번거로운 기숙사에서 썼다는 ‘핸디캡’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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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육당의 「무정」 서문의 일절에 있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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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매 크지 못하도다. 그러나 빈 들에 부르짖는 소리는 본디 떼지어 하는 것이 아니로다. 벗 부르는 맹꽁이 소리는 하나가 비롯하여 온 벌이 어우르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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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과 같이 번거러운 기숙사에서 약소한 고료를 얻기 위하여 쓴 그 작품이 양에 있어서 아직껏 조선에서의 초유인 동시에 질에 있어서도 아직껏 조선 사람이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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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은 아직껏의 수개의 단편에서도 그러하였고 그 훨씬 뒤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여러 개의 장편에서도 그러하였거니와 그는 소설을 언제든지 설교 기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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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쓴 장편소설인 「무정」에서도 먼저 설교로써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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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도기의 선각자연하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하여 ‘김 장로’라 하는 인물을 만들어 내고 과도기의 소위 신여성으로서 ‘선형’을 제조하고 또한 과도기의 모범 청년으로서 주인공 ‘이형식’을 제조하고- 이러한 과도기의 수개의 인물의 움직임으로써 ‘과도기의 조선의 모양’을 그려 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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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渡期[과도기]의 모양 거기는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이라는 주인공이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개인교수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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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의 아버지 김 장로는 신식 인물이라고 자임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딸과 이형식과를 약혼시키기 위하여 그 교제를 위해서 이런 방책을 취하였다. 이렇게 두어 번 서로 보게 한 뒤에는 약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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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라는 인물도 과도기의 조선 청년의 성격을 대표하는 자로서 자기는 新人[신인]이어니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자기의 친구 신우선이라는 사람을 구식 인물이라 경멸하고 김 장로의 新人然[신인연]하는 것을 역시 경멸하고 자기 혼자가 신인이어니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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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형식에게 삼각 관계를 가진 한 개의 여성이 등장을 한다. 그것은 형식의 어렸을 때의 은사의 딸이요, 어렸을 때의 약혼자로서 기구한 운명의 희롱을 받아, 현재는 기생에 적을 두고 있는 박영채라는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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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는 구사상의 전형이다. 그는 삼강오륜을 신조로 하고 어렸을 때에 자기의 아버지가 짝지어 준다고 한 이형식이란 우상(?)을 사모하고 바라며, 아직껏, 그 몹쓸 반생을 보내면서도 오로지 이형식을 만날 날을 즐기며 그의 정조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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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이 소설의 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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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일전하면서는 이 형식이 김 장로의 딸 선형을 영어를 가르치며 ‘예쁜 계집애로다’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는 때에, 영채가 출장을 한다. 영채는 오래 두고두고 이형식의 거처를 찾다가 겨우 알아 가지고 형식을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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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가슴에서는 두 개의 여성이 난무를 한다. 하나는 돈과 신식과 신학문을 가진 선형이라는 여성이다, 또 하나는 순정과 눈물과 열과 자기 희생의 크나큰 사랑을 가진 영채라는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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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유로 취할 수 있는 두 개의 여성에서 형식은 어느 편을 취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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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절에서 작자는 형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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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속 사랑은 여문 지 오래였다. 마치 봄철 곡식의 씨가 땅 속에서 불을 대로 불었다가 안개비만 조금 와도 하룻밤에 쑥 움이 나오는 모양으로 형식의 속사랑도 갑자기 껍질을 깨뜨리고 뛰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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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지만 아직 깨지 못하였다. 그는 영채를 생각할 때는 영채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와 결혼을 할 결심을 하며, 또 한편으로 선형을 보면 선형에게도 또한 마음이 기울어진다. 그는 아직 줏대를 못 잡은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의 뜻대로 행하지를 못하고, 바람에 기울거리는 갈대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구식이라고 경멸하는 신우선에게도 의견을 물으며, 혹은 형식이가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노파 따위에게까지 의견을 묻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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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매우 흥미를 느끼는 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흔들리기 쉽고 줏대가 없는 주인공 이형식을, 우리는 즉시로 이 소설의 작자인 이춘원으로 볼 수가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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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도덕률을 세우고 신 연애관을 말하고자, 춘원은 이 소설을 붓하였거늘 아직 인생 행로의 과정을 덜 밟은 작자는 자기의 말하려는 의식적인 의사보다도, 그의 마음에 내재하여 있는 구도덕적 꼬리를 더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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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지로 보아서, 당연히 내정한 붓끝으로 조상하여야 할 구도덕의 표본 인물인 박영채를 너무도 아름답고 열정적인 붓으로 찬송하였기 때문에 독자는 도리어 작자가 말하려는 신도덕보다도 영채의 경력이 말하는 구도덕에 동정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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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 아니라 기생 월화의 ‘에피소드’에 있어서도 작자는 당연히 월화를 ‘시대의 부산물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조상하여야 할 것이어늘, 정열에 넘치는 붓끝은 월화를 너무도 미화하여 월화가 신봉하는 구도덕을 독자에게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직 줏대 잡지 못한 작자의 전모를 독자 앞에 스스로 내어보인 미숙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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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형식은 김 장로의 딸과 약혼 준비 행동을 계속하는 동안에, 박영채의 신상에는 변사가 생긴다. 