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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의태자 (麻衣太子) ◈
◇ 제3장.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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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광수(李光洙)
1
미륵은 먼지 묻은 낡은 보통이를 앞에 놓고 한참 주저하면서 그 어머니의 얼굴울 쳐다본다. 어린 생각에 그 속에는 자기의 장난 값으로 나오는 무슨 무서운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미륵은 마침내 끄내어, 매어 놓은 끄나불을 끄르고 한 껍데기를 벗기었다. 그 속에는 미륵이가 평생에 보지 못한 비단 보자기가 나왔다. 미륵은 그 부드러운 비단 저고리 하나가 나왔다. 미륵은 그것을 치어 들어 떨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2
미륵은 실망한 듯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3
『이게 무엇이요?』
 
4
하고 저고리를 내어 던지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두손으로 미륵이가 내어 던지는 저고리를 받아 들면서,
 
5
『이 옷이 승하하옵신 상감님 입으시던 옷이다. 이 등과 가슴에 해 무늬와 달 무늬가 있는 것을 봐라. 이것은 나라님 밖에는 못 입으시는 것이다.』
 
6
나라님 입으시던 저고리라는 말에 미륵이는 이상한 듯이 눈을 크게 떠서 그 저고리를 한번 더 보았다. 과연 앞 뒤와 팔에 둥그런 무늬가 있다.
 
7
『나라님 저고리가 왜 우리 집에 있어요?』
 
8
하고 미륵은 어머니의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울 보았다. 어머니는 그 저고리를 무릎 위에 놓고 이윽히 눈물을 흘리고 앉았더니 두 손으로 눈물을 거두고 미륵을 바라 보며,
 
9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내가 너를 기르기는 하였지마는 너를 낳으신 어머님은 벌써 돌아 가신 지가 오래시다…….』
 
10
이 말은 미륵에게는 청천에 벽력이다. 무슨 말인지 그뜻을 알 수 없었다.
 
11
그러나 아이들이 자기를 보고 아버지가 없는 자식이라고 빈정거린 것이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고 물을 때마다 분명히 죽었다고도 아니하고 또 어디 있다고도 아니한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난에 취한 어린 미륵이에게는 아버지가 잇고 없는 것이 그리 큰일은 아니었었다.
 
12
그러나 내 아버지와 나라님의 저고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미륵은 호기심 많은 눈을 어머니에게로 향하면서,
 
13
『그럼 나는 뉘 아들이야요?』
 
14
하고 물었다.
 
15
『너는 이번에 돌아 가신 임금님의 아드님이다. 이번에는 돌아 가신 나라님께서 네 아버님이시다. 어머님은 돌아 가시고…….』
 
16
『무어요? 나라님이 우리 아버지요?』
 
17
하고 미륵은 놀랐다.
 
18
『그렇단다. 이 저고리가 네 아버님의 저고리다. 그때에 네 어머님 되시는 뒷대궐마마께서 너를 이 저고리에 싸서…….』
 
19
하고는 차마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만 목이 메어서 운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 경문대왕(景文大王)께서 아직 헌안 대왕(憲安大王)의 부마가 되시기 전에 응렴(膺廉)이란 이름으로 풍채 좋은 국선(國仙)으로 공부하러 다닐 때에 설형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그의 누이와 서로 알게 되었다. 그 누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가 있어 도리어 그 오라비보다 글도 잘하였다. 그래서 장차는 혼인까지도 하려고 하였다. 마침 그 떼에 임해전(臨海殿) 잔치에서 헌안대왕의 눈에 들어 곧 대왕의 맏따님이신 영화 공주의 부마가 되시고 이내 헌안대왕이 승하하신 뒤를 따라 임금이 되시었다.
 
20
즉위하신 지 삼년, 즉 열 여덟 살 되시던 해에 왕은 영화 공주의 동생 되는 정화 공주를 버금왕후로 맞아 들이고, 또 다음 해에 옛정을 잊이 못하여 아직도 시집을 아니 가고 있던 설부인을 맞아 들여 뒷대궐에 계시게 하였다. 처음에는 둘째 왕후 정화 공주에게 왕의 사랑이 갔으나, 설 부인이 들어 오신 뒤로는 왕의 사랑은 설부인 분 왕후에게 대하여서는 점점서어하시었다.
 
