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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겸 평생일기 ◈
◇ 방사겸 평생일기 (제3권) ◇
카탈로그   목차 (총 : 7권)   서문     이전 3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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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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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에 온다던 사람이 아니 왔으니 무슨 일일까. 상해에서 배 떠나는 시간을 몰라서 배를 타지 못하고 놓치었나. 배 떠나올 때에 둘 가운데 누가 하나 병이 나서 이 배에는 못 오고 이 다음 배를 타고 오려고 작정이 되었는지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고 별의별 생각을 다하여 보았다마는 무슨 사정과 사고가 있어서 온다고 이미 통기한 이 배에 왜 아니 왔는지 이번 상해에서 이 배를 타고 온 한인이 몇 분이 지금 천사도에 갇혀 있으니 수일간 이 분들이 나오면 자세히 내용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줄 알고 나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 있는 여러 친구들은 나와 약혼한 부인께서 이 배에 안 오셨나요 묻는다. 나는 어쩐 일인지 이 배에 안 왔어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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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이대위 목사를 찾아가서 이민국에 갇혀 있는 한인들이 언제 나오는가를 알아보려고 갔다. 이 목사를 만나서 물어보니 명일 오전 좀 되어 나오리라고 말씀하여 준다. 나는 명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고 여관으로 다시 와서 이럭저럭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일찍이 일어나서 여관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윤혁씨 내외분이 주방에서 조반을 장만하느라고 분주히 지내는 주방으로 들락날락 마음을 정돈치 못하고 있는 이것이 나의 성질이 너무나 예민한 까닭인가 자상자판을 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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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에 갇혀 있던 몇 분 한인은 지금 이민국 관리한테 여러가지 문답을 치른 후에야 자유를 얻어가지고 상항에 와 하륙할 시간은 다 되었다. 아니나 달라 천사도에서 조그마한 종선을 타고 상항으로 와서 내리는 일행을 보고 나는 찾아가서 이살로매 양과 이준필 일행이 이 배로 온다고 하고 안 왔으니 이 분들을 아는가 물어보았다. 이런 가운데 한 분이 나서서 말하기를 상해서 같이 탄 청년 남녀가 일본까지 와서는 잡혀 내려갔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분기가 발하여 국민회관으로 달려가서 일본 영사가 어디 있나 물어보니 이대위 목사가 왜 일노 영사관을 묻는가 하기로 나는 일 영사를 찾아가서 미국으로 오는 일행을 왜 일본서 잡아 내렸는가? 하는 질문을 한번 강경히 하여 보려고 한다 하였다. 이대위 목사는 나와 한 고향 지인이요 겸하여 사회상 관계로 친분이 이왕부터 있는 고로 나의 사건에 동정이 있으므로 이번 상해로 온 한인들한테 이살로매 양과 이준필 이 두 사람이 왜 이 배로 오지 못한 것을 자세히 물어본 결과로 이 두 사람이 상해서 이번 오는 몽골니아 배를 탔다가 다시 상해로 내려갔다 한다. 그 이유는 이준필씨가 일인 선객하고 자리를 다투다가 조선 사람으로 드러나서 일본 지나다 잡힐까 겁이 나서 다시 상해로 내려갔다고 판명되었으니 일 영사를 찾아가서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여 준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나의 열렬하던 분기는 식어지고 이 다음 배로 오겠거니 하는 희망을 가지고 여관으로 돌아왔었다. 며칠 후에 이살로매 양의 편지를 받아보니 참말 몽골니아 배를 탔다가 다시 내렸다고 하였고 샀던 선표는 이 배 함장한테 찾지 못하였으니 미국에서 교섭하여 찾으라고 하여서 나는 이 배 회사에 가서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그 선표 두 장을 상해에서 몽골니아호를 탔다 내려간 그 사람에게 다시 주어 달라고 간청하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허락을 한다.
 
 

1. 뽀랙쓰킹의 대강한 사적과 그 집 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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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항 와서 두어 달 지내는 동안에 친구에게 취하여 쓴 돈이 수백 원이요 그 동안 오마하에서 하던 찬관은 유홍도씨가 주장하다가 문을 닫고 말았으니 다시 오마하로 갈 희망도 없이 되었다. 또 이 배에나 저 배에 오나 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일도 못하고 여관에서 무직업자로 지내게 되니 친구의 빚은 점점 많아져서 나의 근심 더욱 더욱 커진다. 그래서 잠시라도 일을 좀하여 용처라도 벌어 쓰려고 하던 차에 마침 오클랜드 뽀랙쓰킹이라는 별호를 가진 유명한 부자집에서 일하는 장나득이라는 동포가 여관에 와서 자기는 병이 나서 일 할 수가 없다고 자기 병이 나아질 때까지 누가 좀 일을 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하기로 내가 간다고 나섰다. 장씨는 대희하고 나를 데리고 뽀랙쓰킹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매일 어찌어찌할 것을 다 가르쳐 주고 자기는 상항으로 가 버린다. 이 집은 수십 칸으로 건축이 된 화려 찬란한 고대광실을 산비탈에 지었는데 앞뒤에 수목이 집우려졌고 수목 사이에는 잡아다 놓은 노루 사슴은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가느다란 바람에 날리는 이 꽃향기는 행인의 코를 찌르는 것이 마치 향수와 분으로 세수하고 화려 찬란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옆으로 지나는 그 향기와 방불하여 인생의 사는 취미를 한층 더 도와준다. 또 이 집에서 한참 수목 사이로 들어가면 한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이집 주인공과 그 부인이 매일 아침에 걸어와서 조반을 먹는 정자이다. 여기에서는 음식은 만들지 않고 조반 먹을 것을 다 집에서 만들어 가지고 쿡과 내가 와서 차려놓고 조반을 공급하는 것이 마치 경치 좋은 데서 피크닉 하는 모양같이 한다. 또 집 옆에는 세탁소를 차려놓고는 청인 두 명을 갖다 두고 식구와 일꾼들의 의복을 빨게 하며 이 집 식구는 주인공 부처와 어린 딸 둘은 간호부가 건사하고 버틀러는 즉 청지기와 비슷한데 집에 온갖 것을 건사하면서 식사에 대하여 온갖 시종하는 것인데 두 사람이다. 하나는 청인이요 그 다음에는 나다. 또 주방에 쿡도 두 사람인데 하나는 원 쿡이요 그 다음은 조력하는 쿡이다. 이 주인공의 부인은 몇 해 전에 돌아갔고 이 집에서 서기 노릇하던 여인과 연애가 생겨서 혼인하고 사는데 이 어린 두 여자애는 이 후처에서 낳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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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속에 차려놓은 것을 말할 것 같으면 침실 객실 식당 주방 할 것 없이 다 값진 것으로만 차려 놓았으니 화려 찬란한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마는 이 집 속에 만들어 놓은 것 한 가지는 빼어놓을 수 없다. 이 집은 사층으로 건축하였는데 집 복판을 허궁하여 밑층에서 사층 천장을 내다볼 수 있고 매 층마다 허궁으로 돌아가면서 난간을 만들어 놓아서 사층 난간에서 밑층 방바닥을 환하게 내려다 볼 수 있고 이 허궁 밑층은 대 방실인데 여기는 연극장 같이 차려놓고 활동사진과 온갖 연극을 하게 차려놓은 것이 한 유명한 연극장과 같다. 여기에서 종종 쏘사이티 연회를 차려놓고 유명한 신사숙녀들이 모여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이런 연극장은 좀체로 사삿집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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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뽀랙쓰킹은 한 六十五세 가량된 사람인데 소년시대에는 한 노동자로 네바다 산중에서 홀아비 생활로 나무도 찍고 돌도 파는 일과 광산 채굴하는 일도 할 때에 자기가 되는대로 주어다 지어놓은 조그마한 단방 집에서 끓여먹고 산으로 다니며 이것저것 일도 하며 무엇을 발견하여 보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네바다 산중에서 지내다가 뽀랙쓰라는 그 본질을 찾았다. 