즉, 형식이 봉직하고 있는 경성학교의 교주요, 부자요, 방랑아인 김현수라는 사람에게 청량사에서 강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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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껏 이형식을 위하여 곱게 지켜 오던 정조를 빼앗긴 영채는 인제는 살 면목이 없다 하여 유서를 써 놓고, 대동강에 빠져 죽으려 평양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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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안 형식은 영채를 구하고자 부랴부랴 평양까지 쫓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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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평양까지 내려갔던 형식은 대동강을 찾아 보지도 않고, 칠성문 밖을 한 번 휙 돌아보고는 도로 상경하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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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채의 시체(그렇지 않으면 영채의 행방)를 찾아 보지도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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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이 기괴하고도 모순된 형식의 행동을 속여 넘기기 위해서, 童妓[동기] 계향의 적삼 등에 땀이 내배인 이야기며, 평상 위에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고 있는 ‘탕건 쓴 노인’을 등장시켰지만 이 모든 것은 단지 작자의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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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의 행방을 그냥 감추어 둥서 독자로 하여금 영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증이 나게 하기 위하여 이런 술법을 써서 형식으로 하여금 그저 도로 상경케 한 것이다. 작가가 아직껏 우리에게 제공해 오던 형식의 성격으로는, 결코 이렇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신우선에게 세 번 이상의 전보를 쳐야 할 것이며, 경찰에는 서른 번은 갔어야 할 것이며, 대동 강변은 삼백 번은 오르내렸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선형과 약혼을 하고 혼인을 하고 미국 유학을 가는 공상을 삼천 번은 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형식은 이만치 약하고 줏대 없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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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줏대 없는 인물을 가지고 작자가 자기의 연애관을 설명하려 하고 신 인생관이며 신도덕을 말하려 하니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달아 나오는 모순이 모두, 작자가 주인공의 성격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이러한 줏대 없고 정견 없고 자기의 주장이 없는 인물에게 (저곳 속담말과 같이) 타케니보오오(竹[죽]に棒[봉]-대나무에 막대기를) 접한 것같이 초인적이며 거인적인 사상을 머금게 하였으니 어찌 모순이 생기지 않으랴? 도리어 신우선과 같은 성격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형식 같은 성격을 구형의 인물로 만들어 끝까지 희롱을 했거나 하였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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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평양서 무위하게 도로 상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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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경성학교에서 쫓겨 났다. 기생을 따라 평양 다녀왔다는 죄목이지만 교주 김모의 비행을 들추어 낸 까닭에 쫓겨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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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는 드디어 김선형과 약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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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婚約[혼약]의 場面[장면] 이 소설에 있어서, 작자가 주인공 이형식을 이상적 인물로 만들려고, 공상과 사색이 꼬리를 물어 나가는 장면을 만든 이외에는 이 소설 전편은 과도기의 조선의 진실한 형상이다. 된장에서 구데기를 골라 내는 주인 노파며 기름때가 뚝뚝 흐르는 영채의 양모며, 유리창 달린 집에서 의자를 놓고 초인종을 달고, 이것이 개화거니 하고 생활하는 김 장로 집이며, 페스탈로치며 엘렌 케이의 이름도 몰라서 “푸스털과 얼는 커의 학설은 보았지요. 그러나 그것은 다 지다이오꾸레(じだいおくれ-시대에 뒤떨어진)외다”라고 갈파하는 배 학감이며, 어느 것이 ‘조선의 모양’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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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도 이 약혼의 장면이야말로 가장 과도기의 조선의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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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서는 남녀가 미리 교제를 하다가야 약혼한다는 말을 듣고 이형식을 자기 딸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수개월 간 서로 보게 하고, 인제는 다 되었거니 하고 형식을 불러서 혼인을 청하는 김 장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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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를 따라 평양까지 갔다 온 그 길신의 먼지가 아직 있는 동안에 김 장로의 딸과 혼인하기를 승낙한 이형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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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어쩌나, 어쩌면 좋아?’