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許生傳 (채만식) ◈
◇ 7 ◇
해설   목차 (총 : 9권)     이전 7권 다음
1946.11.15
채만식
1
사흘이 지나 초엿샛날이었다.
 
2
바로 어저께까지도, 육방 관속에 송사하러 들어온 백성들에 사령들의 긴 대답 소리에 사람으로 가득 차서 오락가락하고 시끄럽고 할 동헌이, 목사 하나 이방 송삼복이 하나가 달랑하니 상방에 앉았을 뿐,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 볼 수 없고, 죽은 듯이 조용하였다.
 
3
목사나 이방 송삼복이나 참으로 도깨비에 홀린 형국이었다.
 
4
아침에 내아에서 잠이 깬 목사는, 내아에서 부리는 하인들이 밤 사이로 죄다 없어져버렸다는 실내마마의 말에 우선 놀라고 화가 났다.
 
5
남이 해다 바치는 밥을 먹을 줄밖에 모르는 목사 내외는 아침밥을 굶어야 하였다.
 
6
동헌으로 나와 이방 송삼복이 외에는 각방 아전은 물론이요, 통인 한놈, 방자 한 놈 없이 텅 빈 것을 본 목사는, 화증이 나기보다도 무서운 생각에 등골이 우선 서늘하였다.
 
7
대체 무슨 내력인지 알 수가 없었다.
 
8
밤 상이에 육방 관속이 죄다 병이 나고, 죽고, 연고가 생기고 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9
그러나 일변 또 밤 사이에 육방 관속이 죄다 병이 나고, 죽고, 변고가 생기지 하지 아니한 다음에야 이다지도 싹싹 무엇이 쓸어간 것처럼 한 놈도 없이 없어지고 말 이치는 없는 것이었었다.
 
10
목사는 당장 배가 고팠다. 마마가 하는수 없이 정주로 내려가기는 하였으나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섰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할 줄 모르나 따나, 밥을 짓고자 하여도 물을 길어올 재주가 없기 때문이었다.
 
11
목사는 변소에를 가야 할 터인데, 뒤지를 가지고 대령하는 똥방자가 없으니 큰일이었다.
 
12
화가 나니 담배라도 먹어야 하겠는데, 담뱃대에 담배를 넣어 올리고,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이게 하여 주는 통인이 없었다.
 
13
오늘은 옥에 가둔 죄인 가운데 끌어내다 닦달을 할 놈도 많았다. 또 사흗날 이후로 종적을 숨긴 이좌수와 그 딸년도 기어코 찾아서 붙잡아들여야 하였다.
 
14
그런 것도 그런 것이려니와 이놈들이 죄다 밤 사이에 죽었거나 무엇이 물어가지는 아니하였을 터인즉, 놈들을 붙잡아다 혀가 나오도록 깡그리 매질을 해야만 할 터인데, 대체 누구를 시켜, 우선 놈들을 붙잡아 오기라도 하느냔 말이었다.
 
15
제주 목사가 저으기 우둔치 아니한 인간이었다고 하면, 남의 시중과 남의 손발이 아니면 기거범절의 신변사를 비롯하여 모든 공사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꼼짝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양반이라는 것, 따라서 세상에 양반처럼 무력하고 양반처럼 불편하고 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저으기 깨달았을 것이였으나, 그는 타고나기를 우둔하게만 타고난 사람이어서 도저히 생각이 그런 데까지 미치는 수가 없었다.
 
16
“이놈아, 너라도 나가서 우선 수형방(首刑房)놈 먼저 묶어들이게 해라.”
 
17
목사는 이방 송삼복을 이렇게 구박을 하는 것이었다.
 
18
송삼복은 하는 수 없이 일어서면서
 
19
“소인이 오랏줄이 있어야 수형방을 묶어들입지요.”
 
20
“밧줄로는 못 묶느냐?”
 
21
“밧줄이야 있읍지요마는, 몸집이 소인 갑절이나 큰 수형방이 소인에게 묶이겠읍니까?”
 
