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호수(湖水)의 여왕(女王) ◈
해설   본문  
1922년 7월
아나톨 프랑스 / 방정환
목   차
[숨기기]
1
湖水[호수]의 女王[여왕]
 

1. 1

3
불란서(프랑스)의 해안에서, 한 이삼 마일쯤 바다로 나가면, 거기서는 바람만 안 불고 청명하게 개인 날이면, 배 위에서 깊디깊은 바닷속 바닥에 커다란 나무가 수없이 무성히 자라서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몇 만년이나 이전에는, 이 나무 있는 곳이 물 속에 있지 아니하고 바다 위에 있어서, 그 숲속에는 여러 가지 새와 짐승 들이 떼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숲 저쪽에는 훌륭한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크라리이드 공작이 계신 성이 있었습니다.
 
4
그러나, 하도 오랜 세월을 바닷물이 점점 육지 위로 올라와서 거기 있던 성과 집과 마을과 나무숲과 들과 밭이 모두 바닷속 바닥으로 잠겨 버리고, 그 위에 바닷물이 반짝반짝 햇빛에 반짝이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닷속에 잠기기는 지금 여기에 이야기하는 일이 있던 때보다는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5
그런데, 크라리이드 공작 댁에는, 대대로 좋고 훌륭한 어른이 뒤를 이어서 거느리는 영내의 백성의 일을 잘 보살펴서 백성들에게 몹시 존경을 받아 왔는데, 마침 이 이야기의 시초가 되는 때에는 크라리이드 공작의 몇 대째인지 되는 로베닐 공작이 아드님이 없이 따님 한분만 남겨 두고 돌아가셔서, 젊은 그 부인이 혼자서 젖먹는 어린 따님 아베에유 하나를 데리고 쓸쓸하게 지내시던 때였습니다.
 
6
어느 덥고 더운 여름날, 공작 부인은 어린 따님 아베에유를 데리시고, 성안에 이는 높다란 석탑에 앉으셔서 바람을 쏘이면서, 아름다운 보랏빛, 누른빛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있는 들을 바라보고 계시다가 언뜻 저편에게 말탄 무사의 한 떼가 이쪽을 향해서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7
그 한가운데에는 검은 것과 은으로 장식한 흰 말에 귀부인이 탔는데, 그가 공작 부인의 친한 동무 부란수랜드 백작 부인인 것을 짐작하셨습니다.
 
8
그 백작 부인도 공작 부인같이 남편 백작이 돌아가셔서, 홀로 된 불쌍한 부인인데, 공작 부인의 따님 아베에유보다 두 살 위인 사내아이를 데리고 쓸쓸히 지내는 이였습니다.
 
9
퍽 몹시 친한 동무이므로, 공작 부인은 그 백작 부인이 오는 것을 보고 한없이 기뻐하시면서, 성문까지 나아가 맞으셔서 손목을 잡고 내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은 백작 부인이 웃지고 아니하고, 말도 잘하지 아니하고, 몹시 근심스러운 빛만 보이고 한숨조차 쉬므로 공작 부인은,
 
10
“왜, 무슨 근심스러운 일이 생겼소?”
 
11
하고, 따라서 근심스러워하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백작 부인은 두 손으로 공작 부인의 손을 꼭 누르면서 몹시 구슬픈 음성으로,
 
12
“에그, 형님께서도 아시지요……. 예전부터 부란수랜드 백작 댁의 부인이 죽을 때에는, 누가 가져오는지도 모르게 어디서인지 베개 옆에 흰 백합 꽃이 놓여 있다고 하지 않아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고, 우리 집 대대로 주인 여편네가 죽을 때에는 으레 그 흰 백합꽃이 어디서 생겼는지 놓여 있었다는데, 그런데 제가 어제 저녁 밤에는 다른 날보다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잘 자고 나서 오늘 저녁 밤에는 다른 날보다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잘 자고 나서 오늘 새벽에 깨어 보니까, 제 뺨에 슬근슬근하는 것이 있기에 보니까, 그 꽃이 놓여 있겠지요? 어떻게 놀랐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또 죽는가 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형님 한 분뿐입니다. 제가 죽거든 죽은 후에는 제 아들 유우리를 아베에유와 한 형제라고 생각하시고 길러 주십사고, 그 일을 말하려고 왔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올시다. 형님, 아무쪼록 안녕히 사십시오, 네? 형님…….”
 
13
하면서, 말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이 펑펑펑 쏟아졌습니다.
 
14
공작 부인도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듣고 계시더니 그냥 백작 부인을 얼싸안고 훌쩍훌쩍 느껴 울었습니다.
 
15
그리고, 두 부인이 서로 아무 말 없이 잠잠히 작별하고, 죽을 운명인 백작 부인 역시 말을 타고 돌아갔습니다.
 
16
댁에 돌아와서, 백작 부인은 콜콜 코를 골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 자는 유우리를 늙은 하인에게 일러 맡기고, 그리고 자기는 조용히 자리에 누웠습니다.
 
17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는 듯이 그야말로 평안히 자는 사람같이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2. 2

 
19
이렇게 되어 유우리 공자와 아베에유 색시와는 어렸을 때부터 한집에 있어서, 공작 부인의 품에 길리우게 된 것입니다. 부인께서도 돌아가신 백작 부인의 부탁을 잊지 아니하고, 유우리에게는 부드럽고 사랑 많으신 어머님이 되어주셨습니다.
 
20
점점 자라서 커 갈수록 부인은 두 아이를 데리고 영내의 토지를 여행하면서, 백작과 상민의 살림을 보여 가며, 백성을 잘 위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가르쳤습니다.
 
