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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제작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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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6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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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작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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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 완성되기까지의 순서를 열거하여, 제작의 과정을 공개하라는 것이 제목의 요지인데, 실상은 나는 아직 장편제작의 경험이 그리 많지는 못하다. 아니 많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한 번의 경험밖에 없는 것이다. 금년 정월에 전작 채로 상재된 「대하」제1부가 즉 그것인데, 이것으로 말해도, 장차 어찌될는지 모르나, 지금 내가 계획하고 있는 상당히 길고 거대한 자연소설의 단초에 불과한 것이니, 일이 중도에도 이르기 전 제작 노트부터 발표하는 것이, 어쩐지 거북스럽고 한갓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 않는 배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남들이 어떠한 준비와 과정을 거쳐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가를 궁금히 생각하여 왔고, 동시에 나의 태도 같은 것도 될 수 있으면 공개하여, 뜻이 같은 분들의 조언을 얻는 것이 좋은 일이며 또한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 이 기회에 염치를 무릅쓰고 간청(懇請)하는 대로 『대하』의 집필일기를 펼쳐놓고 이 기록을 초(草)해 보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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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단편에서도 그러하지만 나는 먼저 주제를 생각하는 편에 속한다. 제재나 소재가 손에 들어와도, 그와 함께 주제가 뚜렷이 서지 않는 것이면, 나는 좀처럼 작품에 손을 대지 못한다. 어설피 손을 대었다가도 주제가 서지 않으면 그 소재와 제재를 자유로 요리하고 제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모델’ 소설이면 더욱 현저하다. 주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고 작품을 구성한 것을 보면 ‘모델’에서 발을 뽑지 못하고 그것에 끌리어 단긴 흔적이 눈에 띄는 법이다. 톨스토이가 모파상론에서 말한 바는 흥미가 있다. 천품과 한가지로, 진정한 예술적 작품에 꼭 필요한 세 가지의 자격을 1. 저자의 소재에 대한 정당한 관계, 즉 도덕적 관계, 2. 명석(明晳), 다시 말하면 표현의 미(이 양자는 동일물이다), 그리고 3. 성실, 즉 묘사되는 제재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미움의 거짓없는 감정, 이렇게 들었는데, 특히 제1요소에 대하여 그는, 모파상의 거개의 작품을 이 점에서 저윽이 준열히 공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모든 예술의 작품을 하나의 전체로 결합시키고, 그것으로부터 박진적(迫眞的) 일루젼이라는 효과를 발생케 하는 접합물은 인물과 처소의 통일이 아니고, 제재에 대한 저자의 독립한 도덕적 관계, 그것이다. - 이러한 톨스토이의 명제는 세밀한 검토를 요하는 것이지만, 그가 제재와 작자와의 관계라고 한 것이 주로 우선 주제의 확립을 요하는 것을 말한 것임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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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불가분리의 시간적 연관 밑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물론 구성인데, 이것은 작가의 구상력이라고 하는 이상이나 인식의 정도, 또는 현실 파악과 현실 요리의 능력 기타 일체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으로 이것만 보면 그 작가가 어느 정도의 능력과 안식(眼識)을 갖고 재료에 임하였으며, 동시에 그의 세계관, 문학적 입장 등이 어떤 것인지 대체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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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성격의 설정, 전형 창조에의 노력 등이 우선 앞서고, 그 다음은 플롯의 정리와 창조가 뒤선다. 인물의 설정에서 당연히 따르는 것은 환경의 창조다. 이런 것이 대충 세워지면, 방계인물 그리고 플롯에 들어가서 삽화(에피소드)와 시츄에이션(발단, 클라이막스, 대단원 등)과 서술의 순서 등을 생각하게 되고 끝으로 장면을 만들고 서경(敍景) 등을 고려하여 전체의 빈틈없는 구성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 때에 장면이나 인물에 순응하여 표현 형식을 적당히 생각하게 된다. 편지의 형식으로 한다든가, 설화체로 한다든가, 보고의 형식으로 한다든가, 어쨌든 재주껏 표현과 기교에 힘을 써본다. 이것이 되면 나는 종이에 붓을 대어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속일 수 없는 것은 작품이 절반이 넘어가면 처음 구성이 적지 않게 뒤틀린다는 점이다. 전연 별개가 된다면 큰일이지만, 아무래도 다소간의 동요는 면치 못하게 된다. 구성이 세밀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써가면서 예술적 감흥이 통일되고 앙양되어서, 가끔 신통한 묘법이 생겨나올 수 있는 것으로, 결코 비관할 것이 못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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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순서로 나는 장편을 제작하였고 또 금호도 제작하려고 하는데 「대하」의 실제에 즉하여 그 요점을 말해보고 이 고(稿)를 끊으려고 한다. 「대하」의 제재와 작가의 태도는 내가 작년도에 발표한 「현대 조선소설의 이념」과 「풍속과 세태」등, 일련의 장편소설 개조론에서 누차 말해온 ‘연대기를 가족사의 가운데 현현(顯現)시킨다’는 일구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시대는 30년 전부터 현대까지, 서도의 어느 고을 신흥 부호의 가족사(흥망기)로써 말해볼 수 있다. 