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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겸 평생일기 ◈
◇ 방사겸 평생일기 (제4권) ◇
해설   목차 (총 : 7권)   서문     이전 4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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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1. 스탁을 샀다 실패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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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탁 형편이 이 모양 되니 하는 찬관사업도 잘 안 된다. 그래 집세를 六삭 동안 매월 四千元씩을 못물고 지냈다. 집 주인은 집세를 내라고 자주 와서 채근하기로 나의 스탁을 팔면 한 번에 다 물 것이니 아무 염려 말라 만일 내 말을 믿지 않거든 나하고 지금 은행에 가서 나의 八千여 元어치 스탁을 보여줄 터이니 가자 하고 데리고 가 보이었다. 수일 동안은 잠잠하더니 다시 와서 채근한다. 그러나 스탁에서 돈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 ●● 없으니 스탁 팔 때까지 참아 달라고 사정을 하나 듣지 않고 칸스테블을 불러서 나를 내보내기로 작정을 하고 나에게 아무 날은 옮겨가야 된다는 통지서가 왔다. 그러나 설마 내쫓기야 하랴 하고 여전히 사업을 하고 있었다. 벌써 집 주인은 나의 스탁 전부를 법률로 관할하였으니 내가 마음대로 팔 수도 없이 되었다. 이런 중에서 스탁은 매일 떨어져서 나의 자본은 얼마 남지 않고 은행에서 쓴 돈이나 가리게 되니 은행에서는 스탁을 빨리 팔아서 이 돈을 받으려고 성화같이 몰아대는 동시에 칸스테블은 트럭과 사람을 데리고 와서 찬관에 차려놓은 온갖 물건을 내다 트럭에 싣는 때에 순경도 같이 와서 그러나 나 보기에는 차이나타운이 우리 인류문명과 도덕에 적지 않은 방해를 안 준다고 안 할 수 없고 이것은 참 음부에 구혈이다. 남의 문명한 나라에 와서 껴서 살게 되는 것을 고맙게 생각지 않고 소재국 그 나라에 금법을 일부러 범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이런 비법으로 돈을 번다야 오래 가지 못할 줄 알고 우리는 차이나타운에서 하는 이런 종류에 끌리지 말고 정당한 사업을 경영할 것이요 일꾼은 노동력자의 생활을 만족히 여기자. 나는 한 노동자다. 노동은 나의 자본이다. 내가 노동력작 하면 여기서 사업을 할 만한 자본이 생겨서 무슨 사업이나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차이나타운을 구경하고 와서 왜 이런 말을 하랴. 우리 동포도 적지 않게 이 음부와 같은 곳에 와서 힘들여 번 돈을 청인의 노름판에 갖다 주는 것을 이곳서만이 아니고 각처 차이나타운 있는 곳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고로 연전에 내가 재미한인 경제상 곤란이라는 문제로 기사 한 장을 써서 신한민보에 기재한 가운데 우리 한인이 매회에 청인 노름판에 갖다 주는 돈이 수천원씩 되니 이것이 재미한인 경제 곤란에 한 부분을 주었다고 장황히 설명한 일도 있었다. 나는 이곳 타운 형편을 한번 돌아보고 김승길씨 찬관에 다시 찾아와서 김승길씨와 같이 김씨 댁을 심방하는 때에 김부인을 처음으로 상봉하게 되는 때에 김부인은 퍽 반가워한다. 이것은 내가 자기를 김씨한테 소개하여 준 중매인으로 아는 까닭이다. 김씨는 사업을 근실히 잘하여 살림도 풍족하게 잘 사는 모양 같고 부부간에 금슬도 있어 보이니 기쁘기 한량없다. 나를 위하여 준비한 만찬을 김씨 내외와 같이 앉아서 재미있게 나누고 나는 호텔로 와서 자고 이튿날 일녀를 만나서 호텔값 一千元을 마저 주고는 내가 관할하였다. 이 호텔에 일꾼 둘 있는데 쳄버 메이드 한 사람 또 밤에 방 팔고 집 보는 늙은 남자 한 사람인 이 일꾼들을 내가 다 그냥 쓰기로 하였다. 八十三 방이나 되는 방이 매일 부족하여 방 원하는 사람을 다 받지 못하게 되니 사업은 잘 되는 모양이기로 방값을 올리기로 작정하고 밤에 일하는 클럭한테 방 호수를 적어다 주면서 이 방에는 얼마를 받고 저 방에는 얼마를 받으라고 하니 이 클럭은 펄쩍 놀라면서 하는 말이 지금 새 주인이 와서 방세를 갑자기 올리면 손님이 다 떨어져 나가면 당신에게 큰 실패가 되겠으니 방세를 올리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주견대로 방세를 올리라고 하여서 올렸다. 五十錢 받던 방은 七十五錢으로 一元 받던 방은 一元 五十錢으로 다 고쳐 가지고 이같이 받으라고 하니 클럭은 응낙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며칠 안 되어 망하여 호텔 문을 닫는다고 예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클럭의 주견을 별로 신통하게 알지 않고 방방이 값을 올렸다. 이 八十三 방에 새로 올린 것이 매일 二十元 하나씩이 더 들어온다. 새로 방세를 올려서도 방은 매일 부족하니 무슨 실패니 망하느니 할 염려가 조금도 없는 것은 이 사람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인데 한 곳서 일한 자리를 마치면 사오십 원 혹 수백 원 벌어가지고 타운에 들어와서 먼저 잘 방부터 얻어놓고는 나가서 우선 술집에 들어가서 얼근히 취하여서 오는 길로 잡아놓은 방을 찾지 못하여 그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나는 종종 발견하게 되는 이런 형편인즉 방세를 좀 올렸어도 알 까닭도 없고 알더라도 술집에 갖다 주는 처지에서 방세 몇 각 더 주고 자는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는 줄로 나는 확실 알고 방세를 올린 것이 아무 영향을 주지 않고 여전히 잘 되니 다행인 줄 안다. 우리 호텔 밤 클럭은 이곳 순경으로 늙은인데 이 집에 여러 해를 있었다. 오늘부터는 새 주인 나의 말을 잘 순종하는 것은 나의 주대로 방세를 올린데 대하여 아무 영향이 없고 여전히 사업이 잘 되니 나를 한 사업가라고 보게 되는 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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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호텔을 한 일년 하여 몇 천원 잡았다. 이 근경 한인들은 나를 한 자본가라고 지목하게 된다. 나는 실상 이런 말을 듣기 원치 않는 것은 친구라는 친구들은 자꾸 찾아와서 돈을 취하여 달라는 것 성가셔서 견딜 수 없다. 하루는 평양 사람 변창수라는 친구 찾아왔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중마부로 자라서 동문수학도 하였고 내가 집에서 달아나 미국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하와이 이민배를 타고 와서 하와이에서 만났었고 또 하와이에서 내가 마침 미국으로 건너와서 내가 선비를 보내어 미국으로 온 친구인데 이 사람은 친구간에 앉아서 우스운 말하기는 좋은 사람이나 그러나 무주의 무사상하여 공부할 생각도 없고 일하여 돈 벌 생각이 없다. 그러나 어떤 친구가 술이나 찹수이를 사준다면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인들이 변창수를 변문이라고 별명을 주었다. 문이라는 문자는 모기 문자로 모기는 어디 붙든지 빨아먹는다는 뜻이니 이 변씨도 어떤 친구에 붙든지 얻어먹고야 만다는 의미로 변문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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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최창진이라는 사람 있는데 변창수와 본국서부터 친하게 지내었다 하면서 나와도 친절히 군다. 그러나 이 사람도 일하기 싫어하고 친구간에 한 잔 마시고 놀기 좋아하고 우스운 소리 잘하는 사람으로 성성한 눈을 일부러 감고 금일 경을 니리는 형용을 곧잘 하여 사람을 웃기기에 과히 용렬치 않고 신수도 잘 생긴 한량적 인물이라고 누가 보든지 할 만한 사람이 되어 이따위 친구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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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호텔 밑층에서 양찬관 하는 김승길씨는 자기가 하는 찬관을 나더러 사서 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호텔 때문에 이것까지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이 최장진이라는 사람이 와서 김승길 찬관이 큰 이익이 있으니 이것을 사서 같이 동사를 하자고 하면서 일은 자기가 다하고 나에게는 자본만 다 담당하라고 한다. 또 정동호라는 사람과 같이 삼인 동사를 하자고 이 찬관을 사라고 며칠 와서 조른다. 내 생각에 괜찮을 것 같아서 김승길씨의 찬관을 사서 이 두 사람에 맡기고는 매일 내려가서 문서와 물건 사는 것이나 보살피고 올라온다. 