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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딸 ◈
◇ 옥이 ◇
해설   목차 (총 : 6권)     이전 6권 ▶마지막
1931년
강경애 (姜敬愛)
 

1. 옥이

 
2
중로에서 영실을 보낸 옥이는 자기의 과거를 곰곰이 생각하며 걸었다.
 
3
‘나는 어떠한 길을 걸었나?’ 아니, 나도 사람인가? 밥을 먹고 옷을 입을 줄 아니 사람이랄까, 울고 웃을 줄 아니 사람이랄까? 응! 아니다! 울었다면 나를 위하여 울었더냐? 웃었다면 진정한 나의 웃음이었더냐? 모두가 봉준을 위하였음이었다. 두루뭉수리 삶이었다! 이러한 삶을 계속시키려고 안타깝게 울었던 것이었다. 불쌍한 인간! 그는 이렇게 부르짖고 대문으로 들어섰다.
 
4
방으로 들어온 그는 묵묵히 봉준을 보았다. 봉준이는 벌컥 일어나려다 도로 팍 고꾸라졌다. 다시 머리를 돌려 눈이 찢어지도록 바라다본 그는
 
5
“또 못 데려왔구려! 숙희! 숙희야! 네가 나를 죽이려느냐. 한 번만 뵈어 다오, 한 번만……”
 
6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7
시름없이 바라본 옥이는 속으로 ‘불쌍한 인간! 차라리 울 바에는 너를 위하여 울어라 좀더 나아가 . 여러 사람을 위하여 울어라! 한낱 계집애를 생각하여 운다는 것은 너무나 값없는 울음이 아니냐!’ 이렇게 부르짖을때 아까 본 영실이의 오빠가 머리에 똑똑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여 자기 가슴속에 깊이깊이 들어앉았던 남편인 봉준이는 차츰차츰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봉준을 물끄러미 보았다. 핏기 없는 그의 아웅한 얼굴, 진그락지 같은 그의 흰 손은 마치 죽은 송장을 보는 듯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처럼 아무 미련없이 봉준을 불쌍하게 본 적은 없었다.
 
8
옥이는 골치가 지끈해지며 두 귀가 울었다. 따라 메슥메슥해지며 맑은 침이 휙 도는 것이었다. 방안으로 빽빽이 들어찬 무거운 공기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9
벽을 향하여 누웠던 봉준이는 이켠으로 돌아누웠다.
 
10
“여보, 이혼해 주겠소, 못해 주겠소? 당신 말 한 마디에 달린 것이니까.”
 
11
숙희가 이때가지 자기를 냉대하는 것은 오직 옥이 때문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옥이는 눈을 똑바로 떴다.
 
12
“네 해드리지요. 이때까지 온 것도 그만큼 제가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아니 못난 탓이었습니다!”
 
13
봉준이는 너무나 뜻밖의 대답에 오히려 서먹하게 되었다. 하여 이상한 눈치로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14
“참말입니까?”
 
15
“네, 참말이지요.”
 
16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에 답답한 토굴속에서 벗어나는 듯하였다.
 
17
그들은 한참이나 말없이 있었다. 옥이는 더 앉을 수 없이 코밑이 달아왔다. 더구나 바라보기부터 뜨거워 보이는 전등불은 안타깝게 고요하였다. 그는 벌컥 일어났다.
 
18
“가겠습니다.”
 
19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미련없이 시원스럽게 뛰어나왔다.
 
20
대문을 나서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이 그의 전신을 날 듯이 가볍게 하여 주었다. 따라서 그의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새것과 새것으로 그의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왜 이럴까? 자신을 향하여 물어보았으나 일정한 대답이 없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아까 그들이 밟고 간 아득해 보이는 훤한 길이었다.
 
21
깜짝 놀랐다. 어둠 속으로 따뜻한 손길이 자기 손을 꼭 잡았다. 그는 탁 뿌리쳤다.
 
22
“옥씨!”
 
23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나오는 것을 보아 여자임을 알았다.
 