21
이러한 여행에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셨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일행은 비단 같은 꽃방석을 깐 듯한 목장을 지나가다가, 문득 유우리가 저편 먼 산 밑에 크고 둥근 것이 햇볕에 반짝반짝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2
유우리는 손을 흔들며,
 
23
“아주머니, 저게 무엇입니까? 장사가 갖는 방패가 아닐까요?”
 
24
하였습니다.
 
25
“아니오, 달덩이 같은 커다란 은접시 아니어요?”
 
26
말 위에 앉은 아베에유가 말했습니다.
 
27
그 때에 공작 부인은,
 
28
“저것은 장사가 갖는 방패도 아니고, 달덩이 같은 은접시도 아닙니다. 저것은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가깝게 가면 위험합니다. 호수의 물 속에는 물귀신이 살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꼬여 들여서 목숨을 빼앗으니까요!”
 
2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0
부인이 말씀하신 호수의 이야기는 그뿐만이었으나, 아이들은 웬일인지, 그 이야기가 어느 때까지든지 잊혀지지를 아니하고, 그 이야기에 들은 호수가 무슨 꼬이는 힘을 가지고, 마음을 자꾸 잡아당기는 것같이 몹시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그 호수의 생각은 더 잊혀지지 아니했습니다. 하루는 아베에유가 유우리의 방에 가서,
 
31
“오늘은 성 안의 석탑의 문이 열렸으니 우리 올라가 보자. 분명히 호수의 물귀신 여편네가 있을 터이니.”
 
32
라고 넌지시 말하였습니다. 둘이는 석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귀신의 여편네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다만 호수가 다른 날보다 더 푸르고 사람 오기를 꼬이는 듯이 말갛게 개어 있었습니다. 아베에유는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33
“응? 나는 저기까지 가 볼란다.”
 
34
유우리는 깜짝 놀란 목소리,
 
35
“가서는 안된다. 어머님 말씀 듣지 않았니? 그리고, 거기까지 가자면 굉장히 먼데, 거기까지 갈 듯싶으냐?”
 
36
하니까, 아베에유는 유우리의 얼굴을 못난이 보듯이 보면서, 가련하고 변변치 못한 사내야 하고 비웃는 듯이 하였습니다. 그 꼴을 보고 유우리는 골이 벌컥 나서 색시의 손을 잡고,
 
37
“그래 가자! 우리 둘이 호수 옆까지 가자!”
 
38
하고 서둘렀습니다.
 
39
그 이튿날 오후였습니다. 공작 부인은 하인을 데리고 바쁘게 집 안 정리를 하고 계신데 두 아이는 다른 때와 같이 마당 잔디밭에서 놀고 있다가, 근처에 하무도 없는 것을 보고, 언뜻 유우리가 아베에유의 손을 잡고,
 
40
“자! 가자.”
 
41
하였습니다.
 
42
“가자니, 어디?”
 
43
하고 아베에유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44
“호수에 말야! 어저께 석탑에서 보던 호수 말야.”
 
45
하고 유우리가 말하니까, 아베에유는 깜짝 놀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벙벙히 서 있었습니다. 어저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어머님께서 들은 물귀신의 이야기쯤은 우습게 아는 듯이 말하였으나 지금 당장 어머님 몰래 그렇게, 먼 곳에 가려고는 생각도 아니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이나 후에,
 
46
“나는 이렇게 비단 구두를 신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먼 곳에를 가니? 사내는 그런 주제넘은 생각을 잘하지.”
 
47
하였으나, 유우리는 그런 말쯤에 입담이 곧 쭈그러지지는 안했습니다.
 
48
“주제넘거나 어떻거나 가자던 호수에 가기만 했으면 고만이지……. 나는 어쨌던지 갈란다. 너도 같이 가야해…….”
 
49
하면서, 유우리는 마음 속에 어저께 비웃는 듯이 들여다 보던 아베에유의 눈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50
“네가 무서워서 안가면 할 수 있니? 그럼 나 혼자 가지…….”
 
51
이렇게까지 하는 말을 듣고, 아베에유는 마음에 미안해져서, 벌써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
 
52
“네가 가자는 데로 어디든지 가마.”
 
53
하고 빌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사이가 풀려가지고 넌지시 손을 잡고 길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3. 3

 
55
그 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으므로 마을의 백성들은 대개 집 속에 들어 앉아서, 일을 하기에나, 놀러가기에나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들키지 아니 하고 마을을 지나 빠졌습니다. 마을을 지나서는 요전 날 갔던 대로 다리를 건너서, 나무숲을 지나서 목장 가는 길로 갔습니다.
 
56
그러는 동안에 아베에유는 벌써 목이 말라서 참지 못하게 되어서 허덕허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날이 가문 때라 한 방울의 물도 얻을 데가 없어서, 아베에유는 더욱 괴롭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참으면서 또 한참 가니까, 다행히 길 옆에 과일 나뭇가지가 서 있고, 보기에도 훌륭한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므로, 두 아이는 그 과일 나무 밑에서 쉬면서 과일로 목을 축이었더니 이제는 원기가 다시 생겨서, 한 걸음에 호수에까지 뛰어갈 듯 하였습니다.
 
57
그러나, 조금 가더니 웬일인지, 또 아베에유는 절룩발이 모양으로 발 하나를 질질끌면서 발이 아파서 더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우리가 그 말을 듣고 아베에유의 구두를 벗겨 보니까, 구두 속에 조그만 돌멩이가 들어 있기에 그것을 내어 버리고 신으니까 또다시 원기 있게 잘 걷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이는 노래도 부르며 이야기도 하면서 한참 갔으나, 이번에는 아베에유의 비단 구두가 아주 해져 떨어져서, 맨발로 걷는 것이나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울음이 터질 듯 터질 듯한 얼굴로 헤어진 구두를 장난감같이 손에 들고 앉아서 언뜻 보노라니까, 저어쪽에 자기가 사는 성이 보니는데, 하도 멀어 보이니까, 그만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
 
58
“점점 멀어만 지고……, 말승냥이나 무슨 짐승이 있으면 어떻게 하니…….”
 