하면서도 약혼을 승낙하는 김선형이나,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靜觀[정관]하며 축복하고 있는 목사님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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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개의 인물이 모여 앉아서 엄숙한 형식 아래서 행한 일장의 희극은, 당시 조선의 형태를 너무도 여실히 그려 낸 것으로서 문헌적 가치로도 우리가 보유하여 둘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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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형식은 어디까지든 영채를 다시 찾아 보려 평양으로 간다 만다 야단을 하다가, 잊은 듯이, 김 장로의 딸 선형과 약혼을 하고 이 가을로 선형과 함께 미국 유학을 가기로 작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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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즉 제8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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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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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시여, 이 몸은 가나이다. 십구 년의 짧은 일생을 더러운 죄로 지내다가 이 몸은 가나이다. 그러나 차마 이 더럽고 죄 많은 몸을 하루라도 세상에 두기 하늘이 두렵고 금수와 초목이 부끄러워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대동강의 푸른 물결에 더러운 이 몸을 던져 양양만 물결로 하여금 더러운 이 몸을 씻게 하고 무정한 어별로 하여금 죄 많은 이 살을 뜯게 하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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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한 유서를 남겨 놓고 평양으로 내려갈 뿐 영채의 생사에 관해서는 일구 일언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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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절에서 85절까지 그 새 36절간을 독자는 영채의 소식을 몰랐다. 당시의 일을 모르기는 모르지만 아마 이 소설을 연재하던 매일신보사 편집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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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르쳐 달라’는 투서장이나 잘 들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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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감추어 오기를 36절, 제86절에서 비로소 작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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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채의 말을 좀 하자. 영채는 과연 대동강의 푸른 물결을 헤치고 용궁의 객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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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서두로써, 그 새 잊어버린 듯이 버려 두었던 영채를 다시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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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 오랫동안 〈매일신보〉지면상에서 그림자를 감추었던 영채가 다시 독자의 앞에 등장할 때는 그는 기차의 객이었다. 자살하러 평양으로 가는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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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죽지 않았다. 〈매일신보〉連讀者[연독자]는 열광하였다. 독자는 영채의 죽음을 바라지 안했다. 작자는 영채라는 여인을 한 개 낡은 전형의 여성으로 조소를 하려는 의도로 이 소설을 출발시켰지만 독자의 온 동정은 영채에게 모여 있었다. 구탈을 벗으려 하면서도 아직 채 벗지 못한 작자라, 영채를 조소하려 하면서도 정열의 붓은 영채를 너무도 미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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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상의 위에 억지로 새로운 사상을 도금하려 하였지만 도금보다는 本紙[본지]의 은색이 찬연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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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의 탄 기차 안에는 병욱이라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동경 유학생으로 귀향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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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욱이야말로 작자가 보여 주려는 새로운 사조를 한몸에 지닌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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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라고 하고 싶은 괄괄한 성미의 주인이요, 굳센 성격의 소유자며 이지와 판단력을 아울러 가진 위에, 자기의 인생관도 웬만치 가진 한 개의 신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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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이란 여성은 작자가 이 소설을 써 내려가다가 중도에서야 비로소 자기의 誤斷[오단](이형식과 같은 성격의 주인으로서는 도저히 이 소설을 이상대로 진행시키고 결말내기가 힘들 점)을 깨닫고 급조하여 출장시킨 인물인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급조하여 출장시킨 증거는 여러가지로 알 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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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이의 登場[등장] 첫째로는 이병욱의 동행자로, 병욱의 남동생이 기차에 동승하였다고 하였는데 병욱의 고향에서는 이 남동생은 종적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작자가 갑자기 소설의 진전을 전환시킬 때에 장래의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하고 막연히 ‘이런 인물도 혹은 필요하리라’하여 집어 넣었다가 그만 그 뒤에는 잊어버린 것일시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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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황주에 하차하여서의 처음 한동안의 생활 묘사가 그야말로 ‘踏步[답보]로’ 식으로 갈팡질팡 소설을 어떻게 진전시킬까 애쓴 형적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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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 등장 이후의 이 소설은 전혀 ‘동달이’인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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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병욱이라는 ‘동달이’로써 이 소설을 합리화시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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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자 자신이 아직 ‘연애’라는 괴물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지라, 병욱도 연애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다.