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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2 ◇
해설   목차 (총 : 9권)     이전 2권 다음
1946.11.15
채만식
1
서울 다방골 변진사라고 하면, 서울 장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선 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름이 난 큰 부자였다.
 
2
변진사는 나라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다. 나라에서는 효종대왕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원수갚음으로, 북벌———— 북쪽으로 청나라를 칠 계획을 차리고 있었다.
 
3
청나라 같은 큰 나라를 쳐들어가 전쟁을 하자면 동병(動兵)을 많이 해야 하고, 도병을 하자면 돈이 많이 들고, 돈이 많이 드는 데는 부자들이 조력을 해야 하였다. 이 부자들의 조력을 받기 위하여 나라에서는 서울 장안은 물론이요, 조선 팔도의 큰부자들을 일일이 조서허여 가지고, 혹은 조정으로 불러다가, 혹은 관원을 보내어 벼슬도 주고 하면서 달래고 하였다. 그러고 다방골 변진사는 부자 중에도 으뜸가는 큰부자라고 하여, 효종대왕이 친히 궐내로 불러 장차에 청나라 칠 계획을 이르고, 집사 벼슬을 재수하면서 후일을 당부 신칙하였었다.
 
4
돈이 있고, 겸하여 나라에서 알아주는 변진사는 권세와 위의가 대단한 것이 있어 주축을 하여도 조정의 내로라는 재상이며 양반들과 늘 주축을 하고, 집이랄지 차리고 사는 범절이며 법도는 당대의 이른난 세도 재상 부럽지 않게 홀란스러웠다.
 
5
그러한 변진사인만큼, 가령 누가 찾아가더라도 웬만한 사람은 대문간이나 하인청에서 퇴짜를 맞고 쫓겨나오고, 변진사의 앞에는 졸연히 얼찐거리지도 못하였다.
 
6
이런 변진사를 묵적골 샌님 허생이 불쑥 찾아왔다. 부인 고씨한테 구박을 맞고서 푸스스 집을 나온 허생은 그 길로 변진사를 찾아온 것이었었다. 그렇다고 허생이 변진사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더냐 하면 그도 아니요, 누구의 천거가 있더냐 하면 역시 아니요, 단지 다방골에 변진사라는 장안 갑부가 있더냐 하면 역시 아니요, 단지 다방골에 변진사라는 장안 갑부가 있다는 말만 증왕에 들은 것이 있을 따름이었다.
 
7
다섯 자가 찰락말락한 키에, 앙상한 얼굴은 성깃성깃한 노랑수염으로 더욱 근천스럽고, 헐어빠진 갓에 노닥노닥 기운 웃옷을 걸친데다 우환중에 나막신을 신고, 이 지지리 궁한 꼴을 하고서, 장안의 갑부요 나라에서도 괄시를 못하는 변진사를 처억 찾아왔으니, 대문간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하인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쫓기어나기가 십상이었다.
 
8
허생에게는 그러나, 몸집이며 의표의 초라함을 넉넉히 가리고도 남을 위엄이라는 것이 있었다. 허생의 눈에는 정채가 있었다. 그 정채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기(壓氣)에 불리게 하는, 그래서 감히 침노키 어려운 위엄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었다.
 
9
과연 허생이 대문을 지나 중정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한 하인이, 이게 웬 화상이냐는 듯이, 허생의 그 나막신 떨걱거리면서 들어오고 있는 초라한 행색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하인은 곧
 
10
“웬 사람야?”
 
11
하고 을러메는 소리가 나올 듯하다가 허생과 눈이 마주치자 그만 압기에 눌려 허리를 굽신하고 옆으로 비껴서고 말았다.
 
12
허생은 서슴지 않고 사랑으로 올라갔다.
 
13
변진사는 사랑에 나와 있었다. 사오 인의 문객과 함께 한담을 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주인 변진사사 누구인 줄은 얼른 알 수가 있었다.
 
14
허생은 변진사의 앞으로 가 선뜻 마주 일어서는 변진사와 마주 읍을 하고는 자리에 앉은 후에
 
15
“당신이 변진사시요?”
 
16
하고 물었다.
 
17
“네, 내가 변아모요.”
 
18
변진사가 대답을 하고, 허생이 다시
 
19
“내가 쓸 곳이 있으니 돈 만 냥만 돌려 주시오.”
 
20
하는 말에 변진사는 서슴지도 않고
 
21
“그럭허시오.”
 
22
하고 대답을 하였다.
 
23
“만 냥에서 백 냥은 묵적골 허생의 집으로 보내주고, 구천구백 냥은 안성읍내 강선달집 허생의 앞으로 환을 놓아주시요.”
 