어째서 이것을 쓰게 되었는가, 쓰면 어떠한 태도에 의하여 쓰겠는가 등은, 톨스토이의 이른바 제재와 작자의 독립한 도덕적 관계를 결정하는 것인데, 그 취지의 기본적인 거점은 전기(前記) 논문에서 대체로 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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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을 먹고 작년 5월 중순 시골로 가서, 특히 내가 「대하」를 위하여 준비하고 자료 수집 등을 한 기간은 약 1개월로서, 6월 13일 집필을 개시하기까지 서적과 구전을 따라다님으로써 날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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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있었든 없었든, 이 시일 안에 내가 「대하」를 위하여 읽어본 책자는 다음과 같은데 시골인 관계상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서적을 구할 길이 없어 그 수량은 지극히 빈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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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식 씨 저 『조선농촌기구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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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원 씨 저 『조선역사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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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仝)(〔同[동]〕의 고자-편자) 씨 저 『조선독본』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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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운 씨 저 『조선사회경제사』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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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천읍지(邑誌)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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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풍속, 세태, 생활감정, 당시의 교육상황, 상품, 종교 등 일체는 연로한 분들을 왕방(往訪)하여 주석(酒席) 혹은 좌담 등을 통해 얻어들은 말에 의하였다. 특히 당시 성행하던 36계를 조사하려고 일주일 동안 당시의 건달패들을 쫓아다닌 것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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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써 부득이, 나는 시대나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얻은 시대정신의 파악을 기축으로, 당해 시대의 역사적 특성으로부터 유출된 성격과 환경과 사건의 설정으로 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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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의 초석으로 근본 없는 신흥 부호로 하되 그 후 30년을 존명(存命)할 장년, 지주 겸 고리대금업자로 할 것. 이리하여 당년 40세의 박성권이가 가장으로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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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의 구현된 성격으로 발랄하여 전통의 파괴자, 가족계보의 이단자를 청소년에서 구하되, 서자 학도로 할 것. 이리하여 박성권의 3남, 서자, 19세의 박형걸이가 선발되었다. 전 가족의 연령, 출생지, 기타를 정하여 표를 꾸미는 데 하루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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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차남, 사남,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등을 각각 버라이어티를 두도록 만들되, 차남의 아내 정보부에 기독교의 책임을 지우고 중요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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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사건을 주요 사건으로 하되, 그 상대자를 비복(婢僕)과 기류(妓流)에서 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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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서로 구성을 진행한 것인데 지면관계로, 여기서는 이것으로 끝막고 전 작품이 완성되면 한번 다시 정리해볼 날도 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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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9년 6월호, ‘나의 창작 노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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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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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