24
“누구세요?”
 
25
“저예요.”
 
26
순간에 그는 누구일까! 숙희가 얼핏 생각키웠다.
 
27
“숙희씨세요?”
 
28
“아뇨, 연희입니다.”
 
29
“네, 들어가 보시지요. 저는 너무 곤한 끝에 머리가 아파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30
전 같으면 이렇게 돌아가지도 않겠지마는, 더구나 이런 말은 못하였으련마는 심상히 내쳐 버렸다.
 
31
“옥씨! 잠깐만 같이 들어가 주세요.”
 
32
옥이는 난처하였다. 모처럼 생각하고 온 손님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터, 더구나 전 같으면 으레 자기로서는 안내하여야 될 처지인 줄을 번연히 아는 그만큼, 그렇다 하여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가기는 죽기보다도 싫은 생각이 났다.
 
33
“연희씨, 용서하십시오. 제가 극도로 몸이 괴롭습니다.”
 
34
안타깝게 거절하는 옥의 말에 그는 이상히 생각되었다. 그러나 요리조리 따져 생각하기는 뒤범벅이 된 그의 머리가 허락치를 않았다.
 
35
“네! 곤하시겠지요.”
 
36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 안타깝게 오라는 숙희가 아니 오고 기다리지 않는 자기가 온 만큼 당연한 일이다 생각될 때 이 자리에서 금방 죽는다더래도 봉준의 방까지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37
“그럼 실례합니다.”
 
38
옥이는 앞으로 달음질쳤다.
 
39
숨이 차서 달려온 옥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40
“어머니, 밥 주어요.”
 
41
며칠 동안에 처음으로 듣는 생기 있는 말이었다.
 
42
“응, 주지. 어찌 되었나?”
 
43
옥의 손을 잡고 근심스러운 듯이 영실 어머니는 들여다보았다.
 
44
“그저 그렇지요. 어서 밥 주어요, 밥!”
 
45
옥이는 빙그레 웃었다.
 
46
연희는 매일 밤 가서 봉준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의 열성으로 간호한 보람인지는 몰라도 차츰차츰 회복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들어앉았던 숙희도 저절로 흔적을 감춰 버렸다.
 
47
반면에 봉준이는 연희에게다 마음을 붙이고 다시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만큼 연희의 순정에 눈물 날 만큼 감복되었던 것이다.
 
48
그는 완전히 자기 병이 회복되자 옥이가 원망스러웠다. 누구나 자기 한 생각은 못하는 것처럼, 봉준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49
그날 밤 뛰쳐나간 후로는 그는 발길을 끊었던 것이었다.
 
50
따라 새록새록히 옥의 신변을 조사하는 반면에 이상하게도 자기의 마음이 옥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우등생으로 선생이나 학생들 간에 온갖 사랑을 혼자 받는다는 것, 더구나 재일이가 미쳐서 덤비는 꼴을 보고는 야릇한 복수심으로부터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51
그리하여 성화치듯 재촉하는 이혼 일체도 그만해 두고 도리어 옥의 눈치만 슬금슬금 보는 것이었다.
 
52
어떤 날 밤 그는 하도 궁금증에 못 견디어 종로 네거리로 휘뚜루 쏘다니다가 그만 새로 한시나 되어 옥의 하숙집을 찾았다.
 
53
대문은 걸렸다. 그는 뒤창문 켠으로 갔다. 하여 가만히 동정을 살피니 자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깨울까 그만 갈까 한참이나 망설이던 끝에,
 
54
“옥씨!”
 
55
하고 불렀다. 잠잠하였다. 이미 찾은 김이다. 내쳐 불렀다.
 
56
“여보 자우? 옥씨 여보!”
 
57
창문을 지긋지긋 잡아당겼다. 첫잠 들었던 옥이는 문 잡아당기는 결에 놀라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58
“여보 옥씨!”
 