이 뽀랙쓰라는 것은 회 비슷한 말문한 돌인데 이것을 과학상으로 제조하여 가지고 이 시장에 나가 대량으로 팔릴 만하게 하자면 이것을 찾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이므로 자본가를 얻어가지고 이와 같이 스미드씨가 큰 부자가 중년에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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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말한 뽀랙쓰는 여러 가지로 소용이 된다. 이것으로 옷도 빨고 집 청결하게 하는데 무엇이고 정하게 닦을 수도 있고 또 빈대 바퀴벌레 기암 워터벅 같은 종류의 벌레들을 멸종시키는 데도 많이 소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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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찾은 뽀랙쓰킹이라는 것은 이 사람의 별호요 이름은 아니다. 이 사람 이름은 스미드라고 한다. 이 스미드씨의 집 옆에 옮겨다 놓은 자기 손으로 오랜 왱간에서 낡아 떨어진 널판때기로 보기 싫게 단방으로 지어놓고 그 가운데 낡은 널판으로 짜놓고 자기가 드러누워서 오늘날같이 될 단꿈을 꾸던 그 침상이 아직까지 그대로 그 속에 있는 그 집을 자기가 스스로 기념하기 위하여 갖다놓은 것을 내가 친히 볼 때에 워싱턴에 버지니아 집과 링컨의 토막나무집을 연상하게 되었다. 이 뽀랙쓰킹은 오클랜드성에서 오고가는 전차회사가 자기의 소유요 또 뉴욕이나 워싱턴에 갈 때에는 자기가 특별히 만든 풀맨카를 타고 내왕하니 물론 큰 부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다. 三十五年 前에 듣노라니 이 사람의 재산이 十六百萬元이라고 한다. 그때 十六百萬元이 오늘날에 一千萬元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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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일이다. 이와 같이 큰 부자도 실패를 당하려면 별 수 없이 당하는 것이 한 견고한 벽돌집이라도 한 모퉁이에 불이 당기기 시작하면 이 집 전체가 타면서 무너져 내려앉는 것과 같이 아무리 큰 부자라도 하는 그 사업에 한 가지 사업이 결단이 난다면 이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사업에까지 미쳐서 이 남아 있는 사업도 위태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뽀랙쓰킹은 여러 가지 사업을 경영하는 중에 한 가지 사업이 단단히 봉패를 보게 되는 때에 자기가 경영하는 전체 사업이 일조일석에 요동하여 전부가 다 무너졌다. 이것이 이상에 비유한 한 견고한 벽돌집이 한 켠 구석에 일어난 불이 이 집을 태워서 전체를 평토를 만든 것과 같다고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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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전에 시카고에서 신문을 보니 뽀랙쓰킹이 거판을 당하였다는 제목하에 쓴 기사를 보고 알았었다. 이 기사 중에 말하기를 은행에 전당하였다가 갚을 수 없어서 전차회사 큰 가대 집안에 차려놓고 살던 가구 지등물까지 다 빼앗기고 조그마한 집으로 나와서 간곤한 생활을 늘그막에 맛보게 되었다 한 이 기사를 보고 이 늙은이의 장래를 위하여 나는 동정함을 마지 않았었다. 내가 지금 나의 지내온 모든 과거사를 적는 가운데 우연히 뽀랙쓰 집에서 일을 한 월여간 하게 된 관계로 이 집 형편을 대강 알게 된 것을 대강 말하게 되는 동시에 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나마 그 결과 된 데까지 말을 안 할 수 없고 또 이 사람은 미국에 한 보통사람이 아니고 이 나라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뽀랙쓰킹이라면 세계 형편에 몽매한 사람 외에는 거의 다 알만한 역사를 가진 사람인 고로 나의 평생 과거사에 이같이 적어놓아 둔다면 후에 다른 동포에게 상고재료가 될까 하고 이같이 장황히 적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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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뽀랙쓰킹의 집에서 한 달 남짓 있다가 장나득씨가 병이 나아서 왔기로 하던 일을 장씨에게 다시 돌려주고는 상항 윤혁씨 여관으로 다시 왔다. 이 때에 이갑씨 삼촌 되는 이응목씨라는 분이 삭도로부터 내도하여 나와 상면하게 되었다. 이 분은 삭도에 어떤 동포를 내지에 있는 젊은 과수에게 사진혼인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이 사람이 이 여자를 내지에서 상해까지 노비를 보내어 데려다 놓고는 다시 더 돌보지 않고 이 사진혼 등사는 무관심하고 있으니 상해까지 나온 여자는 이것을 주선하여 주던 이응목씨에게 어찌된 형편을 안 물어볼 수도 없고 재촉을 안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응목씨는 그 여자의 사진을 가지고 상항으로 온 것이다. 이씨는 나를 보고 이 여인의 걱정을 무한히 한다. 그래서 그 사진을 나를 주면 내가 좋은 소개를 하여 주마 하고 이 사진을 가지고 김승길씨를 찾아 갔었다. 이 김승길씨는 가주 상의원 켄트씨의 서랑 아놀드라는 법률사 집에서 쿡으로 여러 해 있어 돈을 좀 저축한 사람이다. 내가 웃는 말로 김형도 남과 같이 사진혼인이나 하여 보시지요 하고 사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김씨 말이 사진혼인 여자가 어디 있어야지 있다 하더라도 누가 나같은 늙은 총각에게 소개하여 줄 사람이 있나 나는 이런 말을 듣기를 원하였다가 이 말을 듣고 나는 퍽 반가웠다. 그러면 누가 좋은 여자의 소개를 하면 사진약혼을 어느 때든지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이 말에 대하여 나는 힘을 낼 수 있는 데까지 내어가지고 엄숙한 태도로 재차 물었다. 김씨는 웃으면서 나같이 무식한 사람을 누가 소개를 하여준단 말이요 공연이 쓸 데 없는 말 그만 두고 다른 말 합시다 하면서 자기가 금광 스탁 노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 분은 수십 년 동안 월급도 상당히 받고 일을 하여서 금광 스탁 노름을 하여 딸 때에도 있고 잃을 때도 있어서 이 금광 스탁 노름이 이 사람 뇌에 인상이 되어서 누구를 만나든지 이 금광 스탁 이야기가 이 사람에게는 한 주격이라고 사람사람이 다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진실하고 구수한 편이 많고 무슨 간교하거나 남을 속일 생각 같은 것은 도무지 없는 좋은 성질 가진 사람인 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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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스터 김 누가 사진약혼할 여자를 소개한다면 허락하신다 하였으니 내가 좋은 여자를 소개하면 응낙하시겠소 물었다. 김씨는 말하기를 사겸씨 같은 분이 소개하신다면 허락하기로 힘 있게 장담하신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즉시 가지고 갔던 사진을 내어 보이면서 이 여자는 평안북도 사람이요 또 교회에서 수양을 받던 인데 지금 도미하려고 상해까지 나와서 돈이 부족하여 미국으로 오지 못하고 상해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형께서 이 여자와 사진결혼할 생각이 계시면 김형에게도 다행이요 이 여자 하나를 곤란한 가운데서 구하여주는 것인 줄 저는 믿습니다. 길게 더 말씀할 것이 없고 김형께서 이 여자에게 마음이 있으면 지금 곧 미주로 들어올 선비를 좀 주시면 제가 곧 부쳐서 그 여자를 속히 데려오겠으니 이것은 김형이 지금 생각하여 결단하실 것입니다고 하였다. 김승길씨는 낙관적 표정을 띠고 웃으면서 아따 사겸씨 빨리 몰아대는구려 하면서 자기 침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서 궤짝을 열고 지전을 한 움큼 쥐고 나와서 얼마나 가졌으면 상해서 미국까지 오겠소 하기로 선비뿐만 아니라 상해서 돈이 떨어졌다 하니 아마 기숙비도 졌을 듯하니 한 三百元 부치면 넉넉할 듯하외다 한즉 三百元을 서슴치도 않고 헤어준다. 나는 김씨에게 고맙다고 말씀을 하고는 여관으로 달려왔다. 이응목씨는 나를 보고 반가운 태도로 어찌 되었습니까 누구를 찾아 갔댔어요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예 김승길씨 일하는 집에 갔댔어요 갔던 일은 될 모양 같소이다 하니 김승길씨가 그 여자를 원하여요 예 원합니다 그러면 선비를 부쳐야 되겠으니 돈을 좀 달라지요 선비 말씀이요 선비 외에 빚진 것까지 물어줄 만하게 가져왔어요 얼마란 말씀이야요 三百元을 달래 가지고 왔으니 이것이면 넉넉하겠지요 하고 자 이 돈을 받아서 상해로 부치세요 하고 이 돈 三百元을 이응목씨에게 주었다. 이 돈을 받는 이응목씨는 잠깐 나를 바라보면서 사겸씨 주선이 과연 바트기가 갔던 거 같구려 이런 대사를 二, 三시 동안에 호성적의 결과를 맺어가지고 오신 것은 감사한 것을 이루 다 말씀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이 사건에 내가 사겸씨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나는 아직도 곤란을 당하고 있을 것을 다행히 사겸씨를 만나 나의 어찌할 줄 모르는 곤란을 풀어주셨으니 나는 다시금 치하합니다. 