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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6 ◇
해설   목차 (총 : 9권)     이전 6권 다음
1946.11.15
채만식
1
제주 목사 김아무는, 도임하여 온 지 삼 년 동안에 한 일이라고는 돈냥 있는 백성을 무실한 죄로 얽어 붙잡아다 가두고는 두들겨패어 재물을 빼앗기…… 이 짓을 하여 그동안 벌써 만금을 몽똥그려 두었고,
 
2
인물 반주그레한 남의 집 처녀와 남의 부인을 한 삼백 명 가량 농락을 한 것이 있고.
 
3
이 두가지 것밖에는 삼 년 제주 목사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4
명색이 송사라는 것이 간혹 없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송사는 으레껏 뒷줄로 돈을 많이 먹이는 놈이 이기고, 아무리 잘했더라도 뒷줄로 돈을 쓰지 아니하면
 
5
“이놈, 죄는 네게 있느니라.”
 
6
하는 호령과 더불어 늘씬 곤장을 맞고 나와야 하였다.
 
7
이런 다스림을 하는 목사건만, 군데군데 그의 선정비(善政碑)가 섰으니, 재미스런 노릇이었다.
 
8
송삼복이라는 이방이 있었다.
 
9
몸집은 조막만하고 얼굴은 족제비 상으로 생긴 요놈이, 목사의 심복으로 목사가 핥고 난 찌꺼기를 천신하고 다니면서, 온갖 자깝을 다 부리는 놈이었다.
 
10
정월 초사흗날이었다.
 
11
목사의 심부름으로 조천(朝天)에 나갔던 이방 송삼복이가 저뭇하여 돌아오더니, 까맣게 기다리고 앉았는 목사더러
 
12
“사또안전, 큰일났읍니다.”
 
13
하고 밑도끝도 없는 소리를 하였다. 목사는 일이 마가 든 줄 알고
 
14
“어째, 계집아이가 도망질이라도 쳤드란 말이냐.”
 
15
하고 초초히 묻는다.
 
16
조천 사는 이좌수가 열일곱 살 먹은 딸이 있는데, 인물이 제법 쓸 만 하였다.
 
17
목사는 그것을 알고, 이방 송삼복을 시켜, 이좌수더러 딸을 들여보내라고 하였다.
 
18
이좌수는 못한다고 잡아 끊었다. 작년 세안 대목이 압박하여서였었다.
 
19
목사는 오늘 아침에 다시 송삼복을 시켜, 순리로 듣지 아니하면 내일은 새벽같이 포리가 물려나가느니라고 엄포를 하게 하였었다. 소위 ‘관쓴 불한당’의 행티하고도 자못 노골한 행티였다.
 
20
“계집아이는 둘째올시다. 시방 조천은 생난리가 났읍니다.”
 
21
송삼복의 대답에, 목사는 갈피를 잡지 못하여
 
22
“난리라니, 건 무슨 소리냐?”
 
23
“서울 사는 큰부자로, 허씨라는 양반이, 큰 배 오십 척에다 곡식을 수천 석을 싣고 사람을 수천 명이나 데리고, 돈도 수만 냥을 가지고 조천으로 들어와서 시방 짐을 푼다, 사람을 내린다 하느라고 야단법석이 났어와요.”
 
24
“허씨에, 큰부자에, 양반이라…… 못 듣든 사람인데……그래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많은 곡식에, 돈에, 사람들을 싣고 왔다드냐?”
 
25
“소인도 자상히는 모로겠사와도, 우리 제주도로 살러 왔다고 하나보와요.”
 
26
“그럼, 실없이 잘 되었구나. 응, 삼복아. 불감청이언정 고소원하든 노릇이지, 그렇지 않으냐.”
 
27
“그야 여부가 없읍지요.”
 
28
“그런데, 큰일이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29
“헤헤헤.”
 
30
송삼복은 근천스럽게 웃고 나서
 
31
“하도 큰 봉이 걸려들었길래, 사또안전 좋아하시 전에 놀래 드릴 양으로 그랫읍니지요, 헤헤.”
 
32
“허, 그놈 참. 저 기름에 튀할 놈한테 가끔 내가 속아넘어간단 말야, 허허. 그래 얘 삼복아?”
 
33
“네.”
 
34
“기집두 쓸 만하게 더러 있다드냐?”
 
35
“그 많은 인총에 기집이 절반일 텐데, 그중에서 쓸 만한 기집이 없겠사와요.”
 
36
“그렇기는 하다마는.”
 
37
“그거보담두, 그 허씨가 소첩 하나를 데리구 왔는데, 인물이 아주 똑 떨어졌사와요.”
 
38
“똑떨어졌어. 정말이냐?”
 
