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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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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1.15
채만식
1
어느덧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2
그 동안 제주는 허생이 일찍이 여러 사람들에게 언약을 한 대로, 그리고 조천에 내리어 제주의 유력한 사람들에게 역시 언약한 대로, 낙천지──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3
살 집이 있었고 부칠 땅이 있었다. 농사해서 거둔 것을 빼앗기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다.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고, 저 혼자만 편안히 앉아서 남을 부려먹으려 드는 사람도 없고, 이런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4
게으르면 당장 배가 고프고, 또 남들이 게으른 놈으로 돌려놓고 하기 때문에 다들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5
남의 것을 부러워할 일도 없고, 남에게 의지해서 살 필요도 없었다.
 
6
저마다 성실히 일하며 살되, 남을 해롭게 하기를 절대로 삼가하였다. 사람들은 남에게 사폐가 되는 일이면 아무리 이가 되는 일이라도 사양하였다. 자연 싸움이 없고 화목하였다.
 
7
말을 많이 쳐서, 말과 말총을 육지로 내어 돈과 제주에 없는 물건을 사들였다. 생선과 미역을 많이 따서 역시 육지로 보내었다.
 
8
일본 장기(長崎)에도 배로 교역을 하였다. 더러는 청국과도 교역을 하였다.
 
9
제주는 아무 부족할 것도 기릴 것도 없는 낙천지──살기 좋은 고장이 되고서도 오히려 남을 것이 있었다.
 
10
모든 것이 허생의 힘이었다.
 
11
삼 년 동안 허생은 오로지 제주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에만 정성을 다하였으며, 사람들을 편안히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만 힘을 썼다. 그리고 모든 것이 허생의 뜻한 대로 다 되었다.
 
12
언약한 바를 언약한 대로 성취한 허생은 제주에 더 머물러 있어 할 일이 없었다.
 
13
부인 고씨가 가난을 참지 못하여 바가지를 긁고 하는데, 예라 잠시 동안 세상 바람도 쏘이고 세태와 물정도 두루 살펴 후일의 도움을 삼으리라 하고 집을 나선 것이었었다.
 
14
막연히 과객질이나 하고 돌아다니기보다는, 자기의 경세(經世)하는 재능과 솜씨를 한번 시험하여 봄도 무방한 일이었다.
 
15
우선 초면 부지의 변진사에게서 단 두 마디로 만 냥의 큰 돈을 구하여 내는 데 성공하였다
 
16
만 냥의 밑천으로 십만 냥의 돈을 용이히 만들기도 하였다.
 
17
제주 목사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제풀에 물러가게 하기도 하였다.
 
18
사천여 명의 불우한 사람들과 제주 일판의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히 잘 살 수 있도록 하여 주기도 하였다.
 
19
모든 것이 성공이었다. 그러니 인제는 돌아가 글을 더 읽는 것이 것이었었다.
 
20
허생쯤으로는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남기고, 사람이나 몇천 명, 조그마한 섬으로 데리고 가서 편안히 살게 하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21
다만 재주를 시험한 것에 지나지 못하였다.
 
22
허생에게는 보다 더 큰 포부와 경륜이 있었다. 그 보다 더 큰 포부와 경륜을 펴기 위하여는 언제까지고 조그마한 섬 속에 꿇어 엎드려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몇 해 동안 글도 더 읽어야 하고.
 
23
허생을 부모같이 여기고 따르던 제주의 뭇 사람들은, 허생 보내기를 차마 못 하였다. 울면서들 만류하였다.
 
24
막상 떼치기 어려운 인정이었으나, 그래도 허생은 떠나지 아니치 못하였다.
 
25
떠나기 전에 허생은 앞으로도 시방처럼 잘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26
부지런할 것.
 
27
남의 것을 탐내지 말 것.
 
28
남의 허물을 용서할 것.
 
29
여러 사람의 이 되는 일이면 나 한 사람의 해를 상관치 말 것.
 
30
함부로 제주를 떠나지 말 것.
 
31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면 제주는 길이길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남을 것이라 하였다.
 
32
그리고, 앞으로 조정에서 목사를 보내어 다스리는 마당에 만약 목사가 악정을 하거든, 일찌기 하던 법식대로 하여 그로 하여금 있지 못하고 물러가게 하라고 하였다.
 
33
봄 삼월, 일기 화창한 하루날, 허생은 만 명도 넘는 남녀노소의 전별을 받으면서 먹쇠를 데리고 배에 올랐다.
 
34
헌 갓에, 해어진 무명옷에, 굽 닳아빠진 나막신에…… 허생의 행색은 여전히 이렇게 초라하였다.
 
35
허생은 그동안 삼 년만 하여도, 육지로부터 여러 만금을 벌어들였었다.
 
36
그러나 그는 떠나는 마당에서는 먹쇠의 전대에 돈 석 냥을 넣게 한 것밖에는 없었다. 해남서 서울까지 갈 두 사람 모가치의 노수돈 석 냥이었다.
 
37
허생의 탄 배가 드디어 닻을 감고 돛을 올렸다. 배는 선창으로부터 조용히 물러났다.
 
38
“잘 가세요.”
 
39
“안녕히 기세요.”
 
40
이 마지막 작별의 인사 소리가 만 명의 입으로부터 수없이 외쳐졌다.
 
41
노인들은 눈물을 씻었다. 여자들은 허생원님, 허생원님 부르면서 울었다.
 
42
허생은 정든 자식을 떼치고 떠나기처럼 마음이 창연하였다. 뱃전에 지여서서 연방 손을 젓는 동안 무심코 눈물이 어리었다.
 
43
허생의 뒤에 서서 먹쇠도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44
이 융숭한 배웅과 간곡한 작별에 누구보다도 빠져서는 아니 될 사람이 하나가 눈에 뜨이지 아니하였다. 매화가 없어진 것이었다.
 
45
매화는 그도 만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조천으로 허생을 배웅하러 나오기는 나왔었다. 그러나 정작 허생의 배가 떠나는 자리에는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46
허생은 제주를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나서 어느 날 매화를 앞에 앉히고 조용히 물었다.
 
47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48
“저는 여기 있겠어요.”
 
49
머리를 숙이고 이윽고 생각하던 매화는 얼굴을 들어 똑바로 허생을 보면서 대답하였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고.
 
50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는 매화의 대답이 허생은 자못 의외였다. 한마디에 따라가겠노라고 하려니만 하였었다.
 
51
허생은 오입장이도 활량도 아니었다. 일만 사람의 민정(民情)은 살필줄 알아도 한 계집의 은근한 사모의 정은 알 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계집에 들어서는 골샌님이요, 근경속 없는 벽창호였다.
 
52
허생의 배가 선창에 빡빡히 들어선 여러 배 사이를 빠져 맨 갓배 옆을 지날 때에 그 맨 갓배의 뱃전에 가 매화는 서서 있었다.
 
53
허생도 뱃전에 서서 있다가 매화를 보았다.
 
54
“부디 몸조심하세요.”
 
55
“몸 편히 잘 있게.”
 
56
한마디씩 작별을 나누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사정 없는 배는 벌써 지나쳐 버렸다.
 
57
매화는 허생의 탄 배가 멀리멀리 물 너머로 가물가물 잠길 때까지 울면서 뱃전에 가 서서 있었다. 그러다가 허생의 배가 마침내 아니 보이고 말자. 그대로 치마를 뒤쓰고 바닷물로 몸을 던졌다.
【원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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