하는 말에 대하여 나를 너무 과도하게 칭찬하시지 마시오. 저도 사진약혼 때문에 이곳 와서 배들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양에서 미주로 오는 여자나 이곳서 동양에서 온다는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나 피차에 다 기다리기에 애가 탈 것을 나는 분명히 알게 됩니다. 나와 사진약혼한 여자는 수삭 전에 몽골니아호를 타고 온다고 하여 이곳 와서 만나기로 한 것이 그 배에 오지 않고 지금 근 일년을 피차에 기다리고 있으니 서로 애가 탈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사진약혼하고 오신다는 부인에게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사정을 알기 때문이외다. 이것이 이른바 과부의 서러운 사정은 동무과부가 안다는 것과 같이 내가 지금 사진혼인하려는 여자를 눈이 까맣도록 기다리고 있는 정세가 지금 상해에서 미국으로 오다가 그곳에서 노비가 떨어져서 애쓰고 있는 그 정형을 넉넉히 알게 됨으로 그 여자를 나의 주선이 미치는 데까지 도운 것뿐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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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상해 편지를 받으니 이살로매 양은 두주일 후에 상해서 차이나호를 타기로 작정이 되었다고 하며 이 배가 사진약혼하고 들어오는 여자와 다른 한인은 다시 더 오지 못하고 이 배에 오는 사람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매우 위태롭게 생각한 것은 이 마지막 배 탈 임시 또 무슨 사고가 있게 되면 이살로매 양이 미국에 올 기회가 없어질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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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김승길씨를 찾아갔다. 김씨는 점심을 하면서 상해로 돈을 부쳤소 묻는다. 김형이 준 그 三百元을 갖다 이응목씨를 주었으니 응당 상해로 그 날 부쳤겠지요 하고 오늘 나는 상해 편지를 받아보니 두 주일 후에 상해에서 떠나는 차이나호가 마지막 배라고 하는 기별을 받아보았는데 이 배에 김형과 약혼한 여자와 나를 찾아오는 이살로매 양과 어쩌면 한 배에 올 듯 합니다 하였다. 김씨는 이 말을 듣고 퍽 반가워 하면서 지금 좋은 일자리가 하나 났으니 가라고 권한다. 이 일은 상항에 유명한 인물들이 조직한 클럽인데 수순밸리에 위치를 두었다. 이 클럽 부원은 한 二十명 가량 되는데 다 유명한 사람들이다. 가주 상의원 켄트씨와 김승길씨 주인 아놀드씨와 은행가 사업가 이런 인물들이 구락부를 여기다 조직하고 가을철에는 물오리 사냥과 동삼에는 노루 사슴 사냥을 하는 곳인데 남자들만 와서 며칠씩 놀고 가는 남성의 구락부다. 왜 이 구락부에서 왜 남자만 모이는가 한다면 한 이유가 있다. 이 구락부 집 앞에는 큰 강 있어서 목욕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는 곳인데 이 점잖은 사람들이 여기만 나오면 옷들을 벗어버리고 목욕도 마음대로 하고 일부러 예모 밖에서 며칠씩 놀고 가는 것을 한 취미로 알고 여자는 여기 오는 것을 허락치 않는 것이다. 하여간 이 일은 아주 수월하고도 좋은 일이다. 온갖 술이 많고 사냥총을 마음대로 가지고 나가서 오리를 쏠 수 있고 배를 타고 나가서 생선을 잡을 수 있다. 이곳 일꾼은 바깥에서 허주락이 일하는 사람 하나와 집안에서 음식하고 집안 건사하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이 구락부 부원들은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매주일 나오지도 않다가 생각나면 한 사람 두 사람씩 나와서 한 이틀 동안 놀다 가는데 보통 우리 일꾼 둘이서 집을 보고 있게 된다. 이 일이 이같이 수월하기 때문에 월급은 다만 四十元 밖에 안 준다. 그러나 이 일을 나는 매우 좋아하는 것은 오리사냥 생선잡이 또 일이 수월하고 보통 아무도 없으니 내가 즉 주인과 같이 모든 자유로 온갖 스포츠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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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은 여류하여 이곳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상해에서 떠난 차이나호는 이살로매 양과 이준필씨를 담아 실어가지고 망망한 태평양에 사나운 파도를 헤치고 상항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눈앞에 어른어른하는 듯하다. 머나먼 수로에 수질들이나 안 하고 건강을 잘 보전하여 가지고 오는지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하여간 수일 후에는 배가 상항에 도착한다고 하니 나는 이대위 목사와 같이 선창에 나가 기다릴 생각을 하니 기쁘기 한량 없다. 항해법이 어떻게 신기하게 발달이 되었는지 이 배가 온다는 날 정말로 들어선다. 이대위 목사와 다른 약혼한 남자 몇과 나와 이 날에 선창에 미리 나가서 차이나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가라 정말로 배 한 척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선창으로 들어오는 거동이 매우 천천히 움직여 들어온다. 이 배에 선객들은 모두 다 선상에 올라와서 상항 부두를 바라보고 있는 그 중에 여자들도 섞여있을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 멀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희미하게 보이던 배가 순식간에 들어선다. 사진결혼 하기로 언약하고 찾아오는 신부를 맞으려고 여기 나와 기다리던 신랑 될 사람 우리들은 눈을 번쩍 들고 방금 선창에 들어와 서는 차이나호 선창을 바라다 보았다. 우리 신랑 될 사람들은 저만큼 자기와 사진결혼하려고 온 여자를 찾아보느라고 선창에 죽 올라와선 각국인 중에 섞여있는 대한 여자들 가운데서 나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를 찾느라고 안광에 힘을 여자들 서 있는 곳에다 주고 있다. 이대위 목사는 벌써 선상에 올라가서 남녀 동포와 악수를 교환하면서 통성명을 하신다. 이대위 목사께서 여기 이살로매 양과 이준필씨가 왔어요 하시면서 저기 저 사람이 방사겸씨라는 이외다고 이살로매 양에게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순간에 서로 상대하여 그 동안 상해에서 지내던 이야기와 또 배에서 고생하던 이야기를 서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면서 일년 동안이나 쌓아두었던 정세를 피차에 대강 쏟아버렸다. 그러나 어찌 서로 조용히 마주 앉아서 다정히 수문수답한 것만 같으랴. 이런 중에서도 이 사람들을 하륙을 시켜주지 않고 조그마한 종선에 다시 싣고 천사도 이민국 수감소로 데리고 가서 밤을 재우고 명일에 문답을 치른 후에야 내보낸다고 하여 우리 사진약혼한 일행은 다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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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은 천사도로 건너가서 약혼한 이살로매 양을 친히 만나서 데리고 상항으로 올 생각만 하여도 너무 즐거워서 잠도 잘 수 없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없고 오직 이살로매 양을 어서 만나는 것만이 정성이요 소망이었다. 이것은 진정에서 솟아나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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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천사도에 가서 약혼한 여자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신랑 될 사람들은 한 배를 타고 건너간다. 이 사람들은 윤응호 신달윤 홍재성 방사겸 이외에 시애틀에 있는 한 분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우리 넷만 갔었다. 벌써 이민국 문답을 다 치루고 눈병 검사까지 다 하고 해방이 되어 짐짝들을 가지고 오려고 배에 다 내어싣는 때에 우리 신랑들은 자기와 약혼한 여자를 데리고 상항으로 오는 종선에 올라갔다. 우리 사진약혼한 일행은 다 희색이 만면하여 약혼한 여자와 같이 앉아서 그 동안 서로 지내온 것을 수문수답을 하는 동안에 연애의 사랑은 오고가는 가운데에서 성혼 후에 금슬 좋게 잘 사는 가운데서 인간의 행락을 누려보자는 단꿈을 꾸면서 상항을 건너갔다. 