이럭저럭하여 한 달이 되어서 나는 문서책을 내어 놓고 월종셈을 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월급 매인이 一百五十元씩 내어주고도 남는 이익이 한 五百元 된다. 이 五百元은 三分파하여 셋이 나눠 먹을 것이니 내게 一百七, 八十元이 온다. 사업이 이만하면 괜찮다는 소문이 한인 가운데 전파되어 변창수가 찾아왔다. 당장에 하는 말이 사겸아 나도 벌어먹게 찬관 하나를 사달라고 조른다. 최창진은 누구며 변창수는 네게 어떠한 친구이기에 최는 도와주고 나는 안 도와줄 수 있나 하며 미녀풀 같이 바짝 달러 붙으니 떼어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허락을 안 한다. 이것은 이 사람의 자격이 무슨 사업에 적당치 않으니 내가 이 친구를 벌어먹으라고 수천 원 자본을 주는 것이 실상 이 사람을 도와주는 효력이 없고 내 자본만 버릴 것을 나는 아는 연고로 선뜻 대답을 안 하니 이 사람은 염치도 모르고 자꾸 툰다. 그래서 내가 만일 찬관을 사주면 네가 음식도 할 줄 모르고 또 무슨 사업을 하여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하겠는가? 변의 대답은 이삼룡이라는 한인이 양찬을 잘 하니 이 사람과 같이 동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허락을 하였다. 우리 호텔에서 두 블럭 상거되는데 청인 하던 찬관을 판다고 얻어듣고 와서 二千元에 사겠다고 하기로 사라고 하였더니 청인과 같이 나한테 와서 문서와 돈 받을 것을 서로 말하여 가지고 법률사한테 가서 법적으로 다 만들어놓고 나는 二千元을 주었다. 찬다람의에 물건을 사야 되겠고 또 수중 돈 백원이나 가지고야 사업을 하여 나가겠기로 또 二百元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가게 열어가지고 사업이 괜찮았다. 그러나 돈푼 수중에 들락날락하니 술잔 먹어도 자리가 안 날 줄 알고 둘이 다 술이 얼근히 취하여 가지고 사업을 하니 자연히 일도 잘 못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사업을 제대로 못하여 손님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니 수입은 매일 줄어들어나서 집세를 주지 못하게 형편이 되고 보니 자연 동사인끼리 티격태격하다가 최후에 싸우고 쿡은 갔으니 문을 닫고 변까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가 수주일 후에 설종석이라는 동포를 만나서 같이 동사한다고 와서 찬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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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운에 내 오기 전에는 동포가 수삼 인에 불과하더니 지금은 오고 가는 이가 많다. 그래서 우리 호텔 맞은편에 일인이 조그맣게 차려놓은 호텔을 사서 우리 식구도 살림하고 내왕하는 동포도 기숙하게 하였다. 지금은 유럽에 제일차세계전쟁이 한창 열리어서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는 때에 각양은 올라가서 집세가 삼, 사 갑절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하는 호텔을 매월 七十五元씩 주기로 하고 五年 계약한 이 집이 지금 시세로 말하면 매월 三百元 짜리가 잘 된다고 사업가들이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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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이 호텔을 이 기회에 팔아가지고 다른 사업을 할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팔 의향을 돌리었다. 하루는 어떤 일인이 와서 호텔을 팔겠나 묻기로 판다고 하였다. 값이 얼마인가 묻기로 八千元 현금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판다고 하니 이 일인이 일 년 전에 네가 一千五百元 준 것을 지금 八千元을 달라고 하니 값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일 년 전 집세와 오늘 집세가 얼마나 올라갔으며 노동자의 일공은 일년 전보다 갑절, 삼절이 되었은즉 나의 사업에 가격도 물가폭등을 따라서 올라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 호텔 집세 五年 계약한 것 이 七十五元이 지금 시세로 얻으려면 매월 三百元을 주고야 얻을 것을 七十五元에 이 사업자리를 얻으면 매달 二百二十五元씩이니 이익이 되는 이것을 五年으로 승을 하여 보면 이것이 一萬三千五百元이니 지금 내가 八千元 달라는 것이 실상 집세에서 얻는 이익도 못되는 것이니 어찌 많다고 할 수 있는가 라고 상업상 경위로 설명한즉 명일에 다시 와서 사고 안 살 것을 알게 하여주겠다고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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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 일인이 다시 와서 五百元만 낙가하여 달라고 하기로 내가 一萬元을 달라고 할 것을 八千元만 부른 것을 여기서 또 감하여 달라고 하니 지금 나는 八千元에도 팔 생각 없으니 다시는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아주 잘라서 말을 하고 말았다. 일인이 당신 너무 빡빡하구려 하기로 나는 파는 것은 꼭 정가를 부르고 사는 물건은 내가 원하면 값을 깎으려고 하지 않고 달라는 값을 다 주고 사서도 돈을 남기는 사람인 줄 알고 사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부르는 八千元을 주고 살 줄 알라고 하니 할 수 없이 八千元에 사기로 허락한다. 이 일인은 속히 이 사업을 제회를 만들려고 즉시 법률사한테 가서 법적으로 서약서를 만들자고 하여 같이 가서 다 만들어가지고 八千元 은행표를 받아가지고 와서 우리 개인의 소유물을 다 싸가지고 사무실에 나와서는 전부 열쇠를 다 주고 지금부터는 이 호텔이 당신의 것이라고 하고 우리는 나왔다. 지금은 조그만 호텔을 팔려고 주선 중인데 이 집 아래층에서 식물상점 하는 일인이 자기가 사겠다고 하여 五百元에 팔았다. 최장진과 동사하는 찬관은 나의 자본 들어간 것 二千五百元만 갚아주면 나는 이익분배에 간섭치 않겠으니 할 수 있으면 나의 자본 들어간 것을 변통하여 달라하였더니 이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수일내로 二千五百元을 변통하여 준다. 이것은 나에게 매월 수백 원씩 나눠주던 것을 안 주고 자기가 혼자 먹게 될 것을 알고 이같이 빨리 변통하여다 준 것인 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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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수를 벌어먹으라고 차려준 찬관은 이 사람이 할 줄도 모르고 술 마시기에 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나만 二千六, 七百元이 손해가 났다. 그러나 이곳 와서 一年 반 동안에 이럭저럭하여 한 천만 원이나 잡았으니 아직 운수가 나와 동심동력 동행하는 줄로 나는 확실히 믿고 이곳보다 좀 큰 타운 스탁톤으로 이거하여 갔다. 이곳은 청인 일인이 매리스별보다 더 많아서 동양인 거주지가 적지 않게 크다. 한인도 수백 명이 농장에 나가 일하고 한인 여관 이발소가 두 곳이 있고 이곳 소산은 각종 채소요 감자가 유명하게 잘 되는 곳이요 이곳서 감자 농사하는 일인 한 사람은 감자 농사에 큰 돈을 잡았다고 백인들이 감자왕이라는 별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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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곳서 무슨 사업을 시작하여 보려고 동양인 거주지에 사업할 처소를 구하러 다니는 중에 일인이 하는 큰 풀방을 팔겠다고 하는데 일인의 거주지에 있는데 다른 일인의 풀방들은 사람이 꽉 들어차서 복잡한데 이 집만 사람이 몇이 없어서 쓸쓸하여 보인다. 이 풀방은 남자가 없고 일녀가 주장하는데 집은 크고 좋으나 테이블도 몇 개 안 되고 한쪽에는 이발소를 차려 놓고 세를 주는 모양인 듯하다. 이 풀방사업이 잘 안 되어 팔려는 줄 알고도 이 사업을 一千五百元 현금을 주고 사서는 테이블도 몇 개 더 들여놓고 전방 앞을 보기 좋게 고치고 하는데 한 천여 원 들여서 확장하여 놓고 한쪽에 놓고 티 파는 데를 만들어 가지고 사업을 개시하였다. 내왕하는 손님들은 반수 이상이 묵국 노동자들인 이 사람들은 보통 무식하여 어린애 달래듯하면 좋아하는 고로 무엇을 잘못할지라도 나무라지 말고 내버려두면 다른 풀방에 가래도 안 가고 자꾸 찾아오는도다. 또 이 사람들은 잡기와 풀장난 하기를 좋아하여 농장에서 수십 원씩 벌어가지고 들어오면 풀방과 잡기집에 다 갖다 주고 부족이 되어 음식 사 먹을 돈도 없어서 배를 곯고 지나는 때가 많은 것을 나는 안다. 