22
“이놈아, 어명을 받들고 내려온 제주 목사의 영이란 말도 못하느냐?”
 
23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답니다. 아뭏든 우선 나가서 동정이나 살피고 옵지요?”
 
24
동헌을 나와 수형방의 집을 찾아가던 길초에서 송삼복은 사령 하나를 만났다.
 
25
“아아니, 너 웬 일이냐?”
 
26
송삼복이 질책하듯 묻는 말에 사령은 천연덕스럽게
 
27
“네, 인전 사령 구실 그만 다니고 달리 장사라두 할까 해서요.”
 
28
“그렇드래두, 온다간다 말이 없이 그러는 법이 있단 말이냐.”
 
29
“하기 싫은 사령 구실 억지로 다니라는 법은 있나요.”
 
30
“너 이놈, 그렇게 방자히 굴고서도 제주 바닥에서 온전히 살까.”
 
31
“아따 못 살면 대수요.”
 
32
송삼복은 분한 깐으로 하면 사령놈을 당장 물고를 낼 것이지만, 누가 있어 송삼복을 위하여 방자스런 사령을 덜미 짚어다 형틀에 올려매고 넓죽넓죽 곤장질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33
수령방은 집에 있었다.
 
34
수형방은 나이 많아 형방 구실을 그만 다니겠다는 것이 먼저의 사령과 핑계가 다를 뿐이지, 그 나머지 문답은 결국 그 말이 그 말이었다.
 
35
호장, 공방, 형장, 비장 죄다 찾아보았으나 죄다 같은 대답이요, 같은 태도였다.
 
36
사실 보고를 들은 목사는 화증을 내어 펄펄 뛰고 할 기운조차 없었다.
 
37
목사는 어깨가 축 처져가지고 앉아 한숨만 거듭 쉬었다.
 
38
“정녕 그놈들이 나를 끕끕수를 주자고 저희끼리 짜고서 이 거조를 낸 것이 아니냐?”
 
39
얼마를 있다가 목사가 그러는 말에 송삼복은
 
40
“소인 소견에도 십분 그런 상싶습니다.”
 
41
“그러니, 놈들이 길래 이런다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42
“길래 그런다면 큰일이다뿐이겠읍니까마는……”
 
43
“마는……”
 
44
“하여튼 좀 두고 동정을 봅지요.”
 
45
마마가 몸소 동헌으로 나와 조반이 되었다고 하였다.
 
46
속은 상하여도 시장한 판에 밥은 반가운 것이었다. 목상의 밥상은 있던 김치에 장조림에 젓갈 등속으로 아무려나 시늉만은 내었으나, 밥은 밥인지 죽인지 분간 키 어려운 이상한 물건이었다. 그러나남 냇내가 코를 지르는.
 
47
그럭저럭 보름이 지났다.
 
48
목사는 할 수 없이 제주를 떠나기로 하였다.
 
49
그동안 목사는 이방 송삼복을 시켜 육방 관속들을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하여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50
송삼복이 나서서 새로이 관속을 뽑아보았다. 다리가 뻣뻣하도록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권을 하여도 통인 하나 구하지를 못하였다.
 
51
마지막으로 요를 그 전의 삼 곱을 주기로 하고 사방에 방을 붙이는 한편, 다시 송삼복이 나서서 권면을 하고 다녔다.
 
52
역시 아무 보람이 없었다.
 
53
이방 하나를 데리고는 목사질이 되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54
목사질을 못하게 된 바에야, 우두커니 언제까지고 텅 빈 동헌만 지키고 앉았을 터무니가 없는 것이었다. 제일에 밤이면 귀신 우는 소리에 사뭇 한축이 날 지경이었다.
 
55
마침내 목사는 마마와 함께 평복으로 차리고 보따리에다 값나가는 것으로만 보화를 꾸려 짊어지고 제주성내를 떠났다. 이방 송삼복이도 제가 한 가늠이 있어 부지를 못할 줄 알고 마침 식구가 단 내외인 것이 다행이어서 목사를 따라 서울로 가기로 하였다.
 
