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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춘 일기 (1935년) ◈
◇ 1935년 12월 ◇
해설   목차 (총 : 12권)     이전 12권 ▶마지막
윤봉춘
목   차
[숨기기]
 

1. 十二月一日 (舊十一月六日)

2
天氣
3
寒暖
4
發信  尹善愛(윤선애)·趙漢膺(조한응)·黃壽岩(황수암)·韓愚(한우)
5
受信
6
感想
7
오늘도 놀았다. 洪燦(홍찬)君이 와서 七十圓 가량 투자할 사람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한 作品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問題를 내었다.
 
8
來日 午后 한시 가량에 대답을 한다 하였다. 오늘 밤 十一時 車로 金容準(김용준)氏가 大田으로 갔다.
 
 

2. 十二月二日 (舊十一月七日) 月

10
天氣
11
寒暖
12
發信  金英纂(김영찬)
13
受信
14
感想
15
撮影中止
 
 

3. 十二月三日 (舊十一月八日) 火

17
天氣 
18
寒暖
19
發信受信
20
感想
21
午后에 撮影하고 밤 七時 半부터 낙랑에서 靑風의 말을 開催하고 各 新聞界와 雜誌界의 名人들이 集合하여서 祝賀會를 開催하였다. 나는 製作人 代表로 祝사를 했다. 이 밤 나의 방에는 洋服저고리를 잊어버렸다.
 
 

4. 十二月四日 (舊十一月九日) 水

23
天氣  曇雨
24
寒暖
25
發信受信
26
感想
27
今日도 撮影中止하다.
 
28
밤에 永登浦에 가서 우리 漢陽映畵社 全員이 나가서 新舞臺가 演劇을 할 때 贊助出演을 해 주었다.
 
29
申一仙(신일선)·南宮仙(남궁선)이는 노래, 羅(나운규)君은 讀聲이 된 演劇이요, 韓駿鎬(한준호)는 交合作이요, 나는 엉터리 交合作을 지냈다.
 
 

5. 十二月五日 (舊十一月十日) 木

31
天氣 
32
寒暖
33
發信  南忠烈(남충렬)·崔基昇(최기승)·高奇峰(고기봉)
34
受信  尹善愛(윤선애)
35
感想
36
撮影은 今日 中止다. 韓駿鎬(한준호)君과 終日 돌아다녔다.
 
 

6. 十二月六日 (舊十一月十一日) 金

38
天氣 
39
寒暖
40
發信受信
41
感想
42
午前中에 스타디오(스튜디오)에 갔다. 그러나 撮影은 하지 않았다.
 
43
午后에 團成社로 求景을 갔다. 잘 있거라 上海야 라는 寫眞은 中國映畵인데 朝鮮映畵보다는 매우 좋았다. 于先 돈 많은 사람들의 일 같다. 세트라든가 電氣를 쓰는 것, 의상을 짓는 것은 朝鮮에 比할 바가 아니었다.
 
44
作品은 平凡한 것이었고 몸이 困해서 일찍이 잤다.
 
 

7. 十二月七日 (舊十一月十二日) 土

46
天氣  曇雨
47
寒暖
48
發信受信
49
感想
50
종일 撮影을 하였다. 新舞臺 사람들이 와서 寫眞에 出演을 했는데 라스트를 지어 주었다. 오늘 總督府 驗[檢]閱官 一行이 와서 보고 갔다. 永鎭(영진)의 집 세트는 오늘로 끝났다.
 
 

8. 十二月八日 (舊十一月十三日) 日

52
天氣 
53
寒暖
54
發信受信
55
感想
56
七日에 會寧을 떠난다는 便紙가 있으니 八日 卽 오늘은 上京할 듯한데 電報가 없는 것이 異常스러웠다. 그러나 어린애들 걸음이라 알 수 없어서 停車場까지 나가 보았다. 果然 午后 二時 十五分着에 到着하였다. 善愛(선애)와 古粉(고분)이 내렸다. 于先 南冥旅館에서 留宿하기로 하였다. 나는 韓駿鎬(한준호)가 자는 房에서 잤다.
 
