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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골 변 진사라면 모를 사람이 누구랴. 서울 장안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 팔도에 아동 주졸이라도 조선 갑부 다방골 변 진사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지요. 참말 이 완이 이 대장은 혹 모르는 이가 있었을는지 모르지마는 다방골 변 진사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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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다가 남으로 뚫린 골목이 었었습니다. 그 골목을 썩 들어서면 벌써 드는 나는 사람, 마치 큰 장거리나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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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을 헤치고, 얼마를 들어가면 비록 평대문일 망정 커다란 대문이 있고, 그 대문을 썩 들어서면 넓다란 마당이 있고, 거기서 또 대문을 들어서야 큰 사랑이 있는데, 사랑 저 아랫목에 안석에 기대어 앉은 얼굴동탕하고 뚱뚱하고, 구렛나룻이 희끗희끗 센 양반이 그렇게도 돈 많기로 유명한 다방골 변 진사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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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마침 효종 대왕께서 북벌의 큰 뜻을 두시옵고, 천하의 인물과 부자를 찾을 때라 당시 세도 좋기도 첫째가는 이 완이 이 대장을 시켜 변 진사와 친교를 맺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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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비록 다방골 사람에 불과하지마는, 어느덧 변 진사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어 남북촌 빳빳한 양반님들도 변 진사에게는 꿈쩍을 못하였더랍니다. 예나 이제나 돈이 힘이니까요. 장차 대군을 거느리고 중원이라는 청국을 들이쳐 남북 이만리 사백여 주를 한 번 손에 넣고, 흔들어 보르는 큰 일을 시작하였으니 인물인들 얼마나 귀하고, 부자인들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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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판인데 하루는 다방골 변 진사 집 사랑에 어떤 땟국이 꾀죄 흐르는 선비 하나가 서츰치 않고 마루에 올라서 대청을 지나 바로 변 진사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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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길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하도 위의가 엄숙하기 때문에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비슬비슬 뒷걸음을 치면서 어찌 되는 영문만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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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진사는 그 선비가 서슴치 않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읍한 후에 그 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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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번에는 변 진사가 물었습니다. 선비는 자기의 성명 삼자도 말하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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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긴히 쓸 곳이 있으니 돈 만냥만 돌려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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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시오. 어디로 보내 드리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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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즈음 안으로 안성 읍내 유 진사 집 허생원 이름으로 환을 놓아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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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변 진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 선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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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까 들어오던 모양으로 곁눈질 한 번도 아니하고 성큼성큼 나가 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은 모두 얼이 빠진 듯이 땟국이 꾀죄 흐르는 그 선비의 뒷모양만 바라보고들 섰다가 그가 대문 밖에 나가 버린지 얼마 뒤에야 그중의 한 사람이 변 진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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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은즉, 변 진사는 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그제야 자리에 도로 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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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엑 그렇게 큰 돈을 함부로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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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걱정을 한 즉, 변 진사는 태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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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더러 그만 돈을 달랄만한 사람이길래 달라는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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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모양을 보건대 돈 한푼 없는 사람인 모양인데 그럽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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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겉모양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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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달 그믐안으로 안성읍 진사 집 허생원 이름으로 돈 만냥만 환해 보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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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무슨 사람이길래 그렇게 구두쇠로 이름난 변 진사가 저렇게 여률령시행( (如律令德行)을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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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변 진사 집 문객들은 며칠을 두고 이야깃거리를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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