이 사람들이 정 배가 고프면 나한테 와서 커피와 우톨 한 十錢어치 외상으로 먹자고 한다. 나는 거절치 않고 외상으로 먹이고 또 방을 얻어야 되겠는데 방세가 없다고 사정하면 한 五十錢씩 취하여 주었다. 내가 이와 같이 먹이고 취하여 주는 것을 받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함으로 해 이 나라 사람 다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소문이 묵국 사람들에게 전파 잘 된 모양인지 이 사람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여 사업이 발전된다. 그러나 풀 테이블에서는 큰 이익이 없다. 담배와 소다와 수박 이런 것을 많이 팔아야 이가 있는데 이같이 하자면 우선 사람을 무슨 모양으로든지 많이 모아내야 된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소소한 외상을 주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같은 값이면 우리 집으로 저희의 동무도 보내고 저도 줄곧 찾아와서 다소간 돈을 쓰고 가니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사람이 더 많이 와서 흥성하게 잘 된다. 이런 것을 보는 우리 한인들은 방사겸 지금 수가 는다고들 하는 말을 듣고 나성에서 박동규라는 한인이 찾아와서 사업을 한참 보다가 팔지 않겠나 묻는다. 나는 누구든지 내가 달라는 값을 주면 팔지요 하였더니 얼마를 원하오. 七千五百元을 주면 팔겠다고 하였다. 박씨는 동사할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시 말하자고 하고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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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있다가 다른 두 한인과 같이 와서 한참 구경하고 앉았다가 셋이 다 나를 찾아와서 이 사업 매매할 말을 하다가 세 분이 다 가고 만다. 그래서 내 생각에 값이 많은 듯하여 안 사기로 하고 갔나 하였더니 한참 있다 다시 들어와서 七千五百元에 사겠다고 허락을 선선히 하면서 아는 율사가 있으면 가서 약조기를 만들고 돈을 찾으라고 한다. 우리는 율사한테 가서 사고 파는 문서를 다 만들어 놓고 七千五百元 은행표을 받고는 풀방을 박동규 일행에게 내어주고는 호텔에 나와 며칠 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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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과거 三年 동안에 활동사진 한번 구경을 못하고 주야로 사업하느라고 종일 일을 하고는 잔 것뿐이요 자고 나서는 또 일을 한 것뿐 이것을 우리 일생일대에 해야만 될 책임으로 알고 험한 일과 괴로운 일을 다 꾸준히 참고 나가서 三萬五千元이라는 소득을 지금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은 사물이요 이 사물을 한 사람만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고 돈이라는 물건은 오늘 이 사람에게 있다가 내일은 저 사람에게 가고 또 저 사람에게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마치 물레바퀴에 돈 한 푼을 달아 매고 바퀴를 돌린다면 이 매단 돈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이 지금 나에게 있는 三萬五千元이 얼마 동안이나 나와 같이 있겠는지 이것은 내가 지금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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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一千九百十八年에 벼농장을 스탁톤에서 작하였었는데 땅 일백 에이커를 매 에이커에 十五元씩 세를 주고 얻어서 밭 가운데 울 두 개를 파고 물을 재어 올리는 기계 두 채를 사다놓고 일꾼은 한 十五人 두어 가지고 벼농사를 시작하였는데 나는 농사에 아무 경험이 없으므로 벼농사에 경험 많은 사람을 두고 밭 갈고 씨 심어서 벼가 잘 되었다. 그래서 희망 많았다. 금년 봄까지 벼 一百근 한 부대에 시장 값이 十元씩 하였다. 가주 벼농사 매 에이커 소출은 一百五十석으로 三百석까지 추수한다고 하는 최하로 一百五十석을 매 에이커에 소출을 예산하고 있었다. 그러면 매 에이커에 一千五百元 가격에 벼를 추수한다면 이 일백 에이커에 총 벼값이 十五萬元이나 혹 二十五萬元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운수가 이 고개만 순순이 넘어가서 나의 예산에 들어맞게만 된다면 나도 한번 자본가가 된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구주전쟁에 종막 짓는 종전하였다는 소식이 각국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러한 보도는 세계전쟁에는 다행이나 지역 이 해에 벼농사한 사람에게는 대불행한 소식이라고 안 할 수 없었다. 이 정전된 소식이 나오자 각양 물화의 가격은 폭락되어 벼 한 부대에 十元 이상하던 것이 二, 三元에도 팔 수 없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공가는 아직 七, 八元씩 줘야만 농군을 얻어서 벼 추수를 하게 되어 예산을 하여 보니 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격으로 벼값보다 이 벼 추수할 일꾼에 대한 경비가 더 많게 되므로 밭에 있는 벼를 추수하지 않고 밭에 그냥 내버려두어 썩혀버리고 만 사람이 나 혼자뿐이 아니라 벼 심었던 사람은 다 동일하게 되었다. 이 해에 촌 타운 은행가들도 많이 결단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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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벼농장에 나의 자본 三萬五千元을 다 들여놓고 스탁톤에 이탈리아은행에 가서 크랍모게지를 잡히고 돈 五千元을 얻어 놓고 이 五千元으로 벼 추수할 경비를 예산하여 놓았다. 그러나 은행에서 내가 다른데 쓰는 것은 허락지 않고 오직 일꾼의 월급이나 추수하는데 쓰는 것만 허락한다. 그러나 구주전쟁이 정전조약을 하기로 양편에서 언론 할 때에 한 二千元 사유로 장차 용하려고 돌려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전조약이 성립되었다는 보도가 대서특서로 전국적 신문에 발표되어 온 천하가 다 알게 되었다. 각양 물종은 폭락되어 벼값도 여지가 없이 떨어져서 二, 三元에도 팔 수가 없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은행에 찾아가서 지금 벼값이 폭락하여서 지금 추수를 한대도 추수할 경비가 안 되겠으니 나는 추수할 생각이 없으니 당신 은행에서 다 맡아가지고 마음대로 하라고 내맡기고는 나의 자본 三萬五千元을 투자한 이 벼농장을 떠나서 맨티가로 왔었다. 이것이 나의 지난 三年 동안 노동력작으로 모아 놓았던 총자본을 여기서 최종에 실패를 당하고 나왔다. 그러나 크랍모게지로 은행에서 얻어놓았던 五千元 중에서 한 二千元 돌려놓았던 이 돈을 가지고 맨티카에 나와서 한동안 지낼 만한 형편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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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말에 피게죽에 탕도라고 나는 벼농장에 실패를 당하고 간신이 모게지 잡히고 얻은 돈에서 살아갈 장래를 위하여 한 二千元 돌려가지고 온 돈을 또 한인들이 무엇을 하자고 여러 사람이 내왕한다. 一千九百十八年에 이살음 김정진 김탁 임일 이 몇 사람들이 가주 상항에 대한인사회 개진당이라는 회를 조직하고 회원을 모집하는 때에 나도 개진당 회원이 되어서 중가주 단유바에서 사회개진당 대표대회를 여는데 나는 스탁톤 개진당 대표원으로 출석하게 되는 때에 사회 개진당 당수 이살음씨와 개진당 총무 김정진씨 이 두 분께서 내가 벼농장에 실패한 것을 위로와 동정을 하여 주시면서 우리 개진당 당원끼리 자본을 모아가지고 우리들에서 실과와 채소 건조회사를 세우면 이익이 있겠다고 나더러 할 수 있으면 한 五百元 내라하기로 五百元 허락하고 왔었다. 이 건조회사의 자본은 二萬元이나 그때 한인의 경제상 형편이 二萬元을 거두기에 힘이 부쳐서 간신히 五, 六千元 걷은 이 자본을 가지고 二, 三만 원에 실업을 시작하였으니 자연히 만여 원 근 이만 원 가량을 은행 모게지를 잡히고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二, 三삭 내에 이 사업이 은행의 소유가 되고 말았으니 또 내 돈 五百元이 결단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무 사업을 경영치 않고 한동안 이 조용한 맨티가에서 좀 쉬면서 정신 수습하기를 주장하고 있는 때 이곳에서 찬관하는 김경보라는 사람이 자본이 없을지라도 동사를 같이 하자고 하며 또 스탁톤에서 큰 풀방을 새로 사놓고 김승길씨가 같이 동사하자고 하는 것을 다 사양하고 한동안 쉬기로 작정하고 맨티카 촌에 나와 있는 때에 하루는 먹을 식물을 사려고 타운을 걸어가는데 어떤 자동차 타고 가던 사람이 나를 보고는 차를 멈추고 나와 포도 커팅자를 사람 한 십여 명 얻어줄 수 있는가 묻는다. 