(이하 「무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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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병욱)은 영채의 신세타령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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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도 그(형식)를 사랑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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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느냐 하는 말에 영채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과연 자기가 형식을 사랑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는 형식이란 사람을 자기가 찾아야 할 사람으로 알았을 뿐이요, 십팔 년래로 일찍 형식을 사랑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어서 형식을 찾고 싶다. 어서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이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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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기쁘겠다 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채는 멀거니 여학생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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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어려서 서로 떠났으니까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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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부친께서 너는 아무의 아내가 되어라 하신 말씀이 있으니까 지금껏 찾았읍니다그려…. 별로 사모하는 생각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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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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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이러한 말로써 독자에게 ‘영채가 형식에게 품었던 바는 연애가 아니라’고 강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작자가 병욱이라는 인물을 이상화하기 위해서 억지로 부회시키는 억지에 지나지 못하며 나아가서는 작자 자신이 아직도 든든한 연애관을 파악치 못하였다는 점을 독자에게 발표한데 지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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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라는 것은 이지의 산물이 아니요, 감정의 산물인 이상에는 ‘이유를 따져서’ 해결될 것이 아니다. 영채가 과거 십팔 년간을 오로지 형식 한 사람만을 사모하고 동경하고 지내 온 그 아름다운 행동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작자는 여기 대하여 ‘부모의 명령이니’하는 억지의 해답을 내렸다. 그러나 부모의 명령 때문에 하는 의리적 행동에 과연 이런 크나큰 순정이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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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선각자로 자임한 작자는 그의 저돌적 용맹으로써 온갖 재래의 인습을 다 파기하려 하여 이런 억지까지 나오게 된 것이겠지만 우리는 영채의 형식에게 가진 바 감정을 ‘사랑’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사랑을 하기에 부모의 명령도 자연히 복종하고 싶었을 것이고, 사랑을 하기에 그를 위하여 정절을 지켜 왔을 것이고, 사랑을 하기에 자기의 정절이 남에게 더럽힌 뒤에는 죽기로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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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이후의 춘원의 소설이 흔히 범한 과오가 역시 이것이다. 그의 생장과 교양과 전통이 그에게 준 바 성격과 그의 이상이 낳은 바의 이론이 미처 조화되지 못하고, 그 조화되지 못한 것을 소설에서 억지로 부회시키려 하고 하여서 가여운 희극과 강제가 나타나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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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박영채가 자살하러 가는 ‘기차’에서 병욱을 만나게 된 이 ‘기차상의 기연’이라는 점이다. 춘원의 소설에서는 흔히 기차상의 기연(혹은 정거장)이 있다. 「흙」에도 누차 이런 장면이 있었고, 「재생」에도 그런 곳이 있고, 「어린 벗에게」도 (그것은 기선이나) 그런 곳이 있고, 그 밖에도 차상의 기연이 흔히 있다. 이것은 혹은 춘원이 과거에 있어서 기차에서 기이한 일이라도 경험한 일이 있어서 자연히 소설마다 이런 장면이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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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半部[전반부]를 잘라 버리고 황주 병욱의 집에서의 월여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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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정」은 그 전반부는 잘라 버리고 여기서 출발을 하는 편이 도리어 소설 가치를 높이게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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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할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오빠가 있고 올케가 있고 하며 한 집안이 갖추어 있는데 그 每人[매인]이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성격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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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의 성격과 영채의 성격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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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공부를 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방임하는 아버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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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를 알면서도 제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오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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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엌 며느리인 올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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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할머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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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사람이 모여 앉아서 밀국수를 먹으며 지내는 광경은 과도기의 조선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 낸 것이다. 너무도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성격들을 과장시킨 혐이 없지 않으나- 그리고 이것이 춘원이 흔히 범하는 과오이나- 이러한 여러가지의 성격의 인물을 한 좌석에 모아 놓고 조종하는 것은 이 작자의 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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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도 또한 우리는 작자의 不用意[부용의]를 볼 수가 있으니, 즉 작자는 이 소설을 어떻게 어디로 언제까지 끄을고 가려는지 확호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증거로는(장래의 진전상 혹은 필요할까 하여) 영채가 병욱의 오빠에게 이상한 감정을 가지게 만든다. 