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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5 ◇
해설   목차 (총 : 9권)     이전 5권 다음
1946.11.15
채만식
1
흰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섣달 스무날.
 
2
강경 선창에서, 허생과 및 그를 따라 낙천지(樂天地)─살 집이 있고, 부칠 땅이 있고, 농사해서 거둔 것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배불리 먹을 수가 있고, 그리고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고, 저 혼자만 편안히 앉아서 남을 부려먹으려 드는 사람도 없고, 이런 살기 좋은 고장을 찾아가는 천여 호총(戶總)의 사천여 명이 뱃길로 길을 떠나는 날이었다.
 
3
허생은 강경 장터에 당도하던 길로, 먹쇠와 객주 주인 윤서방네 서두리꾼을 데리고, 여러 가지 준비에 골몰하였다.
 
4
배를, 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는 큰 배 오십 척을 샀다.
 
5
배는, 한편으로 사들이면서, 한편으로 상하고 불비한 것을 배 목수를 대어 말끔히 수리를 하였다.
 
6
곡식을 사 오천 명이 일 년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사들였다. 주장 쌀을 많이 사고, 보리, 콩, 팥, 서속, 수수 모두 골고루 샀다.
 
7
미영과 삼베를 각각 수천 필씩 끊어들였다.
 
8
소를 삼백 바리와 도야지 새끼를 천여 마리와 닭을 수천 마리를 샀다.
 
9
보습, 쇠스랑, 괭이, 호미, 낫, 가래 등속의 농사 연장과 톱, 자귀, 대패 등속의 목수 연장과 솥, 식칼, 기명, 소반, 도마 등속의 밥 지어먹을 제구와 가위, 바늘 등속의 바느질 제구와 길쌈하는 베틀과 아뭏든 천여 가족에 사오천 명 식구가 집을 짓고, 농사를 하고, 살림을 차리고 하기에 부족이 없을 만큼 넉넉히 그리고 골고루 장만을 하였다.
 
10
허생의 흥정이라 값을 시세보다 비싸게 내는 고로, 그 숱한 것을 사둘이기에 별로 힘이 들지 아니하였다. 찾으면 물건은 척척 나오고, 값은 부르는 대로 치르고 하였다.
 
11
매화(梅花:안성서 따라온 여자)는 허생에게 생각잖아 좋은 소대 노릇을 하였다.
 
12
오천 명 식구의 새살림을 마련하는 일이라 허생의 계획이랄지 일 서두는 법이 비록 도저하다고는 하여도, 역시 남자인 관계로 세세한 구석에는 간혹 소홀한 데가 없지 못하였다. 매화는 그런 것을 연해 촉념하여 일쑤 재치있는 훈수를 하고 하였다.
 
13
허생의 신변 시중에는 더욱 세밀하고 알뜰하였다. 끼니때면 반드시 행주치마 두르고 객주집 부엌에 들어서서 허생의 밥상 분별을 제 손으로 하였다. 그는 가르쳐 준 일도 없건만, 허생이 밥은 조금 무름한 것을 즐겨하고, 고기가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주장 김치 깍두기와 장으로 밥을 먹되, 진건한 것보다 담(談)한 것을 즐겨하고 한다는 것을 허생의 시중을 하던 이틀 만에 벌써 알아차렸고, 꼭 그 입에 맞도록 찬수 분별을 하였다.
 
14
밤저녁으로 향기 있고 맛좋은 술울 몇 잔씩 기울이기를 줄겨하는 것도 그는 진작에 알았고, 이삼일만큼씩 그 분별을 하기를 또한 잊지 아니하였다.
 
15
방을 허생이 거처하는 바로 옆엣방에다 정하고서, 아침 허생이 잠이 깰 때로부터 밤에 자리에 들기까지 그 앞에서 어른거릴 때 어른거리고, 물러나 있을 때 물러나 있고 하면서, 입안에 혀처럼 성미를 맞추며 시중을 들었다.
 
16
객주 주인 윤서방 집에서는 처음 매화를 허생의 소첩이거니 하였었다.
 
17
그래서 아씨 혹은 마마로 그를 불렀다.
 