21
왕의 총애가 설부인에게만 모임을 보고 영화·정화 두분 왕후께서는 무서운 질투가 생기시었다. 정화 공주가 버금마마로 들어 오신 때에는 영화왕후께서는 형제의 정도 잊이 버리고 정화마마를 시기하였으나 설 부인이 들어 오신 후에는 두 분은 하나가 되어 설부인을 미워하게 되었다. 더구나 뒷대궐마마가 잉태하신 뒤로는 두 분 왕후의 질투는 더욱 심하여졌다.
 
22
그래서 일변으로는 궁녀를 뒷대궐로 보내어 왕과 설부인의 하시는 말도 엿듣게 하고, 일변 무당과 술객을 시켜 설부인이 죽기를 빌었다. 그러나 술객과 무당들의 예방과 기도도 아무 효험이 없이 왕의 총애는 더욱 깊어질 뿐이요, 뒷대궐마마의 얼굴은 더욱 아리따와지는 듯하였다.
 
23
그러할 즈음에 뒷대궐마마가 순산을 하시어 왕자를 낳으시었다. 왕께서는 욍자의 용모와 울음 소리가 웅장하고 동에 임금왕자 뼈가 뚜렷하다 하여 그 왕자를 심히 사랑하시며 용덕(龍德)왕자라고 이름을 지으시었다. 이때에 큰마마께서는 잉태 중에 계시었다. 뒷대궐마마가 왕자를 낳고 또 왕께서 그 왕자를 사랑하시는 눈치를 보고는 영화·정화 두 분 마마께서는 심히 마음이 편안치 아니하여 여러 가지로 꾀를 생각하였다. 하루는 뒷대궐 염탐으로 보냈던 궁녀가 영화마마께서 와서 이런 놀라운 말씀을 아뢰었다.
 
24
『어젯밤에 가만히 엿들으니 뒷대궐마마께서 상감마마께 매어 달려우시며 아들이 나면 무엇합니까? 태자 되실 이는 따로 계신 걸, 하시오니 상감마마께오서는 염려 말아, 이 애로 태자를 삼으리라, 그러나 아직 발설치 말라 하시었읍니다.』
 
25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영화마마께서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26
『응, 고것을 내가 살려 들 줄 알고.』
 
27
하고 이를 갈으시었다. 영화 왕후는 그날 종일 정화 공주와 또 궁녀 중에 늙고 꾀많은 이를 모아 여러 가지로 의논한 결과로 왕께서 가장 믿으시는 일관(日官) 대내마(大奈麻) 간서이란 사람을 비밀히 내전으로 별입시를 시켰다. 간성 일관은 천문과 지리를 무불능하고 사람의 길흉 화복을 미리 판단하여 나라의 믿음이 두터운 사람이다. 왕후는 간성 대내마를 보고 뒷대궐마마와 용덕왕자의 말을 한 후에 조금도 왕자를 미워하는 빛을 보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왕자의 전정을 근심하는 듯이 용덕왕자의 전정이 어떠한 것을 물었다. 일관은 이렇게 아뢰었다.
 
28
『용덕왕저께서 탄강하옵시던 날에 왕자께서 탄생하시던 집(의가다)에는 흰 서광이 비치고 또 천정성(天□星)이 사흘을 두고 그 집 위에 비취었을 뿐더러, 왕자께서 탄생하신 날이 오월 오일이온즉 오의 오는 즉 다양이라 용덕왕자는 천정성 정기를 타서 탄강하시옵고 우리 신라에 크신 임금이 되시어 나라를 빛내실 성군이 되실 줄로 아뢰옵니다.』
 
29
일관의 말에 왕후는 더욱 놀라고 슬펐다. 그날은 일관을 돌려 보내고 다른 날 다시 사람을 보내어 폐백을 후히 한 후에 용덕왕자를 없이할 꾀를 물었다 일관은 처음에는 . 주저하였으나 어느 명이라고 거역할 수도 없을 뿐더러, 또 후히 상 준다는 말에 혹하여 왕후의 명대로 하기를 승낙하였다.
 
30
그런 뒤에 왕후는 왕께 뵈옵고 용덕왕자 탄강하신 기쁨을 아뢰었다. 왕은 왕후께서 용덕왕자 나신 것을 기뻐하심을 보고 마음에 흡족하여 왕후의 등을 어루만지시었다. 그때에 왕후는 왕께,
 
31
『용덕왕자의 상을 보시었읍니까?』
 
32
하고 여쭈었다.
 