여기에서 전차를 타고 윤혁씨 여관으로 오는 길은 산비탈로 올라가서는 내려가는 길인데 전차에 앉는 자리는 두 사람씩 앉는 자리가 아니고 기다란 벤치를 전차 우편에 만들어 놓은 여기 앉은 우리 두 사람은 올라갈 때도 한 데다 밀어놓고 내려갈 때도 한 데다 쓸려 미는 때에는 사랑스러운 몸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한 취미를 우리에게 더 주었다고 우리는 지금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까지 이러한 그때에 그 달던 취미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종종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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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관에 와서 처남의 투숙할 방을 얻어놓고는 우리 둘이는 서양여관으로 나와서 수일동안 지내면서 혼인 예식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나는 상항에 재한 한인구락부의 부원이므로 이 구락부에서 신부에게 금광석으로 만든 목에 거는 값진 패물을 선사하여 영광스럽게 받았고 또 혼인잔치를 훌륭히 하여 준 것 영원히 잊지 않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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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千九百十六年 三月 十八日은 방사겸 이살로매 양인이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예식을 내외국 친구가 구름같이 모인 앞에서 이대위 목사 주례 하에서 홍재성씨 부부와 같이 더블 웨딩 쌍둥이 혼례식을 필하고 나서는 각각 자동차를 타고 우리 구락부에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놓은 혼례연에 들어가서 내외국 친구의 축복하여 주시는 예를 받고 만찬을 풍성히 차려놓은 화려 찬란하게 꽃으로 단장한 식당으로 들어가 앉았다. 우리 신랑 신부를 위하여 모인 오, 륙십명 내외국 친구들은 우리 혼례식에 내참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며 또 우리 구락부 부원께서들 이와 같이 우리를 위하여 잔치를 성대히 배설하여 주신 것 감사하다고 간단한 말을 몇 마디 하고 나는 신부 이살로매 양과 상머리에 마주 앉아서 신부를 한번 건너다 보았다. 아무리 잘못 생긴 여자라도 혼례 하는 날은 찬란한 옷을 입고 분세수하고 향수 뿌리고 보면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 하물며 본시 얌전한 여자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아름다울 것은 물론이다. 나는 나와 혼례를 거행하는 이살로매 양을 바라볼 때에 아름답고 얌전하여 보여서 만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신부 옆에 앉은 여인들은 신부와 웨딩 케잌을 베서 신랑에게 보내라고 소곤거린다. 신부는 이 말을 듣고 케잌 한 자박을 큼직이 베어서 나에게 보내고 나도 신부에게 이 웨딩 케잌을 한 자박 베어 보내었다. 이같이 하고는 여러 손님에게도 한 자박씩 베어 돌리고 나니 온갖 음식이 들어온 후에는 이대위 목사의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여 주시는 기도가 끝난 후에는 우리 일반은 먹기를 시작하였다. 김승길 서례순 양씨는 큰 사진틀을 가지고 와서 이 웨딩파티 전경을 박아간 뒤에는 음식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어떤 친구는 말하기를 신랑 신부는 즐거울 터이니 안 먹어도 좋다고 어떤 이는 오늘 저녁 이 연석은 신랑 신부의 대연이니 많이 먹어야 된다고 하여 잠시 청중을 웃기었다. 이러는 동안에 음식 먹기는 끝이 났고 지금은 여흥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성식씨의 우렁찬 창가와 한장호씨의 수심가는 본국에서 이왕 지내던 그 즐거운 풍속을 일반 청중에게 연상시켜 준다. 이와 같이 흥미있는 여흥이 끝난 뒤에 밤이 깊어서 다 산회하게 되는 때에 우리는 택시 자동차를 타고 호텔로 왔다. 이것이 혼례를 지나서 완전한 부부가 된 종막은 끝이 났다. 우리는 지금 신혼여행을 가려고 한다. 상항에서 한 수십 리 밖에 계신 이명호라는 친구가 자기 농장으로 놀러오라고 하여 우리는 이곳으로 나가 며칠 잘 놀고 온 것을 신혼여행이라고 한다. 아무렴 돈이 많은 사람은 신혼여행을 경치 좋은 외딴 데나 나이아가라폭포수를 찾아가든지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가든지 하와이 진주만의 와이키키로 가든지 쿠바 하바나나 멕시코나 남미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같은 데로 가서 상등호텔에서 있기가 싫도록 있다 오지마는 우리같이 간곤한 사람의 신혼여행은 친구의 농장에 가서 며칠 놀고 온 것을 우리는 만족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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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상항 윤혁씨 여관으로 들어와서 수주일 유하면서 살림할 집을 하나 얻어가지고 가구를 대강 장만하여 놓고는 신접살림을 시작하여 놓고 새 가정생활의 맛을 보고나가는 때에 한인 친구들은 매일 저녁에 찾아와서 놀고 간다. 나는 이와 같이 신랑의 행동으로 놀고만 있을 수 없다. 일을 구하여 돈을 좀 벌어야 부족한 살림에 도움이 되겠는 고로 일을 하나 얻어가서 한다. 월급이라야 매월 五十元 밖에 못 받는 것을 가지고 집 二十元 전기 가스값 고기 채소 쌀 등을 사다 먹기에 별로 남는 것이 없으니 이 일이나 하여 가지고서는 이번 장가 가느라고 친구에게 진 빚을 갚을 희망이 없다. 나에게 빚을 준 친구들은 빚을 받으려고 매일 저녁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신혼을 지난 친구를 찾아 놀러온 것이나 나의 여심에는 늘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차려 놓았던 살림살이하던 가구지등물을 윤혁씨 여관 뒤에다 처쟁여놓고 상항과 포틀랜드 중간쯤 되는 새스터 산상에 목재회사 주인의 집에 쿡을 얻어가게 되었다. 이 목재회사 주인의 이름은 모첸순이라는 인데 큰 자본가라고 한다. 자식도 없고 다른 일꾼도 없다. 나는 상항에서 이 사람이 사주는 풀맨 차표 두 장을 받아가지고 우리 부처는 새스터 산상에 과히 적지 않고 인구가 한 五, 六千명 사는 클래멘드폴이라는 타운에 가서 내니 벌써 주인의 통기를 받은 넘버밀 캠프 십장이 마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던 중에 우리를 보고 타고 가자고 한다. 여기에서 가는 곳은 넘버밀 캠프인데 주인의 집이 여기 있다고 한다. 가는 길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한 二十 마일 잘 된다고 한다. 캠프에 와서 주인의 집에 왔다. 주인 내외는 아직 상항에서 오지 않고 이 다음 차를 타고 오늘밤에야 온다고 한다. 우리는 주인도 없는 빈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우리 마음대로 잘 하여 먹고 주방을 다 잘 치우고 이럭저럭 몇 시간 있노라니 주인 내외가 들어온다. 자기들은 저녁을 클래몬트에서 사 먹고 왔다고 저녁 할 생각 말라고 하면서 우리의 거처할 곳을 지시한다. 자동차 두는 집 윗층인데 방이 두 칸이요 매우 정결하여 보인다. 우리는 고단하여 누워 잤다. 우리가 이 일 얻어가지고 올 때에 내 아내 되는 사람은 본국에서 온 지가 며칠 되지 않아서 영어도 못하고 이 나라일도 모르니 일을 안 하고 월급도 원치 않고 내가 온갖 일을 다 할 터이며 내 아내 되는 사람은 나나 도와주고 얻어먹기로 하고 온 것이므로 내가 음식을 하고 집 건사하는 모든 일을 하게 된다. 이 집 주인 남자는 좋은 사람이나 여주인은 잔말이 많고 심술궂은 아주 염병쟁이가 되어 암만 음식을 맛있게 하고 집을 정결하게 잘하여도 만족히 여기지 않고 책만 잡으려고 하니 나는 성가시고 견디기 곤란하다. 내 아내는 일 안 하기로 약조를 하고 왔는데 자기 자는 방을 청결하라고 불러 올린다. 그래서 올라가서 방도 쓸고 잔 침상도 다시 차려놓는 일을 매일 하게 된다. 하루는 여인의 방을 다 청결하고 내려와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데 올라오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내 되는 사람이 올라가니 침상 위에 덮은 가느다란 망사같이 잔스프레드가 한 쪽에 주름살 잡혀서 보기 싫다고 다시 하라 하여 주름살 잡힌 데를 바로 잡는 것을 훌쩍 벗겨 치우고 다시 펴라고 하기와 또 제 방에는 장작불을 피우는 고로 장작을 올려오라고 매일 사, 오차씩 명령한다. 하루는 종일 피울 장작을 올려다 보기 좋게 담아놓는데 쌓아놓고 내려와서 음식을 만드느라고 분주히 지내는데 나를 불러올리기에 올라갔더니 장작을 도로 마당으로 내려가라고 명령을 하니 빈자소인이라고 주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서 다시 마당으로 사, 오차 안아다 놓았다. 산골이요 겨울인즉 춥기 한량없는 때다. 그러니 소나무 장작이 오래 붙지 않고 화약같이 빨리 타버리게 된다. 한 시간 후 좀 되어 나를 불러 장작을 올려 오라고 한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골이 바싹 나서 이와 같이 한시도 못 되어 다시 가져오랄 것을 왜 내가라고 하였는가 하고 한번 대들었다. 나는 윗층에 장작 나르기에 다른 일 할 여가도 없고 성가시기 짝이 없으니 나는 더 견딜 수 없고 이 일을 그만 두고 상항으로 다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불쾌하게 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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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지난 두 주일이요 벌어놓은 돈은 한 二十五元 가량쯤 되는데 주인 여인이 극성 극악하여 사람으로서는 더 견딜 수 없으니 어찌 하면 좋을까. 