18
먹쇠의 발명으로 매화가 허생의 소첩이 나닌 것을 윤서방네 집안에서는 알았으나, 한번 밖으로 소문은 되돌아오지를 못하였다.
 
19
섣달 초생이 되자 사람들이 벌써 모이기 시작하였다.
 
20
너댓 식구의 한 가족도 있었다. 단 두 내외의 호젓한 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조부모, 부모, 형제, 자질 모두 해서 열댓 명이 넘는 가족도 있었다.
 
21
허생은 그들을 한 가족씩 한 가족씩 맞아 고향과 성명과 나이를 적은 후에 임시로 방을 빌어 한 가족씩이 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열 가족이 되면 그중 한 사람을 뽑아 그 열 가족을 거느리고 모든 범절을 보살펴 주게 하였다. 이 거느리는 사람을 십사장(十司掌)이라 하였다. 열 가족을 맡아 거느리고 보살펴 주고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22
그 다음 또 열 가족을 한데 모아 그중 한 사람을 뽑아 십사장을 내고, 또 그 다음 열 가족을 모아 그중 한 사람을 뽑아 십사장을 내고.
 
23
이렇게 하여 보름날까지에 모인 바 일천의 가족을 열 가족씩 열 가족씩 백으로 나눠 제일호로부터 제백호까지의 일백 명의 십사장으로 하여금 각기 그 열 가족씩을 맡아 거느리게 하여놓았다.
 
24
십사장의 위에다는 다시 백사장(白司掌)을 두었다. 백 명의 십사장을 열씩, 열씩 열로 나눠 제일호로부터 제십호까지 있는 열 명의 백사장으로 하여금 한 명의 백 사장이 열 명의 십사장씩을 맡아 거느리게 하였다.
 
25
이렇게 해서 허생의 밑에는 열 명의 백사장이 있고, 백사자의 밑에는 각기 열 명씩의 십사장이 있고, 십사장의 밑에는 각기 열 명씩의 가족이 있고 하였다.
 
26
이와같이 폐를 짜놓았기 때문에, 허생이 만일 전원에게 무슨 알려야 할 일이 있으면, 천의 가족을 일일이 부르거나 찾아다니지 않고도 열 명의 백사장만 모이게 하여 필요한 전갈을 한다. 그런다 치면 백사장들은 제각기 제가 맡아 거느린 열 명씩의 십사장을 불러 허생의 전갈을 전하고, 십사장들은 각기 제가 맡아 거느린 열 가족에게 비로소 전갈을 전한다.
 
27
또 이와 반대로, 제육십오호 십사장이 맡아 거느린 가족들이 누구는 등에 종기가 나서 고약이 있어야 하고, 누구는 해산이 임박하였으니 산미와 미역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부여가 바로 처가인데 마지막 작별삼아 내외가 함께 작별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할 경우면, 그들을 세 사람이면 세 사람이 제마다 그리고 직접 허생에게를 갈 것이 없이, 자기네의 십사장이 대신하여 제육호 백사장에게 사연을 보고하고, 백사장은 그것을 허생에게 보고하고, 그런다 치면 허생은 백사장에게다 적당히 그 처리를 지시하고, 백사장은 제육십오호 십사장으로 하여금 각기 그 당자들에게 허생의 지시를 전달하도록 하고 하는 것이었었다.
 
28
이를테면, 군대의 조직과 같은 조직으로 규모가 있고 여러 가지로 순편하였다.
 
29
허생이 그와 같이, 돈을 물쓰듯 하면서 갖은 물건을 사들이는 판에 강경 장터는 큰 난리가 난 형국이었다.
 
30
난데없는 큰부자가 들어와 그 큰 배를 자그만치 오십 척이나 산다, 곡식을 수천 석을 사들인다, 육축을 수백 마리씩 사들인다, 그 밖에 미영이며 농사 연장이며 살림살이 제구 하며를 산더미같이 사들인다, 그러나마 값은 부르는 대로 내고.
 
31
웬만한 장사꾼들은 그 바람에 큰 수를 잡았다.
 
32
강아지가 냥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리가 날 지경으로 돈이 흔하여졌다.
 
33
강경 장터가 크다고는 하지만, 생긴 이후로 이렇게 세월이 좋고 풍성풍성하기는 처음이었다.
 
