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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딸 ◈
◇ 세 친구 ◇
해설   목차 (총 : 6권)     이전 4권 다음
1931년
강경애 (姜敬愛)
 

1. 세 친구

 
2
재일은 늦게 일어났다. 하여 세수도 하기 전에 원선의 하숙을 찾았다. 그는 새로 깐 다다미 위에 비스듬히 책상켠을 의지하여 책을 보고 있었다. 아침 산뜻한 햇빛에 그의 얼굴은 한층 더 윤택해 보였다.
 
3
“여보게, 벌써 책인가?”
 
4
그는 빙긋이 웃으며 아까보다도 줄을 빨리 타내려갔다.
 
5
“그만두게, 밤낮 책만 들고……”
 
6
책을 뺏으려 하였다. 그는 책 든 손을 물리며,
 
7
“마자 보아야겠네. 잠깐만 기다리게.”
 
8
재일은 후다닥 일어났다.
 
9
“가겠네.”
 
10
그제야 책을 놓고 눈을 부비치고 바라보았다.
 
11
“놀다 가게나.”
 
12
“아니, 나 밥 안 먹었어. 봉준 군과 놀러오게나. 재미있는 일이 있어.”
 
13
어차피 잘되었다 하고 책을 들었다. 예정한 페이지까지 보고 난 그는 책을 덮고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 어젯밤 봉준에게서 들은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여 보았다. 따라 자기의 막연한 장래가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14
“난처한 노릇이지!”
 
15
그는 천장을 쳐다보며 이렇게 외쳤다. 봉준의 처지에 있어서는 딱히 이혼 하라고도 못하겠고 하지 말라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스스로 해결짓기 전에는 제 삼자로서는 어림도 해보지 못할 것 같았다.
 
16
신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누구인지 뻔히 알고 이때껏 하던 생각은 치워버렸다.
 
17
“칩지 않은가?”
 
18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문을 닫았다.
 
19
“앉게.”
 
20
그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21
“편지가 또 왔네그려.”
 
22
팡팡한 누런 편지를 원선에게로 내쳤다. 그는 받아들었다.
 
23
“보았나?”
 
24
묻고 나서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25
다 보고 난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26
“불쌍하지?
 
27
원선을 쳐다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묵묵히 있었다.
 
28
“난처하지, 세상 일이 왜 그런가?”
 
29
봉준이는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글썽글썽해졌다. 이런 편지를 받아쥘 때마다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0
차라리 옥이가 먼발로 친족관계가 된다든지 하면 얼마나 다정할 사이일는 지 몰랐다. 그러나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못할 일이었다.
 
31
“내 누님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32
외로운 것만큼 누님이라는 명사에 눈물이 날 만큼 감격되었다.
 
33
원선이는 봉준의 안타까워하는 모양을 바라보면서도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34
“숙희, 오, 숙희씨! 나는 숙희씨가 없이는 못살 것만 같애!”
 
35
봉준의 눈은 불이 붙었다.
 
36
“너무 감상적으로 나가지 말고 이왕이면 좀더 자네 마음을 기다려보게.
37
행여 나중에 사이 좋은 부부가 될는지 누가 아나?”
 
38
그는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39
“그리 된다면 나는 좋겠네마는…… 어림도 없는 소리.”
 
40
봉준이는 문켠을 향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41
“자네 숙희씨와 친한 사이라지?”
 
42
“친하다는 것보담두 그저 아는 사이지.”
 
43
원선은 편지를 도로 돌렸다.
 
44
“불쌍하네, 옥씨가.”
 
45
그저 아는 사이지. 이렇게 쓸어치는 원선이가 능글능글해 보였다. 차라리 솔직히 말하여 주었으면 어떨는지 몰랐다.
 
46
“그렇게 진심으로 불쌍히 생각하나? 다만 한 마디를 하더라도 참으로 하여 주게, 참으로!”
 
47
원선이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
 
48
“여러 소리 말고 재일군한테나 가보세.”
 