33
『아직 안 보였소.』
 
34
『왜 간성 일관께 일생 행운을 안 보이십니까?』
 
35
하고 왕후는 일관에게 용덕왕자의 상을 보이기를 권하였다.
 
36
『참 좋은 말이요.』
 
37
하고 왕은 곧 일관을 부르시었다. 왕께서는 천히 용덕왕자를 무릎 위에 놓으시고 일관더러 왕자의 상과 일생의 행운을 보라고 명하였다. 일관은 용상에서 서너 걸음 앞에 꿇어 엎드리어 이윽히 용덕왕자를 바라보더니,
 
38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좌우를 물리치시오면 바로 아뢰오리다.』
 
39
왕은 얼굴에 근심하는 빛을 띄우시더니 마침내 일관의 말대로 좌우를 물리고 또 왕자도 뒷대궐로 들여 보내고 일관을 보시며,
 
40
『무슨 불길함이 있느냐?』
 
41
하였다. 일관은 여러 번 이마를 조아리며,
 
42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
 
43
하고 용이히 말을 아니한다.
 
44
왕은 더욱 조급하시어,
 
45
『어서 아뢰어라, 아무러한 불길한 것이라도 거침 없이 아뢰어라.』
 
46
하신다. 그제야 일관이 사양타 못하여,
 
47
『왕자 탄강하옵신 날이 오월 오일이옵고 또 그날에 왕자 탄생하시던 집 위에 흰 빛이 비치었사오니 흰 빛은 사특한 빛이라 반드시 이 왕자의 상을 뵈오니 눈과 이마에 살기가 어리어 임금이나 아버지를 시역할 기상을 띄웠사오니 반드시 후일에 큰 화단을 일으킬 상인 줄로 아뢰옵니다.』
 
48
하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49
왕께서는 일관의 말을 들으시고 심히 슬퍼하시었으나 일관을 깊이 믿으시는 바이라 그의 말을 의심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측은한 애정을 생각할 때에는 차마 그 귀여운 왕자를 어찌할 수도 없었다.
 
50
『설마 그러랴.』
 
51
하고 왕은 일관을 꾸짖으시었다.
 
52
『폐하께옵서 신의 말을 안 믿으실진대 신의 늙은 목을 버히시되 눈만 빼어 황룡사 구층탑 추녀 끝에 달아 주옵소서. 반드시 얼마 아니하여 신의 말이 명백함을 보오리이다.』
 
53
하고 일관은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되 말소리는 극히 엄숙하였다.
 
54
왕께서는 슬픔과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일관더러 물러가라 명하시고 옥좌에서 일어나시려 할 때에 일관은 다시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55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국록지신이라 감히 성명(聖名)을 기일수가 없사오니 죽을 죄로 한 말씀을 더 아뢰올 바가 있읍니다.』
 
56
하고 더욱 머리를 조아린다.
 
57
왕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58
『또 무슨 불길한 말이 남았느냐?』
 
59
하고 일관을 노려 보신다.
 
60
『다름이 아니옵고 뒷대궐에 가끔 요기스러운 기운이 침범하오니 필시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옵고, 또 용덕왕자의 용모를 뵈옵건대 이손(伊飡) 윤훙과 흡사하오니 폐하께서 밝히 살피시옵소서.』
 
61
하고 수없이 고개를 조아린다.
 
62
왕께서는 발을 구르시며,
 
63
『물러나라!』
 
64
하고 어성을 높이시었다.
 
65
왕은 이손 윤훙이 설씨 집과 친근한 줄을 알 뿐더러, 윤훙이 힘이 있고 풍채가 좋으며 여색을 좋아하는 줄도 아신다. 또 궁중에 밤이면 어떤 사람이 내왕하는 기색이 있단 말도 돌았고, 또 그 수상한 사람이 뒷대궐로 배회한다는 것이며, 왕이 뒷대궐에서 주무시지 아니하는 날에는 뒷대궐마마의 방에서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설부인을 총애하시는 왕께서는 그것이 다 영화·정화 두 마마의 질투에서 지어 내는 말로만 여기고 믿지를 아니하였다. 지금 일관의 말을 들으시매, 왕의 가슴에는 의심과 질투의 무서운 불길이 일어났다.
 