 

9. 十二月九日 (舊十一月十四日) 月

58
天氣 
59
寒暖  극한
60
發信  尹善愛(윤선애)
61
受信
62
感想
63
찬바람재 너머 마을에 방 한間을 稅를 얻어서 當分間 있기로 하였다.
 
64
한 달에 二圓五十戔씩으로 하고 食事도 당분간 會社食堂에서 하기로 하였다.
 
65
몹시 춥다. 零下 十三度라고 한다.
 
 

10. 十二月十日 (舊十一月十五日) 火

67
天氣 
68
寒暖
69
發信
70
受信  金英纂(김영찬)
71
感想
72
오늘은 撮影을 中止하였다. 終日 집에 있었다.
 
 

11. 十二月十一日 (舊十一月十六日) 水

74
天氣 
75
寒暖  극한
76
發信受信
77
感想
78
원 세트는 끝나고 다른 세트를 撮影하였다. 且介(차개)와 容準(용준)氏가 上京을 하였다. 밤에 문안 들으러 가서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했으나 容準(용준)氏의 하는 일이 잘 進行될까 모르겠다. 勿論 나는 誠意를 다하지만은 그 보다도 敎英(김교영)氏의 많은 勞力이 絶對必要한데 그의 誠意를 엿볼 수가 없다.
 
 

12. 十二月十二日 (舊十一月十七日) 木

80
天氣 
81
寒暖
82
發信受信
83
感想
84
아침에 金敎英(김교영)君한테 容準(용준)氏와 함께 갔다. 柱式에 對한 말이 있었으나 서로 資本이 없는 關係로 그것은 어려운 問題 같았다.
 
85
그러나 두 분은 積極的으로 活動하겠다니 고마운 일이다.
 
86
午后에 와서 撮影을 하였다.
 
 

13. 十二月十三日 (舊十一月十八日) 金

88
天氣 
89
寒暖
90
發信  高奇峰(고기봉)·金英纂(김영찬)
91
受信  金英纂(김영찬)
92
感想
93
撮影도 中止하였고 日氣도 푸르러졌기에 아이들 데리고 市內 求景시켜러 갔다. 鍾路 一帶와 本町 一隅를 돌아서 カロリ食堂에서 夕飯을 필하고 朝劇가서 演劇號 公演을 보고 돌아왔다.
 
94
容準(용준)이와 敎英(김교영)이도 만났는데 그들의 熱은 相當하니 그 일의 成否成은 아득하다. 昨夜의 田澤(전택)君은 나이트서 싸워서 얼굴이 몹시 부어 돌아왔다.
 
95
三中井에서 善愛(선애)와 古粉(고분)이에게 스웨터를 하나씩 사 주었다.
 
 

14. 十二月十四日 (舊十一月十九日) 土

97
天氣 
98
寒暖
99
發信受信
100
感想
101
朝鮮日報 安文影(안문영)氏를 찾아 갔고 放送局의 李石薰(이석훈)氏를 찾았으나 오늘 退社했다기에 못 만났다. 韓駿鎬(한준호)君의 집에 갔다. 申水鎭(신수진)이와 初人事, 오늘 撮影中止.
 
102
會寧서 洪光鐵(홍광철)이란 사람이 來日 上京한다고 電報했다.
 
 

15. 十二月十五日 (舊十一月二十日) 日

104
天氣 
105
寒暖
106
發信
107
受信  선화
108
感想
109
午后 두시 二十分 車로 會寧서 金順鎬(김순호)가 上京하였다. 于先 驛前 南興旅舘에 있기로 하였다.
 
110
세時에 金容準(김용준)氏한테 다녀왔다. 모터에 고장이 나서 三四 컷트밖에 撮影을 못했다.
 