나는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좋다고 하면서 커팅자를 포도밭들은 우리 한 캠프에서 머지 않은 곳에 얻어놓았으니 내일부터 잘라 놓으면 자기가 큰 트럭을 보내어 실어간다고 하고 이 사람은 털락이라 하는 곳에 사는 고로 이곳으로 갔었다. 나는 이 사람과 모든 약속을 하고 한인촌에 와서 강천명 내외분 이 분의 백씨 김필권씨 염만석 변성욱이라는 학생 나 하여 七人이 커팅을 나가 자르기 시작하였다. 이 일은 일공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도급으로 내가 맡았는데 매 一百개 커팅을 잘라서 묶으면 七錢씩인데 부지런히 하면 매일 일백 단을 용이하게 자를 수가 있는 고로 매일 七, 八元씩 용이하게 벌 수가 있었다. 이 때는 겨울이 되어 농장에 일이 없는 때에 매일 七, 八元씩 벌게 되니 이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주인은 한 이, 삼일에 한번씩 와서 보고 갈 것 뿐이요 내가 이것을 적어두었다가 돈을 찾아 나눠주게 되니 나는 한 십장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 겨울에 이 일을 한 달 동안 잘하여 수백 원씩 벌었으며 이 커팅 일을 우리에게 준 사람은 세리앤 사람인데 실과농장에 경력이 많은 사람으로 빈 땅을 어디서나 헐즉이 사서 포도를 심어가지고 다시 댓가를 받고 파는 중상으로 큰 자본가이며 이 사람의 집은 털락 타운에 있고 우리가 지금 자르는 커팅을 심을 땅은 털락서 한 삼십 마일 상거되는 리빙스톤이라는 곳에 八百여 에이커 모래땅이요 또 봄철에 모래땅에 바람이 불어서 보통사람은 무엇이고 심을 생각을 못하고 내버려 두었던 땅을 매 에이커에 一, 二元씩 주고 사서 포도 심으려고 벌써 캠프를 짓고 밭을 잘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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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커팅을 한 달 안에 二百五十만 개 가량을 잘라주었는데 이것이면 넉넉하다고 더 자르지 말라고 하여 우리는 이 일을 그만 두었다. 주인이 나를 찾아와서 일을 잘 보아주었다고 二百元 하나를 나에게 준다. 또 나를 자기 농장에 와서 일꾼 한 二十명 먹이는 쿡간을 날더러 맡아 하면서 또 우리나라 사람을 한 二十명 대 달라고 하기로 응낙을 하고 우리 식구가 다 이 농장으로 나왔다. 이 농장은 지금 신개척 중이니 집이나 마방이나 내왕하는 도로가 보잘 것이 없고 캠프로 돌아가며 큰 나무 하나가 없으니 아무 경치가 없는 농촌이다. 그러나 일꾼들 밥먹는 식당과 주방은 큼직하고도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고 또 우리 식구가 살림할 집도 큼직하여 우리는 만족히 생각하고 한동안 있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내가 이 농장에 와서 일꾼들을 삼시 해 먹이는 일은 월급으로 작정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사업같이 매 명에 매일 一元 二十五錢씩을 주인한테 받기로 하고 나는 매일 三, 四時씩 일하고는 五元씩 받기로 주인과 약조를 하고 나가 있는 것이다. 일꾼 한 二十명 먹이는데 매월 三百元 하나가 잘 남는 것은 주인이 돼지와 닭을 많이 놓았는데 내가 건사하고 달걀은 내가 다 무료로 쓰고 한 주일에 한 수씩 돼지를 잡으면 내가 헐가로 다 사서 쓰니 이익이 만좀 난 것이다. 세리앤 사람은 유태국 사람의 성질과 품행이 비슷하여 상종하는 사람마다 삼가지 않으면 속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나에게는 후하고 또 인정을 많이 쓰는 고로 나는 이곳 와서 벌써 한 사천 원 벌어놓았다. 나는 지금 생각하기를 나를 배반하고 떠났던 운수라는 양반이 나를 다시 찾아온다고 혼자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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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장 八百여 에이커나 되는 빈 땅에 포도나무를 다 심어놓고 밭머리에는 무화과 복숭아 살구 앵두 온갖 과목을 수수만 주를 심어놓은 이 과목들 가운데 내 손으로 친히 심은 것도 적지 않았었다. 내가 이곳에 二, 三年만 더 있었던들 돈도 크게 잡았을 것이요 또 내 손으로 심은 실과 맛을 보았을 것을 나는 친구의 말을 믿고 이와 같은 복덕방을 떠나게 되었다. 이 문제를 마치지 않고 여기서 중지하는 것은 이 문제 전에 먼저 기록해야 될 사건 하나를 비어 놓았던 이것을 지금 기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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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벼농장에 실패를 당하고 맨티가에 나와 쉬는 동안에 어떤 동포의 소개로 콜닝가라 하는 곳에 기름광에 재니토 일을 얻어 갔었다. 이 기름광은 남태평양 철도회사의 소유 광산인데 한인들이 여러분이 와서 여러 처에서 재니토일을 하는데 나는 캠프 십일 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집 주고 땅에서 자연히 나오는 가스를 마음대로 쓰라고 거져주고 일공은 매일 七元씩 주는데 일이 아주 수월하여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매일 네 시 동안이면 다 할 수 있는데 일이라야 일꾼들 자는 집 다섯 채 십장의 사무소 한 칸 이것을 비로 한 번씩 쓸고 캠프에 널린 신문 자박지나 주어서 태우고 나무에 물이나 틀어놓으면 하루 일이 다 되는 것이다. 이곳 일이 이같이 수월하고 시간이 많기로 펜실베니아 스크린톤에 있는 세계적 통신학교에 편지하여 북킴빙 과정을 시작하여서 만 二年만에 마치었다. 이것이 이른바 꿩먹고 알까지 먹는다는 격으로 일하여 돈벌고 또 공부까지 할 기회가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미국 와서 노동 파공이라는 말은 신문지상으로는 자주 들었으나 이와 같이 내 몸으로 친히 당하고 내 눈으로 이와 같이 위험한 것을 친히 보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노동자들이 파공하는 이유는 유럽전쟁이 종결된 그 원인으로 전쟁 때에 주던 월에서 매일 퍼센트로 회사에서 낮춘다는 것을 항거하기 위하여 동맹파공을 시작한 것인데 이 기름광에서 일하던 전부 노동자는 일을 중지하고 캠프를 떠나서 콜닝가 타운에 수만 명이 들어 모이어 가지고 매일 회이 돌아 사방 하이웨이에 나가서 회사 트럭이나 사무원들 타고 내왕하는 것을 파상 휴힐란하는 행동과 또 캠프 안에 여기저기 있는 기름 저장소를 폭탄으로 파고 휴충화 시켜서 수수백만 원의 손해를 주는 행동과 또 캠프 안에 있는 회사 사무원과 쿡과 재니토는 저희와 같이 파공을 안 하고 캠프 안에 그냥 있어서 월급을 받고 이것이 원수같이 미워서 깊은 밤에 숨어 들어와서 잡아다가 난타하는 고로 캠프마다 높은 곳에 활동하는 광명등을 배치하고 사방을 비추고 있다. 또 별순검도 많이 와서 수상지인을 검사 혹 조사하므로 파공자들이 별 수가 없어서 파공자들은 이와 같이 오래 계속할 수 없음을 알고 회사를 교섭하여 월급을 감하여 받고라도 다시 와 일을 하겠다고 하는 고로 회사측에서 다시 와 일하라고 하여서 이 파공자들이 만 육삭 동안 손해본 금액이 여백만 원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 파공을 안 하고 캠프에 있던 사람은 육삭 동안 일도 안 하고 월급은 그냥 받아먹고 상당한 보호 속에서 잘 지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매일 七元 받던 것을 六元씩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五, 六삭 지내서 회사측에서 월급을 또 一元씩 감한다고 광고를 한다 하기로 이젠 이 일도 물이 낡아가는구나 하고 이 일을 설종석이란 동포에게 소개하고 우리는 떠나서 맨티가에 와 있다가 서리앤 사람 애스터리앤이라는 사람의 커팅을 잘라주고 포도 심는 일까지 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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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부터는 이 좋은 농장을 떠나게 된 이유는 옛날에 대동보국회 때부터 좋은 동지로 수십년 동안 동고동락을 같이 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 나와 백년해로를 하는 아내를 나에게 소개하여 준 친구인 유홍도씨라는 분이 싸우드밴이라는 곳에 농장을 사 놓고는 그 타운 안에 한인이 차려놓은 청찬관에 와서 일을 하는 때에 나한테 편지하기를 자기가 四十 에이커 농장을 사서 놓은 가운데 닭이 있어 알을 낳아도 누가 주어다 먹을 사람이 없고 소가 있어도 소젖 짜서 먹을 사람이 없고 온갖 실과가 익어서 떨어질지라도 따 들여다 먹을 사람이 없으니 四兼氏가 이곳 와서 농장에서 식구를 안돈시키고 타운 안에서 무슨 사업을 경영하면 가주에 있는 것보다 나을 터이니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며칠 두고 생각을 하여본 결과가 유홍도씨의 말을 믿고 이 좋은 일을 그만 두고 가기로 작정하고 주인한테 이 일을 그만 두고 싸우드밴으로 가겠다 하니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이해를 설명하여 준다. 