66
「과연 용덕왕자는 윤훙과 흡사하다.」
 
67
왕도 마침내 이러한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 겨우 열 아홉 살 밖에 안되신 왕은 오래 두고 생각할 새도 없이 곧 용덕왕자를 죽이고 설 부인을 국문하기로 결심하였다.
 
68
사흘이나 왕께서 안 오시는 것을 보고 뒷대궐마마는 심히 맘이 괴로우시었다. 하루에는 두 번씩은 꼭 왕자를 보시던 왕께서 사흘 동안이나 한번도 아니 오시는 것은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근심이 되었다.
 
69
마마는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왕자의 유모와 함께 왕자의 시름없이 자는 양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즈음에 평소에 뒷대궐마마를 따르던 궁녀 하나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
 
70
『마마, 마마, 지금 용덕아기를 죽이러 옵니다. 벌써 내전 문에 들어 왔읍니다.』
 
71
하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72
마마는 정신 없이 아기를 껴안았다. 이때에 벌써 쿵쿵하고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마는 왕께서 벗어 놓으시었던 저고리를 내어 용덕왕자를 쌌다. 왕자에게 맡기어 가지고 도망을 시키시려 함이다.
 
73
누구에게 말을 들은 것도 아니언만 마마는 여자의 직각으로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를 짐작한 것이다.
 
74
그러나 유모가 왕자를 받아 들기 전에 왕의 사자들은 벌써 방문 밖에 왔다. 그중에 한 사람이 벼락같이 문을 열고 들어 서며,
 
75
『상감마마의 명으로 용덕왕자를 모시러 왔읍니다.』
 
76
하고 뒷대궐마마 앞에 허리를 굽히었다. 마마는 용덕왕자를 꼭 껴안으며,
 
77
『이 깊은 밤에 어디로 모시어 간단 말이요?』
 
78
하고 반항을 하였다.
 
79
이때에 문밖에 섰던 다른 사람 하나가 손에 번쩍번쩍하는 칼을 들고 뛰어 들어오며,
 
80
『왕명이 지엄하시니 시각을 지체할 수 없읍니다.』
 
81
하고 마마의 곁으로 바싹 대든다.
 
82
마마는 왕자를 안은 대로 그 사람을 피하여 돌아 서며,
 
83
『상감마마 분부시라면 거역할 수도 없거니와, 죽이더라도 내 손으로 죽일 터이니, 이 아기의 몸에 손을 대지마오.』
 
84
하였다. 죽이러 온 사람들은 아기를 안고 애쓰는 어머니의 정경에 감동이 되어 마마의 말대로 하기를 승낙하고 손에 들었던 칼을 마마에게 드렸다.
 
85
마마는 칼을 받아 입에 물고 왕자를 안고 마루로 나와 화정지라는 연못가에 있는 청련각에 올랐다. 거기서 마마는 어스름한 달빛에 품에 안긴 왕자를 다시금 보다가 크게 통곡하고 나서 아버지의 저고리에 싼 왕자를 늠실하는 연못을 향하고 집어 던지었다. 그러고는 차마 아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그 자리에 엎드러져 울다가 죽이러 온 사람들을 향하여,
 
86
『상감마마께서 피 묻은 칼을 올리라 하시거든 이 칼을 올리오.』
 
87
하고 칼끝을 입에 물고 마루 위에 엎드러지시었다.
 
88
그때에 유모는 미리 마마의 뜻을 알아 차리고 청련각 밑에 서 있다가 떨어져 내려 오는 왕자를 물에 떨어지기 전에 두 팔로 받았다. 그때에 유모의 손가락에 왕자의 바른편 눈을 찔러 왕자는 한 눈을 잃어 버렸다.
 
89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나서 어머니는 미륵의 앞에 놓인 저고리를 뒤집어 옷깃에 묻은 검은 것을 가리키며,
 
90
『미륵아, 이것이 그때 네 눈에서 나온 피다. 내가 너를 받다가 내 손가락이 네 눈을 찔러 너는 한 눈이 멀고, 여기는 이렇게 피가 묻었구나.』
 
91
하고 눈물을 짓는다.
 