혹은 이것을 쓸 당시에는 장래 병국(병욱의 오빠)과 영채와를 결합을 시킬 심산으로 그 복선을 꾸며두었었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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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영채는 안온한 전원 생활에 월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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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 배우 이형식이 다시 등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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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극 배우요, 또한 자기딴에는 자기는 선각자려니 하고 있는 형식은 영채의 뒤를 따라 평양까지 갔던 그 먼지를 채 떨지도 못하고 영채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선형이라는 돈 많은 미인과 혼약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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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깨어서부터 잘 때까지 선형과 미국만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도 적막하지 않고 도리어 더할 수 없이 기뻤다. 형식의 모든 희망은 선형과 미국에 있다. 기생집에 갔다고 남들이 시비하고 돈에 팔려 장가를 간다고 남들이 비방을 하더라도 형식에게는 모두 우스웠다. 천하 사람이 다 자기를 미워하고 조롱하더라도 선형 한 사람만 자기를 사랑하고 칭찬하면 그만이다. (약) 길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도 이제는 자기와는 종류가 다른 불쌍한 사람같이 보인다. 더구나 이전에는 자기의 동무로 알아 오던 주인 노파가 지극히 불쌍하게 보이고 갑자기 더 늙고 쪼그러진 것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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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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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불통일- 작자는 어찌하여 이형식에게 있어서는 성격의 통일이라는 점을 유의치 않았는지? 이런 때는 이렇듯 굳센 성격의 주인이 되고 어떤 때는 어린애나 일반으로 좌우하는 성격의 주인인 이형식은 우리의 소설 상식으로는 상상치 못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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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비방을 안중에 두지 않을이만치 굳센 성격의 주인이 또한 황주 김병욱의 편지 한 장 때문에 무한 번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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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 김병욱의 편지라 하는 것도 소설 기술상으로 엄밀히 보자면 한낱 ‘답보로’에 지나지 못한다. 신문 지상의 명일 분의 소설은 써야겠는데, 전개 방침이 확립되지 않았으므로 거기서 답보로를 하면서 양일간을 그냥 넘기면서 그동안 생각한다는 한 속임수에 지나지 못한다. 그런지라 답보로의 몇 절은 혹은 관대히 넘겨야 할 종류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답보로를 하려 해도 성격 혼란의 責[책]은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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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는 병욱과 함께 황주서 지내다가 병욱을 따라서 음악 공부 하러 동경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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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작자의 즐기는 ‘차중 기연’은 다시 생기게 된다. 선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이형식이 같은 기차에 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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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는 형식 그 새 전원 생활 월여에 온갖 과거의 잡념에서 벗어났던 영채는 남대문 정거장에서 ‘이형식 군 만세’라고 여럿이서 외치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랐다. 영채와 병욱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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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웬 일인지 나는 가슴이 몹시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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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형식 씨란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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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여태껏 잊고 있는 줄 알았더니 역시 잊은 것이 아니야요. 가슴 속에 깊이깊이 숨어 있던 모양이야요. 그러다가 ‘이형식 군 만세’라는 소리에 갑자기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진정치 아니해서 못 견디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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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렇겠니. 어쨌든 칠팔 년 동안이나 밤낮을 생각하던 사람을 그렇게 어떻게 쉽게 잊겠니? 이제 얼마 지나면 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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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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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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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잊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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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작자는 그냥 ‘사랑’이 아니라 ‘인습’이라고 할까. 만약 이것을 인습이라고 일축하려면 사람이란 어떤 것이라고 표본을 보여 줄 의무가 작자에게는 있다. 그러나 ‘인습에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다’고 오단은 내렸지만 이 이상 다른 종류의 소위 ‘참 사랑’을 파악치 못한 작자는 一者[일자]를 인습이라고 경멸하면서도 새것을 보여 주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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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은 물끄러미 영채를 보더니 영채의 곁에 가 앉아서 한 팔로 영채의 허리를 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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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씨가 벌써 혼인을 하셨다. 지금 동부인하고 미국 가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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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혼인?”하고 영채는 병욱의 팔을 잡는다. 병욱은 위로하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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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여기 왔던 선형이라는 이가 그의 부인이란다.”
112
“그러면 그때에 벌써 약혼했던가.”
113
하고 지나간 일에 실망을 한다. 자기의 지나간 생활이 더욱 슬퍼지고 원통해진다. 자기는 세상에 속아서(약)
114
“언니, 왜 그런지 원통한 생각이 나요.”
115
“그러나 장래가 있지 않으냐?”하고 힘있게 영채를 안아 준다.
 
116
이 소녀의 심경을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하려는고.
