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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 신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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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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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신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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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여자시인 사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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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내 고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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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데오카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러나 반생을 여기저기서 보내버린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자장가와 노래와 동경의 옛터 ── 나의 소년시대를 고이 지켜주던 내 요람 신화리 산악과 나무그늘과 계곡과 수무월(水無月)로 덮어진 산 나라요, 물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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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리 범석동! 동네이름을 범석동이라고 한 것은 기암괴석이 늘어 선 중에 배돗대 모양의 절벽이 동구를 막은 까닭이다. 산악이 서로 어울려 머리를 부빌만한 계곡에는 벽계(碧溪)가 용용(溶溶)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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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되면 나는 한 마리 고기였다. 프랑스 작가 도데를 북해의 고래’라고 평한 사람이 있지만, 나는 고래는 되지 못하여도 계곡 물 속에 있는 고기 쯤은 된 셈이었다. 틈만 있으면 하루종일 시내에서 고기를 잡고 헤엄을 치고 물장난 하는 자연의 야생아! 조밥 한 덩어리와 김치 한 쪽을 싸가지고 동구 밖 시냇가에서 노는 재미는 그 위에 다시 없었다. 절벽 끝에는 자주빛의 태양이 떠 올라 흐르고, 냇가에는 천지만사(千枝萬絲)의 버드나무가 성스러운 여자의 머리가락같이 수면을 적시고 있지 않은가? 유월 조(鳥) 제비는 그 한때를 마음껏 즐기자는듯이 쪽빛 날개를 물에 적셔가지고 반공(半空)에서 원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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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노래 하나 그림 하나! 그리고 읊어지지 않는 이 산 나라는 아직 제비와 나와 태양과 송아지만이, 그 여름의 포즈를 못잊어 하고 사랑스레 껴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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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에서 인가로 다가오면 조그만 들판이 열리고 거기는 삼십여 채의 초가집이 있다. 계곡을 좌우에 끼고 이곳의 명물인 느티나무가 몇 천 만주가 버려져 있어, 여름이면 그 밝은 녹색의 빛난 날개가 하늘을 덮고 은은한 나무그늘에는, 미풍이 은령(銀鈴) 같은 맑은 소리로 밝고 향기롭게 밀어를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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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마당질에 땀 흘리는 농부 ── 김매기에 피곤한 농부 ── 그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는 밀턴의 ‘실락원’ 이 아니라, 케오미의 ‘낙원애호’ 자로, 그 나무그늘 밑에서 그들의 꿈은 ‘주완탄’ 호반의 녹음같은 행복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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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나라의 여름! 여기는 더위와 작열과 염고(炎苦)를 모른다. 별장, 피서지, 안식의 나무그늘! 그들은 이것을 누구나 소유할 수가 있었다. 도시 사람처럼 몇 백평에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담을 둘러싼 후, 여기만은 나의 천국이라고 버티는 일은 없다. 나도 낮이면 느티나무 아래서 멍석을 깔고 ‘하늘 천 따지’ 를 읽어 본 일도 있고 ‘아이 우 에 오’ 를 불러 본 적도 있다. 덥다! 나는 이 말을 별로 불러보지 못하였다. 조금만 더우면 개천으로 뛰어가 아이들과 헤엄치고, 물장난을 하고 또는 편을 짜가지고 물싸움을 하는 등 산 나라의 여름은 퍽이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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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이면 나무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구수한 옛이야기로 서늘한 밤을 맞는 재미도 좋았다. 반딧불을 잡아 호박잎에 넣고 옥수수를 한 입으로 뜯으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고 불러보는 ── 유쾌한 도시의 사람들이 네온색채를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모닥불 옆에서 참외를 깍으면서 울타리 밑에 핀 설백(雪白)의 박꽃을 바라보고 다시 오봉산 넘어 북두칠성을 헤어보는 것도 내 어린 날의 고향에서 맛 보던 즐거운 추억의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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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有淸香, 花有陰(월유청향, 화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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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어떤 시인은 불렀거니와 내 고향이야 말로 청향의 달과 녹음의 막으로써 덮인 고요한 산 나라이다. 여름이면 그 고운 청록의 포즈가 맑은 하늘을 안고 구만리 승천을 해볼듯이 밤마다 빛나지 않는가. 오봉산과 돗대바위와 느티나무의 그늘은 금년 여름도 여전히 내 고향의 여름을 단장할 것이다.
【원문】내 고향 신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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