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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춘 일기 (1936년) ◈
◇ 1936년 7월 ◇
해설   목차 (총 : 12권)     이전 7권 다음
윤봉춘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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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七月一日 (舊五月十三日) 水

2
天氣  晴雨
3
寒暖 
4
發信受信
5
感想
6
아침에 且介(차개)를 上京시켜서 필름을 가져오기로 하고 우리는 終日 且介(차개) 집에서 놀고 있었다. 저녁에 且介(차개)가 내려왔는데 아직도 會寧서 필름이 到着되지 않았다고 한다.
 
7
그래서 우리 二人은 今夜 十二時 車로 上京해서 다시 필름 件을 알아보고 가지고 내려오기로 하였다. 十二時 車로 二人은 떠나서 京城을 向했다. 車中에서 밤을 지냈다.
 
 

2. 七月二日 (舊五月十四日) 木

9
天氣  晴雨
10
寒暖 
11
發信受信
12
感想
13
午前 八時 傾에 서울에 내려서 下宿에 들어왔다. 韓昌旅館에 韓愚(한우)君과 黃壽岩(황수암)君을 만났다. 黃(황수암)君의 同生 結婚式이 昨日이 되어서 모두 上京하였다고 한다.
 
14
밤車에 다시 우리 二人은 필름을 가지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필름은 運送部로 代金을 보냈던 것이다. 劇場問題는 좀 까다롭게 되는 듯 하다. 마병과 本村(목촌)에 對한 感情問題가 있지나 않을까 한다. 李基烈(이기열)君을 車에서 만났는데 谷城에 英淑(이영숙)이를 만나러 간다고 너무나 盲目的 사랑에 自己의 立場을 生覺지 않음이 자못 근심된다.
 
 

3. 七月三日 (舊五月十五日) 金

16
天氣 
17
寒暖 
18
發信受信
19
感想
20
세시 車에 大田 내려서 다시 金兄은 京城에 필름 가지러 가고 且介(차개)君과 나는 論山에 가서 黃用性(황용성)氏를 만나서 幷士에 對한 것과 興行에 對한 것을 相議하였는데 그로 하여금 앞으로 몇 場所를 모아 달라 부탁하고 大田에 다시 五時 傾에 到着하였다. 兒町 五0番에 崔椿(최춘)이라는 幷士도 만나서 이야기 해 두었다.
 
21
밤 十二時 車에 容準(김용준)兄이 來田하였다.
 
 

4. 七月四日 (舊五月十六日) 土

23
天氣
24
寒暖
25
豫記  七月 五日의 日記
26
發信受信
27
感想
28
오늘 아침에 江景서 黃(황용성)에게로 電文이 왔다. 來日부터 江景에 公演하기로 決定이 된 모양이다. 亦是 여러 날 동안 文한테서는 消息이 없다. 어찌된 일인가 매우 궁금하다. 서울 消息도 며칠이 안 되었건만 오래된 듯 궁금하다.
 
 

5. 七月五日 (舊五月十七日) 日

30
天氣 
31
寒暖
32
豫記  七月 四日의 日記
33
發信受信
34
感想
35
아침에 論山劇場 黃用性(황용성)氏 한테 電報를 쳤다. 二時 車에 黃(황용성)氏가 왔기에 崔椿(최춘)氏와 함께 進行에 對한 것을 相議하고 劇場交涉도 해보았는데 大田은 十三日 하루만 使用하기로 結定이 되고 오늘 黃(황용성)은 先行을 江景으로 出發하였다.
 
 

6. 七月六日 (舊五月十八日) 月

37
天氣 
38
寒暖 
39
發信受信
40
感想
41
새벽 네시 四十分 車에 江景에 내렸다. 劇場을 찾아서 필름을 맡기고 錦城旅館으로 定했다.
 
42
오늘 初日이다. 市內人이 百圓에 興行을 팔라고 하는데 午后에 나는 承諾을 했고 市內人과 黃과의 사이가 좋지 못한 原因으로 自興行을 했다. 밤 收入이 二十四圓이었다. 李基烈(이기열)君이 谷城서 찾아왔다. 반가이 만나서 함께 잤다. 黃(황용성)은 밤에 다시 論山으로 갔다.
 