39
목사는 사뭇 회가 동하는 듯, 그의 우람스런 체집이 무색할 만큼 경망스럽게, 그러면서 이방 송삼복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목사는 외양 생김새 하나만은 얻다 내놓아도 한 사람의 방백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풍신이었다.
 
40
“소인이 눈으로 보지는 못했읍니다마는, 조천 백성이 이르느니, 그 말이니, 아마 잘 생기기는 잘 생겼나보와요.”
 
41
“으응……”
 
42
목사는 눈을 갠소롬히 하고 호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연방 끄덕이더니
 
43
“허가는 그럼, 그물에 든 고기니, 수히 곧 주물러 짤 도리를 마련하려니와, 얘야 그렇다고 생일날 잘 먹자고 이레 굶겠느냐. 이좌수 딸년은 어떻게 되였느냐?”
 
44
“아무래도 포교가 나가야 할까보와요.”
 
45
“영영 내뻗드냐?”
 
46
“나를 죽이고 데레가라고 허와요.”
 
47
“내일 포교를 풀어 내보내라. 고현놈이지, 제가 어딜. 내가 제주 목사 삼 년에 하고 싶은 노릇을 못해 본 일이 없다. 이좌수 따위가 다 무엇이냐. 애비와 딸년을 다 잡아 대령해라. 잡아다, 애비는 옥으로, 딸년은 별당으로…… 알지.”
 
48
“네에.”
 
49
“에잉. 오늘 저녁에 꼬옥 재미를 보기로 요량을 했드니, 에잉. 삼복이, 네 에미라도 오늘 저녁에 대신 대령시켜라.”
 
50
“네에. 그렇지만 소인의 에미는 쪼굴쪼굴합니다.”
 
51
같은 날, 이보다 조금 앞서서 조천에서는
 
52
오십 척 배에 실은 물건을 풀고, 사람이 내리고 하느라고 이방 송삼복이 목사더러 허겁을 떤 대로 완연 난리가 났었다.
 
53
내린 사람들은 일변 움을 파기 시작하였다. 강경 장타와도 달라, 사천여 명을 임시나마 거접케 할 방이 이곳 조천에는 없었다.
 
54
요행 제주는 기후가 온화하여 정월인데 밭의 무배추가 푸르고 무성한채 그대로 있는 곳이라, 간단한 움으로도 추워서 못견딜 염려는 없었다.
 
55
짐 푸는 데로, 사람들 내리는 데로, 움을 파는 데로 오락가락하면서 지시도 하고, 보살펴 주기도 하던 허생은, 문득 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뒷짐을 지고, 여전히 그 굽 닳아빠진 나막신을 떨걱거리면서.
 
56
허생은 무엇보다도 바닥 사람을 사귀어야 하였고, 민정을 살피어야 하였다.
 
57
행방이 없이 마을로 들어간 허생은, 이 고샅 저 고샅 돌어다니다가 한 고살에서 곡성이 나는 소리를 들었다.
 
58
처음에는 초상집인가 하였으나, 초상집 울음과는 좀 다른 것이 있었다.
 
59
허생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였다.
 
60
울음은 늙은 울음, 젊은 울음, 서넛이나가 어우러져 우는 울음이었다.
 
61
“어이구 분하고 원통한지고. 그놈이, 그 몹쓸 놈이, 필경은 내 딸자식을, 내 딸자식을…… 어이구 원통한지고.”
 
62
이런 넋두리를 하면서, 그중에도 늙은이 하나가 설리설리 울었다.
 
63
허생은 주저하지 아니하고, 그 집 앞으로 가 사립문 밖에서
 
64
“일오느라.”
 
65
하고 커다란 음성으로 불렀다.
 
66
몇 번을 불러서야, 울음이 하나씩 둘씩 다 그치더니, 그러고도 다시 몇 번을 불러서야 겨우 뉘시오 하고 허연 노인이 나왔다.
 
67
한 칠십 되었을까, 의표도, 허술한 집과 한가지로 곤궁은 하여 보였으나, 사람은 매우 깨끗하고 점잖스런 풍모였다.
 
68
노인은 숨겨지지 않는 울음끝을 강잉하여 숨기면서, 퉁명스럽게
 
69
“누구요?”
 
70
하고 책망하듯 묻는다. 그러면서 손의 그 근천스런 노랑수염이 성깃성깃한 얼굴에, 다섯 자가 찰락말락한 키에, 낡아빠진 갓에, 굵다란 무명 옷에, 가뜩이나 나막신을 끈 몰골을 시장스럽게 위아래로 씻어본다.
 
71
허생은 공순히
 
72
“주인인가요?”
 