92
어머니(그렇다 길러 준 어머니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미륵의 눈에는 이상한 빛이 번쩍한다. 미륵은 어머니 손에 있는 피 묻은 저고리를 보고 손을 들어 보지 못하는 바른편 눈을 만지었다. 그러할 때에 전신에 피가 끌오어 올라 미륵은 마치 숨이 막힐 듯하였다. 비록 열 세살 살이라 하여도 숙성한 미륵은 지금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당시의 광경을 그려 볼 수가 있었다.
 
93
미륵은 연못에 집어 던지는 자기를 받아다가 지금까지 친자식같이 길러 준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에는 분한 마과 슬픈 맘이 부글부글 끓어서 고마운 맘으로 변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친어머니를 모함한 두 왕후와 듯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친어머니를 모함한 두 왕후와 그 꾀임을 듣고 어머니를 죽이게 한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미륵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드득 같았다. 어머니는 미륵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머니는 미륵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가는 양을 보고 놀랐다. 장난군이 어린 미륵의 속에 이런 무서운 분노가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또 아 장난을 그치게 하자는 것과 이미 왕이 돌아 가신 양반이 아버지인 것이나 알리어 주자는 뜻에 지나지 못하였다.
 
94
그리하였던 것이 미륵이가 이처럼 무서운 분노의 상을 보이는 것을 볼 때에 어머니는 아니 놀랄 수 없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95
그래서 어머니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96
『넌들 얼마나 슬프고 분하겠느냐? 그러나 참아야 한다. 만일 네가 용덕왕자라는 말이 나기만 하면 나와 너와 두 목숨은 금시에 없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너를 안고 도망한 뒤에도 연못에 시체가 없다고 하여 필경 내가 너를 안고 도망한 것이라고 사방으로 수탐을 하였던 것이다. 나도 몇 번을 잡힐 듯하다가 천행으로 벗어나서 너도 이만큼 자랐으니 이제야 너만 잠자코 있으면 누가알랴 . 어서 아무런 생각 말고 공부나 잘해서 후일에 귀히 되어라. 그러면 돌아 가신 뒷대궐마마께서도 혼이라도 넋이라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97
하고 애걸하듯이 타일렀다.
 
98
미륵은 이윽히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니 벌떡 일어나 피 묻은 저고리를 발로 밟고 두 손으로 잡아 당겨 드윽 찢었다. 어머니가 일어나 막으려 하였으나 그럴 새가 없었다. 미륵은 찢어진 저고리 조각을 입에 물고 미친 사람 모양으로 수없이 물어 뜯었다.
 
99
『어머니 나는 이 원수를 갚고야 말아요! 이 원수를 갚고야 말아요!』
 
100
하고 부르르 떨었다.
 
101
미륵은 갑자기 어른이 된 듯하였다. 장난군이 모양이다 사라지고 말았다.
 
102
이삼일 동안 미륵은 밖에 나가 놀지도 아니하고 이야기도 아니하고 가만히 집에만 있었다. 어머니의 맘은 심히 슬펐으나 벌써 미륵은 자기 품속에 들어 올 장난군이 아들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그럴 때에 퍽 슬펐다.
 
103
하루는 미륵은 어머니 앞에 절을 하였다.
 
104
『나는 가요!』
 
105
하는 미륵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106
깜짝 놀란 어머니의 미륵의 팔을 불들며,
 
107
『그게 무슨 소리냐……나를 두고 가기를 어디로 간단 말이냐?』
 
108
하고 떼쳐 버리고 가는 남편에게 매어 달리는 아내 모양으로 미륵에게 매어 달려 울었다. 미륵도 울었다. 그러나,
 
109
『나는 가요! 어머니의 은혜는 일생에 잊지 아니하리다……그러나 나는 가요!』
 
110
하고 미륵은 울어 쓰러진 늙은 어머니를 내어 버리고 문밖으로 나가 버리었다.
 
111
어머니는 울며 불며 따라 나가 온 동네를 두루 찾았으나 미륵을 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뒷 고개에 뛰어 올라가 저 멀리 끝없는 길로 가물가물가는 미륵의 그림자를 보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엎드러져 끝없이 울었다.
 
112
미륵은 십 삼년 동안 길러 낸 유모의 집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113
친어미니로 알고 여태껏 길러난 정에 미륵은 가다가는 멈칫멈칫 서서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뒤를 돌아 보고, 개천을 건널 때마다 뒤를 돌아 보고, 동네에서 늙은 부인네가 나와도 어머니 나 아닌가 하였다 ———— 그리고는 눈물이 흘러서 두 주먹으로 씻어 버리고는 코를 풀었다.
 