그러나 이미 가기로 작정한 나에게 이런 설명이 나를 머물러 다시 앉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주인은 자기의 권고를 내가 듣지 않는다고 좀 불쾌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면서 내가 싸우드밴에 가서는 이곳을 떠난 것을 후회하리라고 예언까지 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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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농장에서 떠나 적지 않게 먼 사우드밴에 있는 유홍도씨를 찾아왔다. 유홍도씨는 이곳 한인의 주식으로 차려놓은 청찬관에서 쿡을 하고 있다. 이 찬관하는 사람들은 전부가 다 국민회 사람들인데 수천 리 원정에 찾아간 나를 보고 그리 반가와 하지도 않고 보통의 동포애라는 것도 이 사람들의 교제나 언어 행동에서 찾아볼 수도 없고 아주 냉랭한 태도와 교만방자한 거동이 첫날 이 사람의 비위를 건드리고 마음을 불안케 한다. 그러나 찬관 윗층에 빈 방이 있는 여기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유홍도씨는 자기 농장 조진환이라는 국민회 사람한테 일년 계약하고 그 농장을 세를 주었다. 일이 이와 같이 되므로 나의 경영하고 찾아온 경영은 벌써 실패도지하였은즉 내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하고 이튿날 나 혼자서 시카고를 들어가서 사업을 차려놓을 자처를 종일 다니며 구한 결과에 일인이 하던 청찬관을 一千五百元에 사놓고 식구가 있을 처소도 찬관 옆에 얻어놓고 싸우드밴에 나가 식구를 데려오려고 하고 있는 차에 유홍도씨가 나를 급히 오라고 전보를 하여서 나는 막 달려갔다. 아내와 어린애 셋이 다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처들이 났다. 이것이 웬일인가 물으니 한백선씨 자동차를 타고 유홍도씨 농장 구경을 나가다가 자동차가 엎어져서 같이 탔던 한인과 사는 백녀는 당장에 목이 부러져 즉사하고 우리네 식구도 다 경상은 경상이나 병원에 가서 찍어메고 와서 지금 고통을 하고들 있는 중이다. 나는 이것을 보고 내가 왜 복덕방을 떠나 이곳에 왔는가 또 내가 왜 농주가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거절하고 온 것을 후회무궁에 만시지탄이라고 안 할 수 없는 여기 나는 나에게 유일한 단처를 자책 안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단처를 모르는 바가 아니고 잘 알지마는 내가 이 단처를 이기기에는 힘이 부족한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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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처가 무엇인가 할 때에 응당 바깥사람들도 나를 상종하여 보면 알려니와 나 스스로는 더 잘 알 것은 사실인 나의 단처는 내가 무엇이나 작정을 하고 꼭 하려고 하는 일을 친분을 물론하고 막더라도 내 듣지 않고 나가는 그 고집이 나의 단처인 줄 안다. 내가 이런 단처가 있기 때문에 돈 많고 나를 붙들어주는 그 농주가 가지 말라고 여러 가지 이해를 설명하면서부터 잡는 것을 뿌리치고 기어이 이곳을 찾아와서 바라고 온 농장이 틀어지고 또 식구가 홍액까지 당한 이것이 다 나의 고집불통에서 된 줄로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만시지탄이 무슨 소용 있나. 하여간 나는 자동차에 흉액을 당한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식구를 대동하고 시카고로 들어와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업이 시원치 못하여 간신히 경비가 되고 일하는 월급은 나지 않는 고로 팔아 치우려고 예산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일상을 지내는 가운데 온갖 풍상의 맛이라는 맛은 고루 퍼보는 가운데 단맛도 쓴맛도 다 보는 것이 한 배가 망망한 대양을 건너갈 때에 순풍도 만나서 평안한 때도 있었고 풍랑이 도도하여 집채같은 물결에 부딪쳐서 이 배의 기계가 상하고 돛대가 부러져서 이 망망한 대양을 어떻게 건너가나 하는 우려를 가진 이 선인과 같이 나는 이 험한 풍랑이 일으킨 파도에 이 배의 기계가 상한 것과 같이 나의 일엽편주와 같은 일신의 병까지 나서 병원으로 가게 되는 것이 또 마치 이 파도에 상한 배를 고치려고 건조선창으로 들어가는 것과 방불한 심회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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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병원에 와 드러 누었다. 오늘 의사가 와서 나의 병을 검사하여 보고는 위장병이라고 한다. 위병에도 여러 가지인데 나의 위병은 얼서라는 병이 위에 생겨서 위를 갉아먹는 이 흠집을 아물게 해야 된다. 난 다 음식을 삼가 먹어야 된다. 매일 우유만 먹이고 시피 파우더를 매 두시 동안에 한 봉지씩 먹게 한다. 이와 같이 만 세 주일 동안을 곡기는 일절 못하고 우유만으로 지내자니 기운은 다 쇠잔하고 피골이 상접하여진 모양이 귀신과 같이 되었다. 그러나 속이 아프던 것은 거의 다 없어지니 의사가 집으로 나가 치료하면서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신신 부탁한다. 나는 집에 와서 치료하는 동안에 유홍도씨가 찬관을 도와서 아직 사업은 하는 모양이나 이익은 없다. 그래서 팔아치우려고 주선 중에 김경찬 김승제 두 사람이 사겠다 하기로 내가 샀던 값 一千五百元을 받고 팔고는 다른 자처에 어떤 여인이 하던 양찬관을 三百元에 샀다. 석냥짜리 말에 이를 들어볼 것 없다는 격으로 찬관 전부를 三百元이니 볼 것이 없을 것은 말도 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것을 사가지고 한 五百元 더 들여서 좀 확장하여 놓고 사업을 시작하니 괜찮게 잘 된다. 설상에 가상으로 위병으로 고통을 하는데 또 항종이 나서 목을 쓸 수가 없어서 한의선이란 사람에게 외상으로 一千五百元에 넘겨주고 매월 一百元씩 받아서 먹고 살아가며 병 낫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두어 주일 후에 항종은 나았으나 얼서병은 낫지 않고 일향 고통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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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도씨도 시카고서 무엇을 하여 보려고 하나 수중에 현금은 없고 다만 농장밖에 없는데 이 농장을 팔아가지고 찬관을 나와 같이 하자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같이 할 자본을 많이 낼 수 없는 것을 잘 알고도 같이 하자고 한다. 나는 한 二, 三百元은 낼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찬관할 자처를 구하러 다니다가 542 3. State St.이에 찬관을 四千元 달라는 것을 유홍도씨에게 말하고 같이 가서 보이니 유씨는 만족하여 사자고 하여 이 찬관을 四千元에 사서 개업하였는데 사업이 흥성하게 잘 된다. 쿡이 둘이요 상 심부름하는 여자가 셋이요 유홍도씨와 나의 아내와 나는 물건 사고 일꾼의 월급 또 수입지출 이것을 문서하여 가면서 돈을 받는 여러 가지 책임을 맡아본다. 이럭저럭 수삭을 지내는 동시에 나의 얼서병이 또 발동되어 맡은 일을 할 수 없고 불가불 병석에 누워서 치료하게 되었다. 내가 찬관에 와서 일을 못하게 되니 아내 되는 사람에게는 보살필 일이 더 많아졌고 동사인 유홍도씨의 마음은 불평을 가지게 되었다. 주장자가 병이 나서 찬관에 오래 오지 못하니 일꾼들은 갈리기 시작하고 상 심부름하는 계집애들은 속이기만 주장하니 자연히 이익도 없고 사업도 차차 추락된다. 동시에 자본 전부를 거진 혼자 낸 동사인 유홍도씨는 이 찬관을 앓는 나에게 밀어놓고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앓으면서 찬관에 와서 일을 한다. 자본이 진하여 간다. 마침 조지수씨라는 친구가 돈 만원이나 벌어가지고 환국하는 길에 나를 찾아왔기로 돈 한 五百元 주어야 이 사업을 계속 하겠다고 한즉 두말 않고 五百元을 준다. 이 돈 五百元을 가지고 한 두어 달 이 사업을 계속 하였으나 부지하기 곤란하여 팔아치우려고 하나 팔 수도 없다. 