49
“흥! 혼자 가게나!”
 
50
그는 벌떡 일어났다. 원선이도 따라 일어났다.
 
51
“왜 또 그러나?”
 
52
봉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였다.
 
53
“자네 요새 바짝 더해졌네그려. 병원에라도 가보아야 하겠네.”
 
54
근심스러운 듯이 들여다보았다.
 
55
“자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구만. 그리 역정낼 것이 무언가?”
 
56
봉준이도 실은 재일이를 찾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나 치밀리는 감정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하나 그의 따뜻한 손맛으로부터 절반 너머 골이 풀렸던데다가 이렇게 다정스러이 말하는 것을 듣고 홱 풀리고 말았다.
 
57
“가세, 재일 군한테.”
 
58
눈물 고인 눈에 웃음이 돌았다. 원선이도 따라 웃고 밖으로 나섰다.
 
59
골목을 돌아서는 봉준은,
 
60
“여보게! 저기 오는 것이 숙희 아닌가?”
 
61
손짓을 통하여 바라보았다. 조선 여학생 둘이서 가지런히 걸어갔다.
 
62
“아닐세, 원……”
 
63
숙희면서도 자기에게는 숨기는 것 같았다. 그는 분주히 앞서가서 알아보고야 안심이 되어 돌아왔다.
 
64
“아니데.”
 
65
번번이 그를 의심하다가도 곧 돌리어 난처한 자기를 도리어 불쌍하게 보았다.
 
66
그들이 재일의 하숙 문을 열었을 때 첫눈에 책상 위에 놓인 파란 꽃봉투가 보였다.
 
67
그들이 앉자마자,
 
68
“편지 보게. 우리 숙희한테서 자네한테 한 것일세.”
 
69
원선에게로 편지를 던졌다. 번연히 봉준이를 놀리려고 하는 줄 알면서도 다소 가슴이 울렁거렸다.
 
70
“쓸데없는 소리 말아!”
 
71
정색을 하여 보였다. 재일은 슬쩍 웃으며 봉투 속으로부터 사진을 꺼냈다.
 
72
“편지 보기 싫으면 사진이나 보게.”
 
73
원선에게로 내어주었다. 그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이나 보더니,
 
74
“올해는 더 부해졌네그려.”
 
75
봉준에게로 돌렸다. 그는 사진을 받아들자 얼굴이 빨개졌다.
 
76
“아내 있는 사람은 처녀의 사진이 필요치 않을걸?”
 
77
봉준은 못 들은 체하고 언제까지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78
숙희를 사모한 지 근 몇 해 동안에 사진이나마 이렇게 보게 되기도 처음이었던 것이다.
 
79
숙희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사진이라도 한 장 보내주시오’하고 애걸하다시피한 구절이 생각키우며 눈물이 핑 돌았다.
 
80
“허, 남의 처녀 사진을 보고 울면 쓰나, 이리 내게!”
 
81
봉준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았다. 원선이는 재일에게로 달려들었다,
 
82
“그까짓 사진이 무엇하는 건가, 자네도 그만해 두게!”
 
83
그는 사진을 빼앗아서 봉준에게로 던졌다.
 
84
“옛네! 실물은 마음대로 못 보나 그래 사진이나 못 가져 보겠나.”
 
85
성이 날 줄 알았던 재일은 허허 웃었다.
 
86
“매우들 잘 논다. 상당한 극일세그려. 응 자네들도 배우 노릇 상당히 하겠네.”
 
87
눈을 슴벅슴벅하였다. 그들도 따라 웃었다.
 
88
재일은 눈을 실쭉하니 뜨고,
 
89
“자네, 그 사진 가지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어. 중매를 해달라는 말이야. 중매하겠나, 못 하겠나? 말하게.”
 