지금 일을 그만 두고 보면 우리 둘이 이 곳까지 온 풀맨 차비가 六十元인데 일하여 벌어놓은 돈은 二十五元에서 안 되니 갈 수도 없는 사정이요 또 곤란한 것 한 가지는 이 곳에서 화차 탈 클래멘드폴까지 나가자면 이 주인의 힘을 빌지 않고는 우리의 짐짝을 옮겨갈 수도 없는 사정인즉 할 수 있는대로 참고 참아서 갈 노비도 넉넉히 변통해야 되겠고 짐짝 옮겨갈 것에 주인의 힘을 빌게 되므로 참고 견디려고 하였다. 하루는 주인 여인이 극성을 하는 중에도 더하여 이젠 별 수가 없고 일을 그만 두고 걸어서라도 가야 되겠다 하고 주인 여인 방에 올라가서 나는 당신의 성미를 맞출 수 없어 일을 그만 두고 간다고 나는 불쾌하게 말을 하고 우리 숙소로 와서 행장을 다 수습하여 놓고 다시 주인 여인을 찾아가서 우리는 지금 갈 터이니 그 동안 일한 월급을 회계하여 달라고 하니 주인 여인은 시악을 부리며 월급 줄 것이 없고 아직도 두어 주일 더 있어야 이 곳 온 차비가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차비를 물지 않고 일한 월급을 줘야만 갈 수 있다고 골이 나서 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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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남자는 일주일 전에 상항으로 가서 아직 오지 않고 여인 혼자 있는 때에 이러한 야단이 났다. 여인이 스스로 생각하여 볼지라도 자기가 너무 극성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을 그만 두고 가는 것을 양심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스스로 나를 무서워한다. 나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남버밀에 십장을 시켜서 우리 짐짝과 우리를 클래멘드폴까지 마차로 실어다 주라고 하였다. 나의 월급도 십장한테 이십오원을 찾아가지고 포틀랜드로 오는 화차를 타고 한 八時 동안만에 포틀랜드에 와 내렸다. 수중에 있다는 돈은 한 칠, 팔십 전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여관에 찾아가서 트렁크 두 짝 찾을 표를 여관 주인과 찾아다 두고 방 한 칸을 외상으로 달라 하니 방 한 칸을 준다. 그 다음에는 일인 찬관으로 가서 수중에 있는 것 가지고 가서 우선 밥을 사서 잘 먹었다. 우리는 이곳에 일찍 왔었기 때문에 아직도 아침 八時에서 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청년회로 달려가서 무슨 일이든지 얻어 보려고 갔었는데 마침 학생클럽을 청결하는 일 한 자리가 청년회관 칠판에 써 있는 것을 보고 달라고 하여 가지고 가서 한 열시 가량하여 한 五元 벌어 가지고 이곳 신문에다 원하는 일에 광고를 내고 한 三元 남는 것을 가지고 여관으로 와서 아내와 같이 일인 찬관에 또 가서 저녁을 잘 사먹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광고를 보고 일을 오라고 한 편지 두 장이 벌써 왔다. 그래서 이 편지를 가지고 찾아가서 일자리 형편을 물어보니 음식 만들고 식당과 객실에 매일 먼지 치우고 오후에는 마당과 꽃밭에 물주고 한 주일에 한번씩 빨래 하라는 여러 가지를 해야만 한 달에 五十元을 받는 일인데 아내는 일을 안 하고 내가 다 하기로 약조를 하고 왔었다. 이 집주인의 이름은 크립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목재회사 주인인데 큰 부자라 한다. 부인은 후처요 아주 젊었으며 전처의 장성한 아들이 있어서 이 후처와 늘 불화하게 지내는 불행한 가정이다. 주인공은 가용에 쓰는 돈을 매월 한정을 하여 놓고 부인을 주면 이 부인은 먹고 가용에 쓰라고 이 한정하여 준 돈을 옷 사고 갓 사기에 거의 다 쓰고는 먹는 것을 줄이니 세 끼에 먹을 것이 한 어려운 노동자의 먹는 것만도 못하니 일꾼과 식구가 다 불만족하여 일꾼은 오래 있지 않고 식구는 더욱이 불평을 가지게 된다. 나의 아내 되는 사람은 벌써 태기가 있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가운데 이 집 형편이 이러하니 더욱 먹지 못할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집에 한 달 동안 있는 동안에 상항(샌프란시스코) 어떤 친구에게 돈 三百元 청구한 일이 있었는데 불원간 이 돈 三百元만 오면 이것을 가지고 한 자그마한 사업을 하여 보려고 경영하고 있는데 정말 이 친구가 三百元을 보내준다. 우리는 수일 후에 이 일을 그만 두고 이곳에서 타코마라는 항구처로 가는 화차표 두 장을 사 가지고 떠났다. 이 두 장 차표 값은 한 五十元 가량인데 나는 이 근방을 이왕에 와 보지 못하여 지금 가는 타코마 항구 형편도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인데 화차에 앉아서 화차가 멎는 곳마다 내려다보고 타운이 크고 좋아 보이면 적어 두었다. 센추랠리아라는 타운 한 一萬명 인구를 가진 남버밀 타운인데 포틀랜드와 씨애틀 꼭 중간에 놓인 타운이요 화차마다 여기 와서 반 시간 동안을 점심 참하는 곳인데 우리가 토요일 저녁 때 여기 와 멎었다. 이 정거장에 내리면 이 타운 사업 중심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타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각양 사업이 흥성하여 보이는 것은 사람이 북적북적 들끓는 것을 보았다. 어쩐지 나의 생각이 타운에서 무엇을 하나 시작하면 잘 될 줄로 믿고 이 타운을 책에 적어 두었다. 화차는 벌써 가려고 움직인다. 하여간 우리는 타코마까지 가는 차표를 샀으니 여기까지 가보고 보기에 이곳 센추릴니아만 못하여 보이면 이곳으로 즉시 회정하기로 하고 타코마까지 가서 시가를 한번 돌아보았다. 일인의 전방은 전좌우에 총총히 들어섰고 길에 내왕하는 일인은 이루 다 계산할 수 없이 많다. 이같이 동양인이 많은 데서 나의 총자본 三百元 가지고서는 이 사람들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은 사실인즉 동양인 없는 외딴 곳에 가서 무호동정에 이작호 모양으로 지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즉시 센추릴니아로 돌아섰다. 센추릴니아는 이 근방 넘버밀 많기로 유명한 타운이라 한다. 나는 화차에서 내려서 집 거간을 찾아가서 음식점 낼 만한 빈 전방을 구한다고 하니 마침 정거장 맞은편에 전방 하나가 비었으니 가서 보고 알게 하라 하기로 가보았다. 이것은 천우신조로 내가 원하는 좌처와 전방이다. 전방에는 주방과 식당 사이를 막았고 주방에는 씽크 그릇 씻을 데를 다 만들어놓고 위에 방이 네 칸이 있으니 윗층에서 자고 아래층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여간 편리치 않을 것을 생각하니 우리에게 운수가 오는 듯도 하고 우리의 장래가 여기에서 기초가 되는 듯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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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에 있다는 자본은 불과 三百元에서 더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크든 적든지 간에 찬관 전부를 차려놓고 찬관에서 쓸 온갖 식물 등을 사다가 영업을 개시하자면 이 三百元 자본이 어림도 없이 부족할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고로 찬관 기구는 이곳 색컨핸 전방에 가서 찬관에 차려놓을 전부를 五百元 가량 좀 되는 것을 一百元만 우선 금을 주고 여재 四百元은 매월 五十元씩 갚기로 하고 다 갖다 놓았다. 이제는 식물을 좀 외상으로 얻으면 되겠는데 이 식물은 동양인 일인이나 청인의 전방에 가야만 현금이나 외상이나 살 수 있기로 나는 포틀랜드에서 크게 동양식물을 파는 푸루야라 하는 전방을 찾아가서 센추릴니아에 청찬관을 시작하였으니 외상으로 물건을 좀 줄 수 있는가 물어보니 준다고 하면서 무엇을 원하는가 묻는다. 그래서 나는 간장 열 통과 마른 밀국수 二十상자 한 상자에 二十五근 티팟 二十四개 참대 젓갈 一百쌍 티 五十근 참깨 열근 백미 二百근 국수 담을 사발 五十개 티잔 五十개 사탕 一百근 우리 먹을 반찬 좀 사고보니 一百五十元 어치가 잘 된다. 이만 좀 사 놓고는 돌아왔다. 아내 되는 사람은 하루 동안 혼자서 겁이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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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식의 격언인 호사다마라고 한 말과 같이 나는 남에게 三百元의 적은 자본을 취하여 가지고 여기 와서 나의 경영이 이만 좀 잘 진행이 되는 가운데 이것을 방해하는 운동이 이곳 동중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오늘 발견하게 되었으니 나의 경영하고 시작한 사업이 어찌 되겠는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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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전에 포틀랜드에 물건을 사러 갔다 돌아오니 이곳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나를 이곳 있지 말고 당장에 걷어가지고 떠나가라고 위협하는 편지를 써다가 우리 전방 문틈으로 들여 들이고 간 것을 나는 오늘 발견하였는데 이 위협서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 타운에서 동양인 청인이나 일인은 받지 않는데 너는 왜 이곳에 와서 사업을 시작하는가. 