 

16. 十二月十六日 (舊十一月二十一日) 月

112
天氣 
113
寒暖
114
發信
115
受信  선화
116
感想
117
午后 두시 二十分 車로 會寧서 金順鎬(김순호)가 上京하였다. 于先 驛前 南興旅舘에 있기로 하였다.
 
118
세時에 金容準(김용준)氏한테 다녀왔다. 모터에 고장이 나서 三四 컷트밖에 撮影을 못했다.
 
 

17. 十二月十七日 (舊十一月二十二日) 火

120
天氣 
121
寒暖 
122
發信  全草(전초)
123
受信
124
感想
125
午后부터 撮影을 하였다. 前番에는 한 번 눈이 왔지마는 오늘 午后부터 내리는 눈은 함박눈이 보기 좋게 내려서 山川이 희게 되었다.
 
126
都是 會社의 內容을 알 수가 없다.
 
127
좀 그네들의 하는 事業이 撤底하였으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18. 十二月十八日 (舊十一月二十三日) 水

129
天氣 
130
寒暖 
131
發信受信
132
感想
133
아침에 容準(김용준)氏한테 들었다. 敎英(김교영)이는 近者에 몹시 運動에 等閒하여졌다. 처음부터 果히 信望은 없어 보였던 것이다. 다시 朝報에 李殷相(이은상)氏와 相議했다고 하지만 李는 詩人일 뿐이요 運動이 亦是 없을 사람이라고 生覺했다. 일은 當分間 延期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韓君한테 들리고 밤에 東洋劇場에 갔다. “國境의 밤”은 볼 것 없고 僧房悲曲은 좋았다. 善愛(선애)와 古粉(고분)이를 紹介했더니 來日 回答을 한다고 한다. 破한 후에 朴哲(박철)君과 露雀(노작)氏를 만났다.
 
 

19. 十二月十九日 (舊十一月二十四日) 木

135
天氣 
136
寒暖 
137
發信
138
受信  李漠奎(이막규)
139
感想
140
善愛(선애)와 古粉(고분)이를 데리고 市內 樂世旅舘에 갔다. 朴哲(박철)을 방에 두고 박연창을 찾아 갔으나 못보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朝劇에 들여보냈다. 밤에 東洋劇場에 가서 求景을 시켰다.
 
 

20. 十二月二十日 (舊十一月二十五日) 金

142
天氣 
143
寒暖 
144
發信受信
145
感想
146
終日 집에 있었다. 高奇峰(고기봉)의 雜誌에 對한 相議가 있었는데 그의 預算은 百圓 가량이면 된다고 하나 具體的으로 그것을 着手하려면 最下 五百圓은 있어야 無理한 經濟로서도 겨우 二个月밖에 계속 費用이 되지 못할 것을 말해 두었다. 金容煥(김용환)氏가 午后에 大田에 들러서 馬山을 내려갔다가 六日后에 다시 上京한다고 電話가 왔다.
 
147
오늘도 撮影은 中止하였다.
 
 

21. 十二月二十一日 (舊十一月二十六日) 土

149
天氣 
150
寒暖 
151
發信
152
受信  金英纂(김영찬)
153
感想
154
오늘도 撮影中止했다. 今年도 며칠 없으면 다 가는데 나로서 映畵事業에 이렇다 할만한 功蹟을 세우지도 못했다. 역시 今年도 無心한 一年이었다.
 
155
나의 속에 간직한 뿌랑(플랜)을 언제나 세워보랴. 내 生覺에는 金戔보다는 人物이 몹시도 貴하다. 뜻 맞는 同某가 있다면 무엇이 어려우랴. 그러나 落心은 하지 않는다. 함이 있어라. 게으르지 말라. 그러면 되는 날이 있으리라. 하늘은 自助者를 도와준다는 말이 있다. 밤에 社員들이 모두 놀러 왔다가 돌아갔다.
 
