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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 (1976년~1979년) ◈
◇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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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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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7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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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뉴스 시간에 어제 취임한 미국의 새 대통령의 의기양양하고 즐거워하는 표정과, 임기를 마치고 시골에 돌아와서 골프를 치며 유유자적하는 포드 전 대통령의 표정을 찍은 TV화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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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눈에는 포드 전 대통령이 훨씬 행복하게 보이고 인생의 전유(全有)를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 인생에서는 오히려 행복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2. 1977넌 3월 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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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완전히 풀려서 봄날씨다. 역시 경칩이 지나니 추위는 물러가는 모양. 밤 10시 10분 KBS에서 육영수 여사 전기 낭독을 침대에서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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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5월 14일, 한국자연보호협회 회원들이 청와대에 찾아와서 아내에게 동 협회 총재를 맡아 달라고 청하던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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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경 식당에 회원들을 초대, 다과를 대접. 나의 집무실에 아내가 와서 잠깐 나와 회원들을 격려해 달라고 하여 따라나가 인사를 하고 잠시 동안 환담을 나누는 당시의 이야기다. 엊그제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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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타계하기 꼭 3개월 전의 이야기다. 아내는 남달리 자연을 좋아하고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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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이 자리 그만두거든 시골에 가서 조그만 집 하나 짓고 살아요, 그리곤 그 뒷산에는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그런 곳에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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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아내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이는 갔다. 지금도 지방에 다니다가 나무 있고 바위 있는 아담한 산이 있으면 나는 유심히 그 산을 보게 된다. 그이가 저런 곳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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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 아내는 또 우리 나라 재래식 한옥을 좋아하였다. 지방에 차로 같이 다니다가 재래식 기와집 반듯한 집을 보면 '저 집 참 좋지요! 저런 집 하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하고 처녀시절 옥천 친정집에 살던 때 이야기도 자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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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달빛을 바라보면 시골의 풍경을 늘 그리워하였다. 그런 생활을 노후의 유일한 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이는 먼저 갔다.
 
 

3. 1977년 4월 13일 (수)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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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昌原)공단 시찰. 1년 만에 둘러보는 창원공단의 발전된 모습은 장하기만 하다. 대우실업, 통일산업, 기아산업을 오전중에 시찰하고 한국종합특수강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한국특수강, 제일정밀, 대한중기를 시찰, 우리의 방위산업이 1년 동안에 놀라우리 만큼 발전되었고 기업인, 종업원들이 열성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족감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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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까지 기간부문이 완료되고 양산체제(量産體制)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연초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발표한 것을 예정보다도 훨씬 앞질러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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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업전사들의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거룩하게만 보였다. 그 땀진 얼굴, 기름진 작업복들이었지만 그다지도 값지고 거룩하게만 느껴져서 눈에서 사라지지를 않는다.
 
 

4. 1977년 4월 19일 (화)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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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경 영등포구에 있는 청소년 근로자 야간학교 수업상황을 시찰하다. 영등포 공업고등학교, 영등포 여자상업고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 32개교를 구로공단 최명헌 이사장의 안내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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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는 청소년들이었지만 여학생 남학생 다들 머리를 학생형으로 단정하게 다듬고 산뜻한 교복으로 앉아서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귀엽고 대견하다기보다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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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그들에게는 가정이 빈곤하다는 죄 하나만으로 남과 같이 그렇게 원하던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직장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고등학교학생복으로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부럽다기보다 나는 왜 학교를 못가느냐 하고 자기 스스로의 처지를 원망도 하고 부모와 가정을 원망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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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한스럽던 일이 이제 소원이 성취되었다. 야간이나 주간이나 자기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그들의 열성에 감동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가르치고 또 보람을 느낀다고 하는 말을 듣고 흐뭇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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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과 교사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와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돌아왔다. 이들의 앞날에 행복이 있기를 마음속에서 기원하였다.
 
 

5. 1977년 4월 28일 (목) 흐린 후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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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432주 탄신일이다. 11시 현충사 제례행사에 참석하다. '국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굽어살피시사 이 조국 이 겨레의 앞날을 밝게 비춰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고 장군의 영전에 머리 숙여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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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예산군 신아면 용궁리를 방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의 고택 복원공사를 둘러보고 인근에서 모여든 주민들과 담화도 나누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나의 손을 잡고 '만수무강하십시오. 늙지 마세요.' 하고 울먹이는 표정을 보고 순박하고도 가식 없는 시골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에 크게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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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착하고 어진 국민들을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너무나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고온천에 들러서 온욕을 하고 일박. 연도의 농촌풍경이 퍽 아름답고 비닐하우스가 온 들을 덮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6. 1977년 4월 29일 (금)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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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예산군 덕산 윤봉길 의사 45주기 의거일 제례에 참석. 윤 의사의 유족 장남 종씨를 만나서 유족들의 안부와 생계 형편을 물어 보았다. 윤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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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弱冠) 20여 세에 망국의 한을 품고 중국대륙에 건너가서 조국광복과 민족정기를 위하여 폭탄을 품고 사지에 뛰어 들어간 의기. 그때가 1932년, 의사의 춘추 이제 겨우 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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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더불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의 정기가 사라져가고 있을 때에 겨레의 가슴속에 다시금 횃불을 켜준 의열의 쾌거를 강행하였으니 참으로 장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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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忠義)는 천추(千秋)에 빛날 것이며 민족의 얼이 맥맥이 살아 길이 이 조국 이 겨레를 수호하리라. 재천(在天)의 영(靈)이 굽어살피시와 이 조국 이 겨레를 길이 빛나게 하여 주소서.
 