117
작자가 아무리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구구히 설명하나 그것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18
형식도 이 기차에 영채가 탄 것을 알게 된다. 이 희극 광대는 여기서도 또 공상을 한다. 성격의 통일과 감정의 순화에 서투른 작자는 형식이 공상에 빠질 때마다, 혼선을 거듭한다. 이때의 형식의 공상도 이전의 여러 번 거듭한 공상과 마찬가지로 그런 형이었다. 거리는 철학적 술어를 많이 늘어 놓아서 여러가지로 형식의 공상을 합리화시키려 한 노력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갈피를 차릴 수가 없다. 작자도 갈피를 못 차렸을 것이다. 형식이도 갈피를 못 차렸다. 작자의 난필이 어지러이 춤출 뿐이다.
119
이렇게 아무도 갈피 차리지 못할 亂想[난상]을 하다가 형식은 영채를 만나보려고, 영채의 차실로 향한다.
120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형식의 성격으로는 이때에 임하여 미국이고 아내고 돈이고 모두 내던지고 변소에 가는 체하고 몰래 기차에서 뛰쳐내려서 도망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망친 뒤에는 또 도망친 일을 후회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형식은 그런 인물이다.
121
그런데 형식은 비교적 정돈된 머리로서 영채를 방문하고 순서 있게 영채와 이야기를 하고, 더구나, 병욱이가 형식을 조소할 때에, ‘이 계집애가 꽤 사람을 골린다’라고 냉정한 판단까지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122
도리어 형식이가 영채를 차실로 찾았으면 영채의 앞에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해 사죄하고 영채와 살자고 빌다가 병욱에게 쫓겨가야만 순조로운 진행이 아닐까.
123
그러나 이렇게 되면 소설이 되지 않겠는고로 작자는 여기서 이전의 형식의 성격을 슬쩍 속여 버리고 또한 굳센 사나이로 만들어 놓았다. 거듭 말하거니와 주인공 이형식의 성격을 그릇 선택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자초지종으로 이렇듯 불통일이 된 것이다.
124
새로운 의문 하나 형식의 마음에는 새로운 의문 하나가 일어난다.
125
대체 자기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선형인가. 영채인가. 영채를 대하면 영채를 사랑하는 것 같고 선형을 대하면 선형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까 남대문에서 차를 탈 때까지는 오직 선형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듯하더니, 지금 또 영채를 보면 선형은 둘째가 되고 영채가 자기의 사랑의 대상인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앞에 선형을 보매 이야말로 내 아내, 내 사랑하는 아내라는 생각도 난다. 자기는 선형과 영채를 둘 다 사랑하는가.(약) 사랑은 결코 동시에 두 사람 이상에 향할 수 없는 것이어늘 지금 자기의 마음은 어떠한 상태에 있나(약).
126
오래 생각한 뒤에 형식은 이러한 결론에 달하였다.
127
자기가 선형을 사랑하는 것도 결코 뿌리 깊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는 선형의 얼굴이 예쁜 것과 태도가 얌전한 것과 학교에서 우등한 것과 부자요, 양반의 집 딸인 것 밖에 아무것도 선형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다.
 
128
이렇게 발단하여 혼선적 묘사는 다시 시작되어 한참을 내려가다가 또 의례히 시작되는 大悟[대오]가 있고, 대오가 생긴 뒤에 또 만족해서 빙긋이 웃는다.
 
129
형식의 생각에 자기와 선형과 또 병욱과 영채와 그 밖에 누군지 모르나 잘 배우려 하는 사람 몇 십 명, 몇 백 명이 조선에 돌아오면 조선은 하루이틀동안에 갑자기 새 조선이 될 듯이 생각한다. 그리고 아까 슬픔을 잊어버리고 혼자 빙그레 웃으며 잠이 든다.
 
130
이 가련한 희극 배우는 이렇듯 스스로 위로하고 그 위에 國士然[국사연]한 감회까지 품으며 잠이 드는 것이다.
131
그러나 이 대오를 독자는 결코 신용치 않으리라. 칠면조와 같이 변하기 쉬운 형식이 한때 대오하던들 그것이 몇 십 분이나 가랴?
132
이 갸륵한 남편에게 전염됨인지 형식의 아내 선형도(공상의 대가인 형식도 잠이 들었는데) 자지도 못하고 공상을 한다. 좀더 적절히 말하자면 강짜를 한다.