 

22. 十二月二十二日 (舊十一月二十七日) 日

157
天氣 
158
寒暖 
159
發信受信
160
感想
161
밤늦게까지 撮影을 하였다. 나는 오늘로서 나머지 컷트를 끝냈다. 아침에 金海日(김해일)氏의 夫妻가 멀리서 찾아왔다. 金(김해일)은 仁川의 新舞臺에 볼일 있어서 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市內 韓駿鎬(한준호)君이 他處에 外出한다고 나의 (??)를 빌리려 자기 조카 되는 사람을 보내었다.
 
162
新舞臺 仁川公演에 雲奎(나운규)가 가서 出演을 하였다고 果히 아름답지 못한 일이었다. 自己會社에 볼일이 그렇게 많은데 더욱 地方巡業團體에 가서 出演한다는 것은 外評에 있어서도 生覺할 問題인 것이다.
 
 

23. 十二月二十三日 (舊十一月二十八日) 月

164
天氣 
165
寒暖 
166
發信
167
受信  韓愚(한우)
168
感想
169
撮影中止다. 會社의 經濟를 總決算하는 날이었는데 해지도록 別消息이 없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어 畓畓하기만 하다. 오늘이 冬至밤이라고 洞里에서는 팥죽타령으로 야단이다. 別일 없이 하루 해가 저물었다.
 
170
金海一(김해일) 夫婦와 우리 食口 三人하고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陽曆 正初에 스테지(스테이지)에서 演劇을 했으면 좋겠다는 問題를 提議했더니 社員들이 좋다고 했다. 來日 이 問題를 具體的으로 進行해 보기로 하였다.
 
 

24. 十二月二十四日 (舊十一月二十九日) 火

172
天氣 
173
寒暖 
174
發信受信
175
感想
176
撮影中止햇다. 陽曆 正初에 스터디오(스튜디오)內에서 이 近處 住民을 相對로 演劇하기로 昨日 相議가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進行하기로 되어서 나는 오늘 許可願과 助書 一切를 썼다. 金海日(김해일) 夫妻가 今朝에 떠났다.
 
177
夫君은 全羅道 어느 劇團을 찾아 간다 하고 婦人은 釜山 自己집으로 四年만에 찾아 들어 간다고 하면서 떠났다.
 
 

25. 十二月二十五日 (舊十一月三十日日) 水

179
天氣 
180
寒暖
181
發信
182
受信  朴喆熙(박철희)
183
感想
184
세트 撮影은 오늘로 끝이 났다. 이제 江邊 로케이슌(로케이션) 一面이 남았다. 오늘 눈오는 언덕을 撮影을 했는데 매우 자미스러웠다(재미있었다). “눈”은 엷은 종이와 “ブ”를 섞어서 날렸는데 相當한 效果를 보았다. 오늘은 會社에서 셈을 본다 하더니 亦是 別消息이 없이 넘어갔다.
 
 

26. 十二月二十六日 (舊十二月一日) 木

186
天氣
187
寒暖
188
發信  朴喆熙(박철희)·金共玹(김공현)
189
受信
190
感想
191
會社側으로서는 오늘도 別消息이 넘어갔다. 社員들은 會社의 等閒한 態度를 不滿이들(으로) 여기고 있다.
 
192
高君의 全朝鮮 人氣俳優 全體에 대한 事業 푸랑(플랜)을 말해 주었다.
 
 

27. 十二月二十七日 (舊十二月二日) 金

194
天氣 
195
寒暖 
196
發信受信
197
感想
198
會社側으로는 오늘도 解結이 없었다. 나는 문안을 들어가 보지도 않고 안 듯한 것 같다. 이곳에 나와 있으니 서울과는 全혀 모든 關係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과 같이 生覺난다.
 
199
金英纂(김영찬)君이 淸津서 찾아왔다. 그래서 그 동안 容準(용준)氏가 하는 柱式運動의 始末을 말했다. 來日은 會社에서도 完全한 解結을 하겠다고 한다.
 
 

28. 十二月二十八日 (舊十二月三日) 土

201
天氣 
202
寒暖 
203
發信  金鐵孫(김철손)·李石薰(이석훈)
204
受信
205
感想
206
오랜 동안 기다리던 會社의 月給을 주는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할 수 없으니 十圓으로 今年은” 하고 준다.
 