 

7. 七月七日 (舊五月十九日) 火

44
天氣 
45
寒暖 
46
發信受信
47
感想
48
낮 동안에 우리 三人은 市內에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였다. 아무리 生覺하여도 今夜의 公演은 預定대로 될 것 같지가 않아서 十戔 均一로 하고 宣傳을 다시 하였다. 저녁때 사람들이 모여들 時間에 비가 왔다. 비 關係로 入場者가 또한 적었다. 二十圓 가량 되었다. 江景 公演은 結[缺]損이었다. 밤 十二時 五分 車로 一行은 論山을 떠났다. 이번 公演의 걸음도 헛受苦가 될 것 같다. 여름철이라 年中에 第一 不景氣 한 때요 비가 자주 내려오는 때라 모든 興行師는 全部 撤回하는 때라 大端히 좋지 못한 때다. 집사람들의 消息이 몹시 궁금하다. 文은 至今 어느 地方에 가서 있는지 얼마나 苦生을 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8. 七月八日 (舊五月二十日) 水

50
天氣  晴曇
51
寒暖
52
發信受信
53
感想
54
새로 한 시에 一行 四人은 論山에 내렸다. 東一旅館에서 下宿을 定했다. 論山劇場은 今春에 火炎을 當해서 가설 劇場을 짓고 公演을 했다. 收入金이 三十一圓十戔이요 費用이 二十六圓九十戔이니 오늘 公演도 缺損이었다. 市街地를 求景하였다.
 
 

9. 七月九日 (舊五月二十一日) 木

56
天氣 
57
寒暖 
58
發信受信  韓東錫
59
感想
60
朝飯后 우리 三人은 恩津 미륵佛을 求景하러 갔다. 前에는 恩津땅에 속했으나 至今은 論山地方에 들게 되어서 論山 미륵이라고 일반이 부르게 되었다. 十里 조금 남짓한 곳인데 徒步로 갔다. 果然 相當하였다. 高가 五十五尺 五寸이다. 紀念寫眞을 찍었다. 밤 수입은 二十圓 가까이 되었으나 亦是 缺損이 된 셈이다. 來日은 公州로 가게 되었다.
 
 

10. 七月十日 (舊五月二十二日) 金

62
天氣 
63
寒暖 
64
發信受信
65
感想
66
아침에 一行은 公州에 왔다. 劇場은 切伴部 興行을 定했다. 公州座도 불타고 臨時로 지은 劇場이다. 自動車로 錦江邊을 드라이브하고 우리 三人은 山城 山上에 올라 全景을 보고 다시 鳳산에 올라 全景을 求景했다. 六七年 前에 한번 왔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나 至今이나 別로 面目一新한 것은 없었다. 道廳이 大田으로 옮겼으니 오히려 쇠퇴할 것 같다. 밤 收入金은 三十二圓이라니 亦是 收入 없는 興行이었다. 늦도록 市內로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食口들의 消息이 漠然해서 沓沓하기가 끝없다.
 
 

11. 七月十一日 (舊五月二十三日) 土

68
天氣 
69
寒暖 
70
發信受信
71
感想
72
오늘은 우리 三人이 錦江에 가서 보트를 타고 놀았다. 公州 高等學生들의 水泳運動은 매우 滋味스럽게 보였다. 밤 收入金은 二十九圓이었다. 公州 興行도 結局 缺損이었다.
 
73
來日은 大田 가서 하루 놀고 十三日 하루 興行을 끝내고 上京하기로 하였다. 이번 걸음은 無味한 걸음이었고 아무 效果 없는 일이었다. 유달리 오늘은 하루 終日 氣分이 좋지 못하였다. 어떻게 해야 이 괴로운 難關을 突破할 것인가?
 
 

12. 七月十二日 (舊五月二十四日) 日

75
天氣 
76
寒暖 
77
發信受信  尹善愛(윤선애), 高奇峰(고기봉), 林楨周(임정주)
78
感想
79
午前 十一時에 自動車로 一行 三人이 大田에 왔다. 警心館에 필름을 맡기고 李基烈(이기열)君과 나는 午后 三時車에 上京하여 七時 傾에 到着하였다. 여러 날 동안 집안사람들의 消息이 궁금하여서 편지를 찾으니 善愛(윤선애)한테서 七月二日에 渭原에서 한 便紙와 奇峰(고기봉)君이 定州에서 한 便紙 밖에는 없었다. 文은 왜 消息이 없나. 쓸데없는 오해로 傷心하고 있는 모양이다. 東原(동원)氏한테 電話했더니 마병이도 今后 本格的으로 進行해 보겠다고 한다. 車中에서 말썽이 생겨서 시끄러웠다.
 