59
익히 듣던 목소린데도 얼핏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일어나서 창문 곁으로 갔다. 순간에 ‘봉준이다’하였다.‘무엇하러 그가 이 밤에 우리집을 찾아왔을까? 무슨 볼일이 있나? 무슨 일일까?’ 이렇게 의심을 하고,
 
60
“누구세요?”
 
61
“봉준입니다.”
 
62
“네! 무슨 볼일이 있어요?”
 
63
이 말에 봉준이는 부쩍 의심이 났다. 누가 방에 있지나 않나? 그렇지 않으면 저로써……?
 
64
“네, 볼일 있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오.”
 
65
옥이는 옷을 더듬더듬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가서 대문을 열었다.
 
66
봉준은 대문 켠으로 왔다.
 
67
“그새 평안하셨소?”
 
68
첫잠에 무르익은 그의 토실토실한 두 볼은 달빛에 한층 아담스럽게 보였다.
 
69
봉준이는 손목이라도 컥 붙잡고 싶게 그리 반가웠다.
 
70
“어떻게 이 밤에 오셔요.”
 
71
“당신 오지 않으니까 보고 싶어 왔지요.”
 
72
별로 능청맞게 그의 귀에 들렸다.
 
73
방으로 들어온 그들은 깊은 침묵에 잡혔다.
 
74
“무슨 볼일이세요?”
 
75
봉준을 바라보았다.
 
76
“볼일은 무슨 볼일이야, 당신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
 
77
“갑자기 그렇게 보고 싶더이까?”
 
78
“그런 수도 있지요?”
 
79
“왜? 요새 신부인 생겼다는데 나 같은 것이 보고 싶어요?”
 
80
옥이는 입을 꼭 다물고 책상 위를 보았다. 봉준이는 옥을 뚫어져라 하고 보더니,
 
81
“여보, 당신 마음이 요즈음 달라진 것 같구려.”
 
82
“네? 달라졌다고요? 어떤 점으로 보아 하는 말씀이니까?”
 
83
“어떤 점으로 보다니?”
 
84
그의 눈은 분함과 노여움으로 뒤집혔다.
 
85
“물론 당신의 자유를 누가 말릴 수는 없지만 너무합니다.”
 
86
이것이 무엇을 의미함인지 옥이는 번연히 알았다. 하여 그는 그의 뒤집힌 눈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맞 쏘아보았다.
 
87
“네, 나도 이제부터는 나로서의 삶을 계속하여 보렵니다. 그러니까 과거와는 달라진 삶이겠지요!”
 
88
봉준이는 그의 어딘가 모르게 굳세게 나가는 말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애착심은 점점 더하여지는 것이었다.
 
89
“여보, 당신도 좀 배웠다는 텃세구려. 이를테면…… 흥.”
 
90
봉준은 아니꼽다는 듯이 머리를 외어꼬았다. 한참 후에 봉준은,
 
91
“여보 그러지 마우. 어머니 생각을 한들 당신으로서야 차마 버티겠소. 나는 아직 셈이 없어 그러든지, 천성이 그래 그러든지, 막 치워놓구라두 당신만은 꾸준히 우리집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소. 당신은 어머님의 유언을 잊었구려.”
 
92
자기의 말에 감격이 되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93
“어찌하시는 말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이혼해 달라고 졸랐지요 ? 한데 새삼스럽게 오늘 와서 이렇게 말씀하는 뜻은?”
 
94
“그래, 내가 그런다고 당신은 다른 데로 시집 가려는구려.” 하고 옥을 껴안았다. 하여 번개같이 옥의 볼 위에 볼을 마주 대는 것이었다.
 
95
옥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를 뿌리치고 휙 일어났다.
 
96
“여보! 나는 당신의 아내가 아닙니다. 이런 무례한 짓을 어따가 합니까?
97
가요!”
 
98
그의 소리는 날카로웠다.
 
99
봉준이는 어젯밤, 지난 일을 생각하면 담박이라도 달려가서 옥이를 쳐 죽이고 자기마저 그 자리에서 세상을 꿈벅 잊고 싶었다.
 