207
철없는 애들의 장난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生覺하였다. 그리고 나는 今의 全貌를 훑어보고 “朝鮮(?)날”(??) 하고 불러 보았다. 英纂(영찬)이와 그의 兄을 三韓旅館에서 밤에 만나 긴 이야기가 있었고 저물어서 나는 그 곳서 자고 말았다.
 
 

29. 十二月二十九日 (舊十二月四日) 日

209
天氣 
210
寒暖 
211
發信
212
受信  金鐵孫(김철손)
213
感想
214
昨夜는 三韓旅館에서 英纂(영찬)君과 同宿했다. 아침 八時 自動車로 英纂(영찬)君은 楊平 趙漢應(조한응)君을 찾아가고 容準(용준)氏와 朝飯을 함께 하고 나와서 奇峰(기봉)君을 데리고 曹熙哲(조희철)의 三中印刷所에 가서 正月 興行 삐라를 注文하였다.
 
215
今日 開城 朴哲熙(박철희) 上京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낮에 스터디오(스튜디오) 모여서 興行 鍊習이 있었다. 英纂(영찬)君은 밤 十一時 車로 淸國에 간다고 했다. 興行計可도 오늘 나왔다.
 
 

30. 十二月三十日 (舊十二月五日) 月

217
天氣 
218
寒暖 
219
發信受信
220
感想
221
終日 집에 있었던 正月 興行의 準備는 則 問題없이 進行될 듯하다. 李信雄(이신웅)君과 趙昌叔(조창숙)君이 와서 會社側의 無誠意함을 말했다.
 
222
며칠 동안만 더 두고 보기로 하였다. 順鎬(순호)君은 집에 路費가 왔다기에 來日 아침車로 利用 自己의 親族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31. 十二月三十一日 (舊十二月六日) 火

224
天氣 
225
寒暖 
226
發信受信
227
感想
228
오늘도 別일 없었다. 밤에 우리 삼인은 朝劇에 가서 寫眞을 求景하고 本町을 들러서 日記책을 사고 善愛(선애)와 仙林(선림)에게 物品을 사주고 돌아왔다. 마지막 가는 날이라고 市街는 大端히 복잡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바쁜 일도 없고 더딘 일도 없는 듯하다.
 
229
今年에는 무엇을 꼭 한 가지 보람 있는 일을 만든다고 하였더니 亦是 平凡한 一年이 되어 지나갔다. 世界는 바야흐로 急期라고 긴장한 中에 날을 새는데 나에게는 왜 이다지도 變함이 없더란 말인가. 來年에는 雲에 더욱 굳센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230
• 補
231
 
232
비수리 나무 잎사귀 하나가 지향 없는 바람에 날려서 들창 안으로 들어와서 내 가슴위에 떨어졌다. 半 남은 시드른(시든) 잎사귀가! 그것은 恨많은 人生의 넋의 울음이다. 목 메인 인생의 넋의 울음이다. 나는 가슴에 설레는 잎사귀를 만지면서 쓸쓸한 밤을 새운다
 
233
八月도 한가위에 南山머리에 달이 둥그랬는데 虛無를 느끼는 내 가슴에도 무엇이 타오르는지 숨차 오르는 한을 참을 수가 없다. 물은 차지고 벌레소리 소리도 여물었건만 나의 (?)情만은 고개 짓을 하고 있던 것이
 
234
藝苑의 半生을 行浪의 歷史로 싸매 놓고도 되풀이조차 없던 나의 마음에 깊고 긴 가을밤을 드새어가면서 울지 않고는 人生을 論할 수 없다고 한 鶴見(학견)氏의 말이 果然 옮음이었던가? 달을 보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바람에 휩싸여 내 마음이 쓸쓸해짐도 아니다. 草木이 누르러졌다고 그럼도 아니다
 