114
그러나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칼을 물고 엎드러진 것이 눈에 번뜻 보일 때에는 전신의 피가 모두 얼굴로 거꾸로 흘러 오르고 숨결이 씨근거렸다.
 
115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이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116
하고 두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117
절을 만날 때마다 미륵은 부처님께 빌고 고개턱에서 길 서낭을 만날 때마다 길 서낭께 빌었다.
 
118
『이 원수를 갚게 해줍소사! 어머니 원수를 갚게 해줍소사!』
 
119
하고 빌고 빌고 또 빌었다.
 
120
며칠을 걸어 미륵은 수리재(□述嶺)에 다다랐다. 수리재에는 인산(因山) 구경 가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나무 그늘을 찾아 쉬었다. 모두 깃것과 베것으로 소복을 하고 혹은 늙은이를 모시고 혹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간다. 어떤 사람은 수레를 타고, 어떤 사람은 가마를 타고, 어떤 사람은 말과 나귀를 타고, 그렇지 못한 이는 지팡이를 들었다. 미륵이도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서 찌는 볕에 흘러 내리는 땀을 씻었다. 벌써 가을이언마는 여름과 같이 덥다. 여름내 가뭄에 길가에 풀 입사귀들은 맘대로 자라보지도 못하고 말라 붙고 키 작은 흰 국화꽃이 겨우 어서 기운 없이 졸고 있을 뿐이다.
 
121
인산 구경 오는 사람에게 파느라고 떡과 술과 엿과 옥수수 삶은 것과 감과 이런 것을 길가에 벌이고 앉은 사람들도 많다. 먹을 것을 보니 미륵은 더욱 배가 고팠으나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중에도 감과 인절미가 몹시 먹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같이 가는 부모에게 돈을 얻어서 맘대로 사 먹는다. 어떤 아이는 한손에는 옥수수를 들고, 한손에는 인절미를 들고 이것 한 입 먹고 저것 한 입 먹고 두 볼룩하도록 입에 넣고 좋아한다.
 
122
미륵은 참다 못하여 떡장수 앞에 가서,
 
123
『여보 내가 시장하여 떡 한 개만 주오.』
 
124
하였다.
 
125
떡 팔년 노파는 미륵이를 물끄러미 보더니 주름 잡힌 손을 내밀며,
 
126
『돈 내라.』
 
127
한다. 미륵은,
 
128
『미륵은 돈은 없소마는 재주는 있으니 재주를 보고 떡 한 개만 주오.』
 
129
하였다. 노파는 내밀었던 손을 끌어 들이며,
 
130
『병신 맘 고운 데 없다고 애꾸눈이 녀석이 뻔질뻔질도 하다. 재수 없다.』
 
131
하고 소리를 빽 지른다.
 
132
미륵은 옥수수 장수 엿장수한테 차례 차례로 청을 하였으나 하나도 들어 주지를 아니하였다 .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할 즈음에 웬 사람이 뒤로서 미륵의 어깨를 밀치면서,
 
133
『네가 재주가 있다니 무슨 재주가 있느냐?』
 
134
하고 묻는다.
 
135
미륵은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눈이 움푹 들어간 무시운 사람이다.
 
136
『달음질 팔매진 또 활이 있으면 활 쏘는 재주도 있지요.』
 
137
하고 미륵은 고개를 번쩍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138
『그럼 어디 팔매부터 한번 던져 보아라.』
 
139
『먼 팔매요?』
 
140
『팔매란 멀리만 가시는 쓸데 없는 것이니까, 가까운 것이라도 바로 맞혀야 쓰는 것이다.』
 
141
『그러지요.』
 
142
하고 미륵은 손에 맞는 돌 한 개를 골라 들고 여남은 걸음 뒤로 물러섰다.
 
143
곁에 있던 사람들은 구경 났다고 미륵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떡 팔던 노파는 영문을 모르고 눈이 둥그렇다.
 
144
미륵은 오른손에 돌을 들고 두어 번 팔을 둘러 보더니,
 
145
『자 보시오, 이제 저 떡 파는 마누라의 귀고리를 맞힙니다.』
 
146
하고 미륵은 빙긋 웃었다. 떡 한 개 아니 준 원수를 갚으려 함이다.
 