90
“나 같은 것이 중매자의 자격이 있는가?”
91
어 없다면 사진 도루 “ , 내게. 소용이 무어람. 자네가 총각이니 연애할 생각을 감히 먹어 보겠나, 어떤 이유하에서 가지느냐 말이야? 단단히 대답하게. 그렇지 않으면 사진 내놔!”
 
92
그는 눈을 딱 부릅뜨고 대들었다. 봉준이도 처음에는 웃는 소리거니 하고 사진 있는 것만 기뻐하였으나 그가 이유를 붙여 가며 대어드는 것을 보니 가슴이 멍청해졌다.
 
93
이 꼴을 본 원선이는,
 
94
“자네 누이가 그렇게 시집 가고 싶어 등이 달았다면 내 중매하지.”
 
95
그의 말문을 막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다.
 
96
“응 자네가 중매하겠어?”
 
97
봉준에게서 사진을 빼앗았다.
 
98
“옛네. 자네가 중매하겠다지? 이 사진 가지겠다는 말이야? 응, 옳지. 자네는 총각이니 만치 아조 가지고 말게나. 총각이 처녀의 사진 가지는 것만큼 떳떳한 일이지. 거리에 나가서 지나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내 말을 믿지 않으면 말이야. 봉준 군도 잘 생각해 보게. 원선 군한테 온 사진을 왜 자네가 어림없이 가지겠다는 말이야? 그렇지 않아? 응?”
 
99
그는 돌아앉았다.
 
100
“살아가면 별꼴들 다 보겠네. 언제는 사진 청해 달라고 매일 조르다시피 하더니 막상 부쳐오니 시치미를 떼어! 이거 뭐 누구를 놀리는 셈인가, 어쩐 일이야!”
 
101
원선이를 노려보았다. 그는 웃으며,
 
102
“쓸데없는 소리 말아, 자네는 너무 허튼소리 해서 재미없데.”
 
103
봉준이는 더 참을 수 없었다.
 
104
“가겠네.”
 
105
벌컥 일어났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떨렸다. 그리하여 벼락같이 문을 열었다.
 
106
“제 이막! 어때?”
 
107
원선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108
“그 왜 그 모양이야. 가뜩이나 요새는 신경병으로 고민하는 판에 위로는 못하나 그렇게 지나치게 놀린담. 아주 재미없어! 후일에는 그런 일 말게, 여보게!”
 
109
“아침에 내가 무어라든가? 재미나는 일이 있다고 했지? 그 좀 재미있나?
110
그래 심심한데 더러 농삼아 그리면 어떻다는 말인가?”
 
111
“아 글쎄. 성한 사람 같은면야 무슨 일 있겠나마는 봉준 군은 병자니만큼 삼가 달라는 말일세.”
 
112
원선은 일어났다 재일도 . 그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한참이나 말없이 섰던 원선이는 돌아보았다.
 
113
“봉준 군이 아모래도 이혼은 해놓을 것이니까 숙희 씨에게 권고하여 보게. 자네도 보는 바라 어디 되겠나? 점점 더하여 가니.”
 
114
“글쎄 딱하기는 하지만 그 애가 말을 들어주어야지.’
 
115
“물어는 보았나?”
 
116
가만히 생각해보니 말도 해볼 것 같이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낸 것이라,
 
117
“응, 한 번 붙여보았네.”
 
118
재일은 어느덧 앞섰다. 그의 다리 마디는 길쭉길쭉하여 언제나 겅중겅중거려서 남보다 훨씬 앞서 걸었다.
 
119
“장래성 있는 청년일세, 봉준 군이. 두고 보면 자연 알 것이니까 어쨌든 힘써 보게.”
 
120
“참말인가?”
 
121
“여보게, 자네처럼 극이나 꾸밀 줄은 모르네.”
 
122
“응, 좋은 친구야, 봉준 군이.”
 
123
아까 문 차고 나가던 꼴을 생각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124
앞으로 지나가는 여학생을 보고,
 
125
“스타일 좋다!”
 
126
하고 웃었다.
【원문】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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