235
무엇에 끌리었나. 철없이 웃고 있던 내 마음을 무엇이 건드렸다. 울고 싶도록 무엇이 건들였노. 왜 人生을 파고들어 가노. 그곳에는 永遠한 沈黙과 눈물이 있을 뿐이거늘 人生을 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파고들어 간다
 
236
무엇을 發見했노. 처음과 나중이 무엇이드뇨(무엇이더뇨). 숨소리가 들리는 나의 生命이었던고? 六尺에 가까운 肉體이었던고? 世上에 뚜렷이 쌓아놓은 名譽이었는고? 모두 아닌 것 같다. 暫間 동안이라도 파본 나의 正體는 그도 저도 아니었다
 
237
(?)도 버리기 前에 끝난 演士의 말소리와 같이 始作도 안된 이야기의 끝이더라. 켜기 前에 꺼져버린 촛불이더라. 먹지도 않고 배불렀던 空想에 몇 億兆에 一만 못하더라. 우수수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내 몸은 더욱더 無限히 적어 숨어드는 것 같다. 달그림자가 저편 벽에서 실오리만 하게 남았을 때는 六十萬振動 以上에서 떨고 있는 부드러운 털 같이 내 마음이 쓰린 맛에 떨고 있다
 
238
나의 存在를 내가 疑視하면서 더욱 나의 意識까지를 疑視하면서 깊은 바다 속같이 깊은 무덤 속 같이 千萬年 묵은 나무 통속 같이 全生을 그렇게 보아지면서도 무엇에 흔들리는지 나의 細胞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지며 때로는 아니 하루 卄四二十四)時間 全部를 두고 肉體와 精神에 탄력이 생기고 每 마음은 마치 百米突 競走에 스타트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처럼 長距里 競走에 마지막 뛰어 테이프에 가슴이 닿는 순간까지 숨차게 진장되어 있다
 
239
내일 홈도 잊어버리고 故鄕도 잊어버리고 歷史도 잊어버리고 부평초 뿌리에 매어 달려서 動態도 없이 묵묵히 흘러가는 벌레처럼 살아보기 싶은 生覺도 있었다. 거기에 偉大한 힘이 있을 것 같았다. 人生의 眞理란 넓고 큰 곳에 있지 않고 극히 적고 껌껌한 곳에 있다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240
꽃잎은 달려 있을 때보다 狂風에 휩싸여 떨어져서 진흙에 밟혔을 때가 귀엽고 값이 있어 보인다고 生覺했다. 보름의 둥근달보다 그믐 재를 마지막 숨어 넘는 그 순간이 안타까운 맛에 眞價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哲學의 種子 이었고 순수한 사람의 空想이었다고 生覺난다. 가을이란 萬山千野에 우거진 草木들의 最后요, 그들의 잊어진 것을 提供하는 結算期다
 
241
사람들에게는 모든 흩어진 것을 단속하는 때다. 무엇에나 거두어들이는 때다. 山中에 사는 곰도 풀잎을 굴속으로 물어들이는 때다. 제비도 돌아가는 때다. 나는 무엇을 거두노. 무엇을 단속하노. 일도 흐트러지고 마음도 흐트러져 있다. 우리들 곁에도 흐트러져 있다. 모두 흐트러져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宇宙에 가을을 노려보고 人生의 無常을 寫生하고 있는 넋이 있다. 이 넋은 분명히 힘차게 살아 있다. 살아서 모든 結算을 엿듣고 나의 結算을 모름지기 두텁게 꾸미려는 것이 歷歷히 있다
 
242
事物의 反映은 거울과 같이 批判은 解部室에 메스와 같이 되어 있다. 二十世記에 天才童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가을이 오거나 겨울이 지나거나 줄기찬 넋은 泰山과 같이 動함이 없다. 千年從事에 호화롭던 新羅에 서울에 마지막을 告하던 八十八寺의 우렁찬 悲鳴의 종소리를 지루 감고 엿들을지도 오랜듯하다. 감람山에서 예루살렘을 向하여 통곡하시던 그리스토(그리스도)의 울음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243
東阿의 안개 속에서 선하폄을 지는 뭇소리에 노랑 목소리도 기억에 새롭게 들린다. 黃河의 물을 퍼 먹고 말고삐를 틀어쥐는 壯[蔣]介石이도 江하나 사이에서 잘 보이고 있다
 