59
하면서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유우리는 아베에유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면서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60
“무얼, 벌써 호수에까지 다 왔는데……, 무서울 건 무엇 있니? 저녁때 안으로 집에 돌아갈 텐데……, 응, 아서라, 울지 마라.”
 
61
하였습니다.
 
62
아베에유는 다시 일어나 눈물을 씻고 터벅터벅 뒤를 따랐습니다. 정말 호수는 바로 거기 푸르게, 그리고 은빛으로만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전에 길거리에서와 성 안 석탑에서 멀리 바라보고 방패니 은접시니 하던 그 호수에 까지 온 것이 퍽 기쁜 일이었습니다. 푸르고 잔잔한 물은 거울 바닥같이 저녁해에 비치어 있고, 호숫가 언덕에는 금빛, 보랏빛으로 이름도 모를 어여쁜 꽃이 피어 있고, 호수 물가에는 하얀 연꽃이 커다란 눈을 활짝 뜨고 있었습니다.
 
63
그리고, 그 근처에는 사람 흔적도 보이지 않고, 아베에유가 무섭다던 짐승도 보이지 않고, 다만 호숫가 모래 위에는 단풍잎을 흩어 놓은 듯이 조그만 짐승들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아베에유는 시원한 듯이 구두와 버선을 모두 벗고, 두 발을 물에 잠그고 앉았습니다. 유우리는 무슨 과일이나 딸기를 찾아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64
“내 지금 오다가 길 옆에 따리가 열릴 것을 보고 왔으니 잠깐만 기다리고 있거라! 내 얼른 따 가지고 올 것이니, 그럼 그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드리지.”
 
65
하였는데,
 
66
그 때, 발을 물에 잠그고 시원히 앉았던 아베에유는 조는 듯이 멀거니 앉았더니 유우리의 말 끝에 무슨 대답을 입 속으로 하는 듯하더니, 그냥 유우리가 딸기 따러 간 것도 모르고, 고단한 몸이 포근히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린 몸이 먼길에 고단하여서 포근하게 꿈을 꾸는 동안에, 어디서 왔는지 한 마리의 까마귀가 그야말로 장난감 같이 조그만 사람 하나를 등에 태워가지고 비행기 같이 날아서 아베에유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더니 금방 또 어디로 가 버렸습니다. 마침 그 때, 유우리가 커다란 잎에 딸기를 많이 따서 들고 왔습니다.
 
67
“에그, 잠이 깊이 들었네! 깨우기도 안 되었다.”
 
68
고 생각하고, 유우리는 그냥 슬그머니 돌아서서 푸른 장막을 늘이고 있는 버드나무 밑 저쪽으로 간즉, 거기서는 그 큰 호수가 끝까지 한눈에 보였습니다. 그 때에 마침 달빛이 환하게 비쳐 오자, 호수 위에 뽀얗게 안개가 낀 것 같더니, 어떻게 어떻게 하여서 보는 동안에 그 곳은 요술 나라와 같이 이상한 경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잠깐 있다가 그 은빛 장막이 점점 쪼개져 열리고, 그 속에서 진녹색 머리를 풀어 내려뜨린 아름답고 어여쁜 여자가 두 팔을 벌리고, 얼빠진 사람같이 멀건히 서 있는 유우리에게로 향하여 흐르는 듯이 가까이 왔습니다. 큰일 났다고 유우리는 깜짝 놀래어 도망하려 하였으나, 벌써 늦어서 하는 수 없이 붙잡혔습니다. 유우리가 그렇게 하여 요술 여인에게 붙들려간 줄도 모르고, 아베에유는 잠이 깊이 든 채로 고단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이나 뒤에야 눈이 뜨여 본즉, 어느 틈엔지 앉아 있는 둘레에는 하얀 수염을 무릎 아래까지 길게 늘인, 궂은 작은이의 떼가 어디서 왔는지 빙 둘러싸고 서 있었습니다.
 
69
“이 애를 어떻게 할까?……?”
 
70
하고, 그 중에 나이 많은 듯한 피크라는 작은이가 말하였습니다. 다른 이들도 몸은 어른의 손가락만큼 작지마는 모두 주름잡힌 수염이 흰 노인들이었습니다.
 
71
“큰 농을 만들어서 거기에다 넣어 두자!”
 
72
고, 라크라는 작은이가 말했습니다.
 
73
“아니, 그렇지 않아…….이렇게 어여쁜 색시를 농 속에다 넣다니 그럴 법이 있나?”
 
74
하는 것은 지크라는 작은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중에 제일 친절한 더어드가,
 
75
“그럴 것 없이 그냥 저 애의 부모의 집으로 돌려 보내자!”
 
76
고 하였습니다. 다른 작은이들은,
 
77
“이건 뜻밖에 훌륭한 놀거리가 생겼는데…….”
 
78
하고, 그런 말은 귀에도 담아 듣지 안했습니다.
 
79
“여보게, 아마 잠이 깨었나 보이…….”
 
80
하고, 언뜻 포우라는 작은이가 무슨 비밀 이야기나 하듯이 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럴 적에 아베에유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아베에유는 처음에는 그 작은이들을 보고 아직도 꿈을 꾸는 중인가보다 하였으나, 작은이들이 어느때까지나 그대로 서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꿈 속이 아니고 정말인 것을 알고는,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81
“유우리야, 유우리야, 어디로 갔니…….”
 