56
욕심 같아서는 모아 둔 돈과 그 밖에 모든 것을 죄다 가지고 가고 싶었다.
 
57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성내에서 조천까지 짐을 져다 줄 사람은 눈먼 병신 하나가 없었다.
 
58
평복에 짚신을 신고, 꽤 큰 보따리를 어깨가 진 목사가 앞을 서고, 마마가 그 엯; 힘에 겹도록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서 뒤를 따르고, 그 뒤를 이방 송삼복이 내외가 커다란 한 보따리씩을 지고이고 하고서 따르고, 이런 창피한 행색으로 목사는 제주를 떠나지 아니치 못하였다.
 
59
목사가 제주를 떠난다 하니, 거리거리 나서서 구경들을 하였다.
 
60
어떤 장난꾸러기는, 고개 푹 수그리고 지나가는 목사의 앞으로 뛰어나가 너풋 절을 하면서
 
61
“사또안전, 어데 행차신가요?”
 
62
하는 사람도 있었다.
 
63
누구는 따라가 보따리를 만지면서
 
64
“져다 드립지요.”
 
65
하는 사람도 있었다.
 
66
제주 백성은 거개가 목사에게 원한이 깊었다. 그중에도 목사의 손에 부형이 억울히 매를 맞고 죽은 사람, 안해나 딸자식을 농락당한 사람, 이런 사람들의 원한은 도저히 목사를 제 발로 성하게 걸어서 돌아가도록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허생의 단속으로 패하여 추렷이 물러가는 자에게 손을 대지는 아니하였다.
 
67
목사 일행은 조천에서 두 달을 묵었다. 배는 없었다.
 
68
그들은 주막에 들어 한 상에 열 냥 스무 냥 하는 밥을 혹은 금싸라기로, 혹은 은덩이로, 혹은 패물로 주고 사먹어야 하였다. 값을 그렇게 받지 않고는 그들에게 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니 무가내한 노릇이었다.
 
69
일행이 목숨같이 여기며, 어깨가 휘고, 목이 옴츠라드는 것도 헤아리지 아니하고 성내에서 조천까지 지고 온 보따리의 금은 보화와 비단이 하나도 없이 밥값으로 동이 나던 두 달만에야 겨우 배가 있어 아무려나 그들은 조천을 떠날 수가 있었다. 물론 맨주먹에 빈 보따리였다.
 
70
미구에 새로이 제주 목사가 나고, 도임을 하고 하였다.
 
71
신연 하인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못하여 신관은 자기 집 하인 둘을 데리고 호젓한 도임을 하였다.
 
72
배에서 조천에 내린 신관은 우선 말을 구하지 못하여 걸어서 성내까지 들어가야 하였다.
 
73
동헌은 텅 비고, 구관 때 그대로 육방 관속이라고는 구림자도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74
신관이 데리고 온 자기 집 하인을 시켜 전임 관속을 찾아다니며 다시 구실을 다니도록 일렀으나 아무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75
이방 하나를 데리고는 목사지를 못 하듯이, 하인 둘을 데리고도 목사질은 못하는 법이었다.
 
76
도임한 지 스무 날 만에 신임 목사는 도임하던 때 모양으로 하인 둘을 데리고 걸어서 제주를 떠났다.
 
77
둘쨋번의 신관 제주 목사도 별수가 없었다.
 
78
세쨋번, 네쨋번도 매양 일반으로, 보름 아니면 스무 날 만에 돌아가고 말았다.
 
79
서울서는 아무도 제주 목사를 원하는 사람이 없게쯤 되었다. 조정에서는 성가신 참이라, 제주 하나쯤 한동안 공관(空官)이면 어떠랴 하고서 내버려 두고 말았다.
【원문】7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77
- 전체 순위 : 761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12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6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해설   목차 (총 : 9권)     이전 7권 다음 한글 
◈ 許生傳 (채만식)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