수일 내로 걷어가지 않으면 네 생명이 위태하리니 빨리 걷어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 위협서를 받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이곳 시정청에 가서 사연을 설명하고 보호를 청구하였다. 이곳 시장은 나에게 염려말고 사업을 개하라고 하면서 이곳 경찰이 보호하여 준다고 한다. 지금 너를 가라고 위협하는 것은 이 타운 사람 전부가 아니고 찬관업 하는 몇몇 소수 분자들이니 염려할 것 없다고 일러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좀 정돈되고 희망을 다시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불상사가 애당초에 없던 것만이야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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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주인은 볼 데 없는 유태국 사람인데 이 집주인한테도 동일한 위협서를 보낸 것을 가지고 집주인은 나를 찾아와서 나와 걱정을 한다. 그러나 나를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은 내가 이 집을 五年 계약을 하고 얻은 고로 五年 前에는 집주인도 아무 권리가 없다. 제二次의 위협서를 오늘 아침에 또 받았는데 이번 온 위협서는 보기부터 끔찍하다. 사람의 염통을 붉은 물감으로 그리고 칼 두 개를 염통을 찔러놓은 그림 밑에 위협하는 말을 더욱이 강경하게 하여서 나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위협서를 가지고 시장을 다시 찾아가서 이것을 보이고 보호하여 주기를 청한즉 아무 걱정 말고 사업을 어서 개시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돌아와서 잠시 동안 나의 이러한 형편을 한참 생각하다가 별 수가 없이 이미 시작한 사업은 나의 생명선이니 이 시작한 것을 걷어치우고 갈 수도 없으니 이 사업을 이곳에서 하다가 차라리 이 사람들에게 맞아죽는다 할지라도 갈 수는 없다고 결단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타운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나를 배척하지마는 넘버밀에서 노동하는 일꾼들은 이런 음식점을 시작한 것을 대환영하고 많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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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신설한 찬관은 양찬은 도무지 없고 다만 국수와 칠리와 찹수이 이 세 가지만 파는데 커피도 샌드위치도 이런 것도 없다. 다만 국수와 찹수이 먹는 사람에게 티를 주는 것뿐이니 백인들 하는 양찬관에야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간혹 우리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있어서 음식을 먹고 나갈 때에 돈을 받으려고 따라 나가서 돈 받는데 서서 기다리면 가증스럽게 한번 웃고 나가고 만다. 그러나 나는 그냥 버려두고 돈 내고 가라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그냥 가게 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또 한 사람은 친구 여인을 데리고 매일 와서 국수를 시켜 먹고 간 다음에 그 방안을 보면 매번 물이 점벙하게 있다. 하루는 지켜서 보니 일부러 티를 쏟아버리고 국수국 남은 것을 버린다. 나는 이것을 보고 속이 상하고 분기가 발동되어 참기가 어려워서 한번 단단히 말하였다. 당신이 왜 사업하는 집에 와서 이와 같이 물점벙이를 매번 하오. 이것이 정당한 문명국 사람의 할 일이 아니고 위법인 줄을 당신이 왜 모르는가. 당신이 일행 이같이 행동을 할 것 같으면 당신 오는 것을 원치 않소 하였더니 불쾌히 대답하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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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사업 시작한 동안도 벌써 三삭이 잘 되었다. 이 동안에 사업이 흥성하여 수중에 한 삼사백 원 밀리였다. 이제는 상항에서 여러 친구에게 진 빚을 하나 둘씩 갚아 버려야 되겠다 하고 빚 준 사람의 성명을 차례로 적어 벽에 붙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과 또 채근하는 이런 사람의 돈은 먼저 갚기로 작정을 하고 첫줄에 적어놓았다가 먼저 갚기로 하였다. 내가 상항에서 약혼한 사람을 일년 동안 기다리는 동안에 빚진 것이 근 二千元인데 이것을 한 두 사람한테 취하여 쓰지 못하고 수십 명에게 취하여 썼으므로 매일 돈 채근하는 편지가 온다. 그래서 이 진 빚을 갚기 시작하였다. 오늘 상항으로 돈을 좀 부치려고 우체국에 가서 돈을 부치는 때에 이 돈을 받고 교환표를 써주는 이 사람이 눈에 마주친다. 그래서 당신 여기에서 일하는 줄 몰랐구려. 참 좋은 일 하시는구려. 이 일은 정부일이니 장구하고 좋은 일을 하시니 반갑소이다라고 내가 하는 이 말은 이 사람을 치하하면서도 부끄럽게 만들어 놓은 것인 줄을 이 사람도 알고 안색이 붉어지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하는 대답이 지금 사업이 어쩌냐고 묻는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매일 우리 찬관에 와서 국수를 사먹고 티와 국수국을 방바닥에 들이부어서 나를 무한이 성가시게 하던 불량배의 행위를 가진 사람이 우체국에서 상당한 일을 하는 것을 나는 오늘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이후로는 매일은 아니오나 그러나 종종 와서 국수를 사먹되 이왕 같이 나쁜 행동은 일절 없고 점잖은 신사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것이 피차에 다행이라고 나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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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온 지도 벌써 칠개월이 잘 되었다. 아내 되는 이는 산기가 임박하여 오늘 내일 몸을 풀게 되어 의사를 하나 약조하여 두고 간호하여 줄 여인 한 분을 말하여 두었는데 이 간호하여 주겠다고 하는 여인은 이 타운에서 방세를 놓아 생도를 하는 과부로 지내는데 청인의 음식을 좋아하여 자주 와서 돈을 상당히 쓰는 좋은 손님이요 또 동양 사람을 친절히 대우하는 한량 비슷하고 선드러진 한 사십세 된 여인인데 홍인종 피가 조금 섞인 이나 100%가 백인으로 되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새논이라고 하며 우리 내외에게 친절하게 구는 고로 나는 누이라고 하고 자기는 나를 부라더라고 불러주는 친분이 있다. 하루는 아내 되는 사람이 해산하려고 고통을 한다. 나는 빨리 새논 부인과 의사를 빨리 오라고 통기하고는 고통하는 옆에서 나는 협력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있는데 의사와 새논 부인이 왔다. 해산하기를 시작하여 근 세 시간 동안만에 첫딸 채숙이를 낳아 놓으니 나는 기쁘기 한량없는 것은 무한히 고통하던 아내가 순산하고 아이와 산모가 다 건강하기 때문이었다. 새논 부인은 매일 와서 아이와 산모를 간호하여 주로 나는 다시 사업을 열고 한다. 어언간 한 주일이 지나니 산모는 일어나 다니니 나는 더욱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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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쉼없이 달아나서 벌써 여기 온 지도 두 해가 잘 되었고 배척과 위협을 당하면서도 사업이 상당히 되어서 남에게 졌던 빚을 二千元 돈을 다 갚고도 한 六千元 잘 잡았다가 저 장가든 젊은 여자를 데리고 동포 한 분 없는 이같이 고적하고 또 배척하는 데서 양년을 바깥 구경도 잘 못하고 집안에서만 살게 되니 자연히 동포가 많이 사는 가주로 갈 생각이 안날 수 없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잘 되는 사업을 버리고 가는 수도 없다. 이것을 무슨 모양으로든지 팔아야겠는데 내가 여기 차려놓은 찬관은 백인에게는 소용 안 되고 다만 청인에게 가당하게 차려놓았는데 이곳은 동양인 배척하는 곳이 되어 청인이나 일인은 한 사람도 없으니 이 사업을 어떻게 청인에 팔 기회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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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무한히 도와주는 새논 부인은 종종 씨애틀에 간다. 