82
하고 외쳐 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작은이들은 더 바짝바짝 에워싸고 다가섰습니다. 아베에유는 그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겨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이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 줄을 몰라서 쩔쩔매는 모양이더니, 그 중에 더어드가 아베에유의 머리 위에 가깝게 늘어져 있는 버드나무 가지로 기어올라가, 대롱대롱 매달려서 친절하고 다정하게 아베에유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부드럽게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네, 아베에유도 마음이 누그러지고, 무서운 마음도 없어진 후에야 손을 얼굴에서 내리고 말끄러미 작은이들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아베에유는 말을 하였습니다.
 
83
“여보세요, 작은이들! 왜 그렇게 가엾게 키가 작습니까? 나는 당신네들 같이 그렇게 작은이를 처음 보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네들을 귀여워해드리렵니다. 그 대신 나에게 먹을 것을 좀 주셔요. 나는 지금 못 견디게 배가 고픕니다.”
 
84
이렇게 말하니까, 작은이들은 그 말을 듣고는 저희끼리 무어라고 쑥덕쑥덕 하느라고 부산하더니, 그 중에는 왜 그렇게 가엾게 키가 작으냐고 하였다고 대단히 노하여서, 그따위 실례의 말을 하는 애를 그냥 내버려 두느냐고 떠드는 이도 있고 하였으나, 저까짓 사람이란 것이 무엇이라고 하거나 그까짓 것을 상관할 것 있느냐고들 하였습니다.
 
85
그러는 동안에 약삭빠른 더어드는 심부름하는 보오그를 시켜서, 젖과 꿀과 또 땅 속에 있는 화덕에서 만든 제일 맛있은 떡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베에유가 해어진 구두를 다시 신고, 구두끈을 매는 동안에 벌써 심부름 갔던 작은이가 까마귀를 타고 날아 왔습니다.
 
86
그래서 그가 가져온 떡을 꿀에 찍어 먹고, 젖을 먹고 하니까, 아주 기운이 나고 마음도 가라앉고 하여, 조금도 무섭지 아니하고 무슨 이야기든지 마음놓고 하게 되었습니다.
 
87
아베에유는 방싯방싯 웃으면서,
 
88
“여보세요, 작은이들! 잦다 주신 저녁은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아베에유고……, 나하고 같이 온 아이의 이름은 유우리여요, 나는 이렇게 여러분하고 같이 있지만, 유우리가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으니 여러분들이 좀 찾아 주셔요. 네? 좀 찾아 주셔요. 그리고 우리 집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 길도 알려 주셔요. 어머님께선 이 애들이 혹시 무서운 호수에나 가지 않았나? 호수에 갔으면 어떻게 무서운 변이라도 당하지 않았나? 하고 몹시 근심을 하고 계실 터이어요…….”
 
89
하니까,
 
90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 고단하고 발이 아파서 한 걸음이나 어떻게 걷겠니.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 따로 있으니까, 너희 세상에는 한 걸음도 들여놓지를 못한단다. 인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뭇가지를 꺽어 모아서 탈것을 만들고, 그 위에 이끼로 자리를 만들어서 깔고, 그 위에 너를 태워서 산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 나라의 임금께 보여 드리는 일 뿐이란다.”
 
91
하고, 작은이 지크가 말하였습니다.
 
92
다른 계집애 같으면 이렇게 혼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작은이들에게 에워싸여서, 가 보지 못한 산 속으로 간다는 것은 듣기만 하여도 놀랠 것이나, 아베에유는 처음부터 무서운 것을 지나쳐서, 인제는 무엇이든지 좀 이상한 일에 부딪쳐 보았으면……하고 바라는 마음조차 없지 않았습니다.
 
93
그래서 아베에유는,
 
94
“그러면, 우리 집에 돌아가서 이러저러한 데 가서 무엇무엇을 보고 왔다고, 어머님께 이야기해 드릴 것도 많아지겠지요. 자, 그럼 얼른 가서, 당신네 나라님을 뵈옵고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95
하고, 자진하여 작은이가 펴 놓은 이끼 자리 위에 누워서 작은이들이 무슨 준비를 하는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은이들은 무엇을 하는지 한참이나 수선수선하더니, 이윽고, 아베에유를 태울 것을 메어 왔습니다.
 
96
그리고, 그 위에 아베에유를 태우고 수많은 작은이가 일시에 어깨에 메고 점점 높고 높은 산 속으로 자꾸 들어갔습니다.
 
97
유우리의 간 곳도 모르고, 늙은 작은이들에게 에워싸여 그들이 타라는 대로 올라 앉아 높디높은 산 속으로 자꾸 들어가는 동안에, 아베에유는 또 하품이 자주 나고 졸음이 와서, 그냥 잠이 솔솔 들었습니다.
 
98
한참이나 자다가 눈이 뜨여 보니까, 벌써 해가 높직이 떠서 빛나고 있고, 늙은 작은이들은 자기를 메고 자꾸자꾸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늙은 작은이들은 바위에서 바위로 뛰어넘는 사람들보다 속하게 잘 뛰어 건너 뛰었지마는, 걸음걸이는 몹시 더디어서, 한참 동안을 가도 얼마 멀지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99
한참 가다가 언뜻 보니까, 이상하게도 햇빛이 변해졌습니다. 밝기는 마찬가지로 밝으면서 어쩐지 좀 다르게 변한 것 같더니 점점 더 갈수록 아주 투철히 달라졌습니다.
 
100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작은이들은 발을 멈추고 멘 것을 내려 놓고, 여럿이 부축해서 아에에유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언뜻 아베에유의 앞에, 몸은 아베에유의 반만큼도 못 되면서 번쩍번쩍하는 훌륭한 옷을 입은 작은이가 나타났습니다.
 