133
공상! 공상! 왜 작자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이렇듯 공상 즐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우리의 아는 선형은 좀 둔감하고 多信[다신]한 여인이었더니. 만약 이런 여성으로서 강짜를 하였다면 중인환시중에서 남편의 따귀를 때리며 울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둔감한 미소를 띠고 맞아야 할 것이다.
 
134
이런 여러가지의 인물을 실은 남행 열차는 삼랑진까지 갔다. 여름 폭우에 선로가 파손되어 승객들은 모두 내리게 되었다.
135
여기서 이 네 사람은 부득불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136
내려서 모두 함께 어떤 ‘이랏샤!’를 부르는 여관으로 들어가서 한 좌석에 마주 앉는다.
137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결말을 향하여 급템포로 내려간다.
138
각각 제 감정을 따로 품은 네 인물, 한 남자와 세 여자.
139
자기의 앞에서 난무하는 三角的[삼각적] 一組[일조]의 남녀를 조소와 동정으로 보고 있는 병욱이.
140
약혼한 남녀와 영채와의 새를 불쾌한 생각으로 보는 선형이.
141
근 이십 년간을 사모하던 사람을 잃고 속으로 애타하는 영채.
142
이 틈에 끼여서 동으로 서로 건들거리는 형식이.
143
이 네 개의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매 작자는 이 융화를 어떻게 꾀하려는가?
144
여기서 삼랑진 수해 만난 사람들에게 대한 민족애로써 4인의 감정을 융화시킨 점은 용하다. 이런 거대한 사건이 돌발하지 않았다면 네 사람은 제각기 제 품은 감정대로 헤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145
民族愛[민족애] 이 민족애라는 것이 또한 이 작자의 항용 쓰는 무기이나 대개가 억지로 의식적으로 삽입하여 작품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은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인데 이 장면에서뿐은 이런 문제가 아니면 도저히 서로 한 좌석에 모여서 한 마음으로 담소를 못할 것으로서 춘원의 전 작품을 통하여 유일의 ‘적절한 삽입’이었다.
146
단지 우리가 그냥 의심하고 믿지 못할 것은 이때의 순간적 심리로 인하여 네 사람이 같은 감정 아래서 행동하였다 하나 이 감동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익히 알고 침뱉는 바지만 형식과 같은 줏대없는 인물에 있어서 이 감동이 단 1일을 갈지가 의문이다.
147
하여튼 네 남녀는 여기서 이 동족들이 대자연의 暴威[폭위]에 집을 잃고 產[산]을 잃고 먹을 것을 잃고 우는 양에 동정심이 생겨서 임시로 정거장을 빌려 가지고 거기서 동정 음악회를 열어서 거기서 얻은 의연금으로 이 가련한 동족들에게 만분지 일이나마 조력을 한다.
148
그런 뒤에는 여관에 돌아와서 아직 흥분에 들뜬 이 네 사람은 서로 흥분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149
형식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방 안을 거닌다.
150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51
(흥분되기 쉽고, 그 꼴에 국사를 자처하는 형식으로는 할 만한 노릇이다.)
152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한참 있다가, 병욱이가
153
“불쌍하게 생각했지요”하고 웃으며 “그렇지 않아요?”한다. 오늘같이 활동하는 동안에 훨씬 친하여졌다.
154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155
“무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 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156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157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158
“그리 하려면?”
159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160
“어떻게요?”
161
“교육으로 실행으로.”
 
162
그러나 이 문답은 도리어 병욱이가 묻고 형식이가(연지구지한 끝에) 대답을 하였어야 될 것이다. 이런 문답을 계속하는 동안에 신우선이가 이 방에 들어온다. 신우선은 사(신문사)의 명으로 수해 실황을 보러 왔다가 정거장에서 네 남녀의 기특한 행동을 듣고 감격하여 이리로 찾아온 것이다.
163
이리하여 여기서 다섯 사람이 흥분과 감동으로 제각기 장래의 희망을 토론하는 막으로 이 소설은 대단원을 맺는다.
164
제126절은 사족이다.
165
126절에 있어서는 작자는 아직껏 이 소설에 등장하였던 인물 전부를 재등장을 시켜서 그들의 십 년 후를 독자에게 알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파 비극(혹은 正劇[정극])의 대단원과 같은 느낌을 줄 뿐 소설적 효과를 조금도 더 돕지를 못하고 도리어 우습게 만든 데 지나지 못한다.
166
신우선과 영채가 결혼했더면 한 가지 더 기괴한 것은 신우선과 영채를 결합시키지 않은 점이다.