 

13. 七月十三日 (舊五月二十五日) 月

81
天氣 
82
寒暖 
83
發信受信  尹善愛(윤선애)·高奇峰(고기봉)·崔椿(최춘)
84
感想
85
昨夜에 基列(이기열)이와 同宿하고 오늘 のカリ에 가서 있었다. 長橋町便으로 집 두채를 보아두고 來日 容準(김용준)氏가 上京하는대로 相議해서 決定하기로 하였다.
 
86
오늘 아침에 文한테서 小包가 왔다. 文이 나한테 편지 한 장 없는 것을 보니 經驗없는 어린가슴에 커다란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너무나 불쌍한 사람 같이 항상 마음에 걸리고 있다.
 
 

14. 七月十四日 (舊五月二十六日) 火

88
天氣 
89
寒暖
90
發信  尹善愛(윤선애)
91
受信  娘娘座
92
感想
93
午后 三時에 容準(김용준)氏가 上京하였다. 昨日 말해 두었던 집을 가보니 벌써 나갔다고 한다. 都會의 波止場은 今月 十二日 가령에나 着手 한다고 한다. 밤에 靑春座에 가서 求景하였다. 雲奎(나운규)君은 今年 二日 傾에 현재(玄在)를 따라서 江原道 地方에 갔다더니 二三日前에 다시 上京하였다고 한다.
 
 

15. 七月十五日 (舊五月二十七日) 水

95
天氣 
96
寒暖 
97
發信受信
98
感想
99
오늘도 終日 三人이 집求하러 다녔으나 못 얻었다. 石橋병원에 갔다가 富美子(부미자)가 入院한 것을 보았다. 어머니도 보았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참동안 이야기가 있었다. 文의 어머니는 文이 퍽도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나의 下宿을 여러 번 오셨다가 못 만나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未安하였다. 하루바삐 文을 오도록 하는 것이 매우 좋겠다고 生覺한다. 밤에 漢江 煙火求景을 갔다 돌아왔다. 사람이 어찌도 많은지 五萬名 以上은 넉넉히 될 것 같았다.
 
 

16. 七月十六日 (舊五月二十八日) 木

101
天氣 
102
寒暖 
103
發信受信
104
感想
105
長橋町에 日本집 한 채에 二十一圓式 한다는 것을 保證人 때문에 今日도 落着을 못 짓고 그대로 지냈다. 여러 날 동안 府內로 돌아다녀서 너무도 彼[疲]勞하였다.
 
 

17. 七月十七日 (舊五月二十九日) 金

107
天氣 
108
寒暖 
109
發信受信  高奇峰(고기봉)
110
感想
111
오늘도 別일 없이 하루를 지냈다. 長橋町집은 保證人 때문에 결국 못 얻을 것 같다. 저녁에 孫勇進(손용진)君이 와서 淀虎(정호)의 말을 하였다.
 
112
淀虎(정호)는 이번 필름 때문에 大端히 분노한 模樣이다. 奇峰(고기봉)君 한테서 편지 왔는데 市場은 最近 大端히 곤란을 當하는 모양이고 文도 서울 오고 싶다는 말이 있다. 하루바삐 불러와야 내 마음이 安心하겠다. 밤늦도록 마장 俱樂部에서 놀았다.
 
 

18. 七月十八日 (舊五月三十日) 土

114
天氣 
115
寒暖
116
發信受信  高奇峰(고기봉)
117
感想
118
ヒカリ洋裝院을 金兄이 買受하겠다 議論이 있어서 오늘 朴한테 交涉을 했는데 消息이 아직 없다. 滿月舞臺는 二十日 傾이나 龍興館에서 公演을 했다는데 서울서 解散했다고 한다.
 
119
어제 밤에는 빈대가 너무나 많아서 않은 채로 오늘 아침 七時까지 밤을 세었다. 南山을 金兄하고 散步했는데 朝鮮人 寺黨이 있는 것은 오늘 처음 보았다.
 
 

19. 七月十九日 (舊六月朔日) 日

121
天氣 
122
寒暖 
123
發信受信  尹善華(윤선화), 尹貴心(윤귀심)
124
感想
125
ヒカリ洋裝院 交涉은 朴의 不承認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來日은 金兄하고 새집을 求하러 다니기로 作定하였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하루해가 또 지났다. 책을 들어도 마음이 산란해지고 놀러 다녀도 마음이 붙지 않고 무심한 날만 보내게 되는 이 경우를 어서 청산해야 할 텐데.
 