100
어머님께서 코, 침, 졸졸 흐르는 옥이를 데려다가 자식 못지않게 사랑하여 옴상곰상히 키워서 자기의 세대를 전부 밀어 맡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니 어쩌니 하는 것이 죽도록 미웠던 것이다.
 
101
첫새벽에 그는 영철 선생에게 가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몇 달지간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편지한 지 이틀 만에 영철 선생은 담박 경성으로 올라왔다.
 
102
이렇게 속히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가 뜻밖에 만나 놓으니 말문이 콱 막혔다.
 
103
“편지 보셨습니까?”
 
104
“보았네. 그래 무슨 소린지 몰라 왔네마는……”
 
105
봉준이를 자세히 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속까지 꿰뚫어보려는 듯하였다.
 
106
전부터 그를 못마땅히 앎으로 인하여 그의 말로만은 신임할 수가 없었다.
 
107
“이제 옥이한테도 갔었네만은 학교 가고 없데그리.”
 
108
“가셨댔나요…… 뭐, 아무래도 이혼은 되는가 싶습니다.”
 
109
“지껄이지 말아, 하면 말인 줄 알고 자네는 떠드네마는…… 옥이가 그럴 리가 있나?”
 
110
봉준이는 웃었다.
 
111
“예, 물론 선생님까지도 저를 의심할 줄은 번연히 알았으니까요. 믿던 남게 곰핀다든지…… 그렇게들 예수 믿듯 믿으시더니 아주 잘 되었습니다.”
 
112
그는 천장을 쳐다보았다.
 
113
문이 열리자 재일이가 들어왔다. 그는 아랫목으로 가서 펄썩 주저앉아 비스듬히 바람벽을 기대앉았다.
 
114
“여보게, 옥씨 오셨댔나?”
 
115
“밤낮 옥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가서 보게나.”
 
116
봉준이는 슬그머니 싫증이 나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으로 쓸어쳤다.
 
117
선생은 위질비뜩한 난봉 사나이 입에서 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 머리를 외어꼬고 괴로운 낯빛으로 잠잠하였다.
 
118
재일은 봉준을 향하여 눈을 껌뻑하며 선생의 아래위를 살펴보았다. 봉준은 씩 웃었다.
 
119
“여보게, 나도 장가가야 되지 않겠나?”
 
120
“중매할까?”
 
121
봉준의 눈치를 보아 이 사람이 누군지를 대강 짐작하였다. 전부터 영철 선생의 이야기는 봉준으로부터 몇 번 들었던 것이다.
 
122
“하게, 연희씨로 하게.”
 
123
이 말을 듣자 선생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그들이 몹시 아니꼽게 보였다.
 
124
그러나 모든 일은 옥이를 만나봐야 알겠으므로 어서 바삐 옥이 오기를 조마조마히 기다리었다.
 
125
안방 시계라 다섯시를 쳤다. 신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방문이 가만히 열렸다.
 
126
“선생님!”
 
127
옥이는 어린애처럼 뛰어 선생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따라 아득히 멀어 보이는 고향에서 온 것이 꿈을 꾸는 듯이 생각되었다.
 
128
“공부 잘했나?”
 
129
선생의 둥글둥글한 웃는 맵시를 보며 어머니나 아버지를 대한 듯하였다.
 
130
“에그 선생님! 어떻게 오셨어요.”
 
131
생각할수록 신통하여 선생을 쇠쇠 들여다보았다.
 
132
“옥씨, 그새 공부 잘하셨습니까?”
 
133
옥이는 재일을 바라보았다.
 
134
“인사가 늦었습니다. 우리 선생님 오신 것이 하도 반가워서요.”
 
135
“자네 얼굴이 전보다 좋았네.”
 
136
선생은 옥이를 쇠쇠 들여다보았다.
 
137
옥이는 잠깐 동안 봉준이의 기색을 보았다. 그는 잠잠히 딴 곳만 바라보고 가볍게 한숨만 쉴 뿐이었다.
 