167
작자는 누차 신우선이 어떻게 영채를 내심으로 사랑하였는지를 설명하였다. 영채도 또한 신우선을 밉지 않게 보았다는 말도 여러번 하였다. 이 두 남녀야말로 서로 성격도 맞고 지식에도 공통점이 많으며 여러가지 점으로 보아서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될 인물이다.
1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왜 이 두 사람을 결합시키지 않았는지.
169
이 소설의 일부의 목적이 인습 타파와 신 연애관 수립에 있다는 것이 부인치 못한 사실인 이상에는 이 점으로 보아서라도 반드시 결합이 되어야 할 것이다.
170
그런데 신우선은 ‘내 친구를 사모하던 여인이니’하고 그만 단념하고, 영채는 또한 ‘형식 씨의 친구니’하여 단념한 것은 작자가 자진하여 인습을 지키라고 지시함과 마찬가지로 모순의 감을 면치 못한다.
171
아아, 우리의 땅은 날로 아름다와 간다. 우리의 연약하던 팔뚝에는 날로 힘이 오르고 우리의 어둡던 정신에는 날로 빛이 난다.(약)
172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 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
 
173
이 감개무량한 數言[수언]이 「무정」 전편의 끝막음 절이다.
174
이리하여 「무정」은 무정하게도 말미가 몽롱하게 끝이 났다.
175
이 「무정」은 여러가지 의미에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수확이다.
176
아직 그 문장에 있어서는 기미년 〈창조〉 잡지가 나타나서 구투를 일소하기까지는 그래도 ‘이러라’ ‘이로다’ ‘하더라’ ‘하노라’의 투가 많이 남아서 「무정」에 있어서도 그 예를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조선 구어체로써 이만치 긴 글을 썼다 하는 것은 조선문 발달사에 있어서도 특필할 만한 가치가 있다.
177
이 「무정」이 조선 사회에 던진 파동도 특필할 만한 것으로서 거장 이인직이 그 새 몇 개 발표한 소설은 감정에 있어서 재래의 감정이었었는데 새로운 감정이 포함된 소설이 조선에 나타난 효시로도 「무정」은 특필할 가치를 가졌으며,
178
대중에게 一顧[일고]도 받지 못하고 서거한 이인직 씨의 이후로 조선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환영된 소설로도 특필할 가치가 있거니와,
179
이 소설의 작자인 춘원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작품이니, 그 뒤에 발표된 모든 장편소설(사담은 제하고)이 엄정한 의미에 있어서 「무정」의 연장에 지나지 못하는 점(이것은 후에 논함)으로 보아서도 이 「무정」은 아직껏의 춘원의 대표작인 동시에 조선 신문학이라 하는 대건물의 가장 긴한 주춧돌이다.
180
그 뒤에 춘원의 文學史上[문학사상]의 功罪[공죄]는 차차 論[논]하려니와 이 한 작품만 가지고도 춘원의 이름은 조선 신문학사에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181
「무정」이 완결된 지 얼마 지나서 역시 〈매일신보〉 지상에 춘원의 제2 장편 「개척자」가 실렸다. 그러나 이 「개척자」는 논치 않는 편이 도리어 점잖지 않을까.
182
「무정」을 게재하여 대중의 환영을 받았는지라 〈매일신보〉는 판매 정책상 춘원에게 또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을 것이며, 춘원은 용돈이라도 얻어 쓰느라고 집필을 한 것이지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183
「무정」에 있어서 있는 정열을 모두 다 쓰고 빈 마음에 새로운 감동을 집어넣기 전에 「개척자」를 쓴 것이라 거기는 한 개의 감동도 없고 한 개의 정열도 없다.
184
아무 성격이며 정서며를 가지지 못한 몇 개의 인물이 마치 ‘잠결에 듣는 옛말’과 같이 꿈틀거리다가 결말을 맺었다.
185
춘원의 ‘이데올로기’를 소설 형식으로 억지로 빚어 놓으려고 성격도 없는 허수아비를 몇 개 만들어 놓고 부자연한 언행을 행케 한 ‘문학의 濫費[남비]’에 지나지 못한다.
186
그의 소설마다 으례히 나오는 몇 장 노래도 더욱 그 부자연감을 돋굴 뿐이다.
187
말하자면 춘원은 교활하게 되어서 ‘신문소설이다. 되는대로 쓰자’고 진실한 태도를 내어 버린 모양이다.
188
그런지라 「개척자」는 논외로 집어던질 수밖에 없다.
【원문】4. 「無情(무정)」과 「開拓者(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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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