이 부인은 어디를 가든지 청인의 찬관을 찾아서 음식을 사먹는 고로 청인을 많이 안다고 하기로 나는 이 부인한테 이렇게 부탁을 하였다. 누님 언제쯤 씨애틀에 가시렵니까. 이 부인 말이 오래지 않아서 가요 왜 무슨 부탁할 것 있나요 한다. 예 긴요한 부탁이 있어요. 누님도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지요. 우리는 가제혼인하고 여기 왔는데 지난 두 해 동안 집안에 갇히다시피 지내왔으니 이제는 동포가 많이 있는 가주로 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간절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잘 되는 찬관을 버리고는 갈 수 없고 팔아가지고야 가겠는데 이곳은 동양 사람이 없어서 이런 종류의 찬관은 동양인 외에는 살 사람이 없습니다고 말하고 부인께서 언제든지 청인의 집에 가서 음식을 사먹게 되면 청인한테 이렇게 말 한 마디만 하여주고 오시면 이 찬관을 오래지 않은 장래에 팔게 될 줄 믿고 이 부탁을 부인께 하나이다. 부탁할 말씀은 어디서든지 청인을 만나 말할 기회가 있으면 지금 센추랠리니아에 청찬관이 하나 있어 잘 되는데 이 사람은 가주로 가려고 이 잘되는 사업자리를 헐가로 팔겠다 하니 너희 가운데 누구나 사업을 경영하면 이것을 사서 하면 돈을 벌리라고 이같이 광고만 하여 두고 오면 응당 청인들이 와서 보고 살 사람이 있을 줄로 믿노라 하였더니 이 부인이 수일 후에 씨애틀에 물건 사러가서 나 말 한대로 하여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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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지난 양년 동안 일취월장하여 처음 잡았던 전방이 작아서 이 많이 찾아오는 손님이 다 용납하는 수 없어 이보다 좀 큰 전방으로 옮기어 몇 달 후에는 이 집도 적어서 다시 또 크고 좋은 집으로 옮겨갔다. 이곳 온 지 두 해 동안에 원근을 물론하고 우리의 음식이 먹을 만하다고 상당히 광고가 잘 되어서 딴 타운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또 이곳 교회에서 무슨 파티를 하게 되면 우리의 음식 국수나 칠리를 사다 쓰게 되고 이 교인들이 많이 내왕하여 우리 사업을 도와준다. 처음에는 우리를 가라고 배척과 위협하던 사람들도 그 동안 성이 삭고 배척하던 동기가 풀어져서 우리 집에 와서 음식도 먹고 서로 만나면 인사도 한다. 우리를 도와주는 새논 부인은 방 파는 사업을 하는 한량 같은 여인의 호텔에는 넘버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이 내왕하는데 이 사람들을 넘버잭이라 한다. 넘버잭이 이곳에는 많고 이 사람들은 돈을 잘 버는 고로 쓰기도 잘 쓴다. 이 근경에 각양 실업이 이 넘버잭을 빼내면 볼 것이 없고 유지하여 가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이러한 넘버잭은 새논 부인이 보내준다. 또 시정청이나 화재구급소나 또 소사이어티 부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돈만 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동정을 많이 하여주므로 우리를 아직 시기하고 미워하는 분자가 있을지라도 악행이나 악선전을 하여 나를 방해할 수 없이 되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보다 이 사람들의 입으로 친히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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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는 이곳 사람들이 미워하고 위협하고 가라고 배척하던 이 사람들이 지금은 따뜻한 동정과 위협하던 대신에 사랑하고 배척하던 그 사람들이 우리를 가지 말라고 간청하니 이것이 다 무슨 일인가? 나 스스로가 암만 생각하여 보아도 이 세상 사람의 인심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도 나는 이같이 생각하였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처음부터 나를 배척하는 이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양순한 태도로 당신들이 나를 죽여도 나는 항거할 권리와 힘이 없으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음식 먹고 돈 안내고 가는 사람도 그냥 두었고 방바닥에 일부러 티와 국수 국물을 들이부어 놓고 가는 것도 참고 견디어서 나를 위협하고 배척하는 이 사람들을 이기고 나서는 이 사람들 가운데서 동정하여 주는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어 가지고 작은 사업이나마 과거 이 년 동안에 이 사람들이 도와준 힘으로 돈 萬元이나 벌어놓았으니 이것이 어찌 다행이라고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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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나는 일을 분주히 하느라고 문 밖을 내다볼 여가가 없이 일만 하는데 아내 되는 사람이 저 문 밖에 어떤 동양사람이 우리 집을 유심히 건너다 보고 있다고 나에게 내다보라고 한다. 나도 내다본즉 정말로 청인 같이 보이는 사람이 우리 찬관을 정면적으로 건너다 본다. 얼마 동안이나 이 사람이 얼마 동안이나 지키고 보았는지 우리 찬관을 사려고 지금 지키고 보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집 손님들은 들어오는 사람 먹고 나가는 사람 연락부절이다. 이것을 조사하려고 지금 길 건너편에서 지키고 보는 청인의 생각에 우리 집 사업이 관계치 않게 잘 되는 줄 알게 될 것은 사실이라고 나는 혼자말로 이 사람이 우리 찬관을 사리라고 믿었더니 아닌 게 아니라 한참 있다가 슬쩍 길을 건너서 우리 집으로 건너와서 이 찬관을 판다고 하였는가 묻는다. 우리는 일에 너무 지쳐서 이 찬관을 팔아가지고 가주로 가서 좀 쉬려고 한다 한즉 값은 얼마를 부르는가 하기로 一千五百元에 오전 한 푼이 부족하여도 안 된다고 하였더니 一千五百元에 사기로 허락하면서 가지고 온 돈이 二百元 밖에 없으니 우선 이것을 지금 약조금으로 받으라고 자기는 지금 시애틀에 가서 돈을 가지고 와서 약조기와 문서를 만들자고 하고는 떠나갔다. 우리는 이 사람이 사겠다고 한 이 찬관을 배약하지 말고 돈을 가지고 와서 사기를 바란다. 아직 알 수 없으나 이 사람이 우리 찬관을 사게 되는 것은 새논 부인이 시애틀에 가서 청인한테 우리 찬관 광고를 하고 온 결과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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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후에 정말로 그 청인이 같이 할 다른 청인 하나와 돈을 가지고 와서 약조기를 만들자고 재촉하여 이곳에 아는 율사한테 가서 팔고 사는 두 사람의 사인을 하고 나는 一千三百元을 받아 가지고 와서는 찬관 전부를 산 사람에게 내맡기고 우리 부처는 가주로 갈 행리를 준비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 날 밤차를 타고 가주 삭도로 갈 차표 두 장을 벌써 사다놓고 우리 부처는 이곳에 와서 사귄 좋은 친구들을 찾아가서 이별을 고하는 때에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여러 분을 보았고 시정청에서 서기 노릇하는 미세스 리라는 부인은 우리 딸에게 금반지를 사다두었다 끼워주면서 이것으로 자기를 기억하라 한다. 새논 부인을 찾아가서 찬관을 팔게 된 것이 당신이 주선하여 주신 힘이니 우리는 백골난망이라고 하고 이별을 고하는 때에 피차의 헤어지는 정세를 진정으로 느끼고 낙루상별을 할 때에는 차마 인정으로는 피차간 떠나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생활을 자기가 해야만 되는 고로 생활할 곳으로 안갈 수 없는 고로 부득이 새논 부인과 마지못한 이별을 고하고 정거장으로 나와서 화차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에 차는 떠나려고 고동 한 번 길게 불고는 한 번 움직여 보고는 슬근슬근 굴러서 성 밖에 나가서는 빨리 굴러가는 화차 유리창을 내다보니 철로 연선에 드문드문 세운 전선대는 번쩍번쩍 지나가서 벌써 한 수백 리 나온 모양이다. 오! 나를 배척하고 위협하던 센추랠니아는 나와 인연이 깊고 평생에 잊지 못할 곳으로 지금 이 화차를 타고 가는 중에서도 생각이 일어난다. 이곳에서 맏딸 채숙이가 났고 이곳에서 자본을 만원 돈이나 잡았으며 또 이곳 새논 부인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났으므로 나는 이곳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한다. 화차는 벌써 포틀랜드에 왔다. 이곳도 나와 범연한 곳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전 만원이나 벌어가지고 가는 이것을 혼자서 경론하고 또 이것 꿈꾸던 이것을 이만큼이나마 성공하여 가지고 이곳을 오늘날 다시 지나게 되니 나는 이태 전에 이곳 크립스라는 사람의 집에서 한 달 동안 일을 하면서 오늘을 준비하고 있던 곳이어서 나는 이곳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옛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는 중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무슨 좋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듯하여 만족하고 즐거운 희망을 가지게 된다. 