그래서 사업을 매매하여 주는 중개인을 찾아가서 찬관을 팔아달라고 하나 팔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하고 바꾸어라도 달라고 하였다. 이 중개인은 불란서 사람인데 이름은 티스델이라는 인데 안 지는 오래지 않았어도 나의 찬관을 팔아주려고 무한히 주선을 하고 있다. 하루는 찾아가니 켄사스주 까덴씨티에 이미그레순 땅 회사 거관 뚜쟁이라는 사람이 땅을 팔려고 시카고에 와서 티스델을 만나보러 온 사람인데 우리 찬관과 까덴씨티 땅과 바꾸어 보라고 양편을 권한다. 그래서 나는 땅을 보았든 안 보았든 이 찬관은 오래지 않아서 문을 닫게 될 형편에서 땅과 바꾸기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땅 거관의 입에서 바꾸자는 허락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찬관을 가 보자고 하여 땅 거관을 데리고 가서 보여주고 다시 티스델 사무소로 와서 바꿀 것을 다시 말하게 되는 때에 땅 一百 에이커를 주면 이 찬관을 내어주마 하니 땅 거관이 허락하니 찬관은 이곳 티스델이 맡아서 팔게 하고 나와 땅 거관과 까덴씨티 땅 회사로 가야만 바꾸는 약조기를 만들게 되겠는 고로 나는 식구를 데리고 땅 거관 뚜겐하고 까덴씨티 땅 회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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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그레순 땅 회사는 여러 백만 원 자본을 가지고 땅이 六十 삭순이라 한다. 六百四十 에이커를 일 삭순이라 하니 이 큰 들이 거의 다 이 회사의 땅이요 이 까덴씨티는 인구가 十萬여 명이 사는 과히 적지 않은 타운인데 이 땅 회사에서 사탕제조공창과 은행을 소유한 외에 큰 식물상점과 강약농기 회사를 가진 한 유력한 회사이다. 나는 이런 큰 회사와 이만한 관계라도 맺게 된 것을 만히 하였다. 나는 이곳에 오자 거관하고 땅 회사를 찾아갔다. 사무실 앉은 점잖은 늙은이는 한 눈만 덮은 안경을 쓰고 앉아서 나를 대하는 것이 영국식의 한 점잖은 맛이 있는 이 분은 이 회사의 총무라고 하며 이름은 올필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이 이 사람은 영국사람이라고 하며 젊지 않으면서도 좀 교만한 듯하게 보인다. 이외에 또 롱복을 입은 한 늙은이가 앉았다. 이 사람은 보기에는 농부같으나 돈이 많고 이 회사의 부회장이라 하는데 이름은 맥코이라 하니 아마 아리쉬 사람같아 보이는 것은 맥이라는 그 성은 아리쉬의 성인 까닭이다. 하여간 나는 시카고 나의 찬관과 이곳 땅 一百 에이커와 바꾸기로 이 회사 거관하고 약조를 하고는 식구를 대동하고 멀리 찾아와서 그 땅을 좀 구경하자고 한즉 이 땅 회사 총무와 부회장 되는 사람은 우리가 찬관을 거저 준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데 땅과 바꿀 수 없고 우리 회사 거관이 잘못하여 당신과 식구가 이같이 먼 길에 왔으니 대단히 안 되었다고 하는 동정이 나타났다. 나는 당신네 회사 거관이 이곳 땅 一百 에이커와 내 찬관과 바꾸자는 것을 꼭 믿고 나의 찬관은 벌써 너희 땅 회사를 대표하는 시카고 티스델이라는 거관이 벌써 점령하였으니 만일 땅과 바꾸게 못되면 나는 찬관을 잃는단 말이요 이 땅 회사를 대표하고 이와 같이 만들어 놓은 뚜갠을 한번 단단히 나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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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회사의 형편은 어떠한가. 땅은 많아도 육십 삭순이나 되는 땅을 六十으로 나눠가지고 매 삭순에 집 두 채씩 짓고 마방간 하나와 전기 물 펌프 두 곳을 지어놓고 또 말 두 필씩 둔 이런 농막 六十여 곳을 꼭 같이 배치하여 놓은 농장이 반수 이상이 텅텅 비었다. 이 땅 회사의 형편이 이러한 중에서 태평양 연안에서 농사하는 동양인을 갖다 병작도 주고 땅을 동양인에게 팔아볼까 하는 꿈을 연방 꾸던 차에 우연히 나를 이같이 만나게 되는 때에 나를 무슨 모양으로든지 이용하여 자기네들이 꾸던 꿈을 잘 해몽하려고 한다. 나는 이 같은 형편을 분명히 알고 나는 여기서 한 큰 기회가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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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이 땅 회사 총무 올필이 나를 자기 사무실로 들어오라 하기에 들어갔다. 이 총무는 말하기를 시카고 찬관과 이곳 땅과 바꾸지 못하게 되는 것을 과히 걱정말라고 하면서 우리 땅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당신에게 만들어 줄 터인즉 아무 염려말고 있으라고 하면서 지금 지낼 경비가 부족하면 돈이라도 얼마 갖다 쓰라 한다. 나는 지금 형편이 당장에 돈이 좀 요구가 되지마는 지금부터 돈을 갖다 쓰는 것은 나의 경영에 방해가 되겠는 고로 돈을 갖다 쓰라는 것은 아주 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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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서 나를 이용하여 쓰려는 것은 내가 동양사람이니 내가 주선하면 가주에서 동양인을 많이 데려다 자기네 회사에 많고 많은 묵은 땅들을 동양인에게 병작으로 내어 주어서 농사를 시키면 땅 회사에 큰 이익이 될 줄 알고 나를 지금부터 잡는 것이다. 이러므로 나에게 태평양 연안에 있는 동양인을 이곳으로 많이 데려올 수 있겠나 묻는다. 나는 서슴지 않고 원하는대로 데려올 수 있다고 하니 그러면 내일부터 주선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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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땅 회사를 위하여 동양인이라는 것보다 우리나라 사람을 많이 데려오면 나에게는 무슨 소득이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이 나의 주선으로 이곳 와서 땅을 사게 되면 5%를 내가 먹게 된다고 하며 또 내가 주선한 사람이 이곳 와서 병작 농사를 하게 되면 여기서도 첫해 소출에서 5%를 준다고 하며 내가 장차 할 일은 이곳으로 이민하여 오는 동포와 이 땅 회사와 병작 계약이나 땅을 몇 해 기한에 팔고 사는 것과 통변이요 중개자요 또 이민 주선자로 여러가지 일을 내가 맡아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부터 이 회사 사무실에 차려놓은 테이블 하나를 맡아가지고 우선 이곳 위치가 어떻게 되었으며 농토의 토질과 무슨 강물이 흐르며 이곳에 무엇을 심어야 토질에 적합한 것과 병작은 몇 퍼센트요 땅 사는 데는 현금이 없을지라도 二十年 기한하고 살 수 있다는 것과 병작 농사에는 회사에서 농사에 드는 경비를 취하여 준다는 것 등등을 다 기록한 대광고 끝에 이곳이 즉 가나안복지라고 한 이 글을 신한민보에 내었더니 각처에 이 광고를 본 한인들이 광고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한 편지가 많이 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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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까덴씨티에 온 해는 一千九百二十四年이다. 이 해에 가주에서 동양인에게 대한 신법령이 통과되어 동양인은 땅이나 집이나 살 수 없는 것은 이왕부터 그러하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러한 형편에서 지금은 병작 농사나 농토를 세를 주고도 얻을 수 없이 된 이 때에 한인 가운데 농업을 경영하던 사람은 다 실패도지하게 된 때에 마침 내가 까덴씨티에 와서 큰 땅 회사와 언약을 하고 내가 신한민보에 광고한 것을 본 한인들은 이곳에 농토를 아니 경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처에서 오겠다는 동포와 더 자세한 형편 물어보는 편지가 매일 수십 장씩 와 쌓인다. 나는 밤낮으로 이 숱한 편지를 한 장도 빼지 않고 일일이 다 답장을 쓰기에 과연 적지 않은 수고를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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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땅회사에서는 우리 살림할 집을 나를 위하여 지어준다고 하며 벌써 길이를 정하고 재목을 갖다놓고 짓기를 시작하는데 한 일삭이면 완전히 다 지어놓는다고 한다. 집은 별로 크지도 않고 찬란히 짓는 것이 아니고 보통 사람이 있을 만한 다섯 칸 나무집이다. 나는 매일 한번씩 가 본다. 타운 안 복잡히 모이어 사는 동리가 아니고 타운 끝에 나가 외따로 자유롭게 지낼 곳에다 짓는다. 우리는 이런 곳을 원하고 좋아한다. 