101
그의 머리 위에는, 고 작은 몸으로 무거워서 어떻게 견디나 싶게까지 커다란 금강석을 여러 개 박은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깨에는 나라님이 입으시는 웃옷을 걸치고 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102
그 때에 작은이 하나가 무릎을 꿇고 말하였습니다.
 
103
“로크의 임금님이시여, 이 어여쁜 계집아이가 호수의 옆에서 놀고 있기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 애의 이름은 아베에유라고 하고, 모친은 크라리이드 공작 부인이라고 한답니다.”
 
104
“응! 잘하였다, 잘하였다.”
 
105
하고 왕은 부하들을 칭찬하고,
 
106
“이 아이는 우리의 동무를 삼자!”
 
107
하였습니다.
 
108
그리고 작은 나라의 왕은 애써 발돋음을 하여서, 아베에유의 손에 입을 맞추고,
 
109
“우리가 모두 너를 위하여 복 많은 사람을 만들어 주고 무슨 일이든지 소원대로 들어 주마!”
 
110
고 하였습니다.
 
111
“그럼, 구두를 하나 주셔요. 구두가 다 해어졌으니까요.”
 
112
하고 아베에유가 말하니까,
 
113
“구두다!”
 
114
하고, 작은 왕은 창으로 땅바닥을 몇 번 쳤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앞에 진주로 장식한 어여쁜 은구두 한 켤레가 나왔습니다. 작은이 한 사람은 얼른 그 구두를 아베에게 신겼습니다.
 
115
그러나, 에베에유는 그리 기뻐하지도 아니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116
“어여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걸로 어머님께까지 신고 갈 수 있을까요?”
 
117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왕은,
 
118
“이 구두는 돌부리 많은 길로 신고 다니는 것은 아니란다. 산 속의 평평한 길을 걷는 구두다. 이 산 속에는 너에게 보여 줄 이상한 곳이 많으니깐!”
 
119
하였습니다.
 
120
아베에유는 애타는 소리로
 
121
“조그만 로크 임금님. 어여쁜 구두는 그만두고, 그 대신 나무 구두를 신겨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님께로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122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123
“조그만 로크 임금님!”
 
124
하고, 아베에유가 말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울음에 떨리고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125
“나를 어머님과 유우리에게로 돌아가게 하여 주세요. 그러면 그들과 한가지로 당신도 사랑하여 드릴 터이니…….”
 
126
“유우리란 누구냐?”
 
127
고 왕이 물었습니다. 아베에유는 왕이 어째서 유우리를 다 모르나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 애는 날 때부터 이 때까지 함께 길리운 동무라고 하였습니다.
 
128
왕은 속으로 아베에유를 왕비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는 터이었으므로, 아베에유에게 그렇게 친하게 못 잊어 하는 사내 동무가 있단 말을 듣고 몹시 성이 나서 얼굴을 찡그리고는 입을 꽉 다물고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29
왕이 성낸 것을 보고 아베에유는 그만 소리쳐 울었습니다. 작은 왕은 아베에유를 남에게 빼앗길까 겁이 나서 영영 이 산 밖에는 내어 보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130
그러나, 그 대신 아베에유가 너무 서러워하는 것이 애처러워서 날마다 밤마다 꿈에 어머니를 만나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어머니는 아베에유의 꿈을 꾸고, 아베에유는 어머니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유우리에게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아주 단념하고, 아베에유는 늙은 작은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131
작은이들 모두가 친절하게 굴면서, 마음껏 아베에유가 좋아하도록 위로하여 주고, 보통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지 못할 훌륭한 장남감도 만들어 주고 하였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때때로 지크와 더어드를 따라 땅 속 길로 가서 조그만 바위 틈으로 파란 하늘을 말끄러미 내어다보는 것이 아무것도보다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132
이렇게 살기를 어느 틈에 여섯 해가 지났습니다.
 

 
 

4. 4

 
134
“로크의 국왕 폐하께서 알현전(謁見殿)에서 부르십니다.”
 
135
어느 날 아침에 금으로 만든 악기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니까, 더어드가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무 때도 이렇게 의식을 차리지 아니하였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가 싶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아베에유는 더어드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가니까, 작은 왕은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뒤에 있는 문을 열였습니다. 그 곳은 금은 보물 들어 있는 방이어서, 눈이 휘황하는 훌륭한 보석 패물이 그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로크 왕은 그 방의 한편 구석에 금과 상아로 만든 걸상에 걸터 앉아서 아베에유를 보고,
 
136
“무엇이든지 네가 좋은 것을 가져라.”
 
137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베에유는 보물에는 눈도 뜨지 않고,
 
138
“아! 로크 임금님, 저는 단 한 번만 땅 위로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139
하였습니다.
 
140
그 때에 왕은 옆에 서 있는 부하들 보고 눈짓을 하니까, 부하는 큰 궤짝을 여러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와서, 아베에유 앞에 놓고, 문짝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는 보통 사람의 세상의 아무 나라 임금도 가지지 못한 크디큰 금강석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141
“가지고 싶은 것을 골라라.”
 
142
하고, 왕은 나직한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베에유는 그래도 고개만 흔들 뿐이었습니다.
 
143
“크라리이드 댁(우리 집) 꽃밭에 맺어진 이슬 한 방울이라도 저는 금강석중에서 제일 큰 금강석보다도 아름다운 줄 압니다. 보석 중에 제일 광채나는 보석이라도 유우리의 눈동자만은 못합니다.”
 
144
이렇게 아베에유가 말을 하니까, 그 점잖고 힘있는 뜨거운 말이 콕콕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서 마치 왕의 가슴을 무슨 칼끝이 바짝바짝 에이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붉고 더운 열이 올라서 가늘게 거의 보이지 않게 얼굴이 바르르 흔들리면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이나 후에 벌떡 일어서서 아베에유의 편을 향하고 엄염한 소리로,
 
145
“부귀를 천히 하는 자가 부귀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왕관을 쓰라! 오늘부터는 그대가 이 지하 왕국의 여왕이다.”
 