 

20. 七月二十日 (舊六月二日) 月

127
天氣 
128
寒暖 
129
發信受信
130
感想
131
釀造組合의 鄭夢石(정몽석)君을 찾아가서 새집에 對한 말을 付託하였다.
 
132
오늘은 基烈(이기열)氏의 生日이다. 밤에 그와 나는 장춘단 公園에 散步 갔다. 新義州에서 文과 高, 金 三人이 新法三部를 各其 보낸 것을 반가이 받았다.
 
 

21. 七月二十一日 (舊六月三日) 火

134
天氣 
135
寒暖 
136
發信受信  尹善華(윤선화)
137
感想
138
基烈(이기열)이와 公證所에 가서 事務員한테 黃金町 日本家屋을 부탁하였다.
 
139
午后에 東洋劇場에 갔는데 端宗哀史는 李王職(이왕직)에서 上演中止를 시켜서 마지막 날인 오늘은 不得而中止하고 再上演物을 公演한다고 한다.
 
 

22. 七月二十二日 (舊六月四日) 水

141
天氣 
142
寒暖 
143
發信受信
144
感想
145
오늘도 집을 求하지 못했다. 밤에 興龍劇場에 가서 文秀星(문수성) 一行의 演劇을 보았다. 形便 없는 作亂이었다. 林生員(임생원)·申銀鳳(신은봉)·申一仙 (신일선) 等이 왔기는 하나 元體 全體가 형편이 없어서 그래가지고는 進行할 것 같지 못할 것 같다. 洪關明(홍관명)君을 興龍館에서 만났는데 娘娘座에서 어떻게 하고 왔는지 궁금하다.
 
 

23. 七月二十三日 (舊六月五日) 木

147
天氣 
148
寒暖 
149
發信受信  李仙林(이선림)
150
感想
151
오늘 益善洞에 있는 새집을 얻기로 하고 契約은 來日로 하기로 되었는데 집세는 一介月에 四十五圓이라고 한다.
 
152
밤에 東劇에 가서 ‘돈에 울고 사랑에 속고’ 라는 演劇을 보았는데 매우 좋게 보았다.
 
 

24. 七月二十四日 (舊六月六日) 金

154
天氣  晴雨
155
寒暖 
156
發信受信
157
感想
158
안타까운 심정으로 오늘 하루를 또 보냈다. 文한테서는 왜 이리도 소식이 없을까? 作亂이라면 너무나 지루하고 돌아선 사람이라면? 설마 그러지는 않을 테고 그의 正式 動態를 나타낼 때까지는 純情으로 기다려 보리라. 그러나 기다리는 마음에 度數가 엷어 간다면 그때에 내 마음은 무엇으로써 붙잡으랴?
 
 

25. 七月二十五日 (舊六月七日) 土

160
天氣 
161
寒暖 
162
發信  李仙林(이선림), 高奇峰(고기봉)
163
受信
164
感想
165
黃金町집은 日華州루에 가서 交涉한 結果 今秋까지 수선한다 해서 틀렸다. ヒカリ洋裝院에 廣告를 東劇 프로그램에 하기로 이야기 되었다. 奇峰(고기봉)君 한테 편지하면서도 文한테는 쓰지 않았다. 아무리 生覺해도 文은 나에게 分明히 演劇을 하고 있다. 작란을 하고 있다.
 
166
다시 말하면 제가 이기는가 내가 이기는가 하는 이런 試合이다. 편지 안하는 것이 나의 失手일지 모르나 그를 믿는 나로서는 當分間 시합 건에 白기를 들고 싶지는 않다. 試合은 苦痛이다. 苦痛을 잘 참는 자가 우승하는 者가 아닐까 쓸데없는 作亂 같다.
 
 

26. 七月二十六日 (舊六月八日) 日

168
天氣  晴雨
169
寒暖 
170
發信  윤선화
171
受信
172
感想
173
都會의 波止場이란 作品은 이럭저럭 準備가 되어서 日間 着手하기로 되었다고 한다. 近 半个月 동안이나 求하든 집은 틀려지는 모양이다. 文한테서는 왜 便紙 없나. 이러한 作亂이란 너무 오래되면 彼此에 의심을 사게 되지 않을까? 내 마음이 이렇게 기다려지거든 文의 마음인들 오죽 기다려지랴? 장마 비에 지루한 旅路에 성치 못한 몸으로 고생인들 오죽하랴?
 