73
“그렇소. 무슨 일로 그러오?”
 
74
“내 성명은 허생이라고 부릅니다.”
 
75
“허씨요?”
 
76
노인은 의외라는 듯이, 허생을 고쳐 한번 위아래로 씻어보면서
 
77
“일전에, 사람을 많이 데리고 이 조천으로 왔다는 허씨요?”
 
78
하고 묻는다. 성가시어하는 눈치와, 퉁명스런 말씨가 저으기 가시면서.
 
79
허생은 그러노라고 대답한 후에
 
80
“우연히 이 앞을 지나느라니까. 댁에서 심상치 아니한 곡성이 들리기에 정녕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신 모양 같고 해서, 남의 댁 일에 이런 참섭이 부질없기야 합니다마는, 그래 좀 보입자고 한 것입니다. 어떤 곡절이신가요?”
 
81
노인은, 손의, 생김새와는 달라, 정중하고도 위품 있는 언사하며, 겸하여 그의 어데서라 없이 풍기는 어떤 거역키 어려운 업기에, 일변 서울의 큰부자요 양반이요, 오십 척의 큰 배에다 많은 물화와 수천 명의 사람을 싣고, 시방 조천으로 들어와 법석을 낸다는, 그 호기 좋은 나그네라는 데에, 마침내 기운이 눌리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응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부드러워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82
“쯧, 불필히 아시려고 하실 것까지 없소이다.”
 
83
“그렇지 않을 일이 있읍니다. 노인한테 이하면 이했지 해는 끼쳐 들릴 리가 없으니, 좌우간 곡절 이야기를 해보십시요.”
 
84
“………”
 
85
노인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면서 덤덤히 섰더니
 
86
“누추한 대로 좀 들어앉입시다.”
 
87
하고 허생을 사랑으로 인도한다.
 
88
주객이 자리를 정하고 앉아, 새로이 나는 이좌수요, 나는 허생이요 하고 통성명을 한 후에, 주인 이좌수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89
“내가 젊어서 슬하에 혈육이 없다가 오십이 넘어 딸자식 하나를 낳아서 올에 나이 열일곱이요. 남의 부모 된 사람으로 자식 귀여 아니할 사람이 있을꼬마는, 나는 남의 열 자식보다 더 소중한 자식인데, 제주 목사가 그걸 제게다 바치라는 것이오. 그것도 뺏어다가 소첩을 삼아, 길이 데리고 산다고 해도 나로서는 차마 못할 노릇인데, 그놈의 행투로 보아, 며칠 두고 농락이나 하고 나서 헌신짝 버리듯 버려버릴 것이니, 강약이 부동으로 아니 뺏기는 수는 없고, 그러니 이런 원통하고 분할 도리가 있오. 내가 칠십 평생에 제주 목사를 수십 명을 치렀고, 그중의 악한 목사놈도 많이 보기는 보았소마는, 이번 김가놈 같은 놈은 보기를 처음 보았소.”
 
90
그러고는 이좌수는 이어서, 제주 목사의 토색질하는 것, 처녀와 남의 안해 빼앗아다 버려주는 것, 그 밖에 여러 가지 악정과 행악을 들어 세세히 이야기를 하였다.
 
91
허생은 일찌기 서울서와 또 이번에 해남에서 제주 목사의 선성을 들은 것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이좌수의 말을 종한다면 듣더니보다도 훨씬 더 악랄한 것이 있음을 알겠었다.
 
92
“힘은 없으나마 내가 나서서 무사하도록 해 드리지요.”
 
93
“그럴 수만 있다면 백골이라도 은공을 못 잊겠소이다.”
 
94
“우선, 지금부터라도 노인이 좀 서둘러 주서야 할 일이 있읍니다.”
 
95
“불 가운댄들 사양하겠소이까.”
 
96
“제주성내에서 목사의 행악에 불평심을 먹은 사람이 허다히 있을 게 아니겠읍니까?”
 
97
“제주 백성이 다 그렇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지요. 이방 송삼복이 한놈만 빼놓고는.”
 
98
“그렇게 불평심을 품은 사람으로, 그중에서 사람 똑똑하고 남들이 미더워하고 하는 사람을 몇십 명이고 내일 밤까지에 조천으로 모여서 나와 조용히 만나도록 해주십시요.”
 
99
“그렇다면 오늘 밤 안으로 서둘러야 할걸. 내일이면 오때가 못 되어서, 나는 붙잡혀가고 말 테니.”
 
100
“그러면 시방 이 길로 성내로 들어가서서, 우선 몇몇 사람만 청해 가지고 나오십시요. 그리고 노인일랑 오늘 밤 이윽해서 가권 데리고 내 배로 피신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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