34
아무도 그러나 영문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35
서울 어떤 큰부자가 돈은 많고 할 일은 없어 심심풀이로 장난을 하느라고 그런다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36
오래지 않아 정도령이 계룡산 신도안(鷄龍山新都內)에 도읍을 하게 되었는데 시방 그 준비로 그런다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37
남해바다에 있는 신조선(新朝鮮)으로 실어갈 물건들이라고, 그래서 배까지 그렇게 많이 샀다하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38
명년에 또 호란(胡亂)이 난다는데, 아마도 서울 양반들이 지리산 속으로 피난갈 채비를 차리느라고 그러나보다고 하는 사람고 있었다.
 
39
이렇게 구구히 소문이 자자한 판에, 그러자 조금 있더니, 웬 험수록 한 사람들이 이불 보퉁이야 옷보따리를 해서 지고 이고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40
다섯, 열, 백, 이백, 천, 이천…… 꼬리를 물고 자꾸만 모여들었다. 하되, 혼자 혼자의 단신이 아니요, 저마다 부처를 중심으로 노인이며 어린아이를 데란 한 가족씩들이었다.
 
41
마침내 수수천 명이 모였다.
 
42
강경 장터가 터질 것 같았다.
 
43
바이 동이 나고, 사방에다 움을 팠다.
 
44
바닥 사람들은 정녕 무슨 변괴가 나는 것이라 하여 불안에 휩싸여 구석구석이 수군덕거렸다.
 
45
그러다가 그 모여든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살 집이 있고, 부칠 땅이 있고, 농사해서 거둔 것을 빼앗기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가 있고, 그리고 양반 상늠이 없고, 편안히 앉아서 남을 부려먹는 사람도 없고, 이런 낙천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요, 그러느라고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의혹들이 풀리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신반의하는 편도 없지 아니하였다.
 
46
배 오십 척 가운데 스무 척에다는 곡식을 실었다.
 
47
열 척에다는 소와 도야지와 닭 등속의 육축과 그밖에 사들인 여러 가지 물건을 실었다. 그리고 나머지 스무 척에다는 사람을 태울 참이었다.
 
48
섣달 열아흐렛날까지에 만단의 준비는 다 되었다. 허생은 열 사람의 백사장을 불러 예정한 대로 밝는 날 아침에 길을 뜰 터이니 전원이 다 선창으로 모이도록 전달을 하게 하였다.
 
49
사천여 명의 희망을 싣고, 배 떠날 아침은 밝았다.
 
50
흐릿하던 날이 굵은 흰 눈발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였다. 금년 들어 첫눈이었다. 첫눈은 반가운 것, 사천여 명 여러 사람의 가는 앞길을 축복하는 듯 상서로운 눈이었다.
 
51
떠나는 사람 사천여 명에 구경하러 모인 바닥 사람 수천 명이 그 넓은 강경 선창을 덮었다.
 
52
떠나는 사람들은 열 가족씩 열 가족씩이 각기 십사장의 지휘하는 대로 한 무더기씩 따로따로 모여서서 배에 오를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53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지껄이고, 아기가 울고 하느라고 대단히 요란하였다. 그러나 함부로 자리를 떠나거나, 혹은 먼저 배에 오르려고 다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54
그들은 팔도 각처에서 모인 형형색색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일찌기 농민들이었다는 것과, 남의 압제를 받으며 굶주리고 살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꼭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55
허생은 여전히 그 낡아빠진 갓에 꾀죄죄한 옷 주제에 나막신을 떨걱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지휘하고 명령하고 한다.
 
56
허생을 오늘야 처음 보는 구경꾼들은 모두들 허생이 그렇듯 외양이 보잘것없는 사람인 데에 놀란다.
 
57
저 사람은 허생원이 아니고, 그 밑에서 서두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58
새때까지에 전원이 다 배에 오르기를 마쳤다.
 
59
맨 앞배에 탄 허생이 기를 두른 데 좇아, 배들은 일제히 닻을 감고 돛을 올렸다. 바람은 쾌히 불었다. 사천여 명 인간의 새로운 희망을 실은 오십 척의 선단은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어야디야 뱃소리도 높게 조용히 선창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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