146
하셨습니다.
 
147
그로부터 30일 동안 지하의 왕국에서는 새로운 여왕을 축복하는 잔치가 굉장하였습니다.
 
148
그리고, 그 잔치가 끝나는 날, 왕은 좋은 찬란한 옷을 입고 아베에유에게로 왔습니다. 와서는 퍽 점잖은 소리로 나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베에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49
“조그만 로크의 임금님,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친절한 사람이니까, 나는 당신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다만 그럴 뿐입니다.”
 
150
왕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낙심되는 빛은 보이지 아니하고 일부러 빙그레 웃으면서,
 
151
“그러면 아베에유, 한 가지 약속을 하여 다오! 어느 때일는지 그대가 정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거든, 그것이 누구라고 나에게 알려 주기로…….”
 
152
아베에유는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여러 작은이들이 아베에유에게 친절히 구는 것은 전과 다르지 아니하였지마는, 아베에유는 전과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어린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153
땅 속에의 세상에서는 계집애가 열세 살이면 키도 커서 어른 노릇을 하는 터이고, 일전에 로크의 왕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더군다나 무슨 일을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54
둥글둥글한 장미꽃같이 불그스름한 두 볼은 홀쭉하게 말라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늙은 작은이들이 여러 가지로 위로도 하였건마는 그런 말은 듣지고 아니하고 매사에 풀이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하루는 찬란한 비단으로 장식한 자기 방에서 나와서 왕에게로 가서 왕의 손목을 텁석 잡고 기나긴 복도를 지나서, 땅 속 길을 걸어서, 그 바위의 틈으로 하늘이 내어 다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155
“조그만 로크의 임금님! 어머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겠습니다.”
 
156
이렇게 말할 때의 목소리는 떨리고, 그 눈에는 벌써 눈물이 글썽글썽하여서, 측은한 그 꼴을 보고는 혐의진 원수라도 마음이 풀어지지 아니치 못했으리라. 그러나, 왕은 진심으로 몹시 사랑하는 터이었으므로, 곧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157
그 날 하루는 아베에유는 꼭 한 자리에 선 채로, 바위 틈으로 저물어 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점점 검푸르게 되고, 벌써 하나씩 둘씩 별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158
그래도, 아베에유는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섰습니다.
 
159
어두워 가는 하늘을 보고 바깥 세상을 그리워하는 눈물이 하염없이 자꾸 흘렀습니다.
 
160
그러는 중에 언뜻 아베에유의 어깨에 손을 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베에유는 깜짝 놀라 돌아다본즉, 거기에는 로크외 왕이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새까만 웃옷을 입고 그리고 한쪽 팔에는 또 한 벌의 새까만 웃옷을 가지고 섰었습니다.
 
161
“이것을 둘러쓰고 내 뒤를 따라오너라.”
 
162
한 팔에 가졌던 웃옷을 주면서, 왕은 이 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아베에유는 이번에야말로 이것을 입고 왕의 뒤를 따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게 되는가 보다 하였습니다.
 
163
허적허적 이 때까지 가 보지 못하던 길을 지나서, 두 사람은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기어코 아베에유는 사람 사는 바깥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아! 이것 저것이 어떻게 그리 아름답고, 어떻게 그리 시원하고, 어떻게 그리 꽃내는 향긋한지, 아베에유는 너무나 반갑고 즐거워서, 그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164
그러는 동안에 로크의 왕은 아베에유을 안아서 땅 위에 내려 놓았습니다. 몸은 조그마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베에유를 덥석 안고, 아주 가볍게 걸어서 꽃밭을 꿰뚫고, 열려 있는 문으로 조용한 크라리이드 공작의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165
아! 오랫동안 그리던 집에 아베에유는 정말 온 것이었습니다.
 
166
왕은 그 때에 아베에유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167
“자세히 들어라, 아베에유야. 여기가 어딘지 너는 알겠지. 밤마다 밤마다 너의 어머니는 너를 꿈에 만나 보고, 웃고 이야기하고 반가워했지! 그것이 오늘은 꿈이 아니고 정말 생시에 만난단다. 자세히 들어라. 네가 만약 어머니 몸에 손을 대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하면, 네가 걸어온 요술의 효험이 없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다시는 너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꿈도 못 꾸게 된다.”
 
168
하고 신신당부했습니다.
 
169
그러는 동안에 두 사람은 벌써 오래 되었어도 낯익은 어머니의 방문 앞까지 와 섰습니다. 아베에유의 가슴은 벌룩벌룩하였습니다.
 
170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지금도 곱고 어여뻤으나 빛은 푸르고, 퍽 슬퍼하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베에유가 한참 들여다 보니까 슬픈 빛은 사라지고, 환하고 즐거운 빛이 보였습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손을 내어 미니까, 아베에유도 그만 왕의 말을 잊어버리고, 반갑고 기꺼운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로 와락 달려들려고 하였습니다.
 
171
그 때에 로크 왕은 깜짝 놀라서 번개같이 아베에유의 손이 어머니에게 닿기 전에 움켜 안고 땅 속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5. 5

173
왕이 아베에유의 소원을 한 번만 들어 주면 아베에유가 전과 같이 쾌할하고 즐겁게 지낼 줄 안 것은 왕의 잘못 생각이었습니다. 도리어 그 날부터는 날마다 날마다 방 속에 앉은 채로 앉아서 울기만 하고, 아무리 달래고 위로를 하여도 들은 체도 아니하였습니다.
 
174
“왜 그리 서러워하느냐, 응? 아베에유야, 내가 이야기를 하여 다오.”
 