138
그는 눈을 돌려 선생을 두루두루 살폈다. 그의 풍스러운 옷맵시, 땅 파다 온 갈라진 손, 그리고 꾸밈없는 질박한 말씨가 농촌의 진경을 연상시키게 하였다.
 
139
“선생님, 농사는 어찌 되었습니까? 조도 잘 되고 벼도 잘 되었나요?”
 
140
“되기는 다 쑬쑬히 되었네마는……… 어찌 된 모양인지 전보다는 더 어려워 지내는 모양이니 난처하지. 그리고 자네네 앞집 쇠돌네는 작년 가을에 북만주로 가고 올 봄에도 십여 가구가 만주로 떠났네.”
 
141
옥이는 눈이 둥그래졌다.
 
142
“쇠돌 할머니도 가셨겠지요?”
 
143
시어머님 돌아가신 후로는 집안에서 답답한 일이 나든지 혹은 아직 서툰 것이 있든지 하면 쇠돌 할머니가 찾아오든지 자기가 일감을 떠들고 갔다.
 
144
하여 저고리부터 시작하여 속옷 암질러, 더구나 음식에는 겨우 밥이나 끓일 줄 알던 그가 두부, 무, 떡막붙이, 비지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145
쪼글쪼글한 그의 얼굴, 꼬부라진 허리, 무슨 일 할 때에는 쇠눈 같은 안경 쓰던 것이 시재 보는 듯하였다.
 
146
“그들이 만주로는 무엇하러 갔나요?”
 
147
눈물이 핑 돌았다.
 
148
신문을 통하여 농촌 형편을 대강 짐작은 했지만 막상 낯익은 자기 고향 사람들이 못 살고 떠났다는 소리를 들으며 마치 자기 일이나 당한 듯하였다.
 
149
“만주에서는 누가 이마에 손 얹고 기다린답더이까?”
 
150
봉준, 재일까지도 멍하니 그들의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151
“그곳에는 땅이 흔하다대. 그래서 농사 지으러들 가지. 우리 근처서 몇몇 들어간 사람들은 아조 넉넉히 지낸다는데.”
 
152
옥의 흘리는 눈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당연할 것이다 하였다.
 
153
“땅이 흔하면 거저 준다나요! 내 땅을 떠나서 가면 무얼해요. 이제도 떠나겠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거들랑 선생님께서 제발 말려 주세요. 앞길을 막고 사정없이 때려 주세요. 아니 반쯤 죽여 주세요! 굶어 죽어도 내 땅에서 죽고 빌어먹어도 내 고향에서 먹어야지요!”
 
154
선생은 어리둥절하여 옥이를 보았다. ‘아마도 제 마음이 시끄러운 데 빙자하여 가지고 저러나 부다’하고 생각하니 더욱 가엾게 보였다. 하여 마음을 풀어줄 양으로
 
155
“말이지 걱정 말게. 세상은 다 그런 것 아닌가. 고생으로 된 세상이니까.”
 
156
이 말에 옥이는 예수교 말이 나온다 하고 생각되었다.
 
157
봉준이는 옥이가 떠드는 것이 밉광스러웠다.
 
158
“옥이, 선생님 앞에서 똑똑히 말하오. 선생님께서는 내 말은 믿지 않으시니까.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라지요?”
 
159
선생은 옥이를 똑똑히 보았다.
 
160
“언제 우리가 부부 되었던 일은 있어요? 당신도 늘 하신 말씀과 같이……”
 
161
봉준이는 선생을 쳐다보았다.
 
162
“자, 어떠합니까? 이제도 제 말을 곧이듣지 않겠습니까?”
 
163
선생은 멍멍하니 아무 대답도 못하고 한참이나 옥이를 보다가,
 
164
“여보게, 자네가 아무래도 미친 모양이네. 사람의 정신을 가지지 못하였어, 자네가 참말로 옥인가?”
 
165
“네, 옥이는 옥입니다마는 옛날 같은 어리석은 옥이는 아니올시다.”
 