244
山中에 머루 다래가 사냥꾼의 발밑에 없어지는 것도 不造化美로 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스팔트에 갓방을 차려놓는다고 말할 사람도 없는 처지가 아니냐
 
245
될 수만 있으면 떰빙(덤핑)을 하여서라도 物價를 收入을 올려라. 溫突이 차가워 오는 때 같다. 秋期淸(?)도 오겠지. 稅納은 없는 몸이지마는 멀리로 가는 電車소리도 이상스럽게 들리는 밤이다. 十二時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 있는 일이랴마는 기다려지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 아니더냐
 
246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사람의 할 일을 撤頭撤尾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二十世記에 산 보람 있는 天才童이다
 
247
靈!肉
 
248
• 一年間 나의 結
 
249
乙亥年이 저무는 가느다란 눈알이 찬 바람재에 지향 없는 狂風에 흩어지고 있다. 인제 열흘이 있으면 乙亥는 永遠히 가 버린다
 
250
生의 愛着을 부치고 事業에 뜻을 두었던 내가 이 서글픈 映畵街에서 살아온 지가 八年이다. 어떻게 살았든지 根氣있게 八年間을 살아온 것 같다. 기쁨도 없었고 安逸도 없는 부러지려는 가지에 앉은 새와 같이 마음 놓을 수 없는 이 生涯에서 그래도 살아왔다. 乙亥는 一千九百三十五年이라서 이 해에는 무엇이든지 꼭 해보겠다고 벼르던 해가 이렇듯 바람결 같이 흘러가 버렸다
 
251
굳이 가는 해를 붙잡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252
그러나 나의 生命은 이 한 해 속에서 起動을 하였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動함이 있고 動함이 있는 곳에는 事件이 生起고 事件이 있으면 記錄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結算報告書다
 
253
오! 나의 結算書를 어떻게 쓰랴
 
254
그러나 正直하게 記錄해야 할 것도 事實이다. 첫째 나의 私的生活도 記錄해보자. 會寧에는 七十이 넘으신 兩親이 어린 同生들을 데리시고 계신다. 나는 그네들의 長子의 責任이 있는 몸이다. 今年 一年동안에 집에 生活費를 보내준 것이 얼마나 되느냐? 寒心한 일이다. 一年동안에 生活費를 보태어 쓰라고 보낸 것이 百萬圓 밖에는 못하니 事實 억울하지 않은가? 勿論 나의 生活費와 交際費도 相當히 없어졌지마는
 
255
깊은 理解와 撤底한 覺悟가 계신 兩親이시기에 나의 일에 있어서 섭섭다고는 絶對로 生覺지 않으시나 나의 立場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었었다. 그러므로 今年 一年동안에 나의 머릿속에 會寧계신 兩親任의 근심은 하루도 떠날 날이 없었든 것은 分明한 일이었었다. 이 글을 쓰는 時間까지라도 말이다. 다음으로 나의 生活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었노. 홀몸으로 살아온 지가 벌써 二年이 넘는다. 河를 作別하고는 오늘까지 홑 실림이다. 勿論 相對者만 있었으면 結婚도 生覺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自身이 아내를 구하려고 굳이 勞力을 내어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女性界에 아주 相關을 끊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왜냐고 하면 今番에 다시 맞이할 女性으로는 一生을 同居하는 그런 人物이 나에게 있어서는 絶對로 必要한 것이다. 昨年 겨울부터 내가 다시 서울 와서 河를 가끔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亦是 살림을 復興시키자고 別말을 다하고 또 그는 그렇게 되리라고 까지 믿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生覺은 그 사람의 哲學이 빚어낸 말이요, 나의 生覺은 그렇지가 못해서 거절을 했다. 至今은 慶尙道 땅으로 일을 따라서 내려갔지만 그도 亦是 몹시 불쌍한 人間의 한 사람이었었다
 
