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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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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8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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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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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제목을 걸어 보긴 하였으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향락을 맛보는 그런 취미는 본시부터 나에게는 없다. 작가가 소용되어서 등장을 시켜놓고, 쓸 대로 써먹기는 하였으나 그대로 한구성에 처박아 두기도 무엇하고, 어디로 여행을 갔다거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더나 버렸다고 하기는 쑥스럽고 그럴 경우에 슬쩍 눈에 띄지 않게 퇴장을 시키는 묘법은 없을 것인가. 만일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이렇게 한가할 때에 생각해 두면 후일에 쩔쩔 매지 않고 노트를 들쳐가며 하나 하나 임기(臨機)하여 적의(適意)하게 처리하련만은, 그리고 간혹 작중인물을 처치하기에 쩔쩔매고 있는 우인 작가에겐 저서로라도 그 방법을 서로 나누어서 필요치 않은 수고를 덜을 수 있을 것을, 혹은 어느 한가하여 독서의 여유만을 많이 갖고 있는 그러한 분이 동서고금의 대소설 작품을 섭렵하여 명대가들의 작중인물 처치방법을 모조리 뽑아서 책이라도 한책 지어주었으면, ─ 이런 태평한 생각을 하고 누었다가, 문득 무시무시한 제목이라도 걸고 그러나 내용을 결코 무섭지 않은, 그러한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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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처치에 곤란한 작중인물은 살인해 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필요한 때에는 정성을 들여 모셔다가, 걸음을 걸리고, 이야기를 시키고, 고함을 지르게 하고, 심지어는 차마 못할 추잡한 일까지 시킨 뒤에, 쓸모가 없어졌다고 그대로 단숨에 죽여 버린다면, 세상에 이처럼 잔학한 놈이 어디 있을까마는, 작가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시침을 뚝 따고 헤치웠고, 장차로도 아마 이러한 방법은 수없이 많이 사용할 것이다. 여태껏 싱싱하던 녀석이 이를 뽑고 돌아오던 길에 바람을 쏘이고 자리에 누운 지, 일양일간(一兩日間)에 죽어 뻐드러지는 것을 우리는 서양소설에서 많이 보아왔다. 어느 재조가 그리 능하지 못할 소설가는 철없이 많은 사람을 등장시켰으나,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줄기와는 별반 관계없는 인물들이 여기 저기서 들끓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쩔쩔 매던 끝에, 궁여의 일책으로 악성의 전염병을 유행시켰다고 한다. 월여(月餘)를 지나 전염병이 까라질 무렵에, 필요한 인물을 남겨놓고 이여(爾餘)의 것은 전부 몰살을 해버렸다고 해치웠다. 한 페이지 안쪽으로 A도 죽고 B도 죽고 C도 죽었다식으로 깨끗하니 청결해 버린 것이다. 대답하기 짝이 없는 처치방법이지만, 동시에 치졸스럽고 서투르기 비할 데 없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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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아직 이러한 살인의 능수가 없다. 구보 박태원 씨의 「우맹」이 아마 신문학 있는 이래 보기드문 살인을 많이 하였다 할 것이나, 이것은 구보의 취미나 구상 방식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구보가 살인 기록의 보지자가 된 것은 전혀 타락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으로, 말하자면 「우맹」의 자료가 된 우리 백백교주의 덕분이라 할 것이다. 구보는 김용해 교주에게 사의를 표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맹」의 독자는 알 일이지마는, 살인을 치를 때마다 구보는 낯을 찡그리고, 차마 못할 짓을 하는 것 모양으로 아주 인정주의적 애상에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무척 구보에게 연민을 느꼈다. 이왕 백백교를 쓰는 바엔, 작가는 좀더 잔학하고 잔인하고 매정해도 되지 않을까. 손을 대어 파헤치기는 하면서도, 눈을 딱 지르감고 해내지는 못하는 곳에 구보의 사랑스러운 인정미가 있다.(객담이지만 이러한 인정주의가 「천변풍경」같은 데서는, 예하면 여급 기미꼬의 의협심으로서 나타났는데, 나는 이것을 구보의 통속적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맹」에는 김학수, 기생, 고학생 등의 관계로서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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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기억으론 역시 채만식 씨의 「탁류」가 있다. 하루 밤 동안에, 고태수와 김씨 부인이 싸전가게 탁삭부리 영감한테, 몽둥이찜을 겪고 뻐드러졌다. 고태수는 죽고, 김씨 부인도 죽고 싸전가게 주인영감은 감옥으로 갔으니, 중요인물 셋이 대번에 처치되고,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 덕택에 한 가닥을 떼어버리고, 꼽추와 초봉이, 계봉이와 승재 ─ 이렇게 단촐히 되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도 채씨는 결국 초봉이로 하여 꼽추를 살해케 하고 초봉이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으로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를 끝맺었다. 살인을 퍽 유인하게 썼고, 이 점에서 채씨는 구보보다도 살인작가이 명예를 지님에 유자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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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나도 「대하」에서 박성권의 첩, 파평 윤씨네 족속을 없애 버리려고 애쓰던 끝에, 살인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데는, 구보다 채씨보다 훨씬 뒤선다. 더구나 가족사 같은 데는 원체 따라 다니는 인물이 많게 되기가 쉽고, 또 나의 역량으론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하나 하나 개성을 주기가 곤란하여 인물을 단촐하게 하느라고 이주를 시키고 병도 유행시키고 했는데,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다단하고 복잡해 가서 적지 않이 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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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씨 같은 이는 이 즈음 연재중인 「딸삼형제」(연재중의 것을 인용해서 죄송스럽다)에서 가족관계를 전부 떼어버리고 그대로 딸만 삼형제로 만들고자, 어머니는 병으로 없애버리고 아버지는 다소 부자연을 느끼리만큼 등장을 시키지 않고, 멀리 첩살림을 시켜버리고 말았다. 언제이고 필요한 때엔 끌어다 사용하고, 필요치 않을 때엔 그대로 첩댁에 처박혀 돌 모양 같다. 원체 신문소설에 능한 분인지라 부자연을 느낄 대목에선 아버지를 사랑으로 모셔들이기도 하지만, 그 푸대접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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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씨는 「정열은 병인가」에서 서구의 행장을 자의롭게 보장하기 위하여 거추장스러울 그의 부모를 아예 작중에 끌어들이지도 않고 없는 것으로 해 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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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단촐하게 꾸미기 위하여 김동인 씨나 이태준 씨의 방법을 취할 것인가. 혹은 채만식 씨의 방법을 취할 것인가는 작가가 장편에 손을 대어 처음 구상을 꾸밀 때엔 의식, 무의식간에 한 번 당도해 보는 문제는 아닐까하고 나는 지금 생각해 보도 있다.(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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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 193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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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