166
“어리석은 옥이!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흥! 서울이 사람을 못 쓰게 만든다고 하데마는 겨우 일년이 지나지 못해서 그렇게 된단 말인가? 자네만은 내가 믿었네마는……”
 
167
순간에 선생의 눈에 떠오른 것은 봉준 어머니의 새하얀 얼굴이었다. 그리고 “저 어린것들을 선생님에게 맡깁니다. 부대 잘 길러 주시오!”하고 재삼 부탁하던 그의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168
근 십년 동안을 그들의 선생 겸 엄하신 아버지 겸 자상스러운 어머니가 되어 키운 보람없이 글쪼박이나 속에 들었다고 제멋대로 구는 것이 무엇보다도 난처했다.
 
169
선생은 한숨을 푸 쉬고 나서
 
170
“내려가! 배우라고 서울 보냈지, 그런 수작하라고 보낸 것은 아니야!”
 
171
소리를 냅다 질렀다. 봉준이는 가슴이 시원하도록 통쾌하였다. 옥이는 가슴이 송구해졌다. 선생의 꾸준한 애호심은 자나깨나 잊지 못하였던 것이다.
 
172
그의 눈은 빨개졌다.
 
173
“어서 준비들 하게!”
 
174
봉준이를 쳐다보았다.
 
175
“내가 무슨 권리로 자네들을 관리하겠나마는…… 알다시피 돌아가신 자네들의 어머님의 피나는 유언을 잊지 않음일세.”
 
176
선생은 주먹으로 눈을 씻는 것이었다. 옥의 가슴은 찌르르 울리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이렇게 위로받았다. ‘어머님의 딸은 나다! 어머님께서 생전에 실행치 못한 것을 나는 실행할 것이다!’ 그는 적이 안심되었다.
 
177
“어서 가세. 짐들 다 싸게.”
 
178
“선생님, 저는 못 가겠습니다.”
 
179
선생은 와락 성이 치받쳤다. 그리하여 눈을 벌컥 뒤집고,
 
180
“뭐라구! 한 마디만 더 해보게! 그래, 자네 입으로 나오는 말인가? 저 하늘이 무서워서 어찌 그런 말을 하나? 아무리 마음이 변했다 해두 죽은 사람은 죽었다 하더래두 자네들을 위해서 애쓴 이놈만은 알아볼 터이지. 이놈만은!”
 
181
자기의 가슴 복판을 가리켰다 . 옥이는 전신이 오싹해지며 그 넓다란 가슴을 보았다. 확실히 자기네들의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 하나, 둘, 셋, 넷을 그에게 배우고 이때까지 무사히 자란 것이 그의 애쓴 보람이었다.
 
182
그러나 한두 사람을 돌아보아 자기의 젊음을 무단히 썩어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보다도 자기의 젊음을 무가치하게 희생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183
옥이는 눈을 착 내려감고,
 
184
“선생님! 잊지 못합니다. 결단코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럴수록 좀 더한 용기를 얻어 앞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185
“듣기 싫어! 자네 수작은 하나 들어볼 건더기가 없네. 소위 배웠다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말이 그 뽄센가? 내려가!”
 
186
그는 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187
“자네는 짐 다 싸 가지고 뒤로 오게!”
 
188
이 꼴을 본 봉준이는 선생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토라진 옥의 마음은 다시 돌리지 못할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189
“내버려두시오.”
 
190
“어서 가우! 축복합니다.”
 
191
옥이는 새하얗게 질렸다.
 
192
“선생님! 저는 가겠습니다.”
 
193
겨우 내치고 발길을 옮겼다.
 
194
선생은 봉준이를 밀치렸으나 힘이 달리었다.
 
195
“옥아! 옥아!”
 
196
눈물 섞어 나오는 인자한 목소리였다. 옥이는 어려부터 귀에 젖은 그 음성에 발길이 무거워졌다.
【원문】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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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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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애(姜敬愛) [저자]
 
  193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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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