호사다마라는 명언을 누가 생각하여 우리에게 전하였는지 불행히 오늘날 나에게 꼭 들어맞는구나. 지금 나의 장래를 위하여 잘 진행되는 일에 대하여 이곳 시민들이 동양인 배척운동을 시작한다. 이곳 시민들이 동양인이 이곳으로 다수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시민대회를 열어가지고 켄사스주 수부 트피가에 보낼 대표자를 뽑아 파송하기로 하였는데 이 대표자는 트피가에 가서 가주에서 동양인에게 대한 새 법과 같이 이곳서도 같이 이 법을 제정하여 가지고 동양인을 배척하자는 것으로 대활동을 하는 중이다. 이곳 신문지상에 매일 이 문제가 머리말이 되어 이 근방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곳 신문에 떠드는 그 기사를 볼 것 같으면 이러하다. 이곳으로 다수의 동양인을 이민시키려는 햇맨은 벌써 이곳 와서 이곳 땅 회사와 모든 계약을 성립하여 놓고 지금 가주 일대에서 동양인이 오기 시작하고 이 땅회사에서는 이 이민을 주선하는 사람을 위하여 벌써 집을 다 지어놓았으니 우리는 빨리 막지 않으면 이곳 우리 시민은 생활이 곤란하리라고 한 그 이유는 이러하다. 가주에서 좋은 농토는 동양인이 많이 가지고 근농하여 큰 돈을 잡는데 백인은 동양인과 같이 하지 않고 시간을 적게 들이고 수월한 농사만 하기로 주장하니 동양인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요 또 타운 안에서 하는 사업 찬관이나 여관이나 식물상점 이발소 풀방 같은 사업도 동양인은 값도 좀 싸게 받고 여관방 같은 것도 정결히 하여 가지고 백인보다 적게 받으니 자연히 동양인의 각양 사업은 흥성하고 백인의 각양 사업은 엉성하니 이 백인들이 동양사람 많이 오는 것을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전체 도시가 들고 일어나서 동양인을 배척하게 되었다. 이 배척운동이 동양인이 많이 거주하는 태평양 연안에서 시작된 것이 오늘날 또 이곳에까지 이 풍기가 일어나서 나의 장래에 큰 경영을 방해하니 이것이 호사다마라고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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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의 광고와 편지를 받은 한인들은 오기 시작한다. 가주에 있던 김원택씨는 대동보국회 때부터 동지자로 친절히 지내던 분인데 나의 광고를 신한민보에서 보고 천여 마일 되는 이곳을 찾아왔다. 그래서 땅회사에 모시고 가서 소개를 시키고 회사 사람과 같이 농장을 여러 곳 구경을 시켰다. 김씨는 이곳 농장을 돌아보고 와서는 나와 땅이 좋고 이 회사가 후하니 우리 한인에게 수가 났다고 말씀한다. 이 분은 성질이 좀 괄괄하여 수가 정말로 있는 듯이 한바탕 떠들고 다시 가주로 가 부인과 다른 한인 몇을 더 데리고 오겠다 하고 떠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인을 대동하고 또 잘잘한 살림을 자기의 자동차에 싣고 다시 왔다. 그래서 회에 같이 가서 농 第十一号 六百四十 에이커를 병작하기로 계약하였다. 이 계약은 농주가 三分의 一을 가지고 농군은 三分의 二를 가지고 땅회사에서 말과 말 먹을 것과 또 농사할 경비를 취하여 준다고 하였으니 이런 어수룩한 병작은 미국에 어느 농촌에서는 만나기 드문 기회라고 하게 되었다. 김원택씨는 만족하여 수일내로 농장으로 나가기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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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일이 다 나에게도 불행하고 김원택씨에게 불행이 더하다고 안 할 수 없는 것은 머나먼 길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와서 병작 농사를 하기로 계약까지 다 하여 놓고 지금 농장으로 나가려는 때에 이곳 배척운동의 결과는 십분여이로써 성공이 되었다는 기별이 이곳 신문에 대서특서로 기재가 되었으니 땅 회사의 세력을 가지고서도 우리 동양인을 이곳으로 이민할 수도 없고 병작이나 땅도 팔 수 없이 되었으니 나는 빨리 우리 신문에 이곳으로 오지 말라고 광고를 해야만 되겠고 편지로 온다는 사람한테들은 오지 말라고 편지를 해야 되겠다. 나는 벌써 오지 말라는 광고와 편지를 하였다. 김원택씨는 부인을 대동하고 오늘 떠나 가주로 나가셨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 다수를 이곳으로 이민하려고 수고하던 나의 경영은 여기서 실패의 종국을 지어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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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의 형편은 어찌 될 모양인가? 나로서는 무엇이라고 기약하기 어렵게 되었다. 시카고로 가자니 찬관도 없어졌고 노비도 없다. 이곳에 있자니 동양인 배척하는 데서 무엇을 하여 벌어먹을 수 있나. 하여간 땅 회사에 나가보고 어디로 갈 노비나 좀 달라고 하여 보겠다고 찾아갔다. 이 땅 회사에서도 트피가에 사람을 보내어 이곳 시민들이 동양인 배척하는 것을 막아보려고 온갖 운동을 하였으나 그러나 성공을 못하고 실패하였다고 지금 말을 하면서 내가 수삭 동안 수고만 하였다고 위로를 많이 하여 주면서 나에게 가지 말고 이곳서 농사를 금년에 하라고 간곡히 권한다. 그러나 나는 이같이 배척하는 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할 수 있을까 한즉 회사 총무가 말하기를 이곳에 동양인 다수가 있어 농사나 장사를 해야 배척을 하지 한 사람 당신이 이곳에 있어서 농사를 하는 데는 아무 배척이 없을 터이니 아무 염려말고 금년에 농사를 하여 보라고 한다. 회사에서 농사할 경비와 말과 말먹이와 집을 다 준다고 하기로 김원택씨가 잡았던 十一号 삭순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지금 正月 중순인데 아직 농기는 멀었다. 한 삼삭 동안은 이 농장에서 평안 잘 지내는 가운데 촌사람들은 동양 사람이 여기 와서 농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십 리, 이십 리에서 찾아온다. 이 근경은 땅은 넓은데 사람은 희소하여 사람을 보고 참으로 반가와 한다. 어떤 사람은 생선도 잡아가지고 와서 먹으라 하고 어떤 사람은 토끼를 잡아다 준다. 한번 나의 아내가 편치 않은 것을 보고 가서는 스노우푸딩을 하여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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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농촌 정형은 어떤가 한다면 겨울에는 눈은 괜찮게 오나 봄철이 잡히기 시작하면 三月 중순부터는 비 한 방울이 오지 않고 이곳 중앙으로 아칸소 강이 있어서 겨울에 와서 쌓였던 눈이 녹으면 강이 넘치게 물이 많다가 한 四月 중순이 되면 강물이 다 흘러가고 말라버린다. 연고로 二月 말로 三月 초상께 쯤하여 이 지방 고을 관원이 일반 농군에게 물을 마음대로 받아서 땅을 적실 수 있는 한도까지 적시라고 광고를 하고는 중앙 떼취로 물을 보낸다. 이 근경 농군들은 이곳 고을에 섞어주는 이 물을 원껏 받아서 흠뻑 적셔놓았다가 물 다 잦아먹은 뒤에는 밭을 갈아 제치고 종자를 심는다. 이곳 토질과 일기에 적합한 것은 참외와 수박이며 단감자와 사탕무우와 대맥 소맥을 많이 심는 곳이나 이곳에는 연년이 천재와 자연적 피치 못할 재앙이 여러가지가 있어서 농군에게 큰 방해와 손해를 거대하게 주므로 이 근경에 농사하는 농군이 희소하게 있는 것이 나로서는 판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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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천재와 또 자연적 재앙이 무엇인가 한다면 봄에는 밤알만큼씩 하는 우박이 한번만 오지 않고 두번 세번 오는 해가 있으니 곡식이고 채소고 참외 수박 이것을 입종하여 연하게 자라날 때에 꼭 우박이 와서 수박 참외 채소 곡식 할 것 없이 그 연한 위에다가 얼음 강산을 만들어 놓으니 밑에 있던 것은 무엇이고 다 죽탕이 되니 큰 손해를 받는 것이요 또 봄부터 비가 안 오기 시작하여 여름이 다 지날 때가지 비 한 방울 안 오니 모든 농산물은 마르고 타서 큰 손해를 받는다. 또 메뚜기는 유명하게 많아서 농산물에 적지 않은 손해를 연년이 주는 고로 이 지방 관원이 농군의 패리스그린이라는 메뚜기 죽이는 약을 무료로 누구나 갖다 쓰라고 한다. 또 이곳에 토끼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요 이 온갖 풍상을 다 겪고 간신히 살아나서 거의 다 자라는 참외 수박 채소 대, 소맥을 물론하고 이 토끼 무리가 와서 큰 손해를 준다고 이 지방 관원이 누구든지 토끼를 잡아서 귀때기 한상을 가지고 오면 十錢씩 준다고 하여 이곳 농군들은 봄과 겨울 토끼 사냥 한 업으로 삼는다. 이외 또 한 가지는 우리 사람이 그 중 싫어하고 보기에 징그러운 여러 가지 종류의 뱀이 많다. 