256
나는 아무래도 멀지 않은 時日內로 取妻를 해야 되겠다는 生覺이 굳어졌다
 
257
다음으로 나의 全的事業을 하는 映畵는 어떻게 되었나. 今年 일은 봄에는 少女劇座에 連鎖劇을 만들어 주고 다음 玄聖完(현성완) 一黨에게 客員으로 가서 얼마 있다가 서울 와서 ヨト를 만나서 藝苑座에 加入을 해서 雲奎(나운규)를 데려다가 地方巡業을 하면서 無花果와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258
그리고는 곧 車相朝(차상조)君을 만나서 江건너 마을을 製作하고 다시 이어서 會社製度로 (?)가지고 토키로 아리랑 三篇을 製作하고 있다. 그러면 今年 內로 만든 作品은 네 개의 作品이다. 네 개면 朝鮮안에서는 그다지 적은 數의 作品은 勿論 아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의 今年度의 目的이 아니었었다. 좀 더 큰 것이었다. 그리고 羅(나운규)君은 한 三年만에 다시 일을 하는데 前과는 달라진 人物로 生覺햇는데 最近에 그의 行動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나아진 것이라고는 한 点도 없고 너무나 私利에 흐르고 同人을 몰라주는 漢陽映畵社의 在存問題가 어떻게 될까 하는 疑心까지 난다
 
259
나는 最近에 羅(나운규)君 때문에 머리가 몹시 무거워졌다. 理由는 내가 다시 羅(나운규)君을 버리느냐 그냥 참아버리고 더 기다려 보느냐가 問題다
 
260
그의 技能과 手法도 イキツマリ가 되었는데 너무 그러지 말고 精神을 차리고 살아갔으면 하는 生覺이 每日난다
 
261
今年 안으로 朝鮮에서 내가 보는 限 金一海(김일해)라는 俳優 한 사람과 梁世雄(양세웅)이란 技士 한 사람이 새로 나온 것을 大端히 반가워한다
 
262
어쨌든 今年은 이렇게 지내고 말았다
 
263
나의 靈은 새로운 힘이 衝動을 받고 있다. 나의 앞에 일만 있으면 얼마든지 新境地를 開拓해 나갈 自身이 生起인다. 나의 靈의 變함이 없다. 이것은 나의 사람에 위대한 原動力이요, 生命이다
 
264
나의 肉體에 있어서도 果히 變함이 없다. 昨年에 比해서 그리 弱해짐은 없었다
 
265
첫째로 술을 모르고 계집을 果히 가까이 하지 않고 살아 온 것이 좋은 原因인듯 하다. 그러면 나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튼튼하다. 얼마든지 에네륵(에너지)을 發輝할 수가 있다. 그러나 今年 中에 나는 讀書를 못했다. 冊을 보는 時間이 全혀 없었다고 해도 果焉이 아닐 것이다
 
266
現代는 智能의 世界다. 아는 사람이 勝利를 하고 살 수 있는 世上이어늘 讀書를 이처럼 게을리 하고야 무엇하랴. 來年부터는 틈 있는 대로 또는 억지로 時間을 내어서라도 讀書에 게을리 말 것을 굳게 約束을 하자
 
267
善愛(선애)와 古粉(고분)女가 上京하였으니 이 애들에 많은 責任도 크다
 
268
어떻게 하면 하면 잘 指導할 수 있을까? 大端한 問題이다
 
269
써놓고 보니 나의 年間 靈肉의 結算書가 되지 못했다. 너무나 彼相的으로 亂筆을 하여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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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文學的으로나 學術的으로 쓸 必要도 없을 터이지
 
271
十二月二十八日 밤 十二時
【원문】193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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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0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