24
“그럭허지요.”
 
25
“평안히 계시오.”
 
26
“평안히 가시오.”
 
27
그러고는 허생은, 나막신을 떨걱거리면서 중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28
좌중은 문객들은 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형국이었다.
 
29
돈이 만 냥이면 부자가 몇이 왔다갔다하는 큰 돈이었다. 그런 큰 돈을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일 뿐 아니라 노랑전 한푼껏 없어 보이는 궁한 선비에게, 선뜻 한마디에 그런 큰 돈을 주다니. 황차 평일에는 뒤가 든든한 자리에도 백 냥 하나를 취해 주기에도 조심을 하던 변진사가 아니었던가.
 
30
허생의 나막신 떨걱거리고 나가는 소리가 중 문 밖으로 사라지자,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뻐언히 앉았던 문객들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그중 하나가 변진사더러
 
31
“아니, 초면이신가본데, 만 냥 돈을 그렇게 함부로 주십니까?”
 
32
하고 걱정하여 묻는다.
 
33
변진사는 곰곰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다가 그도 비로소 정신이 들어
 
34
“초면에 와서 만 냥 돈을 달라는 사람이면, 미친 사람이 아니면, 만 냥 값이 더 나가는 큰사람이 아니겠소. 그런데 보아허니 미친사람은 아니고.”
 
35
“그렇지만, 외양이 너무……”
 
36
“외양을 잘 차리고 다니는 사람이면 돈이 있는 사람인데, 돈이 있는 사람이면, 돈 있는 사람이 무엇하러 남더러 돈을 취해 달래며, 취해 줄며리는 있소. 도대체 사람이란 외양만 보고는 모르는 법입넨다.”
 
37
대답을 하고 변진사는 서사를 불러, 돈 만 냥을 백 냥은 묵적골 허생의 집으로 태전 지워 보내고, 구천구백 냥은 안성읍네 강선달집 허생에게로 환을 놓아 보내고 하라고 분별을 시킨다.
 
38
허생은 부인 고씨가 여자의 좁은 소견에 작은 발신과 편안을 바라고 아등바등 바가지를 긁으며 성화를 먹이는 데 성가신 생각이 들어, 에라 잠시 동안 바람도 쏘일 겸 지닌 바 포재의 한끝도 시험을 하여 볼 겸, 그렇게 집을 나선 것이었었다.
 
39
우선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 변진사에게서 한마디로 만 냥 돈을 취하는 데에 성공을 하였다. 그러고는 시방 안성읍을 향하여 나막신을 떨걱거리면서 한강 건너 논들을 지나는 참이었다.
 
40
추석을 십여 일로 앞둔 팔월 초생, 들의 벼는 목이 숙고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다. 고추가 붉고 김장이 파릇파릇 이쁘게 자랐다. 콩은 여물고, 수수목은 무거웠고 감과 대추는 다투어 볼이 붉었다.
 
41
허생은 이런 보이는껏 살지고 여물어가는 가을을 뜻있어 두루 살피며 나막신을 떨걱거리고 길을 걷는데, 그러자 웬 시꺼먼 총각 하나가 길 옆에 나뭇지게를 받쳐놓고 앉아 쉬다가 허생을 보더니 반겨 달려들면서
 
42
“생원님 어데 행차허세요?”
 
43
하고 너풋 절을 한다.
 
44
허생도 반기는 기색을 하면서
 
45
“오, 네가 먹쇠 아니냐?”
 
46
사오 년 전까지 허생의 집에서 종으로 있던 먹쇠였다. 먹이고 입히고 뒤치다꺼리를 할 도리가 없어, 부인 고씨가 양반의 체모에 하인 하나 없이 살까보냐고 미련겨워하기는 하면서도 하릴없이 속량(贖良)을 시켜 주자고 말을 내어, 허생은 선뜻 응락을 하였다. 허생은 본시 양반의 후예는 양반의 후예이면서, 자기가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없고, 양반 행세나 양반 자세를 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양반이라는 것을 인정치 아니하는 동시에, 따라서 종이라는 것도 인정치 아니하였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째서 양반과 상놈이 있으며, 어째서 상전과 종이 있어 가지고 상전은 종을 부려먹고 천대하며, 종은 양반을 공경하고 일을 해다 바치고 할까 보냐는 것이었다.
 
47
먹쇠도 그래서 진작에 속량을 시켜주었을 것이로되, 부인 고씨가 무가 내히로 듣지를 아니하여 마음에도 없고 사세도 닿지 않는 상전 노릇을 하던 참이었었다. 그러다가 부인 고씨가 영영 할수할수가 없어, 마침내 속량을 시켜 주자는 말을 내자, 허생은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라 당장에 응락을 한 것이었었다.
 