불 스네이크는 굵기가 홍두깨만치 굵은 놈은 집으로들로만 기어들어와서 병아리와 달걀을 찾느라고 방 안에 종종 들어오고 밭에 나가면 우릴텔 스네이크 독사는 매일 몇 놈씩 안 만날 때가 없다. 하루는 헤이 밭에 나가 다니는데 무슨 종류의 뱀인지 길이가 한 십 척 가량 좀 되고 가느다란 놈이 전체의 반은 늘어뜨려서 지나가는 빠름이 총알같다. 나는 이왕에 뱀을 매우 무서워하였다. 그러나 이곳 와서는 매일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지 뱀 안 볼 때가 없고 나는 보는대로 때려죽이기 시작하여 지금은 과히 무섭지 않다. 이상에 말한 헤이 밭에서 만났던 한 십 척 가량 긴 이 뱀은 소젖을 빨아먹는다 한다. 이 놈은 소젖을 빨아먹기 위하여 몸체가 가늘고 길다. 이 놈이 그 긴 몸체를 소 젖통에다 찬찬히 감아놓고 조여 들어가 젖이 나오면 입으로 빨아먹는다고 촌사람들이 설명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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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이 농장에 나와 농사하는 것을 말해야 되겠다. 나는 농부가 아니고 상인이다. 상인이 어찌 농사를 할 수 있는가 한다면 사람을 얻어서 할 예산이다. 그래 가주에서 이왕부터 잘 알던 이창호와 양기찬이란 두 분을 오라고 하였더니 왔다. 이 두 분과 나와 셋이 동사를 하자고 약조할 때에 두 분은 일하고 나는 회와 교섭하는 일과 경비 뒤 대는 일과 분부를 맡아가지고 적는 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참외 七十五 에이커와 단감자 五十 에이커 강냉이 一百 에이커 앨파앨파 五十 에이커 이와 같이 농사를 하기로 예산하여 놓고 이 한인 두 분은 농사에 경력이 많다 하여 나는 전부를 다 이 두 분에게 맡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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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춘경 때가 가까워서 이 지방 관원이 물을 중앙 떼취로 보내니 마음대로 누구나 받아서 땅을 적실 수 있는대로 적시라고 명령이 내리자 농군마다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얻어 적실라고 한다. 그러나 나와 같이 농사하는 이창호 양기찬 이 두 분은 물 받아야 소용이 없다고 한 방울도 받지 않고 있다가 기경할 때가 오니 그 많던 땅을 말을 메여 가지고 갈아 제친다. 땅 위에는 바짝 풀뿌리가 말라붙은 그 땅을 갈아제친 것이 솥뚜껑같이 자빠졌다. 먼저 갈아제친 것은 햇볕에 말라서 끌 수도 없고 부스러뜨릴 수도 없으니 여기다 어떻게 씨를 심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이 두 분한테 묻기를 왜 남과 같이 물을 받아서 땅을 적시었다 밭을 갈지 않고 마른 땅을 갈아서 제친 것이 솥뚜껑 같은 여기다 어떻게 종자를 심을 수 있을까요 한즉 이 덩어리 흙을 다 부스러뜨릴 수 있다고 아무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나 내 농사에는 아무 경력은 없으나 그러나 시작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이 사람들의 잡도리를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밭을 다 갈고는 큰 나무통 한 개를 쇠사슬로 말 뒤에다 매달고 갈아 제친 땅위로 끌고 다닌다. 그러나 땅덩어리가 부스러지지 않고 땅 속으로 들어가 박히니 보기에는 편편하나 그러나 속에 파묻힌 덩어리는 그냥 있다. 이 위에다 참외씨 심을 밭이랑을 곧게 줄로 먹줄 치듯 하고 이 줄을 따라 씨 심는 기계로 심어야 되는데 우리 밭에는 우선 씨 심을 이랑을 곧게부터 할 수 없는 것은 밑에 큰 덩어리가 있어서 씨 기계가 바로 나가지 못해 식색 Z 즉 之 갈 지자로 씨를 심어 놓았다. 씨가 며칠 후에 나와서 두 닢 세 닢 되어 너불너불하게 자란다. 이제는 휘치질을 해야 되겠는데 이 갈 지자 밭이랑을 어떻게 말이 휘치질을 하는 문제가 한 퍼슬같이 되어서 이 두 사람도 자기들이 잘못한 줄 알고 또 잘못한 결과로 아무 소출이 없을 줄로 알고 둘이 다 가려고 한다. 이와 같이 가려고 하는 사람을 붙잡는 수도 없고 또 이런 사람이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기로 갈 차비를 주어 보내고 묵사람 한 七, 八人을 얻어다 두고 내가 친히 농사를 감독하였다. 七十五 에이커에 심은 참외 밭은 휘치질을 못하여 짠슨그뤼쓰 우리나라 피띠 같은 풀이 길 같이 자라서 참외 넝쿨은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아서 이것은 패농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단감자 五十에이커가 잘 되면 五, 六千元 바라볼 수 있다고 회사 사람들이 나와보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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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서 농사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시작하여 놓고 보험회사에 보험을 한다. 가령 참외 一百에이커를 심어놓고 매 에이커에 보통 一百元씩 보험을 한다. 이것은 연년이 우박이 와서 손해를 보는 고로 이같이 보험 하였다. 정말로 우박이 와 농산물이 결단이 난다면 매 에이커에 一百元씩 찾아먹고 만일 우박이 이 땅에는 아무 손해준 것이 없으면 보험회사에서 농주한테 10% 一千元을 받아먹는 것이 피차에 노름과 같이 하는 풍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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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나는 단감자 밭에서 수십 명 모종하는 사람을 감독하고 있는데 우리 땅 회사 사람하고 어떤 낯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보험을 하라고 한다. 단감자 오십 에이커와 참외밭 七十五 에이커를 우박 보험을 하라고 한다. 매 에이커에 一百元이나 五十元이나 마음대로 하라고 강권한다. 그래서 보험에 프리미엄 즉 보험비가 얼마나 되나 물었다. 10%라 한다. 그래서 나는 잠시 예산하여 본다. 가령 참외와 단감자 一百二十五 에이커를 매 에이커에 一百元씩을 보험 하는데 보험비가 一千二百五十元을 선금 주고 一萬二千五百元을 찾아먹자면 나의 두 가지 농사하여 놓은 一百二十五 에이커가 한 가지도 남지 않고 우박이 와서 다 때려 부숴져야만 이만큼 찾아먹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박이 오려는지 안 오려는지 또 이 지방에 우박이 오더라도 내가 농사지어 놓은 밭 위로 지나가겠는지 나의 밭을 피하여 지나가겠는지 이러한 형편에서 一千二百五十元 보험비를 먼저 주고 있다가 우박에 손실을 당하지 않고 보면 금년 농사한테서 얻는 이익 전부를 보험회사에다 주고 나는 헛수고만 하고 날 샐까 하여 보험을 안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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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우박은 매해에 二, 三次씩 온다. 우박 오는 것이 몇백 마일 범위를 잡아가지고 이 우박이 이 몇百 마일을 다 ●●●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에 시작하여 어디 지나갈 때에 일●●이나 혹 이마일 범위를 잡아가지고 지나가는 그곳도 한●●●● 혹 十마일, 二十마일 혹 백마일 이만큼 가서는 ●●● 우박이 멎고 날이 청명하여지니 이러한 노름을 가지고 ●●한 그 숫자대로 찾아먹자고 하련다면 심히 어려운 줄로 알고 나는 보험을 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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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이 오는 때 五, 六月인데 이때 오는 우박이 농산물에는 해를 주게 된다. 그 七, 八, 九月께 오는 우박은 별로 손해를 주지 않고 지나간다. 나는 집 옆에 한 二十 에이커 되는 참외밭에 늙은 말로 휘치질 하는데 이 날은 매우 덥고도 물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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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방사겸 평생일기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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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0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