 

7. 1977년 6월 7일 (화)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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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자 미국의 유력지 <뉴욕 타임즈>지에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군의 가자회견 내용이 보도, 보도내용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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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10월 유신 후 73년 초에 가족과 같이 미국으로 떠났다. 떠난 후 얼마 지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10월 유신 후 유정회 국회의원에서 탈락된 데 불만을 품고 떠났다고 알고 있다. 8대 국회때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으나 임기 중 절반은 해외에 나가 있었다. 당의 승인도 허가도 없이 나다녔다. 1기 유정회에서 탈락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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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방미하는 인편에 귀국할 것을 여러 번 종용했으나 출판관계 일이 끝나면 돌아온다고 연락을 해 왔다. 최근에도 귀국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왔으므로 돌아올 것을 종용한 바 있고 거의 귀국을 결심하고 있지 않았나 했으나 또다시 누군가의 유혹으로 변심한 듯하다. 김에게 6년이나 중앙정보부장이란 중책을 맡겼던 나의 부덕으로 돌릴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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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개인에 대한 배신은 좋으나 조국에 배신과 반역을 하다니 괘씸하다기보다 참으로 측은하고 불쌍한 생각이 앞선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다가 이 땅에 묻혀서 이 땅의 흙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났더라도 이 땅의 주인은 될 수 없고 우리와 같은 겨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8. 1977년 10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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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 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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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1972년 10월 17일 역사적인 10월 유신이 내외에 선포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이 시작되었다. 급변하는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면서, 안정과 번영을 추구해 나가면서, 평화적인 통일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민족의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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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에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자주, 자립, 자위라는 정신적 기조 위에 근면, 자조, 협동을 행동강령으로, 불사조와 같이 고난을 극복하면서 우리는 위대한 업적을 거양할 수 있었다. 남들은 이것을 기적이니 한국의 신화니 하고 찬양을 하지만 이것은 결코 기적도 신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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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피와 땀으로써 이룩된 결정(結晶)이요 대가(代價)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아시아의 강국으로 곧 등장하게 될 것이다. 5천년 역사에 빛나는 영광의 세대를 창조하고야 말 것이다. 동포들이여! 내일의 이 영광을 쟁취하기 위하여 조금도 늦추지 말고 더욱 분발하고 매진하자.
 
 

9. 1977년 10월 28일 (금)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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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내 전적지 보수 정화사업이 완공되어 금일 14시 강화교 입구에 이는 갑곳돈대에서 테이프를 끊으면서 준공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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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용두돈대, 강화읍 내에 있는 서문, 구연무장 북문, 삼랑성문, 고려궁지 등이 보수 또는 중건되어 옛 조상들의 호국의 거룩한 얼을 기리며 성대히 준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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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1일 강화도를 방문, 옛 사적지 보존이 지극히 부실함을 보고 보수를 지시, 작년 8월에 착공, 만 1년 2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우리의 후세에게 호국정신을 가르치는 도장으로서 이곳의 유적지를 잘 관리보존하기 위하여 22억원의 예산으로 공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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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강화도민들은 완전히 축제분위기다. 김포ㆍ강화의 들에는 추수한 볏단이 온 들에 쌓여 있어 풍요하게만 보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내 나라를 지키는 데는 내 힘이 있어야만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0. 1977년 12월 22일 (목)

48
음력 11월 12일 동지(冬至), 백 억불 수출의 날. 백 억불 수출목표 달성 기념행사 거행, 오전 10시 장충체육관에서 각계인사 7천여 명이 참석, 성대한 행사를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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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제 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던 해 연간 수출액이 5천여만 불이었다. 그후 1964년 11월말에 1억불이 달성되었고 거국적인 축제가 있었고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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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는 10억불, 7년 후인 금년에 드디어 백 억불 목표를 달성했다. 그 동안 정부와 우리 국민들이 피땀 어린 노력과 의지의 결정이요 승리다. 서독은 1961년에, 일본과 프랑스는 1967년에, 네덜란드는 1970년에 백 억불을 돌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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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억불에서 백 억불이 되는 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1951-1967)이 걸렸다. 우리 한국은 불과 7년이 걸렸다. 모든 여건이 우리가 더 불리한 여건 속에 이룩한 성과라는 데서 우리는 크게 자부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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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가면 2백 억불을 훨씬 넘을 것이다. 1986년경에 가면 5-6백 억불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무서운 저력이 이제야 폭발적으로 발산될 때가 왔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분발해야 한다. 오늘 이 날은 우리 한국경제사상 길이 기록될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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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수행에 있어서도 길이 부각될 이정표가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백 억불,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 새로운 각오와 의욕과 자신을 가지고 힘차게 새 전진을 굳게 다짐하자.
【원문】박정희 대통령의 일기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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