175
하고, 로크 왕이 와서 이렇게 친절이 물어 보았습니다.
 
176
“조그만 로크의 임금님! 그리고 이 작은이 나라의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친절하고 좋은 분이어서, 나를 끔직이 위하고 이렇게 자주 위로 해 주시지만 나도 될 수만 있으면, 이렇게 여러분께 슬픈 빛을 아니 보이고 즐겁게 즐겁게 지내 보고 싶지만, 그렇지만 슬픈 생각이 내 힘보다도 더 강한 것을 어쩝니까. 내가 슬퍼하는 것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유우리를 만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어머니는 우리집에 잘 계신 줄 알고 있지만 유우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까요……. 여보십시오, 어떻게든지 유우리의 있는 곳을 좀 찾아 주셔요.”
 
177
애련한 이 사정을 듣고 작은아들은 모두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떻게든지 하여 유우리를 찾아 주어야겠다 하고 있었습니다.
 
178
왕은 즉시 이 산의 제일 깊은 땅 속에 있는 그 중 오래 사는 늙은 작은이에게로 의논하러 갔습니다.
 
179
그러나, 많은 늙은 작은이는, 여러 가지 거울과 이상한 망원경 같은 것과 또 요술의 힘으로 이 세상 것은 땅 위 일이거나, 땅 밑 세상 일이거나 모르는 것이 없고 다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80
로크의 왕의 말을 듣고, 그이는 유우리가 있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도 보고 생각도 하더니,
 
181
“있습니다, 있습니다. 호수의 물 속에 있는 마녀의 수궁에 있습니다. 그런데, 물 속의 감옥에 갇혀 있어서, 지금 어떻게든지 무슨 큰 일을 하려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182
하였습니다.
 
183
정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크라리이드 아주머니 댁에서 아베에유과 함께 나가서 호수 구경을 왔다가 마녀에게 잡혀와서 일곱 해를 지내는 동안에 유우리도 벌써 훌륭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184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유우리는 수궁의 여러 색시들에게 쪼들리게 되어 유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185
기어코 어느 날, 유우리가 수궁의 여왕 앞에 엎드려서 크라리이드 성으로 돌아가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186
그랬더니 여왕은 자리에서 내려와서 유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187
“네가 가면 어쩌니. 어느 때까지든지 여기서 나와 함께 있자! 그리고, 네가 이 나라의 왕이 되어 주렴.”
 
188
하였습니다.
 
189
“나는 아베에유에게로 장가를 들 터인데요.”
 
190
하고, 유우리는 아주 딱 잘라 말했습니다.
 
191
“무엇? 아베에유?”
 
192
하고, 여왕은 성이 벌컥 나서 그만 유우리를 수정 상자 속에 넣어서 무섭게 험한 바위 틈 굴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193
로크의 왕은 그 늙은 작은이한테 듣고, 즉시 이리로 찾아오느라는 것이 두 주일이나 걸려서 간신히 유우리가 갇혀 있는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작은이가 길을 걷는 것이 몹시 더딘 위에다가 길이 몹시 험하고 또 남의 눈을 피해 오느라고 이렇게 늦은 것이었습니다.
 
194
이런 줄 짐작하고 떠나올 때에 요술의 반지를 자기고 왔으므로 그 반지로 수정 상자에 금을 쭉 그으니까, 그대로 수정 상자가 갈라지고, 그 속에서 유우리가 나왔습니다.
 
195
“내 뒤를 얼른 따라오너라.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갈 터이니.”
 
196
하고, 왕은 유우리가 간곡히 감사한 인사를 하는 것도 채 듣지 않고, 그냥 앞서서 허적허적 갔습니다. 얼마를 가니까, 벌써 바깥 세상으로 나왔고, 저편 하늘에서 까마귀를 타고 작은이 하나가 마중을 왔습니다. 왕은 그 작은이를 보고,
 
197
“더어드, 얼른 돌아가서 아베에유 색시에게, 유우리는 일곱 해만에 지금 무사히 물 속 나라에게 빠져나와서, 크라리이드 댁 성으로 돌아갔다 하여라.”
 
198
하고 일렀습니다.
 
199
오랜간만에 돌아오는 중도에서 유우리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어려서 크라리이드 댁으로 길리우러 왔을 때부터 옷을 지어 주던 재봉사였습니다.
 
200
그는 벌써 그 동안에 머리가 희어졌는데, 처음에는 유우리를 보고 딴 신사인 줄 알더니, 나중에 그가 유우리인 줄 알고 미칠 듯이 반가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우리는 아주머님과 아베에유를 만날 일이 급한데 재봉사는 그저 반가운 결에 손목을 잡고 서서 아베에유 색시가 어느 날 유우리와 같이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더니 지금은 땅 속의 작은 나라에 붙잡혀 있는 일과 요사이는 밤마다 마나님의 꿈에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그 후 칠 년 동안에 동리의 형편이 변해진 것까지 일일이 수다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201
그러나, 유우리의 가슴은 아주머님과 아베에유의 생각으로 가득 차서 재봉사의 말은 한 마디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202
유우리는 간신히 수다스러운 재봉사에게 떨어져서 달음질하여 공작 부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203
부인은 유우리를 보더니,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그냥 얼싸안고 다시는 놓지 않을 듯이 꼭 껴안았습니다.
 
204
한참이나 후에 부인의 마음이 진정된 후에 유우리는 아베에유의 일을 묻고, 어떻게 찾아올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205
부인의 말씀은 그 때에 두 아이가 나가서 없어진 후에 깜짝 놀라서 많은 사람을 풀어 각처로 보내어 찾았답니다.
 