 

27. 七月二十七日 (舊六月九日) 月

175
天氣 
176
寒暖
177
發信受信  全草(전초)
178
感想
179
郭義洞에 一二五-二號를 오늘 契約하였다. 一个月 三十五圓 保證金 參佰圓내고 나의 名義로 얻었다. 八月 五日부터 들기로 하였다.
 
180
밤에 金容準(김용준)은 大田으로 내려갔다. 林으로부터 電話가 오기를 來日 만나자고 한다. 全州에서 吳氏라는 사람이 洪露省(홍노성)을 찾아왔는데 무슨 事業을 하겠으니 만나서 相議하자는 것이었다.
 
181
오늘도 文한테서는 消息이 없다. 어서 上京해야 되겠다. 이번에 上京하면 이 房에 그냥 있을 수는 없는데 그러고 보니 새삼스런 苦痛이 생기는 듯 만나서 할 일이다.
 
 

28. 七月二十八日 (舊六月十日) 火

183
天氣  曇雨
184
寒暖 
185
發信  문덕심
186
受信  문덕심
187
感想
188
오래간만에 文의 글을 받았다. 어린 아내와의 작난도 여러 날 두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큰 오해를 가지고 그로 因해서 病까지 들어 있지 않은가? 分明히 나의 실책이었다. 곧 上京하도록 편지하였다. 上京하면 어떻게 살림을 하나 이런 문제도 고려할 때가 못 된다. 어서 와야 할 사람이다. 밤에 새로 한 시경에 金昌淳(김창순)이란 사람이 젊은 女性 하나를 데리고 왔다. 장가보내라 한다. 너무나 이상스러웠다. 길가에서 만난 사람이라 하며 失戀한 사람이라고 한다. 正體 모를 그 女性, 理因 없는 그 事件을 내가 그 女性을 내 방에 재울 수는 없었다. 金에게 어떤 事情이 있지 않나 해서 金을 먼저 보내고 젊은 女性한테 돈을 주고 곧 돌려보냈다. 그 女人은 자꾸 웃기만 한다. 一見 정신병자와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자고나니 꿈같은 일이었다. 大體 金이 왜 그 女性을 나에게 보내었을까? 나는 獨身이 아니어든 金은 나를 모욕했다는 不安이 生겼다.
 
 

29. 七月二十九日 (舊六月十一日) 水

190
天氣 
191
寒暖
192
豫記  墓烈
193
發信受信
194
感想
195
午后에 京城 그라운드에 가서 全朝鮮中等學校 野球試合을 구경하였다. 仁川商業이 强팀인듯하다. 밤에 朴仁和(박인화)君이 찾아왔는데 映畵製作을 하여 보겠다는 意見을 말했다. 資本은 相當히 있는 듯하나 쉽게 믿어지지는 않는 사람 같다. 午前中에는 마작을 하였다.
 
 

30. 七月三十日 (舊六月十二日) 木

197
天氣 
198
寒暖
199
發信受信  윤선화·김용준·ヨト
200
感想
201
오늘도 野球 求景을 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밤에 林氏에게 가서 여러 가지 相議를 하고 돌아왔다.
 
202
윤선화 便紙를 받으니 더욱 새삼스러이 會寧집 걱정이 심해진다. 머리가 이렇게 무거워져서야 살 수 가 있나.
 
203
마음 만으로라도 明郞한 생활을 하려던 나였는데.
 
 

31. 七月三十一日 (舊六月十三日) 金

205
天氣 
206
寒暖
207
發信  문훈경
208
受信  문훈경
209
感想
210
停車場 近處 南興旅館에 있는 盧剛(노강)이라는 이가 面會를 要해서 갔다. 龍山 있는 어떤 사람이 五百圓을 提供하겠다는데 그것을 資本삼아서 演劇을 함이 어떠냐 한다. 中止하라 권하고 그것으로 映畵雜誌를 着手해 보라고 했다. 橋北洞 朴松(박송)氏를 李와 함께 찾아갔다.
 
211
그와 映畵雜誌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曹熙哲(조희철)氏를 찾으니 그는 最近 病中에 있다가 겨우 나왔는데 二三日后에 相議 하자 해서 中止하였다. 社稷洞文에 가서 한참 이야기 하였다. 집안 食口는 文 때문에 몹시 근심한다. 어찌도 未安하였는지.
【원문】193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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