48
그 먹쇠가 한번 간 뒤에 사오 년이나 소식이 없더니, 이 날 여기에서 나뭇지게를 지고 있었다.
 
49
“그래, 아직도 장가도 들지 못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나보구나.”
 
50
허생은 가엾이 여기는 눈으로 먹쇠를 위아래로 씻어보면서 묻는다. 먹쇠는 나이 이십이 훨씬 넘었었다.
 
51
먹쇠는 계면쩍은 듯이, 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면서
 
52
“네, 쥔을 고만 잘못 얻어 만나서와요.”
 
53
“으음……”
 
54
그러면서 허생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더니
 
55
“너 그럼, 날 따라오려느냐?”
 
56
“데리구 가 주신다면 뫼시구 가구말굽쇼.”
 
57
먹쇠는 그의 생김새대로 우적한 성질이라 허생의 그 어질고, 상전이면서 상전 태를 아니하고, 하인을 하인으로 천대하지 않는 데에 퍽 심복을 하였었다. 허생의 집에 있으면서 늘 굶고 헐벗고 하였으면서도, 속량을 시켜주어 마침내 나가게 된 마당에서는 차마 떠나지 못해 한 것도, 오로지 허생을 상전으로서가 아니라, 부모같이 형같이 존경하고 따르고 한 정 그것때문이었었다.
 
58
허생은 여전히 종 부리기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종의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먹쇠가 아직도 장가도 들지 못한 채 고생을 하는 것이 가긍하고, 일변 책임도 느꼈다. 어떻게든 살 도리를 마련하여 주는 것이 떳떳하였다. 앞으로 일을 하자면 종은 아니라도, 손대는 하나쯤 데리고 다녀 무방하였다. 먹쇠는 마음 맞는 손대 노릇을 할 수가 있었다. 데리고 다니면서 일도 시키고, 그러다가 계제를 타서 살 끈을 잡아주도록 할 것이고.
 
59
다섯 자가 착락말락한 키에, 앙상한 얼굴에는 근천스런 노랑 수염이 성깃성깃하고, 헐어빠진 갓에 노닥노닥 기운 웃옷을 떨쳐 입은데다 나막신을 떨걱거리면서 앞을 선 허생과, 굴뚝 구멍에서 나온 듯 시꺼먼 놈이, 키는 구척 장신인데 잠방이 적삼을 시늉만 걸치고는 성성큼 뒤를 따르는 먹쇠와, 참으로 우스꽝스런 주종의 행색이 아닐 수 없었다.
 
60
먹쇠는 다른 것은 몰라도 허생의 떨걱거리는 나막신의 마음에 걸렸다. 뒤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고, 내려다보고 하다가 마침내
 
61
“생원님?”
 
62
하고 부른다.
 
63
“오냐.”
 
64
“시방 어디루 가시죠?”
 
65
“안성으로 간다.”
 
66
“몇리나 되죠?”
 
67
“한 이백 리 되리라.”
 
68
“이백 리를 저 나막신을 신구 가세요.”
 
69
“그럼, 맨발로 가느냐.”
 
70
“담배 한 대 전만 저 그늘루 앉어 쉬시죠. 그동안 제가……”
 
71
그러고는 먹쇠는 길 옆 논두덕으로 내련간다. 논두덕에는 올벼를 타작한 햇짚이 널려 있었다.
 
72
먹쇠는 짚을 한 줌 걷어가지고 오더니, 허생이 쉬는 옆으로 와 앉아, 날을 꼬고 총을 비비고 하면서 부지런히 짚신을 삼는다.
 
73
먹쇠를 만난 덕에 허생은 우선 서울서 안성끼리 이백 리 길을 떨걱거리는 나막신 대신 세총박이 털메신이나마 짚신을 신고 발 편안히 갈 수 가 있었다.
 
74
그뿐 아니라, 허생은 어인 돈이 되었든 만 냥의 돈이 생겼고, 백 냥은 집으로 보낸 것이 있고 하니, 잠깐 들러서 부인 고씨와 작별도 하고, 돈도 돈냥이나 노수로 허리에 차고 나섰어야 하였을 것을, 그는 다방골 변진사의 집을 나와, 그 길로 바로 길을 떠났었다. 노수 한푼 몸에 지닌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남의 사랑이나 글방을 찾아들어 과객질을 할 체모나 비위는 없는 터. 만일 먹쇠가 조석으로 마을에 들어가서 호박잎에다 밥 한 덩이씩을 얻어오는 것이 아니었으면, 이백 리 이틀 길을 빳빳이 굶어갔지 별수가 없을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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