147
『바로 맞히기만 하면 내 베 한 필 줄란다.』
 
148
하고 구경군 중에서 한 사람이 나선다.
 
149
『정말 사람은 다치지 말고 꼭 귀고리를 맞히면 나는 송아지 하나를 줄란다.』
 
150
하고 또 한 사람이 나선다.
 
151
『네 말대로 바로 맞히기만 하면 나는 네게 좋은 환도 하나를 주마.』
 
152
하고 키 크고 얼굴 검고 눈 움푹한 사람이 자기가 찼던 환도를 떼어 든다.
 
153
그 환도는 썩 좋은 것이다. 번쩍번쩍하는 칠한 집에 호피로 끈을 달고 자루를 금은으로 아로 새겼다. 환도를 준단 말에 미륵은 가슴이 두근거리도록 좋았다. 그중에 혼난 것은 떡장수 노파다.
 
154
『저 애꾸눈이 녀석이 누구의 코피를 내려고 저래!』
 
155
하고 손으로 낯을 가리고 날아 오는 돌을 피하는 듯이 좌우로 왔다갔다 한다.
 
156
『나간다!』
 
157
소리가 나자 들은 「앵!」하고 소리를 내며 미륵의 손을 떠났다.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지어 떡장수 노파를 바라보았다. 떡장수 노파는
 
158
「앵!」하고 돌 지나가는 소리를 겁결에 흉내를 내면서 손으로 귀를 만지었다. 동그렇던 귀고리는 길쭉하게 찌그러져 버렸다.
 
159
『저런!』
 
160
『아이!』
 
161
『참말!』
 
162
하고 사람들은 일을 벌리고 빙그레 웃고 섰는 미륵이를 보았다. 미륵의 얼굴은 공명과 기쁨으로 불그레했다. 사람들은 이 팔매 잘 치는 미륵이를 가까이 보려고 한걸음 두 걸음 바싹바싹 들어 섰다. 조그마한 미륵이는 의기 양양하여 둘러 선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떡과 엿과 옥수수를 사다가 미륵의 손에 쥐어 주었다. 미륵은 그것을 다 손에 들지 못하여 받는 대로 땅에 놓았다.
 
163
미륵은 무명 한 필, 송아지 한 필 준다던 사람들을 돌아 본다. 그들은 기가 막혀 저 뒷줄에 물러섰다. 환도를 준다던 사람도 눈이 휘둥그래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섰다.
 
164
미륵은 그 사람의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165
『이 환도는 내 것이요!』
 
166
하고 그 사람의 손에 든 환도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아까와서 차마 내놓지 못하는 듯이 환도를 한번 보더니 그것을 뒤로 감추며,
 
167
『아니다. 네가 팔매는 잘친다마는 활이야 웬걸 쏘겠느냐? 네가 만일 활로 저 망부석 위에 앉은 독수리를 쏘아 맞히면 내 이 환도와 활까지도 너를 주마.』
 
168
한다.
 
169
사람들은 망부석을 바라보았다. 미륵도 바라보았다. 과연 커다란 독수리한 마리가 앉았다. 미륵의 마음은 솔깃하였다.
 
170
『그걸 못 맞혀요? 활만 있으면.』
 
171
하고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172
그 얼굴 시커먼 사람은 미륵의 대담한 말에 한번 더 놀래었으나 여럿이 보는 데 한 말을 도로 거둘 수가 없어서 자기의 활과 살을 빌려 주었다.
 
173
미륵은 제 키만이 나 한 활에다가 휘청휘청 살을 골라 한 대는 등에 꽂고 한 대는 줄에 메어 들고 그 시커먼 사람을 향하여,
 
174
『저 독수리를 맞히기만 하면 이 활과 그 환도는 내 것 이지요?』
 
175
하고 한번 다쳤다.
 
176
그 사람은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사람들은 아까보다도 더 많이 모여 들었다.
 
177
미륵은 사람들을 한번 돌아 본 뒤에 가만히 활을 들어 삐긋이 당기면서,
 
178
『첫 살은 독수리를 날리는 살이요.』
 
179
하고 오른손을 투겼다. 살은 휙 소리를 내고 바로 독수리의 등을 스칠 듯 날아 올랐다.
 
180
미륵은 둘째 살을 메어 들고 하늘을 향하였다.
【원문】제3장.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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