지금 센추릴니아에서 가주로 가는 것이 이 지옥세상을 떠나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이 즐겁기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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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는 떠나려고 기적 일성에 이 육중한 전체를 움직여 가지고 덜덜 굴러가니 오래지 않아서 새스터 산상에 도달하게 되었다. 새스터 산중은 팀벌린이 많고 또 온정과 약수가 땅에서 솟아오르는 곳인데 철로가 이 산상에 와서는 한 三十分 동안 정거하는 동안에 차 타고 오던 사람이 내려서 약수도 마음대로 마시고 한참 산보하다가 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떠나 한 수십 리를 가면 클래멘드폴이다. 이곳은 우리가 상항에서 혼인한 후에 모톈순이라는 사람의 집 일을 얻어가지고 와서 이 집 여인한테 비인정의 대우를 두 주일 동안이나 받은 그것을 다시 연상하게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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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에서 떠나 우리의 목적지인 가주 새크라멘토로 간다. 우리를 담아가지고 달아나는 남태평양 철로는 새스터 산곡을 벗어나서 평원광야에 다다랐다. 이 평원이 아마 샌노큐인 밸리라 하는 듯하다. 이 평원은 망망무진한 들인데 네바다 산곡에서 녹아내리는 눈 물을 이용하여 다 농사를 하여 오곡백과와 각종 채소가 풍성히 산출되는 샌노큐인 평원이요 이 평원 중앙에 들어가면 캘리포니아 수부인 새크라멘토 성이 있는데 이 성은 내가 그리 서투르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 잘 알게 되는 것은 대동보국회의 사명을 띠고 나는 이곳 와서 동지를 많이 만나서 대동보국회 지방회를 조직하고 잘 지내던 그 동지 가운데 가장 친절한 김홍균씨를 지금 찾아오는 중이다. 오래지 않아서 우리가 탄 화차가 이곳에 도달하여 김홍균 동지를 만나볼 생각을 하니 흉중에 급급한 생각이 발동되어 일각이 여삼추같이 기다리게 된다. 쉼없이 달려가던 화차는 점점 속력은 줄어지고 고동을 연방 부는 것을 들으니 아마 새크라멘토에 거의 온 모양 같다. 화차는 삼 마일 바깥에서부터 들어오는 통기를 하느라고 고동을 자주 부는 것이다. 정거장은 벌써 우리 눈앞에 와 닥치니 화차는 정거장 공창에 벌써 들어와 서니 승객들은 짐짝을 가지고 내려서 대합실로 들어들 가는 뒤를 따라서 우리도 들어갔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분 동안 머물러 가지고 자동차를 잡아타고 김홍균 동지의 댁을 찾아가서 반가이 만나 그 동안 피차간 쌓아두었던 회포를 설파하고 난 뒤에 가주에 계신 일반 동포의 정형과 각양 사업의 형편을 말하는 가운데 김승길씨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나 물어보니 지금 김씨는 매리스빌 이라는 곳에서 찬관 사업을 잘 한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는 어쩐지 이 사람 있는 곳을 가고 싶다. 그러나 이 친구를 찾아왔다. 며칠 놀다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곧 떠날 수는 없는 형편이 되어서 수삼 일 후에 가려고 혼자 작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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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홍균 동지도 삼년 전에 평양여자 김석은 양과 사진혼인하여 어린 자녀를 낳아가지고 사는데 그 부인되는 분은 자기 남편과 절친한 친구인 줄은 알면서도 별로 반가워하는 것도 없고 정다운 표정이라고 반 푼어치도 없고 그 사치고 산뜻한 태도와 교제는 멀리서 찾아온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것보다 우리가 왜 여기를 찾았을까 하는 감을 주게 되어서 나의 아내 되는 사람은 어서 여기에서 떠나자고 한다. 지금 이 부인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냉랭한 대우를 하는 것을 섭섭히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까닭을 연구하여 보는 것이 필요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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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씨도 장가든 뒤에 남에게 돈도 취하였었고 어렵게 지내었다. 그 동안 이곳 은행가 집에 가서 일을 하고 지내었다. 사람은 진실하고 행위는 단정한 사람인 고로 이 은행가가 자기 전토 수백 에이커를 주어 콩농사를 한 해 시켜보았는데 그때는 一千九百十七年이다. 제일차세계전쟁이 구주에서 일어나서 각양 시세가 올라가게 된 때에 콩값도 올라가서 이 김홍균씨가 한 三萬元 그 해에 주인 덕으로 잡아가지고 그 이듬해 一千九百十八年에는 콩농사도 하고 또 헤이를 많이 심었다. 이 헤이를 가을에 베서 밭에서 말릴 때에 불장마가 나서 다 썩어버리고 다시 간곤하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말하려고 하는 것은 둘째 해에 헤이 농사에 실패한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첫해 콩농사에 큰 돈을 잡은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때에 실패한 것까지 연달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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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씨가 첫해에 콩농사에 한 三萬元 잡았다는 소식이 우리 한인에게 전파가 되어서 이 분과 조금이라도 친분 있다는 사람은 연달아 찾아와 돈을 취하여 달라는 것을 이 부인이 잘 알게 되는 가운데 내가 아내와 어린애를 데리고 와서 자기 집에서 유숙하고 있으니 또 돈이나 취하여 가려고 왔는가 생각하고 우리에게 이와 같이 냉랭한 태도를 가진다고 우리는 노여워하지 않고 우리도 우리의 경영을 위하여 이곳을 속히 떠나야 하겠다 하고 나는 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그 이튿날 매리스빌 김승길씨를 찾아갔다. 김씨는 두 해만에 상봉하니 퍽 반가워한다. 나도 반가웠다. 이태 전에 내가 중매하여 장가를 든 김씨는 그 동안 아들을 낳아서 잘 기르고 사진혼인한 부인과 화락한 가정생활을 하고 사는 것 내가 친히 볼 때에 더욱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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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길씨는 자 사겸씨가 가주로 다시 오셨으니 무슨 사업을 경영하시오 내 찬관 윗층 호텔이나 사서 하여 보시지요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는 심중에서 만족한 생각이 일어나서 윗층 호텔을 사라고 하시니 그 호텔에 차려놓은 것이 어떠하고 또 무슨 관계로 팔려고 하나요 물었다. 김씨 말이 방은 七十九칸이요 방마다 카펫을 다 깔고 괜찮게 차려놓았지요. 또 팔려는 이유는 자기 남편은 이 맞은편에서 식물상점을 크게 하는 日人이요 이 사람의 아내 日女가 하다가 지금 병이 나서 팔아치우고 치료하려고 한다 합니다. 집세는 매월 七十五元씩이라고 또 리스 계약 기한은 아직 두 해가 남았다 합니다. 하여간 내가 사겸씨를 모시고 올라가서 주인과 이야기하여 봅시다 나는 지금 점심 때가 되여 좀 분주하니 한 시간만 기다리면 같이 가게 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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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갑갑하여 한 시간 동안을 기다릴 수 없어서 나는 혼자 호텔에 올라갔다. 한 젊은 일녀가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이 아마 주인인 듯하여 인사를 하고 이 호텔을 판다고 하니 정말인가 물으니 정말 팔겠다고 하기에 값은 얼마냐고 물었다. 一千五百元이라고 말한다. 나는 사천원이라도 흡족하여 사겠는데 一千五百元이라니 값이 매우 싼 줄로 알고 당장에 선금 五百元을 걸고 영수증을 받았다. 명일에 一千元을 마저 주고는 내가 관할하기로 하고 명일에 다시 보자고 하고 김승길 찬관에 내려왔다. 김씨는 일향 분주하게 일만 하니 내가 기다리지 않고 혼자 가서 교섭하여 사기로 작정한 것이 잘된 줄 안다. 김씨는 나에게 호텔에 올라가 보니 마음에 들더냐고 묻는다.
【원문】방사겸 평생일기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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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0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