206
그 중에 한 사람은 분명히 연못가에서 여러 작은이들이 사람 하나를 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곧 뒤를 쫓아가다 보니까, 길거리에 비단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있기에 그것을 집으려고 허리를 굽히니까, 별안간 십여 명의 작은이들이 파리 떼 같이 달려들어서, 머리를 어찌 두들겼는지 그냥 정신을 잃고 쓰러졌더랍니다.
 
207
그 사람이 한참 동안이나 지난 후에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까, 그 때는 벌써 산 위에는 아무도 있지 아니했답니다.
 
208
그 날 밤에 모두가 잠이 들어서 조용한 후에 유우리는 가령(家令) 후랭크으루와 단 둘이서 성 안의 광 속에 들어가서 갑옷을 가뜬히 입고, 투구를 쓰고, 짤막한 칼을 허리에 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후랭크으루가 준비하여 놓은 말을 타고 작은이의 왕국을 찾아서 출발하였습니다.
 
209
한 시간쯤이나 가서, 늙은 후랭크으루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땅 속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굴 속으로 말을 내려서 걸어 들어갔습니다. 어두운 속을 더듬어서 댓 걸음쯤 가니까, 거기에는 환하게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그 빛은 두 사람이 가는 앞길을 막은, 크고 두꺼운 철문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210
“누구냐?”
 
211
하고, 그 속에서 사람의 소리가 났습니다.
 
212
“부란수랜드 댁 유우리가 크라리이드 공작 댁의 아베에유를 데리러 온 것이다.”
 
213
하고 대답하니까, 그 무겁고 두꺼운 문은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들어가니까, 문은 다시 닫혔습니다.
 
214
그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까 어쩐지 모르게 유우리의 가슴이 덜컥하였습니다.
 
215
그러나, 인제는 도망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즉 도리어 용기가 솟아나고, 도망은 할래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16
뒤에는 무거운 문이 잠기고 앞에는 수없는 작은이들이 일제히 활을 쏘아서, 화살이 빗발치듯 하였습니다. 유우리와 후랭크으루는 화살을 방패로 막아가면서 언뜻 보니까, 높다란 바위에 왕관을 쓰고, 왕이 입는 웃옷을 입은 작은이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217
그이를 보고, 유우리는 그냥 방패를 내어 던지고, 쏟아지는 화살도 겁내지 아니하고 그야말로 쏜살같이 뛰어나가서,
 
218
“아! 당신이십니까? 나를 구해 주신 이가 당신이십니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아베에유를 데려간 이도 당신의 부하였습니까?”
 
219
“나는 로크의 왕이다.”
 
220
하고 엄연히 말하고는 그 길디긴 하이얀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작은이의 왕은 부드럽고 친절한 눈으로 유우리를 보면서,
 
221
“아베에유는 우리들과 함께 몇 해나 살아 왔는데 그 동안 대개는 행복하게 지내었으며, 우리 나라 사람은 몸은 비록 작을망정 마음이 바르고 착한 사람들이므로 결코 아베에유 색시의 마음에 거슬리지는 아니하였다. 자! 가서 아베에유를 불러오너라.”
 
222
하고, 왕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223
죽은 듯이 조용한 속에 아베에유는 작은이의 뒤를 따라 차근차근히 걸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거기 둘러 서있는 수많은 작은이들을 보고 무슨 일인가고만 하였으나, 뜻밖에 뜻밖에 거기 유우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마음의 속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부르짓는 소리를 지르고 뛰어 달려들어 부란수랜드의 젊은 백작 유우리의 가슴에 몸을 안겼습니다. 모두들 조용하였습니다.
 
224
로크의 왕은 물끄러미 그 모양을 보고 섰더니, 아주 구슬픈 음성으로,
 
225
“아베에유! 이 사람이 너의 남편으로 삼을 사람인가?”
 
226
하였습니다.
 
227
“그렇습니다. 이 사람밖에 나는 더 사랑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진정으로 나오는 웃음을 웃을 수 있지 않습니까?”
 
228
하면서, 아베에유는 그만 기쁨이 넘쳐서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229
“아! 아베에유, 오늘은 울지 말아요. 자! 어서 눈물을 씻고 물 속의 마녀의 감옥에서 나를 구원해 준 저 임금님께 감사한 인사를 드려요, 응? 아베에유!”
 
230
하는 유우리의 말을 듣고, 아베에유는 눈물을 씻고 얼굴을 들었습니다.
 
231
그리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빛이 얼굴에 넘치는 듯하였습니다. 오늘에야 로크의 왕의 진정한 마음을 안 까닭이었습니다.
 
232
그리고, 자꾸 쾌할한 소리로,
 
233
“아! 나를 위하여 유우리를 구하여 주셨습니다그려. 아! 감사합니다. 로크의 임금님!”
 
234
이렇게 감사한 인사를 드리고, 겸하여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왕과 여러 작은이가 정으로 주는 여러 가지 선물을 정표(情標)로 받아 가지고, 아베에유 색시는 칠 년 만에 어머님의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235
그 후 오륙일 지나서 아베에유 색시와 부란수랜드 댁의 유우리 백작의 혼례식은 성대하게 지내었습니다.
 
236
그러나, 그 후부터는 아무리 바쁘거나 즐거운 일에 분망하여도 한 달에 한번씩 아베에유 색시는 땅 속 나라의 예전 동무를 찾아가기를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237
(불란서, 아나톨 프랑스 작)
238
《개벽》 1922년 7월호
【원문】호수(湖水)의 여왕(女王)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동화〕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5
- 전체 순위 : 3175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426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제향날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호수의 여왕 [제목]
 
  방정환(方定煥) [번역]
 
 
  1922년 [발표]
 
  동화(童話)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해설   본문   한글 
◈ 호수(湖水)의 여왕(女王)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